뚜껑 대신 마음을 여는 공감 글쓰기
이강룡 지음 / 뿌리와이파리 / 2010년 7월
절판


슬픔을 표현하고자 하면 슬프다고 쓰지 말고 슬픔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훌륭한 사진 하나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문자라는 수단이 없으니 한 장면으로 정서를 전달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좋은 사진 작품을 감상하는 것은 아주 좋은 글쓰기 연습입니다.-45쪽

성북구청에 근무하는 분이 글쓰기 강의 시간에 이런 제목을 단 글을 써 왔습니다. '김치는 이제 그만 보내주세요.' 주민들이 불우이웃돕기 물품으로 김치와 쌀, 라면 같은 것을 주로 보낸답니다. 그러나 절실히 필요한 것은 기부물품이 아니라 주민들 간의 유대를 만들 수 있는 사회적 자본이라는 거예요. 아이들이 함께 어울리며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방과 후 교사가 필요하고, 주민들끼리 협업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공동체 활동가가 필요하다는 거예요. 범주 원칙을 적용하여 제목을 이렇게 첨삭했습니다. '김치 대신 김씨 선생님을 보내주세요.'-115쪽

자기소개서 작성에 관해 첨삭할 때 제가 늘 드리는 말씀이 있는데요, 잘하고 싶은 것(다짐, 바람, 미래)에 관해서 쓰기에 앞서 잘하는 걸(경험, 객관적 사실, 과거) 많이 쓰라는 겁니다. 독자(인사담당자)의 입장에서 보면 왜 그래야 하는지 쉽게 알 수 있죠. 잘하는 게 없는 사람은 하고 싶은 일을 잘하는 일처럼 포장합니다. 그러면 인사담당자의 판단이 흐려집니다. 짜증나죠. 대신 이런 태도로 임하면 어떨까요? 나 이렇게 열심히 일했고, 이런 분야에서 이런 전문성을 키웠다. 뽑을래? 말래?-123쪽

<브이 포 벤데타>는 표현의 자유를 박탈당한 시민들이 자유에 눈을 뜨는 과정을 그린 영화입니다. 여기서 전체주의 정부에 저항하는 투사인 브이는 무고한 시민을 희생시킨 주동자들을 찾아 하나씩 처단합니다. 생체 실험을 주도했던 박사를 죽이기 직전 박사가 이런저런 변명을 늘어놓자, 브이가 이야기합니다. "당신이 하고자 했던 걸 들으러 여기 온 게 아니오, 당신이 한 일 때문에 여기 온 것이오." 그렇습니다. 판단 기준은 하고자 하거나 해야 할 일이 아니라 한 일입니다. -124쪽

아인슈타인이 그랬습니다. 과학자에게서 과학을 떼어놓았을 때 무엇이 남는지 보라. 그것이 그 사람을 규정한다. 그 사람이 남긴 평소 생활 행적이 그를 규정한다는 겁니다. 서정주에게서 시를 떼어놓으면 무엇이 남나요. 일제에 붙어먹은 비겁한 짓이 남습니다. 타이거 우즈에게서 골프를 떼놓으면 무엇이 남나요. 여러 애인들이 남습니다. 로스트로포비치에게서 첼로를 빼면 무엇이 남나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자 모든 공연 일정을 취소하고 장벽 앞으로 달려가 자유를 외쳤던 아름다운 한 남자의 모습이 남습니다. 아직 오지 않은 것은 글쓰기에서 그렇게 중요한 부분이 아닙니다. 이미 벌어진 일을 직시하고 거기에서 교훈을 이끌어내는 게 중요합니다. 과거형, 확정형을 사랑합시다.-124쪽

자기가 쓴 글을 펼쳐놓고 '-되다'라고 쓴 구절을 -하다'로 바꾸기만 해도 문장의 품격이 달라질 겁니다. 수동형 표현을 능동형으로 다 고쳐놓고 보면 그래도 수동형으로 두는 게 더 나을 듯한 문장이 간혹 나올 겁니다. 수동형 문장은 그럴 때 쓰라고 있는 겁니다.-1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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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스 : 정재승 + 진중권 - 무한상상력을 위한 생각의 합체 크로스 1
정재승, 진중권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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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12월 둘째 주. 인류는 한 명의 천재를 잃고 새로운 천재를 맞이한다. 월요일에 비틀스의 전 멤버 존 레넌이 광적인 팬에게 살해당했고, 금요일에는 애플 주식의 공모가 시작되면서 스티브 잡스라는 청년이 하룻밤 사이에 2000억 원을 번 ‘미국 최고의 자수성가 거부’가 됐다. ‘애플’ 음반사의 비틀스는 한 시대의 막을 고했고, 같은 시기에 ‘애플’ 컴퓨터는 새로운 시대를 알린 것이다. 한동안 스티브 잡스는 ‘애플’이라는 이름 때문에 비틀스 저작권자들과 싸워야만 했는데, 그가 아이팟을 출시해 음반 시장을 장악하면서 두 애플의 악연은 더욱 깊어졌다. 하지만 그들은 영국의 물리학자 아이작 뉴턴 이후 가장 유명한 ‘사과’를 소유한 역사적 인물이 됐다.
-28쪽

그가 한 강연에서 했던 말은 분석의 틀에만 매몰된 합리적인 (척하는) 현대인들에게 새로운 양식의 삶을 전해준다.
"시장조사는 하지 않았다. 그레이엄 벨이 전화를 발명할 때 시장조사를 했느냔 말이다! 천만의 말씀. 내가 바라는 것은 오직 혁신이다."
이제 책상 위에 ‘디지털 시대의 구루’ 스티브 잡스를 올려놓고 ‘과학적 사고’, ‘창조적 사고’라는 단어를 다시 정의할 때다.
-33쪽

잡스는 컴퓨터 산업에 미학을 도입했다. 그는 최초로 컴퓨터에 서체의 아름다움을 부여했고, 자신이 개발하는 모든 제품에 미적 디자인을 구현했다. 한때 ‘번거로운 케이블은 물론이고 언젠가는 모니터와 키보드와 본체까지도 눈에 보이지 않게 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나, 애플의 뛰어난 디자인 때문에 이제 기기의 물질성은 사라질 수 없게 됐다. 애플 사용자들은 미니멀리즘의 미학을 구현한 자신의 기기가 남들 눈에 보이기를 간절히 원한다. 심지어 고장 난 기기의 이어폰을 끼고 다닌다고 하지 않는가. 애플의 미학은 빗물질화를 지향하던 디지털 기술을 재물질화 쪽으로 돌려놓았다.

-38쪽

문자가 등장하기 이전에 정보를 저장하는 유일한 장소는 두뇌였다. 예나 지금이나 ‘아는 것이 힘’이다. 푸코의 표현을 빌리면 ‘지식과 권력’은 한 몸이다. 이 때문에 사회 성원 대다수가 문자를 모르던 때는 가장 많은 기억을 가진 자, 즉 연장자가 사회에서 권력을 행사했다. 하지만 문자가 등장하면서 비로소 인간은 정보를 외장 할 수 있게 된다. 지식이 외장 되면, 그것은 인간 두뇌의 자연적 한계를 넘어 무한히 축적되기 시작하는 우리는 이것이 이른바 ‘문명’의 시초임을 알고 있다.

-44쪽

지난 몇 년간 구글은 캘리포니아 마운틴뷰에 위치한 작은 회사 ‘23andMe'에 40억 원 이상의 돈을 투자해왔다. (...) 서비스를 신청하면 일주일 안에 키트와 간단한 설명서를 집으로 보내준다. 이 키트 안에 침을 뱉어서 다시 우편으로 보내면, ’내가 유전적으로 유방암과 당뇨병 등을 포함해 118가지 유전질환에 걸릴 가능성‘을 확률로 표시해 알려준다.
그뿐인가? 유전자 검사를 통해 내 조상은 어디에 살았으며, 내 몸속에 다양한 민족의 피가 얼마나 섞였는지, 내 혈육의 뿌리를 찾아준다. 이미 시판되고 있는 ‘23andMe' 서비스의 가격은 399달러(약 45만 원). 필요한 분석 기간은 8주다. 구글은 지금 침 한 번만 퉤 뱉으면 내가 누구인지, 내 몸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 알려주는 무시무시한 세상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유전자가 포함된 인간 염색체의 개수가 23이라 ‘23andMe'라는 이름이 붙었다).
2008년 ≪타임≫지가 ‘올해의 발명품’으로 선정하기도 한 ‘23andMe'서비스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이제 구글이 세상에 떠도는 정보를 모으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 몸속에 있는 바이오 정보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52쪽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다’와 이미 동의어가 되어버린 구글은 지난 5년간, 세상 모든 정보를 인터넷에 올리겠다는 야심 찬 프로젝트를 줄기차게 진행해왔다는 것이다. 현존하는 모든 책을 스캔해서 서비스하는 ‘디지털 도서관’을 구축하기로 하고, 지금까지 1000만 권에 이르는 책의 디지털 작업을 완료했다. 저작권이나 출판권 등 법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지만, ‘페이지뷰에 따른 비용 지불’ 등의 방식으로 이 문제가 원만하게 해결될 가능성이 높다.

-55쪽

20세기 사회와 문화, 예술, 그리고 과학을 접두사 ‘포스트Post’의 시대라고 표현한다면, 21세기는 예상컨대 ‘프리Pre’의 시대가 될 것이다. 지난 100년간 지구 상에는 정치사상적으로 사회주의와 민주주의의 뒤를 잇는 이데올로기가 수없이 등장했다가 제대로 검증도 받기 전에 사라진 ‘포스트 사회주의’, ‘포스트 민주주의’의 시대였다.

-60쪽

예측·예방 시스템이 우울한 이유는 그 앞에서 우리 모두는 잠재적 범죄자, 잠재적 환자라는 데 있다. 치료해주고 감옥에 가지 않을 수 있게 해주겠다는데 얌전히 속수무책일 수밖에. 그 대신 우리는 ‘발병 확률 50~60%’, ‘범죄 확률 70%’라는 낙인이 찍힌 채 항상 감시받아야 한다. 미리 약을 먹으려고 ‘치료 기간보다 훨씬 더 긴’ 기간 동안 예방약과 정기검진에 돈을 지불해야 하며, 하지도 않은 범죄, 앓지도 않은 병 때문에 직장을 잃게 된다.(‘간질 발병률 30%’인 비행사가 항공기 기장으로 취직할 확률은 그 비행기에 타겠다는 승객 수만큼 희박하다).

-62쪽

영화(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선 범죄예방국의 형사들이 범죄 현장을 덮쳐 살인을 막고 살인자를 ‘살인미수자’로 바꿔 감옥에 넣는다. 미수 사건의 범죄율은 늘지만 살인 사건과 같은 중범죄의 비율은 현저히 떨어진다는 것에 위안을 얻어야 한다. 그렇다면 만약 살인이 예측 가능할 정도로 결정된 운명이라면, 다른 누군가 똑같은 상황에 처해도 같은 일이 벌어졌을 거란 말 아닌가? 그렇다면 살인을 저지른 자의 도덕적 죄는 과연 무엇일까?

-64쪽

앞으로 창의적이지 못한 기술은 기능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기술도 이제는 예술과 문학의 지원을 받아야 한다는 얘기다.

-71쪽

수백만의 신을 모시는 다신교 문화는 특정 종교의 독단에서 자유로운 법. 다른 나라에서는 이단, 혹은 사이비 종교라 불리는 집단들도 일본에서는 전혀 이상할 것 없는 일상으로 존재한다. 다른 나라에서는 정상적 생활의 바깥에 존재해 그저 영화를 통해서나 볼 수 있는 폭력 조직도 일본에서는 그저 좀 껄끄러운 ‘친구’로서 일상생활 속에 용인된다. (20세기 소년)

-101쪽

키티는 1974년 플라스틱 동전 지갑에 그려진 캐릭터로 처음 등장했다. 그때만 해도 아직 이름이 없어 그냥 ‘이름 없는 하얀 고양이’라 불렸다고 한다. 이 고양이가 이름을 갖게 된 것은 이듬해인 1975년. ‘키티’라는 이름은 루이스 캐럴의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정식 명칭은 ‘키티 화이트’. ‘화이트’라는 성은 물론 나중에 붙인 것이다. ‘키티’라고 하면 분홍색부터 떠오르지만, 고양이 자체는 하얀색이다.

-106쪽

인형에 서사를 부여하는 전략이 키티에게 처음 사용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미국에는 올해로 쉰 살 생일을 맞은 바비 인형이 있잖은가. 바비 역시 교사, 요리사, 스튜어디스, 에어로빅 강사, 우주인 등 100개가 넘는 화려한 이력서를 갖고 있다. 키티에게 다니엘이 있다면, 바비에게는 켄이 있다. 이들의 연애사도 극적이다. 몇 년 전 바비는 43년간 사귀었던 켄과 결별하고, 서핑보드를 탄 멋진 남자 블레인과 새롭게 만났다. 바비 인형의 매출이 떨어진 게 결별의 이유였다고 한다. 하지만 블레인이 켄이 떠난 자리를 채울지는 미지수. 그 사이에 켄도 새로운 변신을 거듭하며 다시 바비의 마음을 사려고 노력하고 있단다.

-110쪽

물론 키티와 바비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전 세계 어린이에게 미국 백인 중산층 여성의 욕망을 심어준다는 점에서 바비는 매우 이데올로기적이다. 이 한계를 넘고자 마텔 사는 동양인 바비, 흑인 바비, 히스패닉 바비를 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다른 인종 바비에게서 우리는 매우 역설적이게도, 그동안 바비가 철저하게 백인 여성의 미를 절대화했다는 고백을 읽는다. 반면 키티는 ‘무국적성’이라는 일본 대중문화의 전형적 특성을 갖는다.

-110쪽

기쁨(:-))이난 슬픔(:-()을 표현하는 미국식 이모티콘이나 스마일 표시(☹,☹,☹)를 떠올려 보면 쉽게 알 수 있듯이, 서양 사람들은 주로 입 모양으로 감정을 표현한다. 그러나 동양인들은 주로 눈 표정에 변화를 주어 감정을 표현한다. 일례로, 우리들의 이모티콘(^.^, ㅠ_ㅠ, ㅜ_ㅜ, @@)을 떠올려 보시라.

-115쪽

키티의 표정이 오묘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입이 없어서라기보다는 ‘그 눈이 아무런 감정 상태도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흰자위 없이 까만 눈동자만 동그랗게 뜨고 있는 키티는 그저 멍하니 우리를 바라볼 뿐, 아무런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다. 덕분에 사람들은 키티의 눈에 자신의 감정을 투영해 다양하게 감정을 읽는다.

-117쪽

내가 찍는데도(혹은 내 가장 가까이에서 찍는데도), 나의 진짜 모습이 아니라 ‘가장 왜곡된 모습’을 담아낸다는 점에서 셀카는 ‘삶의 기록’이 아니라 ‘욕망의 기록’이다.

-127쪽

졸리는 형해화한 기존 도덕을 따르는 게 아니라, 자신의 도덕을 자기 스스로 만들어나간다. 바로 여기서 묘한 결합으로 이루어진 졸리 특유의 도덕이 탄생한다. 이를테면 졸리는 이혼을 두 번 할 정도로 인습에서 자유로우나, 그렇다고 가족의 가치를 우습게보지 않는다. 그녀는 세 아이를 입양하고, 스스로 세 아이를 낳을 정도로 가정적인 사람이다(사진을 보니 자녀의 구성도 다양하다. 아프리카계, 아시아계, 코카서스계. 인종과 국가의 경계를 넘어선다). 덕분에 여전사와 팜므파탈은 동시에 모성의 상징, 모유 수유를 강조하는 동상의 모델이 되기도 했다.

-165쪽

단순하면서도 지적이고, 대담하면서도 아름다운 가방과 구두들. 여기에 덧붙여 프라다는 마케팅도 얄밉도록 잘한다. 그들의 마케팅 중 눈여겨볼 만한 대목은 현대예술과 자사 제품을 병치시킴으로써 고급 이미지를 강화하고 ‘문화의 선두주자’라는 인식을 심어주었다는 것이다.

-180쪽

우리 기업들이 프라다에게 배울 것은, 21세기는 브랜드를 넘어 명성을 얻으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제품의 성능과 질, 가격, 디자인은 브랜드 이미지를 결정하지만, 제품과 함께 파는 ‘문화’는 기업의 명성을 높인다. 21세기 명품은 브랜드를 잘 만들고 마케팅을 어떻게 하느냐를 넘어 ‘제품과 함께 기업이 어떤 문화와 스타일을 파는가’로 결정된다. 프라다는 일찌감치 장인 정신은 버렸지만, 혁신적이고 세련된 문화를 가방 속에 끼워 팔았기에 ‘21세기 명품의 대명사’가 됐다.

-183쪽

생수의 공식 명칭은 ‘먹는 샘물’이다. 그러나 빙하를 녹이고 200미터 심층 바다에서 지하수를 뽑아내 "이것이 살아 있는 물生水이다!"라고 주장하는 순간, 수돗물과 보리차는 졸지에 ‘죽은 물’이 되어버렸다.
인간이 하루에 먹는 물 소비량은 약 2리터, 1년이면 730리터, 70년이면 5만 1100리터. 평생 먹을 물을 프랑스 고급 생수 ‘에비앙’으로 채우려면 7700만원. ‘제주 삼다수’로 채우려면 2100만 원 정도가 든다. 그러나 수돗물로 채운다면 단돈 1만 6380원. ‘삶의 질’을 중히 여기는 21세기 현대인들은 제 몸의 70%를 차지하는 물의 수질 관리를 위해 수천만 원을 쓰고 있다는 얘기다.
-186쪽

영국에서 볼빅의 생수 1리터가 판매될 때마다 아프리카에 10리터를 보내주는 자선 사업을 하고 있다. 에비앙에서도 물 부족 국가에 물을 보내거나 지구 온난화를 막는 캠페인을 벌여 ‘빙하를 녹여 판다’는 이미지를 벗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럼에도 생수 한 병을 마시는 것은 자동차 1km를 운전하는 것과 동일한 정도로 환경에 영향을 주며, 생수 1리터를 만드는 것이 같은 양의 수돗물을 생산할 때보다 600배에 달하는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환경단체들이 2조 원이 넘는 생수산업에 반기를 드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191쪽

생수가 비싼 것은 물 때문이 아니라 그놈의 ‘병’ 때문이다. 4800미터의 알프스 산맥(에비앙), 해저 200미터 이하에 존재하는 청정한 고유수(마린 워터), 캐나다산 빙하수(휘슬러), 프랑스산 탄산수(페리에), 남태평양 피지 지하 암반에서 뽑아낸 암반수(피지워터), 핀란드에서 수입한 자작나무 수액(버치 샙) 등 전 세계 산천에서 귀하디귀한 물들을 한반도까지 공수하려니, 리터당 1만 원이 넘을 수밖에.
그다지 몸에 좋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고, 지구에 유익하지도 않지만, 생수는 이제 휴대전화처럼 ‘패션 액세서리’가 됐으며, 상류 사회에 대한 ‘대리 체험’이자 ‘자기 과시 소비’의 아이템으로 ‘21세기의 필수품’이 되어버렸다.
-192쪽

굳이 물을 사다 마시는 게 의아해서 물어보니, 독일은 지층 전체가 석회암으로 되어 있어 물에 석회가 너무 많이 섞여서 그런단다. 하긴 그곳에서는 설거지를 하고 나서 꼭 천으로 물기를 제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잔이나 접시에 허연 석회가 덕지덕지 붙어 있다.

-197쪽

선거일 전날 "당신은 투표할 의향이 있습니까?"라는 설문 조사에 참여하게 되면, 그들이 투표할 확률이 무려 25%나 올라간다. 게다가 이번 선거에서는 예년에 비해 투표율이 크게 올라갈 것으로 예상된다는 뉴스를 접한 그룹은 그렇지 않은 그룹보다 투표에 참여할 확률이 20% 이상 올라간다. 물건을 구매할 때도 비슷한 효과가 나타난다. 사람들의 의도를 측정하는 설문 조사가 그들의 구매 의사와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209쪽

보수적인 사회에서 사회적 풍자의 길이 사실상 가로막혀 있다 보니, 희극에 내재된 공격성이 쓸데없는 방향으로 흐르는 것일까? "너희들 오토바이 타는 형들 부럽지? 가스 마시는 형들 부럽지? 걔들 지금 오토바이 타고 가스 배달하고 있어." 이런 개그를 들으면서 대중은 폭소를 터뜨린다. 하지만 오토바이 타고 배달하며 열심히 사는 청년들은 이런 비웃음을 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교양과 반성이 없는 개그는 쓸데없이 비열해질 수 있다.

-229쪽

‘정체성identity'이라는 말은 동시에 ‘동일성’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현실은 우리에게 오직 하나의 정체성만을 갖도록 강요한다. 예를 들어 남자는 남자로 확인되어야 하고, 여자는 여자로 확인되어야 한다. 이 규칙을 깨고 남자가 여장을 하거나 여자가 남장을 할 경우, 곧바로 ‘변태’라는 비난을 받는다. 하지만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듯이 모든 사람에게는 아니마와 아니무스, 즉 남자 속의 여자, 여자 속의 남자가 있다. 다만 그것이 ‘정체성’의 미시정치 속에서 발현되지 못할 뿐이다.

-259쪽

9시 뉴스가 메인 뉴스가 된 가장 그럴듯한 근거는 ‘직장인의 일주기 생활 패턴 가설’이다. 텔레비전 뉴스를 주로 보는 시청자층은 중장년의 남자들. 그들이 하루 일과를 마치고 퇴근해서 집에 와 싯고 텔레비전 앞에 앉기까지 가장 빈도수가 높은 시간대가 밤 9시라는 주장이다. 일찍 퇴근하는 문화가 정착된 미국이나 영국은 메인 뉴스를 오후 6시에 하는 걸 보면, 우리나라 직장인을 고려한 시간 배치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가진다. 그것이 일 때문이든, 술 때문이든.

-271쪽

세상에서 가장 창의적인 장난감은 ‘쓰레기 더미와 자연’이다. 잘 갖추어진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아이들보다 장난감이 하나도 없어 장난감을 ‘만들어서’ 노는 아이들이 실제로는 창의적이라는 연구 결과는 장난감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실제로 가장 창조적인 사람들은 레고를 조립하며 노는 어린이가 아니라, 레고 회사에서 ‘장난감’을 만드는 기술자들이다!).

-283쪽

과거의 백과사전은 필자와 독자의 신분적 구별 위에 서 있었다. 이 관계에서는 유식한 지식인이 무식한 민중을 깨우치는 일방적 ‘계몽’만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위키피디아는 필자와 독자의 이 신분제를 무너뜨렸다. 거기서는 독자가 필자가 된다. 계몽주의가 민주주의 프로젝트의 일환이었고, 민주주의가 자기가 자신을 다스리는 ‘자치’의 이념이라면, 위키피디아는 이 계몽주의가 목표로 삼았던 민주주의의 궁극적 완성이라 할 수 있다. 이제 민중은 스스로 가르치고, 스스로 배운다.

-297쪽

위키Wiki란 하와이 원주민어로 ‘빠르다’라는 뜻이며, ‘What I know of it(이것에 관해 내가 아는 것)’의 머리글자를 딴 말이다.

-302쪽

웹 2.0 시대인 오늘날, 위키피디아의 미래는 밝게만 보인다. 더 크게 성장할 것이며, 더 많은 사용자가 위키피디아를 찾을 것이다. 그러나 위키피디아가 소중한 이유는 다음 세대에게 "공유할수록 서로 부유해진다"라는 인생의 놀라운 진실을 가르쳐주었다는 데 있다. 위키피디아는 우리들에게 지식을 운반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참여와 공유의 습관을 가르치고, 그 중요성을 일깨워주었다.

-305쪽

우리나라에 있는 대학의 수는 1970년 152개에서 2008년 368개로 두 배 이상 증가했고, 대학 진학률도 28.6%(1970)에서 83.8%(2008)로 급증해 일본(49.1%)이나 미국(63.3%)에 비해 훨씬 높은 편이다. 이 중 이공계 대졸자 수는 인구 10만 명당 238.9명으로, 미국(111명), 독일(82.1명), 일본(126.9명)이 따라오지 못할 정도다. 그러나 이공계 박사 수는 인구 1000명당 2.9명으로, 스위스의 1/5, 독일의 1/2 수준에 불과하다.
-3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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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지식의 탄생 - 지식채널e는 어떻게 태어나고 진화했나
김진혁 지음 / 마음산책 / 2010년 7월
절판


우리는 흔히 지식을 ‘정보’라고 생각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이해하고 외우고 꺼내 쓰고, 그것이 지식이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일까? 한번 생각해보자. 정말 지식이 정보일 뿐인지. 만약 내일 지구가 멸망할 것이라는 지식을 알게 됐다고 치자. 그럼 우리는 그 정보를 이해하고 외우고 꺼내서 쓰는데 그칠까? 결코 그러지 않을 것이다. 당장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발버둥 칠 것이 뻔하다. 우리가 알게 된 것은 지구 멸망이라는 단순한 정보지만, 그로 인해 우리 모두가 내일 죽으리라는 것을 깨닫는다. 이처럼 ‘깨달음’도 지식의 일부분이다. <지식채널e>는 이처럼 치환된 지식, 즉 ‘깨달음’의 영역에 있는 지식을 ‘메시지’라고 표현한다.

-31쪽

<지식채널e>의 정치적 입장은 ‘보수’에 가깝다. <지식채널e>가 말하는 기본적인 메시지가 ‘착하게 살자’는 일종의 ‘보편적인 선’이고, 이것이야말로 보수적 가치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67쪽

언론은 권력과 불편한 관계에 있어야만 정상이다. 언론 본연의 기능이 권력을 감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귀찮고 불편하다고 해서 언론의 자유를 위축시켜서는 안 된다. 권력이 못마땅하다고 해서 언론 스스로 권력이 되려고 나서서는 안 되는 것처럼 말이다. 언론을 통제하려는 권력, 스스로 권력이 되려고 하는 언론, 둘 다 불행해진다. 또 그러한 권력과 언론을 둔 나라, 그 나라에 사는 국민 모두 불행해진다. 언론의 자유는 곧 국민의 자유고, 국민의 자유야말로 민주주의의 핵심적 가치다.

-69쪽

흔히 소외된 이들을 다룰 때 제작진은 그들의 어려운 현실만을 집중적으로 부각한다. 이렇게 하면 상황은 잘 묘사할지 몰라도, 자칫 그들 역시 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간과할 수 있다. 즉 사람이 아니라 그저 불쌍한 ‘대상’으로만 여기는 것이다 그들은 ‘우리와 같은’ 인간이 아니라 ‘우리와는 다른’ 혹은 ‘우리보다 못한’ 어떤 존재가 되고 만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겉모습은 사람이지만 사실 사람은 아닌 존재다. 그러나 비록 가난하고 비참하더라도 그들 역시 우리와 같은 인간이다. 그걸 잊을 때 인간은 다른 인간을 대상화하게 되며 이는 또 다른 의미의 소외이다.(복지를 단순한 수혜로 생각하는 것도 이러한 사고방식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의 어려운 현실을 보여주더라도 대상화의 함정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

-97쪽

누군가 소외당한다는 건 반드시 그들을 소외시키는 누군가가 있다는 걸 의미한다. 소외당한 이들의 고통만을 보여주고 끝나면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일부분만 드러내고, 일부분은 외면하게 된다. 따라서 그들을 소외시키는 누군가, 혹은 그런 소외를 만들어내는 ‘구조적 문제’를 반드시 담아야 했다. 그러나 여기서도 주의할 점이 있다. 지나치게 이 두 가지를 부각하면 시청자들은 자칫 분노에만 그칠 수 있다. 물론 분노는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소외된 이들 자체보다 더 중요할 수는 없다. 더구나 분노는 감정이다. 분노가 치밀어 오르면 이를 해소하는 데 가장 큰 집중을 하게 된다. ‘감정적 배설’에 가장 많은 에너지를 쓴다는 말이다. 따라서 분노가 감정적 배설로 끝나지 않고 이성적인 ‘문제의식’으로 자리 잡도록 할 필요가 있었다.

-101쪽

하지만 모든 감정이 다 승화되지는 않는다. 일부 분노는 승화되지도 못하고 배설되지도 못한 채로 내면에 남는데 그건 일종의 ‘무기력함’일 것이다. 아무리 문제의식을 가져봤자 사회구조적인 문제가 바로 해결되지 않는 데서 느끼는 절망 말이다. <지식채널e>를 보고 느끼는 ‘먹먹함’이라는 감정도 바로 이게 아닐까. 그러나 이 ‘무기력함’이야말로 어쩌면 가장 중요한 것일 수도 있다. 이런 느낌은 다름 아닌 소외된 이들이 체험하는 아픔이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시청자는 소외된 이들을 단순히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잠시나마 그 입장에서 그들이 느끼는 고통과 절망, 그리고 무기력함을 마치 자기 일인 것처럼 체험할 수 있다. 소외 문제에 있어서도 백 마디 말보다는 한 번 경험하는 것이 훨씬 나은 법이고, 이는 문제의식이나 비판의식보다 훨씬 더 강렬하고 핵심적이다.

-102쪽

경제가 급격하게 성장하고 빈부격차가 심해지면서, 살 만한 이들은 관심을 갖지 않는 이상 가난한 자들의 삶을 알기 어렵게 됐다.(사실 여기에는 언론의 책임이 더 크다.) 어려운 이들이 경제적으로 소외된다면, 먹고살 만한 이들도 세상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소외를 겪는 것이다.

-135쪽

그 이름이 무엇이든 중요한 건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마음이다. 바로 그러한 마음을 나는 ‘선한 욕망’이라고 부른다. 흔히 ‘욕망’은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지만 욕망 그 자체에 옳고 그름이 있다기보다는, 무엇을 어떻게 욕망하는가가 중요할 것이다. 당연히 ‘선함’도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하나의 욕망이다. 보통 사회 비판적인 매체들은 선한 욕망을 격려하기보다는 악한 욕망을 꾸짖는 경향이 있다. 흔히 하는 말로 ‘네거티브’하다는 말이다. 물론 어떤 사안을 비판하기 위해서는 꼭 잘못된 점을 지적해야 한다. 다만 네거티브하기만 할 경우 자칫 선한 욕망을 간과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144쪽

또한 선한 욕망은 일종의 ‘대안’을 뜻한다. 무언가를 ‘하지 말라’는 말에 100% 공감하더라도, 그것 자체가 해야 할 무엇을 알려주지는 못한다. 아무리 네거티브해도 반드시 ‘포지티브’한 것을 포함해야 한다. 그래야 온전한 비판을 통해서 얻고자 하는 것, 이루고자 하는 것을 명확하게 인지할 수 있다. 비판적 시각에는 ‘악한’ 욕망에 대한 꾸짖음과 ‘선한’ 욕망에 대한 격려가 모두 들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선한 욕망이 훨씬 더 중요하다.

-145쪽

악을 없애는 것이 그 자체로 선을 실현하는 것이 아니지만, 선을 실현하면 그 안에 있는 악은 자동적으로 없어지는 것과 같다.

-146쪽

꾸짖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난 제작진에겐 두 가지 좋은 점이 있다. 하나는 아무리 예민한 사회 이슈라도, 속된 말로 ‘까야만 한다’는 강박이 없다 보니 예민하지 않게 다룰 수 있다. (...) 꾸짖지 않아서 좋은 또 한 가지는 제작진 스스로 겸손해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누군가를 꾸짖는다는 건 은연중에 꾸짖는 내가 우위에 있음을 의미한다. 물론 ‘비판’의 목적이 제작진이 우위에 있다는 걸 자랑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비판에 몰입하다 보면 알게 모르게 비판당하는 대상보다 비판하는 자신이 좀 더 도덕적으로 우위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147쪽

케네디의 말처럼 신화는 거짓과 다르다. 굳이 표현하자면 신화는 왜곡이나 과장이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 자체가 완전한 거짓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통념’이다. 통념의 가장 큰 특징은 그것이 정당하지 못하더라도 일단 받아들이면 매우 ‘편하다’는 점이다. 바면 ‘진실’은 대개 통념과 잘 일치하지 않는다. 흔히 ‘불편한 진실’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그 이유는 고정관념이나 선입관, 즉 신화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거짓말만 아니라면 진실보다는 신화를 선택한다.

-170쪽

대부분의 위인들은 탄생에서 죽음까지 인생 전체가 전기에 담기는데, 이상하게 헬렌 켈러의 경우엔 20세 전까지만 담겨 있다는 점이다. 어째서 그런 걸까? 헬렌 켈러는 20세 이후 진보적 사회주의자의 길을 걸었다. 즉 그녀는 당시 미국의 여러 가지 사회 문제에 대해 누구보다 날선 비판을 아끼지 않았던 ‘반체제 인사’였다. 따라서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와 가치에 일치한 20세까지의 이야기만 남고 20세 이후의 삶은 전기에 기록되지 못한다. ‘일부의 사실’이 마치 ‘전부의 사실’인 것처럼 기억되는 것이다.
-1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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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로 보는 한국전쟁 - 국문
존 리치 지음 / 서울셀렉션 / 2010년 5월
절판


서울이 북한에 함락되고, 이승만 대통령은 남쪽으로 피신을 떠난다. 이 대통령이 배편으로 여수를 거쳐 부산으로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을ㄴ 나는 그를 인터뷰 하기로 결심한다. 1년 전에도 그를 이니터뷰 한 적이 있던 터였따. INS에 기사를 송고하고 난 뒤, 이 대통령을 인터뷰 한 적이 있던 터였다. INS에 기사를 송고하고 난 뒤, 이 대통령을 인터뷰 하면 어떻게 방송으로 내보낼 수 있을지를 고심했다. 당시 나는 미 ABC 방송의 통신원으로도 활동하고 있었는데, 기사 한 건당 얼마를 받는 식이었따. 이 대통령의 음성을 해외로 내보내는 데에는 몇 가지 난관이 있었다. 우선 테이프식 녹음기가 없었다. 누군가 레코드판에 녹음을 하면 어떻겠느냐고 아이디어를 냈다. 당시 레코드 녹음 시설을 갖추고 있는 곳은 라디오 방송국밖에 없었다.
자신의 메시지를 세계에 전하고 싶었던 이 대통령은 매우 협조적이었다. 우리는 부산에서 마련한 이 대통령의 리무진을 타고 라디오 방송국으로 향했다. -42쪽

텔레비전이 나오기까지는 아직 한참 더 기다려야 하는 시절이었다. 방송국에서 나는 이 대통령을 인터뷰 했고, 이를 옛날 축음기에서처럼 78rpm의 회전 수로 레코드판에 녹음시켰다. 이 대통령의 음성은 레코드판에 담았지만, 이제 이것을 어떻게 미국으로 보내느냐가 문제였다. 수소문 끝에 축음기와 단파 라디오 무전기를 갖고 있는 미군 병사를 찾아냈고, 그와 나는 녹음한 인터뷰를 그날 밤 내내 무전으로 내보내며 누군가 이를 듣는 사람이 있다면 ABC 방송에 전달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ABC 방송 측이나 다른 그 누구로부터도 이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는 걸로 봐서는, 그 인터뷰는 끝내 전달되지 못한 것 같다. -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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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10 10: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11 13: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인문학으로 광고하다 -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박웅현의 창의성과 소통의 기술
박웅현, 강창래 지음 / 알마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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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웅현은 언젠가 신문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좋은 광고인이 되기 위한 조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인문학적인 소양입니다."
박웅현은 처음 만난 날에도 이 말을 했다.
"광고라는 도구를 통해 소통하는 방법을 찾을 때 창의력이 필요한 거고 그 창의력을 위해서는 인문학적인 소양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출판사 열린책들 홍지웅 대표도 같은 말을 했더라고요. 좋은 출판인이 되는 조건도 인문학적인 소양이라는 겁니다."
공감이 된다. 인문학이란 사람에 대한 학문이다. 문화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법이 구체화된 결과물이고, 문화 현상 가운데 하나가 예술이다. 예술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을 전제로 한다. 그러니 당연히 인문학적인 소양이 필요하다.
-50쪽

광고는 시대 읽기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시대정신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일은 껌 광고에서부터 기업 광고에 이르기까지 모든 영역의 광고에 필수적이다. 시대정신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광고는 공감대가 없고, 공감대가 없는 광고는 존재 이유가 없다. 시대를 보는 새로운 시선을 준다는 측면에서 전혀 히까닥하지 않은 광고를 하는 나에게 영양제가 되어준다.(중략)
광고는 또한 사람 읽기다. 갓난아이부터 파파 할머니까지 모든 사람들의 바람과 현실, 희망과 절망을 가능한 한 많이 알아야 한다. 그래야 그들과 진솔한 대화를 할 수가 있고 진솔한 대화가 있어야 그들의 마음은 열린다. 광고는 궁극적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열기 위한 노력의 결과물이다. 그래서 우리는 타깃 분석에 그렇게 많은 시간과 땀을 투자하는 것이다. 사람이야말로 아는 만큼 보이고 그때 보이는 것이 전과 같지 않은 존재다.
-52쪽

실패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다. 우리는 어릴 때 수도 없이 넘어지면서 걷는 데 천재가 되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 누구도 넘어지면서 일어나라는 명령에 따른 것이 아니다. 스스로 하려고 해서 이룬 일이다. 실패를 하고도 딛고 일어서는 사람들은 그 실패마저도 즐겁다. 성공에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는 ‘무언가’를 배운 기회였기 때문이다.
에디슨식으로 말하면 천재란 2,000번 실패해도 다시 시작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며, 창의성은 2,000번 실패한 뒤에 얻을 수 있는 빛과 같은 것이다.
-151쪽

"광고주가 일에 대한 토론을 하다가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내가 돈을 내는 사람인데 이렇게 마음대로 못한다는 게 맘에 들지 않는다. 나는 박사 학위도 가지고 있으며 이 길로 들어서서 나름대로 성공해온 사람이다. 이러는데 ‘박사’라는 말이 딱 걸리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그랬죠. 저는 박사가 아닙니다. 그렇지만 광고 만드는 일에만 22년 동안 전심전력으로 일했습니다. 일과 진심으로만 이야기를 하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말했죠. 분위기는 말할 필요도 없이 싸늘해졌죠."
-257쪽

광고를 제작하는 입장에서 보면 그래서 전쟁터가 된다. 광고주는 광고 제작 책임자와의 관계를 환자와 의사라고 생각하기보다는 호텔에 든 고객과 호텔지배인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과로 보면 박웅현의 생각이 옳을 때가 많다. 그것은 광고라는 결과물이 가지는 성격 때문이다. 대개의 문화 상품들은 그런 속성이 있다. 아무리 공동 작업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해도 누군가 한 사람의 결정을 따라야 한다. 어떤 것이 어떤 이유로 ‘좋은 것’인지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 적당한 말이 바로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이다.
-258쪽

불리한 전쟁을 시작합시다.
적이 우리보다 수만 배쯤
강하다고 생각합시다.
우리에겐 식량도
무기도 부족하고 여론도 시간도
우리 편이 아니라고 생각합시다.
가장 용맹한 백곰마저
얼음 조각 위에서 죽어갔으며
돌고래의 함대는
해변에서
전멸을 당했다는
불리한 전황들을 직면합시다.
어처구니없는 전쟁을 시작합시다.
거실에도 자동차에도
버젓이 들어와 번지고 있고
서서히 지구의 온도를 높여가는
적들과 싸워나갑시다.
그들의 야유와 멸시에도
굴하지 않고
새까만 씨앗들이
겨울을 견디어내듯
조금씩 이겨나갑시다.
반드시 이겨야만 하는
전쟁을 시작합시다.
e-편한세상 극장용 광고 <북극곰>
-265쪽

박웅현은 꼭 윤리적이거나 사회적으로 옳은 광고를 만들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기업의 문제를 해결한다는 생각뿐이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결국 가치지향적인 광고를 만들어 낸다. 그것은 그가 ‘사람을 향하지 않은 기업은 성공할 수 없고’ 기업들 역시 ‘더 좋은 가치가 더 많은 이윤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어떤 기업이 그것을 잊고 있다면 논쟁을 통해서라도 알려주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것이 광고주에 대한 자신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그런 고집까지가 박웅현의 광고에서 발견되는 창의성을 만들어낸 요소다.
-2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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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05 09: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05 11:3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