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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현듯 면허를 따고 싶어졌다.

면허는 운전을 할 수 있을 때 따야지, 그렇지 않으면 장농 면허 되기 십상이라고, 지금 당장 차를 몰 일이 없으니 면허를 딸 필요 없다고 여겨 왔는데, 갑자기 면허를 따고 싶었다. 이유는 몇 가지 있었다. 언니의 2000년산 마티즈가 폐차를 하네 마네 말이 오가서 폐차하기 전에 운전 연습 하고 싶었고, 11월이면 시험이 어려워진다는 풍문을 들었고, 그냥 올해가 가기 전에 기념할 만한 뭔가를 하고 싶었다. 그게 고작 면허라고 하면 좀 허무하지만, 그래도 뭐라도 하고 싶었다.

 

그런데 과정이 참 미끄럽지 못했다. 일단 당일배송 주문한 문제집이 늦게 도착했다는 이야기는 지난 번에 했고, 그 와중에 바쁜 일 겹쳐서 운전학원에 등록한 게 10월 29일이었다. 면허시험장에서는 한 시간이면 끝나는 교육이 운전학원에서는 무려 5시간이나 잡혀 있다. 출근 시간이 겹쳐서 이틀에 나눠서 교육을 받고 10월 31일에 필기 시험을 봤다. 이날 머리 쾅 박은 얘기, 저번에 했던 것 같다.(기억이 가물가물...;;;;;) 암튼, 98점으로 안정적으로 합격!

 

 

11월 1일에 바로 기능 시험 볼 생각이었는데 멀리 전주에서 친구가 올라와서 2일로 미뤘다.

11월 2일에 40분씩 두 차례 학원 안에서 차량 작동법을 배웠다. 처음엔 전조등과 깜박이, 그리고 와이퍼가 어찌나 헷갈리던지.... 간단한 작동을 마치고 50미터 달리다가 급제동 한 번 하고서 멈추면 끝나는 쉬운 시험이다. 여기에 좌측으로 꺾는 게 하나 있다는 걸 놓친 게 살짝 아쉽지만, 그래서 차선 밟아서 15점 감점되었지만, 어쨌든 85점으로 무사히 합격! 내가 첫번째 시험이었는데 뒤이어 시험본 남학생이 어찌나 환호성을 지르던지... 들어보니 세번째 시험에 합격했단다. 첫번째는 주차브레이크 안 풀었고, 그 다음에는 후진에 놓고 달려서 실격했다고... 뭐 암튼 모두 다 무사히 합격.

 

그리고 주행 10시간이 잡혀 있었는데 스케줄표를 받아보니 일주일 뒤다.

11월 9일에 학원에 가서 40분씩 두 차례, 역시 두시간 동안 주차 연습을 했다. 우로 한번, 좌로 두 번 꺾기!. 우좌좌, 우좌좌, 우좌좌!!! 원래 50분 수업이어야 하는데 여긴 강사들이 모두 40분 수업을 한다. 은근슬쩍 10분씩 잘라 먹음...;;;;;

 

도로에 처음 나간 것은 11월 12일이었다. 기능 시험을 10월 안에 보았다면 A,B코스 두 개 연습해서 원하는 코스 선택해서 시험을 본다고 한다. 어이쿠, 나는 몰랐다. 알았다면 필기 시험 본 날 기능까지 마치는 건데...;;;;

 

암튼, 나는 A, B, C, D 코스를 배워야 했다. 11월 12일에 세 코스를 달렸고, 13일에는 남은 한 코스와, 앞의 코스를 복습했다. 14일이 시험 날이었으니까.

 

A와 C가 비슷한데 난이도가 좀 있고, B와 D가 비슷한데 역시 난이도 차이라는 걸, 달리면서 몰랐다. 알다시피 나는 심하게 길치이니까. 월요일에 가르쳐준 분은 나한테 차가 멈췄을 때 중립 기어로 놓아야 한다는 걸 알려주지 않았다. 화요일에 다른 강사분이 왜 안 하냐고 마구 야단쳐서 알았다. 아씨, 뭐야 이거..ㅜ.ㅜ

입이 걸걸한 강사샘의 지도 하에 열심히 뱅글뱅글 돌았다. 셔틀 버스가 두시간 간격이어서 시간이 남았던지라 추가 결제하고(4만원!) 1시간 동안 B, C, D코스를 빠르게 한번 돌아보니 자신감이 생겼다. 다음날 시험에 덜컥! 붙을 줄 알았다.

 

그.런.데.

 

14일 오전에 두시간 남은 걸 타는데 강사샘한테 무지 깨졌다. 전날 가르쳐준 분하고 깜박이 켜는 위치에 차이가 있고, 앞차와의 간격도 차이가 있다. 브레이크 밟는 법도 차이가...;;;; 자신감이 마구 사라져 갔다.

 

시험 시간. 나와 짝으로 시험을 볼 여자분은 코스를 전혀 외우지 못했다. 우린 둘다 D코스를 원했지만 가위바위보에서 진 내가 제일 어려운 C코스 당첨! 그리고 앞서 시험보게 된 그 여자분은 D를 가는데, 중간에 차선을 변경 못해서 엄한 데서 우회전을 하고 엉뚱한 길을 헤매기 시작했다. 선생님 짜증내시고, 뒷좌석에서 나까지 덩달아 당황하고, 저렇게 길 까먹을까봐 무지무지 떨리는 거다. 지도 펴고 열심히 내가 가야 할 길을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다. 길을 잊으면 안돼, 길을 잊으면 안돼!

 

그렇게 노선만 달달달 외우며 출발하다가, 학원 문 앞을 통과하기 직전 왼쪽에서 오는 차량을 발견하지 못했다. 선생님이 급제동! 그리고 나는 실격이 되고 말았다. 학원 문도 통과 못해 보고. 흑흑흑....ㅜ.ㅜ

 

선생님의 아량(?)으로 실격됐지만 코스는 한바퀴 돌았다. 엄청 구박받으면서...ㅎㅎㅎㅎ 주차도 해봤는데 연석 위에 올라타 주시고...;;;;;

 

감독하신 선생님이 생명의 위협을 느끼셨다나. 그래도 뭐 칭찬할 만한 거는 없었나요? 하고 물으니, 침착하게 운전하는 건 좋았다 한다. 그랬나??

 

암튼, 그래서 다시 그 다음 시험 일정을 잡았다. 사흘 뒤에 시험을 볼 수 있었는데 이어서 잡힌 나의 시험 날짜는 11월 19일. 오전에 한 시간 추가 결제해서 난코스인 C와 D를 한바퀴 돌고 와서 시험에 응시했다. 감독관 왈, C와 D만 열심히 몰고 왔을 것 같아서 A와 B를 골랐다 한다. 내 앞에 운전한 사람이 제일 쉬운 A를 주행했고, 나는 그 다음 쉬운 B를 돌았지만, B가 너무 오랜만이어서 급당황해 버린....;;;;

 

주차도 삐뚤어져서 재도전했는데, 처음보다 더 멀어져버린..ㅜ.ㅜ 여러모로 땀 흘리게 하는 시간이었다. 그렇지만 우여곡절 끝에 합격!(78점 받았다. 하아, 힘들어....)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이번주 월요일에 나는 면허 시험에 합격했다. 만세!

화요일엔 급한 일이 생겨서 면허증을 찾으러 가지 못했고, 수요일에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화요일 밤에 퇴근해 보니 욕실 하수구가 막혀 있다. 이사 올 때부터 하수구 물 내려가는 게 시원찮기는 했는데 아예 꽉 막혀서 물이 역류할 지경이다. 대충 아래층에서 씻긴 했는데 수요일 오전에도 해결이 되질 않아서 목욕탕에 다녀왔다. 목욕재계하고 면허증 찾으러 강서 면허 시험장으로 향했다. 발산 역에서 내려서 버스를 갈아타야 했는데 눈을 들어보니 이미 마곡역! 그래서 발산 역으로 되돌아갔다. 그리고 버스를 탔는데, 이 버스 마곡도 지나가네. 헐...;;;;

 

시험장에 도착해서야 지갑을 목욕 가방에 두고 왔다는 걸 알아차렸다. 지갑에 제출해야 할 사진이 있는데...ㅜ.ㅜ

그래서 아쉬운 대로 시험장에서 급히 사진을 찍었다. 머리가 5도 정도 기울어진채 나온 사진은 딱 6천원 짜리다웠다.

이 사진으로 10년을 버틴다는 게 슬펐지만, 아무튼 사진 제출하러 접수처에 가보니 신분증을 제시하라고....

 

아아아, 내 신분증은 당연히 지갑 안에 있을 뿐이고...ㅜ.ㅜ

 

그래서 돌아나와야 했다. 돌아갈 때 호두과자 한봉지 사먹으려고 했는데 수중에 버스카드 한장 밖에 없었고, 물이라도 마시자! 하고 냉온수기에 종이컵을 들이댔는데 물이 텅비어 있어서 한방울도 안 나올 뿐이고.....

 

제기랄!

결국 출근하기 위해 다시 버스에 몸을 던졌다. 문자로 언니에게 이 사실들을 고했다. 언니는 마티즈를 폐차했다고 알려왔다.

흑...ㅜ.ㅜ 나 그 차 몰아보겠다고 50만원 들여 면허 땄는데.... 한번도 못 몰아보고 안녕을 고했다...

그렇게 슬프게 씩씩대다가 그만 내려야 할 정류장을 지나쳐버려...;;;;

 

하아, 힘든 하루가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출근해서는 더 큰 폭풍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완전 뚜껑 열려서 면허증 삽질은 애교로 느껴질 정도...

 

그래서, 면허증은 오늘 찾아왔다. 3주 전에 찍은 뽀샵으로 턱을 깎아 놓은 사진으로. 나중에 면허증 제시했는데 나인줄 못알아보면 어쩌지??

 

오늘처럼 버스 파업이 있을 법한 날에 한번쯤 나도 운전을 해보고 싶었는데, 일단은 장농 면허 되게 생겼다. 당장 차몰 일이 없는데 추가로 연수 받는 것도 무리이고...

 

그래도, 면허증 받고 나니까 기분은 좋았다. 하핫, 수고 많았어! ㅎㅎㅎ

 

참, 하수구는 오늘 뚫었다. 안에서 걸레 조각이 나왔다고 한다. 전에 살던 사람 소행이지 싶다. 출장비 오만원 지출했다. 아, 슬프다...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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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12-11-22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으흐흐흐흐(이 웃음의 의미는 뭐지?)

마노아 2012-11-23 00:01   좋아요 0 | URL
뭐, 뭡니까! 이 으스스한 축하는요! ㅋㅋㅋ 고맙습니다.^^

antitheme 2012-11-23 0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국가공인자격을 취득하셨군요. 축하드립니다.

마노아 2012-11-23 00:11   좋아요 0 | URL
우와, 국가공인이라고 하니까 엄청 있어 보여요. 우히힛, 감사해요.^^ㅎㅎㅎ

프레이야 2012-11-23 0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왓 수난 끝에 합격 축하합니당ㅎㅎ 생명의 위협을 느낀 강사님께 잘 한 건 없냐고 물을 때 반짝반짝 빛났을 마노아님 눈망울 상상해보고 씽긋 웃어요지금^^♥ 작은딸 배 안에 넣고 면허 땄던 오래전 기억이ㅎㅎㅎ 그땐 요즘보다 좀 쉽게 땄던 거 같아요.

마노아 2012-11-23 11:15   좋아요 0 | URL
셔틀버스 기사님 두분과, 모두 일곱 분의 강사님을 거쳤어요. 모두들 어찌나 저의 당락에 관심을 가져주시는지 처음 떨어지고 무지 민망했어요. ㅎㅎㅎ
축하 감사합니당~

hnine 2012-11-23 0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운전면허 주행 시험 합격만큼 뛸듯이 기뻤던 적은 이후로 어떤 시험에서도 느껴보지 못했던 것 같아요. 운동 신경 바닥으로, 적성과 능력이 모자라는 운전을 배우느라 그해 생전 처음으로 살이 다 빠졌다니까요. 그렇게 고생해서 합격하고 나니 얼마나 좋던지...^^ 1987년의 일이네요.
아무튼 축하드려요.

마노아 2012-11-23 11:16   좋아요 0 | URL
기능시험 보던 날 셔틀 기사님이 안 나오셔서 엄청 추운 새벽에 20분을 오들오들 떨었거든요.
너무 기분 나빴는데 합격하고 나니까 다 용서가 되던 걸요. 하하핫^^ㅎㅎㅎ
hnine님 면허는 한참됐네요. 우왕, 근사해요. 축하 감사합니다.^^

기억의집 2012-11-23 1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축하드려요. 면허증 받았을때의 그 기분 알지요~ 운전하니깐 단점이 편하긴 한데 살이 좀 붙네요~

마노아 2012-11-23 11:17   좋아요 0 | URL
아아아, 살이 붙는 건 아니되어요. 역시 저는 계속 뚜벅이 해야 할라나봐요. 축하 감사합니당! ㅎㅎㅎ

감은빛 2012-11-23 1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요즘은 50만원이나 드는군요.

저도 면허따고 10년 이상 차 몰일이 없어서 계속 장농면허였어요.
큰아이 낳고, 중고차를 사면서 운전을 시작했지요.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그래도 면허 잘 따셨어요!

마노아 2012-11-23 12:40   좋아요 0 | URL
헤헷, 감사합니다.
제가 한번에 붙었으면 대략 40만원에 붙을 뻔 했는데 추가 수업 두시간 하고 사진 삽질을 했기 때문에 십만원 추가 됐네요..ㅡ.ㅜ

저도 당장은 장농면허 될 처지지만 분명 필요할 때가 오겠지요. 저도 잘 딴 것 같아요. 위로가 되고 있습니다.^^

다락방 2012-11-23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단 자격증이 있으니 이력서에 쓸 게 하나 늘어나지 않았습니까. 뭐, 저로 말하자면 그것밖에 쓸 게 없는 스펙따위 없는 인간이긴 하지만.. 그러니 잘하신 겁니다. 축하해요. 고생 많았어요.

아니, 그나저나, 하수도에 걸레조각 넣는 사람은....뭡니까? 실수.......겠지요?

마노아 2012-11-23 12:41   좋아요 0 | URL
제가 제출해야 할 이력서에 면허증 있다고 써도 되는지 잠시 고민이 되는데... 뭐 어쨌든 자격증 하나 추가했어요. 우히히힛 축하 고마워요~

걸레조각, 실수겠지요? 안습이었어요. 수압은 너무 세고, 하수도는 느려 터졌고, 힘든 나날이었어요.^^ㅎㅎㅎ

무스탕 2012-11-23 2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저는 20세 되자마자 운전면허 시험부터 시작했지요. 무조건 일찍 따야 해! 라는 신념이 있었어요.
그리하야 제 면허는 88년생입지요 :)
하여간 면허가 있어야 언제든지 운전을 할수 있으니 앞으로 운전 할 일만 남았군요.
아주 추워지기 전에 잘 하셨어요 ^^

마노아 2012-11-24 10:05   좋아요 0 | URL
무스탕님의 신념에 따라, 면허가 아주 이르네요. 히히힛^^ㅎㅎㅎ
오늘 날씨 추운 걸 보니 역시 더 추워지기 전에 딴 게 다행인 것 같아요.
학원이 인천이어서 새벽같이 일어나는 게 참 힘들었거든요.
어휴, 겨울이 성큼 와버렸어요.(>_<)

희망찬샘 2012-11-25 1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면허 따신 거 축하드려요. 옛일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네요. 비슷한 일 저도 겪었거든요. ㅋㅋ~ 음, 차를 사세요. ㅎㅎ~ 귀여운 녀석으로!! 그리고 모셔요. 열씨미, 열씨미!!! 화이링!!! (저도 못 사고 있으면서... ㅋㅋ!)

마노아 2012-11-26 10:46   좋아요 0 | URL
하하핫, 축하 고맙습니다. 저도 당장 차 살 형편도 안 되고 계획도 없지만, 어떤 차가 있었으면 좋을까 상상은 해봐야겠어요. 그것도 재밌을 거예요.^^

순오기 2012-12-01 0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여기에 내 댓글이 없는 거야?
나 분명 이거 읽었는데~~~~
뒷북이라도 축하해요~~~ 내가 없는 면허증 취득한 마노아님 만세!!ㅋㅋ

마노아 2012-12-02 00:06   좋아요 0 | URL
으헤헤헷, 뒷북 축하도 감사해요. 따자마자 장농 면허 되었지만 어쨌든 면허소지자가 되었어요. 으하하핫^^ㅎㅎㅎ
 

10월 달 살며 페이퍼가 한 개도 없네. 급 반성!

 

접힌 부분 펼치기 ▼

 1. 우리 집에는 원목 접이식 식탁이 있다. 양쪽 날개를 다 접으면 직사각형 작은 테이블이 되고, 날개를 다 펴면 기다란 타원이 된다. 2층에서 쓸 때는 한쪽을 접어서 벽에 붙이고 썼고, 3층으로 올라오면서 양쪽을 다 펴고 쓰게 되었다. 그치만 기둥에 해당하는 직사각형 부근은 다리를 집어넣을 수가 없어서 앉기가 무척 망했다. 명절이라 가족들이 모처럼 다 모였는데, 모두가 함께 밥을 먹을 수가 없었다. 누군가는 꼭 나중에 먹어야지 아니면 불편해서 영 마뜩치 않은 상황. 식탁을 살 것인가 검색질을 마구 하다가, 옥상에 올려놓은 평상이 생각났다. 냉큼 올라가서 평상을 들고 내려왔다. 평상용 짧은 다리를 떼어내고, 식탁용 다리를 붙였다.(때마침 식탁용 다리만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 역시 옥상 위에 올려 놓은 책장을 개조해서 쓰던 신발장의 선반 경첩을 떼어내 식탁 제작에 사용했다. 아해들이 잔뜩 낙서해 놓은 평상을 열심히 사포질을 하고, 하얀색 수성 페인트를 칠했다. 여섯겹인가, 일곱 겹인가. 그리고 코팅을 하기 위해서 언니가 영풍문고를 갔는데, 구경하던 다현양이 니스를 엎었단다. 그게 언니가 사려던 게 아니라 그보다 점성이 좀 약한 거였나 어쨌다나. 엎었으니 어째. 결국 그걸 사와서 발랐다. 제법 그럴싸 했다. 다리도 흰색이고, 흰색으로 평상도 칠했고, 코팅도 입혔고! 그리고 며칠 말린 뒤 드디어 식탁 앞에 앉았다. 정성스럽게 상을 차리고 밥을 먹었는데 아뿔싸! 뜨거운 냄비 놓았던 자리의 페인트가 떨어져 나갔다. 역시 코팅액에 문제가 있었던 걸까.ㅜ.ㅜ 그래서, 부랴부랴 유리를 맞췄다. 이제야 뜨거운 것 상관 없이 밥을 먹을 수 있게 되었지만, 겨울 다 되어서 하얀색이 추워보인다. 이제 식탁보를 고를 차례인가. 하아....;;;;;

 

 

 

2. 개천절 날에는 납골당을 다녀왔다. 사연인즉슨! 아부지 돌아가셨을 때 처음 간게 벽제였는데, 도착 2시간 전에 꽉 찼다고 한다. 해서 용미리로 길을 돌렸다. 그리고 몇 해 지나 가족 납골당을 만들어서 수원 큰댁 쪽으로 옮겼다. 그런데 거기에 올해 도로가 났다네. 해서, 용인 공원으로 다시 전체 이장을 했는데, 그게 얼마 전 일이었다. 해서 이번 명절 연휴 때 우리 가족 모두가 아부지 만나러 간 것이다. 이곳은 정말 넓었다. 관리 사무실에 도착하고도 납골당 찾아 다시 차를 타고 한참 가야 했으니까.

종이를 두장 받았다. 하나는 지도고 다른 하나는 위가 표시되어 있는 도표였는데 둘다 보자마자 머리가 팽그르르... 지도를 잡고 형부가 먼저 차를 출발시켰다. 뒤따라 갔는데, 대충 위치는 맞은 것 같은데도 비석을 못 찾겠는거다. 이날은 정말 날씨가 좋았고, 아주 더웠다. 무덤들이 어찌나 양지 바른 곳에 있던지, 여름 내내 멀쩡했던 피부가 다 타서 왔다. 나중에 점심 먹으려고 식당에 들어가니 양말의 발가락 부근이 땀으로 모두 젖어 있을 정도. 양말이 다 젖도록 헤맸으니 얼마나 헤맸겠는가. 정확히 한 시간을 땡볕에서 헤맸다. 결국 위치를 찾아낸 것은 둘째 언니. 도표를 거꾸로 보고서 적용시켜야 찾을 수 있는 자리였다. 어휴, 길 못찾는 유전자는 나만 가진 건 아닌가 보다. 아부지 비석 옆에 수빈이 다빈이 원빈이 무덤이 있었다. 이름이 너무 요즘스럽고, 생몰년도가 없어서 의아했는데 뒤쪽에 어른들 날짜는 적혀 있다. 사망 날짜가 올해 5월이다. 일가족이 한꺼번에 죽다니, 교통사고나 비행기 사고, 뭐 그런 건가... 일면식 없지만 그래도 수빈이 다빈이 원빈이가 안타까웠다. 한참 어렸을 것 같은데... 그에 비해서 우리 가족 납골당은 19세기 초까지 올라가는 조상들이 적혀 있다. 지금이 21세기인데 아득한 시간이다.

 

3. 10월 6일과 7일은 제 12회 '차카게 살자' 공연이 있었다. 부제는 '21세기 선행 영웅', 드레스 코드는 '영웅과 악당'

 

 

 

 

* Host : 이승환

* 사전 야외공연 : 박아셀, 블루앤블루, 사운드박스, 웨일, 제이래빗

* 본 공연 6일 : 가리온, 아이유, 브로콜리너마저, 소란, 가리온, 어반자카파, 장미여관, 이승환

* 본 공연 7일 : 김완선, 넬, 소란, 옥상달빛, 울랄라세션, 윤하, The KOXX, 이승환

* 본 공연 이틀간의 오프닝 및 경품 MC : 소란, 허일후 아나운서

 

 

 

 


 

난 일요일 공연을 예매했다. 아이유보다 김완선이 더 궁금했고, 울랄라세션도 보고 싶었으니까.

매번 혼자 가는 공연이고, 그래도 잘 놀고 돌아왔지만, 점점 그게 참 적적하다. 이렇게 드레스코드라도 있을 때는 철판 깔고 같이 놀아줄 친구가 있어야 모처럼 일탈도 해보는 건데 말이다. 기껏해야 원자력발전소 건설 반대 서명하고 그린피스 팔찌 하나 받아온 게 다다. 그렇게 좋은 일에 참여할 수 있는 부스가 7개 더 있었는데 아쉽다. 출연자가 바뀔 때마다 단체들 홍보 영상을 보여줬는데 마지막에 등장한 그린피스 홍보 영상은 거의 영화 수준이었다. 보는 순간 지구를 위해 두주먹 불끈 쥐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1층은 몸부림석으로 스탠딩이었고, 2층음 몸사림석으로 좌석이었다. 2층이 더 비쌌고, 난 스탠딩을 하고 싶어서 1층을 예매했는데 아뿔싸! 내 앞에 나보다 머리 하나 큰 남자가 서 있고, 그 앞에 그보다 더 큰 여자가 서 있었고(키도 엄청 큰데 힐까지 신은 게 아닌가 의심 든다!), 그 여자 앞에 그 여자만큼이나 큰 남자가 또 있었다. 아아아, 까치발을 해야 무대가 겨우 보일락 말락. 그리고 내 뒤에는 나보다 많이 작은 여자 둘이 거의 울부짖고 있었다. 소리밖에 안 들인다고. 이사 후유증으로 아직도 무릎이 안 좋은 나는 납작한 운동화를 신었는데 키높이 운동화라도 신고 올 걸 살짝 후회가 들었다.

 

첫번째 출연자는 소란. 담백한 음악이었다. 무엇보다 위트가 가득한 멘트가 훌륭했다. 이 공연에 초대되어서 음악하기를 잘했다고 생각했고, 어제 오늘 이틀 출연했는데, 어제 공연 마치고 대기실로 가보니 아이유가 있어서 '태어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나 뭐라나. 하하핫, 대세가 아이유였나보다. 저 시크한 넬의 종완씨 조차도 아이유는 토요일에 출연했는데 왜 자기는 일요일에 초대했냐고 투덜거릴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누구보다 나를 열광시킨 것은 완선 언니였다. 아아아, 그녀의 섹시함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러니까 뭐랄까. 섹시계의 원조. 섹시계의 단군 할아버지, 섹시계의 시조새!!! 노출도 없는 옷을 입었지만 온 몸에서 섹시한 에너지가 흐른다. 언니는 걸칠 것 다 걸쳤지만 백댄서가 상의 탈의를 했고, 그 근육을 훑으면서 완선 언니가 노래를 부른다. 춤추면서 노래도 잘해. 그리소 30여 년이 흘렀는데 아직도 섹시해! 세곡 부르는 내내 까치발로 버티느라고 무지 힘들었다. 내 뒤의 두 여자가 더 비명을 지른다. 나까지 까치발을 드니 그들은 볼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어....;;;;;;

 

 

뭐 암튼, 아주 재밌었다. 좋은 일 하고, 님도 보았으니. 해마다 이렇게 차카게 살자 공연을 통해서 소아암 어린이들을 후원하고 있다. 드레스코드 1등 상품이 작년에는 42인치 TV였고, 올해는 42인치 3D TV였다. 작년에 이어 올해 토요일 우승자도 상품을 재기증해서 아주 훈훈했는데, 이분은 영웅 '유관순'으로 분하는 기막힌 분장을 보여주었다. 흰저고리에 검정 치마, 게다가 태극기 휘날리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능! 일요일은 '춘리'로 분한 참가자가 아찔한 옆트임 옷을 입고 일등을 거머쥐었는데 상품은 잘 쓰겠다고 했다. 하하핫, 그거 들고 시집가세요~

 

 

(공연 끝나고 나올 때 받은 음료수 라씨. 맛났다. 누가 줬는데...ㅎㅎㅎ)

 

4. 가을 소풍을 다녀왔다. 용문사로. 용문사를 가본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내 기억에 분명 수령 500년짜리 은행나무였는데, 이번에 가보니 무려 1100~1500년으로 추정한다지 뭔가. 내 기억이 잘못되었나, 20년 사이 1000년을 더 먹어버렸나..ㅡ.ㅡ;;;;

 

사실 소풍은 가고 싶지 않았다. 그냥 빈 교무실이나 지키고 싶었는데, 나의 그런 의도를 잘못 이해한 부장님이 '친히' 데려간 것이었다. 그 바람에 신세계를 경험했다. 이 얌전한 아줌마 아저씨들이 버스 안에서 댄스의 귀재로 거듭나시는 게 아닌가. 그것도 땀에 흠뻑 젖을 정도로. 나이트클럽 한번 못 가본 이 쑥맥이 억지로 끌려나가서 되도 않는 춤을 추느라고 어찌나 힘들었는지...ㅜ.ㅜ

 

그동안 내가 근무했던 곳에서는 술을 못 마신다고 하면 누구도 두번 권하지 않았다. 그래서 술 강권하는 분위기를 겪을 일이 없는데, 여기서는 마실 때까지 비키질 않고 버티는 게 참 힘들었다. 덕분에 맥주, 소주, 양주, 동동주에 포도주까지 두루 섭렵했다. 일년치 술을 다 마신 것 같다. 그나마 늦게 도착해서 막걸리는 겨우 피해간 것. 어휴... 취한다!

 

 

 

 

 

(요게 바로 그 천년 묵은 은행나무! 냄새가 아주 진동을...ㅎㅎㅎㅎ)

 

 

 

5. 가을이 성큼 오더니 금세 겨울이 코앞이다. 30년인가 40년 된 오래된 건물인지라 집이 많이 추웠고, 게다가 창도 너무 크고 문도 많아서 우풍이 장난 아니다. 이제 여름 커튼을 떼어내고 두꺼운 커튼이 필요한 때! 옥션에서 암막 커튼을 주문했다. 가격은 저렴했고, 품질도 저렴했다. 싼 게 비지떡이란 말은 역시 명언 중의 명언이다. 해서 아울렛으로 엄마와 함께 큰조카를 데리고 구경 나갔다. 나간 김에 가격은 1.5배 정도고, 품질도 역시 그만큼 나오는 제품을 샀다. 그런데 돌아올 때 보니 비가 오는 게 아닌가. 거실 커튼까지 가방이 여섯 개였고, 봉도 네개나 들고 있었다. 형부에게 연락해서 픽업을 부탁했고, 그렇게 돌아오자마자 봉 길이부터 확인했다. 그런데 이럴 수가! 내가 분명 창 크기가 150과 170이라고 했는데, 이 봉은 가장 작을 때 사이즈가 이미 170이다. 그러니 150 사이즈의 창에는 끼울 수가 없는 것. 아아아.... 나 정릉 사는데, 거기 불광이었단 말이다. 제기랄! 게다가 펼쳐 보니 거실 커튼은 오염도 되어 있어서 역시 바꿔야 한다. 하아... 일요일에 다시 갔다. 거실 커튼 교환하고, 봉 두개는 반품하고(옥션에서 주문한 봉으로 대체할 생각) 내방 커튼은 색상을 교환했다. 난 갈색 샀는데 엄니가 너무 어둡다고 하셔서 베이지로 교체. 그렇게 다시 집에 와서 낑낑 대며 커튼을 교체했다. 아아, 이를 어쩌나. 거실 창이 180과 320인데, 320 폭에 530짜리 커튼을 쳤더니 주름이 많이 안 잡혀서 안 예쁘다. 엄니께서 아무래도 한 번 더 다녀와야겠다고 하신다. 아아아....ㅜ.ㅜ

그밖에 옥션에서 반품하는 과정에서 배송비가 꼬이고, 회수 요청했더니 때마침 집에 계시던 엄마와 연락 두절해서 진땀을 뺐다. 어째 요새 뭐가 이렇게 꼬이는지... 훌쩍....

 

6. 11월부터는 운전면허 시험도 어려워진다고 해서 부랴부랴 10월에 면허를 딸 생각이었다. 지난 20일에 필기시험 책을 백만년 만에 당일배송으로 주문했다. 책은 그 다음주 화요일에 도착했다. 화요일에 필기시험 볼 생각이었는데...ㅡ.ㅡ;;;;; 그리고 소풍이다 커튼이다 내내 바빴고, 이번주 월요일, 그러니까 그저께 학원에 등록했다. 그날 두시간 교육받고, 어제 세시간 교육 받았다. 말이 교육이지 다섯 시간 자습했다. 이렇게 날로 먹다니, 버럭이다! 그리고 오늘 필기시험 보러 강서 면허시험장에 다녀왔다. 내가 이수 받은 교육이 전산에 잡히지 않는다고 한다. 학원 측에서 입력 누락이다. 아아.... 그래서 또 그것 때문에 잠시 혈압이 올라주었고, 필기시험을 무사히 마치고 나오다가 회전문에서 제대로 이마를 박았다. 아아아, 꽃팔려서 빨리 자리를 떠야 하는데 골이 울리고 이빨도 흔들흔들.... 아파, 마이 아파... 마이 챙피해.....ㅠㅠ(오밤중이 된 지금도 이마가 아프다. 혹 났나...;;;;)

 

7. 시험에 쓰기 위해서 사진을 찍어야 했는데, 직장 근처에 사진관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까 이건 어제의 일. 어느 할아버지가 알려주신 대로 길 따라 쭈우욱, 정말 한참 동안 쭈우욱 갔지만 보이지 않는다. 다시 반대 방향으로 쭈우욱 훑고 왔지만 역시 보이지 않는다. 다시 동네 주민에게 물어보니 이미 망해서 없다고...;;;;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았다. 200미터 안쪽으로 사진관이 하나 나온다. 하지만 길찾기 앱을 돌려도 나는 못 찾고 빙글빙글...;;;; 기어이 찾긴 찾았다. 처음 사진관 찾기 시작해서 대략 한 시간은 고생했나보다. 추운 날씨에 사진 찍겠다고 치마 입고 나왔는데, 생각해 보니 상반신만 나오는구나. 아아 바부팅이... 사진을 찍고 나니 사장님 친절하게 포샵질 해주신다. 턱을 좀 만져야겠다면서.... 흠흠... 저도 알아요...;;;; 하여, 나온 사진은 거의 사각턱 수술 수준이다. 이거 사기 같은데....ㅎㅎㅎ

 

8. 울 학교 좀 이상한 게 아니라 많이 이상한 건 알고 있었지만, 이젠 정말 별걸 다 시킨다. 책 사재기...;;;; 특정 책 제목을 불러주면서 특정 사이트에서 사고 영수증 제출하란다. 책값은 지불해 주겠노라며. 이야, 이런 식으로 책이 많이 팔린 척을 하는구나. 제목도 아파야 청춘이다 짝퉁스런 청춘과 스펙이 어쩌고 저쩌고....;;;; 냉큼 책을 사줄 수는 없지. 흥!

 

9. 새벽 5시부터 공사 소리 드드드드에 골이 울려 잠에서 깼다. 아래층 곱창집이 그 옆집 정육점을 인수해서 확장한단다. 지금 곱창 냄새도 힘든데 더 규모가 커질 모양새다. 이 공사는 언제 끝나려는지... 지난 4월부터 매달 쉬지 않고 공사 소리가 울린다. 이러다가 집 무너질까 두렵다.

 

10. 영화 26년 개봉일이 잡혔다. 때마침 전두환 은닉(?) 재산도 등장해 주시고, 더더더 불을 지펴주는구나. 이승환은 이 영화의 1호 투자자였다. 있는 돈을 투자한 게 아니라 빚내서 투자했다. 영화사도, 투자자도 손해보지 않았으면 하고, 무엇보다 제발, 이 시점에서 환기 좀 시켜줬으면 한다. 선거날 투표만 한다고 민주주의가 절로 되는 것은 아니니까. 정의가 살아있기만 하지 말고 제발 힘도 좀 써 주기를!!!

 

 

 

영화 26년, 서울 광장 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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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2-11-01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 춤추는 걸 내가 봤어야 했는데!! ㅎㅎ

마노아 2012-11-01 23:57   좋아요 0 | URL
가관이었어요. ㅋㅋㅋㅋ

saint236 2012-11-01 1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분은 참 악역으로 많이 나오시네요. 본인도 많이 힘들겠는데요...장광씨요...

마노아 2012-11-01 23:58   좋아요 0 | URL
그마나 광해에서는 입 무거운 내관으로 훈훈하게 나왔어요. 도가니 이후 자주 눈에 띄네요.^^

Mephistopheles 2012-11-01 1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백댄서가 상의 탈의를 했고, 그 근육을 훑으면서 완선 언니가 노래를 부른다."
- 이 부분이요....설마 백댄서가....남자였겠죠.....??

마노아 2012-11-01 23:58   좋아요 0 | URL
ㄲ ㅑ ㅇ ㅏ !!!!
여자 댄서라고 생각하면 넘흐 야해요!!!!

프레이야 2012-11-03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6년, 기대하고 있어요.
한혜진, 장광 등등...
마노아님이 담은 가을풍경 눈부셔요^^

마노아 2012-11-04 22:41   좋아요 0 | URL
오늘 창덕궁에 다녀왔어요. 비가 와서 사진 찍기도 힘들고, 사진도 잘 안 나왔지만, 늦가을의 정취를 맘껏 느끼고 왔어요. 아름다운 계절이에요.^^
 

1. 지지난 주 토요일에는 홍대에서 약속이 있었다. 대만 음식 전문점에서 먹은 음식은 아주 특별하지는 않았다. 딘타이펑에서 먹은 만두 맛 같달까. 돌아오는 길에 언니의 사무실에 들르기로 했는데 종로에서 버스를 잘못 갈아탔다. 내가 타려던 버스가 10분 정도 기다려야 해서 먼저 온 버스를 흘깃 보니 노선도에 수유역이 있길래 으레 돈암동을 지나려니 하고 탔던 것이다. 한참을 가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 보니 낯선 곳에 도착했다는 불안감이 스물스물... 거긴 안암 오거리였다. 그후 돈암동으로 돌아오기 위해서 버스 두 번을 더 타야 했다. 하아, 종로에서 돈암동은 버스 한번 타고 20분이면 충분한 곳인데...ㅜ.ㅜ

 

2. 그 다음 날은 비가 왔다. 매주 만나곤 했던 친구와 근래 바빠서 못 만났던 터라 일요일 저녁에 보기로 했다. 처음 우리는 종로3가에서 보기로 했는데, 중간에서 내가 저번에 가보았던 맛난 수제버거 집 파머스반에 가보자고 입을 모았다. 내가 가본 곳은 대학로점인데, 본점이 종로에 있으니 종로점을 가기로 했다. 버스에서 약도를 보니 종로와 인사동 어디메쯤... 좀 애매하게 보인다. 해서 일단 창덕궁 앞에서 보기로 했다. 그런데 아뿔싸! 내가 탄 버스가 창덕궁을 지나는 게 아니었다. 해서 종로4가에서 내려서 부랴부랴 창덕궁 방향으로 달리기. 우산 두 개 맞대고 만난 우리는 휴대폰 작은 화면 속의 지도를 보고 한참 고민했다. 친구도 나만치나 길치. 종로에서 조금 헤매다가 안 되겠다 싶어 다시 버스를 타고 성균관대 앞에서 내렸다. 전에 갈 때도 혜화역 3번 출구에서 출발해서 성대 방향으로 나가다가 찾았으니, 이번엔 성대 방향에서 거슬러 올라가면 되리라고 생각한 것. 하지만, 전에도 개화산역에서 김포 cgv를 찾아갔지만 그 반대는 못 찾았던 것처럼, 열심히 걷다 보니 나는 어느새 혜화역 3번 출구에 와 있는 게 아닌가. 하아 못 찾겠다. 해서 파머스반에 전화를 걸었다. 어떻게 찾아가냐고. 당시 시간은 8시 15분. 종업원이 말한다. 마지막 주문이 8시라고. 홈페이지에 10시 반까지 영업 한다고 적혀 있던 걸요? 하니, 그건 평일이고 일요일은 그렇다고 한다. 하아... 결국 못 먹고 돈까스 덮밥 먹었다. 슬프다. ㅜ.ㅜ

 

3. 이 학교는 일년에 교생이 무려 4번이나 온다. 이번에 왔던 교생은 세번째 교생인데 수업 실습은 한 시간도 못하고 갔다...;;;;;

암튼, 이 날로 먹은 교생 실습 기간 동안에 웃긴 일이 몇 차례 있었다. 전에 과감한 옷차림으로 나를 놀래켰던 샘들 두명이, 교무실 문앞에서 큰 소리로 싸웠던 것이다. 놀래서 나가 보니 자기 얘기 좀 들어보라고 끌어당기기까지. 두 사람이 싸운 이유는 실습 일지를 보여주네 마네 문제였다. 아아아... 콩가루야..ㅡ.ㅡ;;;;;

 

4. 지난 주는 시험 기간이었다. 평소보다 한시간씩 일찍 집에 들어갈 수 있었다. 다리도 많이 좋아진 것 같아서 오랜만에 운동을 했다. 이틀 동안 스텝퍼도 열심히 밟아 주었는데 그게 탈이 났다. 다시 무릎이 나갔다. 50여 일이나 지났는데 여전히 아프다. 무릎이 아프기 시작하자 손목도 아프고 발목도 같이 아프다. 심리적인 건가, 정말 아픈 건가. 암튼 의사 샘이 괜찮다 했지만 아무래도 엑스레이를 찍어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슬프다.ㅜ.ㅜ

 

5. 지난 주 토요일에는 이대에서 친구와 약속이 있었다. 언니 사무실에서 잠깐 알바를 하고 돈암동에서 버스를 탔다. 한 번에 가는 버스를 검색으로 알아내고는 무척 기뻐했던 순간이었다. 그런데 세시간 동안 포장한 게 힘들었는지 버스 안에서 깜박 잠이 들었다. 잠에서 깨보니 버스는 이대를 막 출발해서 신촌으로 향하고 있었다. 까짓, 한 정거장 가볍게 걸어주지 뭐... 했는데 이날 연대 축제가 있다고... 연고전 했나? 암튼, 그래서 도로 통제가 들어가고 엄청 멀리서 내려주는 게 아닌가. 하아, 주말을 곱게 보내고 싶어...ㅡ.ㅡ;;;;;

 

6. 화요일에는 루브르 박물관전을 다녀왔다.

 

도록을 사고 받은 티켓은 평일 관람권이었다. 9월 30일까지 전시회를 하지만 내가 갈수 있는 건 금요일까지였다. 간만에 간 예술의 전당은 사물함이 바뀌어 있었다. 전에는 열쇠였는데 지금은 네자리 돌리는 번호 키로 바뀐 것이다. 가방을 넣고 문을 잠갔다. 사용설명서를 보니 번호를 설정하란다. 해서 내게 익숙한 번호로 돌린 순간 아뿔싸! 뭔가 크게 실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 닫기 전에 번호를 설정해야 하는데 난 문 닫고 설정했으니, 내가 설정했다고 생각한 번호는 사실 앞서 설정된 번호를 흩어놓은 꼴만 된 것이다. 그리고 난 앞서 설정된 번호를 보지 않고 돌렸다. 아아아 대재앙! 0부터 9까지 4자리 번호다. 10의 4제곱이 되는 건가? 나올 수 있는 경우의 수가 무려 10,000개. 주르륵...ㅜ.ㅜ 전시 보고 나와서 있는 껏 기억을 더듬어 처음에 어디서 출발했던가, 내가 왼쪽으로 얼마나 돌렸던가를 떠올리며 한 100개 돌렸나보다. 안 나와, 안 나와....ㅜ.ㅜ 결국 관리하시는 분 불러다가 열어달라고 요청했다. 나같은 사람이 많았는지 대수롭지 않게 반응하신다. 그래도 챙피해..ㅜㅜ 하여간, 그렇게 안에 내 소지품이 뭐가 있는지 증명하고서 가방을 돌려받았다. 미치겠다....

 

 

7. 지난 달에 이어 이번달도 교사 월급을 30만원씩 깎았다. 학교가 어렵다나 어쨌다나. 다 구라다.(쿨럭!) 암튼, 그래놓고 추석이라고 20만원씩 '효도휴가비'를 주었다. 이건 조삼모사보다도 지독한 게 아닌가! 에라이!!!

 

8. 애니팡이 팡팡팡... 거침 없이 날라오는 하트를 대체 어떻게 쓰는 거냐고 마구 헤매다가 애니팡의 세계에 입문했다. 최고 점수 5만 점의 아직 신출내기 수준. 그런데 내가 하트를 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9. 알라딘 하루 특가가 사라지더니 기프트 상품 자체가 사라졌다. 화장품도 같이... 아쉽다. 많이 애용했는데.... 이제 이런 재밌는 꾹꾹이를 알라딘에서 볼 수 없단 말인가...ㅜ.ㅜ

 

 

10. 와인 선물이 들어왔다. 이렇게 생겼다.

 

 

와인 사이의 물건들이 궁금하다. 맨 위의 것은 병따개일 것 같은데 가운데랑 맨 마지막은 뭐에 쓰는 거지???

 

올 가을, 와인 색이 유행이라고 하던데... 이소라의 프로포즈 시절부터 해보고 싶었던 와인색 염색이 땡긴다. 아직은 더워서 머리를 바짝 묶고 다니는데, 좀 더 선선해지면 시도해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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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27 11: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9-27 11: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12-09-28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전히 파란만장이지만 잘 지내는군요.^^
명절도 의미있게 보내고 올해가 가기 전에 볼 수 있기를...

마노아 2012-09-28 21:27   좋아요 0 | URL
요란스럽게, 잘 지내고 있어요.^^ㅎㅎㅎ
정말 올해는 얼굴 맞대고 수다 한판도 못 떨었어요. 올해 가기 전에 꼭꼭 데이트 해용~ ^^

saint236 2012-09-28 14: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일 밑엤것은 푸어러라고 원래 와인은 그냥 따르면 한바퀴를 싹 돌리면서 따릅니다. 그러면 병에 뭍은 와인을 천으로 닦아 내 주어야 하는데 그건 소믈리에가 있을 때나 가능한 일이고 푸어러를 끼우면 와인이 깨끗하게 따라집니다. 가운뎃 것은 논 드립 링이라고 와인병 목에 끼워서 따르면 병을 타고 흘러내리는 와인이 거기에 걸려서 밑으로 흘러내리지 않도록 해주는 장치입니다. 둘다 깨끗하게 따르기 위한 도구들인데 그냥 옆에 휴지를 준비해 두시고 따른 다음에 닦아 내시면 됩니다. 제일 위의 것은 병따개가 맞고요^^

마노아 2012-09-28 21:28   좋아요 0 | URL
오, 본 것 같아요. 소믈리에가 빙그르 돌리는 거요. 헤헷, 설명 고맙습니다.
사진 올려놓으면 누군가는 알려줄 것 같았어요. 궁금증이 해소 되었어요~
분위기 있게 와인 한잔을 마셔야 하는데, 잔이라도 좀 사놔야겠어요.
와인을 머그컵에 따르자니 영 분위기가 안 사네요.^^
saint236님, 연휴 즐겁게 보내시고 달구경도 꼭 하셔용~

웽스북스 2012-09-28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미식 가셨어요? 저 거기 완전 좋아하는데. 딘타이펑도 좋아하니 당연한걸까요?
거기 가지덮밥 맛있어요. 나중에 가시면 꼭 드셔보세요

근데 막 와우미식 아니고 ㅋㅋㅋㅋ

마노아 2012-09-28 21:29   좋아요 0 | URL
제 입맛은 우리식 중국요리인가봐요. 오늘 조카들 데리고 중국집 다녀왔어요. 홍제역 근처 '짬뽕愛'라고 맛난 집이 있거든요.
가지덮밥은 다음에 다시 가게 되면 도전할게요. 거기 후식은 확실히 맛있었어요.ㅎㅎㅎ
근데 제가 다녀온 데가 '아우미식'인데, 웬디님이 말한 곳도 여기 아닐까요? ㅋㅋㅋㅋ

웽스북스 2012-09-29 14:07   좋아요 0 | URL
맞아요 아우미식 ㅋㅋㅋ 착각을 ㅋㅋㅋ

마노아 2012-09-30 23:33   좋아요 0 | URL
나중에 같이 가도 좋겠어요. 가지덮밥 먹는 겁니다.^^

프레이야 2012-09-29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인색, 저 무지 좋아해요. 와인색 염색 오래전에 해봤었는데, 이젠 못해요.ㅎㅎ
루브르 박물관전 부러버라. 지방 사는 사람의 비애.
마노아 님, 보름달처럼 풍성하고 즐겁게 추석 잘 지내세요^^

마노아 2012-09-29 11:01   좋아요 0 | URL
와인색 머리카락에 햇볕이 스며들면 정말 와인처럼 반짝이는 게 그렇게 예쁠 수가 없더라구요. 제일 해보고 싶은 건 사실 금발머리지만 그건 좀 힘들겠구요. 직장을 파하지 않는 한ㅎㅎㅎ
루브르는 프랑스 다녀온 사람이 코웃음을 치고, 미술 선생님도 코웃음을 쳤지만, 그래도 전 나름 괜찮았어요. 프레이야님 나중에 서울 오시면 우리 전시관 데이트 할까요?
추석이 코앞이에요. 우리 가득한 한가위 복 듬뿍 받아서 마구 퍼주기로 해요.^^

프레이야 2012-10-01 11:36   좋아요 0 | URL
우와~ 전시관 데이트요? 기대하고 언젠가 날 잡아볼게요^^
올해 안이면 더더 좋구요. 좋은 전시소식 있으면 여기다 좀 올려줘요, 마노아 님.^^

마노아 2012-10-01 17:01   좋아요 0 | URL
서울 오실 때에 분명 어디선가는 좋은 전시회를 할 거예요. 우리 즐겁게 관람하고 향기로운 커피도 마셔요.^^
 

8월 13일에 개학했다. 개학 당일 회의 있다는 문자를 받지 못했는데 새벽 6시에 뒤늦은 확인 문자가 왔다. 자느라고 못 봤는데 깨고 보니 이미 회의 중인 시각! 멘붕 상황이었으나, 다행히 장감은 내가 없었다는 것도 몰랐다는 이야기. 이거 다행 맞나?

 

광복절을 지낸 다음날, 2층 욕실 천장이 샜다. 전날엔 지하 라이브 카페 천장이 샜는데 이 어찌 된일! 전날 많이 온 비 때문이라면 3층부터 새야 마땅할 것 같건만... 알고 보니 건물이 노후해서 하수도 파이프 관이 삭은 것이었다. 덕분에 건물 전층 바닥을 다 뜯어내는 대공사를 해야 했다. 이삿짐 다 옮기고 먼지 다 털어내기가 무섭게 새롭게 먼지를 뒤집어 쓴 것이다. 퇴근하고 돌아가 보니 물을 쓸 수가 없고, 아침에 일어나 보니 변기를 쓸 수 없는 미친 나날들이 이어졌다. 아, 화장실 때문에 극장을 섭렵하고 다녔다는 후문이다.

 

8월 17일은 이상한 날이었다. 주차 문제로 학교 운동장마당이 시끄러웠다. 엉망이 된 주차를 다시 하라고 했더니 어느 분이 후진하다가 남의 차를 박았다. 바로 그 반에서 다음 시간 수업에 모기 한 마리가 앞사람 어깨에 앉았다. 뒷사람이 모기 잡느라고 탁! 쳤는데, 이분이 엌!하고 실신했다. 앰뷸런스가 부랴부랴 출동했다. 이상한 날이었다. 이날 그 반은 한시간 일찍 하교했다.

 

8월 18일은 세현군 생일이었다. 처음으로 생일 잔치를 집에서 치렀는데 풍선 불고 그 풍선 벽이며 천장에 붙이느라 애쓴 건 뭐 고생 축에도 못 끼지. 뒤입어 엎은 바닥을 임시로 다시 덮었던 게 힘들었을 뿐.

 

계속해서 이어지는 공사 드드드 소리. 우리집 공사 + 1층에 새로 들어선 곱창 집 인테리어 공사까지 더불어 드드드드드드

어느 날 아침 일찍 언니가 외출하기에 어디 가냐고 물었더니, 너도 곧 나가게 될 거야-라는 답이 돌아왔다. 화장실이 아니라 시끄러워서 다시 극장을 섭렵하고 돌아다니는 나날이 이어졌다.

 

지하의 라이브 카페 이름은 고릴라다. 그래서 간판도 이렇다.

 

 

새벽 한시 반, 언니 방에서 찍은 사진이다. 자다가 깨면 저 간판 때문에 식겁하기 일쑤라고. 게다가 간판이 너무 눈부셔 잠을 깊게 잘 수 없다고 한다. 지나치게 큰 간판에 위치까지. 창에서 안 보이게 옮겨주던가, 아니면 아래쪽으로 내려서 안 보이게 해달라고 했다. 엄니가 여러 번 사장님을 만나려고 했는데 통 만나주질 않으셔서 사진 찍어놨다고 하니 바로 간판 옮기겠다고 하신다. 그 날짜가 오늘이다. 결과를 지켜봐야지.

  

8월 26일은 신촌 현대 백화점에서 피아노 연주회가 있어서 조카들을 데리고 다녀왔다. 조카는 참가상으로 그린색 프라이팬을 받아왔다. 라임색을 기대 했는데 그보다는 그냥 초록!  

 

 

프라이팬 사진도 찍었었는데 사진을 못 찾겠다. 내가 찍은 게 아니었나??   

 

8월 27일은 태풍이 오기 직전이어서 심상치 않은 바람이 불었다. 가건물로 이어진 교실은 바람 불면 날아갈 것처럼 들썩이고, 여기다가 비까지 오면 폭격 맞는 것처럼 시끄러운 굉음을 낸다. 태풍 대비 조기 퇴근. 그래봤자 해지고 한참이지만, 아무튼... 그냥 들어가기 섭해서 케빈에 대하여를 봤다.

 

태풍전야의 심상치 않은 밤에 보기에는 지나치게 무서운 영화였다. 어찌나 마음이 무겁고 갑갑하던지... 영화를 보고 나니 원작 소설이 궁금해졌으나, 알사탕도 이미 지나갔고, 무려 600페이지가 넘는 책을 볼 엄두가 안 나서 일단 패쓰했다. 나중에라도 미련이 남는다면 그때 보지 뭐...

 

 

  

 

8월 28일 볼라벤이 상륙한 날 학생들은 임시 휴교였지만 교사는 출근했다. 사실 할 일도 없었는데, 우리 교장샘의 취미 생활인 회의가 잡혔다. 무려 두시간 동안 원기를 쪽쪽 빨렸다. 일찍 출근해서 오후 늦게 퇴근해서 오히려 손해였던 이날(이날 내 수업은 달랑 한 개였는데...), 큰언니가 사무실을 이사했다. 수원 집이 안 빠진 상황에서 집 근처 오피스텔로 먼저 들어간 것이다. 그런데 이 오피스텔은 같이 일하는 아가씨가 여기서 잠을 자고 언니는 집에 들어와서 잠을 자는 시스템이 되어버렸다. 보증금도 혼자 내고서 뭐 이렇담...;;;

 

8월 30일, 공사가 막바지에 이르렀다. 공사 하는 김에 2층 창문을 갈았고, 창이 없던 내가 쓰던 방에는 창을 만들었다. 그 자욱한 먼지라니... 버섯 구름 수준의 먼지 덮인 집에서 밥먹기도 힘들어 빵과 김밥과 사발면으로 연명하다가 '대학살의 신'을 보러 영화관으로 고고씽! 우리 동네 내가 참 아끼는 극장에서 이번에도 나 혼자 영화를 관람했다. 덕분에 언니한테 온 전화를 영화 보다가 받는 일까지 생겼다. 혼자 봐서 참 무안했지만 영화는 재밌었다. 수년 전에 연극으로도 봤었는데 내용이 똑같다.(당연하게도!) 근데 참 신선했다능....;;;;

 

9월 1일, 소셜에서 반값 주고 산 '어린왕자전' 티켓을 알라딘 이벤트 당첨으로 어른 표 하나 어린이 표 하나를 더 확보했다. 그러니까 어린이 표 한장만 더 사면 조카들이랑 언니랑 같이 보러 갈 수 있었던 것이다. 동대문 디자인 프라자까지 도착하는 길에 헤맸던 가슴 아픈 이야기는 생략하자. 땡볕에 고생 좀 했다. 충분히 지친 채로 입장한 전시회는 좀 많이 심심했다. 책을 읽지 않고 간 세현군도, 아무 것도 모르는 다현양도, 그리고 원래 시큰둥한 둘째 시스터도 즐기지 못한 건 마찬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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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유리에 비친 언니와 조카다. 아해들은 그림 그리기에 열중! 나는 사진 찍기에 열심!

  

 

제2 전시관 모습이다. 우수 그림을 선정해서 생땍쥐베리 제단에서 프랑스를 보내준다고 한다. 와우!

 

(1전시관은 사진을 찍을 수 없다. 생땍쥐베리 원화가 있기 때문이다.) 

 

 

 후덜덜한 가격의 팝업북이다. 그래도 팝업북은 역시 오즈의 마법사가 쵝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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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저녁에는 '노블레스 명품 콘서트'도 예매해 둔 상태였다. 불후의 명곡 출연 팀이 합동 공연을 하는 것인데, 예상했던 대로 소셜에서 표가 싸게 풀렸다. 에일리, 임태경, 신용재, 린, 알리, 홍경민 순으로 나와서 노래를 불렀고, 나중에 듀엣곡을 불렀다. 야외 공연인지라 시작 시간이 늦은 것과(해가 져야 하니까) 모기한테 잔뜩 뜯긴 걸 뺀다면 꽤 좋은 시간이었다. 그러나 내 자리가 무척 측면이었다지만 화면을 기둥과 스피커가 다 가렸다는 것은 몹시 화가 나는 일이었다. 내가 정가를 다 주고 봤다면 주최 측에 강력하게 항의했을 것 같다. 아무튼 이날의 최고는 알리가 부른 '킬리만자로의 표범'과 홍경민의 다재다능한 재주와 유머 감각이라고 하겠다.

  

  

 

 

 

 

 

 

 

9월 2일은 공사가 거의 끝난 상황에서 대청소로 일관했다. 묵은 먼지를 몇 번에 걸쳐 닦아내고, 스팀 청소기도 돌렸다. 문마다 켜켜이 쌓인 먼지를 닦아내는 것도 일이었고, 새로 빤 커튼을 쫙 다는 일도 제법 힘이 들었다. 구석구석 알차게 청소를 하니 손목이 쩌릿쩌릿! 도저히 더는 못하겠어서 저녁에는 청소를 파하고 친구를 만났다. 원래 낮에 '링컨 뱀파이어 헌터'를 보기로 했었는데 청소 때문에 영화는 취소하고 저녁으로 약속을 미뤘다. 우리는 파머스 반을 갔는데, 이 농부의 헛간이란 소박한 이름의 수제 햄버거 집은 정말 소문처럼 맛있었다. 금가루를 뿌린 것처럼 비싼 햄버거는 스테이크보다 더 맛있었다. 세금 붙을 만한 이유가 있는 햄버거랄까. 비싸서 속이 쓰렸지만 어쨌든 위가 호강했던 날!(맛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사진 자료를 확보하지 못했다. 할라피뇨만 골라낸다면 정말 근사한 맛이었는데... 종로에 본점이 있고 대학로에 지점이 있다.)

 

9월 3일은 아침 일찍 출근해야 했다. BBC에서 촬영오기로 되어 있던 날이다. 졸린 눈을 비비며 지하철 탑승. 한 정거장만 더 가면 내리는데 문자가 띡하니 왔다. 촬영이 다음 날로 미뤄졌다고. 이런 우라질! 집 가까운 사람들이야 출발 전에 받았겠지만 집 먼 사람은 이미 출발하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아아아, 풀려버린 다리로 김포 cgv로 향했다. 전날 보려고 했다가 못 본 링컨 뱀파이어 헌터를 보았다. 아아아, 정말 그지 같은 영화였다. 제기랄! 밥은 먹어야 하니 던킨 도너츠로 갔다. 가을도 오고 있는데 분위기 있게 도넛과 커피를 벗 삼으려고. 하지만 주문을 잘못하는 바람에 달디단 도넛에 달디 단 커피를 마셔야 했고, 지하철로 한 정거장 거리인 학교에 걸어가려다가 헤맨 이야기는, 역시 슬프니까 그만두자. 3개월 전에 반대로 학교에서 극장으로 걸어오는 걸 성공했기 때문에 반대로 가는 것도 가능할 줄 알았다. 역시 길찾기는 나의 길이 아니다.

 

전날 촬영이 미뤄진 것은 통일교 문선명 총재 사망 때문에 취재진이 그리로 갔다는 설이 있던데 정말인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그래서 하루 밀린 방송 촬영을 했다.

 

9월 5일 이날은 급하게 원고 모니터링을 해야 했다. 나의 야곱이 쓴 책인데 8월에 일차로 모니터링을 했던 작품이었다. 교정 원고가 넘어오질 않아서 급한 대로 PDF파일로 받았는데 A3로 뽑아야 할 원고를 A4로 인쇄를 했더니 글자가 아주 작았다. 게다가 폰트가 깨지면서 띄어쓰기가 하나도 되어 있지 않았고, 원문 발췌는 파란색 인쇄라서 아예 글자가 보이지 않았다. 해서 아이패드로 글자를 확대해서 읽는데, 아이패드에서는 한자가 안 나오고 따옴표도 전혀 나오질 않았다. 아, 눈이 아파 눈이 아파...

 

9월 6일에는 또 학교 행사가 있었다. 새벽같이 출근하는데 어지럼증이 도져서 혼났다. 일주일 동안 너무 혹사를 당했다. 사실 7월부터 이사하고, 공사하느라 고생을 너무 많이 했다. 청소하다가 죽겠구나 싶은 나날들. 툭하면 일찍 불려 나가서 밤늦게 귀가하니 피곤에 온 몸이 쩔어 있다. 게다가 이 주에는 시험문제와 수행평가를 출제해야 하는 미친 스케줄이었다. 그리고 이날, 언니의 수원 집이 빠져서 이사를 종료했다. 덕분에 주말은 역시 또 청소 청소 청소!!

 

여기서 끝났으면 좋았겠지만, 9월 8일에는 평생학습 축제에 참석해야 했다. 장소는 여의도. 행사의 성격을 생각하지 못하고 이 여름이 다 끝나기 전에 이 샌들을 한번은 신고 말겠다고 결심하고 신고 나간 나의 11cm 킬힐! 아아아, 이 날 나의 발이 얼마나 처참하게 망가졌을 지는 상상에 맡기겠다.

 

게다가 아침 일찍 다현양이 다리가 아프다고 비명을 지르면서 하루가 시작된 날이었다. 급히 병원에 가보니 균이 침투해서 잘못되면 수술까지 가야 한다는 날벼락같은 소리를 들었다. 다현양은 이날 병원에서 마취를 하고 주사기로 물을 빼냈다. 초음파 검사를 받고 응급실에서 나왔는데 병원비가 그 잠깐 동안 50만원 넘게 나왔다. 후덜덜하다. 다행히 움직이지도 못했던 다리가 일요일에는 걷더니, 월요일에는 급기야 뛰기까지 했고, 화요일에는 무사히 유치원에 갔다. 그리고 검사 결과는 오늘 나왔다. 바이러스 감염으로 감기 같은 거라고 하는데 수술까지 갈 필요는 없게 되었다. 다행이다.

 

다시 여의도로 돌아가서, 제과제빵 반 체험 시간에 남은 빵으로 나도 컵케이크를 만들어 보았다. 첫번째는 생크림을 무사히 발랐는데, 두번째 것 만들려던 찰나 엄니의 전화를 받고 보니 학생들이 설거지 한다고 모두 치워간 상태였다. 별수 없이 체리가 빵 위에 굴러다닌다...;;;;;

 

 

그밖에... 또 무슨 일이 있었더라. 침대 주문하면서 같이 받아야 했던 쿨장판과 쿨베개 사은품이 주문 5주만에, 갖은 항의 끝에 겨우 도착했다. 여름 다 지나서 말이지... 

 

 

 

쇼파도 주문하고 한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깜깜무소식이었는데, 오늘 배송 온다는 전화를 받았다. 비가 많이 와서 늦어졌단다. 후아, 힘들구나.

 

거실 등을 전에 살던 사람이 떼어내고 형광등을 달았는데, 그 자리가 둥그렇게 패여 있어서 등을 주문했다. AK몰에서 롯데카드로 20% 할인을 받았는데, 중복 할인 받으려고 애플 만개와 바꾼 만원 쿠폰은 적용이 되지 않았다. 알라딘은 중복 할인 얼마든지 해주는데...ㅜ.ㅜ

그렇게 삽질해서 받은 조명은, 구멍보다 작았다. 세상에! 형부가 크기를 잘못 잰 것이다. 82cm라고 했지만 사실은 92였다. 십만원 짜리 삽질이다. 하아.....;;;;

 

 

위쪽의 구멍을 보시라. 저쪽은 다시 땜질해야 한다.ㅜ.ㅜ

게다가 안에 등이 다섯 개 들어 있는데 모두 한꺼번에 켜진다. 차등으로 켤 수가 없다. 전기세를 고려해서 안에 형광등 두개를 빼고 써야 할 판이다. 역시, 삽질인가.

 

2년 전에 내가 샀던 싸구려 서랍장은 너무 허약해서 3층으로 올려오면 무너질까봐 2층에 두고 왔다. 엄마의 표현으로는 '째려만 봐도 무너질' 서랍이란다. 해서 이것도 새로 주문했는데, 2주가 되어가는데도 아직도 '상품준비중'이란다. "나무 베러 가셨나요?" 라고 질문을 올리니 업체에서 미안하다고 한다. 비가 많이 와서 그랬다고. 아씨, 공장이 모두 노천도 아니고 죄다 비 때문이래....;;;;

 

1층에 오픈한 곱창집에서 피우는 냄새 때문에 베란다에 널어놓은 빨래들에 반갑지 않은 냄새가 배어 버렸다. 인근에서 항의가 많이 들어왔나보다. 환기통의 위치를 바꾸겠다고 한다. 처음엔 방앗간, 그 다음엔 치킨집, 그리고 이번엔 곱창집... 냄새가 점점 강해지고 있다. 방앗간 냄새는 고소했었는데...

 

그렇게 한달이 지나갔다. 아주 바빴고, 정신이 피폐한 날들이었다. 교장은 이틀에 한 번 꼴로 회의랍시고 모아놓고 우리의 원기를 쪽쪽 빨아먹는다. 지난 달에는 전체 교사 월급을 29만원이나 덜 줬다.(나중에 준다는 말도 없다.) 이게 말이 되나? 그밖에 많은 만행들이 있었지만 부끄러워서 차마 말할 수 없고, 아무튼 그런 날들이다. 요새는 배가 고프지 않아도 허기진다. 영혼이 허기진 것 같다. 아무래도 원기를 빨린 까닭 같다.

 

참, 교생 선생님들도 왔다. 민소매 블라우스 입고 오는 것도 놀라웠는데 심지어 시스루를 선보인 교사도 있었다. 오오, 세상이 좀 달라졌나보다.

 

알라딘은 기프트 상품 하루 특가가 사라졌다. 아쉽다. 라미 만년필을 사고 싶었는데.... 요 공책을 위해서....

 

 

전에 받고 싶었는데 이사하는 와중에 주문 못한 텀블러는 초기에 13,000에 팔았는데 지금 보니 만원 밑으로 떨어졌다. 그래도 이건 사은품으로 받고 싶었던 거지 직접 사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비스듬히 기울었던 북엔드도 그렇게 받고 싶었던 아이지만 애석하게도 행사 종료됐다. 역시 인생은 타이밍!

 

 

추가하자면, 그와중에 슈퍼바이백 받겠다고 기를 쓰고 읽은 책이다. 어느덧 바이백의 노예...;;;; 아무튼, 다 읽었다. 힘들었고, 재밌었다. 예치금을 기다리고 있다. 책 팔아서 카드값 메꾸기 신공에 공을 들이고 있다. 그렇지만 역시나 사는 속도가 더 빨라..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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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2-09-12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기프트상품 하루 특가는 사라진것이군요! 전 왜 요며칠 안뜨나 했어요.
그런데 스노우맨은 어떻게 계획대로 잘??

마노아 2012-09-12 13:53   좋아요 0 | URL
며칠 기다려도 안 바뀌길래 고객센터에 문의하니 폐지됐다고 하네요. 무척 아쉬워요.
스노우맨 기어이 다 읽었어요. 눈이 빠끔해져서 어찌나 퀭해졌던지요.
영화 정보가 별로 없어서 잔뜩 궁금해져버렸어요. 디카프리오는 해리인지 연쇄살인범인지....

2012-09-12 13: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9-12 13: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개인주의 2012-09-12 1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특색있는 학교에 근무하시는군요.ㅋㅋㅋ
저는 주말에 남들 다 본 해품달을 몰아봤는데
성인연기자 이방수염 달은 거 같은 허염과 발연기 허연우 땜에
좀 그랬지만 김수현 이자식은 정말 멋진 놈이더군요..
뒷북..ㅋ

마노아 2012-09-14 20:33   좋아요 0 | URL
정말 길이 남을 특색 있는 학교죠...;;;;;;
해품달은 완전히 원작에 대한 애정으로 보았어요.
허염과 허연우 남매 때문에 발연기의 진수를 알아차렸죠.
하지만 김수현은 정말, 매력적인 놈이었어요.^^ㅎㅎㅎ

프레이야 2012-09-12 2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나 다사다난 마노아님ㅎㅎ 대학살의신을 혼자 보셨다니 맘놓고 웃을 수 있었겠어요. 연극도 보셨지만 그래도 웃기던가요. 전 이 영화 올해의 최고로 뽑을래요. 두번째는 케빈에대하여ᆞ

마노아 2012-09-14 20:34   좋아요 0 | URL
혼자서 키득키득 웃었어요. 오늘 본 광해-에서 더 크게 웃었어요. 요새는 웃을 수 있는 영화가 좋아요.
어제 피에타 보았는데 정말 마음이 무거웠거든요. ^^

paviana 2012-09-12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읽던 제가 숨넘어 갈 지경이니 직접 겪으신 님은 얼마나 뒷골 당기시겠어요. 에효 근데 항상 스마트폰 길찾기를 생활화하셔야 될거 같아요. 어쨌거나 화튕!!!

마노아 2012-09-14 20:34   좋아요 0 | URL
스마트폰 길찾기 돌려봤는데도 모르겠더라구요. 제 손에 들어오니 스마트폰도 전혀 스마트하지 않아요. 엉엉...ㅜ.ㅜ

순오기 2012-09-13 0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버라이어티하고 언제나 상상 이상을 채워주는 마노아님 페이퍼~
그래서 공사는 끝나고 생활은 안정되었겠지요.
수고 많은 나날이었지만, 이젠 가을바람 따라 살랑살랑 흔들려도 좋을 거 같아요.^^

2012-09-13 07: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9-14 20: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BRINY 2012-09-13 2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생이 오긴 오는군요. 세상 많이 달라졌죠? 그렇지만, 그 학교의 장감님은 변함이 없는 거 같네요!

마노아 2012-09-14 20:36   좋아요 0 | URL
요기 오는 교생들도 좀 이상해요. 뭘 배울 게 있어야 말이죠..;;;;
회의 때마다 부자가 매번 싸우는데 환장하겠어요. 뭐 이런 콩가루가 다 있는지...;;;;
 

서재 오랜만이다. 이집트에 가 있을 때에도 이보다는 서재에 더 많이 접속했었다. 어휴, 나 정말 바빴구나!

 

많은 일들이 있었다. 방학하던 그 주 월요일에 학교는 분교로 이사를 갔다. 서울시에 반납해야 하는 부지에서 나가지 않으려는 꼼수 때문이다.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 덕분에 출퇴근 시간 1시간 추가되었다. 모두 가건물로 되어 있어서 비오던 날 어디 폭격이 있는 것마냥 시끄러워서 수업이 진행되지 않던 게 기억난다. 교탁도 없는 교실에, 책상은 아래 서랍이 없이 뻥 뚫려 있었다. 제일 싼 걸로 맞춘 까닭이리라. 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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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사하던 날은 다른 일로 더 분주했다. 2년 전부터 고대하던 3층으로 이사를 가기 위해서 대출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은행 문턱 높은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정말 서민들에게 한없이 높은 장대였다. 그무렵 저학력자에겐 더 높은 금리로 대출을 했다는 신한은행 기사는 평소보다 더 큰 분노를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여러 사연들이 있었고, 어쨌든 잔금은 치렀다. 저금통까지 탈탈 털고 중고책 팔아서 모아둔 예치금도 모두 환급받아서!

 

이사 이틀 전은 내 월급날이었다. 평소보다 30만원 정도 적게 입금된 금액에 노여움이 몰려왔다. 교장샘이 평소 자주 하는 말씀이 월급 30씩 깎겠다는 거였는데 정말 실천했나 싶어서! 득달같이 행정실에 전화를 걸어서 알아본 결과, 고용보험료와 국민연금을 3개월 동안 내지 않아서 그게 한꺼번에 나갔다고 한다. 헐! 그러니까 지금까지 월 50씩 적었던 내 월급이 사실은 60씩 적었다는 이야기. 내가 실업급여 받을 때보다 10만원 더 들어 있는 월급 통장이라니, 멘붕 그 자체였다. 제기랄!

 

열기를 식히기 위해 스타벅스에 갔다. 13주년 기념으로 제조 음료 반값 할인하던 날이었다. 설마하니 그렇게 오래 줄 설줄 몰랐따. 40분 줄 서고, 음료 받기 위해 다시 20분 대기. 멘붕이 피로로 옮겨가던 순간이었다. 여튼, 폭염 속에서 원샷!

 

이삿짐을 나르기 시작하던 날은 중복이었다. 나는 이날 '영원의 도시 로마전'을 보러 갔다. 8월 중으로 써야 하는 티켓이었는데 시간이 이날밖에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쟁기념관은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그 옛날 '끝장' 콘서트를 보았던 추억의 장소이지만, 전쟁을 기념한다는 이런 발상의 나라에서는 별로 가고 싶지 않은 곳. 로마전은 제법 재밌었지만 입장료는 좀 과했다는 생각이다. 그래도 이날 제일 인상깊었던 것은 로마 시대 옷을 입어볼 수 있는 체험전이었는데, 혼자 간 나는 옷을 챙겨입어도 사진 찍어줄 사람이 없었다. 셀카라도 찍어볼 요량이었는데 의상 담당 알바생이 사진을 찍어주었다. 친절하셔라!

 

 

보이진 않지만 월계수 관도 쓴 거다. ㅎㅎㅎ

 

암튼, 낮에 외출을 한 까닭에 저녁에 더 열심히 짐을 날랐다. 어차피 내 짐은 다 내가 옮기는 거라서 별 차이도 없지만...;;;;

포장 이사는 하지 않았다못했다. 2층 살고 있는 우리가 3층을 추가로 얻은 것이기 때문에 거리도 가까웠고, 이삿짐 옮길 때 제일 기피하는 대상이 책이라고 알고 있기에 책들은 우리가 나르기로 했다. 그게 모든 화근의 시작이었다. 난 이날 하루만 왕복 40회에 걸쳐서 책을 날랐다. 4면이 모두 책이었던 방에서 1/8을 나른 셈이었다. 그래도 첫날이어서 체력이 달리진 않았다. 다음 날 일요일에는 이보다 세갑절은 날랐나 보다. 문제를 알아차린 것은 월요일이었다. 무릎이 아팠다. 상당히! 연골이 닳아 없어진 느낌이었다.

 

 

처음엔 장판을 새로 깔지 않을 생각이었기 때문에 토요일에 옮긴 책은 모두 방에 들어가 있었는데 중간에 장판을 깔기로 결심을 바꾸면서 짐을 다시 밖으로 내와야 했다. 당연히 삽질+ 이 사진 밖으로 병풍처럼 책이 더 있다. 책 옮기는 데에 아무 도움은 주지 않으셨지만 이 때문에 2주 내내 엄니에게 욕을 먹어야 했다. 아, 나도 징그럽다.

 

일요일에 직접 장판 사러 방산 시장에 갔는데, 시장 전체 휴일! 결국 인터넷으로 주문했다. 제품은 화요일에 배송 예정이고, 그래서 월요일에는 다크나이트를 보러 갔다. 헌데 하필 그 전에 들렀던 은행에서 업무가 막혔다. 때마침 은행은 에어컨이 고장 났고, 찜통 더위 속에 일 보고 부랴부랴 아이맥스로 이동을 하자니 영화를 앞에 놓칠 것 같았다. 해서 예매 취소를 하려고 하니 내 후진 폰은 cgv앱도 깔리지를 않아서 예매취소도 되질 않았고, 나는 용산역으로 부랴부랴 뛰어 갔다. 1층에서 청소 담당하시는 분께 영화관 위치를 물어 보니 잘못 알려주시고, 내가 줄 선 기계는 내 앞에서 고장 나서 먹통 되어주시고! 그래서 결국, 영화는 10분을 놓쳤다. 도둑들에 이어서 이 무슨 악재란 말인가..ㅜ.ㅜ

 

암튼 영화는 즐겁게 잘 보았다. 이튿날 바닥을 깔고 책장을 옮기고 책을 옮기기 시작했다. 형부는 다음 날부터 직장에서 2박3일 캠핑을 떠나서 집에 남자는 없는 상황. 이런 때에 힘 보태줄 애인 하나 없는 현실을 자학하기 충분했다. 힘쓰는 남자는 없지만 힘쓰는 자매는 있어서 우린 파스 붙이고 노동 모드!

 

문제는 목요일이었다. 이미 짐 정리 시작한지 거의 일주일 다 되어 가고 있었고, 책장은 모두 책이 들어찬 상태였는데 엄니께서 이 구조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으셨다.

 

 

베란다가 좁은 까닭에 주방말고도 큰 방에서 들어가는 문이 하나 더 있고, 거실로 빠지는 문이 있고, 큰 창이 두개나 있어서 책장을 둘 벽이 부족했다. 해서 책상 공간과 침대 공간을 나누는 의미로 가운데에 책장을 두었는데 엄니는 방 한가운데에 저런 걸 두었다고 노발대발하신 것이다. 아씨, 방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야 하는 사람은 나인데 내 마음에 들어야지...ㅜ.ㅜ 그나마도 그림책 꽂았다가 들쑥날쑥한 게 정신 없다고 해서 소설로 다 갈아탄 건데 그러신다. 여튼 난 이대로 밀고 나갈 생각이었는데 날벼락이 떨어졌다. 수원 사는 언니가 수원 오피스텔을 정리하고 집으로 들어온다는 급보! 그것도 엄마 통해서 책상 들어갈 자리 마련하라는 '령'이 내린 것이다. 아아아... 우리가 이사 준비하는 내내 집으로 들어올 거냐는 질문을 끝없이 던졌지만 계속 No라고 하던 언니가 집에 와보고선 마음이 바뀐 것이다. 언니 책상은 내 책상보다 크기 때문에 크기를 알려고 전화를 해보니 자기 책상 들어갈 자리는 자기가 정하겠다고 해서 나는 또 헐크가 될 뻔했지만 참았고, 그래서 이날은 분노로 떨며 밖으로 뛰쳐나가서 친구랑 놀다가 들어왔다. 하지만 이미 무릎도 발목도 손목도 모두 만신창이, 체력이 바닥인지라 무더위에 외출하는 것 자체도 힘들었다. 하아...ㅜ.ㅜ

 

주말에 형부가 돌아와서 같이 옷장 다섯 칸을 날랐다. 그 안에 채울 옷을 나르고 나니 손가락도 남아나질 않는다. 옷장이 무거워서 문짝도 모두 분해해서 옮겼는데, 분해한 옷장도 다시 달고, 식탁 밑에 바퀴도 달고, 살다 보니 별 것을 다 해보는구나. 월요일로 넘어간 새벽 3시! 이제 좀 쉴까 했는데 밖에서 쿵 소리가 났다. 어느 미친 또라이가 형부 차 유리창을 깨버린 것이다. 술이 잔뜩 취한 공익 요원이 차 유리를 깨다가 누군가에게 들켜서 신고가 들어간 것이다. 결국 범인은 잡혔지만, 그렇게 또 밤샐 일이 생긴 것! 아아, 참 산 너머 산이다.

 

8월 6일 월요일에는 불후의 명곡2 이승환 편 녹화 신청했지만 똑! 떨어졌고....ㅠ.ㅠ 방송 날짜도 모르는 난 그저 기다릴 뿐!

 

알리를 이 방송을 통해서 좋아하게 되었지만 음반은 재녹음한 것이어서 마음에 별로 들지 않는다. 홍경민은 아직 못 들어봤고, 임태경은 곧 구입할 예정! 근데 이것도 재녹한 거라서 멜론에서 먼저 들어보고 살까 살짝 고민 중이다.

 

 

다시 이사 모드로 돌아가서, 결국 가운데 책장은 허물게 되었다. 침대 발치 서랍장 위로 올렸는데 엄니가 거기 TV 작은 것 두신다고 해서 다시 옆자리로 재배치, 아아아 나는 뼈마디가 부서지는 것 같았단 말이다. ㅜ.ㅜ

 

 

결국 이런 구조가 되고 말았다. 창이 서쪽 방향이라서 햇볕이 많이 들어와 내가 피하고 싶었던 각도다. 오후 늦게까지 해가 가득 들어차서 실내 온도 38도까지 찍었던 무서운 더위가 사무친다.ㅜ.ㅜ

 

얼추 큰 짐이 대강 정리가 되자 바로 중고샵에 책부터 등록했다. 통장도 탈탈 털어서 이사를 했기 때문에 카드값 메꾸려면 부지런히 팔아야 한다. 100권 이상을 알라딘에 팔기로 등록하고, 또 꽤 많은 책을 회원에게 팔기로 등록했다. 이날은 말복날! 지치고 지쳐서 저녁은 피자를 배달시켰다. 그러고 보니 올 여름엔 초복부터 말복까지 영양 보충은 전혀 하지 못했다. 영양은 늘 과다 상태긴 하지만.

 

 

조카들은 신나는 여름 날을 보냈다. 옥상에 커다란 튜브를 갖다 놓았는데 이게 지름이 3m다. 차양막까지 치니 제법 그럴싸하게 피서지가 되었다. 물 받는 데만 무려 3시간..ㅜ.ㅜ 내일 비오면 못 쓰게 될 터, 오늘까지 조카들은 신나게 물놀이를 즐겼다. 나도 들어가고 싶었지만 차마...;;;;

 

 

일 한참 하던 무렵의 내 손톱은 저렇게 만신창이였다. 사진이 작아서 잘 안 보이나? 파스의 기운은 그닥 크질 않아서 이틀 전부터 물리치료를 받고 있다. 손목 발목 손가락 발가락 모두 아프지만, 일단은 무릎에 집중하고 있다. 버스의 세칸 계단도 부담스러운 통증이다. 노약자들에게 저상 버스가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지를 새삼 알게 되었다. 이런 와중에 터진 '엄마' 아파트 배달원 엘리베이터 사용 제한 기사는 노여움에 노여움을 더하기 충분했다. 모든 배달은 1층으로 단일화하고, 주문한 사람이 내려와서 찾아가야 마땅하다.(버럭!!)

 

그렇게, 7월과 8월이 지나갔다. 이제 올림픽에 관심 좀 가져볼까 싶었는데 벌써 폐막식이란다. 그리고 나는 내일, 개학이다. 헐! 광복절도 지나지 않고 개학이라니...ㅜ.ㅜ

 

원래도 휴가는 모르고 살았지만, 휴식은커녕 골병든 채로 개학이라니, 서글프다. 언니는 옷장 한칸도 비우라는 령을 보내왔다. 하하핫... 올려왔던 옷은 다시 2층으로 내려 보내야 한다. 일찍 좀 얘기해 주지..ㅡ.ㅡ;;;;;

 

펼친 부분 접기 ▲

 

 

 

그래도 방학의 마무리는 산뜻하게 해야 하는 법!

 

 

다이소에서 천원 주고 사온 봉숭아를 물들였다. 분말로 되어 있는데 물만 부으면 준비 완료! 약 30분 정도 손톱에 올려놓았다가 떼면 된다. 어릴 적 손가락 아프게 실로 조였던 추억은 바이바이지만, 새삼 세상 참 편해졌구나 싶다. 현재 우리집 여자들은 모두 봉숭아 삼매경!

 

 

 

 

 

 

 

 

 

 

방학 동안 읽고 싶었던 많은 책들이 있었고, 가고 싶은 곳도 많았지만 일단은 모두 유보 상태다. 건강도 차차 회복될 것이고, 모든 게 조금씩 안정이 되어갈 거라고, 믿고 싶다. 다시 식구들이 모두 모이게 되었으니 부딪히는 일도 무척 많을 테지만 좋은 일도 분명 많을 거라고, 역시 믿고 싶다.

 

다시, 개학이다. 새벽같이 회의가 잡힐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어쨌든, 해피 and인 걸로!

 

덧글) 제목은 발바닥을 디딜 때마다 찢어지게 아팠기 때문이다. 인어공주의 심정이 이랬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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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2-08-12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흑..... 개학입니다...

마노아 2012-08-13 11:13   좋아요 0 | URL
오늘입니다...흑..ㅜ.ㅜ

희망찬샘 2012-08-12 1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피로가 덩달아 밀려옵니다. 고생 많으셨어요. 이곳이 도서관이냐고 찬이가 묻네요. 우리집도 책만 정리하면 좋은데... 옆에서 한소리 하네요. 마노아님 방 멋지대요. ^^

마노아 2012-08-13 11:14   좋아요 0 | URL
쓰다가 중단되고 중단되어서 이틀에 걸쳐 썼어요. 쓰는 것도 피로가 몰려오던걸요.^^;;;;
책정리는, 정말 이사 정도의 큰 이벤트가 아니면 좀처럼 엄두가 나질 않아요.ㅎㅎㅎ

BRINY 2012-08-12 1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니랑 같이 방 쓰시게 되시나요? 창문이 두개나 있는 널찍한 방이네요. 커튼도 하늘하늘 레이스로 예쁘고요. 비 쏟아지기전에 이사 끝내셔서 다행이네요.

마노아 2012-08-13 11:15   좋아요 0 | URL
원래는 엄마가 잠잘 때만 올라오기로 되어 있었는데 이제는 언니랑 같이 자게 되었어요. 오피스텔은 근처에 얻었고 출퇴근 하는 거죠.
어제는 비오는 가운데 못 박는 작업을 했어요. 여기저기 박을 데도 많은데 잘못 박은 곳도 많아서 다시 해야 하는 것도 있어요.^^;;;

순오기 2012-08-12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휴~ 고생이 많았군요.
앞으론 좋은 일, 즐거운 일이 많을 거라고 위로와 응원을 보내요!!

마노아 2012-08-13 11:16   좋아요 0 | URL
좋은 일이 많아야 하는데, 오늘 아침 회의를 못 갔어요. 회의 있단 연락을 못 받았는데 아침 회의 8시에 있단 소리를 8시 반에 알았답니다. 멘붕이에요..ㅜ.ㅜ

네꼬 2012-08-13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은 대체 몇 명의 인생을 살고 있는 거예요? (절레절레) 이 긴 글, 이 다양한 사연 중에 내가 제일 좋은 건, 혼자서 로마전 보러 가서 씩씩하게, 로마 옷 입고 사진 찍은 거예요. 나는 마노아님이 진짜 너무 좋아. ㅎㅎ 그리고 방 진짜 멋지네요! 마노아님 방 같아요.

마노아 2012-08-13 11:17   좋아요 0 | URL
헤헤헷, 네꼬님, 저 정말 씩씩하지요? 어린왕자전도 보러 가고 싶은데 다리가 아파서 일단은 참고 있어요. 제 방이라고 저 혼자만 생각하고 있어요. 다른 식구들이 별로 동의를 안 하네요.^^;;;;

Kitty 2012-08-13 0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뭔가 읽으면서 숨이 차요 ㅜㅜ
이사라니 큰 일 치르셨어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나저나 왤케 일찍 개학을 한대요? ㅜㅜ

마노아 2012-08-13 11:17   좋아요 0 | URL
여기 일년3학기제라서 방학이 짧아요. 봄방학은 없어요. 아아아.... 개학이라니...ㅜ.ㅜ

개인주의 2012-08-20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거에 몇분의 일도 안되는 책을 좀 버리고
정리하고 책장도 달랑 하나 버리고 ..
그러고 몸살 났어요. -_-
그런데 어떻게 저 많은 짐덩이들을..

마노아 2012-08-20 15:55   좋아요 0 | URL
책정리가 보통 노가다가 아니에요.ㅠ.ㅠ
아침에 일어나 땅바닥에 발을 디딜 때마다 발목이 쑤셔요. 엉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