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루피로 산 행복
이해선 지음 / 바다출판사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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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색 깨끗한 표지 위에 땅을 향해 엎드려 누운 소년의 이국적인 모습.  지나치기엔 너무 낯설고 기이한 모습.  도서관 서가에 꽂힌 책을 망설임 없이 집어들었다.

작가는 여행가이면서 칼럼니스트다.  라다크와 티베트를 여행하면서 그녀가 보았던 풍광과 그녀가 만났던 사람들, 그들의 소박한 삶이 사진과 함께 책 속에 그대로 담겨 있었다.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이국의 정경이, 왜 그렇게 내게도 익숙하게, 가깝게 느껴졌을까. 

저자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 마치 친구처럼, 가족처럼 어우러져 시간을 보냈다.  그런 저자의 열린 마음이, 또 낯선 이방인을 가족처럼 받아들여주는 저들의 마음에 어쩐지 내가 고맙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우리 돈으로 약 300원에 해당하는 적은 돈.  그 적은 돈을 모아서 시주를 하는 모습에서 적잖은 행복감과 만족감을 느낀 저자의 미소가 보지 않고도 그려져 읽는 순간 나 역시도 함께 웃을 수밖에 없었다.  행복은 많이 가진 것에서 나오지 않는 것을... 새삼 깨닫는 시간.

사진들을 보면 하늘이 참으로 푸르게 보인다.  늘 자랑스러워하는 한국의 가을 하늘이 비교될 정도로.  그 푸르른 하늘 바다에 풍덩 빠지고 싶은 충동마저도 인다. 

7,000미터가 되지 않으면 봉우리의 이름조차 주지 않는다고 하니, 놀랍고 놀랄 일이다.  그곳에서 내려보는 세상이란 얼마나 작을까.  그곳에서 품어보는 하늘은 또 얼마나 넓고 클까.  하나의 인간으로서의 스스로가 얼마나 작고 초라한지, 자연의 그 위대함 앞에 다시 한 번 숙연해지는 마음이었다.  실제로 가서 두 눈으로 보고, 두 발로 그 땅을 밟아본 작가는 오죽하랴. 

낯선 만큼 신비하고, 때묻지 않은 만큼 순결한 그 땅이 호기심을 가득 품게 만들었다.  동시에 독립하지 못한 아픔과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까지... 이 책은 더 많은 미련과 궁금증을 남겨 놓은 채 책을 덮게 만든다.  아마도 그 다음 이야기는 우리의 눈과 발로 직접 체험하기를 바라는 작가의 마음이 담겨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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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 - 세상에서 제일 큰 축복은 희망입니다 장영희의 영미시산책
장영희 지음, 김점선 그림 / 비채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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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으로 책을 샀을 때, 두 책 모두 만족스럽기는 쉽지 않은데, 이 책은 대박이다.

앞서 생일도 잘 읽은 편이지만, 이 책은 감사하면서 읽은 셈이다.

사랑을 모아 놓은 시보다, 희망을 모아 놓은 시가 더 아름답게 느껴졌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놀랍다.

살면서, 근거 없이... 혹은 너무 거창한 희망은 오히려 내 어깨 위의 짐을 더 무겁게 만들고, 그 희망의 정체조차 의심하게 만드는 일이 있었다.

그러나 또 역설적이게도, 불가능할지언정 그 희망 없이는 하루도 버티기가 힘드는 게 바로 우리 인간이다.

장영희씨 또한 그랬듯이, 가장 어렵고 힘들 때, 또 외로울 때, 이 책은 좋은 친구가 되고 위로자가 될 것이다.

언제나 미술은 음악보다 내게 우위에 있어보지 못한 존재건만, 그림의 힘 또한 무시 못한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바로 이 책의 삽화가 말이다.  해당 시를 보고서 어떤 기준으로 그런 특징을 잡아내는 지 알 수 없지만, 뭔가 대단히 안 어울리면서도 어울리는 기묘한 조화를 보이고 있다.  다양한 도구를 사용한 다양한 그림이 축복처럼 쏟아지니, 내 마음이 밝아지는 기분을 느끼게 했다.

'내 힘들다'를 거꾸로 뒤집으면 '다들 힘내'가 된다고 한 것과, "생명 자체가 살아갈 이유입니다."라는 명제와, "가장 통쾌한 복수는 용서"라고 한 것... 내가 오래오래 잊지 않기를 바란다. 

유독 눈에 띄었던, 가슴에 남는 시 한편을 옮겨본다.

삶이란 어떤 거냐 하면

윌리엄 스태퍼드

네가 따르는 한 가닥 실이 있단다.  변화하는

것들 사이를 지나는 실.  하지만 그 실은 변치 않는다.

사람들은 네가 무엇을 따라가는지 궁금해 한다.

너는 그 실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

그렇지만 다른 이들에겐 잘 보이지 않는다.

그것을 잡고 있는 동안 너는 절대 길을 잃지 않는다.

비극은 일어나게 마련이고, 사람들은 다치거나

죽는다.  그리고 너도 고통 받고 늙어간다.

네가 무얼 해도 시간이 하는 일을 막을 수는 없다.

그래도 그 실을 꼭 잡고 놓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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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08-02 0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좋아요~^^

마노아 2006-08-02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쵸? 저 포함해서 모두 별 다섯이더라구요^^
 
나무야 나무야 - 국토와 역사의 뒤안에서 띄우는 엽서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199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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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접할 때 작가의 인지도와 함께 가장 먼저 고려하는 부분은 제목이다.  어떤 제목을 쎃는가, 얼마만큼 문학적이고 함축적 의미를 가졌는가가 구매 의욕을 많이 불사른다. 

이 책은 반복된 어구의 제목과 따스한 다갈색 표지가 제목의 대상처럼 자연의 느낌으로 다가오는 책이었다.  표지를 열어보니 작은 활자체가 간결하게 늘어서 있는 것이 보인다.  한줄씩 줄 간격을 떨어 뜨렸는데, 여백의 미를 잘 사용했지만, 이런 형식은 읽는 속도를 엄청 떨어뜨린다.(나만 유독 그런 지는 모르겠다. ...;;;)

이 책은 기행문과 같은 형식으로, 전국의 곳곳을 다니며 엽서를 띄운 것을 모아 놓았다.  역사적 사건가 숨결이 묻어 있는 곳, 깊은 사색이 묻어나는 곳 등등, 평소 우리가 깨닫지 못했던 삶의 이면과 편린들을 조각조각 모아 놓은 것 같은 느낌의 책이다.

따라서 읽다 보면 고개 끄덕이는 부분이 많고 짙은 교훈을 담아내는 경우가 많은데, 그만큼 가볍지 않고 무겁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어쩌면 저자의 약력에 대한 나의 선입견이 작용한 것일 수도 있지만, 나는 지식인으로서 그가 갖고 있는 계몽 의식 같은 것이 두드러지게 느껴져 어느 한편으론 껄끄럽기도 했다.  제목의 느낌과 달리 자연스럽다기보다 인위적으로 느껴져서 말이다.

가끔은 가볍게 지나가도 좋을 것 같은데, 필요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고, 그 이상으로 아파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조바심 비슷한 우려가 일었다.

물론, 이는 작품의 진가와 저자의 숨겨진 의도를 제대로 잡아내지 못한 독자로서의 내 책임이 크다.  아마도 내가 이 책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좀 더 시간이 흐르고 보다 사색이 깊어졌을 때에야 가능하지 않을까.  그래서 같이 신청한 다른 책은 집다가 말았다...;;;; 나중에 봐야지.. 하면서.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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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07-29 0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 읽어봐야지, 하면서도 잊고 있었어요. 보관함에 넣어요. 마노아님, 고마워요^^

마노아 2006-07-29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읽어야 하는데, 자꾸 망설여져요. 비숍님은 저보다 재밌게 읽으실 거예요^^

비로그인 2006-08-02 0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헌책방에 좋은 상태로 나와있다길래 주문했어요~^^;; 무진장 기대하고 있어요..;;

마노아 2006-08-02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잘 됐어요. 헌책방에서 좋은 책 깨끗하게 구할 때 진짜 흥분되죠^^
 
쥐 I
아트 슈피겔만 지음, 권희종 외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199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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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장르를 어떻게 구분해야 할 지 잠시 난감했다.  역사적 사건을 기록한 것이라 역사쪽으로 분류할 수도 있고, 개인의 자서전으로 볼 수도 있고, 매체를 생각하면 만화쪽으로 구분할 수도 있겠다.  나는 개인의 일대기라는 쪽으로 카테고리를 분류했다.

소문을 익히 듣고 구입했는데, 첫장 넘겨보고 숨이 턱 막혔다.  소프트하고 샤방샤방한 그림이 있을 리 없지만, 그래도 까만 테두리에 까만 그림, 까만 글씨, 도통 음영이라곤 느껴지지 않는 온통 까만 책 속 내용이 읽기도 전에 벌써 숨쉴 공간을 주지 않는 답답함으로 다가온 것이다.  여기서부터 시작이구나... 하는 긴장감이 바싹 엄습했다.

작가는 2차 세계대전 때 아우슈비츠를 경험했던, 그리고 살아남은 부모를 둔 유태인 작가다.  여러 실험적인 작법을 통해 신선하고도 독특한 만화작법을 연출해 낸 그는 아버지를 인터뷰하여 이 작품을 완성하였다. 1권에 8년, 2권까지 모두 13년에 걸친 작업이었고, 이 책은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단순히 이 책이 히틀러에 의해 학살된 억울하고도 불쌍한 유태인 이야기라고만 짐작하면 책의 절반만 읽은 셈이 될 것이다.  유태인들이 얼마나 잔인하게 학살 당했는 지는 모두 안다.  하지만, 그랬다!라는 결과만 알 뿐이다.  이 책에는 그들의 처절한 생존 싸움이 무서울 만큼 솔직하게 그려져 있다.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위험한 상황, 당장에 누가 죽을 지 알 수 없는 상황, 그 와중에선 믿을 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사랑하는 가족도 내가 살기 위해선 뻔히 죽을 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등 떠밀어 내보낸다.  죄책감조차 사치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고 당연한 일이 되어버린다.

살아남는 자는 착한 자도 아니고 명예로운 자도 아니다.  능력있는 자!  악착같이 살아남을 수단이 있는 자!  작 중 작가의 아버지인 블라덱은 딱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구사할 수 있는 언어와, 손에 익히 재주와, 긴박하게 움직여야 하는 예민한 본능을 가지고 지옥같은 아우슈비츠에서 살아 남는다.  그의 처세술은 로빈슨 표류기의 로빈슨도 못 쫓아올 수준이다.;;;;;

전쟁은 끝났고, 그는 살아남았다.  그의 아내도 살아남았다.  새 인생을 시작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자유로울 수 없었다.  작가는 대학에 가서야 모든 아이들이 악몽에 시달리는 부모의 괴성에 한밤에 깨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놀랍게 체득한다.  굶주림이 무엇인지를 아는 아버지는 절약이 습관화된 정도가 아니라 신성시할 정도다.  그런 악착스러운 모습들은 아들과의 사이를 자꾸 벌어지게 만든다.  아버지의 가치관으로, 전쟁을 경험해 보지 못한 아들의 생활습관이나 직업 등은 모두 한숨 나오는 것으로만 보일 뿐이다. 

아들은 아버지와의 관계를 개선해보고자 애쓰지만 이내 지쳐버린다.  병든 아버지를 자기 집에 모셔 와 살 생각은 감히 하지 못한다.  자살한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살아있는 아버지도 똑같은 무게로 그를 억누르고 있다.

작가가 보여준 극단적 비극의 한 단면은 인종차별하는 아버지의 모습에서도 드러난다.  자신이 유태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인간 대접을 받지 못하고 살았던 그 아버지는, 흑인이라는 이유로 도둑 취급하며 어찌 상대할 수 있느냐고 펄펄 뛰는 모습을 보여준다.  아들은 아버지가 정말 싫어진다.

작품은 이야기 말고도 여러 독특한 점을 지닌다.  작품 속에서 유태인은 쥐로 묘사되고 독일인은 고양이로 그려진다.  폴란드인은 돼지로 묘사되고 미국인은 개로 나왔으며, 프랑스인은 개구리로 그려졌다.

그가 1권의 성공 이후 사회적 부와 명성을 얻으면서 더 고독해지고 더 우울해지고 더 힘들어하는 모습은 몹시 인상적이다.  그의 책상 밑으로 셀수도 없이 많은 쥐들이 갈비뼈를 허옇게 드러낸 채 죽어 쌓여 있는 모습이 같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신이 겪지 않은 일일지라도, 그가 유태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이 끔찍했던 기억은 유산처럼 그가 짊어지고 갈 몫이 되어버렸다.  피할 수도 없고 벗어날 방법도 없는 채로.

아버지가 마지막 인터뷰를 마치며, 그를 이미 죽은 형의 이름으로 부른 장면도 책장을 바로 넘기지 못하고 멈추게 하는 힘을 지녔다.  형은 가스실로 보낼 수 없다며 숙모가 독약을 먹이는 바람에 여섯 살의 나이로 죽었다. 

현 시점에서 이스라엘은 전세계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다.   비난받을 짓을 했고, 비난 받고 있지만 아마도 끄떡도 하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든다.   무엇이 그들을 그토록 무섭게, 독하게 만들었을까.  2차 세계대전의 악몽이?  수천년에 걸친 유랑 생활이?  그 모든 이유들을 도합해서 오늘의 그들을 만들었을 것이다.  자신들은 단지 생존하기 위해서 싸울 뿐이라고 항변할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들은 불과 60년 전의 일을 잊은 것일까.  가해자이면서 뉘우치지 못하는 일본도 욕먹어 싸지만, 피해자였으면서 다시금 가해자의 얼굴을 하고 있는 이스라엘은 대체 어떤 양심을 갖고 있는 것일까.

이 책은 분명 좋은 책이다.  읽어 마땅한 책인데, 후유증이 남을 것이다.  가슴 속이 더 무거워지는 답답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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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하는 소수 시오노 나나미의 저작들 19
시오노 나나미 지음, 이현진 옮김 / 한길사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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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로 워낙 이름을 떨친 시오노 나나미는 작품의 가치 자체를 떠나서 탁월한 글솜씨로 내게 인상적인 작가다.

그녀의 작품들은 때로 역사서인지 소설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로 현실적이면서도 허구성이 짙은 느낌을 갖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그녀의 에세이는 좀 남다를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예상 밖의 반응이 나온다.

이 책은 제목처럼 '소수'... 즉 마이너리티에 대한 그녀의 소소한 이야기가 담겨 있는데, 그녀가 가졌던 가장 큰 매력인 '대중성'과 거리가 있었다.

어쩌면 그것이 시오노 나나미가 지향하는 바인지는 모르지만, 가장 자신있었던 장점을 포기한 만큼, 독특함을 얻고 쉽게 읽혀지는 맛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그녀의 역사서들과 달리 이 책은 책장 넘어가는데 다소 시간이 걸렸다.  나 역시 침묵하는 소수가 되어가고 있었던....;;;;;

다음엔 다시 그녀의 역사서로 돌아가 '진맛'을 즐겨야 했다.  그녀의 장점을 가득 살린 작품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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