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하게 조금 느리게
한수산 지음 / 해냄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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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저자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바가 없었다.  그저 어딘가의 서평이 인상적이어서 펴 들었던 책이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기 때문에 마음을 비우고(?) 책을 만났는데, 짐작했던 것 이상의 감동을 내게 선사했다.


긴 시간 글을 써왔던 저자의 삶의 애환이라던가 애착, 그리고 사물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각이 행간에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자연과 더불어 느끼는 깨달음조차 내가 느끼는 것과 같이 간접 경험이 확실하게 전달이 되었고, 무엇보다도 자신의 첫 주례사가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이제까지 사랑했으니, 이제부터는 좋아하라고... 결혼은 현실이라고 말하던 것이 가슴에 깊게 꽂혔다.  흔하디 흔한 주례사,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서로 아끼고 사랑하라는 뻔한 말 대신, 그는 삶을 살면서 본인이 사무치게 깨달았던 진리를 이제 새 삶을 시작하는 부부에게 적나라하게 강조, 경고한 것이다.  그리고 비단 그들 뿐 아니라 독자에게까지도 알려주는 것이다.  그건 단지 현실은 쓰디 쓴 거야!라는 쓴소리가 아니라, 그러니까 더 열심히, 더 아름답게 살라는 고마운 충고였다.


그가 만났던 시인 박목월과, 그가 일본에서 해후했던 노래 쓰는 이와, 마당의 오동나무와 그가 듣곤 했던 음악들이... 하나의 정경이 되어 내 마음 속에서 그리고 머리 속에서 펼쳐졌다.  여전히 따뜻하고 흐뭇한 광경들이다.  마치 내가 그 속에서 함께 느끼고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그만큼 전달을 잘했다는 소리.


단순하게, 조금 느리게... 그렇게 살아도 좋을 것 같다.  요즘은 너 나 할 것 없이 너무 빨리 가려고만 하니까, 그 경쟁 속에서 숨이 막히느니, 조금 천천히 가더라도, 이렇게 복잡하지 않게, 여유를 가지고 삶 속에 녹아드는 것도 큰 매력일 것이다.  이 책이 그런 매력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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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에 가기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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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름은 익히 들어왔지만, 그의 작품을 접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와의 첫만남으로 어떤 책을 볼 것인가 나름 고심했었다.

고심은 했지만, 가장 최근 작품으로, 그리고 가장 얇은 책으로 골랐다는 게 나의 한계라면 한계지만, 아무튼 보통과의 만남은 그렇게 열렸다.  그 날은 쿠폰을 쓸 수 있는 마지막 날이었고, 나는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책으로 냉큼 주문했었다.

도착한 책은 이뻤다.  8500원 정가인데, 나의 실 구입 금액은 대략 4.500원 정도였고, 이쁘장한 책에 보통이라는 유명한 이름까지 얹어서 나는 꽤 설레이기도 했다.  그래서 더 궁금했던 공지영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제쳐두고 이 책을 먼저 펼쳤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진도가 빨리 나가지 않았다.  잡다한 주변 사정이 있기도 했지만 책이 나를 잡아 끄는 매력이 생각만큼 깊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읽다가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먼저 보았다.

그리고 그 책을 다 보았으니, 다시금 이 책으로 돌아왔는데, 책이 얇으니 아주 오래 걸린 것은 아니지만 기대치보다 느린 독서가 되어버렸다.  이유가 뭐냐고?  재미가 없었으니까 그렇지..ㅡ.ㅡ;;;;

몇 가지 놀란 점이 있다.  작가가 내가 짐작했던 것보다 젊다는 사실.  와우, 젊은 나이에 엄청 유명해졌네... 라며 감탄 한마디 했다.

아마도 이 책이 소설이 아니라 에세이집이었기 때문에 나랑 잘 안 맞는 것일 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 수필류를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아주 잘써진 수필들도 있지만, 보통은 그 사람의 잡다한 신변이야기, 그 사람만의 특별한 깨달음을 왜 내가 굳이 읽고 공감해 주어야 하는가... 라는 딴지부터 생기기 때문이다. 

소설책은 다르다.  그건 허구니까.  작가의 생각에 동의는 못해도 그냥 '이야기'로 치부하면 되는데, 에세이는 때로 화가날 때가 있다.  아니 별로 대수롭지도 않은 이 이야기를 왜 전 세계 사람들이 읽고 있을까...라는 한숨.

물론, 그의 팬이 많고, 그의 작품에 열광하는 팬들이 있을 터이니, 나의 이 고약한 평가는 너무 잔인할 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궁합이 안 맞았다는 소리.  사실 난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이 가장 궁금했었으니까.(읽어보지 못했으니 그 작품이 어떨 지는 모르겠다.  난 소설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에세이인가???)

이 책은 지극히 평범했다.  '희극'같은 내용은 고개 주억거리며 공감도 하고 괜찮네... 하고 중얼거리기도 하지만, 몇몇 작품들은 이게 뭐야.ㅡ.ㅡ;;; 라는 표정이 되기 일쑤였다.  그림을 소재로 한 내용들은 해당 화가의 작품을 알지 못하니 '검색'이라는 작업이 필요하거나, 아니면 무시하고 그냥 읽기라는 작업(?)이 필요했다.  안 그래도 불만이 많았는데 뭐 이렇게 귀찮게 해? 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고 말았다.

나의 결론은, 이 책은 보통의 팬들에게 어울릴 책이다.  이미 그의 스타일을 알고, 그 스타일을 즐기며 볼 수 있는 사람이 이 책을 재밌게 소화할 듯 하다.  나같은 독자는, 영 찜찜한 기분을 가지며, 내가 갖고 있기도 그렇고, 선물로 줘도 별로 안 기뻐할 것 같다는 계산을 하며 '표지만 예쁜' 이 책을 난감하게 바라보아야 하니까.

덧글, 중간 중간 유명한 명언이나 격언들이 등장하는데, 그 문장들은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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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채 2006-09-13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통씨 책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접해보셨다면 그런 생각 충분히 들 것 같기도 해요.
저는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읽으면서 무릎을 쳤고 <여행의 기술>을 읽으면서 완전 반했으며, (그렇다고 저 역시 빠른 속도로 읽진 못했습니다. 보통씨 책은 음미하면서 사색하면서 읽는 맛이 있지요^^) 그 이후로 그가 쓴 책은 다 읽어봤는데, <키스하기 전에 하는 말들>빼고는 별5개중 별4개 이상 이었습니다.
마노아 님과 보통씨의 첫 만남이 좀 핀트가 안맞긴했지만, 소개팅을 해도 3번은 만나야 그 사람이 나랑 맞는지 안 맞는지 알 수 있지 않을까요?
개인적으론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꼭 읽어보셨음 합니다.
그리고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은 제목때문에 소설이라고 생각하신 것 같은데, 원제 <철학의 위안>정도로 해석되는 제목으로 나왔구요. 우리가 고리타분하게 생각하는 철학을 통해 삶의 위안을 얻는 방법들을 재미있는 구성방식을 통해 쓰여져 있습니다. <불안>이라는 책과도 괘를 같이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불안>역시 불안에서 벗어나는 방법들을 병렬적 형식으로 서술되어 있거든요. ^^

마노아 2006-09-13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제 결론이 보통의 팬들에게 매력적일 것 같다는 거였죠. ^^ 궁합이 안 맞았어요. 다른 책을 먼저 보았더라면 이 책도 즐겁게 보았을 텐데요. 추천하는 책은 읽어볼게요. 저도 이렇게 쫑내기엔 뭔가 찜찜했거든요. 감사해요^^

달빛푸른고개 2006-09-27 0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개 책을 읽고 리뷰 쓰기(자신의 궤적에 대한 기록이라 의미가 있긴 하지만, 적잖은 공력이 필요할 땐 '이 시간에 다른 책 읽지' 라고 생각하는 갈등도 있겠죠) 시점에 괜히 남들 글을 읽어보는 경우는, 내 판단을 객관화시켜보자는 생각이겠죠.(말이 길다) 그저 죽 읽어보는데 '보통'의 한계는 아닐지라도 이 '책'에 대해서는 가장 공감하는 리뷰였습니다.

마노아 2006-09-27 0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식(?)으로 리뷰를 쓰려고 하지만, 간혹 날림으로 리뷰 쓸 때도 꽤 있었는데 순간 뜨끔했습니다. 더 열심히 써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2006-09-27 00: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노아 2006-09-27 0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엇, 속삭이신 님^^ 방금 님 서재에서 놀고 있었어요~ 굿나잇입니다~ ^^
 
동물원에 가기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6년 8월
구판절판


시도가 없으면 실패도 없고, 실패가 없으면 수모도 없다. 따라서 이 세계에서 자존심은 전적으로 자신이 무엇이 되도록 또 무슨 일을 하도록 스스로를 밀어붙이느냐에 달려 있다. 이것은 우리 스스로 갖고 있다고 상상하는 잠재력에 대한 실제 성취 비율에 의해 결정된다.

자존심=이룬 것/내세운 것-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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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벌이의 지겨움 - 김훈 世設, 두번째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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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이란 작가를 알게 된 것은 충격이었다.  무심코 집은 “칼의 노래”에서 받은 전율은 오래도록 잊혀지지가 않았다.  그래서 그후로 누군가에게 책 추천을 부탁 받으면 영순위로 튀어나오는 저자 중 하나가 되었다.  소설로 처음 만났지만, 작가 김훈은 소설보다는 에세이를 더 많이 쓴 작가다.  그의 출신(?)이 기자다 보니깐, 그가 쓴 글은 허구보다는 사실에 기반한 것들이 더 많았다고 할 수 있겠다. (단행본으로 생각하면 소설류가 많아지고 있다.)  


그의 특징을 생각해 보면, 일단 짧고 강렬한 어투가 먼저 떠오른다.  문체에서 이토록 선명한 인상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까지 했다.  그의 목소리는, 크지 않지만 힘이 있다.  그래서 깊이 각인된다.  쉬이 지워지지 않을 강한 인상을 남겨주기에 여운도 길다.  어찌 보면 굉장히 고압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그 문장에서 이만큼의 매력을 느끼는 것은 ‘군더더기’나 ‘욕심’이 보이지 않는 까닭일 것이다.  애써 문장을 화려하게 빚지도 않고 공들여 다듬지도 않는다.  그리고 그것이 그의 문체의 매력인 듯하다. 


밥벌이의 지겨움은 한층 더 그의 내면 세계로 들어가는 느낌을 주었다.  그의 코 앞까지 다가가서 속 이야기를 듣고 있는 듯한 기분.


꽤나 자주 냉소적으로 말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가 인간과 사물, 자연을 바라보는 시각은 기본적으로 따뜻하다.  그래서 아무리 차갑게 내뱉어도 밉지가 않다.  그리고 일방적으로 사람들이 그르다 하는 것도 그는 긍정한다.  그의 긍정의 속울음도 깊고 따뜻하다.  그래서 나 역시도 다시 생각하게 된다.  그렇게 곱씹다 보면 그가 쌓아온 인생의 시간이 보여주는 삶의 자락이 느껴지는 것 같아 조금은 숙연해지는 마음까지 든다.


굉장히 멋진 작가를 만났다는 행복감에 미소가 지어졌다.  굳이 소설이 아니라 이렇게 에세이 형식이라도, 더 많은 그의 글을 만나고 싶다.(물론, 난 아직까진 그의 소설이 더 매력적이다.)  아마도 그는 욕심이라고 할지 모르겠다.  그래도 독자는 여전히 욕심을 부리련다.  그건 멋진 작품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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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랑 닮은 사람에게 주고 싶은 책
이삭 지음 / 바움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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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참 맘에 들었었다.  작가 이름도 예뻤다.  표지의 질감도 좋았고 뚜껑 열기 전엔 대체로 다 좋아보였다.  하지만 그런 건 다 부수적인 것이고 결국에 중요한 것은 내용이다.  내용.

이 글은, 그냥 좋을 법한 이야기 모음집! 정도로만 보인다.  그 좋을 법한 이야기도 참신하다거나 찡하다거나, 뭔가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는 것이 아니라, 어디선가 들었음직한... 조금 감동이 있을락 말락 하지만 크게 동하는 무언가는 엄청 부족한 정도의 수준이었다.

정말 "나랑 닮은 사람에게 주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런 '기획'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 같은 인상.

사실, 기획용 책이 너무 많다. 요새는 제목이 좀 다변화된 편이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어떤 책이 유행하면 그 책의 제목을 본뜬 비슷한 제목의 책이 엄청 많이 쏟아졌었다.  이 책도 그 홍수에 기승해 같이 밀려 온 기획책이 아닌가 싶다.

별 두개 평점을 줄 때는 늘 작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긴 하지만, 솔직히 나로서는 이런 종류의 책을 주고 싶지도 받고 싶지도 않다.  '성의'가 없어 보인다.   당연히 개인차가 존재하는 거지만.(강조하지만 내겐 그랬다고...;;;;)

이 책의 시리즈로 "나랑 닮은 친구에게 주고 싶은 책"도 있던데 그 책은 어떨 지 모르겠다.  그냥 나는 모른 채 지나가련다.  별로 안 궁금하다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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