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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두 딸의 발칙한 데이트
정숙영 지음 / 부키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책을 받아들고 만화인 줄 알았다. 표지의 분위기가 딱 그랬는데 아니었다. 알고 보니 작가 정숙영이 엄마와 동생과 함께 가진 감칠맛 나는 데이트 기록이었다.
우연과도 같이 시작된 엄마와의 데이트. 그 좌충우돌 이야기를 아주 맛깔스럽게, 때로 조금은 콧날 시큰하게, 그리고 배꼽 잡고 웃을 만큼 재밌게 풀어쓴 이야기다.
작품 속 어무이께서는 무척 까탈스러운 입맛을 갖고 계시다. 너무 자극적이거나 조미료가 듬뿍 들어갔거나 향이 너무 강하거나 혹은 너무 기름진 음식은 모두 퇴짜를 놓으신다. 이런 걸 돈주고 사먹냐고 타박을 주는 거면 강도가 약한 것이고 사장 나오라고 할 수 있는 무대뽀 정신도 갖고 계신다.
그런가 하면 몹시 쿨한 면도 갖고 계셔서 아들 군대 간다고 우울증 걸리는 법 없고, 딸내미 외국 여행 떠나는 길에 걱정은커녕 속시원하다고 하시며 선물 꼭 사오라는 말을 잊지 않으신다.
두 딸은 어떤가 하면, 큰 딸은 글쟁이고 작은 딸은 영화를 전공한 음향 연출가이다. 두 딸은 꽃미남에 함께 올인하며(이는 엄마로부터 이어받은 유전자일 가능성이 크다.) 엄청난 대식가이고 또 무신경함의 극치를 달리기도 한다.
어머니께서 느즈막히 반찬 가게를 시작하시면서 가족들이 함께 모이는 시간이 줄어들고, 어머니께 모처럼의 즐거운 시간을 선사하기 위하여 시작된 작은 데이트가, 한달에 한 번씩 열리는 월례 행사가 되었고, 나름 시행착오를 많이 겪긴 했지만 서로를 향해 맞춰가기도 하고 닮아가기도 하며 익숙한 거리를 만드는 소중한 시간이 되어버렸다.
어머니께 세계 여행은 못 시켜드리고 있지만, 세계 '맛' 기행은 시켜드리겠노라며, 각 나라의 특징을 잘 담은 맛집을 저렴하게 이용하는 노하우를 보여주며 책은 전개가 된다.
어머니와 함께 오만석이 출연하는 뮤지컬도 보고, 맘마미아를 보려다가 실패하고 '아카펠라' 공연에서 오히려 대박 만족을 느끼고, 또 신실한 불자이신 어머니와 함께 연등 행사를 같이 즐기며 행복한 시간을 보낸 추억들이 소복하게 담겨 있다.
두 딸이 메신저를 통해서 나누는 인터넷 구어체가 피식피식 웃게 만들었고, 어머니의 타박성 칭찬 멘트도 우리네 어머니를 떠올리게 하여 슬며시 웃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별 거 아닌 이야기였다. 헌데, 그 '별거 아닌' 이야기가 특별해진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엄마와 함께 외식을 하면 비싼 밥 먹을 거 뭐 있냐며 집에서 드시자는 울 엄니. 어쩌다가 고궁 나들이 한 번 가면 그 꽃구경에 온통 정신이 팔려 다리 아픈 것도 잊는 엄니. 아주 가끔 집 뒤쪽으로 있는 국립공원 약수터에 같이 가드리면 역시 신바람 나는 엄니... 그거 모두 별거 아닌데... 사실 잘 못한다. 그렇게, 불효녀는 아주 가끔의 선심으로 효녀인 척 하고 살았다. 부끄러운 노릇이다.
이 책의 저자도 하는 그 데이트... 나도 좀 따라해 보아야겠다. 좋은 영화 있음 같이 보고, 맛난 음식 알게 되면 모시고 가서 대접해 드리고, 크게 표 안 나도 마음이 따라가는 그런 시간을 함께 해야겠다. 함께 나눈 시간이 서로에게 자랑거리가 될 수 있는 우리가 되게 말이다. 책에서 소개된 맛집, 나도 요긴하게 써먹어야지....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