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청한 편지가! 시공주니어 문고 2단계 71
황선미 지음, 노인경 그림 / 시공주니어 / 201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동주는 헐랭이라는 별명이 싫다. 작고 마른 체격의 동주는 키가 쑥쑥 자라고 발도 크게 자라고 변성기도 어여 왔으면 싶다. 하지만 현실의 동주는 245신발에 억지로 220 발을 밀어넣고 넘어지지 않으려고 애쓰며 걷는 아이일 뿐이다. 단짝 친구 마재영은 마뚱이라는 별명이 싫다. 호리호리 늘씬한 몸매를 유지하고 싶지만 현실 속의 재영이는 경도 비만 판정을 받은, 간식거리를 늘 입에 달고 사는 뚱뚱한 친구인 것이다. 그래서 그 둘은 둘다 축구가 싫다. 그런데 하필 어린이날 행사에 4학년은 축구 시합을 하게 되었다. 작은 학교인지라 전교생이 선수로 뛰어야 하는 그런 상황에서 차마 축구가 싫다, 혹은 못한다고 말할 용기도 없다.

 

어린이날 함께 무인도로 같이 가출하자고 속삭이고 있던 와중에 동주의 온 신경을 곤두서게 하는 일이 생겨버렸다. 같은 반의 키큰 여자 아이 민영서가 호진이에게 보내는 편지를 똑같은 가방을 가진 동주에게 잘못 보낸 것이다. 이 '멍청한 편지가!' 동주를 지나치게 신경 쓰게 만들었다. 이게 뭔가 싶어 뜯어본 편지에는 영서의 비밀 이야기가, 그리고 좋아한다는 고백까지 같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이미 뜯었으니 원상복귀가 되지 않고, 그렇다고 그 상태로 돌려주는 것도 마뜩치가 않다. 그런 것도 모른 채 영서는 자신의 편지가 배달사고가 난줄도 모르고 있으니 이 얼마나 난처한 일인가!

 

비밀을 간직하는 일은 보통 일이 아니다. 게다가 당사자가 아닌 어처구니없게 끼어들게 된 비밀은 더 복잡한 법! 동주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기어이 사고를 치고 만다. 영서가 오해를 안 할 수 없는 상황! 본의 아니게 남의 애정전선에 끼어들었고, 또 본의 아니게 방해물이 되었으니 이동주의 고민은 끝이 없다.

 

밀리언셀러라는 사실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작가님의 필력은 이미 충분히 인정받은 바! 작품은 진짜 열한 살짜리 어린이들의 눈높이와 입말을 그대로 사용하여서 현실감이 높다. 이미 변성기가 오고 있는 친구들을 부러워하며, 하룻밤 사이에 훌쩍 커서 꼬맹이 신세를 벗어나고픈 마음도 사실적으로 그렸다. 2차 성징기가 오면서 예민해진 여자 아이의 마음도, 또 공정한 척하면서 제가 가진 한줌밖에 되지 않는 권력을 남용하는 못난 녀석도 눈에 그려지듯이 표현해냈다. 어린 아이들의 세계이지만, 그 안에서도 세력과 파벌이 형성되고 나름의 공정한 룰을 지키려는 의지도 보이고 또 얼마든지 제 감정을 드러내며 적극적인 표현도 가능한 똑부러진 아이들이 있다. 어른들만큼 고민도 하고 반성도 하고, 책임도 지려는 모습들이 이 아이들의 그다지 멀지 않은 미래를 보는 것 같아서 마음도 훈훈하다.

 

번지수를 잘못 찾아온 멍청한 편지였지만, 결국 그 편지 덕분에 누군가는 황홀한 첫 경험을 하게 된다. 그렇게 한걸음 더 성숙해지고 세상을 알아간다. 열한 살짜리 아이들에게도 얼마든지 가능한 이야기이다.

 

마침 열한 살 조카는 아직 변성기도 한참 남은 것처럼 앳되어 보이지만, 머잖아 짝사랑 내지 첫사랑의 열병을 앓으며 그렇게 불쑥 자라고 말 것이다. 벌써부터 그날이 섭섭하게 느껴지고 또 기다려지기도 한다. 조카에게 이런 일이 생기면 조카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사뭇 궁금하다. 멍청한 편지가! 하며 투덜거리다가도, 또 가슴이 콩닥콩닥 뛰어서 근질거리는 입을 어찌할까 고민하고, 또 상대의 마음을 다치지 않게 하려고 발을 동동 구르기도 할 테지. 하하핫, 상상하는 와중에 조카가 여자친구 만드는 게 내가 남자친구 만드는 것보다 더 빠르지 않을까 싶어 갑자기 시무룩해진다. 여하튼! 황선미 작가의 신작 '멍청한 편지가!'는 초등학생 아이의 눈높이에 맞추어 생생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힘이 있다. 들여다보는 이 어른 역시 즐겁기 그지 없다. 내게는 멍청하지 않은, 번지 수를 제대로 맞춘 편지가 어서 도착해야 할 텐데...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온과 마법사 압둘 카잠 노란상상 그림책 1
안젤라 맥앨리스터 지음, 김경연 옮김, 그레이엄 베이커-스미스 그림 / 노란상상 / 2010년 5월
절판


표지를 열면 나오는 첫 그림이다. 금빛이 빛나는 것이 정말 마법의 세계에 들어간 기분이다. 게다가 저 하얀새! 마술사들에게선 빠지지 않는 아이템이 아닌가.

이어서 뒷장으로 넘어가면 검은 배경에 "아이들이 있는 곳, 그곳이 낙원이다."
라는 문구가 나온다. 어쩐지 뭉클해진다. 몹시 이상적인 말이긴 하지만, 그 자체로는 진리로 보이는 문장!
이제 본문으로 가보자.

레온은 친구들과 함께 마술을 보러 갔다.
서커스 공연장 같은 천막이 보인다.
뒤따라온 친구들은 마술 같은 거 믿지 않는다고 큰소리를 친다.
다 속임수라고 비아냥거리듯 말하기도 했다.
여자 아이인 리틀모는 시작도 하기 전에 실망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레온은 이 친구들이 크게 놀랄 거라는 걸 의심하지 않는다.
"마술은 마법이야. 믿어 봐!"
믿는 자에게 복이 있으리니... ^^

불이 꺼지고 황금빛 장식에 잔물결이 일더니 커튼이 천천히 열렸다.
커튼 사진은 찍지 않았는데, 보라빛이 도는 푸른 천과 금빛의 장식이 아주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펑!' 소리와 함께 세 명의 곡예사가 공중제비를 넘으며 무대 위로 내려왔다. 곤봉이 휙휙 날아다녔지만 결코 땅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곡예사들이 재주를 부린 것이다. 관중들은 환호했다.

희미한 조명 속에 손풍금이 울렸다. 손잡이가 돌아가지만 손잡이를 돌리는 손은 보이지 않는다.
책날개를 펼칠 수 있게 편집이 되어 있는데, 접혔던 부분을 펼치면 마치 어둠 속에서 마법이 펼쳐진 것처럼 곡예를 부리는 온갖 인형들이 환상적인 느낌의 소품들과 함께 등장한다. 그림을 어떻게 그린 것인지 모르겠다. 콜라쥬 기법으로 만든 것인지, 하여튼 엄청 화려하고 근사한 분위기이다. 이 책 자체가 마법이 아닐까!

손풍금의 연주가 조용해지자 드디어 주인공 레온이 등장한다.
보랏빛 연기가 구름처럼 무대를 꽉 메웠다.
그리고 마술사 압둘 카잠이 나타났다. 그의 이름을 표시한 글씨조차도 남다르다.
재밌는 것은 곡예사들의 현란한 몸짓보다 글자가 나오는 부분의 프레임이 더 마술쇼처럼 보였다. 그래픽의 느낌도 나는 것이 마치 3D 안경을 끼고 애니메이션을 보는 기분이다.
레온이 얼마나 흥분했을 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아무 것도 믿지 말라면서 무엇이든 믿으라고 말하는 압둘 카잠!
그의 선문답 같은 말이 마술이든 마법이든 뭐든 만들어낼 것처럼 보인다.
그의 소매에서 종이꽃이 나왔고, 비단 스카프의 색이 변했고, 하얀 손수건들은 비둘기가 되었다.
여기에 눈이 홀리지 않는다면 그 사람의 심장은 톱밥으로 만들어진 것일 게다.
마법 상자 속으로 들어갈 자원자를 찾았을 때, 레온이 번쩍 손을 들었다.
겁도 없이 성큼성큼 상자 안으로 들어가는 레온! 모험에는 용기가 필요한 법!

단지 종이에 네모난 구멍이 뚫려 있을 뿐인데, 그 바람에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연결해 주는 통로처럼 보이는 효과가 나타났다.
신비로운 곳으로 떨어진 레온. 그 레온을 마중 나온 소년이 있다.
소년은 이곳을 '사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니까 저기와 여기의 사이라는 말이다.
공간의 이름조차도 환상적이다.
객석에 앉아 있을 때보다 더 멋진 광경들이 연출되었다. 마술 양탄자라도 탄 듯 레온은 신나게 '사이' 속 세상을 즐겼다.
마법과 마술을 믿은 대가라고나 할까.

다시 객석으로 돌아온 레온. 그 사이 이곳에서는 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지만 상기된 표정의 레온을 맞이하는 친구들 역시 이제 더 이상 마술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들 역시 마술을 뛰어넘어 마법을 경험한 사람같은 얼굴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은 얼마나 신났을까.

사실 내용보다는 그림이 엄청 환상적이어서 더 먹고 들어간 작품이다. 동심이 살아있는 아이들이라면 더 신나게 이 작품을 만날 수 있으리라.
글쓴이와 그림 작가가 다른데, 그림 작가분의 다른 책은 또 없는지 찾아봐야겠다. 몹시 매혹적이다. 금붕어2마리와 아빠를 바꾼 날의 작가 데이브 맥킨을 떠올리게 한다. 좋은 작가를 만나게 해준 행운의 그림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에게도 사랑을 주세요 고 녀석 맛있겠다 시리즈 5
미야니시 타츠야 글.그림, 허경실 옮김 / 달리 / 2011년 12월
장바구니담기


힘이 센 공룡의 대표명사 티라노사우루스!
공룡이라면 자신처럼 힘이 세야 한다고, 그게 최고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티라노사우르스!
약한 이들은 겁쟁이라고 놀렸고, 자기 힘만 믿고 친구들을 거침 없이 괴롭혀 왔다.

모두들 티라노사우르스를 멀리 하고 두려워 했다.
하지만 티라노 역시 시간 앞에서는 고개를 숙여야 하는 법!
나이 먹고 힘이 떨어지자 작은 공룡들에게도 조롱을 받는 입장이 되고 말았다.
꼬리를 덥석 물리고 말아 아팠지만 늙고 힘빠진 티라노사우르스를 이제 아무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더 이상 무리 속에 있지 못하게 된 티라노사우르스는 정처 없는 여행을 떠났다.
외롭고 슬프고, 물린 꼬리가 아프기까지 했지만 스스로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그렇게 지쳐 잠이 들었던 티라노사우르스를 누군가가 깨웠다.
세상에나! 평소 맛있게 먹어치웠던 트라케라톱스가 아닌가!
습관대로 냉큼! 삼키고 싶었지만 새빨갛게 부어오른 꼬리 때문에 비명부터 나왔다.

작고 어린 트라케라톱스는 다쳐서 낑낑 대는 이 커다란 공룡의 정체도 모른 채 귀여움을 떨었다. 상처난 꼬리를 어루만져 주기도 했다. 커다란 공룡 아저씨가 안아 주니 신이 난 트라케라톱스는 친구들에게 새롭게 사귄 이 아저씨를 소개해주기로 했다.
어린 트라케라톱스들은 이 낯선 공룡을 환대해 주었다. 한꺼번에 포식할 수 있다고 좋아했던 티라노사우르스는 졸지에 작고 어린 친구들이 한꺼번에 많이 생기고 말았다.

어린 트라케라톱스들은 상처 입은 공룡 아저씨에게 자신들이 좋아하는 빨간 열매를 따주기 위해서 작은 머리를 나무에 콩콩 박았다. 하지만 나무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힘센 티라노사우르스가 머리를 쾅 박자 열매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아파서 눈물이 났지만 좋아서 환호하는 어린 친구들 앞에서 티라노사우르스는 아픈 내색도 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아픈 몸과 달리 마음은 감동으로 따뜻하게 차올랐다. 평생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었다.

그런데 이때! 불청객들이 등장했다. 기가노토사우루스 두 마리가 눈을 번뜩이며 다가온 것이다. 처음에 티라노사우르스가 그랬던 것처럼 어린 트라케라톱스들을 맛좋은 먹잇감으로 보면서 말이다.
졸지에 티라노사우루스는 트리케라톱스들을 지키기 위해서 온몸을 바쳐 싸우게 되었다.
힘이 최고라고 믿어온 일생을 뒤집는, 숭고한 자기 희생의 순간이 온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에야 티라노사우루스는 깨달았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이라는 것을....

시간이 흘렀다. 어린 트라케라톱스는 어엿한 아빠가 되었다.
아이들과 함께 숲에서 빨간 열매를 먹고 있을 때 기가노토사우루스 두 마리가 슬금슬금 다가왔다.
자신보다 체격이 큰 공룡들이었지만 어린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서 트라케라톱스는 온 힘을 다해 버텨냈다. 그 옛날 티라노사우루스 아저씨가 자기와 친구들을 지켜줬던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사랑은 또 다른 사랑으로 이어지고 전염이 되고 계승되었다.

트라케라톱스는 어린 아이들에게 힘이 최고가 아니라 사랑이 최고로 중요하다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주었다. 이제 아이들도 자라가면서 그 사랑을 몸으로, 마음으로 돌려줄 것이다. 그 싹이 이미 자라고 있다. 아이가 말했던 것이다.
"저에게도 그 사랑을 주세요."

'고녀석 맛있겠다' 시리즈 다섯 번째 이야기다. 첫번째 이야기가 가장 감동 깊었지만 이어지는 시리즈도 모두 메시지가 훌륭해서 여러 차례 읽게 된다.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중요한 가치들을 말해주곤 하는 미야니시 타츠야의 작업에 늘 박수를 보낸다. 사람은 등장하지 않지만 사람 사이의 이야기를 힘주어 이야기한다. 그 깊은 울림을 오래오래 되새기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올가의 편지 창비아동문고 262
송마리 지음, 문지후 그림 / 창비 / 201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7편의 동화가 실린 동화집이다. 모두 일정 수준 이상의 감동과 재미를 보장해 주는데 그 중에서도 표제작 '올가의 편지'가 가장 마음에 남는다. 몽골에서 막 학교에 입학한 소녀가 한국에 일하러 간 아버지께 편지를 쓰고 있다. 엄마가 처녀적부터 탔던 말이 어느 날 집을 나갔고, 엄마가 그 말을 찾으러 떠나서 돌아오지 않고, 그 엄마를 찾으러 삼촌마저 떠난 상황에서 아이는 학교에서 한국어 공부를 하던 동무와 만나자마자 헤어지게 된다. 아이의 아버지도 한국에 일하러 가셨는데, 산재를 당해서 추방당한 나머지 아이의 공부가 끝이 나버렸던 것이다. 몽골이라는 이국적 풍경의 삶의 모습도 담아내었고, 막 학교에 들어간 아이의 설렘, 말을 찾아 나선 가족들에 대한 걱정과, 한국에서 점점 늘어나고 있는 외국인 근로자들의 모습까지 욕심껏 담아내었다. 아이의 입을 빌려 이야기를 진행시키기 때문에 애처로움이 더 짙게 묻어난 것으로 보인다. 생각할 거리가 많은 작품이었다.

 

두번째 이야기 '엄마는 울지 않는다'는 태평양을 넘어 파라과이로 독자를 초대한다. 한국인과 재혼한 엄마가 한국에서 파라과이의 아들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축구를 무척 좋아하는 나라라는 것, 카톨릭이 지배적인 나라나는 것 등을 작품 속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내었다. 아이가 한국에서 만나게 될 이복 동생에 대한 궁금증과 기대감까지, 또 울고 싶지만 꾹 참아낸 마음을 결국엔 울음보로 떠트리기까지를 극적으로 잘 표현했다.

 

세번째 작품 '일봉이'에서는 유소년 국가대표 축구선수가 된 아이가 북한 선수 일봉이와 경기장에서 맞닥뜨린 이야기를 담고 있다. 머나먼 몽골과 파라과이에 이어, 이번엔 가깝지만 심리적으로 더 멀어져버린 북한 이야기까지. 정말 작가님의 관심과 열정의 눈길이 못 미치는 곳이 없다. 짧은 단편들이지만 모두 드라마틱하게 전개되는 것이 마치 영상으로 보는 것처럼 눈앞에 이야기가 펼쳐진다.

 

2부로 넘어가면 운전면허시험을 229회만에 합격한 박끝내 할머니의 십전팔기 면허시험기가 나온다. 은근과 끈기를 넘어 도전과 열정의 표상으로 제대로 군림하셨다. 면허 없는 내가 문득 죄송할 지경으로...

 

다섯번째 이야기 '커트'는 장애 엄마를 둔 아이가 새아버지와 이복 동생이 생기게 되면서 겪게 되는 마음의 갈등에 대해서 담아냈다. 엄마는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시는 분이었다. 아이는 어려서부터 잘 울지 않아서 순둥이란 별명을 가졌지만, 그건 아이가 순해서가 아니었다. 울어봤자 소용없다는 걸 알아버린 까닭이었다. 이 부분이 참 먹먹했다. 지나치게 일찍 세상을 알아버린 아이의 마음을 달래주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그렇지만 그건 새롭게 만들어진 따뜻한 가정에서 해줄 몫이다. 다행히 새아버지와 여동생은 아주 좋은 사람 같으니까.

 

다음 이야기는 '매~애 매~애'라를 독특한 제목이다. 짐작했듯이 염소 울음 소리다. 해녀였던 엄마가 바다가 거칠었던 날 물질을 나갔다가 사고로 돌아가시고, 엄마가 가시던 꽃섬에 뗏목 만들어 다녀오려던 아이가 이웃집 오동나무에 톱질하다가 사단을 낸 사건이 이야기의 배경이다. 서로 선장하겠다며 다투던 아이들의 고만고만한 모습들이 귀여웠지만 딸 시집갈 때 장농해주려던 오동나무 주인은 상처낸 나무가 또 얼마나 아팠을까. 나무에서 수액이 나오는 것이 상처를 치료하려는 자구책이라는 것에 신비감을 느꼈다. 자연 앞에 인간은 늘 작고 겸손해야 할 존재임을 다시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마지막 이야기는 '나.를.불.렀.니?'라는 아주 짧은 이야기다. 놀아주지 않는 아빠가 신문보다가 잠이 드시자, 신문의 글자를 오리며 놀던 아이가 마치 글자와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이 모든 것들이 이야기에 꿈과 생명을 불어넣은 작가의 모습이지 싶다. 작가님은 이제는 한국에서 쉽게 마주칠 수 있는 여러 가족들의 모습을 세계를 배경으로, 또 다양한 인물들의 입을 통해서 직간접적으로 소개하고 따뜻한 이야기들을 전한다. 짧지만 굵직한 메시지가, 진한 감동들이 있다. 

 

나는 이 책이 '몽골'을 소재로 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 관심을 가졌는데, 별점이 하나도 없어서 더 궁금했다. 좋은 책인데 먼저 읽고 별점을 줄 수가 있어서 기쁘다. 더 많은 독자들이 이 책을 만났으면 좋겠다. 요새는 유아용 그림책보다 이런 종류의 아동문고에 관심이 더 간다. 조카들이 자라고 있어서 그런가 보다. 아무튼 그림책도 동화도 모두 반가운 친구들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순오기 2012-05-22 0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창비에서 상받은 책이군요.^^
세계를 무대로 펼쳐보였지만 사람 사는 세상은 어디나 다르지 않은가 보네요.

마노아 2012-05-22 00:49   좋아요 0 | URL
창비에서 받은 책 맞아요. 잘 고른 것 같아 흐뭇해요. 사람 사는 세상, 정말 모두 비슷하네요.^^
 
할아버지의 이야기 나무
레인 스미스 글.그림, 김경연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주아주 옛날, 우리 증조할아버지가 태어났을 땐 컴퓨터나 휴대 전화는 물론 텔레비전도 없었던 시절!

농장에서 살았던 할아버지는 돼지도 치고 옥수수와 당근도 길렀대요.

닭도 기르고요. 나무로 표현한 할아버지의 닭이 아주 늠름해요. 마치 날개를 펼치기 직전의 공작새 같아요.

 

할아버지는 4학년 때 수두에 걸려 온몸에 물집이 생겼대요. 나무에 마치 앵두가 가득 열린 것 같은 모양새예요.

새도 빨간 열매를 입에 물고 있어요. 재치 넘치는 그림이죠.

 

할아버지는 학교에도 못 가고 집에 있어야 했답니다. 그때 비밀 정원과 마법사와 꼬마 기관차 이야기를 읽었대요.

할아버지 안에서 쌓이는 문화적 감수성은 이렇게 나무 가꾸기로 다시 탄생했겠지요? 멋진 재능이에요.

 

 

중학생이 되었을 때 좋아하는 여자 친구가 생겼답니다. 귀밑 머리 나풀거리는 앳된 소녀였을 거예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공부를 더 하고 싶었지요. 원예사가 되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세계대전이 일어나서 전쟁에 나가야 했답니다.

빨간 꽃잎같지만 저것은 피흘리는 전쟁의 참상을 떠올리게 하네요.

 

 

어느 날 작은 카페에서 만난 아가씨와 할아버지는 사랑에 빠졌어요. 어쩌면 그 카페 종업원이었을지도 몰라요.

두 사람은 전쟁이 끝나고 결혼했대요. 웨딩케이크로 분한 나무 케이크가 웰빙 녹차 케이크로 보여요.

두 분은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대요. 싸운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했지만 그건 할아버지 말씀이고요. 진실은 아무도 몰라요!

두분은 아들딸도 많이 두셨어요. 손주는 훨씬 많이 생겼지요. 증손자도 생겼는데 그게 바로 저예요.

저 속에서 월리를 찾아라!도 가능하겠어요.

 

 

증조할아버지는 기억력이 참 좋으셨어요. 지금은 많이 늙으셔서 밀집모자를 머리에 쓰고서도 찾게 되는 일이 생겼지만요.

하지만 괜찮아요,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정원이 모든 걸 기억하니까요.

이 정원은 할아버지 그 자체예요. 할아버지의 인생, 거기서 파생된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담겨 있어요.

 

그리고 아마도, 이 귀여운 증손자도 할아버지를 엄청 닮을 것 같아요.

이야기 정원의 이야기 숲은 앞으로도 계속 오래오래 푸르를 거예요. 대를 이어, 역사를 담아, 이야기를 품고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