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라도 백 개인 사과
이노우에 마사지 글 그림, 정미영 옮김 / 문학동네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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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과일 가게 앞에 사과 한 개가 놓여 있다.
그 앞을 지나쳐가는 많은 동네 사람들이 사과를 보고 한마디씩 한다.
쌩 하니 바삐 달려가는 남자를 보며 사과는 그 이가 회사원이라고 짐작을 했고,
사과가 어디서 자랐는지에 관심을 가진 아저씨들은 농부일 거라고 생각했다.
사과의 빛깔을 보며 감탄을 한 남자는 화가로 보였다.
누구나 자신의 관점에서, 자신의 관심사를 가지고 사과를 대했다.
사과 역시 그랬다. 자신을 보며 지나치는 사람들의 관심이 기분 좋아 보인다.

사과를 어떻게 담아서 팔면 더 나은 이문을 남길까 고민을 한 사람은 과일 가게 주인임이 분명하다.
아침에 먹는 사과가 금메달, 점심은 은메달, 저녁에 먹는 사과는 동메달이라고 병원에 오는 사람에게 알려주겠다고 한 이는 필경 의사 선생님이실 거다.
사과를 보고 어떤 노래가 만들어지나 떠올린 아가씨는 작곡가 언니다.
사과의 가격과 수량으로 문제를 만들어낸 이 분은 분명 수학 선생님!
그런데 사과 하나에 삼십 원하던 시절은 대체 언제인가요?
며칠 전에 배하나에 5,700원 하던 것 보고 좌절했는데.....;;;;;

온몸에 붕대를 동여맨 사람이 눈물을 떨구면서 사과를 보았다.
대체 어떤 사연일까? 누군가에게 '사과'를 하고 싶은 것일까?
그밖에도 경찰 아저씨와 목수 아저씨도 지나갔고
얼굴에 '개구쟁이'라고 써 있는 어린 친구들도 다녀갔다.
감을 싸 가겠다느니, 배를 먹겠다느니 말하는 것을 보니 이 친구들의 내일이 어떤 날인지 알겠다.

바로 소풍날!
여태까지 사과 한 알만 색이 있고 나머지는 모두 흑백 그림이었는데 아이들의 소풍 그림은 총천연색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배경을 보니 가을 소풍인가 보다.
사과는 옷에 쓱쓱 문질러서 크게 베어 먹는 게 제 맛이지.

이렇듯 하나지만 백 개도 될 수 있는 저마다의 사과.
백설공주도 떠오르고, 제사상도 떠오르고, 나로서는 무엇보다 '사과 하나'라는 그림책이 떠오른다.
둘 모두 유아와 어린이 친구들에게 추천할 만한 책이다.
이 책은 다현양의 초등 1학년 추천 도서다.
내일은 부활절을 기념하여 책을 선물해야겠다.
달걀과 함께 내밀면 더 좋으려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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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전설은 창비아동문고 268
한윤섭 지음, 홍정선 그림 / 창비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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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찰을 전하는 아이'를 몹시 재밌게, 그리고 감동적으로 읽었다. 그 책을 쓴 한윤섭 작가님의 작품이다. 이야기는 주인공 준영이네 가족이 득산리로 이사를 가면서 시작한다. 시골 할아버지 목사님의 뒤를 이어 목사님으로 부임한 아빠를 따라서였다. 도시 생활에 익숙한 준영이는 시골행이 반갑지가 않았지만 엄마와 아빠는 모두 즐거워하는 분위기다. 준영이에게도 한학기 동안 신나게 놀라고 하시는 통큰(?) 부모님!

 

여러모로 낯설고 익숙지 않은 환경에서 새 학기를 맞이한 준영이에게 담임 선생님은 집으로 가는 길에 친구들과 꼭 같이 가라고 하셨다. 축구를 하고 집에 가겠다는 친구들과 급작스럽게 친해지고 싶지 않았던 준영이는 혼자서 돌아가겠다고 했지만 친구들은 절대 절대 안 된다고 강조한다. 이 마을에는 전설이 있는데, 중학생이 되기 전까지는 절대로 혼자서 득산리로 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시작된 아이들의 이야기 보따리는 이야기 속 이야기로 재미와 오싹함을 함께 선사했다. 마을 사람들의 실제 이야기와 절반 쯤은 허풍과 과장으로 채운 이야기에 준영이는 잔뜩 긴장하고 만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혼자서 집으로 돌아갈 자신이 없다.

 

 

그렇게 준영이는 득산리에서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을 맞이한다. 복숭아꽃이 잔뜩 피어서 무릉도원을 연상케 했던 득산리는 흡사 에덴 동산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근사한 풍경을 자랑했다. 아이는 한달 만에 얼굴이 까맣게 타버렸고 체중도 부쩍 늘었다. 짐작하기에 무척 건강해진 혈색으로 변했으리라.

 

준영이가 가을을 눈치 채는 대목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어제까지는 분명히 여름이었건만 하룻밤 사이에 가을이 되어버린 것이다. 도시에서는 쉽사리 알아차릴 수 없는 계절의 변화를 아이가 한눈에, 그리고 온몸으로 체험했다. 그것만으로도 준영이의 시골 생활은 축복이고 은총이리라.

 

'아람 불다'라는 표현을 이 책에서 처음 만났다. 이런 관용구가 있구나. 덕분에 '아람'의 뜻도 찾아보았다. 밤이나 상수리 따위가 충분히 익어 저절로 떨어질 정도가 된 상태. 또는 그런 열매라고 사전에 나온다. 친구들은 밤나무로 유명한 돼지 할아버지네 집에서 밤 서리를 하면서 준영이에게는 망을 보게 한다. 할아버지는 도둑놈들이라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지만 아이들은 할아버지가 올해도 무사하신지 들러보는 거라고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한다. 그렇지만 할아버지도 끝까지 쫓아오지 않고, 아이들도 할아버지가 겉으로만 자신들을 쫓아낸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름의 공생 관계랄까.

 

그런데 준영이는 영 편치가 않다. 정말 정말 맛있는 밤이지만, 그 밤을 맛있게 먹는 것도 죄스럽다. 그러다가 어느 날 할아버지가 끝까지 쫓아오셔서 도망치는 것에 실패한 준영이는 할아버지의 예상치 못했던 면을 만나게 된다. 그리하여 새벽녘에 밤 떨어지는 소리를 듣게 되는 행운까지 얻는다. 가을 내내 아람 불었던 밤들이 새벽이슬에 미끄러져 낙엽 위로 떨어지는 소리는 누군가의 발소리처럼 들렸다.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신기한 소리. 세상에서 들어보지 못했던 아름다운 음악이었다. 준영이 느꼈을 황홀경을 독자도 조심스럽게 상상해 본다. 새벽의 빛깔과 밤알 떨어지는 소리의 조화라니... 게다가 그 과정에서 보여준 돼지할아버지의 온정은 또 얼마나 따뜻하고 인자하던가.

 

준영이처럼 독자도 득산리가 점점 좋아지려고 한다. 무척 시골스럽게 들리던 마을 이름도 점점 정감이 간다.

 

이야기는 마을에 초상이 나면서 대단원의 성장을 보인다. 막연히 상상하던 수목장이 무척 장엄하고도 숭고하게 느껴졌다. 나 죽으면 당연히 화장하면 된다고 여겼는데, 그 뼛가루가 이렇게 나무의 거름이 되어서 내가 이땅에 한줌이라도 좋은 일을 하고 갈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무로 다시 태어나는 삶이라니, 이 얼마나 시적인 일인가.

 

 

해가 바뀌어 득산리에 다시 봄이 왔다. 복사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에덴 동산 같고 무릉도원 같은 그 봄이. 그리고 학교에 전학생이 왔다. 일년 전 준영이가 그랬듯이 새 전학생도 마을의 전설에 푹 젖을 차례다. 얼마만큼 용감한 아이로 성장할지 자못 기대가 크다.^^

 

서울 아이가 시골에 가서 겪는 이야기라는 설정은 흔할 수 있지만, 우리 동네 전설은~ 하면서 마을의 오랜 이야기와 현재의 이야기가 잘 조화되어서 무척 신선하게 읽혔다. 계절이 변해가는 그 순간순간이 아름다웠고, 어린 준영이가 나름의 자존심과 용기를 키워가면서 마을에 적응해 가는 모습도 보기 좋았다. 그리고 어른은 어른이라는 생각에, 조금씩이라도 등장하는 마을의 인물들도 고마운 캐릭터였다. 어린이 친구들만 보기에는 아까운 작품이다. 두루두루 같이 읽고 함께 푹 빠질 멋진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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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3-03-25 0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리뷰는 못 썼지만, 정말 괜찮은 동화였어요~ 우리동네 전설도 떠오르고요.
사계절 삽화를 저렇게 모아놓으니 뚜렷이 비교가 되네요~ ^^

마노아 2013-03-25 08:32   좋아요 0 | URL
굳이 선호도를 따지면 편지 전하는 아이가 더 좋았지만 이 작품도 충분히 훌륭했어요.
어릴 적 우리 동네에 따라다니전 전설은 관련 건물과 개천이 사라지면서 이야기도 사라진 듯해요.
아쉬운 부분이에요.^^;;;
 
비밀의 강 - 2012 볼로냐 라가치 상 수상작 Dear 그림책
마저리 키넌 롤링스 지음, 김영욱 옮김, 레오 딜런.다이앤 딜런 그림 / 사계절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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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볼로냐 라가치 상 픽션 부문 명예상을 받은 '비밀의 강'이란 작품이다. 원작을 쓴 작가 마저리 키넌 롤링스는 1953년에 생을 마감했고, 이 작품은 사후 발견되어 1955년에 유작으로 발표되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60년 전 그때에 흑인 소녀가 주인공인 작품이 그려졌다는 게 놀랍다. 당연하지 않은 일이 당연하게 취급되던 시절에 작가 마저리는 몹시 앞서갔던 인물이지 싶다. 작가 정보를 보니 어릴 적에 아주 인상깊게 보았던 만화 영화 '아기 사슴 플랙'의 원작자이기도 하다. 중학교 때 이 만화영화 주제곡을 불렀다가 눈총 받았던 슬픈 기억이 떠오른다.ㅜ.ㅜ

초판본은 레너드 웨이즈가드가 그렸는데 흑인 아이의 얼굴색을 종이색으로 감추기 위해서 커피색 종이를 사용했다고 한다. 우회적으로 책을 출간하기 위해 노력한 것이다. 그 결과 이 판본은 1956년에 뉴베리 명예상을 받았다. 그리고 다시 반세기가 더 지나서 레오 딜런과 다이앤 딜런 부부의 환상적인 그림으로 재탄생했다. 지금 내 손에 있는 이 책으로 말이다.

플로리다 외딴 곳의 울창한 숲 속에 살고 있는 소녀 칼포니아는 '마차를 끄는 말'이란 뜻을 가진 버기 호스라는 이름의 강아지와 살고 있다.
자연과 어우러져 그야말로 자연스럽게 살고 있는 칼포니아는 어린 시인이다. 지저귀는 새와 친구가 되고, 화창한 햇살을 즐기며 노래를 부르는 칼포니아에게 근심과 걱정이란 단어는 몹시 안 어울리는 조합이다. 생각해 보면 나도 어릴 때는 머릿 속에 담겨 있는 생각들이 무척 단순해서 가끔 고민을 하지만 대체로 늘 즐겁거나 신기해하거나 재밌어 했다. 그러나 어른들이야 어디 그런가! 아버지는 좀처럼 물고기가 잡히질 않아서 가게를 문닫게 생겼다고 염려하신다. 작품의 배경은 세계대공황 즈음이다. 많은 사람들이 배고프고 힘들어하던 시절. 칼포니아는 어려운 시절이 어서 지나가서 모두가 즐겁게 지냈으면 하고 바랐다. 그 소망마저도 라임을 섞어 시로 뽑아내는 칼포니아! 시어가 되었던 꿀벌은 칼포니아의 곱슬곱슬 머리카락 속에 꽃처럼 장식되었다. 머리카락 속에 벌이 들어가 있다고 상상한다면 그건 호러인데, 그림 속의 칼포니아에게는 '예술 작품'처럼 어울린다.

칼포니아는 아빠의 얘기가 머릿 속을 떠나지 않았다. 아빠에게 큰 도움이 되고 싶지만 지금까지 칼포니아의 낚시 솜씨는 썩 훌륭하지 않았다. 상상력이 풍부한 칼포니아는 물고기의 마음으로 이입되어 무엇을 물고 싶을까 생각해 보았다. 특별하고 아주 예쁜 것들만 물고 싶다고 말하는 칼포니아. 이 아이가 어떤 작품을 만들어낼지 기대가 되는 순간이다.

칼포니아는 예쁜 분홍빛 주름 종이로 장미를 만들었다. 그리고 숲속 마을에서 가장 지혜로운 알버타 아주머니를 찾아갔다. 아주머니의 가게에도 손님이 보이지 않았다. 아빠의 말씀처럼 마을 전체가 어려운 게 분명하다. 아주머니의 머리 장식이나 벽에 걸린 그림과 장식에서 '눈동자'를 여럿 발견하게 된다. 지혜롭다 소문난 현자의 '혜안'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어쩐지 아메리카 원주민이 떠오르는 인상의 알버타 아주머니다.

아주머니는 큰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 '비밀의 강'을 소개해 주셨다. 어디 있는지 아무도 모르는 그 비밀의 강을 찾는 방법은 바로 '코끝'을 따라가는 거라고 놀라운 비법도 알려주셨다. 의심 많은 어른이라면 그런 게 어디 있냐고 흘려듣겠지만, 칼포니아는 의심 없이 비밀의 강을 찾아나선다. 고기를 잡으면 아주머니께도 드리겠다고 말하는 예의바르고 경우 있는 칼포니아! 정말 반듯하고 예쁘게 자란 아이다.

비밀의 강을 찾는 과정은 운명처럼 술술 풀렸다. 깡충깡충 뛰어다니는 토끼를 바라보느라 코끝이 돌아갔고, 그 길이 칼포니아가 가야 할 길이었다. 파란 어치가 참나무 가지 사이로 날아드는 것을 보는 바람에 또 코끝이 돌아갔고, 역시 칼포니아는 그 방향을 따라갔다. 그리고 마침내 찾아낸 비밀의 강!

엄청나게 큰 물고기들이 가득한 강물에 발을 담그면서 칼포니아는 충분히 양해를 구한다. 어려운 시절을 겪고 있는 우리 마을을 도와달라고. 이 아이의 마음처럼만 우리가 살아간다면 이 사회가 지금처럼 욕심 사납게 변하지 않았을 텐데...

칼포니아는 분홍 종이 장미를 낚시밥으로 사용해서 물고기들을 낚았다. 종이인 것은 중요하지 않다. 물고기들이 예쁜 것을 좋아할 거라고 생각해 낸 아이의 상상력이 예쁘고 당찰 뿐이다. 칼포니아는 배 한가득 물고기를 잡았다. 어째 분위기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된 것 같은 기분이다. ^^

이 많은 물고기들을 어떻게 집으로 갖고 갈 것인가. 칼포니아는 머리를 굴렸다. 뻣뻣한 실유카 이파리를 끈 삼아 물고기들을 낚싯대에 주렁주렁 엮은 칼포니아. 비밀의 강을 찾아올 때와 마찬가지로 코끝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갔다. 그러나 밤은 깊었고 칼포니아는 그만 길을 잃고 말았다. 그리고 맞닥뜨린 어마어마하게 큰 부엉이! 칼포니아는 공포 대신 부엉이에게서 굶주림을 읽었다. 마을이 어려운 것처럼 부엉이도 배가 고플 거라고.

기꺼이 물고기를 내어주는 칼포니아. 게다가 큼직한 놈으로 골라서 내놓았다. 착한 마음씨다.
부엉이의 날개를 보면 깃털 하나하나가 다시 또 부엉이의 모습을 하고 있다. 게다가 숲 속 나무들의 몸통에는 여러 얼굴들이 가득 담겨 있다. 반지의 제왕의 한 대목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딜런 부부의 환상적인 그림 솜씨가 제대로 빛을 발했다.

맛있께 물고기를 먹는 부엉이를 뒤로 하고 숲길을 걷는데 이번에는 커다란 검은 곰과 마주쳤다. 칼포니아는 곰도 배가 고플 거라고 여기며 가장 큰 메기 두 마리를 내놓았다. 이러다가 물고기를 다 잃게 되는 게 아닐까 걱정스러운데 칼포니아는 맛나게 드시라고 인사까지 하며 자리를 뜬다. 그리고 세번째로 마주친 것은 검은 표범. 표범에게는 메기를 세 마리나 주었다. 나눔의 장을 계속 마련했더니 이제 이 커다란 야성의 동물들이 무섭지도 않은가 보다. 담력이 보통이 아닌 칼포니아다. 이 와중에 시까지 읊어내는 정말 놀라운 칼포니아!

서둘러 집으로 가고 싶을 법하건만, 잃었던 길을 찾은 다음에도 칼포니아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알버타 아주머니께 먼저 간다. 정말 예의바르고 경우도 있고 도리도 아는 멋진 칼포니아!

이렇게 괜찮은 아이에게는 당연히 근사한 부모님이 계시다. 칼포니아가 잡아온 물고기를 내다 팔러 가신 아빠는 이웃들이 당장 돈은 없고 너무 굶주려서 기운이 없자 외상으로 물고기를 내주었다. 사람들은 물고기를 사가서 맛있게 먹고는 기운을 차려 열심히 일을 했고, 그 보수를 받아와서는 외상을 갚았다. 서로가 서로를 살피며 위해 주는 이 마음이 힘든 시절을 지나가게 만드는 힘이 되어주었을 게 분명하다. 그 씨앗을 뿌려놓은 것이 바로 칼포니아다.

어느 날 칼포니아는 강아지 버기 호스를 데리고 다시 비밀의 강을 찾아 나섰다. 그러나 아무리 코가 가리키는 대로 따라가도 비밀의 강은 보이지 않았다. 대체 어찌 된 일일까! 칼포니아는 알버타 아주머니께 비밀의 강의 소재를 다시 물었지만 아주머니는 비밀의 강을 찾을 수 없다고 잘라 말하셨다.
"얘야, 어떤 일은 딱 한 번 일어난 뒤에는 절대로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도 한단다."
이 말이 무척 인상적이다.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지만 언젠가는 오는 법이고, 한번 놓친 기회는 다시 잡기 어려운 법이다. 칼포니아는 그 기회를 잡았고, 그리고 다시 오지 못한다고 해도 속상해할 필요가 없었다. 알버타 아주머니는 비밀의 강이 마음 속에 있다고 알려주셨기 때문이다.

아주머니의 조언대로 눈을 감고 비밀의 강을 마음 속으로 찾아나서는 칼포니아. 역시 욕심부리지 않고 마음으로 강을 재차 찾아내는 칼포니아의 심성이 참으로 곱다. 이럴 때일수록 아이의 시짓는 감성이 잘 어울린다.

비밀의 강은 내 마음속에 있네.
언제든 갈 수 있는 그 강.
알버타 아주머니의 말은 모두 맞았지.
하늘에는 황금빛 물결이 너울너울
강에는 옥빛 물살이 출렁출렁
강, 강, 비밀 속에 감춰진 내가 사랑하는 강.

칼포니아의 마음 속에 자리한 비밀의 강이, 이 책을 통해서 독자들에게도 흐르게 되었다.
욕심 없는 마음으로, 자연의 위대함과 경이로움을 인정하며, 그리고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함께 추구하며 말이다.

초등학생이 읽는 그림책이라고 적혀 있지만 전 연령대가 함께 만족할 수 있는 그림책으로 보인다. 어린이들은 환상적인 이 책의 그림에 더 관심을 가질 것이고, 어른이라면 이 책의 철학적인 메시지들에도 큰 호감을 가질 것이다. 선물로 같이 따라온 엽서와 포스트 잇은 보너스다. 종합 선물 세트 같은 근사한 책을 만났다. 글이 해줄 수 있는, 그림이 해낼 수 있는 신비로운 영역에 독자도 발을 담가 보았다. 이 책은 선물이고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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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ra 2013-03-19 15: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책 재미있게 읽었어요 .글미도 너무 좋구요. ㅎㅎ

마노아 2013-03-21 12:40   좋아요 0 | URL
볼거리가 가득한 책이에요. 그림도 어찌나 싱싱해 보이던지요.^^ㅎㅎ
 
견우와 직녀 알이알이 명작그림책 9
셀린느 라빅네뜨 지음, 김동성 그림, 이경혜 옮김 / 현북스 / 2011년 11월
절판


참 좋아하는 김동성 작가님의 그림책이다. 그런데 얼라? 그림만 김작가님이고, 글을 쓴 이는 무려 외국인이다!
셀린느 라빅네뜨, 프랑스 작가분이시다. 이 작품을 의뢰한 프랑스의 출판사 이름은 '찬옥'인데 대표 엘렌 샤르보니에 씨가 한국에서 태어나 프랑스로 입양되었던 까닭에 한국의 문화와 정서를 담은 책이 나오게 된 것이다. '찬옥'이란 이름은 그분의 한국 이름일지도...
아무튼 그렇게 여러 사연을 품고 이 책이 만들어지게 되었는데, 이 작품을 그려낼 한국 그림책 작가분을 제대로 고른 듯하다. 환상적인 느낌의 그림하면 김동성 아닌가!

첫번째 그림을 보자.
구름 너머 으리으리한 궁이 보인다. 바로 옥황상제가 살고 계신 하늘 궁이다.
상제께는 아리따운 일곱 딸이 있었는데 뭐니뭐니 해도 미모하면 막내 딸인 법!!
어여쁜 막내 딸 직녀는 재주도 좋아서 옷감을 잘 짠다.
직녀는 상제의 명으로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빛깔들을 천으로 짜고 아름답게 수놓았다.
사계절의 빛깔을 색으로 알 수 있는 우리는 사계절이 뚜렷한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들...^^
물론, 요즘은 여름에서 곧바로 겨울로, 겨울에서 다시 여름으로 직행하는 느낌이 들긴 하지만...

하늘 나라의 삶이란 끝없이 반복되는 일상의 끝없는 이야기. 직년는 지루했다. 천만 짜다가 세월을 다 보내고 싶지 않았다. 부족한 게 없는 하늘나라이지만, 그래도 가슴 한 구석에 뭔가 비어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게 무엇일까. 직녀는 인간 세상으로 내려가보고 싶었다.
슬그머니 은빛 실을 땅 위로 내려뜨리고 그 실을 따라 인간 세상으로 와 버린 직녀!

활짝 핀 아름다운 벚꽃들이 직녀를 환영해 주는 것만 같았다.
바람에 나부끼며 춤추는 꽃잎들은 자유로워 보였다.
직녀는 숲 속에 들어가 폭포를 보았다.
숲은 지독하게 더운데 폭포의 물은 아주 시원해 보였다.
가만! 벚꽃 피는 계절이 덥기도 하나????
하여간, 그렇게 직녀는 옷을 벗고 개울의 푸른 물에 몸을 담갔다.

마침 거기서 멀지 않은 곳에 있던 소 치는 젊은이 견우가 직녀를 발견하고 한눈에 반한다.
아름다운 여인에게 어찌 다가가야 할지 몰라 안타까워하던 견우에게 소 한 마리가 비법을 알려준다. 옷을 숨기라고!
얼라, 이건 선녀와 나무꾼이 아닌가!
그렇다. 이 작품은 견우와 직녀 이야기에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가 적절히 섞였다.
이 책을 쓴 이가 견우 직녀 이야기가 전해지는 동양권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어찌 됐든 이 일을 계기로 사랑에 빠져 살림까지 차리게 된 견우와 직녀!
아무 것도 부족한 게 없던 하늘나라보다, 초라하고 소박한 이곳 세상에서의 삶에 더 만족하는 직녀였다.
그.러.나......

직녀가 하늘 나라를 떠나자 계절의 빛깔을 천으로 짜는 일이 뚝! 끊기고 말았따.
그 누구도 여름의 눈부신 푸른빛과 저물녘의 타는 듯한 붉은빛을 물들이지 못했으니까.
그 뒤로 하늘은 어제나 오늘이나 언제나 비슷비슷한 희미한 빛깔로만 계속되었다.
이 꼬라지를 그냥 보아 넘길 옥황상제가 아니다.
결국 직녀는 상제의 명으로 하늘로 끌려 올라가고 말았다.
직녀는 다시 옷감을 짜야 했지만 끝없는 슬픔에 잠겨 그녀가 흘리는 눈물이 폭우가 되어 땅 위에 홍수가 일 지경이 되었다.
그리하여 매일 아침마다 동이 트기 무섭게 사람들의 나라는 물에 잠기게 되었다.

재밌게도, 여기까지를 본다면 중국의 '보련등' 신화하고 많이 겹친다. 작가님이 그쪽 이야기도 참고한 것이 아닐까.
외롭고 외로워 미쳐버릴 것 같던 약수도 떠오르고, 상제의 여동생이 일으킨 홍수로 지상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던 것도 생각나고 말이다.

아무튼, 직녀와 마찬가지로 큰 슬픔에 휩싸인 견우는 용기를 내어 하늘나라에 올라갔다.
상제께 아내를 만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하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황제는 견우 따위 안중에도 없다.
상제가 팔을 들자 별들로 가득 찬 크고 깊은 강이 견우 앞에 불쑥 나타났다.
견우와 직녀 사이에 그 유명한 은하수가 가로막게 된 것이다.
서로 못 보게 하면 직녀가 예전의 베 짜던 딸로 돌아올 줄 알았지만 직녀의 슬픔은 더 커질 뿐,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직녀의 눈물은 온 세상을 홍수로 잠길 만큼 그치지 않았다.
마침내 두 손을 들고 만 것은 옥황상제였다. 견우와 직녀의 사랑이 영원할 거라는 것을 인정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상제는 일 년에 한 번 두 사람을 만나게 해 주기로 했다. 바로 칠월 칠 일, 칠석날이다!
두 사람의 사랑에 감동한 까치와 까마귀들이 기꺼이 다리가 되어주기 위해 하늘로 모여들었ㄷㅏ.

까만 다리는 하늘 위 무지개보다 더 곱게 물들어 애틋한 두 연인을 한 자리에 모이게 했다.
하루 낮, 하루 밤 동안의 사랑이지만, 이 시간 동안은 누구도 이들을 갈라놓을 수가 없었다.
이날이 지나면 다시 일년을 기다려야 하지만, 일년 뒤에는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이 두 사람이 버틸 수 있는 힘이 되어주었다.

먼 정경에서 잡아본 그림이다.
아, 정말 탄성이 나오게 곱다.
꼭 끌어안은 두 사람 뒤로 커다란 달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다.
두 사람을 축복하듯이.
근데 음력 7월 7일에 보름달이 나올 수... 있나? 아마 안 되겠지?

칠석날에는 꼬박꼬박 비가 내리곤 한다.
소낙비는 아니어도 새벽녘에 이슬비라도 꼭 내렸던 것 같다.
바로 그 규칙성 때문에 견우와 직녀 이야기도 탄생했으리라.
이 그림은 이 책의 표지 그림이기도 하다. 펼쳤을 때의 모습.

뒷부분에 김동성 작가님의 작업 이야기가 나왔다.
그동안 동양적 느낌의 그림을 많이 그렸던 작가님은 이번 작업에서 스케치와 수작업을 거쳐 포토샵을 이용했다고 한다. 디지털의 장점을 충분히 활용했지만 여전히 동양적 감수성과 아날로그적 느낌을 잘 살려주었다.
책의 앞뒤 표지를 열면 직녀성이 포함된 별자리가 보인다.
직녀성은 찾았는데 이 사진 안에서 견우성은 찾지 못했다.

'베가'라고도 불리는 직녀성이다. 거문고 자리에서 가장 밝은 별이 바로 직녀성인데, 오른쪽 맨 위의 유난히 밝은 별이 바로 직녀성이다.
검색해 보니 견우성은 염소자리에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사진은 찾아봤는데 정확히 어떤 별이 견우성인지 모르겠어서 사진은 같이 첨부하지 않았다.
휴대폰의 '베가'도 직녀와 뭔 관련이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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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서 가장 독한 동물들 사이언스 일공일삼 19
니콜라 데이비스 지음, 닐 레이튼 그림, 노은정 옮김 / 비룡소 / 2006년 9월
절판


만물의 영장이라고 한껏 자만심에 빠져 있지만, 자연 앞에서 인간은 참 비루하기 짝이 없다.
추워도 못 살고, 더워도 못 살고, 물이나 음식이 없어도 며칠을 못 버티고, 공기 없이는 단 몇 분도 살 수 없는 존재다.
그런데 지구에 사는 생물들 중에는 우리 인간들은 절대로 감당할 수 없는 혹독한 환경에서 기꺼이 살아남는 존재들이 있다. 바로 그 '독한' 동물들을 소개하는 게 이 책의 역할이다.

북극으로 먼저 가 보자. 북극곰들은 우리처럼 겨울에 내복을 입지 않지만 천연 내복을 갖추고 있다. 바로 피부 밑에 7cm나 깔려 있는 지방층이다. 게다가 몸에는 길이가 다른 두 종류의 털이 나 있어서 따뜻한 공기를 한껏 품어 안을 수가 있다. 따땃한 솜이불을 걸치고 있는 효과일 것이다. 게다가 북극곰은 겉이 하얗게 보이지만 사실 그들의 피부는 시커멓다. 그 바람에 햇볕을 잔뜩 흡수해서 열을 품어 피부로 흡수시키는 일을 해낸다. 자신들의 열을 꽁꽁 숨겨두는 북극곰들 때문에 열감지기로 눈밭을 조사해서는 북극 곰을 셀 수가 없다. 털 바깥쪽의 온도가 눈밭의 온도와 같기 때문이다. 열감지기가 찾을 수 있는 것은 털이 덮여있지 않은 북극곰의 코 정도가 다다. ^^

북극사향소는 양털보다 8배는 더 따뜻한 털을 갖고 있다. 이런 털이 왜 상용화가 안 되었는지 궁금하다. 옷으로 만들기에는 털이 너무 거칠거나 예쁘지가 않은 것일까? 혹은 너무 더울까 봐?

해달은 아주 촘촘한 털을 가졌다. 1제곱센티미터 안에 무려 15만 5천 개의 털이 나 있다고 한다. 그 바람에 평생을 얼음장같은 물속에서 살지만 이렇게 촘촘한 털들이 따뜻한 공기를 품어 녀석들의 피부를 감싸준다.

북극해에 사는 북극고래는 심지어 털도 없다. 그러나 피부 밑에 거의 50cm나 되는 지방층이 있어서 추위에 끄떡 없다. 추위 다 나오라 그래! 라고 외치는 느낌이랄까.

남극 관련 다큐를 보면 가장 오래 시선을 끄는 것은 역시 황제 펭귄이다. 남극의 추위가 보통 추위인가. 바로 그 혹한의 땅에서 맨발 위에 알을 올려놓고 품어서 지켜낸다. 시속 150km로 몰아치는 바람 속에서 55일 동안을 버틴다. 심지어 먹지도 않으면서!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바로 황제 펭귄의 깃털 외투 덕분이다. 두께는 3cm에 불과하지만 깃털 안팎의 온도 차는 무려 60도나 된다. 어휴, 과학이 따라갈 수 없는 놀라운 생명력의 힘이다. 황제펭귄은 발을 통해서 열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반류 메커니즘'을 사용한다. 몸솜의 따뜻한 피가 발 쪽으로 가면 발에서 올라오는 차가운 피에게 열을 넘겨준다. 그래서 발로 가는 피는 차갑고 몸으로 돌아오는 피는 항상 따뜻하게 유지된다. 귀뚜라미 보일러가 이런 메커니즘을 이용한 것일까?

파충류들은 사막 생활을 잘 견디는데 변온동물인 것 말고도 오래 굶는 재주가 있기 때문이다. 먹이가 별로 없는 사막에서 살아남으려니 허기를 견디는 것은 그야말로 생존의 절대 조건이다. 그런데 거미 역시 변온 동물이다. 게다가 굶주림을 참는 것은 파충류보다 더 뛰어나다. 영국의 박물학자 존 블랙웰은 1829년에 무려 일년 반 동안 먹이는커녕 물 한 방울 주지 않고 거미를 유리병에 넣어둔 채 관찰했다. 거미줄 쳐놓고 다른 벌레들이 걸려들 때까지 기다리는 인내심 쯤이야 거미에게는 아무 일도 아니었던 것이다! 체온이 조금만 높아져도, 또 떨어져도 큰일 나고, 조금이라도 굶으면 성질 버려버리고 물이 없으면 단 며칠도 살 수 없는 우리 인간과는 아주 대조적인 모습이다. 체온을 유지하고, 또 음식을 구할 능력을 갖추기 위해 인간이 끊임없이 진화해오고 노력해 온 인간의 생존 의지가 강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가진 게 적으니까, 필요가 발명을 만든 것이다. 교만할 필요는 없지만 기죽을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 부쩍 든다.

북극곰도 음식을 먹지 않고 8달을 버틸 수 있다고 한다. 역시 북극 관련 다큐멘터리를 보면 겨울이 오기까지 몇 달을 굶어서 몸이 아주 홀쭉해진 녀석들을 볼 수 있었다. 요즘은 굶주림보다 얼음이 녹아버려서 사냥할 수 있는 터전이 사라지는 게 가장 큰 문제이지만...

몸집이 작은 철새인 검은머리솔새는 북아메리카에서 남아메리카까지 80시간 동안 쉬지 않고 날아간다. 자기 몸을 연료로 삼아서 그 먼 거리를 이동하니, 목적지에 도착하면 말 그대로 '반쪽'이 되어 있을 것이다. 얼마 전 해외 토픽에서 장시간 키스를 해서 신기록을 세운 커플이 생각난다. 화장실마저도 같이 가야 했다고.... 이렇게 장시간 한가지 일에 몰두해서 몇날 며칠을 보내는 인간은 무협지에서 곧잘 볼 수 있었다. 무림 고수들이 내공 수련을 할 때, 혹은 독을 내보내기 위해서 남의 기를 받아들일 때 등등 말이다. 그때도 이게 말이 되냐고 놀라워했는데, 실제로 그렇게 극기훈련(?)을 하는 생물들이 있다는 게 아주 재밌다. 어휴, 정말 대단하십니다!!

황량한 극지방과 메마른 사방, 먹이 없는 유리병 안에서도 생물을 살아남았다. 그렇다면 펄펄 끓는 용암 속은 어떨까? 이곳에는 박테리아가 살아남는다. 화산 근처에 사는 박테리아를 '호열성 유기체'라고 부른다. 호열성 유기체들은 철과 독성이 있는 유황을 통해 에너지를 얻고, 산소에 닿으면 죽는다. 이 단세포 생물은 바다 속에서도 살아남는다. 바다 속 용암 때문에 뜨거운 물기둥이 솟아오르는 곳 말이다. 이 호열성 박테리아를 먹는 장님새우, 그리고 바로 그 장님새우를 잡아먹는 더 큰 바다 생물도 있다. 균형을 이루는 먹이사슬은 이렇게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이뤄지고 있다.

그밖에 엄청난 수압을 버티는 바다 생물들이 있고, 엄청난 중력을 이겨내는 곤충들이 있다.
심지어 어떤 동물은 온몸이 산산조각 나도 목숨이 붙어 있다. 꽤 많은 무척추동물들이 이런 재주가 있다. 이중 갑은 스펀지라고도 부르는 해면동물이다. 해면동물을 걸쭉하게 갈아서 바닷물에 부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잘게 잘라진 조각들이 도로 다닥다닥 붙어서 서서히 하나의 생명체로 돌아가는 기적을 보게 될 것이다. 이 정도면 '기적'이라고 불러도 무방하리라.

시간을 이겨낸 생물들도 있다. 장수의 상징으로 일컬어지는 거북이!
다윈이 갈라파고스 군도에서 가져온 거북이는 2006년에 죽었다. 이 거북이는 175살 이상을 살아낸 것이다. 다윈이 데려왔을 때 갓 태어나지는 않았을 테니까.

그러나 오래 산 식물에 비하면 거북이는 겸손해져야 한다. 어떤 나무들은 천년이 넘게 살 수 있고, 또 미국 네바다 주와 캘리포니아 주에 사는 브리슬콘소나무는 무려 5000년 수령을 자랑하고 있으니까. 인간은, 정말 초라해지는 것이다. 100년을 겨우 살아내면서 천년을 살 것처럼 끝없는 욕심만 채우고 있으니까......

이제 시선을 우주로 돌려보자. 우주는 넓다. 정말 많이 넓다.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항성인 알파 켄타우루스까지 가는 데는 4년 3개월이 걸린다. 빛의 속도로!
빛의 속도라면 화성까지 3분에 도착할 수 있는데, 그 속도로 4년 3개월이라니... 정말 이 어마어마한, 천문학적 숫자 앞에서 무릎을 꿇지 않을 수가 없다. 이 거리를 인간의 짧은 생으로 감당하려면 수면 상태로 오랜 세월을 견디는 수밖에 없다. 몇몇 씨앗들의 생명 저장 비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씨앗 중에는 수천 년 동안 잠을 자다가 뒤늦게 싹을 틔우고 자라나는 것들이 있다. 열대 지방에서 자라는 수수과의 식물인 소검의 씨앗은 무려 6천 년이 지난 뒤에도 싹을 틔울 수 있다고 한다.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대단한 것은 분명하다!

이제 독하디 독한 마지막 생물을 소개해 보겠다.
이 녀석은 식물의 잎에 고인 얕은 물속에서 조용히 살고 있다. 연못이나 바다에서도 찾을 수 있다. 덩치카 크지도 않다. 기껏 커봤자 1mm 조금 넘는 정도. 이 동물은 물곰 혹은 완보류라고 불리는데, 무려 5억 3천만 년도 전에 지구에 나타났던 고대 생물 무리에 속한다.
물곰은 가뭄이나 갑작스러운 추위 등의 어려움이 닥치면 다리를 오므리고 온몸을 접는다. 그리고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서 몸을 포도당으로 채운다. 그러고는 몸속의 수분 가운데 단 1%만 남기고 모두 밖으로 내보낸다. '턴'이라고 부르는 이런 상태로 들어가면 이녀석들은 천하무적이 된다.
과학자들은 턴을 150도로 가열해 보기도 했고, 영하 272.8도로 얼려도 보았다. 바다 밑에서 경험할 수 있는 수압의 6배나 되는 압력으로도 눌러 보았다. 또 우주 공간처럼 진공 상태에도 두어 봤다. 인간에게 치명적인 수준의 천 배는 되는 방사선을 쪼여도 보았고 독한 화학물질도 써 봤지만 결과는 늘 같았다. 위기가 지나가고 원래 살던 물속으로 들어가면, 턴에서 다리가 튀어나오고 몸이 펴지면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천연덕스럽게 제 할 일을 한다. 이런 음폐 생활 상태로 수백 년, 수천 년을 살아남은 것이다. 어쩌면 물곰은 여원히 죽지 않고 살 수도 있지 않을까?

뱀파이어물들이 매력적인 것은 그들이 아름다운 상태로 불멸의 생을 산다는 것이다. 물곰의 능력은 정말로 놀랍지만, 물곰으로 태어나서 천 년 만 년을 살고 싶지는 않다. 하하하!!!

글밥이 꽤 많다. 축약한 백과사전 같은 느낌이다. 그래도 주제로 묶어 소개한 동물들 이야기가 재밌었고, 감탄도 했다. 실제 사진도 같이 담아주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러면 또 미관상 너무 징그럽게 생겨서 거부반응이 들었을 지도...^^

사실 신체의 능력만 따지면 인간은 지구 상에서 순하디 순한 동물에 속할 테지만, 잔인함으로 따지면 누구보다 독할 수 있을 것이다. 배고프지 않아도 상대를 얼마든지 죽일 수 있는 동물이니까.
즐겁고 신기한 정보도 찾고, 그 안에서 인간의 모습도 좀 돌아볼 수 있다면 좋겠다. 의미있는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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