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독 - 2013년 케이트 그린어웨이 수상작 책 읽는 우리 집 5
레비 핀폴드 글.그림, 천미나 옮김 / 북스토리아이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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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검은 개 한 마리가 호프 아저씨네 가족을 찾아왔어요. 

검은 개를 제일 먼저 발견한 사람은 호프 아저씨였죠.

아쩌씨는 토스트 접시를 떨어뜨리며 소리를 질렀어요.

그리고는 바로 경찰에 신고를 했죠.


"우리 집 앞에 호랑이만 한 검둥개가 나타났습니다!"


경찰관은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어요. 

어쩌면 좋냐는 다급한 물음에 경찰은 꼼짝 말고 집 안에 있으라고 했어요. 


주방 바닥에 고양이 그림과 고양이 먹이, 그리고 싱크대 낙서까지 그림도 눈여겨 보도록 하세요.



뒤이어 호프 아주머니가 일어났어요. 

아주머니는 찻잔을 떨어뜨리며 비명을 질렀죠.

그리고 호프 아저씨를 불렀어요.


"여보! 우리 집 앞에 코끼리만 한 검둥개가 있는 거 알아요?"


두 부부는 불을 다 끄기로 했어요. 검둥개가 집안에 있는 사람들을 못 보게 하기 위해서였죠.


의자 위에는 떨실 꾸러미가, 테이블 위에는 그림이, 바닥에는 온갖 장난감들이 있군요. 이게 다 누구 장난감일까요!



다음으로 일어난 건 애들라인!

애들라인은 칫솔을 떨어뜨리며 엄마 아빠를 불렀어요.


"우리 집 앞에 티라노사우루스만 한 검둥개가 있는 거 아세요?"


엄마 아빠와 애들라인은 당황했어요. 

그리고 얼른 커튼을 닫으라고 했죠. 

검둥개가 그들을 보지 못하도록 말이에요.


창 밖으로 비치는 검둥개의 커다란 눈동자가 보이나요?

욕조 벽에 붙어 있는 초록 문어가 재밌게 생겼네요. 애들라인이 신고 있는 실내화와 짝을 이룬 듯해요. 



곧이어 모리스가 일어났죠. 

모리스는 곰 인형을 떨어뜨리며 소리를 질렀어요. 


"우리 집 앞에 빅 제피만 한 검둥개가 있는 거 아세요?"


(빅 제피는 미국의 어린이 TV 프로그램인 '세서미 스트리트'의 등장인물이래요.)


이제 가족들은 이불 밑에 숨기로 했어요. 모두들 도망치기 바쁜데 막내만 태연하게 걷고 있네요. 


모리스는 기사를 좋아하는 아이인가봐요. 벽에 그림이 잔뜩 있어요. 새가 그려진 베개도 재밌네요. 침대 밑에 부엉이도 보이구요. 이 집의 가구며 방들은 모두 재미있는 것들로 가득하네요. 그래서인가 식구들도 상상력이 좀 풍부하군요! 호랑이에 코끼리에 티라노사우르스까지 나왔잖아요. 



호프 아저씨네 막내는 식구들이 이렇게 허둥대고 난리법썩 떠는 이유를 알지 못했어요. 

검둥개를 피해서 숨어 있다고 말하자 이렇게 말해 주었죠. 


"에이, 겁쟁이들."


꼬맹이는 다짜고짜 현관문을 벌컥 열었어요. 

가족들이 모두들 말렸죠. 


"녀석이 널 잡아먹을 거야!"

"네 머리를 우적우적 깨물어 먹을 거야!"

"네 뼈를 아작아작 씹어 먹을 거야!"


모두들 이렇게 걱정을 했지만 나서서 꼬맹이를 잡지는 않는군요.

꼬맹이는 차분하게 외출 준비를 합니다.

밖은 추우니까 신발도 두툼한 걸로 신고, 외투를 꼭 여미고 장갑과 모자도 잊지 않았어요. 

자, 용감한 꼬마 기사가 나갑니다!

문 위로 드리워진 검둥개의 큰 그림자가 조금은 으시시하게 보이는군요!



그리고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커다란 검둥개! 

저 커다란 코는 정말 코끼리의 피부를 연상시키기도 해요.

눈도 부리부리하구요.

그런데 제 눈에는 검둥개가 더 겁을 먹는 것처럼 보이는군요!

저 커다란 갈기들은 윤기가 있고요. 

뭔가 신령스런 느낌마저도 나는 검둥개였어요.


꼬맹이는 검둥개를 유인해서 달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노래도 하나 지어서 불렀죠.


"따라올 테면 따라와 봐라.

따라오고 싶으면 덩치를 줄여라."


오홋, 이 노래는 장화 신은 고양이에 나오는 사자를 떠올리게 하네요. 

변신이 가능했던 사자가 아주아주 작은 쥐로 변신하자 장화신은 고양이가 냉큼 잡아 먹었죠. 

모두를 무섭게 한 것은 검둥개의 커다란 덩치!

꼬맹이는 검둥개가 작아지도록 하는 마법을 걸고 있어요.



꽁꽁 언 연못과 작은 다리 밑을 지나고 놀이터의 미끄럼틀도 내려 갔죠. 

검둥개는 얼음을 깨뜨리지 않기 위해서 작아져야 했고, 코끼리 미끄럼틀을 통과하기 위해선 보다 날씬해져야 했어요.



그리고 마침내 다달은 집 앞! 꼬맹이는 고양이 문을 통과해서 따뜻한 집 안으로 쏙 들어가 버렸어요. 

고양이 문은 꼬맹이가 통과할 만큼 작은 문이었죠.

그리고 이제는 검둥개도 통과할 수 있는 문이에요.

검둥개가 이만큼 작아졌거든요. 



검둥개가 집에 들어오자 꼬맹이는 빨래 바구니를 뒤집어 씌웠어요. 

호프 아저씨네 가족들은 집 안에서도 무서워서 잡동사니로 만든 방어벽 뒤에 숨어 있었거든요.

냄비까지 뒤집어 쓴 저 우스꽝스런 모습을 좀 보라지요. 

참으로 요란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토록 난리법석을 떨 만큼 검둥개는 크지도, 무섭지도, 사납지도 않았어요. 

어쩌면 검둥개는 단지 배가 좀 고프고, 그리고 조금 더 외로웠던 것 뿐일 겁니다.

그걸 알아차린 게 꼬맹이 뿐이었던 거죠. 


이제 이 집의 고양이들처럼 검둥개도 당당한 식구가 될 것만 같군요.

더 이상 아무도 놀래키지 않고, 누구도 무서워하지 않을 테지요.

검둥개는 무서운 녀석이 전혀 아니었거든요. 

꼬맹이의 용기를 식구들도 배웠을 거예요. 



이 책은 여러모로 "벽 속에 늑대가 있어"를 떠올리게 합니다. 벽 속에서 나타난 늑대 때문에 혼비백산했던 집안 식구들의 과장된 반응이 생각나요. 사막으로 갈 것인가 우주로 갈 것인가 떠들어 댔었죠. 결국 용기있는 딸 아이 때문에 식구들은 늑대를 쫓아내고 자신들의 집을 되찾습니다. 


레비 핀폴드가 그려낸 검둥개는 여러모로 '두려움'을 생각하게 합니다. 그것은 눈에 보이는 커다란 개일 수도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나만의 무엇일 수도 있어요. 이 집의 꼬맹이만이 두려움을 잊었던 건 어쩌면 가장 어리기 때문에 세상에서 얻은 선입견이나 편견의 부재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문득, 내 안의 두려움과 공포, 고백하지 못하고 인정하지 못하는 스스로가 떠오릅니다. 과거의 기억이기도 하고, 친구이기도 하며, 부모 가족이기도 한 내 안의 검둥개들 말이지요. 검둥개와 화해하는 방법을, 친구가 되는 비법을, 꼬맹이로부터 저도 좀 배워야겠습니다. 도망갈 곳도 없는데 숨어 있기는 싫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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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게 자유롭게 뻥! - 황선미 인권 동화, 중학년 베틀북 오름책방 6
황선미 지음, 정진희 그림 / 베틀북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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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는 엄마에게 불만이 많다. 엄마는 경주의 하루 스케줄을 꼼꼼히 체크하고, 필요한 영양소도 빠짐없이 챙기는, 아주 적극적인 엄마이지만 동시에 지나치게 극성맞은 엄마이기도 하다. 물론, 이런 극성맞은 엄마는 요즘 드물지 않다. 


내 책상 서랍, 내 지갑, 내 일기장, 내 메일, 내 컴퓨터 검색창 같은 것 좀 마음대로 뒤지지 말라고 나는 대들지 않는다. 다른 엄마들처럼 엄마도 직장에 다니면 좋겠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어떤 잔소리가 쏟아질지 뻔히 아니까. 내가 할 수 있는 반항이란 고작해야 음식 깨작거리기, 뭉그적거리기, 말 안 하기, 멍하니 있기 정도. 덕분에 엄마는 나를 좀 게으르고, 느리고, 입이 짧고, 숫기가 없는 애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착하다고-18쪽


이 부분을 읽으면서 좀 놀랐다. 큰 조카도 밥 먹을 때 지나치게 오래 걸려서 늘 혼나기 일쑤고, 숙제 하는데 백만 년은 걸리고 언니는 그때마다 잔소리 폭격을 가하는데, 이 책속의 모자 관계와 아주 흡사하지 않은가. 어쩌면 나의 조카도 나름의 반항으로 음식 깨작거리고 뭉그적거리고 멍하니 있는 건 아닐까 하고. 고민해 볼 문제다. 여하튼! 


경주는 현재 비밀이 있다. 경주의 심장을 뜨겁게 만들어준 축구공을 자신의 힘으로 장만하는 게 경주의 숨겨진 목표다! 


"베컴 될 거 아니잖아. 메시나 박지성처럼 될 자신 없으면 아예 다른 걸 노려야지." -29쪽


경주가 컴퓨터에서 '축구'라는 검색어를 넣었다는 걸 알아차린 엄마의 반응이다. 물론, 모두가 축구 좋아한다고 베컴이 되고 박지성이나 메시가 되는 건 아니지만, 베컴이나 박지성, 그리고 메시처럼 잘하지 못하면 축구 좋아하지 말란 법 없지 않은가. 순수하게 좋아할 수 있는 것도 뭐든지 '서열'을 메긴다. 그 분야에서 탑이 될 자질이 보이지 않는다면 애당초 눈도 돌리지 않겠다는 심산! '아깝다 학원비' 관련 강의를 들었을 때 학부모들에게 주의를 주는 것 중에 이런 게 있다. 아이가 100점 맞았다며 신이 나서 달려왔을 때, "너희 반에 100점 몇 명이나 받았니?"라고 묻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그렇게 힘들다고... 사람이니까 당연히 궁금할 것 같다. 그래도 일단은 축하해주고 잘 했다고 격려도 해주는 게 먼저 아닌가. 100점 너 말고 또 누구 있어?라는 질문, 우리 집에서도 숱하게 듣고 있다. 하하하...;;;;


엄마하고의 대화가 늘 저렇게 흘러가니 경주가 엄마에게 비밀을 갖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더군다나 요즘 사춘기는 한참 빨라져서 열살 경주는 셔틀 버스 타는 데까지 꼬박꼬박 나와 계신 엄마에게 창 너머로 손 흔드는 게 부끄러워질 나이가 되어버렸다. 엄마 눈에는 아이가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는, 그래서 엄마가 시키는 대로 따라와주는 '착한' 아이로만 보인다. 그리고 엄마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아이가 아주 잘 클 거라고 신념을 갖고 있다. 갈등은 예정된 순서다. 


(당근 주스와 도시락. 도시락을 쌀 때도 영양소와 깔맞춤까지 고려하는 엄마의 솜씨! 그러나 아이는 그런 엄마가 숨막힌다.)


경주가 피날레 런던 매치볼에 올인하게 된 건 우연한 계기였다. 시험지를 제일 먼저 내고 나왔지만 기분이 좋지 않았다. 교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 엄마와 만나기도 싫었다. 그렇게 운동장을 가로지를 때에 홀로 드리블을 하고 있는 남자를 보았다. 우리 학교를 졸업한 국가대표 축구 선수 장문호였다. 장문호 선수가 차 보라며 건넨 공을 뻥뻥! 차면서 운동장을 힘껏 달렸다. 많이 뛰어서 심장이 터질 것 같았지만, 가슴이 벅차서 또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오랜만에 뜨겁게 뛰는 심장을 느끼며 아이는 환호했다. 그 기쁨을 안겨준 축구공을 제 힘으로 사려고 돈을 모았는데 그 과정이 녹록치 않았다. 



아디다스에서 나온 피날레 런던 매치볼이다. 축구공에 대해서 아는 바 없지만, 이 공은 무척 예쁘게 생겼구나! 실제로도 이 공은 일반 축구공보다 더 비싸다고 했다. 13만원이 좀 넘는 금액! 경주가 용돈을 모으고 자신의 저금통에서 다시 돈을 빼내고, 그걸 들키고, 그렇게 힘들게 모은 돈을 잃어버리는 일련의 과정들이 숨가쁘게 흘러간다. 경주가 검색해서 알아낸 것처럼 파키스탄에서 이 공을 만들기 위해서 저임금에 시달리는 아동 노동자들과 단순 비교한다면 엄마 아빠의 그늘 아래서 공부만 하는 경주의 삶은 비교체험 극과 극에서 우위를 점한다. 엄마의 장담대로 엄마가 하라는 대로만 쫓아가면 제법 순탄한 인생을 걸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맑은 날만 계속된다면 평범한 들판도 사막이 되고 만다. 경주가 바라는 인생은 그런 게 아니다. 열살 아이도 자신이 하고 싶은 게 있고, 갖고 싶은 꿈이 있고, 해내고 싶은 목표가 있다. 아이는 자신의 입장을 충분히 시간을 갖고 제대로 설명하려는 의지와 용기가 필요하고, 엄마는 아이가 본인의 소유물이 아님을 인정하고 하나의 인격체로서 대우할 자세를 갖춰야 한다. 어려운 일임을 알지만 그래야 서로를 향해 세운 날이 흉기가 되지 않을 수 있다. 



자, 이번엔 저 멀리 남쪽 파키스탄으로 가보자. 경주가 검색으로 알아냈던, 축구공을 만들기 위해서 작은 손을 상처로 덮은 채 고된 노동을 감당해내는 9살의 가장 라힘에게로.


라힘의 아버지는 집을 나가셨다. 돈을 벌러 가신건지, 가난한 집의 가장으로 있기 힘들어서 집을 나간 것인지 알 수 없다. 아버지가 돌아오시지 않는 동안 라힘은 아홉살 어린 나이로 가장의 책임을 지고 있다. 축구공을 바느질 하던 엄마는 눈이 멀어서 공장에서 일할 수 없게 되었고, 여섯 살 어린 여동생은 또래보다 작고 마른 몸을 해가지고 식구들이 먹을 물을 먼 곳에서 길어온다. 그리고 라힘은 공장에서 축구공을 만든지 삼년이 되었다. 오각형과 육각형의 조각 서른 두 조각을 꿰매는 데에 1620회 이상의 바느질을 해야 한다. 그렇게 하루 열두 시간씩 일해서 축구공 세 개를 만들고 라힘이 받는 돈은 우리 돈으로 약 오백 원. 그 돈으로 쌀 한 줌을 사서 할머니와 엄마, 그리고 여동생과 밥을 먹어야 한다. 고작 아홉 살인 라힘이 짊어진 세상의 무게다. 


"어리구나. 넌 공부해야 할 어린애야."
라힘은 바느질하며 생각했어요. 일 대신 공부를 하면 누가 돈을 벌까요.
"공부해야 삶이 바뀐단다."
지금 일하지 않으면 가족이 굶어 죽을 거예요.
"너에게도 보호받고 공부하고 놀 권리가 있단다."
권리.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논다는 말은 알아들었어요.
일거리가 줄어들면 형들이랑 가끔 놀기도 합니다. 바느질이 잘못돼서 망친 공을 차지요. 그나마도 너덜너덜해졌지만 어린 일꾼들에게 그건 아이처럼 뛰어놀 수 있는 시간을 줍니다. 하지만 시간을 그렇게만 보내면 누가 가족의 끼니를 책임질까요. -115쪽





인권 운동가들이 다녀가면서 라힘의 일자리가 위협을 받았다. 하루에 여덟 시간만 일을 하게 되었고, 주말에는 일을 주지 않는다 했다. 적어도 열다섯이 되기까지는. 그러나 라힘은 지금 아홉살이다. 자신처럼 여섯 살이 된 여동생 말리까가 축구공을 만들기 위해서 공장에 왔지만, 인권운동가들 눈치를 본 공장주인은 말리까를 받아주지 않았다. 말리까는 그들 운동가들이 세운 학교에 가고 싶어했다. 무상교육을 제공하는 그 학교에 당장 달려가고 싶지만 내일을 위해 필요한 공부와 달리, 이들은 당장 '오늘' 밥을 먹어야 한다. 라힘은 엄마처럼 눈이 어두워지고 있다. 아직 10년도 살지 않은 인생 총량에서 아이는 고된 노동으로 육신의 병을 얻고 있다. 이런 현실이 비단 소설 속의 부풀린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저렇게 힘들게 만든 축구공을 맘껏 뻥뻥 차면서 놀지 못하는 저 어린이, 고사리 손으로 카카오를 재배하지만 평생 먹어보지 못한 초콜릿! 마음껏 뛰놀며 꿈을 품을 나이에 노동으로 찌들고 병든 몸으로 세상의 폭력에 노출된 이 가엾은 아이들... 영화 '설국열차'에서 단종된 부품을 대체하기 위해서 납치된 어린 아이가 떠오른다. 그런 희생 위에서만 달릴 수 있는 기차라면, 그런 희생을 눈감으면서 성장하는 경제라면... 이 세계에 대해서 우리는 어떠한 입장을 취해야 하는 것이 옳을까?



두 개의 이야기를 데칼코마니처럼 엮어 놓았다. 서로 상반된 입장의 아이들이지만 모두가 자유가 구속된 아이들이다. 더불어 행복하지 않은 아이들. 첫번째 이야기보다 아무래도 두번째 이야기 쪽으로 마음이 쏠린다. 라힘은 말리까가 학교에 가서 글을 배우기를 원한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편지를 쓸 수 있기를... 자신의 눈이 멀기 전에 말이다. 이 아이들에게는 학교도 필요하지만 당장 매일매일의 식량을 제공해 줄 작은 텃밭이 절실하다. 감자와 토마토를 키울 수 있는 땅. 정부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되묻게 되는 시점이다. 또 어른은 이런 아이들 앞에서 얼마나 작아져야 하는지...... 



약 한달 전 진로 탐색 시간에 아이들은 내 인생의 버킷 리스트 10개를 만드는 시간을 가졌다. 아이들의 리스트 중 빠짐 없이 들어 있는 내용이 성적문제였다. 전교1등을 해보고 싶다와 전교 100등 안에 들고 싶다가 비등하게 나왔다.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에 꼭 끼는 것이 성적 올리는 것이라니... 이 아이들이 살고 있는 세계가 어떠한지 한눈에 보였다. 건강한 아이가 자라서 건강한 사회를 만들 것인데, 지금 우리는 어떤 미래를 구축하고 있는 것인가. 우리가 살고 싶은 미래, 우리가 만들고 싶은 미래, 우리가 갖고 싶은 그 아름다운 미래를 위해서, 우리의 아이들은 더 신나게! 더 자유롭게 놀아야 한다. 그렇게 날개짓 해야 한다.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우리 어른들은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지 오래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역시 황선미 작가님 답다. 이번에도 뭉클뭉클 울먹울먹 꿀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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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은 너무 힘들어 병만이와 동만이 그리고 만만이 5
허은순 지음, 김이조 그림 / 보리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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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만이랑 만만이는 내 동생이에요.
밥 먹을 때 여기저기 흘리고 먹는 동만이,
밥풀 하나 안 남기고 싹싹 핥아 먹는 만만이.

병만이의 두 동생 동만이와 만만이를 소개했다. 동만이는 코흘리개 동생이고, 만만이는 식구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 강아지다.
흘리고 먹는 동만이와 싹싹 잘 먹는 만만이의 대구가 재밌다.

아기 강아지일 때 집에 왔는데 어느새 동만이보다도 키가 커버린 만만이.
둘의 키를 재고 있는데 주변 소품들이 재밌다.
TV 안의 기상 캐스터가 서 있고, 그 앞에는 로봇이 손들고 서 있다.
시계 바늘도 서 있고, 옷장 앞 토끼도 그림 속에서 서 있다.

햇살 가득한 날 온 집안 식구들이 뒹굴뒹굴 휴일을 즐기고 있다.
아빠는 만만이를 베고 있고, 병만이는 아빠 배를 베고 있다.
동만이는 코 후비느라 바쁘다.
한데 뭉쳐 있는 가족들이 평화로워 보인다.
그렇지만 엄마의 생각은 다르다!
이런 날 집에서 뒹굴거리는 것은 죄악!!
햇살이 밖으로 나오라고 손짓하지 않는가!!

이제 한가족이 되었으니 산책길에 만만이가 동행하는 건 자연스럽다.
그러나 만만이를 준비 없이 데려가는 건 무리!
목줄도 달고, 이름표도 달았다.
집에서처럼 아무 데서나 똥을 싸면 곤란하니 휴지랑 비닐봉지도 챙겼다.
이제 산책 준비 끝!!

밖으로 나온 만만이는 벌써 신이 나서 겅중겅중 뛰고 있다.
병만이는 만만이 데리고 걸어보겠다고 했지만 만만이 힘이 보통 센 게 아니다.
한 손으로 잡고 버텨 보니 질질 끌려 간다.
동만이는 두 손으로 잡고 버텼지만 더 빨리 끌려간다.

문제는 이때 생겼다!
모퉁이 돌자 마주친 자그마한 하얀 강아지가 캉캉! 짖어댄 것이다.
쬐만한 게 얼마나 앙칼지게 짖어대는지, 놀란 만만이가 펄쩍 뛰었고 그 바람에 동만이는 목줄을 놓치고 말았다.

쏜살같이 달아나는 만만이, 놀라서 구급차 소리를 내며 울어대는 동만이!
온 식구가 허둥지둥 어쩔 줄 몰라할 때 정신 바로 세우고 기지를 발휘한 것은 아빠다!

휘파람을 불며 만만이가 달려간 곳의 반대편으로 달려가는 아빠!
그런데 놀랍게도 만만이가 아빠를 따라 달려왔다.
오히려 아빠를 지나쳐 더 빠르게 달려가는 만만이!
식구들은 눈이 동그래져서 이 상황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아빠와 함께 돌아온 만만이.
아빠의 설명에 따르면 개는 쫓아가면 더 빨리 달려가서 오히려 반대편으로 달려가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랑 놀자는 줄 알고 쫓아서 달려오는 모양인가 보다.
오홋, 재밌는 사실을 알았다.

병만이네 가족의 산책은 이렇게 마무리 되었다. 땀도 쏙 뺐지만 모두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으니 행복한 마무리다.
만만이 덕분에 십년감수했다는 엄마, 심장 터질 줄 알았다고 한 동만이, 그리고 간 떨어질 뻔했다는 병만이까지. 저마다 놀란 마음을 다른 표현으로 설명했다.
이렇게 우리말의 묘미를 전달하는 게 이 책의 큰 장점이다.

내일도 산책가야지~ 라며 그려놓은 그림에 병만이와 동만이가 함께 목줄을 잡고 있다.
만만이의 힘이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으니 다음 번 산책에선 두 형들이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오른쪽 그림을 보고서 그 다음에 일어날 일을 짐작해 보는 건 어렵지 않다.
톰과 제리에서 늘 당하기만 하는 톰이 떠오른다. 필시 그 비슷한 풍경이 벌어지리라.

현재 키우는 동물, 혹은 키우고 싶은 동물을 그려보라고 했다.
현재 나는 키우는 동물 없고, 앞으로도 사실 그렇게 키우고 싶은 동물은 없다.
그런데 상상으로는 바로 떠오른 게 사자였다.
예전에 위너스 카드였던가. "사자 한 마리 키우시겠습니까?"라고 묻던 이정길 씨 등장하는 광고가 떠오른다.
상상으로는 코끼리도 키울 수 있고 호랑이도 키울 수 있지. 암~

오른쪽 그림은 강아지랑 산책할 때 필요한 물건들을 찾는 그림이다.
어휴, 강아지를 키우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이 참 많구나. 고양이는 이보다 더 많을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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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3-08-11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더 많이 필요합니다.
아주 비싼 모래를 평생 사야 하니까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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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 목줄 안하고 다니는 사람들
변 안치우는 사람들...하아...정말 너무너무 싫어요.
개와 사람 모두를 위해 목줄과 배변봉투는 정말 필수핌인데 말이죠.

마노아님....집이 너무 더워서 출근하고 싶은 일요일입니다........

마노아 2013-08-12 00:16   좋아요 0 | URL
비싸기까지 한 모래를 평생이라니, 후덜덜해요. 정말 아이 하나 키우는 것만큼 돈이 드는군요.ㅜ.ㅜ
영화 '타워'에서 보면 자기 개가 싼 똥을 아파트 청소하는 분에게 대신 치우라고 미는 아주 밉살맞은 국회의원 부인이 나와요. 화면 속으로 달려가 때려주고 싶었어요...;;;;

아아, 오늘이 열대야 최고 같아요.
이 시간에도 실내 온도 34도예요. 미쳤나 봐요.ㅜ.ㅜ
이 무더위 속에 갑자기 주방 청소에 꽂혀서 무려 7시간을 내내 일했어요. 다리가 퉁퉁 부었어요.
제가 더위에 맛이 갔나 봐요...;;;;

jo 2013-08-11 1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올 책이 너무 예뻐요.

마노아 2013-08-12 00:17   좋아요 0 | URL
이 책은 재밌기도 하지만 동시에 기획도 아주 훌륭한 책이에요. '읽기'에 중점을 두어서 필요로 하는 연령대에 큰 도움이 될 거예요. 저는 그 나이는 지났으니 재미로 보지만요.^^
 
만만이는 사고뭉치 병만이와 동만이 그리고 만만이 4
허은순 지음, 김이조 그림 / 보리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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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에서 병만이네 식구로 새로 편입된 만만이가 나왔다.
만만이는 강아지다. 병만이 동만이 형제의 여동생이 된 셈이다.
두 형제의 이름에서 '만'자를 따워서 '만만'이가 되었다.
절대 만만해서 만만이가 아니다.
그리고 우리 만만이는 만만하지도 않다!

처음 집에 도착했을 때는 하루 종일 낑낑거리며 울기만 했다.
병만이는 동만이가 울려고 할 때 웃게 만드는 비법을 갖고 있었지만 아직 만만이를 웃기는 방법을 익히지 못했다.
그런데 웬걸! 동생이 생겨서 그런 것일까. 동만이가 만만이를 웃게 만들었다.
엉금엉금 기어서 만만이한테 다가가며 만만이처럼 짖어보는 동만이!
이것이야말로 눈높이 교육이 아닌가!
병만이가 동만이 웃기느라고 우스꽝스런 표정을 짓던 것과 마찬가지다.
병만이도 바로 만만이 마음 달래주기에 들어갔다.
멍멍, 왈왈!! 비슷한 소리를 내가며 여기가 이제부터 만만이 집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알려주는 멋진 오빠들!
병만이와 동만이가 만만이에게 온 정성을 다 쏟으니 소외감을 느끼며 불만에 싸인 로봇 장난감의 표정을 보시라. 깨알같은 재미다!

그렇게 만만이는 이집에 정을 붙이고 식구가 되었다.
그러나 만만이는 적응했어도 만만이에게 병만이 식구가 적응하는 건 좀 더 인내를 요구했다.
여차하면 신발 물어뜯고 침 잔뜩 묻혀놓기 일쑤고, 식탁 다리도 갉아 먹고 온 집안을 똥 천지로 만들기도 한다.
목욕하는 걸 싫어해서 만만이를 씻기는 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럴 땐 손발이 착착 맞아야 하는데 자기도 같이 씻기겠다며 목욕탕 문을 열어버린 동만이!
아뿔싸! 이건 어서 나가라고 문을 열어준 모양새가 아닌가!
문 잠그지 않고 시작한 엄마와 병만이 잘못도 크다.ㅜ.ㅜ

만만이는 비누칠한 몸으로 온 집안을 휘젓고 다녔고, 그 와중에 미끄덩한 거실에서 동만이는 스케이트 타듯이 이 미끄러움을 즐긴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고 했던가. 기왕에 이렇게 된 것 즐겁게 놀아보자~가 과연 되겠는가!
내가 엄마라면 못 그럴 것 같다.
그러나 병만이와 동만이의 엄마는 대인배일지도...^^
아무튼 그렇게 만만이 씻기기 대작전이 끝났다. 이걸 며칠에 한 번 하는지 궁금하다. 설마 매일은 아니겠지???

곳곳에 똥을 싸서 지뢰밭을 만들고 침대에다가 오줌도 싸는 만만이.
엄마가 데리고 자지 말라고 했는데 데리고 자다가 이 사단이 났으니 이를 어째.
나라면 화르륵 헐크가 됐을 것 같은데 병만이 동만이 만만이 엄마는 대인배니까 용서해주셨을 것 같다.^^ㅎㅎㅎ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은 어마어마한 책임감을 필요로 한다. 집이 반려동물을 키울 입장이 된다면 아이의 정서와 교육에 큰 도움이 되지 싶다. 그러나 책임감 없고 게으른 사람이라면 시작도 않는 게 낫지 않을까.
병만이와 동만이는 다행히도 잘 해나가고 있다.

온 집안 식구들이 만만이와 사랑에 빠졌다.
학교에 가서도 만만이 빨리 만날 생각에 들떠 있고, 만만이와 떨어지기 싫어서 유치원 가는 걸 피할 정도였다.
모두 다 함께 외출할 때는 만만이 걱정에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이미 만만이는 이집의 어엿한 식구가 되어 있는 것이다.
조카가 태어났을 때 언니네 집에 가면은 집에 돌아오는 게 참 힘들었다.
발이 안 떨어지는 것이다. 신발 신다가 다시 방으로 들어가서 아기 얼굴 들여다 보고, 나가려다가 한번 더 안아보고 마지못해 현관을 나섰더랬다.
지금 병만이와 동만이 식구들이 만만이를 두고 나올 때 그런 마음인가보다.
그래도 몇 시간 뒤면 다시 만날 사이이니 얼마나 좋은가!
지금은 사고뭉치지만 조만간 만만이의 활약상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첫번째 그림. 대체 누구 짓일지 짐작해볼 수 있다. 어느 것은 동만이, 어느 것은 만만이겠다.정말 만만치 않은 녀석들!

두번째 그림. 만만이가 밥을 먹으려면 어디로 가야할지 그어 보자. 눈으로도 찾아볼 수 있지만 그으면서 가야 제맛!

세번째는 같은 공간 다른 사건이 일어난 장면을 보여준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아이의 언어로 재구성해 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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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와, 멋진 걸 보여 줄게 - 너트와 고리와 병뚜껑과 나사의 여행
수비 툴리 윤틸라 글.그림, 류지현 옮김 / 낮은산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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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와, 멋진 걸 보여줄게."


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어마어마한 자신감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런 말은, 보통 더 어릴 때에 가능했던 것 같다. 어른이 되어서는 내가 좋아하는 책과 음악과 내 입맛에 맞는 음식이 내가 추천한 사람에게는 별 반응을 못 끌어내는 것에서 속상하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하지만, 어릴 적에는 별로 대단치 않아 보이는 작은 것들에도 크게 감탄하고 감동하고 또 열광하지 않던가. 보다 순수하고, 보다 계산이 적던 시절의 우리들 말이다. 


이 책은 바로 그 소소한 것들에서 출발했다. 그렇지만 어린이 눈높이에서만 멋진 것들은 아니다. 이미 충분히 다 자란 어른인 내게도 멋져 보이는 세계가 펼쳐져 있다. 그림책은 매번 그렇게 독자를 놀래키고 감탄사를 터트리게 한다. 이 놀라운 색감이라니!


우주라는 거대한 공간 안에서 은하수 가장자리에 있는 작은 행성 하나. 작지만 뚜렷한 족적을 가진 이 아름다운 행성의 또 작은 도시, 그 안에 자리한 이곳을 자세히 들여다 보자. 바닥에 깔아놓은 직물 천이 우주가 되고, 골판지는 지붕이 되었다. 솜뭉치는 둥실둥실 구름이 되었다. 이제 집 안으로 들어가 보자.



마루 위에 놓인 저 자그마한 것의 정체는 무엇일까. 천으로 이루어진 벽면과, 우표 한장이 충분히 아름다운 액자가 되어주는 이 공간 안에서 반짝이는 저것은!!! 아핫, 너트였다. 빛나는 삶을 꿈꾸는 너트는 이 좁은 공간을 떠나 먼 여행을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모름지기 여행에는 동반자가 있기 마련! 고리가 합류하기 무섭게 노란색 병뚜껑도 이들 일행과 뜻을 모으기로 했다. 지루했던 병뚜껑으로서는 아주아주 반가운 일이다. 



자그마한 이들 친구들이 넘어야 할 산은 높고도 험했다. 유리로 된 산을 넘고 곧게 떨어지는 폭포를 지나야 했던 것이다. 유리로 된 산의 정체는 뭘까? 아마도 세면대? 떨어지는 물줄기가 이들에게는 나이아가라 폭포보다도 거대하고 거친 물살로 보였을 것이다. 어쨌든 이들은 여행을 계속했다. 주방에서 만난 피망과 파프리카는 강렬한 색감으로 일단 기선을 제압하는데, 이들의 여정은 주방 안 식탁 위에서 끝낼 수 없었다. 과감한 도약이 필요하다. 그리하여 점프!!! 이들이 뛰어내린 곳은 파랗고 차가운 바다! 반짝이는 직물은 푸른 파도처럼 넘실거렸다. 뱃멀미를 일으킬 만큼! 



파도가 높아지고 바람이 점점 거세어지더니 이윽고 칠흑같은 어둠이 찾아왔다. 어째 태평양 한가운데에서 리처드 파커와 함께 밤을 맞이한 인도 소년 파이가 떠오른다. 거대한 바다는 느닷없이 블랙홀이 되어서는 세 모험가를 거침없이 빨아들였다. 시커먼 구멍을 지나서 마침내 떨어진 곳에서는 환한 빛이 이들을 맞이했다. 대체 이들이 통과한 것은 무엇일까? 세탁기 배수관? 싱크대 관??? 아무튼 이들은 물방울과 함께 바깥으로 나왔다. 급작스럽게 맞이한 자유는 늘 위험을 동반하는 법! 빗자루가 슥슥 밀쳐대자 쓸려버린 너트는 바람이라고 착각했다. 낭만적인 반응이다!



낯설고 겁도 나는 여정이었지만 셋은 멈추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하늘은 여전히 푸르렀고, 아마 바람도 살며시 불어왔을 것이다. 셋은 함께여서 힘이 났고 도전은 끝이 없었다. 평범한 화단도 이들에게는 깊디깊은 숲속이고 정글이었다. 그리고 녹이 슨 관 안에서 혼자 살고 있는 나사를 만났다. 오래도록 혼자 지내왔던 나사라면 이제 갓 모험을 시작한 세 친구들에게 특별한 것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이럴 때 가장 멋진 표현은 이것 아닐까?


"따라 와! 멋진 걸 보여 줄게!"


나사는 산 위로 올라가서 세 친구들에게 멀리 보이는 풍경들을 감상할 수 있게 해주었다. 상상하지 못했던 것들이 이들 앞에 펼쳐졌을 것이다. 낮은 곳, 좁은 곳에서는 결코 볼 수 없었던 그런 장면들을...



하지만 멋진 장면만 넋을 잃고 볼 수는 없다. 산을 올라갔으면 다시 내려와야 하는 법. 이들은 다시 길을 떠났다. 나사를 포함해서 넷으로 늘어난 인원으로! 작은 꽃송이 하나도 이들과 함께 있으면 거대한 숲으로 변신한다. 마법 같은 일이다. 어스름이 깔리는 저 노란 배경은 압도적인 색을 자랑한다. 검게 뒤로 물러난 풀잎이 밀림처럼 보인다. 이윽고 밤이 깊어왔다. 저 둥근 보름달을 배경으로 우뚝 선 네 친구들이 참으로 늠름하다. 



성냥갑은 이들에게 최고로 안락한 잠자리였다. 하룻동안 머나먼 여정을 소화한 이들은 곧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다시 태양이 솟아올랐을 때, 풀숲에서 이들 네 친구가 담긴 성냥갑을 찾은 노란 장화의 아이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이슬을 머금고 햇볕에 반짝이는 이 친구들이 얼마나 눈부셔 보였을까? 마치 다이아몬드처럼! 아이에게는 이 소소하고 사소한 것이 충분히 보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아이의 방으로 옮겨진 너트와 나사. 그리고 다시 여행을 떠난 고리와 병뚜껑이 있다. 다시 만나면 이들은 서로에게 해줄 수 있는, 해주고 싶은 말이 아주 많을 것이다. 모험은 이들을 더 성장시킬 것이고, 여행은 이들을 보다 풍요롭게 만들 것이다. 


너트와 고리와 병뚜껑과 나사의 멋진 여행! 어쩌면 이것은 자신만의 보물을 발견한 어린 아이의 상상력이 빚어낸 놀라운 모험담일 수도 있다. 또 어쩌면 이 작품을 만든 작가의 어릴 적 이야기일 수도 있다. 자라고 나서 보면 이런 걸 왜 모아두었을까 싶었던 물건들이 분명 있다. 그러나 애착을 가졌던 그 물건들을 만났을 때, 혹은 모아두었을 때 가졌던 그 기쁨의 크기는 분명 작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엄마의 눈에는 아이가 만든 소소하고 볼품없는 것들이 최고의 작품으로 변신하기도 한다. 내게는 아이가 없으니 조카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뿌듯해 하는지 생각해 봤다. 요새 미술학원을 다니면서 이것저것 만들어오는 녀석들은 그때마다 자랑하기 바쁘다. 방문마다 그림이, 액자가 걸려 있고, 책장 위에도 소소한 작품들이 나름의 실력을 뽐내면서 자리를 빛낸다. 먼지 타서 청소하기 아주 애먹지만, 그래도 쉽사리 치울 수는 없다. 작품에 어린 애정과 정성, 그리고 노력을 알기 때문이다. 


아이언맨을 좋아하는 세현군은 자신의 방문에 저런 액자를 걸어두었다. 벌어지기까지 한 볼품없는 명패 같지만, 아이에게는 슈퍼히어로 문지기다. 다현양도 밀리지 않는다. 찰흙으로 빚어서 색칠까지 마친 명패엔 좋아하는 별님도 있고 호랑이 친구도 있다. 그런데 저 보라색 동글이는, 설마... 설마... 똥은 아니겠지??? 아, 똥일지도 몰라...ㅠ.ㅠ 애들은 원래 똥이랑 친한 법이니까~



방문마다, 냉장고마다, 그리고 칠판에까지 많은 그림들이 걸려 있다. 어떤 건 테이프로 붙이고 어떤 건 자석으로 고정시켰다. 재료도 다양하다. 도화지도 있고 비닐판도 있다. 다각형 모양의 저 상자는 여러 개의 종이접기가 동원되었다. 여름이라고 부채에 무지개도 그렸고, 엄마 사랑해요 꽃도 만들어왔다. 뭘 해도 예쁠 나이, 뭘 만들어도 대단해 보이는 그런 어린이들이다. 물론, 남의 집 아이가 이렇게 만들었으면 큰 감흥이 없을 것이다. 내 조카, 내 가족이어서 예쁘고 즐겁다. 그러니 우리 아이 작품 좀 보라고 카톡으로 사진 날리며 남을 귀찮게 하지는 않겠다. ^^


나는 어땠나 생각해 봤다. 그런 상상 해보지 않던가. 집에 불이 나서 당장 몇 가지만 들고 나갈 수 있다면 뭘 가져갈 것이냐고! 통장 없으면 돈 못 찾는 시대도 아니고... 불 났는데 무겁게 컴퓨터를 들고 갈 수도 없고...(그걸 생각하면 노트북이 필요할 것도 같지만...) 수많은 책을 들고 갈수도 없고... 그래서 내가 떠올릴 것은 나의 학창시절을 밝혀주었던 소설 공책들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험난한 환경으로 도저히 맘 붙이고 뭘 할 수 없던 시절에 나는 열심히 소설을 썼다. 내가 엇나가지 않고 그래도 집에 붙어 있을 수 있었던 건 즐겁게 몰두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의 나도 이야기를 전하는 걸 참 좋아했다. 몇 장의 글을 쓰고, 다음날 짝꿍에게 어제 쓴 이야기를 전하며 까르르 웃던 게 고3 시절의 스트레스를 풀던 우리의 방법이었다. 내가 그린 전조 얼굴이다. 하하핫, 저때만 해도 나는 장차 만화가가 될 줄 알았다. 같은 얼굴을 두번 못 그리는 실력으로 만화가를 꿈꾸다니,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웃긴 일이지만, 그때는 진지했었다. 아래쪽 사진은 그 한해 뒤에 쓴 글이다. 저 소설의 주인공 이름이 '마노아'다. 그러니까 지금의 내 닉네임은 내 소설의 주인공 이름을 빌려온 것이다. 소설 속 마노아는 남자고, 지금은 나라를 잃고 떠돌아다니는 왕자고, 아주아주 아름다운 외모를 지닌, 게다가 초능력도 가진! 뭐 그런 순정만화같은 캐릭터였다. 내 취향을 반영한 결과다. 지금 생각하니 참, 유치하구나. 그래도 뭐 소중하다.^^



스크랩북도 소중하다. 나의 스크랩북은 이승환과 그 밖의 것들로 구분되어 있다. 이승환은 나에게 우열을 논할 수 없는 독보적인 존재이므로 따로 티켓을 모았다.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일억원짜리 저 지폐가 진짜라면 얼마나 좋을까~ 뭐 이런 상상해보는 것도 재밌다. 오늘 카페에서 100억 복권에 당첨되면 뭐할 거냐는 질문을 받았는데, 100억과 비교하니 1억은 참 소박하구나.^^ 그 아래 사진은 그밖의 문화 행사에 참여한 흔적들이다. 며칠 전에는 이슬람 문화전을 다녀왔는데 거기서 차도르를 걸치고 히잡도 써보았다. 즐거운 경험이다. 저 스크랩 북들은 그렇게 내가 즐거워 했고, 내가 많은 걸 배워왔던 순간순간들을 떠올리게 해준다. 기록은 그래서 소중하다. 귀차니즘 앞에 무릎 꿇지 않고 차곡차곡 쌓아둬야지. 앞으로도 쭈욱!

마지막 사진은 아까 그 '전조'가 나오는 소설을 연재한 페이지다. 마지막 연재가 2005년이었는데 벌써 몇 년이 흐른 것인가. 조금만 더 쓰면 완결이었는데 끝을 못 맺고 한참 시간이 흘렀다. 아직도 내 버킷 리스트에는 내 작품의 완결을 보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니 불이 난다든지, 무인도에 가져갈 거라든지 하는 상상에 꼭 포함되는 나만의 소중한 것들은 바로 이 책들이다. 남들에게 내보이기는 꽤 창피하기도 하고, 나만큼 애착을 가질 수도 없는 그런 것들이지만 스스로에게는 "따라와, 멋진 걸 보여줄게!" 라고 말하고 싶은 그런 친구들이다. 


오랜만에 추억에 젖어 보았다. 이 글을 쓰는 내내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 책은 아기자기한 상상력과 예쁜 그림들로 나를 즐겁게 했고, 더불어 추억 속을 서성이며 소중했던 시간들을 되새기게 했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같이 읽으면 좋을 책으로 백희나 작가의 책들이 떠오른다. 이 책처럼 상상력을 멋지게 발휘한, 소소한 것들로 아기자기하게 꾸민 소품들이 한참 뽐을 내는 즐거운 책이다. 그림책의 세계는 이렇게 넓고도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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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곰 2013-07-26 0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 님의 글을 보고 제게 가장 소중한 물건을 생각해보았어요. 학창시절 쪽지, 편지들. 그리고 몇권의 책들이네요. 아- 일억원이 든 통장이라고 말하고 싶은데... 그런날이 올까요.. ㅎㅎㅎ

마노아 2013-07-26 14:48   좋아요 0 | URL
학창 시절에 썼던 편지나 카드 등은 모두 갖고 있는데 생각만큼 잘 들여다보지는 못해요. 그런데 이사를 가거나 방정리를 해도 결코 버리지는 못하겠더라구요. 결국은 소중한 추억인 거죠. 일억 통장이라, 아 '0'이 몇 개인가요. 아찔한 돈이에요. 상상으로도요.^^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