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야네 목장은 맨날 바빠! - 목장 농부 일과 사람 7
조혜란 글.그림 / 사계절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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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사람' 시리즈 중 일곱 번째에 해당하는 '목장 농부'를 다루고 있다. 이 책은 2012년 작인데, 당시 출간 예정 도서로 20권의 책을 나열하고 있다. 현재 나와 있는 게 14권으로 뒤에 출간될 것으로 예정하고 있던 뮤지컬 배우와 채소장수가 먼저 나왔고, 사이사이 출간 예정작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먼저 준비된 작품들이 번호를 당겨서 출간됐나 보다.
조카에게는 이 시리즈가 거의 다 있는데, 없는 번호가 세권인가 네권인가 있었다. 그 없는 것들 중에서 내 눈길을 끈 게 '노야네 목장은 맨날 바빠!'였다. 아마도 이름 때문인가 보다. 내 닉네임이 '마노아'이고, 친한 지인들은 모두들 나를 '노아'라고 부르는데 이 작품의 주인공 이름이 '노야'니까.^^

학교에 다녀오는 노야를 온 집안 식구들이 반겨준다. 모두들 집이나 집주변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조카들은 집에 돌아왔을 때 이모가 있으면 무척 반가워 한다. 특히 둘째 조카 다현 양이. 재택 근무하면 아이들은 이런 점에서 좋아하지 않을까 싶다. 보고 싶은 사람을 저녁까지 기다리지 않고도 볼 수 있으니~

식구들만 노야를 반겨주는 건 아니다. 노야네 목장에는 젖소들도 아주 많이 있으니까~ 이름들도 정겹다. 먹순이, 허연이, 점순이 등등~
집에 오면 제일 먼저 우유를 한잔 마시는 노야. 어휴, 이건 무척 부러운 일인 걸. 한참 자라는 아이들이 집에 있다 보니 우유 소비량이 장난 아니다. 안 그래도 가파르게 오르는 물가에 우유값도 가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젖소들을 직접 돌보고 싶은 노야는 학교에 체험 학습 신청서를 냈다. 이제 보름 동안 집에서 어른들과 함께 소를 돌볼 예정이다. 우와 보름이라니! 도시에서는 좀처럼 상상하기 힘든 숫자다!

몸이 까만 먹순이의 눈망울이 참으로 순하다. 날짜표를 보니 2006년 생이다. 이 책이 작년에 나왔으니 60개월 조금 넘는 숫자만큼의 나이를 먹었다. 젖소들은 평균 몇 살까지 살까? 검색해 보니 12년 나오는데 정확한 수치인지 모르겠다. 지식인 답변인지라... 아무튼, 맞다고 생각하고 계산한다면 먹순이는 꽤 나이가 많은 소가 되겠다.

노야가 가장 좋아하는 소 먹순이. 노야는 먹순이가 풀을 씹어먹는 걸 볼 때면 자신도 밥이 먹고 싶다고 했다. 소가 뭘 먹는 걸 직접 본적은 없지만, 되새김질 한다는 것쯤은 안다. 배 속에 위가 무려 네 개나 있는 소이니, 소화불량은 걱정 안 해도 되겠다. 몇 번이나 되새김질 해서 잘게 부술 떼니까.

노야네 목장의 젖소는 모두 29마리다. 먹순이는 하루에 젖을 20리터나 만들어 낸다. 평균 값으로 계산해 보면 하루에 580리터를 짜내는 것이다. 목장에서 짠 젖을 바로 가게에서 파는 것은 아니다. 판매하기 위한 공정이 필요하다. 먼저 냉장차에 실어서 우유 공장으로 보내면 신선하고 좋은 젖인지 일단 검사를 하고, 젖에 섞인 먼지도 걸러낸다. 뜨거운 열로 나쁜 균을 없애고 식힌 다음 종이 갑이나 플라스틱 통에 담아 가게로 보낸다. 나 어릴 때는 비닐 팩에 든 우유를 배달해 주었는데... 그게 서울 우유였나, 서주 우유였나.. 서주는 아이스바 였던가? 암튼, 그 비닐에 든 우유 맛있었다. 요즘은 삼각형 모양 비닐 팩에 든 커피우유를 사랑한다. 지나치게 달달한 딸기 우유와 초콜릿 우유는 좋아하지 않지만, 흰우유와 커피우유는 아주 좋아한다. 초등학교 때 2교시 끝나면 우유 급식을 먹었는데, 우유 빨리 먹기 시합해서 이긴 기억도 난다. 하하하....

예전엔 노야네 목장도 우유 공장에 소젖을 팔았는데, 우유 공장은 소젖을 딱 정해진 양만큼만 가져갔다. 노야네 젖소들은 그보다 많은 젖을 냈는데 말이다. 젖이 덜 필요하면 덜 짜내면 좋겠지만 젖소 사정이 어디 그런가. 날마다 짜야 하고, 날마다 많이 남는다면 보통 문제가 아니다.

별수 없이 할머니는 우유로 맛있는 간식을 만들게 되었다. 우유로 만들 수 있는 대표적인 유제품으로 버터, 치즈 요구르트가 있다. 우유갑에 우유를 반만 넣고 한참 동안 마구 흔든 다음, 우유갑 벽에 얇게 붙은 버터를 긁어내면 고소한 버터가 완성된다고 한다. 우와, 이건 꽤 많은 에너지를 요해 보인다. 힘들겠다.ㅜ.ㅜ

치즈 만드는 건 생각보다 쉬워 보였다. 우유에 소금을 넣고 끓이다가 보글보글 끓어오를 때 불을 끄고 식초나 레몬즙을 넣으면 몽글몽글 뭉치는데, 보자기에 받쳐서 꼭꼭 눌러 물기를 빼면 치즈 완성이다. 오, 소금이 들어가서 짭짜름 했구나!!

요구르트는 보다 간단하지만 시간은 많이 걸린다. 그릇에 따뜻한 우유와 요구르트를 넣고 잘 섞은 다음 밥솥에 넣고 보온 단추를 누른다. 40분쯤 지나면 보온을 끄고 가만히 둔다. 그대로 8시간 기다리면 새콤한 요구르트 완성! 다 만들어진 요구르트를 차게 식혀서 꿀이나 잼을 섞으면 그게 바로 요플레가 되는 거지!

언니가 갖고 있는 주방기기 중에 요구르트 제조기가 있다. 밤에 자기 전에 버튼 눌러놓으면, 아침에 일어났을 때 플레인 요구르트가 완성되어 있다. 그러면 딸기잼을 섞어서 먹는데 아주 맛나다. 식빵을 구워서 발라 먹으면 또 맛있다. 우유 좋아하는 나는 요플레도 아주 좋아한다. 플레인은 심심하지만, 그래도 유제품은 다 좋아하는지라 그것도 역시 즐긴다. 아, 자꾸 요플레 먹고 싶어지네....

요구르트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내친김에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요구르트는 만들기로 할머니와 노야는 뜻을 모았다. 학교로 돌아갈 날짜는 한참 남아 있으니 노야의 도전은 끊길 염려도 없다.

할머니는 요구르트를 대량으로 만들되 맛있게 만드는 법을 연구하셨다. 요구르트 제조에 꼭 필요한 건 우유, 젖산균, 따뜻한 온도다. 노야는 맛을 보는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전기밥솥에 넣어두고 너무 오래 보온을 해버리면 순두부처럼 익어버린다. 너무 뜨겁게 하면 곤란! 포도즙도 넣어 보고 사과즙도 넣어 봤다. 과일즙을 너무 많이 넣으면 묽어지고 만다. 적절한 양 조절은 필수! 전기 오븐에 넣고 3시간도 기다려 보고 7시간을 관찰하기도 했다. 입맛에 딱 맞는 발효 시간을 찾기 위해서였다. 심혈을 기울인 실험 끝에 가장 맛있는 요구르트를 드디어 만들어 냈다. 바로 사과즙을 넣은 요구르트다!

기어이 최고의 맛을 찾아냈는데 노야네 식구만 먹고 끝낼 수는 없는 것!
할머니는 큰 통에 요구르트를 만들어 여러 친척 집에 보냈다. 하루면 도착하는 놀라운 우리나라 택배 서비스가 큰 효과를 발휘하는 순간이다.
친척 집 뿐아니라 이웃집에도 맛을 선보였다. 모두들 맛있다며 아주 좋아했다. 공짜라서가 아니라 정말 맛있을 것 같다. 사과맛 요구르트라니!!

여기서 끝나지 않고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박람회에도 다녀오셨다. 그곳에서 연 시식회에서도 요구르트의 반응은 끝내줬다. 너무 무리한 일정으로 할머니가 잠시 자리 보전을 하시긴 했지만 희소식이 들려왔다. 요구르트 주문이 들어온 것이다. 아픈 할머니가 기운 차리고 벌떡 일어나게 만들만한 소식이 아닐까.

친척들과 이웃들도 모두 맛있다며 사먹고 싶다고 했다. 어떤 식품 회사는 아주 많이 주문하기도 했다. 이 정도면 할머니 혼자서 만들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것이다. 그래서 노야네는 공장을 짓기로 했다. 요구르트를 대량 제조할 수 있는 공장 말이다.그렇게 해서 공장을 운영한 지는 벌써 일년이 되었다. 안 그래도 바빴던 노야네 집이 얼마나 더 바빠졌을지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자 이제 노야네 목장이 돌아가는 시스템을 살펴 보자.
목장에서 소를 돌보는 일은 할아버지가 전담하신다. 먹이도 주고, 소들이 노는 운동장도 청소한다. 소똥으로 거름도 만들고~
소들이 노는 '운동장'에 눈길이 간다. 사람도 좁은 집에서 갑갑함을 느끼듯이 동물들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소는 체격도 아주 크기 때문에 필요로 하는 공간도 넓다. 그런 소를 따닥따닥 붙여놓고 풀이 아닌 사료, 그것도 동족을 갈아 만든 사료를 먹이니 미친 소가 나오는 게 아닌가.

할아버지는 아픈 소가 생기면 바로 달려가신다. 새끼를 낳을 때는 산파 역할을 해주시고, 절룩이는 소가 있으면 바로 치료를 해주신다. 배탈이 난 소에게는 붙잡아 두고 약을 먹이신다. 할아버지는 젖소들에게 의사샘과 마찬가지다.

소들에게 깨끗한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도 아주 중요하다. 소들이 놀고 쉬고 자는 운동장에는 왕겨를 깔아준다. 소똥을 바로바로 치워주지만 일주일이 지나면 다시 더러워진다. 그러면 왕겨를 싹 걷어내고 깨끗한 겨를 새로 깔아준다. 깨끗한 환경에서 지내는 소들이 행복해지면 젖도 더 잘 나오고 더 영양가 있지 않을까?

할아버지는 소똥과 왕겨를 섞어서 헛간에 쌓아 두신다. 이렇게 하면 역시 영양가 높은 거름이 되기 때문이다. 뭐, 냄새는 아주 대단할 테지만!

이렇게 만들어진 거름은 노야 아빠가 쓰신다. 아빠는 소들이 먹을 풀을 기르시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노야 아빠는 농부라고 해야 할까?
아빠는 트랙터로 밭을 가신다. 그러면 거름과 흙이 잘 섞이고 풀이 뿌리를 잘 내린다.
씨가 골고루 자리잡도록 땅을 곱게 고르고, 씨를 뿌리고 나면 흙을 살짝 덮는다.
그렇게 여섯 달쯤 보살피면 풀이 노야 키만큼 자란다. 세상에! 그렇게 크게 자랄 줄 몰랐다. 소가 먹을 풀이 많이 필요한 곳에서는 이렇게 풀을 재배하는구나!

풀을 거두는 날, 트랙터가 바삐 움직인다. 첫번째 트랙터가 풀을 눕히고 잘게 썰면 두 번째트랙터가 둥글게 만다. 그러면 세 번째 트랙터가 비닐로 꼭꼭 싼다. 오, 시골길 지날 때 논에 쌓여 있던 둥근 비닐이 이거였구나! 오늘 처음 알았다. 그동안 무척 궁금해 했는데, 같이 보던 다른 사람들도 그게 뭔지 몰랐나 보다. 아무도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도시 촌뜨기는 이게 문제다. 당최 농사에 대해서 아는 게 없어..ㅜ.ㅜ

그런데 이 비닐 속에 비밀이 하나 있다. 풀이 비닐 속에서 누렇게 익어가면서 발효가 되는 것이다. 아니 어떻게! 비밀은 젖산균이다. 요구르트에 넣는 그 젖산균을 비닐 속에 넣었던 것이다.
잘 익은 풀이랑 마른풀이랑 볏짚과 영양제를 섞어서 소들을 먹인다. 풀을 먹은 소는 맛있는 젖을 내고, 똥을 눈다. 그 똥이 다시 거름이 되어 풀을 잘 키우고, 소를 살 찌운다. 자연스럽고 친환경적인 순환이다. 버릴 게 하나 없는 노야네 목장 시스템이다.

해드 뜨기 전 할머니는 불을 환하게 밝히고 소젖을 짜신다. 젖 짜는 방에 들어온 소들은 줄지어 서서서는 탱탱하게 부푼 젖을 짜 주기를 기다린다.
할머니는 젖꼭지를 깨끗하게 삶은 헝겊으로 꼼꼼히 닦고는 빨대 네 개가 달린 기계를 젖에 끼우신다. 그리고 탱탱하게 불은 젖이 쪼글쪼글해질 때까지 짠다. 그러면 소들은 시원해 한다.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도랑 치고 가재 잡고~
젖은 저녁에도 한 번 더 짜야 한다. 하루에 두 번은 짜줘야 하니 굉장히 바쁠 것이다.
막내 고모가 시골에서 목장을 하시는데 가족 행사에도 한번 나오시질 못한다. 하루도 자리를 비울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인건비를 따로 쓰지 않는 한 바깥 나들이는 택도 없을 듯하다.

자, 이렇게 짜놓은 젖을 삼촌이 요구르트 공장으로 가져가신다. 요구르트를 만들기 전 먼저 통 안을 깨끗이 세척하는 게 중요하다. 커다란 통 안으로 심지어 직접 들어가서 닦는다. 금방 상할 수 있는 성질의 요구르트니 날마다 깨끗하게 닦는 과정은 굉장히 중요할 것이다. 우유가 닿았던 기계들도 싹싹 닦고, 우유가 지나가는 길은 뜨거운 물로 소독한다. 노야도 열심히 삼촌을 도와서 일을 한다.

세척이 끝나면 소젖을 큰 통에 넣고 뜨겁게 데워 균을 없앤다. 그림을 보니 통 주변으로 뜨거운 물이 지나면서 우유를 데우고, 찬물이 지나가면서 우유를 식힌다. 우유에 물이 섞이면 안 되니 통은 이중 구조로 되어 있을 것이다.
식는 과정이 끝나면 젖산균을 넣고 다섯 시간을 기다린다. 기계 작업이어서인지 8시간씩 기다리지는 않는 모양이다.

완성된 요구르트는 포장 작업을 통해서 판매용으로 거듭난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와서 요구르트를 병에 담고 상표를 붙이고, 날짜도 찍어서 상자에 담는다. 지역에 일자리까지 창출했으니 노야네 목장과 요구르트 공장은 얼마나 대단한 기여를 한 것인가. 괜히 독자인 내가 으쓱해진다.
이 모든 과정이 끝나면 택배 차가 도착한다. 모두들 나와서 요구르트를 차에 싣는다. 이게 액체 종류이니 얼마나 무겁겠는가. 택배 기사님께만 맡길 수는 없는 노릇! 일손을 거드니 일도 빨리 끝난다. 역시 택배 업체까지 일거리를 늘려준 노야네 목장! 지역 경제에 큰 보탬이 되고 있다.

요구르트는 대한민국 곳곳으로 전해졌다. 강화도, 파주, 인제, 강릉, 횡성에도 가고,
태백, 단양, 아산, 안성, 이천, 수원에도 가고~
청양, 공주, 안동, 경주도 지나치지 않는다.
제주도, 진도, 칠곡, 광주, 남원, 전주까지 구석구석 안 가는 곳이 없다.
이 모든 지역들을 소개하면서 해당 지역의 특산물도 같이 등장한다.
초등 고학년 정도라면 사회 시간에 들어보았을 이름들이다.
내가 알고 있는 지역 특산물이 맞는지 그림을 보면서 확인하는 작업이 재밌었다.
역시 어릴 때 배운 게 더 오래 기억에 남는 가 보다. ^^

요리 잘하시는 할머니는 요구르트만 만드시진 않는다. 밭에서 따온 시금치와 단호박, 무화과와 고구마를 가지고 케이크도 만드신다. 우와아!!!!
요구르트 스펀지 케이크는 그 옛날 내가 자주 만들던 밥통 케이크를 연상 시켰다. 한동안 밀가루 가지고 씨름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밀가루 언제 떨어지냐고 아우성치던 엄니의 한숨까지....;;;;

시금치 케이크는 어떤 맛일지 잘 상상이 안 간다. 작가님은 아주 맛있다고 쓰셨는데 정말일까? 칼국수 중에 주황색, 초록색 색깔을 낸 면이 있다. 그때 초록색 면발은 시금치로 만든 거라고 들었는데 정말인가? 본연의 맛을 드러내는 게 아니라 다만 초록 빛깔을 내는 정도라면 그 비쥬얼은 또 먹음직스러울지 궁금해졌다. 따끈따끈한 빵을 생각하면 나름 맛있어 보일지도......

단호박 치즈 케이크! 오오오, 내가 좋아하는 메뉴다. 오늘 돌잔치에 다녀왔는데 단호박은 먹지 않았다. 며칠 전에 급식으로 먹었으므로 굳이 배부른 메뉴는 사양한 것이다. 근데 이 밤중에 막 떠오르네...;;;;

옥수수 막대 과자! 과자까지 만드시다니, 할머니는 진정한 마이더스의 손!
무과과 잼 땅콩 과자도 있다. 아, 정말 다채로운 메뉴들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라 고구마 비스킷도 대령이요~
그야말로 친환경 유기농 먹거리들이 아닌가!
이렇게 만든 것들은 칼로리도 그다지 안 높을 것만 같다. 시판되는 제품들과는 DNA가 다르다! 놀라워라!

그런데 대체 이렇게 많은 케이크와 과자는 왜 만든 것일까?
오늘이 특별한 날이기 때문이다.
바로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젖소와 함께 생활한 지 30년이 된 날이기 때문이다.
이런 날은 젖소와 함께 기념해야 하는 법!
손님들도 초대했다. 요구르트 공장에서 일하시는 아주머니들과 택배 기사님, 그리고 노야네 가족이 모두 모였다. 결국 마을의 이웃들이 뭉친 것이다.
손님들도 센스 있게 빈손으로 오지 않았다. 그리고 초대한 손님들에게 한껏 준비한 음식들을 내오는 노야네 가족들. 머리에 두른 장식이 꼭 아메리카 원주민을 떠올리게 한다.
손님들만 먹는 것은 아니다. 제일 공이 많은 젖소들에게도 상 주는 걸 잊지 않으신다. 할머니와 노야는 버터와 당근, 감자와 고구마, 사과랑 들깨를 젖소들에게 조금씩 먹였다. 그러면서 감사의 마음을 전달했다. 우와, 그런데 소들이 저런 것도 먹는구나. 놀랍다!!!

노야의 학교 친구들도 목장에 왔다. 보름만에 보는 친구는 어쩐지 조금 자란 것 같다. 보다 성숙해진 느낌!
친구들과 함께 맛있는 식사를 했다. 할머니가 솜씨를 부린 갖은 음식들이 친구들 사이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었을 것이다. 케이크에 과자에 우유라니! 환상의 조합이 아닌가.

마을 안에서 마을 주민들이 함께 일할 공간이 있고, 함께 음식을 나누며 공부도 하는 이러한 흐름이 참으로 이상적으로 보인다. 요즘처럼 대기업이 지방까지 모두 독식해버린 시스템에서는 지역에서 만들어진 돈이 서울로 그대로 이동하는 게 일반화되어 있다. 뭐 이뿐인가. 지방에서 만든 전기도 서울로 서울로 이동한다. 밀양의 송전탑이 새삼 떠오른다. 공동체가 살아 있는 노야네 목장과 공장, 그리고 마을 공동체의 모습이 정겹고 훈훈하다.

이야기가 끝나고 난 뒤 책 속 이야기이다.
요구르트가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살펴주었다. 사막의 유목민들이 우연히 발효된 우유를 알게 된 게 그 시작이었다. 몽골 관련 책들을 보면 우유를 이용한 엄청나게 다양한 유제품들을 확인할 수 있다. 유제품 아니어도 우리와 무척 비슷한 식생활을 찾을 수 있는데 그걸 비교해보는 것도 좋은 공부가 될 것이다. 추천!!

우리나라는 유난히 발효 음식이 발달한 편이다. 또 어떤 발효 음식이 있는지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힌트는 우리가 아주 자주 먹는다는 것!!

소에 대한 이야기도 실었다. 일하는 소 하면 황소! 젖을 내주는 젖소! 고기를 내주는 육우가 그것들이다. 도무지 버릴 게 없는 소에 대해서도 얘기해보면 좋겠다. 가죽과 뿔, 심지어 피까지! 정말 알뜰하게 소를 사용하는 인간들이다. 이게 소한테는 좋은 게 아니겠지? 채식을 하는 것도 아니지만 어쩐지 좀 미안하긴 하다.

동물들에 대한 이야기도 했다. 앞서 이야기 했듯이 동물들이 편안함을 느끼게 해줄 만큼의 공간 확보가 필요하다. 동물들 역시 깨끗한 환경을 좋아하고 맛있는 걸 먹고 싶어한다. 소만 그런 게 아니다. 다른 동물들도 그렇다. 뭐, 인간도 당연히 빠질 수 없고!

나 역시 계속 혼자 자버릇 하니까 이제 누구랑 방을 같이 쓰지는 못할 것 같다. 나보다 훨씬 훨씬 몸집이 큰 소들은 오죽하겠나. 그런 면에서 노야네 목장은 참으로 훌륭하다!

마지막에 작가님 이야기도 나왔다. 꽤 긴 편인데 그림 그려지듯이 아주 자세하게, 생동감 있게 이야기에 전달되었다. 작가님 글솜씨가 끝내줍니다! 작품으로 뭐가 있나 살펴보니 내가 읽은 책들도 꽤 됐다. 어쩐지 더 반갑다.^^

도움 주신 분들 이름도 나오는데 취재를 간 목장 이름은 '평촌 목장'이다. 그리고 세상에! '신노야'라는 이름도 있다. 목장집 사람인가 보다. 진짜 노야 씨는 이 책을 보고 얼마나 기뻤을까. 노야 씨가 아이인지 어른인지는 모르겠지만 역시 또 괜시리 반갑기만 하다. 나랑 이름이 비슷해요. 아주 많이!!

책의 양장본 표지 안쪽 그림이다. 시작할 때의 그림은 밑그림 정도인데, 뒷장의 안쪽에는 정확한 위치까지 이름을 써가며 적어주었다. 작가님 스케치 밑그림을 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뭐 보라고 실어주신 거겠지만, 쫌! 반가웠다.^^

노야네 목장은 무척 바쁘다. 다들 자기가 해야할 몫이 있고, 그게 서로 맞물려서 잘 굴러가기 때문에 바빠도 여유가 있고 활기차며, 무엇보다도 영양가가 있다. 가업을 이어서 기업을 이끄는 것도 마음에 들고, 식구들이 얼굴 붉히지 않고 협업하는 것도 보기 좋다. 아이가 보름이나 집안 일을 거드는데 학교 가서 공부하라고 내쫓지 않은 것도 흐뭇했다. 살아있는 교육을 현장에서 직접 배우는데 어딜 가라는 말인가. 이런 게 참교육이지!

'일과 사람' 시리즈는 특정 직업을 가진 사람의 일상을 보여주면서 그 일의 속성을 편안하고도 자세하게 설명해 준다. 일과 사람에 대해서 설명하지만, 그 속에서도 이야기가 있기 때문에 다가가기가 쉽고 일과 사람에 대해서 알아가는 것도 보다 쉽고 재밌다. 즉 재미와 정보를 함께 제공해 주니 얼마나 좋은 시리즈인가.
전부터 느꼈던 거지만 사계절은 '기획'에 있어서는 늘 발군이었다. 이 책도 그렇다. 우리 조카의 책장에도 시리즈로 묶여서 꽂혀 있는 것도 그 증거다. 한 번 사면 이어서 계속 사게 만드는 놀라운 힘! 그리고 독자를 만족시키는 놀라운 저력!

조금 묵혀 두었다가 8월 조카 생일에 선물로 줄 생각이다. 가족들이 목장 체험이나 견학을 다녀올 수 있다면 더 좋겠다. 나중에라도 그런 기회가 생긴다면 조카는 이 책을 읽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반가워할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일 테고. ^^
유익한 독서였다.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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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24 17: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7-25 00: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7-30 05: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7-30 11: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창밍의 두 번째 설날 가로세로그림책 9
엔다 와일리 글, 마리에 토르하우게 그림, 김루시아 옮김 / 초록개구리 / 2013년 5월
평점 :
절판


아일랜드에 살고 있는 중국인 소년 창밍!
팽팽한 맞수 그로브 초등학교와의 축구 시합에 학교 대표로 나가게 되었다.
한껏 신이 난 창밍, 그러나 문제가 생겼다.
시합이 열리는 때에 창밍의 가족은 중국에 가기로 되어 있었던 것이다.

순식간에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소년이 되어버린 창밍!
이제 창밍은 중국에 가기 싫어졌다.
심지어 자신이 중국인이라는 사실마저 싫어졌다.
멀쩡히 사용하고 있던 자기 이름도 마음에 안 든다.
친구들은 이름을 먼저 부르고 성을 나중에 쓰는데, 자신만 성뒤에 이름을 붙여 쓴다.
창밍의 이름은 '영원히 밝게 빛나는' 이란 뜻이다.
중국인인 창밍의 엄마가 아일랜드로 건너와 아기를 낳았을 때 밤하늘에 보름달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한다. 저 달처럼 영원히 밝게 빛나라는 염원이 담긴 멋진 이름이다.
하지만 창밍은 이 특별한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냥 친구들처럼 평범한 이름이 더 좋다.
지금 창밍에게는 중국과 관련된 모든 것들이 싫어지고 있는 중인 것이다.

창밍의 할머니는 베이징에 살고 계시다. 창밍의 가족과는 한 달에 한 번 통화를 한다. 엄맘는 몇 달에 한 번씩 할머니에게 창밍의 사진을 보내 드린다. 할머니는 창밍에 대해서 모르는 게 없다.
창밍의 집에도 할머니 사진이 많다. 한번도 보지 못했지만 서로를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집에서 창밍과 엄마 아빠 모두 중국어로 말하기 때문에 창밍은 할머니와 전화 통화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잔뜩 골이 나버린 이 소년은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할머니를 신경 쓰는 것조차 싫어져버렸다.

결국 창밍의 엄마는 담임 선생님께 이 문제를 의논드렸다. 지혜로운 선생님은 묘안을 짜냈다.
사실 학교에서는 다른 나라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배우는 시간이 있어서 문화적 이질감을 줄이는 교육을 하고 있었다.
레바티는 인도에서 왔는데 그 어머니가 학교에 오셔서 아이들에게 인도 카레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신 적이 있고, 애런 제도 출신인 로이진의 아버지는 틴 휘슬을 연주해 주시기도 했다. 선생님은 창밍에게도 이번 일이 축구 시합을 못 나가는 경험이 아니라 중국을 여행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만들어줄 생각이었다.

그리하여 창밍은 학교 대표로 중국의 설날을 취재해 오는 특파원으로 임명받았다.
선생님은 학교 사진기와 커다란 공책도 주셨다.
이 공책에 중국을 담아오라는 것이다.
그리고 창밍이 돌아오면 그걸 모두에게 보여주고 하루 종일 중국의 설날에 대해 배우는 날로 정하기로 했다.
반 아이들 모두가 박수를 쳐주었다. 창밍은 신이 났다.
중국에 가는 일이 기다려진 것이다.

베이징으로 가는 비행기를 12시간 동안 탔다.
엄마에게서 들은 열두 띠 동물 이야기를 공책에 그려나갔다.
눈썹까지 달린 밝은 색의 뱀이 인상적이다. 창밍은 뱀띠다.
엄마는 뱀 띠 해에 태어난 사람은 마음이 섬세하고 친절하다고 하셨다.
창밍은 보다 섬세하고 친절한 사람이 될 것만 같다.
그리고 마침내 할머니를 만났다. 주름진 얼굴 가득 웃음을 피워낸 할머니가 창밍을 꼭 안아 주셨다. 창밍은 이상하면서도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창밍은 아빠를 도와 설맞이 준비를 했다.
커다란 빨간 종이에 행운을 뜻하는 글귀를 적어 대문 양쪽에 붙였다.
그런 다음 머리를 자르러 갔다. 새해를 맞아 머리를 자르면 복이 온다고 할머니가 말씀해 주셨다.
창밍은 그로브 초등학교와의 축구 시합에 이겨서 다음 경기에 나갈 수 있게 해달라고 소원을 빌었다.

집안은 잔치 준비로 분주했다. 여러 음식도 만들었다. 그 중에 만두가 있었다.
어떤 만두에는 동전을, 어떤 만두에는 대추를 넣었다.
동전이 들어간 만두를 먹으면 부자가 된다고 하고, 대추가 들어간 만두를 먹으면 행운이 온다고 할머니는 말씀하셨다.

나는 대추가 들어간 만두를 먹어서 행운으로 부자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살짝 생각했다. ㅎㅎㅎ

중국에서 보낸 하루하루는 즐거웠다.
많은 가족들이 함께 모여서 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누고 폭죽을 터뜨렸다.
새해 첫날에는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붉은색 돈 봉투도 받았다. 조상을 기리는 차례도 올렸다.
창밍은 이곳에서 정월 대보름도 지냈다.
달콤한 떡을 나눠 먹고 연등에 불도 밝혔다.
거리마다 가득한 붉은 등을 보며 축제를 즐겼다.
창밍이 찍은 사진은 수백 장을 넘겼다. 공책에도 그림과 메모가 가득했다.
그리고 창밍의 학교가 그로브를 이겨서 창밍은 다음 시합에 나갈 수 있게 되었다.
소원이 이뤄진 것이다. 이렇게 행복할 수가!

창밍은 할머니를 꼭 끌어안았다.
이 순간 창밍은 자신이 중국인이라는 게 참 좋았다.
불만으로 가득 찼던 모든 것들이 행운으로, 고마움으로, 또 멋진 추억으로 다시 새겨진 것이다.
"신니엔 콰이러!"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창밍의 두번째 설날은 생애 최고의 날이 되었다.
그리고 이제 아일랜드로 돌아가면 그 멋진 기억들을 친구들과 나눌 수도 있다.
학교 대표 특파원, 제대로 뽑았다.

너와 나, 같음과 다름을 이어주는 다문화 그림책 시리즈 '너와 나를 잇는 다리'다.
라두 아저씨가 남긴 선물. 루마니아에서 온 건축 기사 아저씨와 친구가 된 조의 이야기이다.
로베르토의 소원 나무. 축구의 나라 브라질에서 온 로베르토 이야기.
올란나의 목도리. 나이지리아에서 온 올란나가 특별한 축제를 경험했다.
나머지 시리즈들도 읽고 싶어졌다. 기획이 훌륭하다.
창밍의 두번째 설말은 그림도 재밌다. 눈이 작고 옆으로 찢어진, 소위 말하는 동양적 눈매가 정감있게 그려졌다.

책의 앞뒤 표지 안쪽에 그려진 우표들이다. 나라 이름이 적혀 있는 게 재밌어서 찍어봤다.
근데 정말 이렇게 생긴 우표가 있는 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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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만들었어 - 2015 오픈키드 좋은그림책 목록 추천도서, 2014 아침독서신문 선정, 2013 고래가숨쉬는도서관 여름방학 추천도서, 서울시교육청 어린이도서관 겨울방학 권장도서 바람그림책 12
하세가와 요시후미 글.그림, 김소연 옮김 / 천개의바람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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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3학년인 요시후미. 아빠가 돌아가시고 엄마와 누나랑 셋이 살고 있는 소년이다.
일본에서도 냄비 하나에 젓가락 같이 담그는지는 모르겠지만...
한상에 둘러앉은 단란한 가족이 보기 좋다.
옆에서는 고양이와 강아지(?)가 으르렁 거리는데 그것도 나름 정겹다.

엄마는 재봉틀로 옷 만드는 일을 하신다. 유도복이나 검도복의 안감을 꿰매는 것이다.
일본의 고유 스포츠니 수요가 많을 테지.
어느 날 요시후미는 청바지 사고 싶다고 말했다.
엄마는 재봉틀로 청바지를 만들어 주셨고, 검도복 천으로 만든 청바지는 어딘가 좀 이상했다.
그걸 입고 학교에 가니 친구들이 청바지 같은데 청바지 아니라고 마구 웃었다.
아이는 부끄러웠다.

요시후미는 땀을 많이 흘리는 편이다.
엄마는 체육복 윗도리가 두껍다며 얇은 천으로 만들어 주셨다.
어쩐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는데 역시나였다.
와이셔츠 같은 반들반들한 천으로 만들어 주신 체육복을 보고 친구들은 회사원 같다며 놀려댔다. 체육복 같은데 체육복이 아니라며...
아이는 울적해졌다.

친구 히로유키가 들고 온 가방이 멋져 보였다.
이 정도라면 엄마가 충분히 만들어 주실 수 있을 것 같았다.
"좋아. 엄마가 재봉틀로 만들어 줄게. 엄마는 뭐든지 만들 수 있어."
자신 있게 말씀하신 것처럼 엄마는 가방을 만들어 주셨는데 문제는 이름이었다.
가방 한가운데에'요시오'라고 수를 놓으신 것이다.
요시후미가 이름인데 요시오라고 적혀 있으니 친구들은 또 놀려대기 바빴다.
이름 다른 건 그렇다쳐도 일단 이렇게 큼직한 이름이 독자는 더 불편하지만 아무튼!
엄마의 마음은 '요시오'였다.
2년 전 아빠가 병으로 돌아가셨을 때 친척들은 아이의 이름이 안 좋아서 그렇다며 '요시오'라고 마음대로 바꿔버렸다. 그 뒤로 엄마와 누나, 친척들까지 모두 아이를 요시오라고 부른다.
그러나 친구들이 그런 사정을 알리 없지 않은가. 아이는 속상했다.

어느 날 아빠 참관 수업 안내문을 받아왔다.
엄마는 직접 오시겠다고 했지만 아이는 창피하니까 됐다고 말했다.
"갈 거야. 엄마가 아빠 대신이니까."
엄마는 양보하지 않으셨다. 여러모로 씩씩한, 생활력도 강한 어머니시다.

하지만 아니는 심통이 나버렸다.
그런 생각을 한 건 아닌데 이렇게 말해 버린 것이다.
"나도 다른 애들처럼 아빠가 좋아. 아빠가 왔으면 좋겠어. 아빠 만들어 줘. 뭐든지 만들 수 있다고 했잖아. 아빠를 만들어 줘."

억지라는 것, 알고 있었다. 엄마가 만들어줄 수 없다는 것도.
이렇게 말하면 엄마가 속상할 거라고 알고 있었지만, 이미 그렇게 말해버렸다.
엄마는 조금 슬픈 얼굴로 말씀하셨다.
"미안하다. 엄마 재봉틀로 아빠는 만들 수 없어."
밥에서 모래 맛이 났다.
엄마도, 누다도 그랬을 것이다.
후회가 됐지만, 한번 쏟은 말은 주워 담을 수가 없다.
말의 힘은 정말로 강력하다.
엄마는 아이를 야단치는 대신 미안해 하셨다.
당신도 속상하셨겠지만 어린 아들의 상처입 마음을 먼저 보살펴 주셨다.
엄마는 그런 존재다.

아빠 참관 수업ㅈ 날, 아무도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엄마가 오셨다.
양복을 입고서 아빠들 사이에 서 계셨다.
체육 시간도 아닌데 땀이 났다.

엄마는 아이의 뒤로 와서 양복을 가리키며 속삭였다.
"엄마가 만들었어."

저 자랑스럽고 뿌듯한 얼굴! 스스로 양복을 입고 아빠 역할까지 해내신 엄마. 어쩌면 아이는 그 순간은 당황스럽고 창피하다고 여겼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이가 조금만 더 자란다면, 엄마가 주신 그 사랑에 가슴이 벅차오를 것이다.
엄마는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셨다. 아빠의 빈자리를 메꾸고 사랑으로 보살펴 주셨다. 이보다 더 큰 선물이 어디 있을까.

이야기가 무척 단순하지만 인상적이고 감동적이다.
그림도 이야기와 매우 잘 어울린다. 이런 이야기에 정교한 그림보다는 이렇게 투박하고 거칠지만 '정'이 느껴지는 그림이 더 좋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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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06-29 1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세가와 요시후미 님 작품은 아주 작은 일에서
아주 재미나고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참 잘 풀어내셔요.

어느새 또 이런 예쁜 그림책이 번역되었군요.

첫 번째 그림은 식구들끼리 '전골잔치' 하는 그림이네요.
일본사람은 좋은 일 있으면 저렇게 전골잔치를 하지요.

마노아 2013-06-30 23:47   좋아요 0 | URL
하세가와 요시후미 님 작품을 처음 접한 듯해요. 이 작품을 보고 나서 다른 작품도 더 찾아보고 싶어졌어요.
첫인상이 아주 좋습니다.
첫 그림이 '전골잔치' 장면이군요. 알려주셔서 고마워요. ^^
 
나도 예민할 거야 사계절 웃는 코끼리 14
유은실 지음, 김유대 그림 / 사계절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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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에서 힘주느라 잔뜩 인상을 찡그린 정이의 표정이 재밌다.
이 책의 표지 그림이다.
마찬가지로 정이가 주인공인 '나도 편식할 거야'를 미처 읽지 못했는데, 캐릭터가 겹치는 걸 보니 앞의 이야기도 내용이 짐작이 간다.
지나치게 예민해서 키도 잘 자라지 않고 몸도 마른 오빠에 비해서 튼튼하고 잘 먹고 신경도 무딘 편인 정이가 오빠에게 기울어 있는 관심을 가져오고 싶어서 예민하고 싶다고 말하려는 게 아닐까.

내 짐작이 틀리지 않았다.
고모 할머니의 조언에 따라 오빠에게 침대를 사주겠다고 하자 정이는 속상하다.
머리만 닿으면 어디서든 잘 자는 정이에게 굳이 필요하지 않을 수 있지만, 아이 마음이야 어디 그렇던가.
이래서 이층 침대가 필요한가 보다.
우리 조카들은 열두살에 여덟살이지만 여전히 무언가를 사려고 하면 똑같은 걸 두개 사야 한다.
서로 다른 걸 두개 사면 싸움이 나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는 배낭처럼 메고 쓸 수 있는 물총 가방을 두 개 샀다.
열두 살 짜리가 여덟 살과 똑같이 굴면서 놀려고 하고, 여덟 살은 지가 열두 살인 줄 착각하면서 이기려 드니 남매 간에 싸움이 잦을 수밖에 없다.
이 책의 주인공 정이와 오빠 혁이는 성격이 확연히 다르다.
오빠는 좀 샌님 분위기인데 정이는 장부 같다.
이러다가 정이가 혁이 키를 훨씬 넘겨 버리면 혁이가 정이한테 맞을 지도...;;;;

회사가 망한 뒤 농부 학교에 들어가서 농사일을 직접 배운 아빠.
그리고 이제는 정말 농부가 되어 땅을 일구는 자랑스런 아빠다.
그 바람에 주말 부부가 되긴 했지만 두 분 사이는 좋아 보인다.
엄마는 우체국에 근무하는 공무원인 듯.
시리즈가 더 나가면 엄마가 시골 우체국으로 전근을 가실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되면 정이네 식구가 모두 한 집에서 살 수 있겠지.


정이는 아빠를 완전히 빼다박았다. 얼굴 생김새도, 성격이나 여러 특성도 말이다.
여자 아이인 정이가 이리 생긴 아빠를 판박이로 한다는 것은 솔직히 마음이 아프지만,
씩씩한 우리 정이는 아빠 닮은 얼굴 덕분에 길도 잃지 않고 마을을 얼마든지 돌아다닐 수 있다.
동네 할머니들도 한눈에 정이가 누구네 집 딸인지 알아보기 때문이다.

먹보 정이에게 먹고 싶은 걸 참는 건 심각한 고문이다.
작가님의 친구 중에는 자는 게 먹는 것보다 좋아서 잘 때 깨우는 걸 가장 싫어했다고 하는데, 우리 정이는 자기만 빼고 먹는 걸 가장 싫어한다. 그건 정말 서러운 일!
그런데 문제는 닭고기다!
한입 베어물면 군침이 자르르 흐르는 맛난 고기가 집에서 키우던 꼬붕이였다.
아, 잔인한 현실! 마음의 울림을 따르자니 뱃속의 부르짖음이 역정을 낸다.
기어이 눈물 콧물 쏟으며 닭고기를 먹는 정이.
하하하, 어른들 보기에 귀엽고 재밌지만 어린 정이 입장에서는 잔인한 먹이사슬 관계를 깨닫는 순간이다.
'꼬붕아 미안해. 너는 정말 맛있구나.'
나는 슬프다. 맛있어서 슬프다.
(이 부분은 마치 다락방님의 시를 보는 듯한 느낌!!!)
정이의 마음 속 표현이 시적이다. 웃어서 미안한데, 정말 재밌었단다.

책속 부록이다.
7,8세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책인데, 이맘 때의 아이들은 스티커에 열광하기 마련!
그림이 개성있고 거친 편인데, 똥 좋아하는 또래 아이들의 눈높이에는 아주 즐겁게 보이지 않을까 싶다.
물론, 그게 나의 취향은 아니지만...^^

유은실 작가님 책 중에서 대상 연령대가 가장 어린 책이었다.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초등 고학년이나 청소년 대상 소설 쪽이 내게는 더 깊은 울림을 준다. 그래도 유아 어린이 용 책도 특유의 밝고 씩씩한 기운으로 잘 읽혔다. 여전히 반가운 작가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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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3-06-25 0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하 다락방님의 시를 보는 듯한 느낌이란 말씀 아주 딱이네요 ^^

마노아 2013-06-25 15:36   좋아요 0 | URL
하하핫, 바로 알아 보시는 군요. 그쵸? 딱 그 느낌이에요.^^

다락방 2013-06-27 08:01   좋아요 0 | URL
아하하하 바로 이 대화였군요! 하하하하하

마노아 2013-06-27 09:18   좋아요 0 | URL
하하핫, 동의가 되십니까? ㅎㅎㅎ

다락방 2013-06-27 10:01   좋아요 0 | URL
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마노아 2013-06-27 13:17   좋아요 0 | URL
이구동성으로 합창할 판이에요. 네! ㅋㅋㅋㅋ
 
동생이 생겼어요 병만이와 동만이 그리고 만만이 3
허은순 지음, 김이조 그림 / 보리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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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만이는 내 동생이에요.
아빠가 신문 가져오라면 나 대신 가져오는 동만이.
입던 옷 싫증 날 때쯤 되면 내 옷을 물려 입는 동만이.
오줌 누고 물 내리려고 하는데, 오줌 마렵다고 종종걸음으로 오는 내 동생 동만이.
동생이 있다는 건 귀찮은 일만은 아니에요.
가끔 동만이가 엄마, 아빠한테 이를 때만 빼고요.


병만이와 동만이 시리즈 3편을 여는 첫 부분이다.
~하고 ~하는 동만이~로 소개하는 건 앞의 시리즈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이렇게 운율감 느끼게 하는 소개 글은 뒷 부분에서 구체적인 사례로 다시 확인할 수 있다.
요렇게만 봤을 때는 동만이가 자발적으로 심부름도 하고 형아랑 찰싹 붙어서 무척 정겨운 분위기를 보이는 것 같은데, 속사정을 알아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아빠가 자신에게 시킨 심부름을 마치 처음부터 동만이 시킨 것처럼 살짝 속여 먹는 병만이. 뭐 사기치는 건 아니지만 나름 얄밉기도 한 것이, 울 언니가 나 어릴 때 많이 써먹었던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냥 해달라고 해도 기꺼이 해주는데 꼭 거짓말 치는 게 괘씸하다는 이야기!

이번 이야기의 주제는 '동생'이다. 지난 번에 동생 잠깐 보는 동안 '엎어지면 코 닿을 데' 다녀온 엄마 때문에 잔뜩 애먹은 병만이는 당연히 진짜 동생은 싫다. 그렇지만 동생 없는 동만이는 동생 만들어 달라고 엄마를 조르기 바쁘다. 빨래 너는 엄마의 손 끝에 '동만이 돌 기념' 수건이 보인다. 동만이 돌 지난지 얼마 안 된 때라는 것도 짐작 가능하다. 그림으로 상황과 분위기를 잘 설명해 주었다.

동생 소리가 강아지 소리로 바뀐 것은 TV 프로그램을 보고 난 뒤였다.
불이 활활 타오르는 고리를 훌쩍 뛰어넘는 커다란 개를 보았던 것이다.
어릴 적에 오락실에서 인기 있었던 서커스가 생각난다.
사자가 불타는 고리를 훌쩍 뛰어넘는 게임이었는데, 점프를 잘못하면 홀랑 타서 시커멓게 변해서 죽어버렸다. 아, 서커스가 아니라 올림픽이었나???
암튼, 그 오락게임은 심장 떨려서 못했고 난 주로 '원더보이'를 했다.
아, 갑자기 옛날 오락 하고 싶어지네. 요새는 오락실 가도 이런 게임은 없을 것 같은데....

하여간! 그리하여 일심동체가 되어서 강아지 키우게 해달라고 조르는 병만이와 동만이 형제!
강아지마저 오면 어쩐지 생명의 위협을 느낄 것 같은 로봇 녀석의 벌벌 떠는 모습도 재미있다.

아빠 엄마를 모두 협공한 덕분에 결국 강아지를 키우기로 결정했다.
TV에 나왔던 그 개의 새끼를 데려오기로 한 것이다.
경산에 산다는 강아지를 데려오기 위해서 식구들은 먼 길을 가야 했다.
가스불? 현관? 지갑?
혹시 깜박한 것이 없는 지 하나하나 되짚어 보는 엄마의 표정이 진지하다.
깜박깜박!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아침에 출근할 때 뭔가 찝찝한 느낌이 나면 그날은 무언가 두고 온 게 있는 날이다. 당장 생각이 안 나서 부랴부랴 버스에 오르면 그 순간 짠!하고 잊어버렸던 게 떠오르곤 한다. 하지만 이미 버스는 떠났지...;;;

평소 형아의 로봇 인형에 눈독 들이던 동만이가 형 잠든 사이에 몰래 로봇을 빼내오고 있다.
이후 그림에서는 모두 자기 등에 두른 포대기에 업고 있는데 병만이가 못 알아차린다.ㅎㅎㅎ


병만이는 TV에서 나온 그 개가 나은 새끼 중 한 마리를 품에 안았다.
자라면 하얀털로 바뀌지만 새끼 때는 검은 털이 나 있는 이 개를 청삽사리라고 한단다.
삽살개가 털 북실북실한 것은 알았는데 어릴 때 털 색이 다르다는 것은 몰랐다.
삽살개가 천연기념물 맞나? 박칼린 책에서 그렇게 읽은 것 같다.

병만이는 동생이 웃을 때 눈 모양이 '반달'이 되는 걸 좋아했다.
새로 식구가 된 이 새끼 강아지도 눈썹이 반달 모양이다.
난 조카가 웃을 때 눈모양이 꼭 귤 한조각처럼 휘어지는 걸 좋아한다.
그게 병만이 식으로는 반달 눈인 것이다.
웃을 때 휘어지는 그 정겨운 모양!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식구들은 강아지 이름을 뭐라고 지을 지 고민했다.
동순이, 병동이, 깜둥이, 경만이 등등 여러 이름이 후보로 거론되었지만 끝내 낙찰된 이름은 '만만이'다.
병만이의 만과 동만이의 만이 결합된 이름이다.
만만해서 만만이일 수도 있지만! ^^

이제 드디어 '병만이와 동만이 그리고 만만이' 시리즈 이름이 모두 등장했다.
다음 편부터는 만만이의 활약도 기대해도 되지 않을까.

이야기가 끝난 다음에는 부록처럼 등장하는 코너가 있다.
"동무들은 어떤 심부름이 하기 싫어?"
라는 질문에 저마다 할 얘기들이 아주 많을 것이다.
난 막내여서 주로 심부름을 하는 편이었지, 심부름을 시키며 살아보진 못했다.
이거 보면서 문득 떠오른 옛 기억 하나.
대학교 때 유적 발굴 아르바이트를 하던 시절에, 장마철에 비가 와서 실내에서 조각난 토기 조각을 니스 칠해서 번호 매기던 일을 하고 있었다.
탁상 건너편에 있는 무언가를 건네 달라고 후배에게 말을 했는데, 이 녀석이 자기만 부려먹는다고 나한테 버럭 했었다. 당시 이녀석이 뒤늦게 사춘기를 겪는지 매 사건사건 나한테 많이 대들어서 밉상이던 참이었다. 내 팔이 닿으면 내가 집어들었지, 자기 옆에 있는 것 달라는 것도 인색했던 이 녀석이 오늘 부쩍 떠오른 것은! 자기 식구들 먹은 설거지만 하고 내 밥그릇만 남겨두고 나간 언니 때문일지도...;;;; 난 항상 청소도 자기네 방도 다하고 설거지도 모두 다 하는 구만... 하아..;;;;

그래서 두번째 질문, 내가 만약 언니라면.... 나는 동생 어여삐 여길 것 같다. 왜 그것도 못하냐고, 그게 수능 문제에 나오냐고 타박 놓지 않고서 말이다. 아, 나 오늘 맺힌 것 다 생각날라 그래...ㅜ.ㅜ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하며 엄마와 아기를 줄로 이어 보자. 나비와 애벌레를, 닭과 병아리도 짝을 지어 보자. 내 짝은 어디 있나?(응?)

두 그림이 어디가 다른지 찾아보자. 복잡한 그림도 아닌데 은근히 다른 부분이 많다. 쏙쏙 찾아보자. 색칠을 해봐도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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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13-06-05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어 보이는 책이에요.^^

마노아 2013-06-05 23:29   좋아요 0 | URL
유아와 어린이의 중간 단계에 있는 아이들을 위한 읽기 책이에요. 기획 책임에도 재미가 아주 커요. 학습적으로도 훌륭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