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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거인
프랑수아 플라스 글 그림, 윤정임 옮김 / 디자인하우스 / 2002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도서관에 들어갔다가 책 한권이 눈에 들어왔다. 엇? 제목이 왜 이렇게 낯익지???
자리에 돌아와서 보니 며칠 전에 보관함에 담아두었던 책이었다. 이렇게 반가울 데가~!
이 책은 동화책이다. 왼쪽에는 글이 써 있고, 오른쪽은 모두 그림으로 채워져 있고, 가로 길이가 더 긴 책이다. 표지는 마치 천을 감아둔 것 같은 질감을 갖고 있는데 만져보면 거친 듯하지만 자연에 가까운 느낌이어서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책 속 주인공은 어느 부두에서 아주 커다란 이(치아)를 발견한다. 그 이빨에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주인공은 집으로 돌아와 이 이빨을 연구했다. 그리고 그 안에 새겨진 미세한 지도를 발견한다.
주인공은 곧 탐험대를 꾸려 그 미지의 땅으로 출발했다. 가는 길에 온갖 어려움이 닥쳤을 거라는 것은 뻔히 짐작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중도에 포기하고 또 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잃어가며 그 혼자만이 그가 찾던 미지의 땅을 밟을 수 있게 되었다. 그곳에서 그는 거대한 해골을 발견하고 거인들의 무덤이라는 것을 알아차린다. 지치고 탈진한 그는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거대한 기둥들을 보자마자 기력이 다하여 깊은 잠에 빠졌다.
잠에서 깨었을 때 그는 그 거대한 기둥이 자신에게로 기울어지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로 거인이 자신을 들여다 보던 것. 거인들은 자신을 돌봐주었고 살펴주었다. 그는 여기서 새로운 세상을 만나고 경이로움을 경험한다.
거인들은 모두 아홉명으로 남자 다섯에 여자 넷이었다. 그들의 피부에는 복잡한 문신들이 새겨져 있는데, 자세히 들여다 보면 나무, 식물, 동물, 꽃, 강, 대양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놀라운 것은 그들 중 누구도 그림을 그릴 줄 모른다는 사실.
거인들과 열달의 시간을 지내면서 주인공은 깜짝놀랄 만한 일들을 알아차린다. 그들은 3천 년 이상을 살아왔으며 200년 동안에 겨우 3년 정도만 깨어 있을 정도로 긴 시간을 수면으로 보낸다는 것.
겨울이 다가오고 이제 그들의 수면의 때가 다가오니, 이제 주인공은 이별의 시간을 맞게 된다. 거인들의 작별 인사를 받고 돌아온 그는 오랫동안 칩거하여 책을 만들어 냈다. 9권으로 구성된 책에서 그는 거인족에 관련된 신화와 전설에 주석을 달았고, 그가 만난 거인들의 증거와 여행담을 남겼고, 또 삽화를 자세히 실었다.
곧 그는 유명해졌다. 누군가는 칭송했고 누군가는 그를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했다. 끝없는 비난과 논쟁의 끝을 보고자 그는 강연회를 열었고 사람들은 원정단을 만들 수 있는 기금을 조성했다.
그러나 그는 두번째 여행에서 큰 충격과 맞닥뜨린다. 신화와 전설이 살아있는 미지의 땅에 인간을 들인 대가를 치러야 했기 때문이다. 작가는 거인의 입을 빌려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침묵을 지킬 수는 없었니?"
거인들이 실재하고 있다는 달콤한 비밀을 폭로하고 싶었던 어리석은 이기심이 이 불행의 원인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그는 더 이상 글을 쓰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모든 재산을 기부한 뒤 고기잡이 배의 선원이 되어 바람과 하늘만을 바라보며 살았다.
참으로 아름답고 그리고 아픈 이야기였다. 작품 속에서 거인은 우리가 해치고 있는 "자연"으로 바꿔 생각할 수 있고, 자랑하고 싶어 침묵을 지키지 못한 어리석은 사내는 바로 우리들 자신임을 알 수 있다. 나날이 더워져 가는 이 여름을 보내면서 자연에 대한 우리의 착취와 횡포가 새삼 가깝게 느껴진다. 지난 장마 때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수재민이 되었는 지도 같이 떠올리면서...
추천사를 쓴 최재천 교수는 ,
자연에게 길은 곧 죽음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저 검푸른 열대 곳곳에 휑하니 길을 뚫고 있습니다. 그 길을 따라 저 깊은 숲 속에서 수백 년 동안 행복하게 잘 살던 거대한 나무들이 실려 나옵니다. 나무들이 사라진 벌거벗은 대지에는 더 이상 동물들이 살지 못합니다. 길은 우리 인간이 자연의 가슴에 내리꽂는 비수입니다.
라고 말했다. 그 말에 더 이상의 반론의 여지가 없었다. 우리가 대가 없이 받았듯이 대가 없이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자연을, 우리는 마치 우리 것인양 아낌 없이 쓰고 또 파헤쳐버리니 참으로 양심 없고 뻔뻔하기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깊이 반성하며, 좋은 책을 만난 것에 다시 한번 고마움을 느낀다.
비록 보았지만 이 책은 소장해야겠다. 몇 권 더 주문해서 주변에 선물도 주면 좋겠다. 왜 이리 별 다섯이 많은 지 절대 공감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