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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픈 경쟁
장 자끄 상뻬 지음, 이건수 옮김 / 미메시스 / 2005년 6월
평점 :
품절
앞서 읽은 거창한 꿈이 소박하고 따뜻한 내음을 풍겼다면 이 책은 좀 더 해학적이고 풍자적인 면모를 보이고 있다.
난 나를 모욕한 자들을 항상 관대히 용서해 주었지. 하지마 내겐 그 명단이 있어.
이 문장을 보고서 몹시 크게 웃었더랬다. 그리고 씁쓸한 미소를 지어야 했던 것은 내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이다. 겉으로는 용서하는 척, 관대한 척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끝내 꺾지 못하는 고집에 가까운 불편한 감정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것이다.
당신이 이토록 그림을 좋아하는지 미처 몰랐습니다.
창고 안에는 거장들의 그림이 상자 안에 고이 포장된 채 감시 카메라의 세례를 받으며 보관되어 있었다. 이 그림이 보여주는 풍자, 그리고 꼬집고자 하는 세태 역시 우리의 일상 속에서, 내 모습 속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우리는 얼마나 치레적으로 소모적인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체스판 위의 말들은 테이블 모서리 끝에 아슬하게 달려있는 왕을 일제히 공격한다.
이 그림을 보면서 우리 사회 소외된 사람들, 흔히 ‘왕따’라고 지칭되는 그들 불쌍한 영혼들이 떠올랐다. 벼랑 끝까지 몰아낸 것도 모자라서 끝내 추락하는 것을 확인하고자 하는 못된 심사들, 그 그릇된 군중 심리에 혹 나는 동의한 적은 없는지... 방관이라는 범죄를 저지른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되었다.
커다란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사다리까지 타고 올라갔던 사내는, 그림을 진행시키기 위해 사색을 하고 산책도 하고 방황도 하면서 그렇게 공을 들여 그림을 완성해 갔다. 그리고 그렇게 그가 완성한 그림은 그 어떤 것도 아닌 그 자신의 자화상이었다.
결국 우리가 긴 시간 투자하고, 또한 소모하여서 찾아야 할 것은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이 아닐까. 우린 우리 자신을 찾기 위해서 그렇게 오래도록 방황도 하고 교제도 하고, 삶을 소비하며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또한 정작 돌아와야 할 곳도 내 자신이지 않을까......
하루에 있었던 일들을 편집증처럼 모두 기억해야만 하는 사내. 그가 하루 종일 꼼꼼하게 기록한 일기의 내용은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9월 16일 월요일. 혼잡, 소음. 비.
그게 전부였다. 대단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또 다시 생각해 보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무엇이 더 필요하겠는가. 우리 때로 삶의 여러 과정들 중에서 너무 크고 대단한 것만 추구하고 바라보는 것은 아닐까......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아주머니를 도와준 예쁜 아가씨, 여태 나 몰라라 했던 행인들이 그녀의 짐을 서로 나눠지고자 한다. 그녀가 모든 짐을 덜어내고 자신의 갈 길로 들어서자 당황하는 행인들의 표정.
역시 우리의 세태를 꼬집는 해학적인 풍자였다. 크게 기분 나쁘지 않게, 조금 쓰게 웃게 만드는 적당한 매력.
어설픈 경쟁은, 정말 ‘경쟁’의 원리와 도리를 알지 못하는 우리들 모두의 어설프기 짝이 없는 경쟁적인 삶을 쏙쏙 집어서 꼬집고 있다.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만들게...... 한 번 더 나를 돌아보도록 만들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