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 전쟁 시공주니어 문고 3단계 70
서석영 지음, 이시정 그림 / 시공주니어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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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중고생 학생들의 대화 내용을 들어보면 모든 문장이 욕으로 끝난다는 것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문장 끝 뿐 아니라 사이사이에도 욕은 쉴새 없이 등장한다. 욕이 없으면 말이 되지 않을 것처럼 군다. 애석하게도 이런 현상은 초등학생으로 내려가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집에서 엄마 앞에서는 조신하게 굴어도 학교에 가거나 친구들끼리만 모이면 말씨가 크게 변하는 애들도 무척 많다. 안타까운 일이다.  

도대체 어쩌다가 아이들이 이렇게 욕을 달게 사는 것일까, 욕이라는 것이 또래 사이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일까 궁금해한 작가님에게 욕과의 전쟁을 시작한 어느 선생님 소식이 들려왔다. 현장의 모습을 제대로 관찰해서인지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욕전쟁은 그야말로 생생 그 자체다. 실제 모습을 그대로 재현시켜 준 것도 놀랍지만, 이야기가 기승전결을 타고서 점점 극적으로 치닫고 올라가더니 아주 바람직한 방향에서 마무리를 지었다는 것이 더 놀라웠다. 갈수록 태산인 내용들이 등장해서 어찌 수습할지 걱정도 되고 기대도 되었던 것이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아이는 '관찰'을 많이 하는 것으로 친구들 사이에서 '엉뚱이'로 통하는 지선이다. 같은 반에 짝꿍까지 되어버린 최시구는 다른 아이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힘 센 녀석인데 늘 욕을 달고 살아서 지선이가 인상을 찡그리는 아이이기도 하다. 여학생들 중에는 '흑장미파'의 두목으로 통하는 박채린이 최시구와 거의 맞먹는다. 모든 대화를 '존나'로 마무리 짓는 존나 종결자라고나 할까. 지선이는 어느 쪽에도 끼지 않으면서 친구들의 유치함을 비웃기도 하고 궁금한 부분이 생기면 열심히 관찰하는 그런 아이다.   



학생들의 욕 수준이 장난 아님을 알게 된 담임 선생님은 욕과의 전쟁을 선포하셨고, 아이들은 아이들 나름대로 욕 수호 전쟁에 돌입했다. 초반에는 투명의자 벌을 받았지만, 학생 하나가 벌 받다가 쓰러진 이후로는 자신이 사용한 욕을 이마에 붙이고 다니는 벌을 주었다. 그랬더니 아이들이 이것을 아예 '놀이'로 인식하고 즐기는 것이 아닌가! 안 되겠다 싶었던 선생님은 이번엔 그날 사용한 욕을 100번씩 써오는 벌로 바꾸셨다.  

가산점이랄까. 이자라고 할까. 욕을 자꾸 쓰다 보면 벌도 가중되어서 아이들은 팔이 떨어질 것 같은 고통을 호소한다. 평소에는 그다지 능력을 발휘하지 못했던 창의성을 내보여서 가면 씌운 욕으로 근질근질한 입에 해방구를 달아주기도 하지만 이런 것들은 내부 고발자에 의해 선생님께 들키기 일쑤! 선생님이 단속법을 늘리면 늘릴수록 아이들의 잔머리도 고수가 되어간다. 심지어 '바보' 소리를 늘 달고 다니는 학급의 정겨운 친구 준기를 위해서는 '바보'는 욕 목록에서 빼달라며 단식투쟁을 하기도 한다. 이 아이들이 어디서 이런 생각을 해냈는지, 게다가 이렇게 의리를 보이는지 신기하고도 기특할 지경이다.   



선생님과 아이들의 투쟁은 모두 나름의 이유와 합리성을 갖고 있었다. 각자의 의견을 전개하는 방식은 때로 비민주적이기도 하고 억지스럽기도 하지만 그 과정에서도 의견을 조율해 가며 합의점을 찾아가는 비민주성의 민주성을 보여준다. 더불어 성장하는 모습이랄까.  

학교 대회인 교내 피구 시합을 소재로 삼은 것도 탁월했다. 이웃 반과의 대항전에선 욕 대항전도 벌어졌지만, 어떡해서든 욕을 줄일려고 용을 쓰는 아이들은, 상대방의 도발을 무시하고 오히려 악을 선으로 갚아 두 배의 복수를 해내는 지혜로운 모습도 보여준다. 아이 수준이라고 보기엔 지나칠 만큼 나쁜 잘못도 저지르지만, 그것이 나쁘다는 것을 알아차린 다음에는 부끄러워할 줄도 아는 게 대견했다. 그것 제대로 못하는 어른들이 얼마나 많던가.   

아이들과 선생님이 서로에게 배워가며 성장하는 모습이 흐뭇했다. 그것을 교훈적으로 알려주는 게 아니라 재미난 이야기 속에 풀어낸 작가의 재주가 빼어나다. 피구시합의 결승전과, 학년이 올라 초등학교 최고 학년이 된 아이들의 모습까지 지켜보니 내가 키워낸 아이를 보는 것처럼 마음 속이 감동으로 차오른다. 이들이 함께 보여준 노력의 모습들을 어른들의 세계로 옮겨가면 어찌 될까 상상해 본다. 보다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고 방해도 많을 것 같지만,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인다면 비슷한 성과에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나름 핵심 얘기들을 피하면서 얘기하자니 설명이 어렵다. 책을 본 사람이라면 무엇에 찡한 감동을 느꼈는지, 어떤 결과를 더 보고 싶은지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의 입버릇은 환경적 영향이 크기 때문에 아이의 언어습관과 부모의 언어습관을 비교해보는 노력도 필요하다. 아이가 곧 자신의 거울이 되어줄 것이다. 요즘 크게 유행하는 뿌리깊은 나무의 세종은 무척 적절한 시점에서 적확한 표현으로 욕을 쓰기에 시청자로서 속이 시원해지는 효과까지 줄 때가 있다. 모든 욕을 싸잡아서 써서는 안 되는 나쁜 것이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욕이 욕을 부르고 무분별한 사용으로 고운 말을 해치는 힘도 있다는 것을 놓쳐서도 안 될 것이다. 이 책은 그런 혼란스러움을 잘 정리해주는 신호등이 되어줄 것 같다.  유익하고 무엇보다 재밌어서 적극 추천한다. 

 

익살스럽고 역동적인 그림이 무척 재밌다. 당찬 아이들의 개구진 모습과 잘 어우러진다. 이런 작품에 정적인 느낌의 그림이 들어갔다면 절대로 어울리지 않았을 것이다. 좋은 작가님들을 알게 된 것도 이 책이 주는 선물 중 하나다. 무척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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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하기 보고서 - 은지와 호찬이 1 사계절 저학년문고 53
심윤경 지음, 윤정주 그림 / 사계절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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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조카는 이제 초등학교 3학년인데 숙제할 때마다 아주 애를 먹고 있다. 집중력이 많이 떨어져서인지, 일기 한 편을 쓰려면 두 시간은 기본으로 잡아야 한다. 제목 한 줄 쓰고 한 20분 딴짓하고, 다음으로 날씨 쓰고 10분 딴짓하는 식이다. 그래서 숙제를 봐주는 언니는 조카와 으르렁거리기 일쑤! 숙제도 이러니 학과 공부는 더 심한 모양이다. 오늘 있을 시험 준비를 위해 전날 공부를 시켰는데 역시나 합이 맞지 않았다 한다. 아이의 입은 자꾸 삐죽삐죽 나오고, 엄마의 목소리는 높아지다가 공부를 덮고 잠이 들었다. 다음날, 교통지도 때문에 아이보다 일찍 학교로 출발한 언니는, 아이가 혼자서 차려 입고 나온 옷이 유난히 얇아서 속이 상했다. 같이 교통 지도를 나온 다른 엄마도 애가 왜 이렇게 옷을 춥게 입었냐고 뭐라뭐라 하시니 또 속이 상한 모양이다. 그런데 아이가 전날 삐진 것으로 속이 안 풀렸는지 등교길 엄마를 보고도 홱 지나가버렸다고... 언니의 속에서 불이 화르륵 타올랐음을 보지 않고도 알 수 있다. 집에 돌아오면 야단을 쳐야겠다고 다짐하는 언니에게 이 책을 내밀었다. 두 사람은 '화해하기 보고서'가 필요해 보여. 

이 책의 주인공 은지는 엄마와 크게 싸우고 울며불며 떼를 쓰다가 내복 바람으로 대문 밖으로 쫓겨났다. 이전에도 쫓겨난 경험이 있었는데, 말없이 친구네 집으로 놀러가버려서 한참 찾았던 기억이 있던 엄마가, 그런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 내복 바람으로 아이를 쫓아낸 것이다. 그런데 하필 같은 반 남학생이 집앞을 지나갔고, 내복 차림의 은지는 엄마에게 싹싹 빌며 집안으려 들여달라고 소리를 높였는데, 예의 바른 친구 이민우는 문 열러 나온 엄마에게 깍듯이 인사까지 하는 게 아닌가. 민우 엄마와 은지 엄마가 서로 얘기를 나눌 때에도 뒤돌아서 처참한 제 신세를 비관하고 있던 은지가 집에 들어가서도 울며 불며 떼를 썼다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서로 상대가 잘못했다고 목청을 돋우다가 엄마가 내놓은 절충 방안은 '화해하기 보고서'를 쓰는 일이다. 서로의 입장을 확인하고, 왜 그런 일이 발생하게 되었는지 원인을 되짚어가는 무척 합리적인 방법으로 보였다. 하지만, 감정이 상했는데 처음부터 잘 써질 리 만무!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화해하기 보고서는 훈훈하게 마무리가 된다. 이렇게 모두가 짐작할 수 있는 대로만 흘러간다면 이 책이 별점 다섯 개를 거뜬히 받아가지 못했을 것이다. 나름의 반전이 있다는 거!! 

게다가 이야기가 시리즈인 모양이다.  

 

등장인물이 잔뜩 소개되었는데 이 중에서는 은지와 민우만 등장해서 의아해 했다. 다시 보니 시리즈여서 그랬던 것이다. 호찬이와 지수, 그리고 규태의 활약까지 모두 나오고 이들의 좌충우돌 이야기가 잘 섞이려면 이 시리즈가 제법 길어질 것 같다.  

심윤경 작가님의 창작동화인데, 이야기의 기승전결과 긴장감을 적절히 배분한 것이 무척 능수능란해 보였다. 은지와 엄마의 입장이 모두 이해가 되었고, 차분하게 글로 보고서를 작성하다 보니 좀 더 냉정하게 서로를 돌아볼 수 있는 것처럼 보였다.  

 

부록으로 '화해하기 보고서'도 같이 따라왔다. 단지 보고서를 작성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화해'로 가는 것이 진정한 목적이기에, 화해하고 난 뒤의 기분이 어땠는지를 묻는 것이 특히 좋았다. 더불어 사진이나 그림을 덧붙일 수 있으니 시각적으로도 훌륭한 보고서가 완성될 것이다. 

이런 공책을 훗날 다시 보게 된다면 왜 싸웠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아도, 화해하고 난 뒤의 기뻤던 마음은 또렷이 생각날 것 같다. 부모 사이는 물론 형제 자매, 그리고 친구 사이에도 좋은 '화해'의 도구가 될 것이다. 학교에서는 잘 활용하면 교사와 학생 사이에도 멋진 연결 고리가 되지 않을까. 기획과 내용, 그림까지 삼박자가 예쁘고 재밌게 조화를 이룬 수작이다. 다음 시리즈도 꼭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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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1-11-27 0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은지와 호찬이 시리즈 세권 모두 읽어보고 싶어요. 이 작가는 소설 뿐 아니라 어린이 책도 잘 쓰네요. 세권을 같이 한번에 출판한 것을 봐도 작가의 역량을 알 수 있지만 일단 재미있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썼다고 해서 어떻게 썼을까 궁금했어요.

마노아 2011-11-27 13:40   좋아요 0 | URL
세 권의 이야기를 한꺼번에 쓰고서 나눠 낸 게 아닐까 생각했어요. 소설가답게 호흡이 좀 더 길었을 텐데 아이들 읽기 편하게 구분하지 않았을까 뭐 그런..^^
저도 조만간 남은 두 권도 읽어야겠어요.

2011-11-27 16: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잘잘라 2011-11-27 2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은지, 은근 매력있어요. 조카들 떼쓰면 혼내주지만, 주인공 강은지는 어쩐지 응원하고 싶다니깐요. ^^

마노아 2011-11-28 20:55   좋아요 0 | URL
은지의 떼씀은 어째 이유도 있고 설득력도 있더라니까요. 물론, 부모 입장이라면 열불이 날 거예요. ㅎㅎㅎ

2011-11-28 02: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1-28 20: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1-28 17: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1-28 20: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빈슨 크루소 - 아후벨의 그림 이야기
알베르토 모랄레스 아후벨 지음, 고인경 옮김 / 별천지(열린책들) / 2010년 4월
품절


재밌는 그림책이다. 77장의 판화 그림으로 뒤덮여 있는데 글자가 없다.
글은 없지만 워낙 유명한 '로빈슨 크루소'의 이야기를 담고 있기에 짐작으로 스토리를 따라가볼 수가 있다. 나의 읽기가 당신의 읽기와 다를 수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이미 재밌는 이야기가 시작된 것이다.

색채가 없는 흑백 펜선은 어린 로빈슨 크루소가 아닐까 짐작한다. 바닷가에서 자라면서 늘 바다를 동경하며, 언젠가 자신도 저 바다로 가야만 한다고 여기지 않았을까. 로빈슨 크루소는 20년도 훨씬 전에 읽은 책이어서 그가 바닷가에서 태어났는지는 솔직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무튼 나는 그렇게 받아들이고 시작한다.

그의 꿈속으로 달려드는 넘실대는 파도와 커다란 배들, 그 속에는 모험과 우정과 낭만이 가득할 거라고 멋대로 짐작했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선원이 된 로빈슨 크루소!

하지만 애석하게도 바다는 결코 신사적이지도 않았고, 우아하지도 않았다.
거친 풍랑에 배가 뒤집히고 순식간에 생과 사가 결정된다.
난파선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로빈슨 크루소.
그가 떠밀려간 곳은 무인도였다.

눈을 뜸과 동시에 밀려오는 고독과 불안과 공포!
이 낯선 곳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제일 무서운 것은 언제까지 여기서 홀로 살아야하는지 알 수 없다는 것!

낯선 환경을 자랑하는 섬의 낮은 찬란했다.
온간 진기한 풀과 열매들이 눈을 자극했을 것이다.
하지만, 뜨겁던 태양이 지고 흑암이 몰려오면
다시금 고독과 불안과 공포에 떨어야 한다.
박쥐 떼라도 잘못 건드리면 크나큰 낭패!
이 모든 난관들을 기억하고 알아서 피해가려면 무수한 경험과 실패와 도전이 필요하다.

가끔 난파선이 떠밀려 오면, 인적이 있을까 기대해 보지만 어김 없이 실망만 하고 만다.
그래도 배 안에서 가져오는 식량과 옷가지와 책, 무기 등등은 모두 요긴하게 쓰일 수 있다.
그리고 마침내 맞닥뜨린 또 다른 생명체는 개였다.
비록 대화가 통하지는 않지만 체온을 나눌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로빈슨에게는 커다란 은총이었다.
시간은 어김 없이 흐른다. 얼굴엔 수염과 주름이 함께 뒤덮인다.
그가 그 섬에서 몇 년을 살았는지 우리는 알고 있다.
28년이다.
미리 알았더라면 그는 결코 버텨내지 못했을 것이다.

하루하루 잘 살아내었지만, 위기가 왜 오지 않았겠는가.
하늘을 향해 원망도 쏟아보고 비난도 해보지만, 바뀌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빗금 여섯 개에 반대 방향의 빗금을 하나 그어서 일곱 개를 완성한다.
일주일의 표시다. 이런 일주일의 표시가 52개가 나오면 한 해가 간다.
그렇게 스물 여덟 해를 보내야 한다.
막막한 숫자다.
시간만이 충분히 많은 그에게 책이 없었다면 얼마나 끔찍했을까.
어디서든 책은 꼭 필요하다. 반드시!!

쓰지 않으면 글도 말도 모두 잊어버린다.
펜을 구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게 된다.
무엇이든 끄적인다.
일기도 되고, 일지도 되고, 상식도 되고, 역사도 된다.
그렇게 그의 표류기가 완성되어 간다.

그리고 또 다른 인간의 출연!
식인종들 사이에서 죽을 위기에 처한 한 사내를 구해낸다.
금요일에 만난 그 사나이의 이름을 프라이데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생활이 달인 프라이데이!
그를 얻은 것은 1박2일에서 이수근을 얻은 것과 진배 없다.
야생에서 그가 준 도움은 깊고도 높다.

그리고 마침내 등장한 해적선 하나.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다시 뭍으로 돌아가게 되는 로빈슨 크루소.
그렇게 그의 이야기가 막을 내리고, 세상은 이 기적의 사나이를 찬양하게 된다.
오래오래, 300년이 다 되도록...

동화책으로 분류되어 있지만, 어린이 친구들이 로빈슨 크루소를 미리 읽지 않았다면 그림을 해독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는 쪽이 더 맞는 표현으로 보인다.

어릴적 읽었던 기억을 잠시 접어두고, 새롭게 로빈슨 크루소를 읽어낸다면, 그 안에 깃든 여러 풍자와 교훈과 한계까지도 함께 읽어낼 수 있지 않을까? 이젠 로빈슨 크루소가 섬에 갇혀 산 시간보다 더 살았으니까.
미셸 투르니에의 '방드르디, 혹은 태평양의 끝'도 함께 추천해본다. 풍자에 풍자에 역설의 역설이 이어질 것이다. 통쾌하게, 혹은 씁쓸하게.

강렬한 색채의 그림이 몹시 인상적이긴 한데, 예쁘다기보다는 기괴한 편이다. 누군가에게는 취향이 아닐 수도 있지만, 독특함 하나만은 누구라도 인정할 것같다. 반가운 만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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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01 13: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1-01 18: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11-11-01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그림이 독특하네요~~ 좀 무서운 느낌도 들고요.

마노아 2011-11-01 23:18   좋아요 0 | URL
좀 기괴하지요? 그래서 어린이보다는 역시 어른들이 볼만한 그림책 같아요.
 
인종 이야기를 해볼까? 초등학생이 보는 그림책 14
줄리어스 레스터 글, 카렌 바버 그림, 조소정 옮김 / 사계절 / 2007년 7월
절판


소설 헬프와 영화 헬프를 만나고, 그 다음엔 로자 파크스의 이야기를 다룬 '싫어요!'를 읽었다. 내친 김에 인종 이야기를 해볼까?를 꺼내들었다.
'자유의 길'로 깊은 감동을 준 줄리어스 레스터의 또 다른 이야기를 만나볼 차례다.

나는 하나의 이야기.
너도 하나의 이야기
사람은 누구나 하나씩의 이야기.
내 이야기든 네 이야기든 시작은 다 똑같아.
"나는 언제 어디서 태어났다."로 시작할 수 있겠지?
그러니까 나는 아직 20세기이던 시절에 서울에서 태어난 여자 사람이지.

내 이야기나 네 이야기나 많은 것을 담고 있지. 이런 것들 말이야.
좋아하는 음식? 나는 두부와 계란 요리를 좋아해. 우유도 완전 사랑하지.
취미? 책 보고 리뷰 쓰기. 공연장 가서 열광하기!
특기는 길 못 찾고 헤매기라 쓰고 '삽질'이라고 읽지.
좋아하는 색깔? 원색을 좋아하지만, 내게 잘 어울리는 색깔은 파스텔 톤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
종교는 기독교이고, 국적은 한국인.
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때는 잠들려고 잠자리에 누워서 고요가 깃드는 시간이야!

이제 이런 이야기도 해볼까?
내 이야기와 네 이야기 속에 들어 있는 것이야.
바로, 우리가 어떤 인종이냐는 거지.
작가 줄리어스 레스터는 흑인, 나는 황인종.
백인들은 우리더러 '유색인'이라고 하겠지만,
중국인들은 그런 백인들을 '유색인'이라고 부른다는군.
하여간 우리는 모두 어떤 인종에 속해 있어.

내가 하나의 이야기이고 너도 하나의 이야기인 것처럼,
인종 또한 하나의 이야기야.
흑인도, 아시아인도, 히스패닉, 백인, 아랍인도 인종은 저마다 이야기를 갖고 있어.
"우리 인종이 너희 인종보다 더 나아."
누군가 이렇게 말한다면, 맞지 않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야.
(좀 모자라다고 속으로 흉을 봐도 돼~)

왜 어떤 이들은 자기네 인종이 다른 인종보다 낫다고 말하는 걸까?
그건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어서 그러는 거야.
무언가 두려워서 그러는 거지.
히틀러가 퍼뜩 떠오르네. 못난이 히틀러!

우리는 모두 갖가지 이유를 들어 자기가 남보다 낫다고 생각하지.
학벌을 두고, 부모의 재산을 두고, 그리고 피부색을 가지고도...
하지만 이런 이야기들은 모두 참이 아니야.

우리의 모습에서 옷을 벗고, 살갗을 벗고, 머리카락도 벗고 밖으로 나간다면 어떤 모습일까?
우리는 모두 똑같은 해골로 보일 거야.
이 모습대로라면 누가 남자고 여자인지, 누가 백인이고 흑인인지,
히스패닉인지 아시아인인지 구별할 수 없을 거야.
(전문 학자가 아니라면 말이지)

살갗 한꺼풀만 벗기면 다를 게 없는 우리인데, 왜 피부색과 눈모양과, 머릿결... 이런 이야기들만 보는 걸까?
우리가 궁금해야 할 것들은 그런 게 아니야.
너의 이름이 무엇인지, 언제 어디서 태어났는지? 어디서 사는지, 싫어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너를 알고 싶어서 궁금해지는 많은 것들이 있는데, 너의 질문들이 이미 편견을 포함하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보았으면 해.
숫자만 좋아하는 어른들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했던 어린왕자의 마음으로 말이야.

네가 어떤 인종이라는 것이 네 이야기의 전부는 아니야.
내가 어떤 인종이라는 것이 내 이야기의 전부는 아니야.
나는 어떤 인종이라는 것 말고도 아주 아주 많은 것으로 이루어져 있어.
나의 이야기를 알고 싶다면, 너는 '나를 이루는 모든 것들'을 모아야만 하지.
그래, 한 꺼풀만 벗으면 우리는 서로 다를 게 없어.
너와 나는 말이야.
우리는 얼마든지 친구가 될 수 있어. 한 꺼풀만 벗어낸다면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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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1-11-01 2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 책 멋진데요. 역시 사계절 마인드가 느껴지는 책!^^

마노아 2011-11-01 23:22   좋아요 0 | URL
사계절 마인드! 훌륭한 단어 선택이에요. 좋은 책을 만드는 좋은 출판사, 사랑할 수밖에 없어요.^^
 
싫어요! - 흑인 민권 운동의 역사를 새로 쓴 한마디 더불어 사는 지구 37
파올라 카프리올로 지음, 김태은 옮김, 이우건 그림 / 초록개구리 / 2011년 9월
평점 :
절판


로자 파크스의 실화를 동화로 표현한 책으로 '사라, 버스를 타다'가 꽤 유명하다. 하지만 로자의 이야기를 사라라고 하는 어린 아이에게 대입시켜 쉽게 설명했을 뿐, 로자 파크스가 해냈던 일들에 대해서 알기에는 다소 부족했다. 이 책은 바로 그 로자 파크스의 이야기를 전후좌우를 다 살펴서 이야기하고 있다. 시작은 로자 파크스가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라는 운전 기사의 요구에 "싫어요!"라고 거절하면서 출발한다. 운전 기사가 경찰을 부르러 간 사이 로자 파크스는 자신을 키워주었던 외할아버지를 떠올린다. 어느 누구의 학대도 참아서는 안 된다고 로자에게 처음으로 가르쳐 준 이가 바로 외할아버지였다. 그러면서 이야기는 자연스레 로자의 어린 시절로 흘러간다. 어려서부터 줄기차게 받아왔던 인종 차별, 그 안에서 부당함을 느꼈던 어린 로자의 마음들이 하나씩 하나씩 수면 위로 올라온다.  

버스 안에서 로자는 남편 파크스를 떠올린다. 처음 만났을 때에 이미 미국 유색인 지위향상 협회의 회원이었다. 그 무렵에 파크스는 '스코츠버러 소년들'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는데, 자연스레 독자는 로자 파크스 버스 사건과도 맥이 통하는 또 다른 흑인 인권 차별 사건과 맞닥뜨리게 된다.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당연하다는 듯이 자행되었던 캄캄한 시절을 로자와 그녀를 비롯한 많은 흑인들이 감수하며 살았다. 로자에게서 '싫어요!'라는 한 마디를 끌어낸 인종 분리 버스의 규칙은 이렇다. 

1. 모든 승객은 앞문으로 타서 표를 사야 한다. 그러나 흑인은 표를 산 뒤에 버스에서 내렸다가 뒷문으로 다시 올라타 버스 뒤쪽의 흑인 자리에 앉는다. 

2. 흑인 승객은 흑인 맨 뒤 몇 줄에만 앉을 수 있다. 앞줄은 백인만 앉을 수 있다. 백인이 타고 있지 않더라도 백인 좌석은 빈 채로 놔두어야 한다. 

3. 중간 줄은 백인이 먼저 앉는다. 흑인은 자리가 비어 있을 때에만 앉을 수 있다. 

4. 중간 줄에 앉았다 하더라도 흑인은 언제든 백인에게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 흑인이 80세의 노인이든 임산부이든 상관없이 이를 지켜야 한다. 그리고 백인이 젊은이여도 흑인은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 

5. 백인이 중간 줄에 앉으면 그 줄(통로 반대편 줄 포함)에 앉아 있는 모든 흑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자리를 찾든가, 아니면 서 있어야 한다. 이것은 '우월한 인종'이 흑인 옆에 나란히 앉아 가야 하는 '모욕'을 피하기 위해서이다. 

기가 막힐 노릇이지만 실제로 버젓이 적용되었던 규칙들이다. 저걸 당연하게 누려온 백인들은, 이후로도 그 사실에 대해서 부끄러움을 느꼈을까?  

로자 파크스는 의외로 몹시 조용한 성격의 내성적인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조용히 끓어올라 오래 지속되는 성미를 지녔다. 로자가 자신을 둘러싼 막을 깨버리고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게 도와준 이들 중에는 백인 친구들도 있었다. 10대 시절에 다니던 학교의 창설자인 앨리스 화이트라는 백인 여성이 로자에게 큰 영향력을 끼쳤고, 흑인을 변호하다가 백인 사회로부터 따돌림을 당하던 변호사 클리퍼드 더르와 그의 아내 버지니아도 로자의 좋은 친구이자 스승이었다. 버지니아의 도움으로 '인종 분리의 해소'라는 세미나에 참석했던 로자는 새로운 세상을 만난다. 흑인 여성을 태우러 온 백인 운전사를 보고 깜짝 놀랐던 로자는 백인 직원들의 접대까지 받으며 말문이 막히고 만다. 그리고 결정적인 한 인물이 등장한다. 마틴 루서 킹! 아직 이십 대의 젊디 젊은 이 목사의 웅변은 로자의 영혼 깊숙한 곳까지 흔들고 말았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로자 파크스의 버스 사건은 마틴 목사의 인권 운동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서로가 서로에게 큰 힘이 되어준 것이다. 진실이 가져다 준 정직한 힘이라고 할까.  

   
 

오랫동안 우리는 정말 놀라울 만큼 큰 인내심을 보여 왔습니다. 그러나 오늘 저녁 우리는 자유와 평등보다 덜 소중한 것에 만족하려는 우리의 인내심에서 벗어나고자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민주주의의 가장 큰 장점 가운데 하나는 바로 자신의 권리를 위해 싸울 수 있는 권리입니다. 여러분이 용기 있게 싸운다면, 우리가 우리의 존엄성과 기독교적인 사랑으로 함께 싸운다면, 우리의 투쟁을 역사책은 다음과 같이 기록할 것입니다. ‘위대한 민중이 살았다. 그들은 문명의 핏줄에 새로운 의식과 존엄성을 가져온 흑인 민중이었다.’라고. 이것이 우리의 도전이요, 우리가 꼭 이뤄 내야 할 책임입니다.  -99쪽

 
   

버스 운전 기사 이야기도 나온다. 로자와 악연을 맺은 그 운전 기사는 이미 12년 전에도 로자에게 상처를 주었던 인물이다. 그렇지만 로자는 자신의 영혼까지 병들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렇게 강인하게 지켜온 존엄함은 마침내 12년이라는 세월이 지나서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로자의 버스 사건은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키며 커다란 사회 문제가 되었지만, 이 일이 어떤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다른 흑인들의 연대 투쟁이 필요했다. 그녀를 지지하는 마음으로 버스 승차 거부 운동에 동참했던 일이 바로 그것이다. 집이 멀어서, 다리가 아파서, 혹은 백인들의 보복이 두려워서 등등... 도망가고 싶은 이유야 얼마든지 많았겠지만, 그렇게 주춤거리고 머뭇거리다간 그들이 원하는 진정한 평등과 자유는 결코 가질 수가 없다. 내일이 아니고 모레도 아닌, 바로 지금 이 순간 움직여야 했던 것이다.

여러분은 100년 전부터 로자와 같은 불쌍한 여자들 덕에 먹고 살고 있어요. 그러나 그들을 위해서 한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겁에 질린 학생들처럼 굴지요. 그래요, 맞아요. 우리는 평생을 교복을 입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교복을 벗어 버릴 때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진정 인간이 되려면, 지금 당장 되어야 한단 말입니다.  -96쪽 

몽고메리 지역의 승차 거부 운동은 1년 이상이나 지속되었다. 백인들은 갖은 법안을 올려서 이들의 연대 투쟁을 방해했지만, 그럴 때마다 또 다른 지혜와 협력을 동원해서 버티어냈다. 그리고 마침내 몽고메리의 지역 법원 재판관들은 버스에서의 인종 분리가 위헌이라고 판결을 내린다.  참으로 뜨거운 승리였다.  

하지만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법이 바뀌었다고 해서 사람들의 뇌리 속에 박힌 인종 차별의 뿌리가 쉽사리 사라질 수는 없었다. 로자는 익숙한 고향을 떠나 북부 지역으로 이사를 가야 했고, 다시 돌아오기까지 20년이라는 시간을 보내야 했다. 하지만 되돌아올 때 그녀의 입장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무려 '몽고메리' 시 당국의 초대를 받아서 돌아온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눈을 감았을 때에, 그녀의 유해는 링컨 대통령의 관이 모셔져 있던 자리에 놓인 채 5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의 조문을 받게 된다. 그리고 그로부터 3년 후에는 검은 피부를 지난 버락 오바마라는 남자가 미국의 대통령으로 당선된다. 참으로 극적인 반전이라 할 수 있겠다. 짜릿한 감동을 주면서 작품을 마무리하는 솜씨가 일품이다.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에, 우리도 막 대선을 치른 직후였기 때문에 난 미국 시민들이 부러웠었다. 기꺼이 오바마에게 표를 던진 유권자에게 부럽다라는 얘기를 했더니 더 두고봐야 알 일이라고 그는 대답했다. 당연히 공감했다. 그렇지만 그렇게 불가능으로 보이던 것을 가능으로 바꾸는 일이 인류가 나가야 할 진보의 첫 걸음이고 위대한 한발자국이 아니던가. 버스 의자에 앉는 것조차도 오랜 투쟁이 필요하던 때가 있었는데, 그로부터 50년 뒤에는 대통령 자리를 앉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 그 자체로도 일단은 감격이다. 그리고 그 안에 깃들어 있는 많은 땀과 눈물과 희생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때문에, '싫어요!'라는 단순한 한 마디의 위대함을 다시 한 번 곱씹어 본다. 신경질적인 목소리의 싫어요!가 아닌, 마땅히 거부해야 할 것을 거부한 당당한 한 마디였다. 역사를 바꾼, 역사를 움직인 소중한 한 마디였다. 용감했던 로자 파크스와, 그녀와 뜻을 같이 했던 많은 이들에게 고마움과 존경의 박수를 보내본다. 

덧글) 오타가 하나 있다. 96쪽 그러나 그들은 위해서 >>>그들을 위해서  

같이 읽으면 좋을 책 : 이 책의 의미를 알아차릴 수 있다면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도 소화할 수 있을 것 같다.

"수백 년 동안 졌다고 해서 시작도 해보지 않고 이기려는 노력조차 포기해 버릴 까닭은 없어."라는 명문장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앵무새 죽이기가 기꺼이 소화가 되었다면 '헬프'도 같이 읽으면 좋겠다. 따뜻한 감동이 오래오래 가슴을 적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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