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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7 - 연산군일기, 절대권력을 향한 위험한 질주 ㅣ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7
박시백 지음 / 휴머니스트 / 200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앞서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시리즈가 모두 내게 깊은 인상을 주기도 했지만, 연산군일기는 가히 충격 그 자체였다. 내가 알고 있던 모습에서 가장 비켜 간 모습이었고, 통설과도 전설과도 매우 다른 모습에 흥분이 일 정도였다.
뭐랄까. 연산군에 대한 감정은 늘 가여움과 안타까움, 측은함 같은 것이었다. 폐비 윤씨가 절대 잘했다고는 말 못하겠지만, 죽을 정도의 죄를 지은 것은 아니었는데, 그렇게 황망히 어미를 잃고 외롭게 자랐을, 그의 고독과 그의 보상받지 못한 유년에 대한 내 나름의 '이해'였다.
그런데 이 책을 보다 보니, 연산군은 짐작했던 것과는 너무도 달리 매우 냉정하고 차가운 이성을 지닌 사람이었다. 적어도 갑자사화 때까지의 연산군은 말이다.
갑자사화의 경우도 어머니의 복수가 목표이긴 했지만, 그게 다는 아니었다. 오히려 강력한 왕권을 구축하기 위해서 어머니의 일을 도구로 사용했다라는 짐작이 더 맞아 떨어진다. 그가 초기에 신하들을 휘어잡는 모습은 카리스마 그 자체였는데, 도를 넘어서니 부족함만 못해서, 그의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 권력으로 변질되기 시작한다.
단순히 버릇 없는 신하들의 버릇을 고쳐준 것이라면 모를 테지만, 그의 이글이글 타오르는 카리스마에는 너무도 많은, 무고한 희생자들의 눈물과 한숨이 숨어 있다. 지금도 박정희, 전두환 시대를 그리워하고 예찬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불시에 스친다고나 할까..;;;;;
작가가 지적했듯이, 그가 보여준 잔인함을 훨씬 더 능가한 중국 황제는 얼마든지 있었다. 그리고 그들 중에는 '성군;으로 칭송받는 이들도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이 백성들을 살폈기 때문이다. 연산군이 초심을 잃지 않고(초기의 모습이 진심이었다면!) 계속해서 애민하는 마음을 품었더라면, 그의 말년이 그토록 비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국, 반정의 명분은 다른 누구도 아닌 연산군이 쥐어준 셈이니까.
이번 이야기에선 아무래도 살벌한 내용이다 보니까 유머러스한 장면은 많지 않았다. 그렇지만 오히려 진지하게 탐독하는 것이 제 맛을 더 잘 살린 듯하다. 연산군 일기는 편찬자의 의도에 의해서 강조되거나 누락된 부분들이 분명 있을 거라고 예상되는 바, 실록의 내용을 100% 사실로 믿기는 어려울 수 있지만, 그래도 내가 몰랐던 연산군에 대한 진실에 더 가까이 다가간 느낌이다. 앞으로 두 권 남았는데 빨리 선조실록과 광해군 일기를 보고 싶다.
덧글, 영화 "왕의 남자"에서 반말 찍찍 뱉던 장녹수가 거슬렸는데, 실제 장녹수가 그랬었다는 기록을 보니 어쩐지 부끄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