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9월에 발표된 부시 정부의 전쟁 선언문 <미국 국가 안보 전력> 속에도 공개적으로 선언되어 있다. 이 문서의 목적은 한 주요 신보수주의 압력 단체인 ‘새로운 미국의 세기를 위한 프로젝트’의 이름에 잘 표현돼 있다. ‘새로운 미국의 세기‘란 말이 중요하다. 이것은 다음 100년 동안 세계를 미국의 이해관계와 미국식 자유시장 자본주의의 가치에 따라 주조하려는 노력을 상징한다.


# 1장 : 이라크 전쟁을 합당화하는 이데올로기에 대한 구체적 비판 (1) 미국이 냉전시대에 이라크를 지원했 듯, 이들은 자국의 이익에 따라 선과 악을 나누어왔으며, (2) 그들 스스로 필요에 따라 국제법을 무시해왔음에도 불구하고 불량국가 이데올로기를 조장하고 있으며 (3) 테러리즘 이데올로기는 테러를 빌미삼아 자본가 계급의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하려하고, (4) 민주주의 이데올로기는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를 일괄적으로 적용하여 대규모의 사유화 계획을 세우고 있다.


- 지미 카터는 1979년 7월 CIA에게 아프가니스탄에서 소련이 지원하는 정권과 싸우고 있던 이슬람주의 게릴라들인 무자헤딘을 비밀리에 지원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후 소련이 군사적으로 개입하게 되었고, 10년 동안의 전쟁은 급진 이슬람주의 네트워크를 등장시켰다. 오사마 빈 라덴이 이것을 알카에다로 발전시키고, 1990년대 주반 탈레반의 형태로 아프가니스탄에서 권력을 잡았다.


- 사담 후세인과 알카에다가 연관되어 있다는 구체적인 증거가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음에도, 이라크 전쟁 즈음에 반복해서 인용되는 여론조사에서 미국인의 과반수가 9․11 공격에 사담 후세인이 연루됐다고 믿고 있었다.


- “협박과 강압을 통하거나 공포를 조장해서 정치 종교 이데올로기적 목적을 이루기 위한 폭력의 계획적 사용” 이라는 미 육군의 테러리즘에 대한 정의는 굉장히 모호하다.


- 이스라엘 국방장관으로서 레바논 침공을 계획했고 사브라와 샤틸라 학살을 공공연히 허용해서 비난받은 아리엘 샤론은 현재 이스라엘 총리이자 2001년 이후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의 핵심 동맹이 됐다.


- 영국에서 통과된 ‘테러리즘 법 2000’은 사유재산을 위협하는 행동을 테러리즘에 포함시켰다.


- 부시 정부는 “우리의 두 번째 목표는 테러를 지원하는 정권들이 미국과 미국의 우방과 동맹 들을 위협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이란 이라크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명명했다. 나중에 국무차관 존 볼튼은 리비아 시리아 쿠바를 테러리즘을 지원하고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추구할 위험이 있는 국가들로 지정하며 악의 축 대상을 넓혔다.


- 이런 정상적인 상태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 중 하나가 ‘민주적 평화’라는 사상이다. 다시 말해서,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은 서로 전쟁을 벌이지 않는다는 믿음이다.


- 매 쟁점마다 미국은 협력자를 찾지 못하고 자신의 세계 대다수 국가나 국민과 대립하고 고립되는 것을 발견했다. 이러한 쟁점들로는 유엔 운영 비용, 쿠바 이란 이라크 리비아에 대한 제대, 대인 지뢰 협정, 지구 온난화 협정, 국제전쟁범죄재판소, 중동 이라크 유고슬라비아에 대한 무력 사용, 1993년부터 96년까지 35개 국가에 새로운 경제제재 조치를 취한 것 등이 포함된다.


- 미국은 유엔 안보리의 허가 없이 나토를 이용해서 세르비아를 공격하기로 결정했다.


- 바트당 정권은 1988년 이라크 북부에서 쿠르드족을 독가스로 살해하는데, 이때 이라크를 지원하고 있던 것이 미국이었고, 그것을 주도한 인물이 럼스펠드였다.


- 미국의 제국주의적 민주주의가 제3세계의 고분고분한 독재자들을 지지하는 것은 단지 냉전 시대의 특징만이 아니다.


# 2장: 이라크 전쟁의 진정한 목적과 그 배경이 된 미국의 신보수주의자에 대해서. 신보수주의자들은 부시 1세 정부시절 공화당 우파들로서 이들은 부시 2세 정부에서 핵심 권력층을 차지했다. 이들은 클린턴 정부가 중동 억제정책에 실패했다고 비판하며 오래 전부터 중동에 대한 공격을 지지해왔다. 9․11 이후 이들은 그들의 계획과 테러세력을 연결짓고자 노력했고, 이것을 감추기 위해서 대량살상무기 카드를 사용한다.


- 1991년 이후 미국의 중동 정책은 이란과 이라크를 모두 고립시킨다는 이른바 ‘이중 봉쇄’ 정책이었다.


-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고 비난하고 CIA와 국방부에게 니카라과 앙골라 아프가니스탄 같은 제3세계 민족주의 정권들에 대항한 우파 게릴라 운동들을 지원해도 좋다고 승인한 자가 바로 레이건이다.


- 한가지 중요한 측면은 미국 신보수주의자들과 이스라엘 우파 사이의 긴밀한 관계다.


- 그들(공화당 우파)들은 이렇게 주장했다. 이스라엘은 시리아를 약화시키고, 봉쇄하고, 심지어는 격퇴함으로싸 터키와 요르단과 함께 주변 정세를 결정할 수 있다.


- 이라크 정권 교체는 9․11 테러 훨씬 전에 이미 공화당 우파의 정치적 목표였다.


# 3장: 미국의 전후 세계 전략은 1945년부터 시작되었다. 소련과 동맹에 대한 봉쇄와 나머지 국가들에 대한 경제적 편입으로 특징지어지던 전략 - 트루먼 독트린, 마셜 플랜, 봉쇄 정책 - 은 1989년 소련과 동맹이 해체되면서 수정을 필요로 했다. 부시 1세 정부에서 국방부에 포진되어 있던 신보수주의자들은, 냉전 해소 이후의 전략을 기존의 봉쇄에서 미국이 독자적인 영향력을 강화하는 것으로 수정했으며, 이 결과로 유럽(코소보), 아시아, 중동(이란, 이라크) 대륙에의 적극적 개입과 MD(미사일방어체제) 구축을 바라보아야 한다.


- 일본이 패전하기 훨씬 전에 미국 정책 기획자들은 전후 세계 전략을 구상했다. 자유무역에 기초한 세계 경제의 통합.


- 냉전 당시 양극화된 국제 정치 구조가 강요한 상대적 규율은 제가됐고, 세계는 격렬한 지정학적 경쟁의 시기로 들어섰다. 따라서, 1989년보다 훨씬 큰 불안정과 위험이 존재한다.


- 코소보가 문제가 아니라, 통일되고 통합되고 개방적인 유럽에서 미국의 지배적 위치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 이러한 제국들의 권력은 속국 조공국 보호국 식민지 들에 기반했고, 여기서 벗어나 있는 자들은 보통 야만인으로 취급했다.


- 미국은 나토의 후원 아래 1999년 발칸 전쟁을 개시하면서 유엔 안보리를 무시했다. 클린턴 정부는 1998년 12월 영국과 쿠웨이트의 지원 아래 이라크 폭격을 감행하면서 이미 유엔을 업신여긴 바 있다.


- 트루먼 독트린, 마셜 플랜, 봉쇄 정책은 정치적 자본을 영리하게 효과적으로 사용한 예였다. 트루먼 독트린은 한 국가의 위기에 직면해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미국의 정책은 무장한 소수나 외부 압력에 굴복하기를 거부하는 자유인들을 지원하는 것이어야 한다.”


- 러시아와 중국이 부시 정부의 탄도탄요격미사일 협정 폐기와 국가미사일방어 체제 구축을 미국이 핵 선제 공격 능력을 갖추기 위한 것이라고 두려워하는 것도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 이들 본부의 연간 예산의 총합은 3억 8000만 달러다. 라틴아메리카를 관할하는 남부사령부 본부에서는 1100명이 일한다. 태평양사령부의 본부 인원수는 3600명이며, 중부사령부는 1100명이다. 유럽사령부 최고 사령관은 동시에 유럽연합군 최고 사령관이며 나토의 군사력을 지휘한다.


- 부시 2세 정부는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아 쿄토 의정서, 무역, 국제형사재판소 등의 문제를 둘러싸고 유럽연합과 잇따라 충돌했다.


# 4장: 미국의 전후 세계 전략의 일환으로 진행되고 있는 중동에 대한 태도를 분석하고 있다.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오랜 동맹관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 매장량에 크게 의존하고 있고 사우디아라비아를 통해서 중동에서의 영향력을 유지 강화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스라엘 정부와 이해를 함께 하는 공화당 우파의 집권으로 인해, 미국은 이보다 더 적극적으로 중동을 재편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고, 이라크 전쟁을 기점으로 중동을 미국의 이해에 맞게 재편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미국에게 중동의 석유가 중요한 까닭은 석유산업 자체와 더불어 중동의 석유에 의존하고 있는 유럽과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견제가 한몫을 차지하고 있다.


- 사우드 왕가와의 긴밀한 관계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세계 전략에서 중요한 축이었다.


- 미국과 사우디의 관계는 경제적일 뿐 아니라 전략적이다. 레이건 정부와 사우디아라비아 동맹은 아프가니스탄의 소련 정렴군에 맞서는 이슬람주의 게릴라들에게 자금을 주고 그들을 훈련시키고 무장시켰다.


- 팔레스타인인들과 협상을 반대하면서 우파가 내놓은 대안은 아랍 세계를 강제로 재구성하는 것이다.


- 미국의 안보와 미국의 우월함이 다가 아니다. 그러한 우월함을 이용해 정치적 계획을 추구하는 것이다.


- 전 대통령 조지 부시와 그의 전 국무장관인 제임스 베이커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중심 활동지 중 하나인 투자회사 ‘칼라일 그룹’의 일원이다.


- 아랍 바트사회당의 지역 지부가 통치하고 있는 시리아와 이란이다.


- 미국에게 중동의 석유가 중요한 이유는 미국 경제에 대한 직접적 기여 때문이라기보다는 전략적 상품의 기능 대문이었다고 주장했다.


- 부시 정부를 ‘미국 석유기업들의 집행위원회’ 라고 묘사했다. 부시가 교토 의정서를 신속하게 비난한 것은 환경적으로 파국적이고 재생 불가능한 화석 연료 소비에 그가 얼마나 집착하고 있는지 보여 줬다.


- 미국 관료들은 2002년 4월 베네수엘라에서 일어나 우고 차베스의 급진 민족주의 정부에 대한 우익 쿠데타를 지원했다.


# 5장: 제국주의 역사에 비추어 미국의 정책을 분석하고 있다. 자율주의 경향은 제국주의 시대에 국가간 갈등은 사라지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9․11 이후의 국제위기는 이를 논박했으며, 제국주의 시대의 갈등은 경제적 지정학적 모두에서 일어나고 있다. 미국의 19세기 패권 전략은 미대륙에서의 주도권을 장악해 영국 제국주의와 확실한 경계선을 치는 것이었다. 현재, 미국은 군사적으로는 강하지만, 경제적으로는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이라크 전쟁이 폭로한 미국의 패권 전략은 심각한 것이지만, 단기적으로 미국 패권에 대한 지정학적인 도전자가 등장하기는 힘들 것이다.


- 마르크스주의 전통에서는 특히 20세기 초반에 제국주의 이론이 체계화되었고, 이것은 제국주의의 현대적 형태를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발전에 대한 이해에 기초해서 포괄적으로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그 핵심 주장은 세계적으로 통합된 자본주의는 경제적 군사적으로 경쟁하는 한줌의 강대국들이 지배하는 고도로 불평등한 사회를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 하트와 네그리는 세계 경제 통합으로 열강들 사이의 경쟁이 더는 현대 세계의 중요한 특징이 아니라고 부정한다. 심각한 국가 간 갈등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 증대하는 자본의 집중화와 국제화 때문에 기업들 사이의 경제적 경쟁이 국경을 뛰어넘었고, 이들이 자국 국가에 지원을 요청하면서 경제적 경쟁이 지정학적 경쟁으로 발전했다.


- 미국은 지난 한 세대 동안 심각한 국제수지 적자를 겪어오면서 순 자본 수입국이 됐다.


- 아시아는 다른 해외 투자자들과 함께 자국 통화에 대해서 달러화 가치가 하락하는 것을 막는 능력과 동기가 있었다.


- 다른 열강들에 비해 월등한 미국의 군사력만 보고서 경제적 경쟁에서는 훨씬 경쟁이 치열하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 유럽이 독자적 군사력을 발전시킬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러나 설사 유럽의 정치 엘리트들이 그러한 발전을 원하더라도, 국내적 장애가 만만치 않을 것이다.


- 1998년에 살고 있는 58억 2000만 명의 인류 중 12억 1400만 명이 세계은행의 공식 빈곤선인 하루 1달러 이하의 소득으로 살고 있고, 28억 명이 2달러도 못 벌고 있다. 해마다 1800만 명이 빈곤 관련 이유로 조기에 사망하는데, 이것은 총 사망자의 3분의 1에 달한다. 세계 인구 중 가장 부유한 20퍼센트의 수입과 가장 가난한 29퍼센트 사이의 격차는 1960년대에 3대 1, 1990년에 60대 1, 그리고 1997년에 74대 1로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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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란 무엇인가> 존 몰리뉴


# "하지만 인간 본성은 바뀌지 않는 법…"


인간의 본성은 정해져있지 않다. 자본주의 사회가 자본주의적 본성을 만들어내는 것 뿐이다.

오늘의 결과가 본성에 따라 정해져있다는 것은, 지배를 정당화시키려는 지배계급의 거짓 기만일 뿐이다.

때로, 우리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상식도 다른 사회적 조건에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다. 인간의 사회적 동물이다. 사회가 변화하면 인간도 변화하기 마련이다.


# 경영인은 꼭 있어야 하나?


직접 생산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공정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관리자들이 행하는 노무관리는, 봉건시대의 결투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사회와 함께 사라질 것이다.


# 혁명은 폭력을 뜻하는가?


자본주의가 가하는 폭력이 더 큰 폭력이다. 우리는 이 폭력을 종식시키기 위한 폭력을 기꺼이 옹호한다.

자본주의의 폭력이 소수의 다수에 대한 폭력이라면, 혁명에서의 폭력은 다수의 소수에 대한 폭력이다. 실제, 러시아 10월혁명도 다수의 동의 하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큰 물리적 충돌 없이 일어날 수 있었다.


# "사회주의는 사람들을 다 똑같이 만들어 버릴 거야…"


자본주의의 개성이란 가진 자들의 개성일 뿐이다. 착취받는 이들은 획일적인 노동과 여가에 좌우된다.

노동에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남으로 인해서, 자신의 능력과 여가를 대폭 확대할 수 있을 것이다.


# 우리는 왜 월요일을 싫어할까?


소외된 노동


# 착취란 무엇인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들의 노동은 하나의 상품으로서 취급된다. 노동력을 재상산하는데 드는 비용이 바로 ‘노동력’ 이라는 상품의 가격인 임금이다. 하지만, 노동이란 여타의 재화와는 다른 창조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단지 재생산에 따르는 비용만을 지급하는 것 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노동자들은 임금으로 지급받는 것 이상으로 노동력을 제공하고 있으며, 지급받지 못하는 부분이 바로 자본가들의 이윤이 된다.


# '자본'이란 무엇인가?


자본이란 그저 사물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일종의 사회관계를 나타내는 것이다.

자본은 (1) 임금노동과 (2) 경쟁체제 이 두가지를 바탕으로 할 때에만 성립한다.


# 자본주의는 어떻게 경제 불황을 낳는가?


(1) 호황과 불황의 주기적인 반복 (2) 이윤율의 감소경향 : 이윤은 임금노동으로부터 발생하는데, 자본가들은 생산을 효율화하기 위해서 임금노동의 비율보다는 기계설비에 더 많은 투자를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이윤율은 계속 감소할 수 밖에 없다.


# 역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


# 사회주의냐 야만이냐?


자본주의의 위기를 사회주의가 대체하지 못하면 파시즘이 대두하게 된다.

파시즘은 (1) 집단적 광기 (2) 국민성 (3) 카리스마적 지도자 에 의해서 출연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위기로부터 비롯된 쁘띠부르주아지의 도발이다.

실제, 파시즘의 대두시기에는 언제나 자본주의 경제위기와 대중시위가 있었는데, 1919년 이탈리아의 붉은 2년이 무솔리니를, 1928년 독일 혁명의 실패가 히틀러를, 1931년 스페인 혁명의 실패가 프랑코의 집권을 가져왔다.


# 무엇이 사회주의 혁명을 재촉하는가?


호황과 불황시기의 노동자들. 호황의 시기에는 개량적인 조치들로 대대적인 투쟁이 가로막히지만 대체로 자신감을 얻게되고, 불황의 시기에는 투쟁의 객관적 조건이 갖추어진다.


# 노동자 권력이란 무엇인가?


1905년 러시아 소비에트, 1918년 독일 노동자평의회, 1936년 스페인 노동자평의회, 1926년 영국의 행동위원회, 1980년 폴란드 공장연대위원회, 등 노동자 권력의 기반은 대규모적인 투쟁시기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이들은 직접 민주주의로 절대다수의 이해를 대변한다.

그러나, 이러한 노동자 권력은 기존의 권력과 이중권력의 형태를 띄게되고, 여기서의 승패가 곧 사회주의냐 야만이냐를 가르게 된다.


# "하지만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은 한줌밖에 안 되잖아"


관념이 사회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상태가 관념을 만들어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부분의 의식이 자본주의적인 것은 당연한 것이다.

노동자들의 일상적인 투쟁과 사회주의의 의식적인 선전선동이 상호 결합되어야 한다.


# 변증법적 유물론이란 무엇인가?


(1) 변화와 발전의 법칙을 밝히는 철학

(2) 변화의 힘은 내부로부터 나온다 : 계급투쟁의 사상

(3) 양질 전환의 법칙


# 저들의 진리와 우리의 진리


진리는 구체적이다. 모든 것에 적용되는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노동계급의 독자적 이익을 충실하는 것은, 절대다수의 이익을 방어하는 것과 같다.


# 하지만 중요한 점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이론이 없는 실천은 결코 성공할 수 없고, 실천이 없는 이론도 발전할 수 없다. 이론과 실천은 결합되어야 한다.


# 사회주의가 되면 민주주의는 없어지는 것이 아닐까?


민주주의란 부르주아들이 가장 세련된 착취에 불과하다. 의회 민주주의에 대한 환상을 버려야 한다. 의회 민주주의는 지배계급의 이익을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유지될 뿐이다. 73년 칠레의 경험은 지배계급들이 어떻게 의회 민주주의를 파괴하는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 국가는 아무 편도 아닌가?


공안과 객관성을 떠드는, 경찰, 군대, 법안, 대통령은 두가지 편견, (1) 국가는 사회 전체의 이익을 대변한다 (2) 국가가 없으면 무질서하게 될 것이다.

기존 국가기구를 파괴하지 않고는 노동자 국가를 건설할 수 없다.


# 누구를 위한 법과 질서인가?


지배계급은 전체 국민의 1%에 불과하다.


# 지배계급은 어떻게 지배를 유지하는가?


이들은 초기에 대중매체와 교육제도를 이용하지만, 이것만으로 부족하다고 느낄 경우에는 노조관료와 개량주의 정당을 적극 이용한다.


# 흩어지면 죽는다


소수의 지배계급이 다수를 지배할 수 있는 것은, 다수를 분열시키기 때문이다.


# '인구 과잉'


인구가 과잉해서 빈곤한 것이 아니다. 초국적 기업의 횡포를 정당화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


# 종교


아무리 좌익적인 종교일지라도 노동계급의 해방을 이룩하는데에는 장애물이다. 하지만, 종교가 노동자계급 투쟁에 도움이 되는 한 이것을 배타적으로 대해서는 안되며, 비판적으로 지지해야 한다.


# 전쟁


자본주의는 전쟁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평화주의는 전쟁의 원인을 제대로 짚어내지 못했으며, 이것은 자본주의에서 전쟁을 막을 수 있다는 환상을 유포하며, 실제로도 전쟁을 막을 수 없다.


# 테러


의회주의와 다를바 없는 대리주의적 성격과 체제 자체에서 원인을 찾지 않는다는 점에서 테러주의를 반대하지만, 제국주의의 폭력에 저항하기 위한 테러리즘을 비판적으로 지지해야 한다.


# 계급


계급이란 그저 직업이나 소득분포를 통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다. 중간계층이 많아지고 있지만, 이들도 결국 노동계급의 일부임에 틀림없다.


# 범죄


자본주의는 끊임없이 범죄를 만들어낸다. 범죄는 지배계급의 통치를 정당화해주는 수단이기 때문에, 지배계급의 지배를 위협하지 않는 범죄는 지배계급에게 환영을 받는다. 범죄를 없애기 위해서는, 범죄와의 전쟁이 아니라 자본주의와의 전쟁을 벌여야 한다.


# 가정


가정이란 지극히 보수적인 제도이다. 사회적 편견을 통한 억압, 여성들에 대한 억압, 투쟁에 나선 노동자들을 발목잡는 역할을 한다. 우리는 가족제도에 반대하지만, 이것을 순간적으로 폐지하는 방식이 아니라 대체해나가는 방식을 선택해야 한다.


# 국익을 지켜야 하지 않는가?


부르주아에게 민족주의가 있다면, 노동자계급에게는 국제주의가 있다.

국제주의의 토대는 자본주의의 다국적기업들이 제공하는 것으로, 공문구가 아니다.


# 이주에 대해서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인종차별을 반대하며, 모든 이주권을 옹호한다.


# 그렇다면 사회주의자는 민족해방 운동에 반대하는가?


강요된 것이 아닌 자발적인 민족해방운동을 비판적으로 지지한다.


# '무조건적 그러나 비판적' 지지란 무엇인가?


운동과 투쟁은 특정 행동이나 전술이 아닌, 세력관계를 보고 판단해야 한다.


# 러시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나?


러시아 혁명의 교훈은 혁명은 곧 패배한다는 사실이 아니라, 혁명은 국제적으로 확산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 중국은 좀 다른가?


중국에는 노동자 혁명이 없었으며 농촌 게릴라에 의한 도시전복이 일어났을 뿐이다. 이들은 미국 제국주의와 공공연한 동맹을 맺었고, 베트남과 전쟁을 벌였으며, 캄보디아의 살인마 폴 포트 정권을 지지했다. 중국은 폐쇄적인 일국경제를 유지하다가, 국제경제의 압력에 의해 시장을 개방한 것 뿐이다.


# 하지만 세계 동시 혁명은 불가능하지 않은가?


세계에서 동시에 혁명이 일어나기는 불가능하겠지만, 일국의 혁명이 세계 혁명으로 이어지리라는 전망이 가능하다. 왜냐하면, 혁명의 물질적 조건이란 자본주의 경제위기인데, 오늘날의 자본주의는 세계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나라에서의 투쟁 승리는 다른 나라의 귀감이 될 것이며, 동시에 지도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 "하지만 이미 대중적 노동자 정당이 있는데…"


노동당은 강령이나 조직력, 정책, 실천, 조직형태에 있어서 전혀 대중적인 정당이 아니다.


# 노동당은 바뀔 수 있는가?


노동당이 바뀌기 보다는, 노동당이 이들을 바꿔왔다.


# 조직은 필요하긴 한 거야?


조직의 필요성에서 마르크스주의와 견해를 달리하는 것이 아나키즘인데, 아나키즘의 부분적 타협이 아나코-생디칼리즘이다. 아나키즘은 마르크스주의와 사회주의적 전망을 같이 하되, 실제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분석하지 않고 있다.


# 노동조합은 어떤 구실을 하긴 하는가?


초기 사회주의자들은 쁘띠부르주아 출신이었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대중조직인 노동조합에 대해서 과소평가하면서 이것의 중요성을 간과했다.


# 국유화가 시장보다 낫긴 하잖아?


마르크스주의에서 생산수단의 사적소유 철폐는 부차적인 문제이다. 핵심 이념은 계급의 철폐일 뿐이다. 자본주의에서 국유화를 한들, 그것은 사적 소유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우리의 목표는 자본주의에 의한 국유화가 아니라 노동자의 통제가 기능하는 국유화이다.


# 혁명적 지도란 무엇인가?


혁명의 가장 큰 특징은 대중이 직접 역사적 과정에 개입하는 것이다. 하지만, 자생적 운동 만으로는 자본주의를 철폐할 수 없으며, 혁명적인 지도란 자생적 운동과의 결합을 통해서만 기능할 수 있다. 혁명정당은 혁명을 승리로 이끄는 것이지, 혁명을 인위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 운동은 많아도 전쟁은 하나뿐


마르크스주의는 여러 사회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동일하게 바라본다.


# 왜 혁명정당이 필요한가?


혁명정당이 없다면, 다수 대중들은 기존의 엉터리 지도자를 선택할 것이다.


# 옮긴이 후기


토론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맨바닥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주장이 존재해야 더욱 수월하게 이루어진다. 이 책은 좋은 토론거리를 제공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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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혁명정당 건설의 시기적 구분


(1) [1880~1890] 마르크스주의 학습써클 : 나로드니키운동, 나로드니키운동의 분열, 노동해방단 결성


- 당시의 급진적 젋은이들은 나로디즘과 마르크스주의 사이의 분리선을 명확하게 긋지 못하고 있었다.


- 플레하노프의 저작이 없었다면 아무도 사회민주주의 입장에 도달하지 못했을 것이다.


- 나로드니키는 마르크스의 원시적 자본축적과 영국 산업혁명의 잔학성에 대한 설명, 잉여가치론, 자본주의적 노동 분업과 소외에 대한 비판, 형식적인 부르주아 의회 민주주의에 대한 비판이 러시아에서 모든 노력을 기울여 자본주의 발전을 막아야 함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 나로드니키 운동은 1860년대 테러주의의 양상을 띄다가, 1870년대에는 지식인들의 농촌투신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농민들이 사회주의 사상을 받아들이지 않자, 혁명가의 대리주의 양상으로 되돌아갔다.


- 1879년, 대중선동을 중시하는 체르니 페레텔(흑토 재분배당)과 제믈랴 이 볼랴(인민의 의지)로 분리되고, 체르니 페레텔은 노동해방단의 전신이 된다. 플레하노프, 악셀로드, 자술리치, 도이치, 등이 참여

- 이들은 노동현장으로 뛰어들지만, 농촌의 생활과 정서에 가장 직접 속박되어있는 노동자들과 접촉했다.


- 나아가 V.V의 주장과는 반대로, 국내 시장은 자본주의 발전에 선행하는 전제조건이 아니라, 자본주의 발전 그 자체 때문에 창출된다는 점을 입증해 보였다. 부르주아지가 시장을 만들어냈지, 이미 만들어져 있는 시장을 발견한게 아니다.


- 1880년대는 대체로 아주 작은 마르크스주의 선전 써클들이 노동자들 속에서 활동하던 시기였다. 일반으로 이 시기는 암흑의 시대로 기억된다.


- 당시 짜르는 나로드니키를 주된 적으로 보았기 때문에, 그들을 격파하도록 부추기기 위해 1890년대 중반까지 합법 마르크스주의를 허용했다.


- 나로디즘과 결별한 것, 스트루베의 자유주의에 대한 독창적 태도, 그리고 그의 변증법적인 태도, 즉 나로디즘이 혁명적 민주주의 운동인 한 그것에 비판적 지지를 보냈던 것, 이 모든 것은 장차 레닌이 자신의 사상을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취했던 근본 태도들이었다.


(2) [1890~] 선전주의에서 노동자 운동으로의 개입시기 : 플레하노프의 <선동론>, 노동계급해방투쟁동맹을 결성, 수정주의 논쟁


-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절망적인 사회적 처지를 벗어날 수 있는 길을 교양과 계몽에서 찾았다. 그래서 그들은 학습 써클이 제공해주는 기회를 열심히 이용하려 했다.


- 선전가가 많은 사상을 하나 또는 소수의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반면, 선동가는 오직 하나 또는 몇가지 사상을 다수의 사람들에게 전달한다.


- 대다수 대중은 지적 사고가 아니라 객관적인 상황 전개를 통해 투쟁으로 이끌린다.


- 노동자들이 어떠한 폐해에 가장 쉽게 흥분하는지를 이해하고, 선동을 시작하기에 가장 알맞은 시기를 고를 필요가 있으며 해당 시간과 장소에서 어떤 투쟁 박식이 가장 효과가 있는가를 아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한 것들을 알려면, 선동가는 노동 대중과 끊임없이 접촉해야하며, 각각의 공장에서 일어나는 사태 전개의 추이를 항상 관찰해야 한다. 각각의 공장에는 셀 수도 없이 많은 폐해들이 있다. 노동자들은 아주 사소한 세부 문제들에도 관심이 있을 수 있다. 어떤 요구를 정확히 언제 제출해야 하는지 명확히 아는 것, 싸움이 일어날 수 있는 시기를 미리 아는 것, 바로 그것이 선동가의 임무다. 대주의 생활조건을 알고 대중의 정서를 알면, 선동가는 자연스럽게 노동자들의 지도자가 될 것이다.


(3) [1900~] 혁명정당으로서의 정체성 확립시기 : 경제주의 논쟁, 직업적 혁명가 사상, 전투조직 결성과 무장봉기에 대한 태도, 전국신문의 발간과 소그룹의 연합, 노동조합주의에 맞선 투쟁, 멘셰비키와의 분열


- 마르크스주의자들을 전국 정당으로 결속시키면 운동의 분업을 발전시키고 효율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 투쟁하는 다수의 무지는 소수적 전지전능함의 뒤집어진 반영이었다.


- 약 4~5년 동안 러시아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노동계급 속에서 공장 차원의 투쟁에 대한 열망을 불러일으키려 했다. 그러나 이제는 대중 가운데 정치적으로 의식화된 부문 속에서 정치 행동을 향한 열망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필요했다.


- 전도 유망한 노동자 선동가를 공장에서 하루에 11시간씩 일하도록 방치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당이 그의 생계를 책임지도록 조처해야 한다.

- 공장 생활을 통해 규율이 몸에 밴 노동자들과는 달리, 지식인들은 당을 통해 철의 규율을 익혀야 한다.


- 배포자망은 명백히 우리에게 필요한 종류의 조직 골격을 형성할 것이다.

- 신문의 배포자망이 장차 제정에 맞선느 무장 봉기를 조직하는 토대가 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배포자들로 이루어진 군사 조직이다.


- 운동에 대한 사상 실천 지도와 프롤레타리아의 혁명투쟁과 관련햇는 될 수 있는 대로 가장 강력한 중앙집권화가 필요한 반면, 당 중앙이 운동의 상황을 아는 것과 관련해서, 그리고 당에 대한 책임과 관련해서는 될 수 있는 대로 가장 광범한 분권화가 필요합니다.


- 의회 만능주의가 고개를 쳐들기 위해서는 적어도 준의회라도 필요했다. 1903년 러시아 사회주의 운동에서 개량주의의 깃발을 공공연히치켜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4) [1905~] 1905년의 자생적 봉기와 반동기 : 1905년 자생적 봉기에 대응하지 못함, 봉기의 전망(노-농 독재)에 대한 태도, 소비에트에 대한 종파적 태도, 당의 개방과 당원의 팽창, 극심한 반동기, 두마선거에 대한 태도, 멘셰비키와의 半통합, 소환파 최후통첩주의와의 투쟁, 완전한 분열.


- 참말이지 거대한 파업 운동이 진행되고 있었고, 어떤 미지의 어마어마한 물결이 일고 있었지만, 볼셰비키 위원회는 이것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볼셰비키 위원회는 가퐁 운동에 대해 주바토프 운동일 뿐이라는 평가를 내렸기 때문이다.


- 자유주의자들은 대지주 재산 몰수에 반대했다. 자유주의자들의 정당인 입헌민주당(카데츠)은 왕실과 수도원의 토지를 농민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은 지지했지만, 지주 토지의 강제 몰수와 관련해서는 지주들에게 공정한 가격을 지불하는 경우에만 지주 토지의 강제몰수에 동의한다고 밝혔다.

- 혁명이 수백만의 노동자와 농민을 정치 사회 투쟁으로 끌어들이면서 전진함에 따라 자유주의자들의 혁명 열정은 식어 갔다.

- 노동자들의 제정 반대 요구들과, 사용자들의 이익에 어긋나는 노동자들의 생활조건 개선 투쟁을 분리시킬 수 없음이 이내 명백해졌다.


- 페테르부르그 경찰조합의 명칭은 ‘러시아 공장 작업장 노동자회의’ 였다.


- 러시아 혁명의 경험은 깊은 정치위기의 객관적 조건들이 존재하는 경우에 혁명의 진정한 산실과 별로 관계가 없는 듯한 가장 작은 출돌이 대중의 감정을 활활 타오르게 하는 불꽃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의심할 여지없이 입증하고 있다.

-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영향으로 일련의 정치적 요구들이 포함됐다. : 8시간 노동, 노동자 집회의 자유, 농민에 대한 토지 분배, 언론의 자유, 교회와 국가의 분리, 러일전쟁 조식과 제헌의회 소집.

- 죽은 사람이 1000명을 넘었고, 부상한 사람이 무려 2000명이었다.


- 성장하는 노동조합 운동에 대한 사회민주주의자의 태도를 둘러싸고 레닌은 협소한 종파주의 관점을 갖고 있는 자신의 지지자들과 싸워야 했다.

- 정치투쟁을 지도하기 위해서는 소비에트와 당 둘 다 똑같이 절대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노동자 대표 소비에트를 임시혁명정부의 맹아로 여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 소비에트는 무장 봉기라는 급박한 행동을 하는 데 아주 중요한 동질성이 없기 때문이다. 소비에트는 봉기에 합법성을 부여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 그는 중앙집권적 당 기구를 물신화하지도 않았고 목적 그 자체로 보지도 않았으며, 노동계급 전위 부문의 행동과 의식과 조직화를 증대시키는 수단으로 보았다.

- 당과 노동계급 대중 사이의 관계를 강화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한다.

- 저는 우리 위원회에 지식인 두 사람당 노동자 여덟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합니다.

- 조직은 정치에 종속된다. 그는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당 기구의 보수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대중의 힘에 호소했다.


- 우리는 기술 발전을 활용하고, 노동자 분견대에 폭탄을 대량으로 제조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그들과 우리의 전투부대가 폭탄, 신관, 자동소총으로 무장하는 것을 도와줄 수 있고 도와주어야 한다.

- 사실, 모든 진정한 대중 운동에서 군대의 동요는 반드시 필요하다. 군대가 동요하면 혁명투쟁이 첨예해질 대마다 군대를 획득하기 위한 투쟁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봉기 시기에 군대를 획득하기 위한 물리적 투쟁도 있어야 한다는 것을 잊는다면, 우리는 비참한 공론가라고 판명날 것이다.

- 혁명의 정치적 측면에서 혁명의 기술적 측면을 분리하는 것은 순전히 헛 짓거리다.


- 러시아 혁명의 전망에 관한 레닌의 입장에는, 혁명의 과제는 부르주아의 과제인 데 반해 혁명의 지도력은 프롤레타리아가 장악해야 한다는 모순이 있었다. 첫째 요소는 볼셰비즘과 멘셰비즘 사이에 차이가 없는 것이지만, 둘째 요소는 근본으로 차이가 있는 것이다.


- 토지 국유화는 부르주아 혁명의 마지막 결론일 뿐 아니라 사회주의로 가는 조치이기도 하다.


- 경기 회복만이 프롤레타리아의 대열을 정비하게 하고, 프롤레타리아의 혈관에 신선한 피를 공급하고, 플롤레타리아의 자신감을 회복시키고, 프롤레타리아가 더욱 거센 투쟁을 할 수 있게 된다.


- 볼셰비키는 혁명을 떠들어 대기 좋아하는 자들, 그러니까 후퇴해야 한다는 것과 후퇴하는 법을 알아야 함을 이해하려 들지 않는 자들을 가차없이 폭로하고 당에서 쫓아냈기 때문에 일서정연하게 후퇴할 수 있었다.


- 우리가 두마를 보이코트했다는 사실이 반드시 우리가 두마에서 우리 당의 그룹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뜻하는가? 그렇게 생각하는 보이코트 지지자들은 실수하는 것이다. 정말 그렇다. 우리는 노력을 했는데도 두마가 소집됐기 때문에 우리는 두마를 활용한다는 임무를 회피할 수 없다.


- 저주받을 반혁명이 우리를 이런 지긋지긋한 돼지우리로 몰아넣었기 때문에, 우리는 푸념도 늘어놓지 말고 큰소리 탕탕 치지도 말고 혁명을 위해서 돼재우리에서 활동해야 할 것이다.


- 강령이 없으면 당은 시대가 어떤 방향으로 바뀌든지 자신의 노선을 일관되게 추구할 수 있는 통합된 정치 유기체일 수 없다.


- 우리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짜르와 그의 사냥개들한테 들키지 않으려고 비밀 활동에 의존하는 한편, 사람들이 우리 당과 당에 존재하는 다양한 견해 그리고 당의 강령과 정책에 관해 남김없이 알게 하고, 당대회에 참여한 이런저런 대표가 대회에서 말한 것 조차 알게 하려고 애쓴다.


- 레닌은 멘셰비키 노동자들의 중도주의와 지도자들 다수의 치유할 수 없는 직업적 중도주의를 구별했다.


- 혁명가들이 노동계급 내에서 전혀 실질적인 지지를 받지 못하고 고립돼 있을 때가 바로 과도좌익주의가 무르익을 조건이 된다.


- 자금징발 문제


(5) [1914~] 대중정당으로의 도약


# 레닌으로부터


- 출판자료들을 분석하는데 게으르지 않았다.

- 레닌은 대중과 긴밀히 접촉하는 것, 대중과 친해지는 것, 대중의 열망을 표현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다.

- 항상 그는 그때그때의 과제를 아주 명확하게 밝히고 난 뒤, 오로지 한가지 목적에만 몰두한 채 가장 명백하고도 가장 맹렬하게 집중타를 퍼부어 대면서 필요한 것을 거듭 강조했다. (만약 어떠한 전술 조직문제에 관해 레닌을 인용하고자 한다면, 당시 운동이 직면하고 있던 구체적인 문제를 극도로 명확히 밝히지 않으면 안된다.)

- 그는 조직이란 정치에 종속되어야 한다고 확신했다.

- 그는 <불꽃>의 편집국 회의에서 플레하노프의 관료적 태도에 부딪친 후 감정적인 면을 훈련하는 법을 배웠다.

- 레닌의 생활방식은 규율과 꼼꼼함과 묵묵한 자기 절제의 표본이었다.

- 하루 24시간 내내 혁명에 흥미를 느끼고, 혁명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잠잘 때조차 혁명에 관한 꿈만 꾸는 인간은 그 사람뿐이기 때문이지요.

- 일리치의 특징들 가운데 하나는 그가 원칙에 관한 논쟁과 개인적 싸움을 구별할 수 있고 대의의 이익을 모든 것보다 앞세울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점이었다. 반대파가 그를 공격할 때면, 일리치는 흥분해서 반격에 나섰고 자기 관점을 강하게 주장했다. 그러나 새로운 과제들이 떠오르고 반대파와 협력할 수 있을 때는, 어제의 반대파에게 동지로서 다가갈 수 있었다.

- 혁명가는 객관적 사실들이 의심의 여지를 남겨 놓지 않기 전까지는 혁명의 패배를 인정할 수 없다. 혁명가들은 전장을 결코 떠나지 않는다.

- 그는 자신의 연구가 결국 정치에서 어떻게 쓰이는지를 알려고 언제나 애썼다. 그러나 실제로 연구에 몰두하는 동안에는 그는 망설이지 않고 한 번에 몇 달식 실천 정치와 거리를 두고 대여악물관이나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파묻혀 지냈다.

- 가장 중요한 시기에 그는 부차적인 요소들을 모두 제쳐두고 가장 중요한 요소를 파악할 수 있었다.


# 전략과 전술에 대해서


- 1905년 혁명이 일어나자 레닌은 서둘러서 칼 폰 클라우제비츠의 군사 저술들을 연구했다.

- 전술 개념은 계급투쟁에서 하나의 과제나 하나의 부문에 해당하는 조치들에 적용된다.

- 복잡한 상황에서는 언제나 살아 있는 현실이 어떤 이론적 개념이나 진단보다 더 풍부한 법이다.

-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새로운 상황에 적용하려면 이론과 실천의 통일이 필요하다.

- 하나의 전략 계획이나 전술의 올바름을 확인하는 유일한 방법은 실천을 통한 검증, 즉 현실의 계급투쟁 발전 경험에 비추어 그것을 확인하는 것이다.

- 전쟁에서는, 그리고 혁명 시기의 계급 전쟁에서는 적의 진영뿐 아니라 아군 진영에도 미지수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냉철한 분석을 대체로 직관, 즉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상상력에 기초하는 대담한 임기응변과 결합시켜야 한다.

- 가장 중요한 시기에 혁명지도부의 기예 가운데 10분의 9는 대중의 감정을 포착하는 법을 아는 것이다.

- 혁명의 삶에서는 정확하게 때를 맞추는 문제가 중요하다.

- 가장 불리한 가정에 기초한 과감한 계획을 세우는 것은 레닌의 특징이었다.

- 머뭇거림은 혁명 시기에 나타날 수 있는 최악의 조건이다.

- 전쟁에 대한 추상 개념과 현실의 구체적 전쟁 사이에는 근본 차이가 있다고 주장한다. 우연이 커다란 역할을 한다. 심리적 요인들은 사람들이 내리는 결저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결정 요인들이다. 마찰을 고려함으로써만 실제 전쟁과 추상적 전쟁의 관계를, 경험과 이론의 관계를 알 수 있다.

- 전술은 전략에 종속돼야 한다. 그러나 성공을 거둔 일련의 전술 조치들은 전략의 변화를 야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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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O씨가 사회주의를 두고 마치 일련의 경제정책의 하나인 것 처럼 고집하는 이상, 논쟁이 수월하지 못할 것 같군요.

"도대체 이 시점에서 사회주의로 어떻게 가느냐" "뭔지 골라내어 순수한 무엇을 만드는 것" "사회주의는 자본주의를 수정하는 정도에 머무르고 있다."
OO씨의 사회주의에 대한 무지와 그로 인한 선입견이 극단적으로 드러난 표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꽤나 예의가 바른 사람입니다만, 달리 정중하게 표현드릴 방법이 없군요. 사회주의에 대해서 무지하면서, OO씨에게는 일말의 조심스러움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엥똘레랑스에는 엥똘레랑스인 법입니다.

사회주의는 당장 도입할 수 있는 경제정책의 성질도 아닐 뿐 더러, 당장 혁명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그 사회를 두고 사회주의라고 부르지도 않습니다. 혁명은 거대한 역사적 사건의 하나이지만, 결코 마술봉이 아니니까요.
OO씨가 자신만만하게 "대안이 없다"며, 당당하게 차악으로 선택하는 자본주의 사회 조차도, 산업혁명/부르주아혁명 이후에 오늘과 같은 사회의 모양새를 유지하기 위해 족히 150여년은 넘게 걸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참을성을 갖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일단, 사회주의가 일종의 경제정책이 아닌 이유에 대해서 다시 설명드리죠.

사회주의자는 물리적 조건을 인위적으로 뛰어넘으려는 어떤 시도에도 반대합니다. (1) 계급 (2) 정당 (3) 봉기 이 세가지 요소가 갖추어져야 혁명은 일어날 수 있죠. (1) 대중들의 열망과 동의가 있어야 하고 (2) 대중들의 의사를 결집시킬 정당이 필요하고 (3) 정당과 대중의 직접행동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현재, 한국에는 충족되지 않은 조건들입니다. 다만, 이 조건들이란 가만히 앉아있다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생존권 투쟁에 한마음으로 연대하고, 정치적인 선전도 하는게 아니겠습니까.

'이 시점에서 사회주의로 가는 뿅망치'를 찾고있는 사람은 제가 아니라, 주병씨일 뿐입니다.

다음으로, 계획경제에 대해서 말씀드리지요.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기업단위, 국가단위, 세계단위에 이미 계획이 존재합니다. 다만, 자본주의는 계획이 무정부적인 경쟁에 종속되어있을 따름입니다.
OO씨 말씀대로, 계획의 규모와 통제력은 반드시 비례하죠.

여기서도, '모두가 알아서 잘 하리라' 기대하는건 제가 아니라, 주병씨일 뿐입니다.
큰 규모의 계획에 따르는 거대한 통제력을 소수 관료가 행할 것이라 비관하는 것은 제가 아니라, OO씨일 뿐입니다.

1871년 파리꼬뮨이나, 1917년 러시아의 소비에트, 1960년대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자주관리운동, 1970년대 칠레의 꼬르돈, 1980년대 한국의 광주, 등 전혀 관료적이지 않았던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 OO씨는 실패만 기억할 뿐 일말의 교훈도 배울 의지가 없는 것 같습니다.

제대로 읽지도 않은 독서후기에 성급하게 결론을 요구하고 논평을 즐기기 보다는, 좀 더 열린 마음으로 이해해보는건 어떻습니까.
정책을 논하거나 결정하는 자리도 아니고, 서로 책을 읽고 토론하는 곳입니다. '대안은 없다'라며 차악을 선택하는 것을 정당화하기 이전에, 제가 읽고 소개하는 책에 작은 관심을 갖고 '아 이런 것도 있구나' 라고 가벼이 받아들이는건 어떻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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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문

 

이런 투쟁들이 개인에게든 집단에게든 거듭거듭 제기한 문제는, 체제에 대항하는 거대하고 고무적인 반란을 진정한 승리로 이끌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다.


당시(1970년대)에는 혁명정당을 지향하고 혁명정당을 자처한 세력들이 흔했다. 오히려 이론과 실천의 핵심 문제는 당과 노동계급의 관계는 무엇인가 하는 문제였다.


1973년 9월 칠레에서의 패배, 1974년~1975년 프로투갈 혁명의 중단, 미국 중간 계급 흑인 지도부의 주류 사회 편입, 이탈리아 스페인 영국 노동운동 지도자들이 각각 자국 정부와 체결한 역사적 타협, 몬클로아 협약, 사회협약은 세계 경제침체나 대량실업의 시작과 결합돼 새로운 시기를 알리는 전환점이자 요인들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1960년대에 급진화한 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포스트-구조주의, 포스트 모더니즘, 기타 형태의 이론적 순응을 통해 자본주의 체제와 화해했다.


1990년대의 투쟁들은, (중략), 남아공에서 아파르트헤이트가 종식됐으며, 아프리카 대륙ㅈ 역에서 노동자들이 부패한 독재 정권들에 대항하는 전투에 참가해 많은 경우 승리했다.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칠레의 독재정권이 끝내 무너졌고, 멕시코의 사파티스타가 반란을 일으켰으며, 브라질 좌파는 노동자당의 형태로 장족의 진보를 이룩했다. 1995년에 프랑스 노동자들은 쥐페의 복지감축 계획에 맞서 대규모 반란을 일으켰다. 아시아에서는 한국 노동자들이 전투적이고 고무적인 투쟁들을 여러차례 벌였으며, 인도네시아의 대중 반란은 수하르토 독재 정권을 타도했다.


근본 문제는 기존 상황에 대한 노동대중의 분노와 사회주의적 미래에 대한 확신 사이에 여전히 커다란 격차가 있었다는 점이다.


개량이냐 혁명이냐 하는 오래된 문제는 반자본주의 운동과 반전 운동 안에서 벌어지는 논쟁들을 통해 다시 등장했다. 이런 논쟁들 중 가장 중요한 것 하나가 조직 형태와 정당의 구실에 관한 것이다. 피렌페 유럽사회포럼에서는 이 주제로 열린 포럼에 수천명이 참가했다.


반자본주의 운동 안에서는 영향력 있는 많은 사람들, 예컨대 나오미 클라인, 마이클 하트, 더 오른쪽에는 금융거래과세시민연합의 베르나르 카상 같은 사람들이 정당에 거의 반대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대중투쟁과 심지어 대중혁명조차도 자생적으로 또는 비공식적 지역 네트워크들을 통해 분출할 수는 있지만, 그런 형태로는 자본주의를 정말로 패배시킬 수 없다. 이런 과제를 위해서는 혁명적 노동자 정당이라는 지도부가 필수적이다.

 

- 마르크스



마르크스

 

 

기본적인 원칙들을 정립 : 유물론에 대한 강조, 투쟁에서 배우는 것에 대한 강조, 당은 계급적 기초를 바탕으로 한다. 당은 소수의 음모적 집단이 아니다.(음모가적인 자코뱅 전통, 쁘띠부르주아적 공상적 사회주의의 배격)

 

경험으로부터 당의 독자성 사상 구축 : 부르주아 운동이나 정당들에 뒤섞여 있어서는 안된다.

 

독일 사회민주주의당에 개입하면서, 기회주의와의 싸움을 강조

1인터는 여러 경향들의 자유로운 연합체(각 지부는 각자의 이론적 강령들을 수립할 수 있었다.)였지만, 마르크스는 유연한 방식으로 대처. 바쿠닌이 이를 이용하여 ‘권위주의‘에 반대하는 비주류파를 결집.

 

경제결정론과 낙관적 진화론 : 노동자 계급의 정치적 개량주의가 때가 되면 간단히 혁명적 행동으로 변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혁명의 주요한 장애물이 된다.

 

전위당의 필요성 깨닫지 못함

 

당과 대중의 관계에 대해서 선명하게 정리하지 않았으며, 즉 압도 다수의 프롤레타리아를 포용할 때까지 더 많은 프롤레타리아를 조직하면서 끊임없이 순조롭게 팽창하는 광범한 당이라는 개념.


마르크스의 한계는 시대적 한계를 반영한다. 그의 당 이론은 당의 형태가 존재하지 않을 때 성립.


- 레닌과 공산주의 인터내셔널


레닌

경제결정론과 결별

 

전위당 개념의 성립

 

개인적 테러리즘에 대한 반대

 

소비에트에서 다수파가 될 때 까지는 권력장악을 반대

 

직업혁명가 개념 정립

 

자생성-의식성 테제 : 의식적 요소를 돕고자생성을 극복하기 위해 일하는 것이 혁명가의 의무이다. 경제주의자들의 추수주의에 반대해 지도력을 주장하고 있다.

외부로부터의 사회주의

 

사회민주주의와의 연계

공산주의

인터내셔널

엘리트적인 분위기 극복

 

당을 재조직 : 노동자 구성원 확충, 젊은층, 민주집중제

 

당의 개방적 팽창 : 명백히 사회민주주의적이 아닌 것을 제외하고는 모든 서클이 당에 직접 가입하도록 하거나 당과 제휴하도록 하라.

 

후퇴기의 투쟁 : 당의 후퇴에 대해서, 비합활동에 대해서, 기회주의와의 투쟁에 대해서(청산파, 소환파, 화해주의에 맞선 투쟁)

 

사회민주주의와의 단절

 

기회주의에 대한 정식화(<제국주의론>)

 

노동자국가(<국가와 혁명>) : 합법 비합법 기수의 수립, 전투 분대 조직, 군대 내 당 그룹 건설

 

인터내셔널 : 엄격하게 집중됨. 단일한 공산당의 지부로 명명, 4차 대회 이전까지는 각국에서 사회민주주의 유형에 따라 활동하는 지부들을 재조직하기 위해 ‘공산당의 조직과 구성’에 관한 테제를 채택함.

 


볼셰비즘의 이미지는 레닌에 의해서 ‘발명‘된 것이 아니다.

 

역사는 노동자들이 자생적으로 노동조합주의와 노동조합주의적 정치 활동보다 훨씬 높은 곳까지 이른 수많은 사례를 보여준다. 영국의 차티스트 운동, 프랑스의 1848년 혁명, 파리코뮌, 1905년과 1917년 2월의 러시아 노동자들, 1956년 헝가리 혁명, 등이 그것이다.

 

실제로 레닌은 이때까지는(1904년) 자신이 정통 사회민주주의의 기본 노선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멘셰비키를 베른슈타인파의 수정주의와 동일시하고, 자신은 독일사민당의 주류인 베벨 카우츠키 노선과 동일하다고 생각했다. 1903~1904년 당시 레닌의 당 이론과 1919년 공산주의 인터내셔널 창립 당시의 그것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레닌] 살아서 성장하는 당이라면 모두 그 안에는 언제나 불안과 동요와 혼란의 요소가 있기 마련임을 잊지 말라.

 

[레닌] 이론은 회색이요, 푸른 것은 저 영원한 생명의 나무다.

 

[레닌] 우리에게 진부한 것이라고 해서 계급, 대중에게도 진부한 것이라고 간주해서는 안된다.


<무엇을 할 것인가> : 경제주의와의 투쟁, 직업혁명가 사상, 전러시아 신문에 기초한 전국적 혁명조직에 관한 주장

<일보전진 이보후퇴> : 대중추수주의에 대한 비판

<유럽 전쟁에서 혁명적 사회민주주의자의 임무> : 국제 사회민주주의 지도자들을 사회주의의 배신자로 비난하고 인터내셔널은 이데올로기적 정치적으로 파산했다고 기술.

<공산주의 좌익 소아병> : 혁명정당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 타협, 책략, 그리고 부르주아 의회나 반동적 노동조합에 참가하기를 완전히 부정하는, 순수한 정책을 추구하기를 바라던 사람들의 주장이었다. 독일공산주의노동자당, 이탈리아의 보르디가, 네덜란드의 호르터와 판네쾨크, 영국의 갤러허와 팽크허스트 등의 노선

 

- 로자


로자

혁명정당의 필요성과 권위, 지도의 필요성에 공감하였으나, 대중의 자발성에 초점을 맞추어 서술

1918년 독일혁명을 지도하지 못함

 

당의 전위성에 대해서, 기회주의와의 투쟁에 대해서 과소평가 : 그는 선진적 혁명적 노동자들을 따로 독자적으로 조직해 노동자 계급 전체에 대한 그들의 영향력을 증대시키고 그들로 하여금 계급에 대한 기회주의와 개량주의의 영향력에 대항해 투쟁하도록 무장시킬 필요성을 간파하지 못했다.


 

로자와 레닌의 차이점은 활동배경을 염두해두어야 한다. 독일은 이미 대중정당이 건설되어 있는 상황이었으며, 관료제가 확실히 자리잡고 있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독일 노동운동이 결여하고 있던 것은 바로 자발성과 투쟁이었다.

 

사실상 총파업은 그것의 규모, 강력함, 그리고 전투성이 어떠하든 간에 단지 권력의 문제를 제기할 뿐이지 그것을 해결하지도 해결할 수도 없다. 봉기를 통한 낡은 국가권력의 타파만이 그것을 이룰 수 있다. 그리고 봉기는 그 본질상 조직돼야만 하는 것이다. 미리 봉기를 비밀리에 준비하고, 일정한 날짜를 잡고, 프롤레타리아의 결정적 부문들이 동시에 통일되게 행동해야만 한다. 따라서, 그것을 실행하려면 계급 전체에 영향을 미치고 권위를 갖고 있는 잘 조직된 명령 체계가 있어야만 한다. 다시 말해서 무장봉기는 오직 당만이 성공적으로 조직할 수 있으며 그 당은 단지 어떤 종류의 당이든 상관없는 것이 아니라 한결같이 움직일 수 있는, 엄격한 규율을 갖춘 전투정당이어야만 한다.


- 트로츠키


트로츠키

당내 민주주의의 사수 : 비판의 자유, 당의 계급적 구성, 분파의 자유, 일국 사회주의론 비판, 일당 독재 반대

당의 발전속도를 관념적으로 설정


당은 처음에 소비에트 테두리 내에서 정치투쟁의 자유를 계속 유지하기를 원하고 희망했다. 그런데 내전 때문에 차질이 생겼다. 반대 정당은 모두 금지됐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명백히 소비에트 민주주의의 정신에 위배하는 조치이므로, 볼셰비키 지도자들을 이 조치가 원칙에 입각한 것이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았고 다만 방위를 위한 일시적인 고육지책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대단히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었기 때문에, 트로츠키의 운동은 세 가지 특징을 지니게 되었다. 첫째, 그것은 대단히 작은 규모였고, 둘째로 사회 구성 면에서는 쁘띠부르주아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셋째, 적어도 그 간부들을 보면 일종의 망명 조직이었다.


전쟁 준비 덕분에 자본주의는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기 시작했으며, 트로츠키가 자본주의 체제의 마지막 위기를 기대했음에도 전쟁이 끝나자 자본주의 체제는 오히려 가장 지속적이고 장대한 호황을 누리게 된다.


이후 트로츠키주의자들의 그릇된 행보는 (1) 극도로 교조적인 자파 중심주의 (2) 쁘띠부르주아적 기회주의로 귀결했다.

 

- 그람시


그람시

숙명론, 예견, 경제결정론에 대한 비판

 

순수한 자생성에 대한 부정

 

러시아와는 다른 서구 사회의 시민사회적 특성의 발견 : 진지전, 헤게모니의 집중, 동맹, 교육, 유기적 지식인의 중요성 강조

 

파괴적 측면보다 창조적 측면을 강조 : 혁명에서 국가기구의 접수 뿐만 아니라 생산력의 해방이 이루어져야 한다

실천적 지도경험 없음


[그람시] 우리는 실제로 우리가 활동하는 범위까지만, 그리고 임의의 노력을 가하는 데까지만 예견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예견된 결과를 구체적으로 창출해 내는 데 기여할 뿐이다.


그람시는 노동 운동 내에서 경제주의 도는 생디칼리즘이라는 조류를 마르크스주의에서 나온 것이라기 보다는 자유방임적 자유주의에서 나온 것으로 봤다. 그 반면 마르스크주의는 정치를 통해 경제적 힘을 인간의 의지에 종속시키려고 하는 사상이라는 것이다.


[그람시] 혁명은 그것이 이제까지 자본가 계급이 지배해 왔던 사회에서 발전하고 있었던 힘, 즉 프롤레타리아 공산주의 생산력을 해방시켜야만 프롤레타리아 혁명 공산주의 혁명이 된다.


[그람시] 집단 의지가 구체적인 형태를 띠기 시작하는 유기적인 조직체, 사회의 한복합적인 요소일 수 밖에 없다. 그것이 바로 정당이다.


[그람시] 러시아에서는 국가가 전부였으며 시민사회는 원시적이고도 유동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서구에서는 국가와 시민사회 사이에 적절한 관계가 존재했으며 그래서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시민사회의 강력한 구조가 즉시 드러났다.


[그람시] 순수한 자생성이라는 것은 역사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부터 강조해야 한다. 순수한 자생성이란 곧 순수한 기계적 자동성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람시] 관료화의 위험은 물론 경계해야 한다. 그렇지만, 연속성이 깨지고 당의 노선과 본질이 변질될 위험이 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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