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상대적으로 이해관계가 없는, 20대의 인간관계는 오래 지속된다.
2. 인간관계에서 긍정적인 단어를 사용하도록 노력하자.
3. 특별하지 않은 용무라 하더라도 잠깐의 대화는 서로의 관계를 돈독하게 한다.
4. 상대방으로 하여금 자신과의 만남이 유익하게 느껴지도록 하자.
5. 인맥을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우선 스스로의 능력을 성장시키는 것이다. 그 과정을 통해서 인맥은 자연스럽게 형성될 것이다.
6. 정보를 얻는 방법은 두가지가 있다. 직접 체험하는 방법과, 이미 체험한 사람들의 경험과 지혜를 빌리는 방법.
7. 역할 창조능력, 집단으로의 참가능력, 그룹 형성능력을 키우자.
8. 인맥에서 상급자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9. 정체되지 않고 지속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하자. 식사시간, 운동시간, 등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자.
10. 이색적인 사람들과의 만남을 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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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봉기주의


“사회민주주의는 여전히 주로 그 사회적 기반을 프롤레타리아에 두고 있음에도 그 이데올로기적 정치적 기능이 노동자 계급 운동의 우파가 아니라 부르주아지의 좌파인 것으로 여겨져야 하며, 그런 만큼 대중의 눈앞에서 그 실체가 드러나야 한다.”


2. 노동자주의


“당 조직의 기반을 생산에 두는 원칙에 반대하는 주장은 모두 프롤레타리아와 떨어져 있는 계급들과 관련된 개념들로부터 도출되며 … 자신들이 지상의 소금이라 믿으면서 노동자들을 혁명의 의식적이고 지적인 주인공으로 두기보다는 사회 변혁의 물질적 도구로 여기는 쁘띠부르주아 지식인의 반프롤레타리아적 정신의 표현이다.”


그는 공산당이 부르주아 야당처럼 민주주의적 슬로건을 제출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이러한 정당들이 실제 행동의 시험을 통해서 대중 앞에서 스스로의 가면이 벗겨지고 그들에 대한 영향력을 상실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3. 자생주의


그람시의 사상 중 가장 발전된 독자적 영역은 노동자 계급의 혁명적 의식 발전을 위한 투쟁에 관한 것이다.


소비에트는 적당한 시기에 당에 의해 세워지는 추상물이 아니라 공장에서 노동자 투쟁의 기관으로서, 아마도 처음에는 외관상 사소한 쟁점들을 둘러싸고 탄생하는 것이었다.


노동자들은 <신질서>를 사랑했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그들이 그 기사들에서 그들 자신의 일부를, 최상의 일부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 그들이 경험했던 내면의 갈구와 똑같은 정신으로 충만해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 그들은 토리노 노동자 계급의 진실한 감정과 목적과 열정을 구체화했으며, 우리는 이로부터 고무되고 검증됐다.


혁명정당을 건설하는 것은 노동자들에게 추상적 선전을 통해 사상을 주입하는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경제 위기의 영향에 자극받아 노동자들이 행동할 때 까지 기다리는 문제 또한 아니다. 그것은 모든 자생적이고 부분적인 투쟁들을 연결시키고 이것들의 일반화를 시도하는 문제인 것이다.


4. 평조합원주의


“노조는 본질적으로 경쟁적이며, 공산주의적 성격을 갖지 않는다. 그것은 사회의 급진적 혁신의 도구가 될 수 없다.”


“쿠데타의 가장 중요한 원인들 중 하나는 책임 있는 그룹들이 자생적 반란들에 의식있는 지도를 제공하지 못하거나 그들을 능동적인 정치적 요인으로 만들지 못했다는 것이다.”


5. 헤게모니, 진지전 이론


① 진지전은 전쟁이다. 계급 협력이 아니다.

② 혁명적 정치가 그 많은 시간을 진지전에 할애해야 한다는 주장은 새삼스러운 이야기가 아니다.

③ 헤게모니를 위한 싸움은 단지 이데올로기적 투쟁만이 아니다. “대규모 이데올로기적 요인들은 항상 대규모 경제 현상에 뒤쳐진다.”

④ 다른 피억압 계급들을 설복하기 위한 투쟁은 노동자 계급이 자신의 이익을 위한 투쟁을 포기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오직 공장 노동자들의 경제적 위치에 근거한 노동자 위원회를 설립하고 그 위원회들을 농민위원회 형성을 자극하는 데 이용함으로써만 이루어질 수 있다.

⑤ 헤게모니를 위한 투쟁이 결코 그 자체로 국가 권력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6. 그람시 공식의 불명료함


새로운 무기가 발명되면 군사적 진지전은 시대에 뒤떨어지고 위험한 것이 된다. 레닌의 위대함은 진지전에서 기동전으로 전략이 전환해야 하는 시기를 포착할 수 있었던 것에 있다.


1차 세계대전 개전 전 유럽에서 진지전을 벌이는 정당의 전형적 사례는 독일 사회민주당이었다. 사회민주당은 부르주아 사회 안에 ‘요새들’의 거대한 그물망을 구축했다. 수많은 신문들, 수십만 당원들, 지역 협동조합과 클럽들, 여성 운동, 강력한 노동조합 기구들, 기성체제 지식인들의 일부 마저 경탄케 했던 이론 저널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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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쟁을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요즘 KBS 드라마 <서울1945>를 보고 있는데, 대하드라마가 늘상 그렇듯이 논쟁이 되고 있어요. 그 관련 기사를 찾다보니 여기까지 흘러왔습니다. (드라마와 학계의 논쟁이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해방전후사의 인식>은 1979년 10월에 출간된 책입니다. 계엄 하에서 판금 조치될 정도로, 그간 공식적으로 논의되지 않았던 해방전후사를 다루며 인기를 얻었던 책입니다.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은 <해방전후사의 인식>을 비판하며 지난 3월에 출간되었습니다. 이렇게 조성된 긴장관계 속에서 <해방전후사의 인식>은 재출간을 하기도 했구요.
그리고, 한국정치학회는 이 논쟁을, 비판과 반비판을 넘어 통합적으로 논의하는 장으로 만들기 위해 연구를 시작한다고 하는군요.

언뜻 좌우파 이념 논쟁으로 비추어지는 이 논쟁은, 사실 민족주의를 제외한 확실한 논쟁점이 없어보입니다. 이념 논쟁은 불명확해요.
이들이 간신히 논쟁을 전개할 수 있는 이유는, 이념과 상관없이 양 진영 사이의 공통점이 있기 때문인데요, 비약하자면 한쪽 진영에는 민족주의 좌파와 우파들이, 나머지 한쪽 진영에는 탈민족주의 좌파와 우파들이 뒤섞여있는 것이죠.

저는 이 논쟁이 이념 논쟁으로 비화되는 것은 소모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렇게 될 수도 없구요.
일전에 <이정 박헌영 일대기> 독서후기를 쓰면서, “해방 이후의 역사에 대한 어리석은 접근 중의 하나는, '왼쪽이 옳으냐 오른쪽이 옳으냐'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접근은 우리의 사고를 제약하며, 자칫 소모적인 비난으로 치우치기도 합니다.” 라는 말씀을 드렸었는데요, 두 책을 둘러싼 학계의 논쟁은 이런 제 생각을 더욱 확신하게 합니다.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그것은 민족주의와는 양립할 수 없는 체제입니다.
자본주의는 시장의 세계적 통합을 추진하는 체제이고, 사회주의 역시 세계적 생산 공동체를 추구합니다. 방식과 주체만 다를 뿐 경제의 세계적 통합이라는 측면에서는 같죠.

따라서, ‘민족주의 좌파‘, ‘민족주의 우파‘는 모순적인 표현입니다.
이런 표현은 한국에서나 쓰이는 것이에요. 모순적임에도 불구하고 이 표현이 오늘날까지 공공연히 사용되는 이유는, 체제가 무엇이냐를 떠나 어느 누구도 분단을 원하지 않았던 해방전후사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있는 까닭이죠.

사람들은 간혹, 현실이 불만족스러울 때 과거를 돌아본다고 합니다. 식민지 운운하는 민족주의 좌파와 역사적 정통성 운운하는 민족주의 우파는, 과거에 집착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통일 정부 만능주의든, 정통 정부 만능주의든, 역사와 이념을 부적절하게 뒤섞은 것입니다. 이들에게 부족한 것은 미래지향적인 사고에요.

탈민족주의 우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은 해방 직후의 자주적인 정부 구성에 대한 열망을 과소평가하는 것 같아요. 오늘날의 자본주의 경제와 1950년대 자본주의 경제를 단순하게 비교하는 것은 우스운 일입니다. 오늘날 북한의 폐쇄경제를 두고 결과론적으로 해방전후사에 개입하는 것도 그렇구요.

<해방전후사의 재인식> 진영에서 극소수에 불과하겠지만, 탈민족주의 좌파에 귀를 기울여 볼 생각입니다. 이들이야 말로, 과거에 집착하는 이들과 현재를 합리화하려는 이들 사이에서 유의미한 역사 연구를 할 수 있을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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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즐겨보는 한 드라마의 대사란 이런 것이다.
"빨갱이들이란 도무지 제 가족이란 안중에 없는 것들이죠."

몹쓸 놈의 이념이 가족을 가르는가?

그렇지 않다.
이념이 가족을 가른다는 일반화는 잘못되었다. 극중 동우와 해경이 그렇듯, 지배세력의 이념은 가족을 가르지 않기 때문이다.

동기와 운혁이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가족과 이별해야 했던 것은,
그들의 신념이 적어도 지배계급의 그것이 되지 못했기 때문일 뿐이다.

지배계급의 신념에 동의하지 않는 당신에게 한마디 조언하고 싶다.

신념 이전에 형성되어 있는 가족인들 어찌하겠나.
다만, 이런 상황에서 앞으로의 비극이나마 막기 위한 최선은, 당신이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구성할 의향이 있다면, 우선적으로 신념을 따져보라는 것이다.

물론, 연애를 하고자 할 때도 명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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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6-26 10: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 미국이 한반도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해관계에 대해서

- 미국의 무역수지 중 36%가 동북아 지역에서 이루어진다.

- 냉전구도가 깨지면서 초강대국 지위가 위협받으면서, 중국 일본 러시아의 군사대국화를 견제해야하는 상황이다.

- 미국은 북의 핵무기 개발로 중국 일본 등 인접 국가의 강대국이 경쟁적으로 군비를 확충하는 것을 진정으로 두려워하며, 군사분야에서의 주도권을 사활적으로 장악하려고 함.

- 군수산업의 이해관계를 반영


# 서해교전은 돌발적인 사건이 아니다.

- 99년 5월 금창리 핵사찰에 이은 포괄적 해결방안 강요

- 북방한계선(NLL)은 미국이 임의로 설정해놓은 것으로 적용근거가 없음

- 발포는 북한 측에서 먼저 했지만, 남한 측에서 선제공격을 했고 북한의 사상자가 먼저 남.


# 미국의 위선

- 세계 어느국가보다 많은 무기판매(미국 러시아 영국 중국 프랑스 순)와 핵보유.

- NMD구축에 소요되는 천문학적인 액수이면 북에 대한 경제적 지원 및 흡수 가능함.


# 북핵사태의 근원

- 91년 소련이 해체되면서 북한 무역의 상당부분이 크게 위축됨.

- 북한은 이를 일본과의 교역으로 극복하고자 하였으나 미국이 방해.

- 북의 지배계급은 체제 유지하면서 세계체제로 편입하려 함.


# 민족주의자들의 혼란

- 90년, 범민족대회 탄압에 대해 반정부 시위 격화 중, 남북 고위급회담 개최

- 91년, 분단을 고착화시킨다는 명분으로 UN 동시가입을 반대했는데, 북한측에서 동시가입을 승인

- 01년, 615공동선언 이후 반정부 시위 자제, 민화협 주도 행사 참여하려 했으나 정부에서 거절. 이적규정 불철회


# 남북 지배계급의 공통된 전략

 

남한

북한

통일전략

김대중 <나의 길 나의 사상> : 흡수통일이 가져올 혼란과 비용 피하면서 경제적 이득에 몰두

북한 <노동신문> : 김우중을 민족기업인으로 추켜세움.

간첩

북파공작원, 흑금성 박채서

간첩의 남파

사상통제

국가보안법, 정치범 양심수 탄압

 

고위급 커넥션

이후락, 장세동, 이명박, 정재문, 정형근, 강삼재, 대선 후보 등

전금철, 강덕순, 안병수

노동조합

파업권

 

직업동맹

국가관료 최저임금

소환권

 

 

군대 경찰

 

 

사법부

 

 

관료 비중

 

 


# 조선공산당

- 초기에 모스크바의 판단에 근거하여 미국을 진보적 민주주의 국가로 인정

-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표방

- 인민전선 방침에 근거, 노동자 자주관리운동을 좌경으로 매도하며, 반대로 산업건설협력방침 통보

- 미소 밀월관계가 폭로된 이후에야 투쟁전개

- 모스크바의 판단에 근거하여 반탁에서 찬탁으로 입장 변경 후 지지도 급감


# 해방 이후 남북 연대기

 

이북

이남

1945

08

15

해방

 

 

08

16

황해도에서 대중시위 격화, 정치범 석방, 경찰서 등 관공서 습격, <압강일보>발간, 함흥 원산 등지에서 공장관리위 구성, 원산에서는 조선노동조합이 치안을 담당, 해주 조선시멘트, 조선화학에서 노동자자주관리 운동

 

 

08

19

 

미 군정이 인공을 해체

박헌영 조선공산당 재건위원회 구성

 

08

25

소련 일본과 교섭 후 일본에게 행정권을 이양

 

 

08

26

소련군이 평양까지 주둔

 

 

09

 

연안파(중공과 연계 이후 조선신민당), 만주파(김정일), 소련파 귀국

 

 

10

08

모스크바-김정일-박헌영 비밀회담(조선공산당 분국을 세워 박헌영의 영향력으로부터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

 

 

10

12

무장대 해산, 무기 압수

 

 

10

20

 

이승만 서울귀국

 

10

 

소작제 인하상태로 유지

 

 

11

03

조만식이 조선민주당 창당

 

 

11

18

용암포 사건

 

 

11

 

신의주 사건

 

 

11

26

 

민병대 해체, 25000 규모의 중앙경찰 창설

 

12

16

모스크바 3상회의(임시정부를 수립하고, 미소공동위원회와 함께 신탁통치에 대해서 협의할 것을 결의)

 

1946

02

08

북조선인민위원회에 김일성이 위원장으로 취임

 

 

02

 

김일성의 오른팔 최용건이 조만식의 조선민주당을 장악

 

 

03

 

함흥 학생시위, 무상몰수 무상분배 방식으로 토지에 형식적인 소유권을 부여(계약, 매매, 임대차, 저당, 상속권 불인정), 87%의 지주가 남하

 

 

03

20

1차 미소공동위원회 개최 및 결렬

 

 

05

18

 

미군정이 조선공산당 본부를 습격 후 해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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