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업 열정의 원동력은 책 읽기"  [05/01/10]
 
[CEO책꽂이]"내 사업 열정의 원동력은 책 읽기"

세계일보 교보문고·북코스모스 공동기획 시리즈

경영에 문화 마인드를 접목하는 CEO(최고경영자)가 늘고 있다. 숫자 싸움에서 벗어나 문화 현장을 찾고 책을 권하며, 경영현장과 문화계에 건강한 자극을 주는 경영자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최대 서점인 교보문고와 북에이전시인 북코스모스, 세계일보는 이 현상에 주목해 책을 읽고 이를 권하는 문화 CEO를 집중 인터뷰해 싣는 연재 기획물을 마련한다. 광복 60돌을 맞는 올해는 한국 문화계로서도 의미 있는 해이다. 올 10월 독일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책잔치인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주빈국으로 참여하는 것도 그 의미를 더한다. 서점가와 에이전시, 언론사가 공동 기획하는 ‘CEO의 책꽂이’는 책과 경영의 결합을 시도하며 마련한 장인 셈이다. [편집자주]

갑신년을 하루 남겨놓은 지난해 12월 30일 안철수연구소의 안철수 대표는 직원들과 조촐한 송년회를 가졌다. 직원들의 평균 나이가 30세인 것을 반영하듯, 이날 송년회는 대학의 어느 종강 모임처럼 밝고 건강한 웃음이 넘쳤다. 안 대표는 직원 7명이 결성한 ‘안랩 올스타즈 밴드’가 아름다운 선율을 선보이자 연이어 웃음보따리를 터뜨리며 한 해를 되돌아봤다.

300여 직원이 힘을 합해 300억원이 넘는 매출을 올리며 역동적인 기업문화를 만들어 온 과정이 고맙기만 했다. 제품의 30%를 신제품으로 한다는 원칙을 올해도 어김없이 지켰고 영업이익 100억원도 달성했다. 해외 현지 매출이 30억원에 이를 만큼 해외사업도 자리를 잡았고 국내 백신 시장점유율은 65%에 달했다. 내실경영과 윤리경영, 해외사업이 성과를 나타낸 것이다.

그는 언론이 만나고 싶어하는 뉴스메이커이지만 인터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설익은 생각이 새나갈 가능성이 있고, 인터뷰를 자주 하다 보면 듣는 능력이 약해질까 걱정해서다. 그러나 사회에 대한 정직함으로 무장한 안 대표는 경영과 문화가 접목돼야 한다는 취지에 공감해 인터뷰에 응했다.

1995년 서울 서초구의 한 뒷골목에서 동료 3명과 함께 시작한 안철수연구소는 벌써 올해 창립 10년을 맞는다. 그동안 직원이 100배 이상 늘었으며 매출액은 그에 비례했다. 각종 백신과 보안 프로그램을 보급하며 바람직한 컴퓨터 문화를 만들어온 연구소의 사회적 기여도는 그 이상이다. 사람들은 안 대표와 연구소를 가리켜 기업의 존재 의미를 사회 기여에서 찾고, 성공의 참된 가치와 방법론을 일깨워왔다고 평가한다. 그와 마주하고 있으면 상대를 배려하는 태도에 존재를 확인하는 기쁨을 얻게 된다.

오늘의 안철수와 연구소를 만든 것은 그의 순수에 대한 열정이었다는 분석도 있다. 그 열정을 가능하게 했던 것이 끊임없는 독서열과 글쓰기 덕분이었다는 것도 보태진다. 바쁜 일상에서도 틈틈이 글을 쓰는 것은 자신과 업계, 그리고 모두를 위한 것이다. 안 대표는 두 가지 원칙을 갖고 글을 쓴다.

“먼저 이해타산으로 글을 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글은 ‘역사의식’을 갖고 써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또 다른 원칙은 내 의견이 틀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글을 쓰는 겁니다. ”

안 대표는 지난해 12월 자신의 9번째 책을 냈다. 연구소 홈페이지의 CEO 칼럼을 비롯해 전 직원에게 매달 보내는 이메일 등에 자신의 일기와 메모를 첨가해 낸 것이다.

자전적 에세이 형태로 구성된 ‘CEO 안철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김영사)이라는 신간은 한국 사회와 한국인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다. 원칙은 손해를 감수하면서 지킬 때 의미가 있다는 철학을 설파하는가 하면, 커뮤니케이션은 인간관계의 모든 것이라는 주장도 내놓았다. 그의 책을 읽노라면 이분법이 극복되고 가치에 대한 왜곡이 교정된다. 3시간이면 읽을 수 있는 분량에 이만한 가르침을 얻는 것은 독서의 즐거움이다.

최고경영자의 철학과 사고방식을 직원들에게 알리기 위해서라도 그는 자신의 책이 나오면 손수 서명해 직원들에게 선사한다. “3년 전 ‘CEO 안철수, 영혼이 있는 승부’(김영사)의 서명은 3시간 만에 끝났는데 이번 책은 식구들이 늘어 서명하는 데만 하루종일 걸렸습니다.”

책에 대한 안 대표의 신념은 확고하다. 인류가 쌓아 놓은 세상의 모든 지혜는 책 속에 있다고 믿으며, 사람이 세상에 남기는 유일한 흔적이 글이라고 믿고 있다. “책 속에는 그 책을 쓰기까지 저자가 고민한 세월과 시행착오의 노력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읽은 것으로 만들어진다’는 독일 문호 마르틴 발저의 말을 따라 안 대표는 인간이 어떤 것을 이루고 무엇인가가 되는 데 가장 유익한 길잡이로 책을 택하자고 제안한다. 바둑을 처음 배울 때 바둑 관련 책만 50권을 구해 읽었다는 일화는 지식과 지혜를 구하기 위해 그가 가장 먼저 하는 방법이 독서라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미지의 세계로 들어갈 때 항상 책을 통해서 먼저 그 세계를 간접 경험했습니다. ”

벤처기업을 시작하면서 안 대표는 늘 다양성에 주목했다. 전망이 좋다는 쪽으로 몰리는 속성을 방지하기 위해 행동과 전략을 되돌아볼 수 있는 지침서를 찾고자 했다. 존 L 네셰임이 쓴 ‘하이테크 스타트 업(High Tech Start Up)’은 그에게 주변의 경험담보다 좋은 지침서가 됐다.

그가 직원들에게 권유하는 책읽기 방법은 일반 독자에게도 유용하다. 자신이 몰랐던 분야를 다시 파악하며 지적 성장을 도모하기도 하고, 독서를 통해 사색의 문을 넘나드는 것도 좋다. 안 대표는 곧잘 “책을 읽는 사람은 책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세계적인 온라인 서점을 즐겨 찾는 것은 이제 그의 일상사가 됐다. 즐겨 찾는 대표적인 사이트가 아마존닷컴(www.amazon.com)과 반스앤노블(www.bn.com)의 경영서적 분야다. 최신 서적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수시로 집계되는 베스트셀러 목록으로 경영 분야의 이슈를 파악하고 흐름을 잡아내는 데 유용하기 때문이다.

연구소 구석에 자리한 그의 서가에는 원서와 번역본을 포함해 1000종이 넘는 책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세계적인 경영학자 짐 콜린스가 쓴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Good to Great)’는 안 대표가 국내 최초로 추천해 국내 서점가에서 유명해진 경영 서적이다. 이 책에서 다룬 ‘스톡데일 패러독스’에 그는 특히 공감한다. 스톡데일 패러독스는 베트남 전쟁 당시 포로수용소에 수감된 미군 병사 중 최고위 장교였던 스톡데일이 냉혹한 현실을 직시하면서 살아남은 것에서 비롯된 이론이다.

래디 보시디와 램 차란이 함께 쓴 ‘실행에 집중하라(Execution)’도 눈에 잘 띄는 곳에 놓고 자주 찾는 책이다. 두 책이 전하는 ‘뜨거운 가슴과 차가운 머리’의 교훈은 현대 생활에 꼭 들어맞는다고 강조한다.

책을 통해서 경영 노하우도 배운다. 제임스 콜린스와 제리 포라스의 저서 ‘성공하는 기업들의 8가지 습관(Built to last)’에 언급된 핵심 가치를 되짚어보기도 했다. 이를 통해 기업의 핵심가치는 그것을 포기할 바에는 차라리 회사를 없앨 정도의 절대적 기준이 된다는 철학을 얻었다. 그는 직원들이 책을 충분히 인지하고 활용토록 하기 위해 필독서로 선정하고 승진 면접 때 핵심가치와 비전을 업무에 적용했는지를 평가했다. 인텔의 CEO 앤드루 그로브가 쓴 ‘편집광만이 살아남는다’를 읽고는 회사는 CEO의 고민을 자양분으로 삼아 성장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커스 버킹엄의 ‘먼저 모든 규칙을 깨뜨려라(First, Break All the Rules)’를 읽고는 유능한 직원이 떠나는 이유가 기업의 비전이나 CEO 때문이 아니라 직속 상사 때문이라는 데 공감했다.

대학생들로부터 ‘존경받는 CEO’로 자주 거론되는 ‘책벌레’ 안 대표는 책을 통해 인생의 토대를 다지고 만들어가라는 조언으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열린 마음과 다양한 상식을 갖고 타인과 일을 함께 만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능력을 인정받는 세상입니다. 그 유용한 통로가 책을 통해 이뤄진다면 더 좋겠지요.”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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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출판박물관, 국내 첫 출판·인쇄 박물관 [05/01/10]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세워진 출판·인쇄 박물관인 ‘삼성출판박물관’이 올해로 개관 15주년을 맞는다.

삼성출판박물관은 김종규 관장(한국박물관협회장·삼성출판 회장)이 지난 1990년 서울 당산동 당시 삼성출판사 사옥 1층에 설립한 사립박물관이다. 이제 박물관은 서울 구기동으로 이전, 오는 6월 한층 수준 높은 사회교육 공간으로서 ‘제2의 개관’을 다짐하고 있다.

현재 이 박물관은 국보인 ‘초조본대방광불화엄경(初雕本大方廣佛華嚴經)’, 보물인 ‘월인석보’ ‘제왕운기’ ‘남명천화상송증도가’ 등 국가지정문화재 10여점을 비롯해 모두 40여만점을 소장하고 있다. 소장품은 대부분이 전적류나 고문서, 근·현대 도서와 출판인쇄도구, 서화류 등 출판인쇄와 관련된 자료다.

박물관의 설립 목적은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발명 등 우리나라 출판·인쇄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일깨우고, 이와 관련한 사회교육활동을 펼치자는 것.

김관장은 “우리는 세계에 자랑할 만한 출판·인쇄문화를 가졌지만 많은 사람들이 몰라 안타까워 박물관을 만들었다”며 “출판으로 번 돈, 출판으로 사회에 갚자는 생각도 있어 늘 수집 등에 관심을 가졌다”고 말했다. 그는 “‘웅덩이를 파니 물고기가 모이듯’ 기증해 주시는 분도 많았다”며 “기록의 중요성, 종이 한 장이 큰 역사적 자료가 된다는 자료의 귀중함을 일깨우고자 했다”고 말했다.

박물관은 그동안 다른 문화재에 비해 유독 없어지기 쉬운 출판·인쇄 유물을 발굴, 전시를 통해 사회에 소개했다. 또 각계 전문가를 초청, 고대사나 도자사, 회화사, 미래학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강의를 통해 사회교육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해왔다.

박물관은 현재 일제강점기부터 해방공간까지의 금서(禁書)를 통해 사회상 등을 살펴보는 ‘다시 찾은 우리 책’ 전시회를 열고 있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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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 주간 언론이 주목한 책 이야기 (01/03~01/08)

지난 주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은 신간은 제3회 창비 신인 소설상 수상작가인 김지우의 첫 소설집「나는 날개를 달아줄 수 없다」(창비 刊)입니다. 등단작 「눈길」을 비롯하여 5년여 간에 걸쳐 발표한 일곱 편의 소설을 수록한 이번 소설집에서 작가는 위트와 유머를 능란하게 구사하면서 일상의 벼랑 끝에 내몰린 사람들의 아슬아슬한 삶의 모습에 때로는 부드럽고 따뜻한, 때로는 날카롭고 신랄한 시선을 던지고 있습니다. 이 책은 우리 시대가 겪는 정신적 갈등과 부조리를 폭로하면서도 가슴을 따뜻하게 하는 문체로 절망적인 분위기에서도 숨통을 틔워주는 김지우 소설만의 매력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작품집입니다.

공산주의와 함께 20세기 정치의 최대 주제이며, 21세기를 맞은 지금까지 학문적 ․ 정치적 논쟁의 한가운데 있는 파시즘을 다룬「파시즘: 열정과 광기의 정치혁명」(로버트 O. 팩스턴 지음, 손명희 , 최희영 옮김)이 교양인 출판사에서 출간되어 언론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 책은 역사서임과 동시에 파시즘의 사회과학적 분석서입니다. 연대기적으로 파시즘의 역사를 서술하면서 각 시대별 사회․ 경제적 조건과 정치적 행위자 간의 상호작용을 명료하게 파헤치고 비판하고 종합하고 있습니다.

이가서 출판사에서 출간된 「부여 현감 귀신 체포기」(김탁환 지음)도 눈길을 모았습니다. 이 책은 저자 자신이 직접 주인공으로 등장하여 러시아의 한 여행지에서 자신이 흡혈귀라고 주장하는 나탈리라는 여성에게 피를 빨리는 겉 이야기와, 아신과 전우치가 펼치는 연작 형식의 기괴담에 속하는 속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바다 출판사에서 출간된 「지식의 원전」(존 캐리 지음)도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 책은 진화론, 전기의 발명, 상대성이론 등 르네상스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500여 년간 인류가 축척해온 중대한 '지식 발견의 순간'을 과학자들이 직접 쓴 원전을 통해 생생하게 만날 수 있는 책입니다.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된 「생명과 평화의 길」(김지하 지음)도 주목을 받았습니다. 오랫동안 생명 운동을 주창해온 저자가 2003년과 2004년에 걸쳐 여러 강의와 매체들에 통해 발표한 기고문들을 중심으로 묶은 책으로,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한반도의 역할을 조망하고 붉은 악마 등과 같은 새로운 세대들에게 보내는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20여 년 전 '초우량 기업의 조건'이란 경영서로 주목을 받았던 경영 컨설턴트 톰 피터스가 환갑을 넘기며 펴낸「톰 피터스의 미래를 경영하라」(톰 피터스 지음, 정성묵 옮김)가 21세기북스 출판사에서 출간되어 언론의 눈길을 모았습니다. 이 책은 기존의 경영 환경, 그 같은 환경에 알맞은 경영 방식을 일거에 낡은 것으로 몰아치는 대단히 급진적인 경영서입니다.

생각의나무에서 출간된「라루스 서양미술사」(자닉 뒤랑 지음, 조성애 외 옮김)도 언론의 관심을 받았습니다. 이 책은 단순히 미술사만을 요약 정리한 다른 책들과는 다르게 각 시대의 예술 전반, 즉 미술과 문학 및 기타 여러 문화를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지식만을 총체적으로 살펴보고 있으며, 시대사의 흐름과 문화사를 전반적으로 고찰하고 해당 미술 조류의 탄생을 가능하게 사회적 배경을 언급함으로써 그 변화의 맥락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밖에 2003년부터 2004년까지 북부 끝 히말라야의 스피티 지역에서 최남단 케냐쿠마리에 이르기까지 인도 전역을 돌며 쓴 일종의 기행서「영혼의 순례자」(한겨레신문사 刊), 영문학자인 저자(이재호)가 30여 년간 찾아낸 영한사전의 다양한 오류들을 파헤친「영한사전 비판」(궁리 刊), 중세 이후 최근까지 500여 년간 세계 경제의 패권을 장악했던 주요 국가들의 경제성장을 추적한「경제 강대국 흥망사」(까치刊) 등도 언론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끝으로, 서양의 문학사적 흐름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고전 36편을 뽑아 연대기 순으로 수록한 책「우리가 알아야 할 서양고전」(김욱동 지음)이 현암사에서 출간되어 지방신문에서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북피알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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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문화전망] 출판  [05/01/09]
 

“언론에서 실용서가 많이 팔린다느니, ‘다 빈치 코드’가 베스트셀러라느니 이런 이야기를 왜 자꾸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인문사회과학 출판 시장이나 수준 높은 교양서 시장은 다 죽어가고 있단 말입니다.”

한길사 김언호 사장은 첫 마디부터 편치 않은 심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올해 출판계 전망을 듣자고 기자가 전화했을 때 마침 한국일보가 신춘기획으로 4일자에 보도한 ‘한국인은 어떤 책 읽나’ 기사를 봤다고 했다. “한국 사람들이 지난해 평균 6.6권을 읽었다고요. 생각보다 많네요. 하지만 이대로 두고 보다가는 정말 가치 있는 출판은 살아 남지 못할 겁니다. 그런 소리를 더 소리 높여서 해 줘야지요.”

한국일보가 국내 대표 출판인 10명에게 올해 출판계 주요 현안을 설문조사한 결과, 출판인들은 인문교양서 출판이 고사위기에 있고 이를 살리기 위한 대책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았다.

올해 출판시장도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며, 실용서가 제외되면서 도서정가제의 취지는 더욱 무색해질 것이라는 데도 대체로 같은 의견이었다.

설문은 (1)올해 출판시장 전망 (2)인문출판시장 타개책 (3)도서정가제 평가 (4)프랑크푸르트도서전 주빈국 행사 준비 등이다. 답한 출판인은 ◎을유문화사 정진숙 회장 ◎일지사 김성재 사장 ◎현암사 조근태 사장 ◎민음사 박맹호 회장 ◎한길사 김언호 사장 ◎창비 고세현 사장 ◎사계절출판사 강맑실 사장 ◎웅진닷컴 김준희 사장 ◎한울 김종수 사장 ◎휴머니스트 김학원 사장 등 10명이다.

● 도서관 지원ㆍ출판은행 필요하다

“기초학문 분야의 학술서를 포함한 인문사회과학서 출판은 시장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는 데 대체로 공감하는 출판인들은 ‘공공도서관과 대학도서관 활성화’를 최우선 대책으로 꼽았다.

정진숙 회장, 김성재 조근태 고세현 김준희 김종수 사장 등이 한결 같이 도서관 도서구입비 증액, 인문사회과학도서 구입비 할당제, 공공도서관 신설 및 확충 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문화관광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은 별로 낙관적이지 않다. 문화부 이성원 문화정책국장은 지난해 국정감사 때 “2004년 도서관 자료구입비 지원액은 134억원 정도인데, 새해부터 지방사업으로 이양되기 때문에 지원액이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고 답했다.

좋은 책 만들겠다고 욕심 내는 젊은 출판인들을 돕는 금융지원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강맑실 사장은 인문교양서 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소자본 독립 출판사들에 제작비를 지원하는 출판은행이 필요하다”고 제안한 뒤 “대학의 인문교양 강좌를 필수과목으로 정한다든지 하는 새 독자 창출 대책도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인문서 시장이 고사위기라는 진단에 동의하지 않는 출판인도 있었다. 김성재 사장은 “인문서 시장이 무너진 채로 숨을 죽이다시피 할 것이나, 책다운 책을 내려는 출판인다운 출판인의 수가 점점 늘어나는 추세이기 때문에 숨이 끊어질까 봐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맹호 회장도 비슷한 의견이다. “인문서 시장이 존폐 위기에 있다고 보지 않는다. 다만 다른 분야의 시장이 상대적으로 커졌을 뿐이다.

각종 실용서나 소프트한 독서물들이 넘쳐나고 있지만 한편에서 수준 높은 인문서는 꾸준히 출간되고 있고, 다양하고 깊이 있는 인문교양서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도 지속적으로 증대되고 있다.” 김학원 사장은 “철학과 신입생 수가 줄거나 인문서가 덜 팔리는 것으로 인문학의 위기를 말해서는 안 된다”며 “중요한 것은 인문학을 보는 새로운 관점, 새로운 길 찾기”라고 말했다.

● 도서정가제를 지켜야 출판이 산다

대형할인점 등에 저가로 도서를 공급하던 유사 도매점들이 지난해 여러 곳 부도나면서 도서유통쪽은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는 긴장 상태다. 올해부터 실용서에 대한 도서정가제가 폐지되면서 출판유통시장이 더욱 혼탁해질 것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다.

“실용서의 기준이 모호하기 때문에 정가제 폐지를 원하는 쪽에서는 편법을 통해 거의 대부분의 책을 실용서로 분류해 판매할 것이고 따라서 정가제의 유명무실화가 가속될 것”(정진숙 조근태 김종수)이라는 걱정이 다수다.

김성재 사장은 “인터넷을 통한 도서판매에 할인을 허용한 문화부 도서정가제 세부지침과 자기만 많이 팔겠다는 일부 출판업자의 욕심이 맞아떨어져 도서정가제는 지난해에 이미 물 건너갔다”고 말했다.

김준희 사장은 “도서정가제가 소비자의 선택권을 넓혀준 건 사실이나 오프라인 서점의 위축과 지방서점의 붕괴를 가져왔다”며 “지금까지의 시행결과를 점검하고 보완책을 논의해볼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의견도 있었다. 박맹호 회장은 “인터넷 서점 등의 등장으로 도서정가제의 의미는 이미 퇴색했기 때문에 크게 우려할 일이 아니라고 본다”며 “질 좋은 책은 가격경쟁과?무관하다”고 말했다.

김학원 사장도 “사람의 가치도 시대와 나이, 역량에 따라 달리 평가되는데 책이라고 평생 같은 가격을 달고 다녀야 할 이유는 없다”며 “도서정가제의 혼란으로 책의 질적 저하나 가격상승 효과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만일 출판인들 중에 그런 사람들이 있다면 그것은 정가제로 인한 것이 아니라 출판관, 가치관으로 인한 것이다”고 강조했다.

● 창의적인 프랑크푸르트 전시 준비해야

올해 국내 출판계가 치를 큰 행사 중 하나인 제57회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주빈국 행사 준비에 대해서도 하고 싶은 말들이 많았다.

“한국의 책 100권을 급히 번역한다고 법석이지만 부실 번역으로 망신이나 당하지 않을까 염려된다”(김성재) “아동 인문 문학 등을 주로 하는 출판사끼리 모여 분야별 컨셉을 짠 후 창의적으로 개별 전시를 해야 한다고 건의했는데 별 움직임이 없어 답답하다”(강맑실)

김종수 사장은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은 문화교류보다 저작권을 사고파는 시장이기 때문에 많은 출판사들이 기획, 출판한 수많은 타이틀을 요령껏 소개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기본적인 서지정보(영어판 유통도서 총목록), 수출 가능성 있는 책들의 목차나 요약본, (문학작품의 경우) 작품 일부를 번역해 가지고 갈 수 있도록 예산을 지원하는 것이 필수”라고 지적했다.

“졸속으로 번역된 책보다 ‘이조실록’ 등을 전시하는 것이 한국의 출판문화를 보여주는 데 더 나을 것”(김언호)이라거나 “디자인이 뛰어난 문예물, 도판이 많은 인문서 등을 골라 전시하면 효과적일 것”(김성재)이라는 제안도 있었다.

김학원 사장은 “한일 월드컵에서 보여줬던 ‘아시아의 자부심’을 앞세워 세계와 소통해야 한다”며 “한국의 출판사와 독자가 세계화시킨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를 주빈국 행사의 프랑스 홍보대사로 임명하는 식의 발상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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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50돌 ‘현대문학’ 양숙진 대표 [05/01/09]
 
월간 ‘현대문학’이 올해로 창간 50주년을 맞았다. 50줄의 나이테를 두르는 동안 둥치의 허리도 그만큼 굵어져 이달에 지령 601호를 기록했다. 단 한번의 결호도 없이 ‘개근’하며 달려온 성적표다.

현대문학은 그간 문인 563명의 산파 노릇을 하며 그 장구한 세월을 이어왔다. 이 문예지로 등단한 뒤 평생을 글품으로 생계를 일군 한국문학사의 재주꾼들 면면은 일일이 열기하기조차 벅차다.

1997년부터 현대문학 편집인 겸 주간으로 일하고 있는 양숙진 대표(57)를 서울 잠원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소싯적 문학에 마음 한자락을 뺏긴 사람치고 이 문예지에 빚지지 않은 사람은 없을 터여서 반백년 세월에 대한 감회부터 짚고 들어갔다.

“이렇게 50년을 버틴 걸 보면 우리나라에 문(文)을 존중하는 맥이 흐르고 있지 않나 싶어요. 많은 사람들의 격려를 받아 여기까지 왔지요. 그래서 느끼는 책임감도 큽니다. 어떤 새로운 편집을 선보일 것인가, 또 젊은 작가들이 원하는 현대문학의 위상이 뭔가 하는 고민을 많이 하고 있죠.”

누구는 현대문학이 너무 현대적이라 하고, 또 어떤 이는 좀 진부하다고 질책이다. 작가나 독자의 연령대에 따라 평가가 극단이다. 뒤집어 생각하면, 아래 위를 두루두루 아우르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고루하지도 현대적이지도 않다는 외부의 평가를 듣곤 하는데, 그건 현대문학 입장에선 안 좋은 거예요. 현대문학은 55년 1월 ‘현대성’을 표방하며 첫발을 내디딘 문예지거든요. 그래서 원로부터 젊은 작가들까지 각각의 의견을 잘 조화시키되 현대적이라는 이미지를 계속 살려 나가는 게 저의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현대문학은 지난 세월 동안 기(氣)가 흥한 적도 있고 쇠한 적도 있다. 여러 차례 분절의 과정이 있었다. 박경리의 스승이었던 조연현 선생이 주간을 맡았던 초창기의 열기는 그 후로 잘 살아나지 못했다. 양대표는 “조연현 시대 이후 현대문학을 이끌어가던 ‘주간’이 거의 2년 간격으로 교체되면서 한동안 어떤 구체적인 흐름을 만들어내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8년 전 양대표가 새 주간으로 들어오면서 현대문학은 이전과 차별되는 또 한번의 분절을 거쳤다는 게 문단의 대체적인 평가다. “공(功)으로 내세울 만한 것과 과(過)로 내칠 만한 아쉬운 점은 무엇이냐”고 그에게 물었다.

“현대문학이 젊어졌다는 것이죠. 과거에 시도하지 않던 것을 많이 시도했어요. 이번 호를 예로 들면 ‘미래를 위한 퓨전 에세이’라는 특별 코너를 마련했지요. 그림을 텍스트화할 수도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시도입니다. 아쉬운 점이라면 재정적 뒷받침이 안 돼 시나 소설 창작선을 좀더 많이 내지 못한 거라고나 할까요.”

그는 재능있는 사람에겐 편견없이 지면을 내줄 거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이번 호에 마광수 교수의 글도 실려 있다. 그는 “마교수가 (음란물 시비로) 법정에 섰을 때 그에게 제일 먼저 원고를 청탁한 곳이 현대문학”이라고 말했다.

현대문학호(號)의 선장인 그는 장차 이 문예지의 항로를 어떻게 조정하고 싶어하는 걸까.

“앞으로 세계 유명작가들을 지면에 많이 끌어들이려 합니다. 우리 문학이 세계에 못 나가는 이유가 문학의 보편성이 부족하기 때문이에요. 외국작가들의 글을 통해 국내작가들에게 자극을 주고 싶어요. 그 사전작업으로 최근 몇년간 국제도서전을 쫓아다니며 현대문학 영문 홍보지를 외국작가들에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는 가끔씩 창간사를 읽는다고 했다. “정신적 구도자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둘러보면 문학이 죽어간다며 성급히 검은 장막을 둘러치려는 사람들 천지다. 그 어둠 속에서 그가 찾아낸 등대가 바로 창간사라고 양대표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본지는 무정견(無定見)한 백만인의 박수보다는 문학에 대한 깊은 애정과 옳은 판단력을 가진 단 한사람의 지지를 오히려 영광스럽게 생각할 것이다.…’(창간사 중에서)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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