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업 열정의 원동력은 책 읽기" [05/01/10]
[CEO책꽂이]"내 사업 열정의 원동력은 책 읽기"
세계일보 교보문고·북코스모스 공동기획 시리즈
경영에 문화 마인드를 접목하는 CEO(최고경영자)가 늘고 있다. 숫자 싸움에서 벗어나 문화 현장을 찾고 책을 권하며, 경영현장과 문화계에 건강한 자극을 주는 경영자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최대 서점인 교보문고와 북에이전시인 북코스모스, 세계일보는 이 현상에 주목해 책을 읽고 이를 권하는 문화 CEO를 집중 인터뷰해 싣는 연재 기획물을 마련한다. 광복 60돌을 맞는 올해는 한국 문화계로서도 의미 있는 해이다. 올 10월 독일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책잔치인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주빈국으로 참여하는 것도 그 의미를 더한다. 서점가와 에이전시, 언론사가 공동 기획하는 ‘CEO의 책꽂이’는 책과 경영의 결합을 시도하며 마련한 장인 셈이다. [편집자주]
갑신년을 하루 남겨놓은 지난해 12월 30일 안철수연구소의 안철수 대표는 직원들과 조촐한 송년회를 가졌다. 직원들의 평균 나이가 30세인 것을 반영하듯, 이날 송년회는 대학의 어느 종강 모임처럼 밝고 건강한 웃음이 넘쳤다. 안 대표는 직원 7명이 결성한 ‘안랩 올스타즈 밴드’가 아름다운 선율을 선보이자 연이어 웃음보따리를 터뜨리며 한 해를 되돌아봤다.
300여 직원이 힘을 합해 300억원이 넘는 매출을 올리며 역동적인 기업문화를 만들어 온 과정이 고맙기만 했다. 제품의 30%를 신제품으로 한다는 원칙을 올해도 어김없이 지켰고 영업이익 100억원도 달성했다. 해외 현지 매출이 30억원에 이를 만큼 해외사업도 자리를 잡았고 국내 백신 시장점유율은 65%에 달했다. 내실경영과 윤리경영, 해외사업이 성과를 나타낸 것이다.
그는 언론이 만나고 싶어하는 뉴스메이커이지만 인터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설익은 생각이 새나갈 가능성이 있고, 인터뷰를 자주 하다 보면 듣는 능력이 약해질까 걱정해서다. 그러나 사회에 대한 정직함으로 무장한 안 대표는 경영과 문화가 접목돼야 한다는 취지에 공감해 인터뷰에 응했다.
1995년 서울 서초구의 한 뒷골목에서 동료 3명과 함께 시작한 안철수연구소는 벌써 올해 창립 10년을 맞는다. 그동안 직원이 100배 이상 늘었으며 매출액은 그에 비례했다. 각종 백신과 보안 프로그램을 보급하며 바람직한 컴퓨터 문화를 만들어온 연구소의 사회적 기여도는 그 이상이다. 사람들은 안 대표와 연구소를 가리켜 기업의 존재 의미를 사회 기여에서 찾고, 성공의 참된 가치와 방법론을 일깨워왔다고 평가한다. 그와 마주하고 있으면 상대를 배려하는 태도에 존재를 확인하는 기쁨을 얻게 된다.
오늘의 안철수와 연구소를 만든 것은 그의 순수에 대한 열정이었다는 분석도 있다. 그 열정을 가능하게 했던 것이 끊임없는 독서열과 글쓰기 덕분이었다는 것도 보태진다. 바쁜 일상에서도 틈틈이 글을 쓰는 것은 자신과 업계, 그리고 모두를 위한 것이다. 안 대표는 두 가지 원칙을 갖고 글을 쓴다.
“먼저 이해타산으로 글을 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글은 ‘역사의식’을 갖고 써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또 다른 원칙은 내 의견이 틀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글을 쓰는 겁니다. ”
안 대표는 지난해 12월 자신의 9번째 책을 냈다. 연구소 홈페이지의 CEO 칼럼을 비롯해 전 직원에게 매달 보내는 이메일 등에 자신의 일기와 메모를 첨가해 낸 것이다.
자전적 에세이 형태로 구성된 ‘CEO 안철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김영사)이라는 신간은 한국 사회와 한국인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다. 원칙은 손해를 감수하면서 지킬 때 의미가 있다는 철학을 설파하는가 하면, 커뮤니케이션은 인간관계의 모든 것이라는 주장도 내놓았다. 그의 책을 읽노라면 이분법이 극복되고 가치에 대한 왜곡이 교정된다. 3시간이면 읽을 수 있는 분량에 이만한 가르침을 얻는 것은 독서의 즐거움이다.
최고경영자의 철학과 사고방식을 직원들에게 알리기 위해서라도 그는 자신의 책이 나오면 손수 서명해 직원들에게 선사한다. “3년 전 ‘CEO 안철수, 영혼이 있는 승부’(김영사)의 서명은 3시간 만에 끝났는데 이번 책은 식구들이 늘어 서명하는 데만 하루종일 걸렸습니다.”
책에 대한 안 대표의 신념은 확고하다. 인류가 쌓아 놓은 세상의 모든 지혜는 책 속에 있다고 믿으며, 사람이 세상에 남기는 유일한 흔적이 글이라고 믿고 있다. “책 속에는 그 책을 쓰기까지 저자가 고민한 세월과 시행착오의 노력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읽은 것으로 만들어진다’는 독일 문호 마르틴 발저의 말을 따라 안 대표는 인간이 어떤 것을 이루고 무엇인가가 되는 데 가장 유익한 길잡이로 책을 택하자고 제안한다. 바둑을 처음 배울 때 바둑 관련 책만 50권을 구해 읽었다는 일화는 지식과 지혜를 구하기 위해 그가 가장 먼저 하는 방법이 독서라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미지의 세계로 들어갈 때 항상 책을 통해서 먼저 그 세계를 간접 경험했습니다. ”
벤처기업을 시작하면서 안 대표는 늘 다양성에 주목했다. 전망이 좋다는 쪽으로 몰리는 속성을 방지하기 위해 행동과 전략을 되돌아볼 수 있는 지침서를 찾고자 했다. 존 L 네셰임이 쓴 ‘하이테크 스타트 업(High Tech Start Up)’은 그에게 주변의 경험담보다 좋은 지침서가 됐다.
그가 직원들에게 권유하는 책읽기 방법은 일반 독자에게도 유용하다. 자신이 몰랐던 분야를 다시 파악하며 지적 성장을 도모하기도 하고, 독서를 통해 사색의 문을 넘나드는 것도 좋다. 안 대표는 곧잘 “책을 읽는 사람은 책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세계적인 온라인 서점을 즐겨 찾는 것은 이제 그의 일상사가 됐다. 즐겨 찾는 대표적인 사이트가 아마존닷컴(www.amazon.com)과 반스앤노블(www.bn.com)의 경영서적 분야다. 최신 서적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수시로 집계되는 베스트셀러 목록으로 경영 분야의 이슈를 파악하고 흐름을 잡아내는 데 유용하기 때문이다.
연구소 구석에 자리한 그의 서가에는 원서와 번역본을 포함해 1000종이 넘는 책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세계적인 경영학자 짐 콜린스가 쓴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Good to Great)’는 안 대표가 국내 최초로 추천해 국내 서점가에서 유명해진 경영 서적이다. 이 책에서 다룬 ‘스톡데일 패러독스’에 그는 특히 공감한다. 스톡데일 패러독스는 베트남 전쟁 당시 포로수용소에 수감된 미군 병사 중 최고위 장교였던 스톡데일이 냉혹한 현실을 직시하면서 살아남은 것에서 비롯된 이론이다.
래디 보시디와 램 차란이 함께 쓴 ‘실행에 집중하라(Execution)’도 눈에 잘 띄는 곳에 놓고 자주 찾는 책이다. 두 책이 전하는 ‘뜨거운 가슴과 차가운 머리’의 교훈은 현대 생활에 꼭 들어맞는다고 강조한다.
책을 통해서 경영 노하우도 배운다. 제임스 콜린스와 제리 포라스의 저서 ‘성공하는 기업들의 8가지 습관(Built to last)’에 언급된 핵심 가치를 되짚어보기도 했다. 이를 통해 기업의 핵심가치는 그것을 포기할 바에는 차라리 회사를 없앨 정도의 절대적 기준이 된다는 철학을 얻었다. 그는 직원들이 책을 충분히 인지하고 활용토록 하기 위해 필독서로 선정하고 승진 면접 때 핵심가치와 비전을 업무에 적용했는지를 평가했다. 인텔의 CEO 앤드루 그로브가 쓴 ‘편집광만이 살아남는다’를 읽고는 회사는 CEO의 고민을 자양분으로 삼아 성장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커스 버킹엄의 ‘먼저 모든 규칙을 깨뜨려라(First, Break All the Rules)’를 읽고는 유능한 직원이 떠나는 이유가 기업의 비전이나 CEO 때문이 아니라 직속 상사 때문이라는 데 공감했다.
대학생들로부터 ‘존경받는 CEO’로 자주 거론되는 ‘책벌레’ 안 대표는 책을 통해 인생의 토대를 다지고 만들어가라는 조언으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열린 마음과 다양한 상식을 갖고 타인과 일을 함께 만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능력을 인정받는 세상입니다. 그 유용한 통로가 책을 통해 이뤄진다면 더 좋겠지요.”
(세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