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된다는 것은 범죄가 아니다!  [2004. 10. 19]

지난 2001년 1월, 영국의 진보적 신문인 <가디언>에서 흥미로운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나의 시선을 문득 멈추게 한 그 기사의 제목은 “인간이 된다는 것은 범죄가 아니다(Being Human is not a Crime)“.
28살인 빈센트 베델이 ‘풍기문란죄’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았는데, 열두 명의 배심원들 중에서 열 명의 지지를 얻어서 무죄판결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는 런던에서 나체로 “너 자신이 될 자유”(Freedom to Be Yourself)라는 캠페인을 벌이다가 여섯 번 구속되었는데, 처음으로 정식재판을 받게 된 것이라고 한다. 정식재판에서 무죄판결을 받던 그 순간 그는 “인간이 되는 것은 범죄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기뻐하였다고 한다.

영국은 1986년 제정된 ‘공공질서법’에 의하여 공공장소에서 나체로 있는 것을 금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1997년부터 이 캠페인을 시작했다고 하며, 공공장소에서 나체를 금하는 법의 폐지를 우선적 목표로 삼고 있다. 그가 이러한 캠페인을 시작한 동기는 자신의 몸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자신의 몸의 불완전성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려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 두려움이야말로 ‘진정한 자신’이 되는 것에 가장 장애가 되는 것임을 자신의 경험을 통하여 깨닫고 이 캠페인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사람의 소망처럼 원하는 장소에서 옷을 입지 않을 수 있는 그런 사회가 이 문명사회에 자리잡기는 좀처럼 쉽지는 않겠지만, 그는 ‘인간됨의 의미는 무엇일까’에 대하여 나름대로 새롭게 생각해 보게 한다.

내가 새삼 이 오래 전 기사를 다시 떠올리게 된 것은 ‘대학입시제도의 개혁과 고교등급제금지’를 촉구하며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회장이 처음에는 청와대 앞에서, 그리고 이제는 자리를 옮겨서 정부종합청사 후문에서 외롭게 단식투쟁을 하고 있다는 기사를 접하면서이다. 입시제도의 문제들은 하도 많이 지적된 것이어서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참교육’의 필요성에 대하여 이제 무감각해지고 또한 무관심해졌는지 모른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보면 한국사회에 이처럼 심각한 고질적인 병폐가 어디 또 있을까 싶다.

내가 오랜 유학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 그 당시 초등학생이고 중학생이던 두 아이들에게서 가장 자주 들은 말은, ‘학교에 가면 나는 인간이 아니야’였다. 부모를 따라서 영문도 모르고 독일과 미국에서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다니다가 귀국한 아이들이, 정작 자신들의 고국에서 학교에만 가면 ‘나는 인간이 아니다’라고 느끼고 있다니!

“인간이 된다는 것”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는 ‘인권’에 대한 한 사회의 인식의 척도를 드러낸다.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책상 앞에 붙어앉아 있어야 하는 기계적 삶을 살면서, 중층적 패배의식에 사로잡혀서 일상적 삶을 살아야 하는 한국의 입시제도를 통해서 철저히 박탈되는 아이들의 ‘인간이 될 권리’는 누가, 언제 그리고 어떻게 보상해 줄 수 있을 것인가.

영국의 빈세트 베델이라는 사람은 국가가 만든 법이 자신이 ‘생명을 지닌 살아있는 인간’임을 당당히 표현하는 데에 커다란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하고 나체로 그 법의 폐지를 촉구하는 시위를 하였다. 나는 인간됨의 의미를 분명히 전달하기 위하여 취한 저항에 대하여, 그것이 사회적 관습에 어긋나고 국가가 정한 법에 어긋나고, 또한 사회에 ‘해악을 가져오는 행위’라고 고발 받았어도 당당히 무죄를 선고한 그 제도적 벽들의 ‘틈새’-그 틈새들을 우리 주변에서 어떻게 확대하는가에 관심을 가진다. 그 틈새를 조금씩이라도 확대하고 마침내는 그 틈새들이 새로운 제도로 정착될 수 있을 때, 우리 한국의 아이들은 비로소 ‘인간이 된다는 것은 범죄가 아니다!’라고 외칠 수 있지 않을까.

강남순/전 감리교신학대학교 교수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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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드011의 광고를 들으며 꽤 궁금해했던 사람. 어떤 이의 음성이 이토록 아름다울까 싶었다. 그러면서도 다시 아주 우연하게 기회가 닿기 전에는 절대로 내가 직접 찾아 나서는 일은 없는. 결국 알게 됐다. Keren Ann. 오늘 아침 AM7을 보면서 우승현 기자가 쓴 그녀에 관한 기사를 읽게 된 것이다. 이럴 땐 이 음반을 사지 않고는 배겨낼 수가 없다.

“제 노랜 가을풍경 담은 로드무비”
011 CF 배경음악 주인공 케렌 앤

솔직히 ‘케렌 앤’이라고 하면 잘 알지 못한다. 이렇게 설명해보자. 대학생 커플이 야밤의 놀이터에서 첫 키스를 나누고, ‘우리의 011은 이렇게 시작됐다’는 카피가 흐르던 광고의 배경음악 ‘Not going anywhere’가 바로 그의 목소리다. 휴대폰 벨소리로, 싸이월드 홈피 배경음악으로 한국에서 유난히 인기를 끈 이 노래의 주인공, 프렌치 팝 가수 케렌 앤이 한국을 방문해 5일 AM7을 찾았다.

CF이야기부터 시작했다. 자신의 음악이 싹둑 잘려서 들려지는 건 노래를 육신처럼 생각하는 가수에겐 그다지 반갑지 않을 수도 있을 텐데.

“그래서 CF에 제 음악이 쓰이는 걸 잘 허락지 않는데, 한국에서 보내온 스토리 보드가 흥미로웠어요. 처음 만난 남녀가 술을 마신 후 5분 만에 사랑에 빠져 첫 키스를 나눈다는 게 좀 웃음이 나더라구요. 시골분교를 담은 CF에도 제 음악이 쓰였는데, 도대체 무슨 상품을 파는 건지 알 수 없는 신기한 광고라서 음악사용을 허락했습니다.”

마시멜로우 같은 폭신한 목소리에, 공연 전 1시간 이상의 명상을 한다는 정보 때문에 가졌던 ‘고상하고, 우아한’ 편견이 툭 깨지는 순간. 국적은 프랑스지만 혈통은 자바섬 출신 할머니, 네덜란드 할아버지, 이스라엘 출신의 아버지 등등 .

“다양한 국적은 저에게 축복과 슬픔을 같이 준 자양분이에요. 부모세대의 다양한 문화가 편협함을 피하게 해줬지만, 늘 이동하며 살았던 유년기 때문에 슬픈 정서가 스며들었죠. 제 노래의 힘이기도 합니다.”

케렌 앤은 글쓰기를 좋아하는 소녀였다고 한다. 어느 날 자신이 쓰는 글을 청각화시켜보고 싶다는 욕망이 가수의 길을 걷게 했다. 작가가 글을 읽듯 삶을 소리로 만들어 보고 싶었단다.

“저의 노래는 언제나 이미지를 담고 있어요. 그래서 귀를 위한 영화라고 할 수 있죠. 장르요? 글쎄, 굳이 따지자면 가을 풍경을 담은 로드무비라고 할까. 안개가 옅게 낀 풍경을 담은.”

가수답게도, 그는 사람을 파악하는 다른 길을 알고 있었다. 목소리로 사람을 느끼고, 기억한단다.

“사람의 목소리는 그의 정체성이에요. 그래서 눈앞의 모습보다 목소리에 관심을 갖죠. 아무리 멋진 사람도 목소리가 이미지와 다르면 목소리를 믿어요. 자기 목소리를 한번 유심히 들어보세요. 어떤 캐릭터가 숨어 있는지.”

우승현기자 noyoma@munhwa.com
UPDATE : 2004-10-06 08: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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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10. 1.

김은식의 예인기행2 <삼십 년을 새기고도 다 품지 못한 얼굴, 하회탈 - 하회탈 명인 구하 김동표>에서 다뤘다.

김동표 : 하회탈을 재현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 사람. 삼십여 년 동안 하회별신굿 탈놀이에 쓰이는 탈을 만들어 왔고, 직접 각시탈을 쓰고 무동을 타며 신명을 돋우기도 했다. 그가 만든 탈은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귀한 분들께 선물로 보내졌다. 하회마을 부용대 뒤편에 개인 박물관을 열고 하회탈뿐 아니라 봉산, 양지, 해서 등 국내 곳곳과 아프리카, 아시아, 유럽 등 세계 각지의 탈들을 만나는 대로 모아다가 전시하고 있다. 김은식이 왜 탈을 만드느냐는 질문을 하자 "글쎄요... 그냥 있는 것보다 그걸 만들면서 있는 게 더 좋으니까."라는 너무도 소박하고 진솔한 답을 했다. 한 달 내 깎으면 일곱 개가 나온다는 탈 값은 사십만원. 왜 하필 사십만원이냐는 김은식에 질문에 김동표는 또 재미난 답변을 한다. "한 팔십만 원 받으면 좋겠지만 아직은 그 값 주고 탈 살 사람이 없겠고, 또 한 이십만 원 받으면 사겠다는 사람이 더 많겠지만, 그러면 한 달에 열 개, 스무 개를 깎아야 할 테고, 그러다 보면 나도 돈 욕심이 생기고 좀 대충대충 많이 깎고 싶은 생각도 들 것 같고. 그래서 한 달에 딱 일곱 개만 깎고, 남는 시간엔 탈 사러 다니는 게 좋을 것 같아 사십만 원입니다." 참 매력적인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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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9. 24

 

[북월드]1인 출판사 시대
[세계일보 2004-07-03 07:36]



창업자 한 명이 책의 기획·편집에서 영업까지 도맡는‘1인 출판사’가 새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다. 출판계의 벤처기업이라 할 이들 회사는 분명한 색깔을 지닌 책으로 틈새시장을 파고들고 있다.
작지만 강한 출판사를 꿈꾸는 그들을 만나보자.


단 한 사람이 꾸려가는 출판사. 출판계에도 벤처 기업이 있다면, 1인 출판사가 그것이다. 1인 출판이라고 해서 단 한 사람이 책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 사무실에 상주하는 사람은 한 명이지만 그를 뒷받침하는 외주 인력들이 존재한다. 보통 창업자 한 명이 기획과 편집, 경영과 영업을 맡는다. 책 디자인이나 조판, 배본과 같은 영역은 외주 시스템을 가동한다. 작은 규모라고 만만하게 보지는 말 것. 이들이 내놓은 책들은 색깔을 가진 책으로 눈길을 끌고 있다. ‘작지만 알차게’. 1인 출판사가 지향하는 목표다.


출판사를 차린 이들 중에는 기존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했던 사람들이 많다. ‘산처럼’ 윤양미 사장, ‘지오북’ 황영심 사장, ‘교양인’ 한예원 사장 등은 큰 규모의 출판사에서 오랫동안 편집자 생활을 했다. 다른 경우도 있다. ‘하이파이브’ 김현종 사장은 기존 출판사에서 6년간 영업과 마케팅을 담당했다. ‘뜰’의 이현주 사장은 ‘출판저널’ 기자로 일했다.

윤양미 사장은 한길사와 역사비평사에서 8년 동안 편집자 생활을 한 경험을 바탕으로 2년 전 독립했다. ‘산처럼’이 지금까지 발간한 책은 모두 11권. ‘매혹의 질주, 근대의 횡단’ ‘테이레시아스의 역사’ ‘만철’ 등으로 탄탄한 기획력을 보여줬다. 그는 주로 인문·역사서에 중점을 두고 있다.

‘지오북’ 황영심 사장은 문예출판사 현암사 등에서 16년 동안 편집자 생활을 했다. 지난해 말 창업한 후 첫 책 ‘광릉 숲에서 보내는 편지’를 내놓아 주목받았다. 자연과학서는 사진이나 편집 등 신경 쓸 일이 많기에 회사에서는 쫓기듯 책을 낼 수밖에 없었다. “여유를 가지고 자연과학서를 내고 싶어 독립했다”는 설명.

한예원 사장의 ‘교양인’은 ‘헌법의 풍경’과 ‘미국을 파국으로 이끄는 세력에 대한 보고서’로 호평받았다. 지난 4월 한 명으로 시작했지만 7월부터 2인 출판사가 됐다. 한 사장은 9년간 푸른숲 편집장을 했다.

‘뜰’ 이현주 사장은 육아를 위해 4년간의 직장 생활을 접었다가 지난해 4월 창업을 통해 사회에 복귀했다. “아이 가진 아줌마를 사회가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궁여지책’으로 시작했다”는 농반 진반의 얘기를 한다. 그가 찾은 틈새시장은 여성·가족·가정 분야. ‘남자의 아름다운 폐경기’ ‘가족이 있는 풍경’으로 눈길을 끌었다.

올 2월 문을 연 ‘하이파이브’는 실용서로 시작했지만 하반기부터는 인문 분야 책도 내놓을 계획이다. 김현종 사장은 기존 출판사들이 놓치고 있는 틈새를 파고들면 승산이 있다고 본다.

예전이라고 1인 출판이 없지는 않았겠지만 요즘처럼 주목받지는 못했다. 안목과 기획력을 가진 편집자들이 독립해 나오면서 1인 출판은 활기를 띠게 됐다. 출판 등록이 간편해지면서 진입 장벽이 낮아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편집자의 독립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이들이 첫 번째로 꼽는 이유는 “내가 내고 싶은 책을 만들고 싶었다”는 것. 가능하면 이윤을 빨리 뽑으려는 회사와 의미 있는 책을 내겠다는 편집장들의 입장이 늘 맞아떨어질 수는 없는 것이다.

조직 내에서 편집자로서의 비전이 한계에 부닥쳤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예원 사장은 “편집장 생활을 계속하길 원했는데 회사에서는 관리자 역할을 원하더라”고 밝힌다. 윤양미 사장은 “30대 후반부터 40대 초반까지의 편집 경력자들이 다수 형성돼 있는데 이들을 수용할 수 있는 출판사가 없다”고 말한다.

사무실에 단 한 사람만 상주하더라도 책을 내는 것이 가능한 것은 외주 시스템 덕분이다. PC의 발달로 손쉽게 교정·교열을 볼 수 있게 되면서 편집자가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이 넓어졌다.

출판 유통이 투명해진 것도 큰 몫을 했다. 인터넷 서점이 보편화되면서 별다른 영업 활동을 하지 않아도 책과 독자가 만날 수 있는 창구가 넓어졌다. 아직도 대형 서점이나 도매상과의 거래에서는 ‘안면 영업’이 남아 있긴 하지만, 많이 합리화됐다는 평가다. 현금 결제도 자본력이 취약한 작은 출판사의 숨통을 틔웠다.

1인 출판은 책에 다양한 색깔을 입힌다. 큰 규모의 회사에서는 나오기 힘들었던 책들이 작은 출판사의 손에서 나오고 있다. 이들은 자신이 내고 싶은 책을 내면서도 그동안 갈고 닦은 안목으로 시장의 틈새를 파고든다.

1인 출판사는 이것저것 손대거나 다수의 독자를 대상으로 하기보다는 편집자가 자신 있는 분야를 특화한다. 분명한 색깔은 곧 작은 출판사의 생존 비결이기도 하다. 일본 작은 출판사들의 사례는 참고할 만하다. 이들은 버스만을 다루거나, 금기만을 소재로 하는 등 고유한 분야를 다짐으로써 살아 남았다.

혼자서 일을 처리하기 때문에 고정비가 적게 든다는 것도 1인 출판의 장점이다. ‘대박’이 나지는 않더라도 고정 독자를 확보한다면 저비용 구조를 바탕으로 회사를 유지할 수 있다.

김현종 사장은 “1인 출판을 생각한 것도 고정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황영심 사장은 “자연과학서는 사진이나 편집 등에서 일반 책보다 품이 다섯 배는 더 들지만 즐겁게 일할 수 있다는 이유로 노동력 소모를 비용에 포함시키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그렇다고 1인 출판의 미래가 마냥 장밋빛인 건 아니다. 책 하나를 낼 때 비용을 생각한다면 ‘목숨을 걸고’ 출간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렇기에 책이 그만한 가치를 지닐 수도 있지만, 단기간의 수익을 위해 시류에 영합하는 책을 내놓을 수도 있다. 일각에서는 출판사가 내놓은 책의 종류가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춰야 하는데, 혼자 해서는 꾸준히 책을 내기 힘든 상황이라고 말한다.

열림원 김이금 편집주간은 “기획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또한 중요한 부분이 영업”이라며 “1인 출판이 대안은 될 수 있어도 최선은 아니다”고 밝혔다. “앞으로 수익구조를 갖춘다면 이들도 혼자서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

1인 출판이 앞으로도 계속 1인 출판사로 남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인원 2∼3명 정도의 작은 출판사를 넓은 의미의 ‘1인 출판’에 포함시킨다면 1인 출판 붐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트렌드다.

마음산책 정은숙 사장은 “1인 출판은 재미있고 혁명적인 것”이라며 “산업적인 차원이 아니라 문화적인 차원에서 바라보자”고 말한다. 그는 “일본처럼 한국에서도 ‘1인 출판 시대’가 시작된 것 같다”며 “중간 크기의 회사는 사라지고, 아주 크거나 아주 작은 출판사로 출판계가 양분될 것 같다”고 전망했다.

이제 막 발걸음을 내디딘 작은 출판사들. 아직 미흡하지만 출판계에 새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이보연기자

/
byabl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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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양미 ''산처럼''사장 "창업한 지 3년째… 책 11권 펴냈죠"
[세계일보 2004-07-03 07:36]

“반드시 필요한 책을 펴내고, 적더라도 그 책을 보는 고정 독자를 확보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1인 출판사 ‘산처럼’의 윤양미(40·사진) 사장이 일확천금을 꿈꾸며 출판사를 차린 것은 아니다. 자신이 내고 있는 인문·역사서가 베스트셀러가 될 것으로 생각하지도 않는다. 편집자로 8년을 일한 윤 사장은 “예전에 있던 출판사에서 편집자로서의 비전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독립 이유를 설명한다.

1년여의 준비 기간을 거쳐 2002년 초에 창업한 지 3년째. 제일 잘할 수 있으면서, 재미있는 일은 출판밖에 없었다. “독서를 통해 즐거움과 지적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며 “ 성실하고 꼼꼼한 성격과도 잘 맞는다”고 말한다.

그가 세상에 내놓은 책이 어느덧 11권이다. 1년에 4권 꼴로 낸 셈. 원고가 들어오면 한달 내로 교정·교열을 끝낼 수 있는데, 원고가 늦어지는 바람에 노는 시간도 많다고 말한다.

특별한 일정이 없을 때는 사람을 만나거나, 서점에 나가서 책을 보고, 인터넷을 검색하며 기획 아이디어를 구한다. “올해부터는 바빠질 겁니다. 이제 두 달에 한 권씩 책을 낼 거고, 출간 이후에도 책은 끊임없이 관리해야 하니까요.”

그가 창업을 위해 마련한 돈은 5000만원. 요즘엔 그 정도로 부족하단다. 이제는 회사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지만 처음 독립할 때는 두려움도 있었다. 달마다 수익의 기복이 크기 때문이다.

혼자 일해서 좋은 점. 의사 결정이나 일의 집행에서 순발력을 발휘할 수 있다. 인간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없다. “하지만 한꺼번에 일이 몰릴 때나 아플 때는 일을 나눠서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중요한 사안을 단독 결정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자금 사정이 나아지면 편집자를 한 명 구할 생각이에요. 기존 출판사보다 좀더 합리적이고 자유로운 시스템을 갖춘 출판사로 만들었으면 합니다.”

이보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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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혈단신 출판’ 불황늪 자맥질
[한겨레 2004-08-01 21:38]

[한겨레] ■ ‘산처럼’ 데펴 윤양미씨
몸집 가볍지만 모든일 감당 벅차
윤양미씨는 소금쟁이처럼 가벼운 몸으로 출판 불황의 늪을 헤쳐나가고 있는 1인출판사 ‘산처럼’ 대표다. 1988년 출판계에 입문해 몇몇 유력한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기량을 닦은 윤 대표는 2002년 산처럼을 세워 지금까지 2년 반 동안 12권의 단행본을 펴냈다.
10평짜리 조그만 공간에 컴퓨터 한 대, 전화 한 대, 팩스 한 대를 놓고 그 12권의 책을 혼자서 만들어왔다.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고 기획에서부터 교정·편집·영업까지를 모두 감당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런 만큼 성취감도 크고 회사를 운영하는 데 대한 부담감도 크지 않다.

“인문 교양서는 실용서처럼 판매 규모가 크지 않고 영업도 큰 힘이 들지 않기 때문에 혼자서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죠. 출판사 규모가 커지면 거기에 맞게 매출액에 대한 압박감도 커지게 됩니다. 1인 출판은 그런 걱정을 덜해도 돼죠. 내가 내고 싶은, 내 사이즈에 맞는 책을 펴내는 것이 즐겁습니다.” 이 ‘1인 출판사’는 빚에 쪼들리고 허덕이는 다른 인문사회과학 출판사들에 비하면 제법 큰 수익을 내는 등 사정이 한결 나은 편이다. 그가 낸 책 중에서 <테이레시아스의 역사>는 9000부가 넘게 나갔고, 이오덕 에세이집 <나무처럼 산처럼>도 8000부 남짓 팔렸다. 책이 나가는 데는 ‘행운’도 따랐다. <테이레시아스의 역사>는 텔레비전의 책소개 프로그램 <티브이, 책을 말하다>에서 ‘올해의 책’으로 뽑혔고, <근대의 횡단, 매혹의 질주>도 같은 프로에서 소개됐다. 또 <테이레시아스의 역사>와 <나무처럼 산처럼>은 문화관광부 추천도서로 뽑히기도 했다.

1인 출판이 몸집이 가볍다는 장점도 있지만, 어려운 점도 있다. 윤 대표는 어떤 책을 펴낼 것인지와 같은 ‘큰’ 결정을 해야 할 때 상의할 사람이 마땅치 않다는 게 가장 어려운 점이라고 했다. 도매상에서 대금 결제를 미룰 때, 제작사와 마찰이 생길 때 혼자 풀어야 한다는 것도 고생거리다. 글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 한겨레(http://ww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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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편집인클럽 9월 정기모임 공지]


“윤양미 회원의 1인 출판 성공기”
: 편집자 출신의 1인 출판경영, A to Z


강사: 윤양미 회원 (산처럼 출판사 대표)
일시: 2004년 9월 16일 (목) 오후 7시 ∼
장소: 더난출판사 세미나실
참가회비: 1만원
참가자격: 회원 및 비회원

출판사 2만개,
그 중에서 1년에 1권이라도 책을 내는 곳은 1500여 곳,
그 중에서 독자들이 기억해주는 출판사는 또 몇 개일까?
누구나 좋은 책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출판사를 시작하긴 하지만
통계가 말해주는 대로 ‘펼치기는 쉬워도 계속하기는 어려운 일’이 출판이다.
'지식인 지도‘를 시작으로 인문역사 분야에서 굵직굵직한 책들을 꾸준히 내고 있는
’산처럼‘의 윤양미 대표.
1당100이란 말처럼 기획, 편집, 홍보, 영업, 마케팅, 회계와 같은,
출판사가 굴러가기 위해 필요한 모든 일을 혼자서 척척 해나가는 비결은 무엇일까.
1인 출판의 특징과 전개방법, 발전 가능성 등 그동안 궁금했던 것을 들어보자!

윤양미 동국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한길사, 역사비평사의 편집장을 거쳐 2001년 도서출판 산처럼 설립했다. <세계 지식인 지도> <테이레시아스의 역사>를 시작으로 <역사는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 등 벌써 12권의 책을 펴낸 1인출판가. 출판계의 기대주로 떠오르고 있는 그녀에 의해 앞으로 달라질 출판계의 지도가 궁금하다.

우리가 그에게 궁금한 것들.

<창업준비 과정>
1. 창업 자금은 얼마나, 어떻게 마련했나?
2. 창업준비는 과연, 언제부터 시작했는지?(권하고 싶은 방법은)
3. 투자금이 회수되기까지는 얼마나 걸리는지?
4. 출판등록에서 이익 창출의 시기까지는 어떤 일을 하면서 출판사를 운영해왔는지?
5. 분야와 비전 구상은

<기획, 편집>
5. 원고는 언제부터, 몇 종을 준비했나?
6. 출간 순서는 어떻게 정하는가?
7. 필자관리는 어떻게?

<홍보, 영업, 마케팅>
7. 영업은 어떻게 하는가?(활용 가능한 출판계의 시스템은)
9. 홍보, 마케팅의 계획과 실행은?

<인사, 관리>
10. 출판계 내의 협력업체(유통회사, 인쇄소 등등)와의 좋은 관계의 비결은?
11. 관리, 회계의 처리?
12. 직원채용은 시점은?

*윤사장님, 강의 1시간, 질문 30분 정도의 시간배분으로 진행하고자 합니다.

위 사항을 참고로 하시어 자유롭게 준비하시면 됩니다. 이 이외에도 궁금한 사항은 질문시간을 활용하겠습니다.

- 지하철 이용시 : 지하철 2,6호선 합정역 하차 : 홍대방향 3번 출구 500M 지점
- 버스 이용시 : 131번, 588번, 129번
- 자가용 이용시 : 양화대교에서 홍대방향 직진 -> 보보호텔에서 우회전 -> 80M 직진 후 우회전 -> 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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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9. 22

"제가 바빠진 걸 보니 북아트 인기 실감" [04/09/21]


“제가 이렇게 바빠진 걸 보면 북아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게 맞는 거 같아요.”

북아트 강사로 활동 중인 김나래(33)씨는 강의뿐 아니라 최근에는 전시회 준비로 더욱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지난 6월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열린 ‘제1회 서울국제북아트페어’를 끝내고 나자 10월에 열리는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굵직한 행사를 준비할 때뿐 아니라 올해 들어 문의 전화가 유독 많아졌다는 점에서도 북아트의 성장을 실감할 수 있다. “전에 결혼 20주년 기념으로 아내에게 주고 싶다는 남편의 부탁을 받고 그동안 이 부부가 주고받은 편지들을 북아트로 만들어 드린 적이 있어요. 요즘에는 아예 직접 배워서 응용하겠다는 분들이 많아요.”

북아트의 가장 기본 단계인 책의 형태를 만드는 제본은 생활에서 다양한 쓰임이 가능하다. 손으로 직접 만든 책으로 육아일기를 쓰기도 하고 제본 형태를 응용해 앨범을 만들기도 한다. 이미 외국에서는 북아트가 대중화돼 있다.

“다른 나라에서는 젊은 사람뿐 아니라 노인 분들도 많이 해요. 소일거리로도 좋고 책을 만든다는 기쁨까지 함께 느낄 수 있어서 노인 프로그램으로 따로 운영하는 곳이 많아요.”

북아트가 국내에서도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자 작품에 대한 고민도 이전보다 커졌다. 특히 북아트의 경우 텍스트도 함께 담아내야 하기에 만만찮은 작업이다. 그의 경우 대가족으로 살았던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이야기를 만드는 바탕이다. 가장 애착이 가는 것도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담은 ‘화투’라는 작품이다. 북아트를 시작한 뒤 그에게 글쓰기는 빠뜨릴 수 없는 작업이다.

“글에 대한 고민은 오히려 북아트의 영역을 넓혀 놨어요. 글 쓰는 작가들이 북아트를 배우려고 하는 경우도 많고, 특히 텍스트뿐 아니라 이미지를 함께 전하기 때문에 표현의 폭이 훨씬 다양하죠.”

작품이 저렴하다는 것도 북아트의 장점이다. 일반인들이 실제로 예술 작품을 구입하기란 쉽지 않지만, 북아트는 1만원에서부터 가장 비싼 작품이라 하더라도 100만원 안팎인 경우가 대부분이라 훨씬 쉽게 대중들이 접할 수 있다.

국내에서 북아티스트로 활동하기 위해 강의를 맡겨 달라고 이곳저곳 발품을 팔았던 6년 전의 기억을 떠올리면, 몇년 전부터 일기 시작한 북아트에 대한 관심은 그에게 절반의 성공을 안겨준 셈이다.

“조금씩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니까 기분이야 좋죠. 대신 그만큼 책임도 강해져요. 다른 것은 다 제쳐두고라도 북아트에서 느껴지는 촉감을 사람들이 간직할 수 있었으면 해요. 디지털이 전부인 것 같지만, 결국 아날로그도 삶을 이루는 일부분이라는 것을 전하고 싶은 것이죠.”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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