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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는, 허물만 벗어두고 어디 갔나

참 희한하네, 눈도 더듬이도

부직포처럼 달라붙던 그

미세한 발톱도 고요히 벗어두고

너는 어디에 갔나

느티나무 밑동을 기어올라

손가락 마디볻 작은 저 적멸궁

원, 세상에 문하나 등피에 열어두고

바람이 아니고서는

그 속을 돌아 나올 수 없다

빛이 아니고서는 한 치도 발들여

놓을 수 없다

이도 저도 아닌 나로서는

한 참을 들여다보기만 하는데

마음에도 피가 있고 점액질이 있는지

관절이 소리없이 들썩이고

바람에 뜯겨지는 아,

저런 허공의 막 속에도

누가 살아 숨쉬는 것만 같고

나 전사되었나, 매미 소리

허공에서 듣는 육체의 은빛 아우라

딴 세상같네

 

 

                                       - 이 희철 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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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추씨앗을 심은 지 두 계절이 가버렸네

한 번은 거름이 너무 많아

생을 한 번 피우지도 못하고

또 한 번은 풀어둔 개가 스틸로폼

상자를 다 뒤집어 엎어버렸으니

이걸 어쩌나, 싹이 돋자 노친은 한 잎

한 잎 따다 베개 머리맡에 챙겨 놓고

이러시면 안 된다며 속상해하다가

오뉴월 땡볕에 잎사귀 다 녹아내리고

그래도 상추 몇 대궁이 허연 뿌리로 흙을 물고

처서 지난 바람결에 온 몸을 흔들고 있으니

나는 꼭 무슨 유언을 듣는 것만 같아서

귀가 커지다가 귀도 없어지고

마음만 고요한 한 마당

일생이 푸르고 붉게 타올라

대궁이 아래 눌러 붙은 잎사귀

이 땅에 피는 것들 불꽃 아닌 게 어디 있으랴

습관의 신발을 벗고 보면

서 있는 모든 곳이 떨기나무 불꽃 아니랴.

 

                                               - 이희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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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젠 온천수 담근 몸에 후끈 열이 피어날 때

시원하게 불어오는 한 줄기 바람쫓아

발걸음을 옮겨보니 노천탕이 눈에 띄네

그 곳에 몸을 담고 고개들어 하늘 보니

소나무 가지 옆에 쟁반같은 둥근 달이

백옥같은 밝은 빛을 세상 위로 드리우네

아무없는 노천탕에 달과 마주 하였으니

이국의 땅 내마음 알 이 너뿐인가 하노라

몸일으켜 굽은 노송 옆에 서서 너를 보니

창가마다 물가마다 네 비친 곳 무수한데

그 빛타고 너를 만나 마음으로 교우할 이

여기 이곳 알몸으로 너를 보며 섰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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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5-08-20 2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을 보며 고향을 생각하는 파란여우
달을 보며 노천탕에서 마음을 알아달라고 하는 달팽이님
실루엣의 그림자부터 다릅니다.
저에게는 탐스럽고 긴 꼬리가 있지요.
님에게는 손가락으로 톡 건드리면 들어가는 뿔이 있구요^^

달팽이 2005-08-22 0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을 보며 떠올리는 생각들 달라도
그곳이 타향의 어느 쓸쓸한 바람부는 언덕이나
긴 하루 여정으로 몸에 쌓인 피로를 씻는 노천탕이나
밝은 달을 타고 가는 따뜻한 마음의 고향
그림자는 달라도 빛을 따라가는 우리의 마음
한 곳이어라...ㅎㅎㅎ
 

능선을 감싸안은 운무 위에 마음을 싣고

한 점 이는 바람에 이마의 땀을 씻누나

머얼리 푸른 바다 위 뭉게구름 피어오르고

꿈을 실은 저 구름 흘러간 먼산 너머

이국의 땅에 서도 정감이야 변할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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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이 하늘을 가려

빗줄기 쏟아지고

천둥이 하늘을 갈라

천지의 지축을 흔들때

마음 속에 둥근 달 떠서

천지의 강마다 비추네

강물을 뜨는 저마다의 물통에

달이 하나씩 들어있네

물통마다 달은 담겨 있지만

떠 있는 저달은 모든 달을 포함하네

저 달이 있음으로해서

집집마다 달빛으로 불밝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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