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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나는 세계 시민입니다
공윤희.윤예림 지음, 배성규 그림 / 창비교육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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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는 평등한가? 인간으로 태어난 모든 사람들은 최소한의 인간적인 권리를 누리고 사는가? 그게 장애인이든, 여성이든, 흑인이든 말이다. 어떤 종교를 믿거나 어떤 국적을 갖고 있거나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에서 최소한의 인간적인 권리를 누리고 살 수 있기 위해 우리들의 세계는 정의로운가? 하고 묻는다면 우리들은 깊은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

 

  그런 기본적인 인권을 누리지 못하는 세계 사람들에게 우리는 동정이 아닌 정의로 접근하여 세상의 불평등과 빈곤과 인간성 학살에 맞서야 한다. 그 여정의 필요성과 실천성에 주목해서 고른 책이 이 책이다. 세계 여성의 날로부터 세계 인간 연대의 날에 이르기까지 세계 시민으로서 의미있는 17개의 날의 지정을 통해 지구촌의 정의로운 삶으로 접근해 나가는 이 책은 보다 최신자료의 내용과 시선한 관점들로 책을 풍성하게 만들고 있다.

 

  세계 시민과 시민 민주주의를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은 좋은 가이드가 될 수 있다. 시민은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대해 관심을 갖고 그 사회와 나아가 국가와 지구촌 더 나아가 온 우주를 평화롭고 정의로운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 참여와 정치의식이 모두 갖춰져 있는 존재라야 한다. 그래서 지역사회의 문제와 전지구촌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 기본적 관점에는 우주의 모든 생명체가 모두 평화롭고 정의로운 환경에서 살 수 있도록 그 삶을 보장해주는 것이다. 좁게는 인간에게 부여된 최소한의 인권을 보장하는 지구촌을 만드는 것이다.

 

  그를 위해 다국적 기업의 횡포에 맞서고 독재권력과 권위적 정부에 맞서고 민족이기주의와 국가이기주의에 맞서 전지구적 가치와 공동체의 가치를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자세를 갖춘 사람을 세계시민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공정무역을 지향하고 아동노동을 금지하고 그들이 교육과 부모의 양육 속에 평화로운 가정에서 사랑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고, 소비자주권이 지켜져서 인간적인 가치가 기업의 이윤보다 더 중요한 사회적 가치로 인정받도록 하는 것이다. 이 책을 읽은 당신은 오늘부터 세계시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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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늦기 전에 들어야 할 죽음학 강의 - 행복하게 살기 위해 꼭 필요한 공부
최준식 지음, 김호연 그림 / 김영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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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최준식 교수님의 죽음학에 대한 교과서적인 저서이다. 사후세계에 대해 그간의 학문적인 접근을 총망라하여 동서양의 저서들을 묶어서 잘 편집한 책이라고 보면 된다. 거기에는 타계하신 퀴블로 로스 박사의 저서가 많은 역할을 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죽음이란 우리가 두려워해야 하고 피해야하는 그 무엇이 아니라 우리 삶의 뒷면이면서 모두가 피해갈 수 없이 직면해야 하는 경험이고 무엇보다도 그것을 통해 본 삶이 더욱 성숙하고 지혜로워진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죽음을 통해서 우리는 이 삶의 의미를 더욱 잘 이해하고 성찰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죽음 이후의 상태에 대해서는 현실의 물리적인 3차원 세계와는 다른 4차원의 세계가 되고 마음이 그리는대로 세상이 즉각 창조되고 허물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러나 영혼이 하는 경험은 그 마음이 창조한 것이기 때문에 그 영혼의 카르마를 따르게 된다고 한다. 영혼은 세계는 실제로 존재하며 이 현실보다 더 다층적이고 다양한 세계라는 것이다. 그러면 왜 이 삶과 저 삶이 있는 것일까? 그리고 저 삶의 존재는 이 삶에 어떤 의미를 던져주는가? 우리는 이 물음에 답함으로써 이 책이 우리에게 주는 자상함을 이해할 수 있다.

 

  먼저 다양한 종교의 주장과 많은 선지자들의 가르침에 따라 그리고 과학적으로 근사체험을 경험한 사람들의 진술에 따라 사후 영혼을 인도하고 안내하는 존재가 있고 그것이 자신의 부모이거나 친한 영혼이거나 수호령일 수 있다고 한다. 그들은 자신의 삶이 마칠 때 또는 보이지 않는 존재로서 늘 그 영혼과 연결되어 삶의 중요한 순간을 자각시키게 하기도 하고 그들을 보호하기도 한다는 점이다. 그것이 현세계의 사람들의 다양성을 설명한다. 어릴 때부터 재능을 보인 사람은 적어도 몇 생에 걸쳐 간절히 노력하고 학습한 결과 이 생에 그런 능력을 갖고 태어난다는 점이다. 또한 현생에 알 수 없는 사고와 재앙의 원인이 현생에서 밝힐 수 없는 경우 그것이 전생이나 그 전전생의 업연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임을 설명한다.

 

  사실 그렇게 보면 우리는 왜 이런 모습으로 이런 가정에서 태어나 이런 가족들과 함께 성장하고 또 새로운 배우자를 만나 가족을 구성하는지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바가 없다. 인생의 중요한 문제는 아무런 자각과 이해없이 우리에게 주어지고 우리는 그것을 성숙하게 잘 풀어나갈 때 비로소 이번 생의 숙제를 끝내고 상급영혼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기에 이 지구 위의 삶은 영혼의 학습장이며 학교라는 것이다. 영혼의 세계에서는 마음이 그리는 바대로 영혼의 성숙의 정도에 따라 같은 동류의 영혼들이 모여 살고 그래서 더 고차원적인 성숙을 의도할 수 없다는 특징이 있다. 따라서 충분한 휴식을 취한 영혼들은 다시 보다 진화된 영혼을 만나 급속한 성장을 이룰 수 있는 이 세계로 탄생하기를 꿈꾼다는 점이다.

 

  이 삶에서 우리가 한 행동, 그리고 가진 나쁜 생각, 좋은 생각은 작은 것 하나 미세한 것 하나까지도 아뢰야식이라고 하는 가장 미세한 의식의 장에 찍히어 우리들의 개체로서의 영혼의 업을 만들어가고 그것을 공부를 통해 완전히 정화시키기 전까지는 카르마를 되풀이하게 된다. 즉 영혼의 윤회를 이어가면서 그것을 정화시키는 숙제를 안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지구별의 존재이유를 따라 영혼의 성숙을 꿈꾸어야 하는 것이다. 인류의 성인들께서는 늘 자신의 마음공부를 통해서 자신을 성숙시키는 방법을 친절하게 설명해왔다. 우리는 그들의 고구정녕한 안내를 따라 자신을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다면 그것을 직접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삶을 더 잘 살아가기 위해 너무 늦기 전에 읽어두어야 하는 책이다. 비록 저자 본인이 직접적인 깨달음을 가지고 적은 책은 아니지만 적어도 열린 마음으로 인류의 종교와 성현들과 과학적 지식을 통하여 삶과 죽음을 회통시키는 사실들을 잘 재구성하여 우리들로 하여금 문장으로서 이해하게 만들어놓았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있는 작업을 하였다. 이 저서가 가진 이러한 의미를 생각할 때 이 분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인생을 헤매이고 방황하지 않으려는 자들이여, 이 책을 읽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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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덕화 2016-04-17 2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창재 감독의 `후회없이 살고 있나요`도 함께 읽어보세요. 지금 나의 삶을 바로보게 해 줍니다.

달팽이 2016-04-18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감사합니다.
안부 여쭙니다.
찾아 읽어보겠습니다.
 
조용헌의 고수기행
조용헌 지음, 양현모 사진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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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인 러셀 셔면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피아노를 마스터하기 위해선 우주를 마스터해야 한다." 어떤 분야에서 고수가 된다는 것은 그 분야의 전문적 기술을 가지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 분야를 통해서 삶의 중심을 관통하는 문제를 해결한 사람을 말한다. 그래서 자신의 분야에서 자신의 인생도 담아내고 이 세상도 담아낼 줄 아는 사람이 진정한 고수이다. 이런 고수는 생각과 분별을 쉰 사람이다. 그래서 소유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는 주어진 그대로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고수는 고수를 알아본다. 그의 눈으로 찾은 10명의 고수들은 살아가는 모습은 세속인에서부터 무술인과 역술인, 승려, 동양학자, 작가, 사주풀이가, 족보학자, 신선가, 명상가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하지만 그것을 위해 자신의 인생과 자아를 바치고 진정한 자신의 본래 모습에 가까워져 간다는 점에서는 일치한다. 그래서 완전히 자신을 비우게 되면 그 때는 서로간의 구별이 없어지는 진리 그 자체가 되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서로간의 회통에 아무런 문제가 없어지리라.

  최근 들어서 나에게는 듣는 행위가 새로운 즐거움이 되었고 나아가 공부가 되고 있다. 잘 듣는다는 것은 자신의 생각을 비워내고 선율과 하나된다는 것이고 그럴 때 참된 자아에 대한 탐구도 시작된다고 한다. 일명 스님은 참소리를 통해서 깨달음의 길을 걷고 있는 수도자이다. 그 소리에도 첫째의 음의 시작이 있고, 그것이 변화되어 높낮이를 만들어내고 장단을 만들어내고 선율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불교에서는 범종 소리 하나로 집중된다. 구분이 없는 뎅~ 하는 그 한 소리에 마음을 집중하고 그 소리마저도 넘어 절대적인 소리를 찾아내야 한다.

  그것은 '한 손에서 나는 소리'이기도 하고 '모든 소리가 나왔다가 사라지는 그 곳'이기도 하다. 또한 이것을 듣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화두와도 같다. 사실 이렇게 마음쓰다보면 공부 아닌 것이 없다. 차를 마시는 것도 구도의 행위가 된다. 걷는 것, 책 보는 것, 밥 먹는 것, 잠자는 것까지...마음에 맞는 기분좋은 선율 하나가 하루의 분위기를 바꾸어놓기도 하지만... 그 선율의 비밀 속에 세상의 모든 비밀이 담겨 있다는 의문을 가지고 사는 것이 음을 통해서 선율을 통해서 우리가 닿으려고 하는 곳이다.

  결국 모든 형이하학적인 것은 형이상학적인 것과 만나야 하고 서로 간에 벽이 없이 소통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진정한 삶의 고수들끼리의 만남과 같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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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장미 2006-06-04 0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팽이님 안녕하세요? ^-^ 오랜만에 님의 서재를 방문했답니다.
여전히 좋은 글을 써주시네요?

그 선율의 비밀 속에 세상의 모든 비밀이 담겨 있다는 의문을 가지고 사는 것이 음을 통해서 선율을 통해서 우리가 닿으려고 하는 곳이다.

음.. 갑자기 님의 글에서 선율이 느껴진다는 생각이 드네요. 좋은 밤 입니다. :)

달팽이 2006-06-04 1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오랫만입니다. 가시장미님..
맞죠? '붉은'은 새로 붙인거죠?
님의 코멘트의 습관(말을 인용하는 것)을 보고 알았습니다. ^^

글샘 2006-06-05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승들의 선문답을 보면 참 고수들은 말 없이도 통하는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말을 하지만, 그 말들은 차라리 말없음의 경지를 잘 드러내 주지요.
일상적으로 지시적이고 외연적인 말들만 내뿜는 내 입이, 내 손이 되돌아 봐 지는 이야기입니다. 재미있겠는데요.

달팽이 2006-06-05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없음의 경지가 말함의 경지가 되기도 하지요.
그것이 활활자재하고 자유로운 경지겠지요.
마음을 돌이키면 이제 길을 찾아야 할 때입니다.
지구가 더욱 데워지는 날들입니다. 몸마음 건강하시길...
 
희망의 밥상
제인 구달 외 지음, 김은영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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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덧 뜨거워진 햇살아래서 모처럼 구포시장을 걷는다. 한줄기 바람이 일어나면 순간 몸의 상쾌함이 함께 일어난다. 모퉁이를 돌아 나오며 할머니가 앉아서 대야 가득히 담긴 묵을 파는 모습을 보다가 지나가는 바람이 나의 마음을 태워서 아련한 옛 시골집으로 데려가버렸다. 마음을 잃어버린 나는 껍데기만 남은 채 그곳에서 우두커니 서 있었다. 고향집 마루에선 할머니가 시장에 팔기 위해 만든 도토리묵이 대야 가득 담겨 있었고, 산에서 놀다가 온 몸에 흙투성이가 되어 돌아온 나는 배고프다고 할머니를 보채고 있었다. 할머니는 무엇이 그리 할 일이 많은지 조금만 기다리라고 했고, 기다림을 참지 못해 화가 난 나는 대야에 담긴 도토리묵을 손가락으로 휘휘 저어버렸다. 나의 심술에 화가 난 할머니는 점심 밥상 위에 내 손가락에 뭉개진 묵을 내놓았고, 나는 투덜거리며 밥을 달라고 숟가락으로 밥상을 탁탁 두드렸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재래시장의 한 좌판에서나 길가에 앉아 도토리묵을 파는 할머니를 보면 묵맛을 보고서 도토리묵을 조금씩 사서 집에 가져오기 시작했다. 그 때는 그렇게 먹기 싫었던 그 묵이 이젠 그 옛날의 넓었던 고향집과 할머니의 기억과 함께 어우러져 나에겐 잊을 수 없는 맛으로 남게 되었던 것이다.

  침팬지 연구에 평생을 바쳤던 제인 구달 박사가 왜 밥상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을까? 그녀의 평생의 연구결과가 왜 우리들의 밥상 위로 올라오게 되었는지 처음엔 궁금했다. 하지만 책을 넘겨가면서 이런 나의 궁금증은 아침에 컵에 넣은 커피가 뜨거운 물에 풀리듯 소리도없이 그렇게 풀려버렸다. 서열이 엄격한 침팬지에게 있어서조차 가끔씩 구한 육류 앞에서는 그 서열도 무너져버린다. 어렵게 구한 동물의 살을 두고서는 두목이라 할지라도 사생결단으로 덤비는 침팬지 앞에 두목은 슬며시 남는 것을 던져주기를 기다린다. 사회적 서열과 위계에 앞서 우선 입의 욕망이 동물에게 얼마나 강한 것인지 보여준다. 인간에게도 이러한 사실은 예외가 되지 않는다. 입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식탐이 지구상의 많은 동물들(소, 돼지, 오리, 닭, 양, 칠면조 등)을 얼마나 잔인하게 양육하고 도륙하는지 나아가서 우리 지구생태계를 얼마나 급속하고 회복불가능하게 파괴하는지 보여준다.

  영리한 돼지가 도축장에서 마취주사를 빠뜨린 채 컨베이어 벨트에 실려가면서 앞에서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커다란 칼날 앞에서 얼마나 떨어대는지, 얼마나 공포에 사로잡힌채 울부짖는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가혹하고 잔인하다는 생각에 고기맛이 뚝 떨어진다. 원래 체질적으로 육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이지만 우리가 식용하는 소나 돼지를 비롯한 동물들의 양육과정(성장호르몬제, 유전자 변형 주사, 화학 비료에 과도한 항생제 주사까지)을 보기만 해도 인간의 입이 가진 죄가 너무 무겁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책 속에 나온 오리의 입을 강제로 벌려 위로 화학 사료를 밀어넣는 사진을 보다가 마치 내가 오리가 된 것처럼 너무 서러워졌다.

  이러한 육식을 위한 숨겨진 비용과 생태계 파괴가 너무나도 크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잘 모른다. 정부보조에 의한 무수한 항생제와 주사 사용, 불결한 양육과정에서 나오는 악취와 오염물질, 토지와 하천의 오염, 생태계의 파괴와 먹이사슬의 최종소비자인 인간에게 그 화와 항생제와 성장호르몬제가 쌓이고 축적된다는 사실, 그래서 신경질적이고 화를 잘 내는 우리들의 심리상태로 연결된다는 사실도 간과할 수 없다. 동물들만 이렇게 비생명적이고 위험하게 키워지는 것은 물론 아니다.

  우리가 몸에 좋다고 생각하는 각종 채소와 과일, 곡물들도 유전자 변형과 화학 비료의 과다 사용과 항생제의 과다 사용으로 위험한 상태에 와 있다. 더구나 뇌가 어느 정도 성장을 완성하는 12세 이하의 아동들에게 이러한 음식이 가져다주는 위험성은 아주 크다는 사실을 빠뜨릴 수 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우리집 아이에게 주기 위해 받아먹는 우유를 더 이상 받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유기농 우유를 먹이기로 했다. 또한 우리가 먹는 식품에 대해서도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기로 했다.

  수질 오염과 바다 오염도 심각하다. 수많은 양식장과 그로부터 나오는 오염물질들은 연근해를 오염시켜 죽음의 바다로 만든다. 이 곳에서 잡은 물고기와 채취한 먹을거리가 위험한 것은 물론이다. 이미 우리들은 횟집에 가더라도 대부분 양식 고기를 먹게 된다. 나아가 오염된 어패류와 오염된 바다에서 기르는 굴과 김 바지락 등의 양식먹을거리에 대부분 노출되어 있다.

  인간의 숫자가 많아졌다고해서 이렇게 된 것이 아니다. 대량생산이 필요해졌다고 해서 이런 위험한 음식이 우리들의 밥상위에 오르는 직접적인 원인이 되지 못한다. 그것은 다국적기업들이 우리들의 먹거리에 투자해서 오로지 보다 많은 이윤을 창출하는 것에만 관심을 가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본의 악순환구조가 우리에게는 생명을 위협하는 밥상을 제공하고 지구에게는 생태계를 파괴하는 환경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실천은 나에게서 아주 일상적이고 사소한 일들에서부터 시작된다. 동래 메가마트에 몇 일전에 갔다. 우연히 걷다가 유기농 식품코너를 발견했다. 아이가 먹을 과자와 사탕을 몇 개 샀다. 그리고 이 코너가 더욱 커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대형할인점에서도 이젠 소비자가 요구하면 유기농 코너를 만들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 우리가 소비자로서 우리들의 권리를 유기농 제품을 요구하는 투표로서 행사하는 일이 희망이 된다. 사랑과 생명을 배반했던 입이 다시 희망의 노래를 사랑의 노래를 부를 수 있기 위해서 우리는 각자의 삶에서 작은 실천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것이 제인 구달 박사가 전하는 메세지이다.

  내 마음을 싣고 갔던 바람 한 점이 다시 나를 그 자리에 내려놓았다. 나는 묵을 파는 할머니를 쳐다보고 있었다. 오래된 과거의 희미하지만 따뜻한 기억 속에 우리 희망의 미래가 놓여져 있다. 자연을 파괴하지 않는, 생명을 파괴하지 않는 인간적이고 아름다운 그리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우리의 미래세대에게 물려주어야 하지 않을까? 손을 잡고 따라온 시윤이의 해맑은 웃음과 그의 아장걸음에서 나는 이 세대에게 우리들이 물려줄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선물이 무엇인지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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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6-06-01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에 제일 못 믿을 것이 인간이겠지요.
인간의 밥상에서 울부짖는 울음을 반성하잔 뜻이겠습니다.
이책 읽어봐아겠군요.

달팽이 2006-06-01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합니다.
밥상위의 울부짖음..

파란여우 2006-06-02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뻔한 책 내용이라 구독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 뻔한 것을 실천하지 못하는 삶이란...
우리의 밥상을 지배하는 문제에 단골출연자인 거대 자본의 폭력.
그런데 소비자가 행할 수 있는 대안말고 좀 더 적극적인 그 무엇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단순히 개인적인 취향이나 결의 같은 것으로 그치는 것 말고
견제하고 극복하는 적극적인 대안이 필요하다고 여겨요
이 책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지식의 정보로 얻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 무엇이 무엇일까...다시 숙제가 되는군요

달팽이 2007-04-05 2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슨 시원한 대안이 있으면 좋겠지요.
하지만 세상의 모든 복잡한 문제들이 서로의 인과관계의 네트워크로 이루어지고 있어 쉽게 해결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시원하게 내린 대안일수록 머리속의 공상일 경우가 많고
적극적이고 결단적인 정치적인 대안은 그것을 가로막는 사람들의 욕망들로 저지되고요...
우리 마음 속에서 한 걸음 한 걸음 가는 길이 느리지만 확실하고도 되돌려지지 않는 길이란 생각이 드는 것은 제가 너무 개인적이어서일까요?
저도 잘 모르겠군요...

무위당 선생님은 이 경우 어떻게 답했을까요?
한살림운동을 하시는 무위당 선생님 자신은 유기농 식품을 가려서 드시지 않고
주어지는 대로 잡수셨는데요...
주위 사람들이 왜 이런 걸 잡수시느냐고 묻자, 세상천지가 다 오염되었는데..
나만 좋은 것 먹어서야 되겠나? 하고 말씀하셨거든요...
물론 세상을 친환경적, 친생명적으로 바꾸어내려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내가 음식을 통하여 이루고자 하는 인생의 의미와 목적을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삼으셨던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해월 선생님이 밥 한 알의 의미를 깨우치는 것이야말로 인생의 공부로 삼았던 것처럼요..

어둔이님은 저에게 이 책과 관련하여 사찰에서 식사 때 하는 오관게를 들려주었습니다.

1, 이 음식이 어디서 왔읍니까?

2, 제 덕행으로 받기가 부끄럽습니다.

3, 마음의 온갖 욕심 버리고

4, 건강을 유지하는 약으로 알아

5, 진리를 실현하고자 이 음식을 받습니다.





비자림 2006-06-03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팽이님! 저도 오래전부터 이런 문제에 관심이 많은 편이에요. 그래서 생협을 이용하고 가능하면 인스턴트 식품을 안 사먹고 과자나 아이스크림은 웬만해선 안 사주고..하지만 거대 기업, 거대 자본의 영향 아래 자유롭기가 힘든 세상인 것 같아요. 주변 사람들의 음식문화로 인한 유혹도 많구요..

달팽이 2006-06-03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그렇군요. 비자림님..
저도 물론 예전에 이런 책을 여러 권 읽어보았지만...
내 삶에서 실천하려는 의지를 내지는 않았습니다. 힘이 약해서...
그런데 아이들을 키우는 입장이다 보니 조금은 가릴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나 자신은 철저하게 실천할 수 없을 듯 합니다.

2006-06-13 11: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달팽이 2006-06-13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님의 서재는 들락거렸는데요..
우리 아이가 좀 더 크면 선생님의 서재를 유용하게 들락거릴 수 있을 것 같군요...
두 분 다 배꽃같은 님이군요..
어제 달빛이 아주 좋더군요...

징검다리 2007-01-24 1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음식은 몸집을 만드는 벽돌과 같습니다.
잘 지어진 집은 유지 보수가 쉽지만 한 번 잘못 지어진 집은 고치기가 너무나 힘들지요.
우리 아이들의 몸집을 키우고 만들어 가는데 잘못된 벽돌을 쓸 수는 없지요.
불량 벽돌과 같은 농약과 비료(성장호몬제)로 만들어진(?) 먹거리로 지어진 우리 아이들의 몸집이 걱정되는 세태입니다.
유기농을 선택하는 나의 손길이 희망의 미래를 투표하는 소비자의 힘이라는 것에 동의를 보냅니다.
 
버리지 못한 가난
마지드 라흐네마 지음, 이혜정 옮김 / 책씨 / 2005년 8월
평점 :
절판


  교직에 들어서서 아이들의 인성을 위한 상담연수를 받을 기회가 많았다. 때로는 교사들이 하는 연수도 있었지만 때로는 상담전문가들이 하는 연수도 받을 수 있었다. 군대에서도 정신교육을 담당하는 교관생활을 2년 남짓 하였는데 그 때 공군장교 선배로서 김동수 성공전략연구소장과 윤은기 시테크의 저자들의 강의도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강의를 들으면서 삶을 활력있고 긍정적으로 살면서 우리 생활의 심리적인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기에도 조건을 필요로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것은 돈이었다. 보통 전문적인 상담과정을 거치려면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까지의 비용이 드는 것이다. 일반 시민으로서 자신의 인격적인 심리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이런 과정을 수강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임을 느꼈다.

  나의 성장과정에서도 가난은 그리 크지 않았지만 느낄 수 있는 문제였다. 빈농의 손자로 자란 내가 시골서 하얀쌀밥과 고기를 구경하는 것은 정말 특별한 일이었으며 항상 보리밥속에는 무우나 쑥 고구마 감자 등의 불순물이 섞여 있곤 했다. 이러한 사정이 나아지게 된 계기가 되었던 것은 아버지의 도시생활의 시작이었다. 부산으로 옮기고 나서 사업을 하다가 실패하고 난 후 늦게 들어간 공무원 생활로 최소한 흰 쌀밥은 먹기 시작했던 것이다. 물론 얼마 후 아버지는 보리밥을 섞어먹는 것이 좋다고 했고 우리는 내키지 않았지만 따를 수 밖에 없었다. 그때부터 조금은 알아버린 가난이 그 시절을 산 누구에게나 경험한 것이었지만 나에게도 피하고 싶은 그 무엇이었다.

  결정적이었던 것은 대학생활을 할 때 어렵게 마련한 돈으로 책을 한 권씩 사면서부터였다. 왜 그런지 몰라도 나는 용돈이 생기면 항상 절반 이상을 책사는 데 쓰고 있었다.(이 버릇은 아직도 못고치고 있다.) 나도 그 이유를 몰랐다. 왠지 눈에 띄는 책들을 다 사모으고 싶었던 것이다. 그 때 꼭 읽고 싶은 책이 있는데(자본론 전집) 호주머니를 찌른 손이 한 움큼의 먼지만 뱉어내었을 때, 그 깊은 좌절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 때 나는 커서 적어도 돈에 찌들리는 생활은 하지 말자고 생각했던 것 같다.

  가난은 절대적인 것과 상대적인 것이 있다. 그것이 사회문제화될 때에는 주로 상대적인 문제들이 커지는 측면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절대적인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대체로 두 가지의 문제가 같이 작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에서의 빈곤의 문제도 보다 많이 가진 사람들이 없는 사람들의 착취를 통하여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명암이 더욱 짙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 이면에는 인간의 욕구는 끊임없으며 그 욕구를 충족하기에는 재화가 충분하지 못하다는 절대적인 문제가 함께 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것은 빈곤과 가난의 문제가 육체적이고 물리적인 문제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늘 가난은 사람의 영혼을 쪼들게 하고 상대적인 박탈감으로 인한 심리적 위축감과 사회적 위화감을 조성하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나아가 가난의 상태에 처한 사람들의 정신적인 가난이 자신의 주어진 삶을 있는 그대로 살아가기 어렵게 만든다는 점이다. 심지어는 삶의 좌절감에 빠져 다시는 헤어나지 못하는 절망의 수렁으로 빠져들기도 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동양의 고전 사상을 보면 소요유라든지 빈이락하면서 사는 특별한 정신적인 면들이 보이고 있다. 자신의 삶에 필요한 것들을 간소화시키면서도 삶을 그대로 누릴 수 있는 정신적인 무엇인가가 갖추어질 때 비로소 그것은 가능해진다.

  하지만 그것도 최소한의 생존이 바탕이 된 다음의 이야기이다. 현대 사회는 경제의 세계화의 물결이 지구상 어느 곳에도 미치지 않는 곳이 없고 따라서 삶을 유지하기 위한 의존성이 그 어느 때보다도 심해진 것이 사실이다. 자급자족적 삶을 유지하기 위한 터전은 개발과 발전이라는 미명하에 모두 파헤쳐지고 폐허가 되어가는 실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최소한의 생존의 수단마저도 빼앗겨버리고 사회로부터 내몰린 사람들에 대한 대처가 시급한 상황이다. 그들에게는 무조건적으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최소한의 재화가 필요한 것이다.

  다음으로 그런 상태를 벗어난 가난과 빈곤에 대해서는 이제 동양의 고전 사상을 다시 모셔와야 할 때이다. 왜냐하면 이 시점에서 나의 삶으로 돌아와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재벌도 아니고 그저 평범한 월급쟁이 생활로 사는 나로서는 주어진 소득으로 만족하고 더 벌기 위해 아둥바둥하지 않고 쓸만큼 쓰면서 남으면 가족들과 나누고 때로는 가까운 사람들과 나누고 때로는 익명이지만 절대적 빈곤에 처한 사람들과도 나누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맞벌이임에도 불구하고 사실 조금의 저축과 한달 살림을 하고 나면 남는 것도 없다. 그렇다고 많이 버는 사람보고 부러워않고 비굴해지지 않고 적게 버는 사람보고 으시대지 않고 그저 주어진대로 만족하고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닐까? 사람과 만나면 내 쓸 수 있는 범위내에서 좀 더 쓰면 되고 더 번다고 해서 얻어먹으려는 마음없이 당당하게 살면 되지 않겠는가?

  정작 중요한 것은 가난으로 인해 마음마저 주룩들고 타락하지 않는 것이며, 좀 가졌다고 그것으로 인해 오만해지고 정신적으로 황폐해지지 않는 것이다. 누구나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에 맞추어 산다. 사람은 대체로 극단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상황에 적응하는 능력을 갖추었으니까. 하지만 상황에 맞추어 사는 몸 살림 이면에 정신적인 살림살이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돌아보고 반성해야 할 때이다.

  P.S 그런데 이 책 번역이 너무 짜증났다. 책을 읽다가 몇 번을 던져 두었다가 다시 읽곤 했다. 하지만 마지막 장을 덮는 마음까지 짜증으로 끝내지 않은 것은 다행한 일이다. 좀 더 읽는 사람을 생각해서 번역을 했더라면 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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