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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장자와 혜자가 호수의 다리 위를 거닐고 있었다.  

장자와 혜자는 다리 위에 서서 물속에서 노니는 물고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장자가 흥겨운 듯 물고기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렇게 유유자적하며 노닐고 있으니 이것이 물고기의 즐거움이겠지!" 그러자 혜자가 물었다. 

"자네는 물고기가 아니거늘 어떻게 물고기의 즐거움을 알겠나?" 장자가 곧바로 대답했다. 

"자네는 내가 아니거늘 내가 물고기의 즐거움을 모른다는 것을 아는가?" 혜자가 말했다.  

"맞네! 내가 자네가 아니니 당연히 알 수 없을 것이고, 자네 역시 물고기가 아니니 물고기의 즐거움을 모르는 것이 분명하네." 그러자 장자가 다시 말햇다. 

"아닐세,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이야기해보세. 자네는 내가 물고기의 즐거움을 아는가 라고 물은 것은 이미 내가 물고기의 즐거움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서 어디에서 알았느냐고 질문한 것일세. 그러니 대답해주지. 나는 호수 다리 위에서 알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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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08-25 0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언뜻 봐서는 언어 유희로 들리는데.. 무슨 진리를 비추고 있는 걸까요? ^^;;
지나가다, 발자국 살포시 남기고 갑니다!

달팽이 2011-08-25 1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혜자가 장자가 아니니 네마음을 당연히 알 수 없다고 한 것을 논리적 오류라고 하는데....그렇다면 과연 사람들은 개체를 넘어 상대방과 타인을 이해할 수 없는가의 문제가 생기죠...그렇다고 또 쉽게 이해할 수 있다고 대답하는 것도 쉽지는 않구요...저도 잘 모릅니다. ㅎㅎ
 

장엄한 법당에서 우렁찬 종소리

새벽 하늘을 진동하니,

꿈 속을 헤매는 모든 생명들이

일제히 잠을 깹니다.

 

찬란한 아침 해가

동녘 하늘을 붉게 물들이니,

빨리 눈을 뜨고 이 종소리를 들으소서.

 

영원과 무한을 노래하는

이 맑은 종소리는

시방세계에 널리 퍼져서

항상 계속되어 그침이 없습니다.

 

이 종소리는

천지가 생기기 전이나 없어진 후에나

모든 존재들이 절대임을 알려줍니다.

 

이 종소리는

아무리 악독한 생명이라도

본디 거룩한 부처임을 알려줍니다.

 

무서운 호랑이와 온순한 멍멍이는

이 종소리에 발을 맞추어

같이 춤을 춥니다.

독사와 청개구리, 고양이와 생쥐들이

이 종소리에 장단 맞춰

함께 즐겁게 뛰놉니다.

 

피부 빛깔과 인종의 구별없이

늙은이. 젊은이. 아이. 어른. 남자. 여자

잘사는 사람. 가난한 사람

모두 함께 뭉쳐서 이 종소리를 찬미합니다.

 

아무리 극한된 대립이라도

이 종소리 한 번 울리면,

반목과 갈등은 자취없이 사라지고,

깨끗한 본모습을 도로 찾아

서로서로 얼싸안고 부모형제가 됩니다.

 

이 신비한 종소리를 들으소서.

나무장승 노래하고 돌 사람 달음질합니다.

넓은 우주의 모든 존재들이

이 종소리에 흥겨워서 즐겁게 뛰노니,

천당과 극락은 부끄러운 이름입니다.

 

이 거룩한 종소리를 듣지 못함은

갖가지 욕심들이

두 귀를 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시적인 갖가지 욕심을 버리고

이 영원한 종소리를 들으소서.

 

광대무변한 우주 속의 우리 지구는

극히 미소하여, 먼 곳에서는 보이지도 않습니다.

여기에서 모든 성현. 재사. 영웅. 호걸들이

서로 뽐내니, 참으로 우스운 일입니다.

 

진시황의 육국 통일,

알렉산더. 나풀레옹의 세계 정벌 등은

거품 위의 거품이라 허황하기 짝이 없습니다.

 

자기 욕심에 사로잡혀

분별없이 날뛰는 이들이여!

허망한 꿈속의 부질없는 욕심을 버리고

이 영원한 종소리를 들으소서.

 

맑은 하늘 둥근 달빛 속에

쌍쌍이 날아가는 기러기 소리 우리를 축복하니,

평화와 자유의 메아리 우주에 넘쳐흐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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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꿀라 2007-03-05 0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철스님의 진리의 말씀을 귀담아 읽고 마음에 새기고 갑니다. 너무 감사드립니다. 한 주가 시작이 되네요. 행복하시구요. 좋은 하루 되세요.

달팽이 2007-03-05 2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밤늦은 시각, 앉아서 세상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세상엔 소리의 너무 많은 층이 존재한다고 느꼈습니다.
마음을 그 모든 소리 너머의 소리에 맞춰보았습니다.
아이 숨소리, 사물에서 나는 작은 소리, 빗소리, 자동차 소리, 나무가 내는 소리, 산이 내는 소리 너머의 그 소리...
문득 그 절대의 소리는 절대의 풍경이기도 하고 절대의 감각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주 스님께서 공부가 익으신 뒤 천하를 한 바퀴 돌면서 많은 가르침을 제자들에게 내리셨다. 그분의 제자들이 전국에 많이 있기 때문이다.

  스님께서 중국 산동성의 어느 암자에 있는 친구를 찾아가셨을 때의 일이다. 친구의 12살 난 사미승이 밀떡 두 개 반을 쟁반에 받쳐들고 들어왔다. 조주 스님이 손님이시니 밀떡을 먼저 올릴 줄 알았는데 자기 스님에게 먼저 한 개를 올린다. 조주 스님께서 다시 생각하시길, 이제 남은 한 개 반 중에 한 개는 당신께 올리고 반 개는 사미승이 먹을 줄 알았는데 조주 스님께서는 드리지 않고 한 개 반을 자기 앞에 당겨 놓고 먹는다.

  남을 가르치기 좋아하는 조주 스님인지라 친구에게 핀잔을 주었다.

 "여보게 자네  저 아이 잘 가르치게."

친구가 대답했다.

 "남의 아이 버릇 고치다 잘못하여 아이 버리기 싫네."

 그때 조주 스님은 크게 깨치셨다. 내가 수많은 사람을 제자로 두고 잘못 가르친 일이 얼마나 많을까 하고 뒤돌아보게 되셨다.

 그 어린 사미는 도인을 깨치게 한 공덕을 지었다.

 

  남을 가르쳐야 할 입장이 되었을 때 부처님 마음 즐겁게 해드리기 위해 심부름하는 마음으로 그네들을 만지면 밝은 일이나, 내가 만지고 내가 가르친다면 내 아상이 작용하여 배우는 이들은 거부감을 느끼고 또 가르치는 이의 그림자를 받게 된다. 그때 서로 어두운 업보들이 충돌하면 밝은 일은 못된다.

  흔히들 가르친다는 미명 아래 얼마나 남을 구속하고 자신의 닦지 못한 독심으로 얼마나 남을 괴롭히는가! 완벽하신 부처님의 경우라면 삼세를 혜안으로 보시고 그 사람이 지어 온 바를 참작하여 밝게 이끌어 가시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 아이는 영영 비뚠 길로 갈 수 있고 반항심으로 일관할 수 있을 것이다.

  남이 와서 물을 때 성실하게 대답하고 묻지 않는데 억지로 가르치지 않는다. 꼭 가르치고 싶을 때 가르치겠다는 그 마음을 닦고 가르치면 상대가 부담을 안 느끼나, 가르치겠다는 마음으로 가르칠 때 그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내 마음에 짜증이 일어난다. 짜증이 일어나면 이미 불사는 아니다. 그때는 내 정도가 이 정도인 줄 알고 부지런히 그 짜증을 바쳐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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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07-02-21 2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을 대할 때 나를 둘러보게 하시는 말씀이다.
오늘 아이들 중 형제 졸업식이 있다고 해서 서너명을 보냈다.
그런데 그 틈에 끼어 여섯명이 도망갔다.
내일이 졸업식이니 뭐 별일 있으랴 하고 말이다.
그런데 그 얘기 듣고 분심이 올라오는데 바치고 생각하길 그래도 일단 전화를 걸어서 잘못된 행동을 알려줘야지 하는 마음에 걸어보니 한 두 녀석이 전화조차 받지 않는다.
결국 교실에 있는 아이들에게 한 녀석도 돌아오지 않으면 안보낸다 하고 잠시 후 올라가니 세 명은 올라오고 있는 중이라고 하고 나머지 세 명은 연락두절이란다.
잡혀 있는 아이들이 뭐 죄가 있나 싶어 보내고 난 후 올라온 세 명의 아이에게 간단히 청소시킨 후 보내고 나니 그래도 올라오지 않은 녀석들이 밉다.
"하지만 전화 받으면 저들이 스스로 더 어려울 것 같아 그러겠지"하니 조금 누그러진다.
남은 녀석들에게 한마디 하려니 벌써 얼굴에 잘못했어요 써 있다.
그래서 그냥 웃으며 보냈다.

이 시간에 그 사건을 둘러보니 선생이란 지위로서 부리는 치심이 많다.
아이들 대할 때에 특히 말이다.

그래서 영혼과 그 사람의 과거 미래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가르치려 드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생각한다.
이 때문에 최선의 교육은 그냥 내버려 두라는 말도 있지 않나(우리가 중생이니 중생이 중생을 가르치려하기보다는 그냥 내버려 둠만 못하다는 말이겠다.)

어리석고 어리석은 나이니 우선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가르칠 때에 마음 쓰는 선생님의 방법을 배워야겠다.

2007-02-21 22: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달팽이 2007-02-22 0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오랫만입니다.
졸업하는 아이들 앞에 사실 그동안 선생님이 잘못한 게 참 많구나!
고생시켜 미안하구나 하는 마음이 많이 듭니다.
그래도 조금 위안이 되는 것은
내 사심이 그리 많이 들어 있지 않았다는 것 정도입니다.
좋게 봐주시니 오히려 어깨가 더 무거워지는군요..

비로그인 2007-02-22 0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생님은 제자들을 가르칩니다.
제자들은 선생님의 모든 걸 보고 배웁니다.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병원에서 저를 가르치셨던 선생님들과
그분들의 가르침을 여전히 기억합니다.
그런 선생님들의 가르침과 격려가 현재의 저를 만들었지요.
고맙답니다. 선생님들의 가르침.. 제자사랑.. 하하

새해에 좋은 일 많으시기를,
좋은 책 많이 만나시기를.


달팽이 2007-02-22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사님 정말 그렇습니다.
몸으로야 성장하여 시들어가는 것이지만
마음으로 보면 우리를 구성하는 참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금은 아이들이 그리고 지인들이 제 선생님입니다.

새해에도 책을 통해 한사님과 좋은 만남 기대합니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기므로 저것이 생긴다.

이것이 없으므로 저것이 없고

이것이 죽으므로 저것이 죽는다.

이는 두 막대기가 서로 버티고 섰다가

이쪽이 넘어지면 저쪽이 넘어지는 것과 같다.

 

일체 만물은

서로서로 의지하여 살고 있어서,

하나도 서로 관련되지 않은 것이 없다는

이 깊은 진리는

부처님께서 크게 외치는

연기의 법칙이니

만물은 원래부터 한 뿌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이쪽을 해치면

저쪽은 따라서 손해를 보고

저쪽을 도우면

이쪽도 따라서 이익을 받습니다.

 

남을 해치면 내가 죽고,

남을 도우면 내가 사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러한 우주의 근본진리를 알면

남을 해치려고 해도 해칠 수가 없습니다.

 

참으로 내가 살고 싶거든 남을 도웁시다.

내가 사는 길은 오직 남을 돕는 것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상반된 처지에 있더라도

생존을 위해서는 침해와 투쟁을 버리고

서로 도와야 합니다.

 

물과 불은 상극된 물체이지만,

물과 불을 함께 조화롭게 이용하는 데서

우리 생활의 기반이 서게 됩니다.

 

동생동사, 동고동락의

대 진리를 하루빨리 깨달아서

모두가 침해의 무기를 버리고,

우리의 모든 힘을 상호협조에 경주하여

서로 손을 맞잡고 서로 도우며 힘차게 전진하되

나를 가장 해치는 상대를 제일 먼저 도웁시다.

 

그러면 평화와 자유로 장엄한 이 낙원에

영원한 행복의 물결이 넘쳐흐를 것입니다.

 

화창한 봄 날 푸른 잔디에

황금빛 꽃사슴 낮잠을 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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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07-02-11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기를 해치는 사람을 제일 먼저 돕는다는 것.
아직 우리같은 중생에겐 참 어려운 일이다.
인식이 있고 그것을 실천해내는 일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머리로 인식한 잘못된 인식일 뿐
진정하게 가슴으로 아는 것은
그것이 바로 삶이 되는 것임을
성숙한 사람들은 이미 여러번 얘기한 바 있다.
인연을 바로 보게 되면
우리는 남을 도우며 살 수밖에 없음을...
그것이 청안 스님의 "자 이제 무엇을 도와드릴까요?"일것이다.
그러니 제대로 된 공부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

프레이야 2007-02-11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극과 상생은 동일한 원리겠지요. 인연은 시작도 끝도 없는 고리같은 것.
남을 위한 생각을 하다보면 가장 훌륭한 아이디어가 창출된다는 말도
이 말씀과 그리 먼 곳에 있지 않네요.
달팽이님, 좋은 말씀 다시 듣고, 행복한 주일 보내자고 혼잣말 하며 갑니다.
님에게도... 평안한 일요일 보내시기 바래요^^

혜덕화 2007-02-11 1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만 행복하면 좋을 것 같지만 나만의 행복이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느낍니다. 내 행복은 결국 다른 모든 인연들에 의해 형성되고 이어져가는 것이기에....
정다빈이란 예쁜 아가씨가 또 자살을 했네요. 마음이 아픕니다. 어찌 이리 자신의 몸이 자신만의 것이라고 잘못 알고 살아들가는지.....

달팽이 2007-02-11 2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경님/맑게 개인 주말의 느티나무 가지마다
새싹들이 생명의 용틀임을 하네요.
혜덕화님/저도 마음이 아픕니다.
 
뜻으로 본 한국역사 - 젊은이들을 위한 새 편집
함석헌 지음 / 한길사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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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는 남기는 것이 있다. 하나는 뒤에 남기는 것으로서 인과관계에 의한 역사의 서술이 바로 그것이다. 또 하나는 속에 남기는 것으로 역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남기는 정신과 뜻이요. 그 사회와 세상에 남기는 인류 존재의 고갱이다. 아무리 과거의 사실을 해명하는 보존이 잘 된 사료와 유물이 쏟아져 나온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뒤에 남긴 것으로 추측하는 인과관계의 찌꺼기일 뿐이다. 진정한 역사는 인간 존재의 깊은 의미를 물어야 하는 것이고 그것을 묻게 될 때 역사란 주어진 사료를 해석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들의 마음 속에 자리한 정신적 속알을 헤아리는 것이 되고 우리 사회와 세계에 주어진 절대자의 뜻을 읽는 것이 된다.

  함석헌 선생님의 전기에서 다석 선생님의 역사 강의는 무척이나 인상 깊고 감동적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다. 바로 역사를 듣는 이의 가슴 속에 민족적인 기상과 정신을 심어주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역사이며 우리 고난의 역사에서 수많은 눈물을 흘리게 하고 그 아프고 한스러운 우리 역사에서 가슴에 사무치도록 가야할 방향을 일러주는 역사 수업이야말로 참된 역사 수업이 아닌가 하고 생각되었다. "뜻으로 본 한국역사"는 바로 우리 국민들에게 민족정신을 세우는 역사이자 우리 마음과 정신을 더 높게 하고 더 넓게 펼치는 역사를 말한다. 여기 선생님의 말을 조금 인용해보기로 한다.

  빈 소리 하지 말고 공상하지 마라. 우리가 받은 유일한 역사적 유산은 이것뿐이다. 못생겼지만 이것뿐인 우리 마음, 우리 정신, 닦으면 얼마든지 닦이고, 키우기만 하면 곧 크는 마음, 그 대신 없다 하면 아무것도 없다. 5천 년인지 6천 년인지 모르고, 세계 몇 나라, 몇 문명인지 모르나, 그것이 흐르다 흐르다 그 결과 이 가엾은 늙은 갈보같은 우리에게 가져다준 것은 이것이다. 사실 어느 나라 무슨 문화도 복잡한 듯하지만 들추고 보면 수북한 껍질뿐이요, 마지막에 정말 남는 것은 이것뿐이다. 자유하는 정신, 이렇게 하느라고 하나님은 모든 것을 우리 예측에 벗어나게 하셨다.

  5천년의 역사동안 한 번도 우리의 기상을 한껏 펼쳐보지 못하고 수많은 침입과 억압 속에 무수한 좌절과 고통만이 수많은 지층으로 쌓이고 쌓여서 하늘까지 닿은 민족, 바로 우리 민족의 고난의 역사를 그는 승화시켜낸다. 세계사의 하수구인 우리 역사가 있기에 침입자들이 즐거움의 궁전에서 놀 수 있게 되고, 이 하수구가 있기에 그들의 편한 생활 가운데 나오는 보기 싫은 것들을 모두 받아주고 처리해주는 것이 아닌가? 그드르의 살찐 육체와 어긋난 욕망의 문명을 뒷받침해주고 양분을 제공해주는 것도 또한 이 하수구가 아닌가 하고 선생님은 말한다.

  '뜻'은 곧 씨알인 민중을 뜻한다. 수많은 외세의 침입과 억압 속에서도 면면히 그 생존을 지켜나가고 자신의 자리를 지켰던 그들이야말로 우리 고난의 십자가를 두 어깨에 묵묵히 지고 간 자들이기 때문이다. 일제 36년의 통치기간에도 우리 조국의 국권이 사라졌음에도 다시 해방을 맞이할 수 있었던 것은 조국의 정신을 가지고 조국의 언어를 사용하며 조국의 뜻을 이어갔던 그들이 있었기 때문이지 일제에 빌붙어 자신의 영달을 꿈꾸었던, 조국의 정신을 버렸던 자들이 아니다.

  '뜻'은 곧 민족 정신의 바탕을 뜻한다. 한반도의 운명이 우리들의 의도와 무관하게 위험과 격랑의 파도에 휩쓸릴 때에도 그 마음 속에는 항상 외부자를 수용하는 마음을 품었고, 타인에 대해서 적대감을 가지지 않고 세상 모든 것을 품으려 했던 우리들의 인과 겸손함을 뜻한다. 한번도 먼저 타국을 침입하여 그들을 노예상태로 만들려는 의도를 갖지 않았던 순박했던 하지만 마음만은 웅혼했던 민족정신의 고갱이를 말한다. 비록 역사적으로 한번도 변변히 그 뜻을 펼치지 못하였지만 그렇기에 우리들의 마음의 이상으로 자리잡을 수밖에 없었던 민족 정신의 노스탤지어다.

  '뜻'은 곧 인간 존재의 바탈이자 인간 의식의 궁극적 존재인 절대자의 의지이다. 따라서 우주 본체이며 그것의 움직임의 정해진 방향이다. 모든 고난의 역사는 그것이 주는 교훈이 있다. "간디의 말과 같이 수난은 결코 약한 자의 일이 아니요, 강한 자의 일이다. 자기 안에 보다 더 위대한 힘을 믿는 것이 수난의 도다. 우리 싸움은 불행을 남에게 떠밀자는 싸움이 아니라, 죄악의 결과인 고난을 내 몸에 달게 받음으로써 세계의 생명을 살리자는 일이다. 우리 양심에 준비가 부족할 때까지는 우리는 스스로 약함을 염려하여 겁낼 것이다. 그러나 정의의 빛이 우리 마음에 비치고 진리에 대한 사랑이 우리 속에 불붙을 때 현대의 무력 국가들은 결국 한낱 골리앗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라고 선생님이 말한 바와 같이 고난의 역사는 자기 안을 들여다보게 하고 그 속에서 절대자를 찾게 만든다. 그것이 고난이 가진 의미자 교훈이다.

  역사 서술을 이런 뜻으로 할 수도 있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랐다. 역시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각성의 눈으로 들여다 본 세상은 모든 것이 달리 보인다는 말이 실감난다. 비록 근 현대사 부분에 와서 동학의 의미라든지(무위당 선생님이 다시 재조명하셨다.) 해방과 남북전쟁의 원인과 결과에 대한 해석이 나름대로 수긍되지 않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역사를 이렇듯 큰 맥락에서 한번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 무척이나 새로웠다. 왜 모 신문사에서 선정한 대한민국 도서 100선에 선정되었는지도 이해가 되었다. 마치 장자에 나오는 곤붕의 이야기 중에 큰 새가 되어 한반도의 역사의 상공으로 높이 날아올라 그 역사의 시작과 끝을 한 눈에 쳐다보고 있는 시원하고 웅혼한 느낌을 주었다. 더불어 분노해야 할 곳에서는 가슴을 치게 하고 슬픈 곳에서는 눈물을 흘리게 하면서도 그 분노와 슬픔 속에 담겨진 깊은 뜻에는 말없이 수긍하게 하는 정신적 깊이를 가진 서술에 우리 나라의 역사에 관심있는 사람은 누구나 꼭 한 번 읽어보아야 할 책임에 분명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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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1-26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팽이님, 화두를 던져두고 가시다니요. 놀랍습니다.^^
이 책, 제 보관함에 담아갑니다. 좋은 책 소개, 고맙습니다.
뜻, 민중이자 민족정신, 우주본체의 자유하는 정신 쯤으로 정리되군요.

달팽이 2007-01-26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서 책을 읽으며 마음을 나누다보면
주변분들의 마음의 파장이 글을 통해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비록 얼굴을 마주하지 않아도
그 마음만으로도
나를 둘러보고 긴장하게 합니다.
그 마음의 파장에 맞추어 나도 함께 고양됩니다.
참 고마운 일입니다.
이제 산으로 가려 합니다.

윤은혜 2007-10-16 2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출판사 한길사에 근무하고 있는 윤은혜라고 합니다. 한길사에서는 계간 북 매거진 in BOOKHOUSE를 발행하고 있습니다. 11월에 나올 가을 호에 '한길사의 책과 나'라는 주제가 특집기사가 들어가는데, 이 리뷰를 정리해서 게재해도 괜찮을까요? 달팽이님의 글이 실리게 되면 글이 실리 잡지와 소정의 기념품을 드립니다. 독자와의 관계를 생각해보고자 하는 기획이니 소중한 글을 실을 수 있도록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메일(loorien@hangilsa.co.kr)로 연락 주시거나 댓글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