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함께 글을 작성할 수 있는 카테고리입니다. 이 카테고리에 글쓰기

 

世人以覺爲常 以夢爲幻 夢者不覺之名 覺者不迷之稱

夢若是幻 在夢者可謂無常 覺若是常 出夢者乃可謂常

世所謂大丈夫者 果能知其何者是常 何者是無常乎

常者不變不幻 苟知身中有不變不幻之物 則可謂知常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달팽이 2006-02-11 2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 상

이누아 2006-02-11 2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有一物於此
常在動用中
動用中收不得
이뭣고?

저 글을 읽으니 이 물음이 절로 일어납니다.

달팽이 2006-02-11 2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도 아니고
물건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니
이것이 무엇인가?

달팽이 2006-02-12 1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술몽쇄언에 좋은 말 있어 한번 더 옮깁니다.

雲走天無動 舟行崖不移
本是無一物 何處起歡悲

 

이제, 내가 속해 있는 우주의 본질이 무엇인지,

그리고 이 우주를 지배하는 힘이 무엇인지 깨달아야 할 때가 왔다.

내게 허용된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

내 마음에서 의혹의 구름을 몰아내는 데 이 시간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시간은 흘러가 버리고 나 또한 사라져 버려

다시는 되돌릴 수 없게 될 것이다.

나는 얼마나 오랫동안 이 일을 미뤄왔는가!

신은 내게 여러 차례 기회를 주셨으나

나 스스로 그 기회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 명상록 중에서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가이없는 풍월은 눈속의 눈이요

다함없는 하늘과 땅은 등불 밖의 등불이러라

버들은 푸르고 꽃은 예쁜데 십만의 집에

문을 두드리는 곳곳마다 사람이 답하네


댓글(7)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파란여우 2005-09-27 2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용하게 살고싶어
숲 속으로 들어왔더니
길 가던 참새들이 모두 모여든 파란여우네 문칸에서
서성이다가 망설이는 달팽이 한 마리
그러나 지난 밤에 떨어진 봉숭아 꽃잎에
그 님이 다녀갔다 알려주네

달팽이 2005-09-28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란여우 문턱에서 북적대는 객의소리
망설이다 서성이다 마음접고 돌아서네
하얀달빛 도화잎에 쏟아져서 반짝이고
그곳에서 파란여우 비친얼굴 보았으니
보고싶은 이내마음 충족되니 돌아서네

어둔이 2005-09-28 1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설산에서 눈을맞고
날라리아 노래하며
등불아래 책을펴고
목청높여 글을읽네
무주공산 밝은달은
홀로뜨고 홀로져도
적막강산 독야청청
천지가득 풍경소리

글샘 2005-09-28 1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을 두드리는 곳곳마다 사람이 답하네...
저는 이 대목을 들으니, 화장실 앞에 선 마음 답답한 나그네 마음에 안타깝습니다.
세 분의 시 문답이 재미있습니다.

달팽이 2005-09-28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샘님 앞도 없고 뒤도 없고 발 디딜 아래도 없고 쳐다볼 위도 없는 답답한 마음 꼭 간직하셔야 합니다.
우리는 두드릴 문이 어디있는지 알지못하는 어둔이들입니다.
저 또한 선생님의 마음과 다르지 않습니다..

돌바람 2005-09-28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망설이다 서성인 마음 어디갔나 찾아보니
여기는 또 어딘가 걸음이 멈춰지네
지난 여름 달팽이가 어디 갔나 물었더니
왜 이제왔는가 문 열어주고 기다리네
에헤라, 지나는 사람들아
뒤늦은 걸음을 예다 걸어두고
두런두런 모여앉아 쉬어나가세, 쉬어나가세

*재미있어서 저도. 저 이제야 인사드려요. 꾸벅^^*

달팽이 2005-09-28 15: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반가워요...돌바람님..앞으로도 자주 글 남겨주세요..
 

  진리는 지속적이지 않다.

찾아가서 경배할 장소도 없다.

진리는 오로지 순간마다 보일 수 있다.

진리는 항상 새롭다. 따라서 시간을 넘어선다.

어제 진리였던 것은 오늘 진리가 아니고 오늘 진리인 것은 내일 진리가 아니다.

진리는 연속성을 갖지 않는다.

진리라고 부르는 경험을 지속적인 것으로 만들려는 것은 마음이다.

진리는 언제나 새롭다.

같은 미소를 보되 새롭게 보고, 같은 사람을 보되 새롭게 보고, 같은 나무의 흔들림을 보아도 새롭게 보는 것이다.

진리는 삶을 새롭게 만나는 것이다.

진리는 책을 통해서도 헌신을 통해서도 자기 희생을 통해서도 절대로 획득될 수 없다.

진리를 알려면 마음이 고요하고 자유로워야 한다.

마음의 자유와 고요는 그 관계가 벌이는 사실이 이해되었을 때 찾아온다.

그 관계를 이해하지 않는다면, 마음은 무슨 일을 하든 문제를 일으키고 만다.

그러나 마음이 그 모든 투사로부터 자유로우면 모든 문제가 그치는 정적 상태가 나타난다.

그리고 그때서야 시간을 떠난 영원한 것이 찾아온다.

진리는 지식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기억되는 것도 아니고 반복되는 것도 아니며 인쇄되거나 전파되는 것도 아니다.

진리는 이름도 없으며 따라서 마음은 그것에 접근할 수 없다.

 

                                                                                             - 크리슈나무르티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퇴계선생님은 마음을 움직이기 전이나 마음을 움직였을 때나 항상 경을 유지해야 한다고 했다.

마음에 경건한 마음을 품고 있어 늘 자신을 비추어내고 자신의 감정이 드러날 때에도 경을 간직하여 그 감정이 모자라지도 않고 지나치지도 않게 도리에 맞게 해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이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참선과 비슷한 데가 있다.

물론 불교의 참선은 병을 비유하여 말하면 병속의 내용물을 비우라는 가르침이면

퇴계선생님은 병 속을 맑은 물로써 채우라고 하는 가르침이다.

어쨌거나 자신의 내면을 비추어보아 한 순간도 놓침이 없이 살았던 퇴계선생님의

가르침이 오늘 밤 조용한 허공을 타고 나의 가슴에 잦아든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파란여우 2005-08-23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천원짜리 지페에 그려진 그 분의 서당 그림을 보면 별 반 매력이 없지만
유학의 대가가 불교와 일치상통한다는 것은 학문의 좋은 점은 다 같다...
하는 그런 뜻인가요?
금강경 공부하다가 게을러터진 파란여우의 질문이었습니다^^

달팽이 2005-08-24 1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삶에서 물질적이고 외형적으로 드러나는 것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내면에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가지려 했던 점에서 유학의 대가들은 수기가 먼저 되었고, 그런 점에서 퇴계 선생의 죽음을 맞이하는 자세도 '매화나무에 물을 주어라'처럼 의연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삶과 죽음의 의미를 내적 성찰을 통해 이미 깨달았다느 점에서는 불교와도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겠지요..
천원짜리 지폐를 다시 보아야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