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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붓다, 그 위대한 삶과 사상
법륜스님 지음 / 정토출판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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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처님의 일대기를 다룬 전기다. 부처님의 삶이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에게 삶의 모델로서 기능하고 있고 또 수행 승단에서 귀의와 공경 그리고 배움의 모델로 존재하고 계시기에 불교에 관심이 있는 나로서는 부처님의 일대기를 몇 권 읽었다. 하지만 일반적인 전기나 사회역사적이고 학문적 접근으로서는 크게 마음으로 감명받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인터넷으로 법륜스님 강의를 몇 번 듣다가 스님의 법문에 마음이 움직였고 그런 스님의 강의를 불교TV에서 찾아 듣고 있다. 그러다가 붓다의 일대기를 쓴 스님의 책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이 책이 내게 오게 되었다.

 

  붓다의 일대기는 네 가지에 촛점을 두고 있다. 탄생과 출가, 수행과 성도, 교화, 그리고 열반이다. 나는 이 전기를 통해 한 인물의 일대기를 넘어 내 삶에 공부에 직접적인 감명과 도움을 주는 울림을 받았고 그래서 지혜의 눈으로 책을 쓰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부처님의 전생은 수메다 행자의 삶을 사셨다. 일찌기 부자인 부모를 여의고 모든 재산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주고 수행자의 길을 걸어 많은 깨달음을 이루었고 연등 부처님이 가는 길을 옷과 머리로 공양올려서 부처님으로부터 석가모니 부처님이 될 것이라는 수기를 받게 되신다. 그 때 이미 수메다 행자는 '이 생명을 바쳐 부처님께 공양하리라'는 마음을 즐겨 내었다는 점이 마음에 와 닿았다. 또한 "나는 연등부처님처럼 최상의 진리를 깨달은 부처가 되어 마지막 한 생명까지 법의 배에 싣고 윤회의 바다에서 기필코 구제해 낸 뒤에야 비로소 열반에 들리라, 이것이 나의 유일한 희망이요 내게 주어진 일이다.'라고 일으킨 행원은 부처님이 이 땅에 오신 동기가 무엇인지 알게 한다.

 

  이렇게 해서 석가족의 슈도다나 왕의 아들로 태어난 고타마는 아시타 선인의 출가 예언을 받게 되고 그는 전륜성왕의 길을 포기하고 붓다의 길을 걷게 될 것이라고 한다. 지혜의 눈으로 보면 모든 것이 진리이고 왜곡된 눈으로 보면 무엇이든 왜곡되어 보이게 된다. 그 때 중요한 것은 존재에 대한 진지하고 간절한 물음이다. 생로병사의 인간의 역사가 그렇게나 오래 되었지만 그 인간의 삶의 본질에 대한 통찰로부터 고통을 영원히 종식하고 자유로운 해탈의 길을 걸으리라 큰 의지를 내었고 또 그 완전한 해탈을 얻었던 붓다의 삶 앞에 공경심을 공양드린다.

 

  드디어 왕의 신분과 가족관계 그리고 사회적 구조의 모순을 뒤로 하고 출가하여 여러 수행단체를 거쳐 스스로 깨어난 자, 붓다의 깨달음에 이른다. 쾌락과 더불어 고행도 부처님은 고의 다른 면으로 추구해야 할 것이 아님을 보시고 쾌락과 고통을 모두 하나의 고로 보시고 그를 떠난 중도의 관점을 선택하시고 사라쌍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이루셨다. 이는 인간 고타마가 붓다가 되는 역사적 순간에 대한 기록이다. 중생이 부처가 되는 순간이고 번뇌가 모두 소멸하여 대 자유인이 된 순간의 기록이고 또한 인류 번뇌와 중생의 역사에 던져진 희망의 빛 한 줄기가 탄생하는 순간이고 그 한 줄기 빛이 세상의 모든 어둠을 밝혀주고 영원히 인류역사에 전승되어 나갈 순간이 되는 것이다

 

  부처님은 녹야원에서 중도와 팔정도를 설하시고 처음으로 다섯 비구에게 초전법륜을 설하셨다,

사문 '카운디냐'는 법안을 얻어 모든 법을 증득했다. 이로써 부처님은 또 하나의 깨달은 자를 길러내시며 비로소 붓다가 완성된 것이다. 중생은 늘 중생이고 부처는 늘 부처이기에 변하지 않는 성질을 갖고 있는데 그래서 중생은 완전한 중생과 완전한 붓다의 가운데 어느 지점에서 인생의 윤회를 거듭하여 붓다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이리라.

 

  부처님은 성도 후 45년간 중생을 교화하시고 마지막으로 춘다의 공양을 받는다. 춘다의 음식이 상한 것을 아시고도 그 공양을 달갑게 받으며 다른 승가가 이 공양을 받지 않도록 했으며 춘다의 공양을 받고 식중독을 일으키지만 부처님은 춘다가 공양한 마음을 받으시고 죄책감에 빠져 있는 춘다의 마음을 보살핀다. 또한 열반의 순간에도 마지막 한 사람의 수바드라도 교화하시면서 붓다의 삶의 동기와 방향을 우리들에게 보여주는 장면은 감동적이다

 

  이러한 부처님에 귀의하고 부처님을 공경하고 부처님께 공양올리는 우리들의 바른 자세에 대해서도 이 책은 말하고 있다. 참다운 공양은 법공양으로 모든 중생을 위해 몸바쳐 희생하신 제불보살의 은혜에 감사하며 나 역시 그렇게 살겠다고 다짐하고 그 삶을 사는 것이다. 라고 말한다. 이렇게 해서 이 책은 부처님의 일대기로서 돌이켜본 우리들의 삶의 방향과 지금 이 삶에서 우리가 해야 할 바를 분명히 말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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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송 전형필 - 한국의 미를 지킨 대수장가 간송의 삶과 우리 문화재 수집 이야기
이충렬 지음 / 김영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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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충일 그를 만난 것은 다행이었다. 문대통령은 연평도 사건, 베트남전 참전용사, 항일독립투사 모두 현충인으로 대접했다. 나라를 위해 개인을 희생했던 모든 영령들을 위로하는 오늘, 일제에 의해 수탈되던 조선의 혼과 얼을 되찾기 위해 일생을 바쳤던 간송 선생님을 만나게 된 것은 의미있는 하루였다.

 

  젊은 나이에 오랜 선대의 부를 쌓아온 재산을 물려받은 그가 일본 동경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부의 뜻에 따라 조선의 판사가 되어 독립군을 위해 살려는 삶을 방황했다. 무엇보다 그의 마음을 끌지 못하는 삶이었으나 아버지의 뜻이라 거스르지 못하는 사이의 방황이었다. 그 때 위창 오세창 선생님을 만나 그 삶의 방향을 정하게 된다.

 

  두 사람의 정신이 만나는 데에는 인연이 있다. 위창 선생의 부친은 역매 오경석님이고 이는 추사의 제자였다. 첫만남에 역매 인장이 찍힌 '고성각자'탁본을 들고간 간송은 위창선생님과 특별한 인연을 갖게 되고 고서화 골동품을 수집하는 대수장가로서의 발을 내딛게 된다. 그러나 원래 그런 품성을 타고 났으니 그 귀한 문화재들이 제 발로 간송 선생님에게 굴러 들어왔고 간송 선생님은 선대로 쌓아온 재산을 그 대가로 다 지불해야 했다.

 

  오늘날 우리 나라 최고의 국보와 보물들이 간송 선생님으로 인해 보존되고 사람들 사이에 그 아름다움을 펼쳐 나갔으니 이는 선생님의 뜻과 의지가 컸던 탓이다. 영국인 개스비로부터 일괄처분받은 명품 청자 20점을 당시 서울 아파트값 400채값을 지불하고 사오는 배포와 그 이면의 문화재 사랑의 의지는 겸재 화첩, 혜원 화첩, 단원 그림 등 수많은 백자와 청자, 불상과 그림, 훈민정음 해례본까지 간송 미술관의 수장으로 오래 보존되게하는 인연을 만들었다.

 

  남북전쟁을 거치면서도 크게 흩어지지 않고 귀한 물건들이 보관될 수 있었던 데에는 간송 전형필 선생님의 뜻이 확고했기 때문이다. 아직 사설 미술관으로 가보지 못한 곳이 여기다. 매년 정기개관을 하는데 직업에 매인지라 선뜻 날짜가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올해는 여기에 꼭 들러보고 싶다. 뒤늦게 선생님의 전기를 만난 탓이기도 하지만 현충일 정말 뜻있는 삶 하나를 나는 만났기 때문이다. 나의 고미술품 수집에 많은 교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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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HOW TO READ 융 How To Read 시리즈
데이비드 테이시 지음, 박현순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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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융의 정신분석학을 자신은 '심층심리학'이라 불렀다. 그는 정신의학으로 프로이트와 만났으나 정신의학을 영역을 과학적 탐구 영역 안에 묶어 두지 않았고 그래서 그 영역 안에서 탐구했던 프로이트와 결별하게 되었다. 프로이트처럼 어릴 적의 성적욕구의 좌절로서만 자신의 삶을 해석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가 자신의 내면 속에 있는 신성에 접근하려 한 사실과 관계가 있다. 그는 이를 통해서 기존 종교가 가지고 있는 교리와 형식을 비판하였으며 그로 인해 자신의 내면에 존재한 전체성과 만날 수 없게 됨을 경계하였다.

 

  세계 제 1,2차 대전을 지켜보면서 그는 그 원인을 분석하고 설명하는데 정신분석학이 어느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았다. 결국 보편적인 신성과 내재적 전체성에 접근하는 방법을 잃어버린 데서 그 이유를 찾았다. 전체성에서는 인간의 집단적인 부정적인 측면을 직시하고 다루어야 하는데 기존 종교는 항상 선한 것과 도덕적인 것만을 추구하며 그것을 억압하여 무의식으로 밀어넣음으로써 그것이 집단적 광기와 분노로 표출되고 그것이 이런 인류사적 비극을 가져왔다고 설명한다.

 

"내가 설명한 것처럼 이 보상기능은 자동적으로 작동하지만 문명화된 사람에게 있어서는 본능이 지독히 위축됨으로 인해 작동되며, 때로 그것은 사회의 압력에 맞서 그의 의식의 일방성을 흔들기에는 너무도 미약하다. 그러므로 지속적으로 무시되어온 결과 무의식의 내용들이 축적될 때에는 그 내용물들이 병리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어 있다. p91

 

  전쟁의 매력은 정신의 내면에 구축된 부정적인 힘들이 다른 사람의 잘못으로 느껴진다는 사실이다. 만일 그것이 외부로 투사되고, 그의 이웃과 정치적인 문제가 되어버리면, 부정적인 성질을 다루기가 더 쉽다. 융은 '전쟁이 일어나면 그들은 모두 기뻐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전쟁은 우리들의 이성을 의례적으로 파기하는 것이며, 정상적인 수단으로 담아두기가 불가능했던 에너지들의 방출이기 때문이다. 파괴적인 폭발로부터 다른 것에 이르기까지, 범죄에서 집단 학살 충동에 이르기까지, 방출되기를 원하면서 표현될 수 없는 비합리성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비틀거릴 것이다. -p175~176

 

  그리하여 융은 사회에서의 집단적 무의식에 관심을 두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상징이나 의미를 통한 깨인 자각적인 삶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그러기 위해서는 특정한 종교의 교리나 형식보다는 내면적으로 새롭게 자신의 신과 만나는 과정이 더욱 중요하다고 보았다. 무의식이 광기를 띠지 않도록 그 무의식의 영역이 건강해지도록 의식이 고삐풀린 망아지처럼 날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내재적 전체성을 통한 영적인 성장과 성숙이 그 답이라고 하면서 그는 프로이트로부터 영영 떨어져나온다.

 

  그의 주장들이 비로소 오늘날에 와서야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조명받게 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개인의 정신적인 문제에서부터 사회적이고 집단적인 무의식의 문제와 나아가 종교가 다루는 신과의 합일과 영적인 성숙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그가 제시한 비전이 그만큼 넓고 광대하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그의 가설들이 사상사의 수수께끼로 남아 있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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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TO READ 프로이트 How To Read 시리즈
조시 코언 지음, 최창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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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세기의 인문학의 중심에서 큰 역할을 한 사람 중 하나를 뽑으라면 단연 프로이트이다. 이전의 많은 학자들이 거시적인 사회구조와 사회성격 등 정치구조, 전쟁 및 인간 사회의 구조물에 대해 논의했다면 그 관심을 인간의 정신세계로 돌리는 데 선구적 역할을 한 사람이다. 흔히 우리가 생각하듯 프로이트는 셩욕으로 모든 것을 설명했고 과거의 성적욕구의 좌절에서 원인을 찾고 인간을 부정적인 존재로 보았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 책은 프로이트가 얼마나 훌륭한 학자이고 자신의 학문적 솔직함과 모험심을 갖고 정직한 지적 탐구를 하였는지 그 삶을 통해 이해하고 또 그 이론이 가진 훌륭함을 다시 보게 한다는 점이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가설의 중요한 세 가지 중 하나는 정신결정론이다. 인간의 심리도 자연계와 같이 우연한 것은 없으며 모든 정신적 상황은 그 전에 일어난 정신적 사건에 의해 결정되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의 정신세계, 특히 성격은 어린 시절의 경험이나 이전의 정신경험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p226

  지금이야 정신분석학이 이를 토대로 발전하여 다양한 심리치료가 우리들에게 알려져 있지만 선구자로서 개인의 이상행동의 원인을 몰랐을 때 프로이트의 이 가설은 그야말로 혁명적이고 참신한 것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많은 이상행동의 원인이 이로 인해 설명되고 치유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의 정신분석 또는 심리학 체계로 불모지 때의 프로이트를 비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생각된다.

 

  둘째는 무의식가설이다. 인간의 정신세계를 살펴보면, 언뜻 보아 아무런 연관이 없는 것 같은 현상들이 의식의 밑바닥에 인과관계로 얽혀 있는데 그런 세계가 바로 무의식의 세계다. 정신세계 활동은 대부분 이런 무의식 세계에서 일어나며, 의식 세계로 나타나는 것은 물 위로 떠오른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p226

  지금도 이에 대해 프로이트의 가설을 한 단계 정확히 뛰어 넘었다고 볼 수 없다. 오랜 인류의 전통 종교가 이를 더욱 자세하게 설명하고는 있지만 그것 또한 직접 정신적 경지를 체험하기까지 아무도 이렇다고 주장할 수 없다.

 

  셋째는 목표지향적 가설이다. 인간의 정신 활동은 동기와 목표를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주위 세계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정신 속에 깃든 행동의 동기나 목표에 따라서 결정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의 출생부터 어떤 목표로 어떤 인생의 길을 향하는지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p226

  프로이트는 그래서 현재나 미래보다는 과거를 중시하고 무의식을 강조하고 발달단계에 따른 변화를 중시한다.

 

 " 에마라는 여자가 여덟살 때  겪은 일이었다. 사탕을 사러 작은 가게에 들어갔는데 가게 주인이 의복 위로 그녀의 생식기를 만졌으며, 이런 일이 두 번이나 일어났다는 것이다. 그러나 첫번째 추행이 있고나서도 그녀는 같은 가게를 한 번 더 찾아갔으며, 이 때 두 번째로 같은 일을 당한 후에야 비로소 발길을 끊었다고 했다. 기억을 되살린 그녀는 두 번째로 그 가게를 찾아감으로써 스스로 추행을 유도하기라도 한 것처럼 자신을 책망하였다. 실제로 '억압된 양심의 가책'은 바로 이 사건에 뿌리를 두고 있다." -p24

 

  여기서 궁금한 점은 왜 에마가 두 번째로 그 가게를 찾아갔느냐 하는 점이다. 첫번째의 경험은 여덟살의 에마가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감정을 느끼면서 대단히 혼란스러운 상태인데 다시 찾아간 것은 그 상황을 이해하면서 그 상황에 대한 위협적인 인식을 줄이기 위한 방어기제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두 번째에서는 그 무섭도록 생소한 느낌이 더욱 강화된 사건이 되어버렸다는 점이다. 이것이 에마 혼자서 어른이 되어서도 결코 혼자서 가게에 들어가지 못하게 된 강박증 환자가 되었다는 것을 설명해준다.

 

  나르시시즘 또한 부모에 대한 성욕과 애착이 자신에게로 가는 리비도이다. 흔히 우리는 사랑을 할 때 상대방에게 부모의 역할을 기대한다. 자신에게 많은 사랑을 주었던 이성적 부모말이다. 그런데 그 사람이 타인에게 의존적으로 투사되지 않고 자신의 보존본능으로 자신의 안쪽으로 투사된 것이 나르시시즘이다. 이는 죽음충동의 발견 이후 마조히즘과 사디즘을 설명해내는 데로 확장된다. 죽음충동은 특히 프로이트 자신의 성욕 개념을 무너뜨리는 반대개념으로 튀어나왔으나 그것을 탐구대상으로 직시한 오랜 후 새로운 이론의 확장을 가져오는 계기로 만든다. 프로이트는 그런 점에서 뛰어난 탐구정신을 가진 분석가이다.

 

  흔히 진부해져버린 이야기처럼 들리고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지는 프로이트의 일생을 통해 우리는 모든 인생의 선배들이 탐구했던 진지한 탐구정신과 실험정신을 배우게 된다. 그와 같은 정신으로 오늘을 살아간다면 우리는 그들의 탐구성과물을 계단 삼아 더욱 깊은 인간정신의 깊이에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매우 고마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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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시선 : 사랑스런 추억 아티초크 빈티지 시선 7
윤동주 지음 / 아티초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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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제가 '사랑스런 추억'이다. 윤동주 시인은 생의 마지막 시기 3년을(1942~1945) 일본에서 공부하다가 형무소에서 생을 마쳤다. 그런 그가 자신의 인생을 둘러보니 고향에서의 유년시절과 연희전문학교시절을 둘러보며 인생을 고민하고 시대를 고민하고 조국의 현실을 고민하던 그 때를 지칭한 것이 아닐까. 윤동주 시인이 향했던 고향에의 꿈이나 어머니를 향한 마음이나 문학과 뜻을 같이하는 친구들과의 우정이 사랑스런 추억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73편의 시를 통해서 우리는 윤동주 시인을 다시 만나게 된다. 그의 시작이 어떤 흐름으로 나아갔는지 그리고 그의 조국의 현실에 대한 의식이 어떻게 발전해갔는지....조국을 빼앗긴 시대의 지성으로서 한 민족주의자의 고뇌가 어떠했는지 조금은 읽혀진다. 15세의 나이에 발표한 '초한대'와 '삶과죽음'이라는 시를 보면 그가 얼마나 시적인 자질을 타고 났으며 또한 삶과 죽음의 문제에 천착했는지 도저히 15살 소년의 사유라고 볼 수 없는 면들을 보여준다. 그 후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조국의 현실을 알게 되고 민족운동과 조선의 문학을 옹호하는 활동을 하게 된다.

 

  "당시 일제의 증오의 대상이 된 연희전문을 찾는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러한 때에 민족 운동의 본산인 연희동산을 찾아오는 이들은 다 제각기 뜻이 있어 온 젊은이들이었다." 라는 유영 전 연세대교수의 말에 따르면 이 시기 20살을 갓 넘은 나이에 이미 윤동주 시인은 민족의식을 자각하고 자신의 소명을 세웠다고 볼 수 있다. 그 때 나온 시들을 보면 이런 현실을 직시하고 의지를 세운 글들을 볼 수 있다. '새로운 길'에서는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새벽이 올 때까지'에서는 "다들 울거들랑 젖을 먹이시오. 이제 새벽이 오면 나팔소리 들려올 거외다."

 

  윤동주 시인이 1942년 일본으로 유학을 간 구체적인 동기는 무엇이었을까? 나는 궁금하다. 문학공부를 하고 싶어서 였을까? 이중섭 화백처럼 공부를 하러 간 것일까? 그런데 3년이 지나 고국으로 돌아오려 할 때 재일한국인청년들의 모임에서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독립운동을 했다는 혐의로 그는 형무소로 가게 된다. 그의 사촌 송몽규 역시 같은 운명에 처한다. 윤동주 시인의 형무소에서 죽게 된 동기도 분명치 않다. 아직 20대 후반의 젊은 나이라고 하면 지독한 옥사가 있었던지...아니면 어디에 적힌 말대로 생체실험용 주사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그가 조국을 떠난 식민제국의 나라에서도 대학동기생들이 다 나온 송별회에서 '아리랑'을 부르고 민족에 대한 독립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갖고 있었다는 것은 분명했다.

 

  지금 우리들은 20대 후반이라고 하면 대학을 졸업하고 직업전선을 전전긍긍하면서 정규직이 되려고 애쓰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시대가 어른을 만드는 것인지 이미 성숙한 영혼으로 태어나 시대적 소명을 읽고 자신이 그에 맞게 행동한 것인지...일제 시대와 우리나라의 근대사를 살다간 사람들의 나이에 비해 이른 성숙함에 때로는 놀라기도 한다. 그리고 그 성숙함으로 자신을 돌보지 않고 민족을 위해 살았던 그들이 추구하였던 그 '민족'이란 또는 '조국'이란 과연 무엇이었는지를 묻게 된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그들이 몸바쳐 희생한 그 '민족'의 자랑스러움 속에 살고 있는지 아니면 그 책임은 또 누구에게 있는지 반성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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