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잎이 떨어져도 꽃은 지지 않네 - 법정과 최인호의 산방 대담
법정.최인호 지음 / 여백(여백미디어)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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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정 스님의 글을 즐겨 읽을 때가 있었다. '무소유', '봄여름가을겨울', '맑고 향기롭게', '버리고 떠나기' 등등... 제목에서 묻어나는 것처럼 아무런 수식과 장식없는 단순하고 직접적인 마음의 경험을 필요로 하는 이름들에 생각들이 자연히 쉬었다. 책 속 내용은 소박하고 부드러우면서 자연스럽고 단촐한 일상의 산사 생활들이었지만 마음 속의 어떤 감성을 일깨우고 무엇보다 글을 이렇듯 가벼우면서도 전달하는 깊은 떨림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어느덧 그런 스님이 떠나고 나는 잘 알지 못하는 최인호 작가도 떠났다. 두 분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샘터에 글을 연재하면서부터이다. 주위 지인들로부터 알게 된 사실이지만 법정 스님을 통해 우리 사회에 '어린왕자'가 다시 읽히고 조명받게 되었으며 '월든 호수'의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삶도 알려지게 되었다. 그 사람을 통해야만 건너 갈 수 있는 작은 개천이든지 강이든지 그런 것이 있어 우리는 그들의 영혼을 통하여 새로운 정신적 자양분을 얻게 되는 인연들이 있다. 법정 스님은 내게 편하고 자연스러운 삶의 태도와 그 속에서 자신의 마음의 상태로부터 자연스레 우러나는 주옥같은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무소유'란 삶의 아이콘으로 우리 사회에서 큰 시선을 모았던 스님은 자신의 무소유적인 삶을 많이 방해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방식으로 승려로서의 삶을 살다가 가셨다. 효봉스님의 제자로서 속명'박재철'이란 이름을 쓰셨으며 상좌나 자신의 삶을 보조해주는 어떤 혹도 없이 홀로 꿋꿋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나가셨다. 그런 스님의 영향이 내게도 적지 않은 삶의 파장을 가져왔음을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몇 일만 홀로 방안에 있어도 그 외로움을 떨쳐내는 데에는 많은 마음의 내공이 필요함을 알게 된다. 산 속에서의 수십년 간의 홀로된 삶 속에서 자신의 내면과의 직접적인 맞닥뜨림 없이 어찌 그 길을 걸어갈 수 있을 것인가? 비록 큰 스님으로서 큰 깨달음으로 속세의 인연들을 깊은 공부로 이끌지는 않았으나 수행자의 본분의 모습을 생각하기에는 법정 스님같은 삶도 참 의미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두 분의 대담을 통해 인생을 살아가는 어떤 지혜와 교훈을 바라는 사람들이 많을 줄로 믿는다. 그러나 뒷부분으로 갈수록 법정스님이 말씀보다는 최인호 작가의 말이 많아지고 대화의 논점이 조금은 흐려지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 더불어 법정스님의 사진을 더 많이 실어서 주제와 상관없는 사진으로 주제를 흐리는 면이 적었으면 더 좋았겠다고 하는 아쉬움도 남았다. 하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가족과 죽음과 외로움과 삶에 대한 가볍지 않은 명제들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하는 의미있는 시간은 될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과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랑을 그 사람을 통해 우주를 보게 하는 것이라는 마음의 상태, 꽃잎이 떨어져도 꽃은 지지 않네의 말 속 그 꽃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 마음 속의 물음표 하나를 찍는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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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 평전 - 외롭고孤 높고高 쓸쓸한寒
몽우 조셉킴(Joseph Kim) 지음 / 미다스북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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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근대시에 있어서 이 사람을 빼놓고서는 말할 수 없다. 오랫동안 한국을 대표하는 근대시인에 이름을 빠뜨리지 않았던 백석. 그의 책을 예전에 한 권 읽어보았으나 백석을 잘 이해할 수 없었다. 학문적으로 한 인물을 연구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아마추어지만 그의 삶 속에 깊에 자리잡은 한 영혼을 그려내었다면 그것은 어느 이름있는 그리고 권위적인 학자나 작가의 조명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은 말해준다. 김영진은 화가이다. 김정대라는 배호를 키운 작곡가가 그의 아버지이다. 그는 어릴 때부터 그림을 왼손으로 그렸다. 백혈병과 지병으로 고생하고 사형선고를 받지만 그는 백석의 시를 만나 어설픈 오른 손으로 다시 그림을 시작하게 된다. 기교와 기술을 부린 그림이 아니라 한 사람의 깊은 내면이 담긴 그림으로의 방향전환이자 그의 인생전환, 터닝포인트가 된다.

 

  그가 들여다 본 백석이라는 한 인물을 통해 나는 백석에 대해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고 확신한다. 그처럼 백석을 그리고 백석의 삶을 그의 삶으로 깊이 받아들여 쓴 책을 나는 아직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평전을 써내려면 적어도 김영진님처럼 한 사람의 내면과 영혼을 깊이 받아들이며 살아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의 성장과정을 통해 자연스레 알게 된 사실. 강소천 동화작가와 백석과의 만남을 이어주었던 인연이야기와 그가 백석의 사상과 삶으로서 다시 그림을 그려내기까지의 이야기가 드라마틱하게 감동적이다. 기교적인 그림에 싫증나서 자신의 왼손을 망치로 찍어서 못쓰게 된 사연과 인생의 실의와 좌절 속에 시한부생명 선고를 받고 죽음을 기다리던 날들..... 그 속에서 우연히 만난 백석이 그에게 다시 그림의 꿈을 부활시킨 사건들은.....그의 인생에서 가장 높이 비상하는 시간들을 만들어내었다.

 

  백석은 평안도에서 태어났다. 그는 비범했다. 두뇌부터 명석함을 타고 났고 그의 시세계도 그랬다. 김소월이 깊은 한과 절망의 시를 썼다면 그는 그의 삶에서 시에서 그 절망과 한을 뛰어넘어 조국의 미래를 보았고 시대의 중심을 보았고 삶의 희망의 싹을 발견했다. 김소월의 끝없는 절망이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다면 그의 희망은 그의 길어진 삶과 많은 문학사의 영향으로 남게 되었다. 어떻게 하면 시 속에 민족의 정서를 담아낼 수 있는가 하는 고민과 어떻게 하면 시 속에 시대의 정서를 담아내어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울릴 수 있는가 하는 고민과 더불어 어떻게 이 시대 속에서 바로 살고 시대를 보는 깊은 눈을 길러 그것을 나의 내면적 삶으로 살아내고 그 삶이 자연스럽게 시가 되는지에 대한 고민은 그를 성숙시켰다. 또한 우리 글의 아름다움과 조선의 독립이 바로 언어와 정신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우리 글을 우리의 무기로서 사용하고자 했던 그의 비전 또한 탁월한 것이었다.

 

  그는 먼 미래도 보았다. 우리가 독립되고 난 후의 이 시대를 뛰어넘는 방법은 아이들에게 우리 글의 위대성과 아름다움을 전달하는 것이었다. 시대의 아픔을 정화시키지 않고 전달하면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영혼을 찌들게 하고 상처받게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예술가적 사명으로서 그것을 예술적으로 승화시켜내야 하고 그 승화된 표현으로 대중들에게 다가가야 한다는 사명에 충실하였다. 그의 시를 읽는 깨인 사람들은 모두 그의 깊은 정신적 세계에 공감하였으며 그을 아끼고 사랑했다. 또한 그의 정신을 그들의 예술 세계에서 계승하려 하였다. 백석이 위대한 이유이다. 우리는 역사의 유산으로서 그의 정신적 유산으로서 남은 우리 글의 아름다움과 우리 예술의 아름다움을 동시에 느끼곤 한다. 시대를 마음 속에 수용했으면서도 그 아픈 시대에 좌절하지 않고 영혼이 찌들리지 않고 꿋꿋하게 헤쳐나가며 그것을 삶으로 정신으로 승화시켜 사람들을 감염시키는 능력을 그는 가지고 있었고 그 때문에 그의 삶과 시를 읽는 우리가 행복한 이유이다.

 

  그가 남긴 시대적 아우라를 우리는 오래된 대중가요에서 노천명 윤동주 신경림 김기림의 시에서 강소천의 동화에서 그리고 이중섭과 박수근의 그림에서 또 나아가 보이지 않는 많은 예술의 영역에서 오늘날 만나게 된다. 우리는 이 시대를 어떻게 극복하고 넘어갈 것인가? 백석이 남긴 시와 삶을 통해 해답을 찾을 수 있으며 김영진이라는 인물을 통해 우리의 나아갈 바를 비추어보는 거울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겨울 햇살이 투명하다. 인생은 어떤 고통과 시련으로 점철되었는가보다 그 고통과 시련을 극복하는 내면적 변화과정이 어떠하냐가 더욱 중요하다. 내 내면에서 발화를 기다리는 한 송이 꽃이 추운 겨울을 견뎌내고 있다. 다시 봄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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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동파 평전 - 쾌활한 천재 개제 역사 속에 살아 있는 인간 탐구 38
린위탕 지음, 진영희 옮김 / 지식산업사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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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는 태어나기를 큰 그릇으로 태어나는 사람도 있다. 나야 노력하고 또 노력해도 가물하지만 세상에는 태어나면서부터 그 밝은 영혼의 빛이 드러나는 사람도 있다. 주변의 사람들의 삶에 빛을 드리우고 많은 도움을 주는 것이 자신의 타고난 생명의 빛인 사람. 소동파도 그 중 한 영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세상의 관직을 두루 거치면서도 자신의 직함에 매이지 않았던 자유로운 사상과 삶은 그를 천황에서부터 국가의 왕과 재상 말단 관직의 사람 그리고 모든 백성과 천민까지 삶을 나누는 데 아무런 제약이 없었던 것이다. 그는 그와 교우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삶의 영감을 주었고 깨달음을 주었고 또 삶이 하나의 공부라고 하는 것을 알게 해 주었다. 그러면서도 늘 장난끼와 유머를 잃지 않았던 그의 삶은 매력적이다.

 

  그저 그가 시를 잘 짓는 시성이었다고만 한다면 소동파의 삶의 매력은 반감되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지상에서의 삶을 하늘에까지 뻗쳤다. 아니 타고난 천상의 빛을 대지 위에 드리웠다고 보는 것이 옳을런지도 모른다. 지상의 어느 지역과 어느 관직과 어느 공간 속에서도 그의 삶이 보여주는 유쾌함과 직설적인 면모와 솔직함은 노력으로 살아지는 삶이라고하기엔 너무 타고난 성숙함이 크기 때문이다. 이미 이 생에서의 자신의 삶의 의미를 잘 알고 있었던 것처럼 마치 영화의 줄거리를 다 알고서 그 영화에 몰입하여 있었던 것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마디마디의 삶에 초연하면서도 최선을 다하고 또 마음을 다 쏟으면서도 거기에 영혼의 패인 상처를 받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가 관직에 있으면서 정책으로서 남긴 궤적들은 그가 얼마나 백성들을 사랑하였는지를 잘 보여준다. 폭우와 그로인한 흉작을 예견해서 자연재해를 대비해 미리 분주히 움직이며 대비하여 대재난을 슬기롭게 극복했던 이야기라든지 왕안석의 신법이 국민들에게 가해질 폐해를 미리 알고 그 폐지를 위해 동분서주하며 정계에서 많은 비난과 모함을 감당했다는 사실에서 그리고 자신의 가슴을 울리는 노파의 이야기에 감동하여 자신의 살 거처마저 내주어버렸던 일상사의 이야기까지 그는 진정 백성의 둘도 없는 친구였으며 그들의 삶 속에 깊이 들어가 진정한 이웃으로 산 관리였다.

 

  그러면서도 당대의 많은 시인 문장가 도가 불가 유가 사상가들과 교유하였고 또 그들과 일생을 두고 친분을 나누었으면서도 그의 처 또한 소동파의 이런 삶을 모두 이해해주고 옆에서 지켜주었던 것으로 봐서 그는 분명 천복을 타고났음에 틀림없다. 자신의 처지와 삶을 모두 문학적으로 아름답게 승화시키는 재능과 마음의 여유를 갖고 살았던 그에게는 외로울 때가 없었다. 심지어 자신과 정견이 맞지 않아서 오랫동안 의견의 대립을 가졌던 왕안석이나 장돈조차도 훗날 그들이 권좌에서 물러나면 그들에 대한 연민을 놓지 않았던 그의 인격이야말로 타고난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1000년의 세월을 넘어서 나의 마음을 매료시키는 그의 마음은 사물과 자연을 대할 때 그가 가진 진리의 깊은 눈이었다. 불교든 유교든 도교든 진리를 향한 그의 눈은 종교와 형식에 상관없이 진리를 접할 때에는 진리의 빛을 띄었고 또한 자신의 진리의 색채를 문제삼지 않고 넓게 친구들과 도로써 교류했으며 자신의 삶 속에서도 아무런 거침없는 도를 쓰고 살았던 천상의 시인, 소동파는 그래서 거침없는 쾌활한 자유분방한 삶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삶의 성숙함을 지탱해주는 정신적 기둥이 무엇일까? 그 정신에서 뻗쳐 삶으로 드러난 그의 삶, 온 백성에게 친구였고 스승이었던 동파의 삶이 오늘날의 우리 세상에 더욱 절실하게 요구되고 또 그토록 매력적으로 내 마음을 끌어당기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고 생각한다.

 

  임어당 선생님은 혹 자신의 전생에 소동파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할 정도로 소동파에 대한 많은 애착과 관심을 보여주었다. 그 삶의 전기를 쓰기 위해서는 우선 그 사람의 삶과 마음을 깊이 이해하지 않고서는 안된다는 새삼스런 진리가 상기된다. 그래서 이 평전은 작고 많은 글씨를 담고 있고 읽어내기에 만만치 않은 원고분량임에도 쉽게 이야기처럼 읽힐 수 있는 데에는 임어당 님과 소동파 님의 정신적 섞임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은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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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설헌 - 제1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최문희 지음 / 다산책방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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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슬프구나

슬픈 꿈이여.

부용꽃 스물일곱송이

겨울바람에 진다.

조선시대 여성으로 태어났다는 것

사대부집안의 여인으로 태어났다는 것

그리고 시를 쓸 수 밖에 없었다는 것

숙명적인 운명으로

슬픔의 삶을 살다 간

난설헌의 묘지 위에

잠시동안만이라도

눈물을 헌사해야겠다.

어찌 그토록 시린

시련을 주려고

성장기의 그녀의 배경엔

따스하고도 사랑가득한

가족을 주었으며

글공부를 주었으며

무엇보다도

시를 주었단 말인가

그녀의 삶을

품을 수 없는

조선시대의 커다란 벽에

부딪히고 부딪혀

쓰러진 새 한 마리

결국 신분제사회의 벽에

부딪혀 쓰러진

한 마리

가엾은 새 되어

지상의 삶에

부려놓은

시에 대한 꿈을 거두어

천상으로

날갯짓하며

떠나버렸다.

아! 무릇 삶이란 무엇인가?

그녀는 어떤 인생의

경험을 하기 위해

이 땅에 왔던가?

차라리 두꺼운 껍질로

온 몸을 둘러싸서

외부의 고통이라도

막아줄 나무나 될 것을

껍질도 없이

온 몸을 드러내고

백일의 짙은 향

세상에 드리우고

찬 바람에

장렬히 질

백일홍이었으랴

아! 삶이여

아! 슬픔이여

한낱 순간의 꿈을 깨어

시의 나라에 머물진저

지상의 울음 한 방울

천상의 시어로 다시

태어나기를

다시 시로

태어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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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세기의 달빛 - 시인 고은과의 대화
고은.김형수 지음 / 한길사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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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느낌은 웅혼하다. 온 우주가 내는 소리를 담아내어 글로 옮긴다면 아마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우아한 우주처럼 이 책은 우아하다. 바로 고은 선생님의 삶과 마음에서 펼쳐진 세계이기 때문이다. 어떤 문인에게는 어릴 적 향수의 감성이 자신의 문학의 자산일 수도 있고 또 역사적 사건이 그의 마음 속의 문학세계의 큰 축이 되기도 한다. 때로는 깨달음의 문학을 할 수도 있지만 역사 속에 있으면서 그 역사성을 끝없이 탐구해 들어가면서 문득 개체성을 버리고 온 우주의 텅 빈 공간 속에 서 있는 느낌을 가지게 하는 시가 바로 고은 선생님의 느낌이다.

  어쩌면 이렇게 광활하면서도 적확한 표현들이 그의 마음 속에서 생겨날까? 시란 우주의 사투리이다. 우주가 내는 제각각의 소리가 그에게는 시이다. 그의 삶도 역사도 그 모든 것이 그에게 있어서는 시로 회귀한다고 한다. 시를 위해 태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든 역사적 사건이 그의 안에서 체험되어지고 그것이 마음에서 용해되어 새로운 산출물이 된다. 그 산출물이 시다.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마저 모르고 산다. 또는 시대 속에 매몰되어 변화되는 세상을 비판하거나 등돌리고 살아간다. 자신만의 과거의 방식을 고집하며....그러나 시인은 자신이 살아왔고 자신의 삶의 축을 형성했던 20세기와 지금 펼쳐지고 있는 21세기의 시대적 과제를 시속에서 받아들이며 소화해내며 끝없는 도전과 모험 속에 자신을 두고 있다. 그러니 한 세기의 역사도 그에게는 달빛이었건만 두 세기의 달빛으로 살고 있으니 그에겐 시를 쓰기에 모자람이 없다.

  여느 시인이라고 한 시대의 문학적 소명과 과제를 자신의 문학세계에 끌어오려고 할 것이며 또 그 시대적 소명을 넘어 진정한 삶의 가치를 추구하려 할 것인가? 역사가 문학을 이끌어주는 그 끝까지 가서야 비로소 역사의 손을 놓고서 홀로 남겨진 시의 길을 뚜벅 걸어갈 수 있었던 이는 과연 몇이나 될까? 삶의 시대의 깨달음을 통해 언어가 해낼 수 있는 최상의 역할을 찾아낸 이가 보여주는 세계는 우리들로 하여금 웅장함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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