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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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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9-13 13:38
산 속에 사는 선비는
오랜 세월 도를 지키며
걸을 때는 새끼로 맨 옷을 입고
앉아서는 줄없는 거문고를 타네.
탁한 샘의 물은 마시지 않고
굽은 나무 그늘에서는 쉬지 않으며
티끌만큼이라도 의에 맞지 않으면
천 냥의 황금도 흙같이 여기네.
마을 사람들 그의 품행 따르니
난초 숲에 있는 듯 향기가 그윽하네.
지혜롭든 어리석든, 강하든 약하든
서로 속이고 괴롭히는 일 없네.
그 선비 만나보고 싶어
길을 나서다 멈추어서네.
그 선비 반드시 만나야 하랴
그의 마음만 배우면 되는 것을.
달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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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9-13 09:09
쇠가 휘면 칼을 만들 수 없고
나무가 굽으면 멍에를 만들 수 없다.
나도 이와 같으니
어리석고 몽매하여 쓸모가 없구나.
달갑게 명예와 이익 버리고
전원으로 돌아가 숨으리라.
초가에 앉았다 누웠다 하면서
오로지 거문고와 술을 마주하며 살리라.
몸은 고삐의 구속에서 벗어나고
귀는 세상의 소란함을 떠났다.
한가롭게 거닐며 하는 일 없이
때때로 노자의 글을 읽노라.
근심 없으니 본성은 즐겁고
욕심 적으니 마음은 맑아지네.
이제야 알았노라, 재주 없는 사람만이
진리의 근원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달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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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9-12 22:52
언덕 위에 우거진 저 풀들은
해마다 시들었다 다시 나니
들불도 다 태우지 못하고
봄바람 불면 다시 돋아나네.
아득한 향기 옛 길에 일렁이고
옛 성터엔 푸른 빛 감도는데
그대를 다시 또 보내고 나면
이별의 정만 풀처럼 무성하리.
달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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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9-08 22:28
태풍이 지나간 파란 하늘
풍경은 먼지하나 없는
그림같이 붙박혀 있고
그것을 보는 것은
눈이 아니다
마음 속 깊은 곳
침묵의 밑바닥에서
그 풍경은 올라왔다 사라진다
영겁의 땅에서 오고
영겁의 땅으로 가는
그것은 아직 한번도
파헤쳐지지 않은 푸른 영토
침묵의 밑바닥에서
끝을 헤아릴 수 없는 파아란
하늘이 나왔다
오! 저 투명한 하늘!
달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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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9-03 21:59
씨앗을 심으며
내 손은 지구와 하나가 된다.
씨앗이 자라길 바라며
내 마음은 빛과 하나가 된다.
괭이질을 하며
내 손은 비와 하나가 된다.
식물을 돌보며
내 마음은 공기와 하나가 된다.
배고픔과 믿음으로
내 마음은 지구와 하나가 된다.
과일을 먹으며
내 몸은 지구와 하나가 된다.
- 윈델 베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