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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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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0-27 14:56
바닥까지 가본 사람들은 말한다
결국 바닥은 보이지 않는다고
바닥은 보이지 않지만
그냥 바닥까지 걸어가는 것이라고
바닥까지 걸어가야만
다시 돌아올 수 있다고
바닥을 딛고
굳세게 일어선 사람들도 말한다
더이상 바닥에 발이 닿지 않는다고
발이 닿지 않아도
그냥 바닥을 딛고 일어서는 것이라고
바닥의 바닥까지 갔다가
돌아온 사람들도 말한다
더이상 바닥은 없다고
바닥은 없기 때문에 있는 것이라고
보이지 않기 때문에 보이는 것이라고
그냥 딛고 일어서는 것이라고
- 정호승 -
달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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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0-27 13:46
네가 날 버리고 간 그 자리에
풀이 무성히 돋아났다.
네가 날 버려둔 그 시간에
나는 묶여서 꼼짝하지 못했다.
몇 번의 계절이 지나갔고
몇 번의 해가 바뀌었다.
네가 날 버리고 간 그 곳에
뿌리를 내린 나를 보았다.
밑둥부터 썩어가며 내리는 뿌리
슬픔과 절망만이 그 썩은 뿌리에
양분이 된다.
네가 나를 버린 그 과거의 시간 속에
나는 아직도 웅크리고 있다.
언젠가 돌아와 손을 내밀어 줄
너의 하얗고 작은 손을 기다리며...
달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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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0-24 23:04
한 줄기 바람 가지에 매달린 잎을 떨구는 때
내 청춘의 계절도 바람에 쓸려가는구나
머지않아 마지막 남은 잎이 떨어지는 때
내 추억의 잎새들도 남김없이 져버리고 말테니
혹한 추위만이 세상을 뒤덮을 것이다
따뜻했던 기억들 모두 버리고 홀로 서서
그 매서운 북풍을 맞이하리라
한 치의 바람도 피해가지 않고서
내 가슴으로 모두 받아내리라
한 곳으로 모아진 내 마음이
바다로 흐르는 한줄기의 강물처럼 흐르리
달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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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0-19 10:25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아무도 슬프지 않도록
그대 잠들지 말아라
마음이 착하다는 것은
모든 것을 지닌 것보다 행복하고
행복은 언제나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곳에 있나니
차마 이 빈 손으로
그리운 이여
풀의 꽃으로 태어나
피의 꽃잎으로 잠드는 이여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그대 잠들지 말아라
아무도 슬프지 않도록
- 정호승, 박항률 -
달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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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0-17 12:54
내 그대 그리운 눈부처되리
그대 눈동자 푸른 하늘가
잎새들 지고 산새들 잠든
그대 눈동자 들길 밖으로
내 그대 일평생 눈부처되리
그대는 이 세상
그 누구의 곁에도 있지 못하고
오늘도 마음의 길을 걸으며 슬퍼하노니
그대 눈동자 어두운 골목
바람이 불고 저녁별 뜰 때
내 그대 일평생 눈부처되리
- 정호승 글, 박항률 그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