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먼 부락이다
몇 겹의 유리가 하나씩 벗겨지고 있었다
살 곳을 찾아가는 중이다
하얀 바람결이 차다
집들은 샤갈이 그린 폐가들이고
골목들은 프로이트가 다니던
진수렁투성이다
안고 가던 쉔베르크의 악기가
깽깽거린다
한 노인이 햇볕을 쪼이고 있었다
몇 그루의 나무와 마른 풀잎들이 바람을 쏘이고 있었다
바흐의 오보의 주제가 번지어져 가고 있었다
살다보면 자비한 것 말고 또 무엇이 있으리
갑자기 해가 지고 있었다
산마루에서 한참 내려다 보이는
초가집
몇 채
하늘이 너무 멀다.
얕은 소릴 내이는
가는 연기들이
지난 일들은 삶을 치르노라고
죽고 사는 일들이
지금은 죽은 듯이
잊혀졌다는 듯이
내용없는 아름다움처럼
가난한 아희에게 온
서양 나라에서 온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카드처럼
어린 양들의 등성이에 반짝이는
진눈깨비처럼
물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게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왜 마지막에 마침표가 아니라 쉼표로 끝을 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