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순이 언니 - MBC 느낌표 선정도서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4년 9월
절판


그때 깨달아야 했다. 인간이 가진 무수하고 수많은 마음갈래 중에서 끝내 내게 적의만을 드러내려고 하는 인간들에 대해서 설마, 설마, 희망을 가지지 말아야 했다. 그가 그럴 것이라는 걸 처음부터 다 알고 있으면서도, 그래도 혹시나 하는 그 희마으이 독. 아무리 규칙을 지켜도 끝내 파울 판정을 받을 수도 있다는 악착스러운 진리를 내가 깨달은 것은 그로부터 30년이나 지난 후였다. 하지만 그 30면이 지난 지금 나는 아직도 궁금한 것이 있다. 이런 경험을 그 이후에도 무수히 반복하면서도 나는 왜 인간이 끝내는 선할 것이고 규칙은 결국 공정함으로 귀결될 거라고 그토록 집요하게 믿고 있었을까. 이런 일이 그 장소의 특수한 사건이라고. 그러니 그때 나는 운이 나빴을뿐이라고 그토록 굳세게 믿고 있었을까? 그건 혹시 현실에 대한 눈가림이며, 회피, 그러므로 결국 도망치는 것은 아니었을까.-56-57쪽

그런데 이제 언니가 돌아왔지만 나는 뭐랄까, 굵은 소금밭에 누워 있는 것처럼 온몸이 쓰리고 불편했다.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던 것이다. 시간이 한 번 흐르고 나면 누구도 예전으로,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예전츠로 태연히 돌아갈 수 없는 것이다. 아까 낮에 그랬던 것처럼 봉순이 언니가 아무리 빨간 잇몸을 드러내며 씨익씨익 예전의 웃음을 열번 웃어도 나는 이제 그녀의 웃음에 예전의 웃음으로 대꾸해 줄 수 없었다. 바로 그 사실이 내 몸뚱이를 쓰리게 했다.-123쪽

소년은 대답했다. "나는 정말 몰랐어요. 내가 얼마나 그 말을 사랑하고 그 말을 자랑스러워했는지 아시잖아요." 그러자 할아버지는 잠시 침묵한 후 말한다. "얘야,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어떻게 사랑하는지를 아는 것이란다."-1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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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하나의 진실
애너 퀸들런 / 디자인하우스 / 1996년 2월
절판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은 이제 없었다. 나는 오랫동안 간직했던 느낌을 더 이상 기억할 수 없게 되자 일종의 편안함을 느꼈다. 그리고 자유 또한 느꼈다. 감옥에서의 자유를.-11쪽

아빠는 랭혼 대학 영문과 학과장이었다. 아빠는 영국 취향으로 유명했다. 그의 영국 취향은 랭혼 여성 클럽이나 교회의 독서 클럽에서 <데이비드 카퍼필드>나 <오만과 편견>을 강의할 때면 대단한 인기였다.-16쪽

그처럼 일상적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지를 왜 미처 깨닫지 못했을까? 하지만 그처럼 정상적이고 일상적인 나날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때라야만 비롯 사람들은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닫는 모양이다.

=>모든 사람들이 겪는 인생의 오류인것 같습니다.-24쪽

블라인드나 레이스 커튼, 베네치아산 커튼을 단다는 것은 견딜 수 없는 노릇이었다. 내가 사는 고에서만큼은 생채기 난 마룻바닥 위로 매일 아침 희뿌연 새벽빛이 새어 들어오기를 바랐다. 늦은 오후나 이른 저녁 창문 밖으로 솟아오른 달님이 침실 마루에 놓인 간이 침대 위로 감미로운 은빛 물결을 은밀하게 보낼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35쪽

엄마는 식사와 같은 존재였다. 나는 내가 살기 위해 엄마를 필요로 했다. 그러면서도 엄마한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아빠는 디저트 같은 존재였다.-50쪽

그 순간 처음으로 나는 죽어 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나무는 싹이 틀 것이고, 꽃이피고, 그러다 말라서 낙엽을 떨구게 될 것이다. 죽은 사람은 그 어느 것 하나도 볼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불 가까이에 너무 다가선 느낌이었다. 내 가슴이 내려앉았다.

=>그래요. 가끔 죽음을 생각하면 가슴이 떨린답니다.-56쪽

제인은 엘리자베스를 존경하고 엘리자베스는 자신만을 존경하거든.

=>책 속의 어머니가 평가하는 '오만과 편견'이었습니다. 또 다른 시각으로 다가왔어요.
-66쪽

나는 <오만과 편견>에서 고개를 들고 마침내 이렇게 물었다. "왜 이 일을 저 혼자 해야 하죠?" "뭘 혼자 한단 말이냐, 그게 무슨 소리지?" 아빠의 부인을 왜 저 혼자 간병해야 하냐고요?" "내 아내라? 내 아내라? 저 여잔 네 엄마다. 난 바로 이 자리에 앉아서 저 여자가 널 돌보고, 널 위해 일하고, 널 위해 요리하는 걸 무수히 봐 왔어..." "그리고 아버질 위해서도요." 나는 수치심을 느끼지 않을 작정으로 말했다. "난 생계를 꾸려야 했다. 저당 잡힌 건 갚아야 했고. 치료비도 내야 했으니까. 네 엄마도 그걸 이해할 게다." "타협을 위미하는 건가요, 그럼?" "넌 그 점에 관해, 뭘 몰라." 아빠는 내 책을 집어 들고서는 눈썹을 치켜 세웠다. "이 책은 네가 수백 번도 더 읽은 책이잖냐?" "이 책은 아빠의 부인이 아빠와 결혼하면서 포기한 책이기도 해요."-75쪽

병원은 해변과 어느 정도 비슷하다. 한차례 파도가 몰려오면 이전의 고통과 통증, 분만과 회복의 발자국은 흔적도 없이 지워진다.-89쪽

인쇄물에는 '죽어 가는 사람의 권리 장전'과 모르핀에 대한 약물적 지침이 들어 있었다. 권리 장전에는 16개 항목이 있었고 '나에게는 죽기 전까지 살아 있는 인간으로 취급 받을 권리가 있다.', '나에게는 외롭게 죽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등의 지침이 적혀 있었다. 나는 마지막 항목까지 눈을 떼지 않았다."나에게는 나의 욕구를 이해해 주고, 내가 죽음을 직시하도록 돕는 데서 만족을 느낄 수 있는 다정하고, 섬세하고, 지각 있는 사람의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183쪽

"난 불구가 아니란 말예요. 잘 들어요 둘 다. 난 불구가 아니에요. 다만 몸이 허약할 뿐이죠. 기운도 없고. 기운이 다 빠져 버렸어요. 그래서 이런 게 필요한 거고."-196쪽

"엄마 의견에 동의하게 되었거든요. 이 책을 마지막으로 읽었던 건 '문학 작품 속의 여성들'이라는 강의에서였는데 그 과목을 맡은 젊은 여자 교수가 이 소설의 가장 큰 결점은 남자가 쓴 거라고 했어요. 안나는 애인을 위해 남편을 저버릴 수는 있었지만 아들을 절대로 저버릴 수 없었을 거라고요. 만일 여성 작가가 이 작품을 썼으면 그것을 알았을 거라고 말했거든요."

=>톨스토이의 '안나 까레리나'에 대한 해석이었습니다. 딸이 어머니를 이해하게 되기도 한 책이지요.-2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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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에 숟가락 하나 - MBC 느낌표 선정도서
현기영 지음 / 실천문학사 / 1999년 3월
구판절판


'난 그런 밥 안 먹어! 그게 무슨 밥이라? 감저(고구마) 꽁댕이지. 맨날 그런 것만 맥이구…….'

내 말에 나 스스로 놀라 눈이 휘둥그래졌는데, 아닌게아니라 그 말이 어머니의 아픈 데를 정통으로 찌른 모양이었다. 보통 성난 것이 아니어서 눈에 불이 철철 넘치는 듯했다.
'요새끼, 말하는 것 좀 보라! 그게 무슨 밥이라? 아이고 요것이 먹는 음식을 나무래는구나. 고생허는 에미 불쌍토 안해서 날 나무래여?'

그렇게 해서, 나는 기둥을 꽉 껴안은 채 징징 울면서 네댓 대 매를 견뎌낸 다음, 밥상머리로 끌려갔는데, 한판 난리굿을 피운 뒤라 밥맛이 각별히 좋았다. 물론 밥이 아니라, 고구마 세 자루에 김치 세 가닥이었지만, 역시 목구멍은 포도청이었나 보다. 아직도 울음이 남아 연방 쿨쩍거리면서 고구마를 씹는 나를 넌지시 바라보던 어머니는, 숟갈이 필요없는 식사인데도 자못 엄숙하게 예의 숟갈론을 들먹였다.

'그것 보라. 눈물은 내려가고 숟가락은 올라가지 않앰시냐. 그러니까 먹는 것이 제일로 중한 거다.'-80-81쪽

위대한 아침, 시련을 이겨낸 장하고 거룩한 신생의 빛, 아마도 나는 그러한 아침으로부터 진정한기쁨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깨달았을 것이다. 진정한 기쁨은 시련에서 온다는 것을. 신생의 찬란한 햇빛속에서 종횡무진 환희에 찬 군무를 벌이던 제비떼 그 눈부신 생명의 약동! 실의에 빠지기 쉬운 변덕스러운 성격의 내가 신통찮은 삶일 망정 그런대로 꾸려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러한 아침의 기억들 덕분이 아니었을까. 삶이란 궁극적으로 그러한 아침에 의해 격려받고 그러한 아침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것이리라-1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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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열쇠 - 청목총서 1
A.J.크로닌 지음, 신상웅 옮김 / 청목(청목사) / 1990년 6월
절판


그날 밤 프랜치스는 밤새도록 아버지와 어머니를 기다렸다. 그러나 끝내 두 사람은 돌아오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강물이 약간 줄어들었을 때, 서로 꼭 껴안은 두 사람의 시체가 모래톱 가까이의 물가에서 발견되었다.

->두 사람의 껴안고 죽었다는 말이 왠지 슬프지만 낭만적이게 느껴졌어요.-34쪽

"당신, 신부가 되기에는 너무 죄가 없어요. 틀림없이 크게 실패할 거야."-121쪽

타란트 신부는 창가에서 오랫동안 꼼짝도 하지 않고 있다가 이윽고 노트를 가만히 책상 위에 다시 올려 놓았다. 그리고 문득 이 일기를 쓰라고 명령한 것이 자기였음을 기억해 냈다. 그는 천천히 지금까지 들고 있던 편지를 아주 잘게 찢어 버렸다. 그 얼굴은 딴 사람처럼 변해 있었다. 냉혹한 빛이 사라지고 그 대신 깊은 자책감으로 그 얼굴은 고통스럽게 일그러지고 있었다. 그리고 곧, 관용과 사려 깊은 부드러운 빛이 퍼지기 시작하면서 그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가슴을 세번 쳤다.-122쪽

프랜치스는 가슴이 뭉클했다. 하느님! 그리고 선의와 관용! 이 두가지만 있다면 이 세상은 얼마나 근사할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 프랜치스 신부님으로 인해 교화된 사람의 말입니다. 맹목적인 신앙이 아닌 사랑과 실천이 함께 하는 신앙은 누구나 감동하게 하는것 같아요.-294쪽

"…… 그러나 그 당시는 당신의 진정한 생활이… 그 인내와 용기가 내게는 알수 없었던 겁니다. 종교의 좋고 그름은 그 귀의자의 종교 그룹에 따라 잘 알수 있어요. 신부님… 당신은 모범으로 저를 정복하셨습니다."-387쪽

"하느님이 내게 중국을 떠나 이곳으로 오도록 하신 것은…, 이것은 오직 이 작은 아이 때문인 것이다."-4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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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사노바의 맛있는 유혹 접시 위에 놓인 이야기 1
루트 봄보쉬 지음, 안영란 옮김 / 디자인하우스 / 2000년 8월
품절


"행복하든 혹은 불행하든, 삶은 인간이 가진 유일한 보물이다. 그러므로 삶은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그의 삶 또한 가치가 없다."-9쪽

아무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즐거움을 누릴 줄 아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을 제물로 삼는 '고통'과 수고'와 '포기'가 고급한 인간의 기쁨이라고 착각하는 사람이야말로 한심하기 짝이 없다.-21쪽

이제 나는 내 뒤로 멀어져 가는 아름다운 운하를 바라본다. 보트는 한 척도 보이지 않고, 오로지 소원하고 감사할 수밖에 없는 가장 화사한 날, 곤돌라를 타고 힘껏 노를 젓는 젊은 두 사고오가 내 뒤에 깔리는 잿빛 어둠과, 내가 조금 전까지 머물렀던 그곳의 많고 많았던 행복한 사연들이 순간 뇌리를 스쳤을 때 나의 감정은 신께 고야오디는 영혼을 덮쳤고, 내 안에서는 감사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들려왔다. 그때 갑자기 눈물이 솟구쳤다. 눈물이 나를 압도하는 기쁨에 질식될 것만 같은 가슴을 한바탕 시원하게 쓸어내렸다. 나는 꺼꺽 울었다. 마치 억지로 학교에 끌려가는 어린 아이처럼 그렇게 울었다."-109쪽

"너무 지나치게 자극적인 맛으로 미각을 돋우는 것은 우리 몸 속에 잔재하는 못된 취향이다. 예술도 마찬가징다. 아름다운 자연을 있는 그대로 느끼는 대신, 가식적인 장식에서 기쁨과 안위를 찾는 것 또한 조악한 취향이다."-1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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