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문명 진짜 주인은 이집트인…‘블랙 아테나Ⅰ’"

[동아일보]

◇블랙 아테나Ⅰ/마틴 버넬 지음·오흥식 옮김/880쪽·3만 원·소나무

출간 후 19년 만에 한국에 도착한 ‘블랙 아테나’는 서구 지성계에서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책이다.

‘검은 아테나 여신’이란 뜻의 제목부터 매우 선정적이다. 그리스신화의 지혜의 여신이며 서구문명의 상징인 아테네 여신의 기원이 검은 대륙 아프리카 이집트 여신(네이트 여신)이라는 뜻이다.

사실 동양인들의 평균적 이해로는 그리스·로마 문명이 그보다 선행한 이집트 문명의 영향으로 형성됐다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 책의 내용은 그런 문명의 전수 수준을 뛰어넘는다.

고대 그리스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식민지로 건설됐으며 우리가 익히 아는 그리스신화의 신들뿐 아니라 페르세우스와 헤라클레스 같은 영웅들조차 이집트계 혈통이라고 설명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그리스 문명이 아프리카계 이집트인 또는 셈족인 페니키아의 손에 의해 이뤄졌다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그리스와 이집트·페니키아의 관계는 현재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과 그 식민모국이었던 영국의 관계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이 책은 한발 더 나아가 그리스 문명의 이런 아프리카·중동 기원설이 1820년대 이후 식민주의와 인종주의의 득세와 실증사학을 내세운 서구학자들에 의해 조직적으로 은폐되고 날조됐다고 주장한다. 그 결과 그리스 문명이 아리안족의 독자적 문명으로 재탄생했다는 주장이다.

문제는 이런 주장이 음모이론의 하나로 치부할 수 없을 만큼 방대하고 촘촘한 이론을 통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책의 저자인 마틴 버넬은 영국 케임브리지대 동양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 코넬대 정치학과 교수를 거쳐 명예교수로 있는 정통학자다.

이 책의 집필을 위해 고대 이집트어, 페니키아어, 미케네어, 그리스어를 공부해 통달한 그는 4000년의 세월을 넘나들며 집적된 각종 역사학, 언어학, 고고학, 인류학 자료를 총동원한다.

예를 들어 고대 그리스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인들에 의해 다스려졌다는 1차 문헌은 바로 ‘역사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헤로도토스투키디데스의 책들이다. 비극 시인 아이스킬로스는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 테베를 세운 카드모스가 페니키아인이라고 적고 있다.

또 저자는 고대 그리스어의 4분의 1은 이집트어, 4분의 1은 고대 셈족 언어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하는 한편 미케네와 그리스에서 최신 고고학적 발굴 결과를 통해 그리스 문명의 독자성 신화를 무너뜨리고 있다.

전체 4권 기획의 첫 권인 이 책은 ‘날조된 고대 그리스(1785∼1985)’라는 부제가 보여주듯 근대 서구학자들의 역사 왜곡에 먼저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는 출간 이후 서구학계의 반발을 예상해 후속 책들을 그 반론 형식으로 펼치려는 의도에서다. 실제 1991년 출간된 2권은 문헌학과 고고학적 증거를 담았고, 올해 출간될 3권에는 그리스 고대 지명의 기원, 4권에는 그리스 신화 속 신과 영웅들 이름의 기원을 다룰 계획이란다.

저자는 신화를 신화로만 읽지 말고 역사의 일환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단군신화를 신화가 아니라 역사로 읽어야 한다는 한국 재야학계의 주장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그런 주장을 펼치기 위해 과연 이 책의 저자만큼 깊고 넓게 연구한 학자가 있었던가. 이 책의 내용에 대해 여전히 논쟁이 진행 중이지만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저자의 학문적 열정만큼은 감탄을 금할 수 없게 한다. 원제 ‘Black Athena’(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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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도시 만들고…‘도시, 인류 최후의 고향’

[동아일보]

◇도시, 인류 최후의 고향/존 리더 지음·김명남 옮김/544쪽·2만3000원·지호

도시는 오래된 시공간적 현상이다.

인류가 거둔 모든 성취와 인류가 겪은 모든 실패가 도시의 실체를 이루는 건물들에, 도시의 생명을 이루는 문화 속에 오롯이 담겨 있다. 미국의 시인 롱펠로가 찬미하듯 ‘(도시는) 돌에서 피어난 백합’이다.

도시는 탄생 이래 모든 물리적 힘과 문화적 힘을 거머쥐었다. 그 덕분에 인간 행동의 지평이 넓어지고 일상의 속도는 빨라졌다. 도시의 건물들, 기념물이나 기록보관소, 공공기관과 같은 물적 기반을 통해 인류는 한 세대의 문화 자산을 다음 세대로 넘겨주었다.

도시는 우리 인간의 존재를 규정하는 의식과 무의식의 영역에 깊숙이 영향을 미친다. 처칠의 말을 빌리자면 ‘인간은 도시를 만들고, 도시는 인간을 만든다’.

사람들이 음식과 문화, 안전을 도시에 기대면서부터 선택된 개인들의 화려한 무대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도시가 있었기에 미켈란젤로는 그림과 조각에 전념할 수 있었고, 뉴턴과 아인슈타인은 우주의 신비를 명상했으며, 히틀러는 세계 정복의 야심을 키웠다.

이 책은 도시의 역사와 도시의 본성, 인간과 도시가 맺어 온 상호작용의 내력, 미래의 기회와 위협을 다룬다. 도시란 무엇인가? 도시는 어떻게 자라나고 어떻게 유지되며, 어떻게 발전하는가? 어떻게 쇠퇴하고 소멸하며 또 어떻게 스스로를 치유하는가?

작가이자 포토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수메르에서 솟아난 인류 최초의 도시들에서 현재의 메갈로폴리스에 이르기까지 6000여 년의 시간을 가로지른다.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들, 제국의 첨병이던 로마의 도시들, 상인들의 손아귀에 포섭되어 간 중세 유럽의 도시들을 누빈다. 산업화된 런던, 풍운의 도시 베를린, 신고전주의적인 파리, 그리고 포스트모던한 로스앤젤레스…. 그 다양한 도시 풍경의 지리학적, 건축학적 형태를 날카롭게 포착한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도시 농업’에 대한 얘기가 아닐까. 도시에서 농사를 짓다니? 놀랍게도 현대 도시에서 가장 큰 단일 업종은 농업이다. 농업은 이미 수백만 도시 인구의 생명줄이 되었으며 빈곤층의 식량원이자 수입원으로 자리 잡았다.

모스크바에서는 전체 가구의 3분의 2가 먹을거리를 재배한다. 런던은 매년 약 1만6000t의 야채를 생산한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미국에서조차 전체 농업 생산가치의 3분의 1이 대도시에서 나온다.

이 책에서 생태학은 중요한 요소다. 저자는 도시를 지구환경이라는 큰 맥락에서 살펴보며 ‘생태발자국(ecological footprint)’의 개념을 도입한다.

오늘날 도시는 블랙홀에 가까워지고 있다. 자신의 몸피보다 훨씬 넓은 지역의 물자들을 남김없이 끌어와 먹어 치우는 위험한 기생물이다. 도시의 넓이는 지표면의 2%에 불과하지만 세계 자원의 75% 이상을 소비하고 있다.

면적 1500km²의 런던이 그 물자 수요와 쓰레기 처리를 위해 18만 km²에 달하는 토지를 필요로 한다. 런던 넓이의 120배! 이게 런던의 ‘생태발자국’이다. “2030년이 되면 인류의 3분의 2가 도시에서 살게 될 것이다. 이들 도시를 미국 수준으로 먹여 살리려면 지구만 한 행성이 세 개는 더 필요하다.”

성경은 바빌론을 ‘이 땅의 창녀들과 모든 가증스러운 것들의 어미’라고 묘사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상황이 나빠지면 도시를 탓하곤 한다. 도시는 생래적으로 나쁜 어떤 것이다? 저자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숱한 난제에도 도시는 살아남았으며 앞으로 더욱 많은 이의 고향이 될 것이라고 내다본다. 도시는 인간이 스스로의 문제들을 풀기 위해 고안해 낸 최고의 발명품인 것이다.

인류는 환경에 적응할 수 없을 때에는 환경을 맞게 바꾸었다. 청동의 발견은 석기시대의 딜레마를 풀었다. 그렇듯 미처 기대하지 못했던 수많은 발견이 인류의 발길을, 그리고 도시의 성장 과정을 수놓으면서 오랜 세월을 견디며 오늘에 이르렀다. 앞으로 도시의 생활방식은 좀 더 생태적인 모습으로 진화하지 않을까?

“세상은 완벽하지 않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에게 도시는 아직 중요하다. 그들에게 도시는 문제가 아니라, 여전히 해결책인 것이다!” 원제 ‘Cities’(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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聖者의 고백… ‘피에르 신부의 유언’

[동아일보]

◇피에르 신부의 유언/아베 피에르 지음·이효숙 옮김/213쪽·9000원·웅진지식하우스

한 나이 든 사람이 어느 날 피에르 신부를 붙들고 절망감을 토로했다. “눈이 멀어 더 이상 봉사를 할 수가 없어요.”

그러자 피에르 신부(사진)가 말했다. “그건 말도 안 됩니다. 당신 인생의 마지막 1분까지도 당신은 식기를 들고 오는 친구에게 미소를 지을 수 있을 것이고, 당신의 미소가 그날 하루 동안 그가 해낼 몫의 일을 할 수 있게 돕는다면 당신은 이미 봉사를 한 것입니다.”

‘살아 있는 성자’로 불리는 프랑스의 아베 피에르 신부. 집 없는 이들을 돌보는 엠마우스 공동체를 만들어 소외된 이웃을 위해 평생을 바쳐온 그에게 인생은 ‘인간들 사이에 난 길’이다. ‘우리가 예기치 못한 열매를 따기도 하고 우리가 모르는 그 누군가가, 그것도 한 사람이 아닌 여러 사람이 우리를 따게 될’ 길인 것이다.

이 책은 80여 명이 쪽지에 적어 보낸 삶의 고민들에 대한 피에르 신부의 응답이다. 올해 94세인 노신부는 교훈적 설교 대신 자신이 살아온 궤적과 혼란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고독, 신성함, 사랑, 나이 듦, 민주주의와 인류에 이르기까지 삶의 이유에 대한 진솔한 생각을 털어놓았다. 저자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 주는 일화가 있다. 엠마우스 공동체에 묵고 있던 20여 명이 굶게 되자 피에르 신부는 사람들 몰래 파리 대로에서 구걸에 나섰다. 그는 많이 힘들어 눈물을 흘리면서도 동시에 마음 깊은 곳에서 일종의 환희를 느꼈다고 고백한다.

“내 안의 악동 같은 면이 그것을 원했다. 아무도 하지 않는 일, 부르주아들이 아주 끔찍하게 여길 그런 짓을 할 수 있을 만큼 나 자신이 자유롭다고 느끼는 것 말이다.”

피에르 신부에게 고통과 사랑은 짝패다. 하나가 없으면 다른 하나도 없다. 살아 있음이 고통스러울수록 자유에 대한 그의 확신은 커져 가고, 죽기를 소망하면서도 매일 아침 희망을 꿈꾼다. 책의 행간마다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끌어안는 그의 모습이 드러나 보인다.

‘인생의 학교에는 선택의 여지가 많지 않다. 사랑하는 법을 배우든가, 괴물이 되든가.’ 그의 선택은 사랑이었다. 상실감을 달래 줄 타인에 대한 사랑에서부터 인간의 자격을 부정당한 사람들 편에 서서 분노하는 사랑까지. ‘산다는 것은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영원한 사랑과의 영원한 만남을 준비하기 위해 주어진 약간의 시간일 뿐이다.’ 원제 ‘Testament’(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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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용기’"

[동아일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용기/켄 윌버 지음·김재성 조옥경 옮김/565쪽·1만9000원·한언

《미국을 대표하는 트랜스퍼스널(transpersonal 자아초월) 심리학의 대가, 켄 윌버. 그는 아내 테리를 처음 만났을 때 두 사람이 여러 생을 거쳐 서로를 찾아왔다는 아주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그들은 한눈에 서로의 분신임을 알아보았다. 윌버와 테리는 단 한번의 포옹만으로 깊은 결속을 느꼈고, 바로 결혼했다. 그러나 신혼여행이 채 끝나기도 전에 테리는 말기 유방암 판정을 받는다. 암세포는 폐와 뇌까지 깊숙이 전이되어 있었다. 5년 동안 아내의 눈물겨운 투병과정을 지켜보아야 했던 윌버. 그는 테리를 떠나 보낸 뒤 그녀가 남긴 일기를 읽으면서 이 책을 써 내려갔다.》

티베트 불교의 진지한 수행자인 그는 묻는다. 사람은 왜 병에 걸리는가? 영원은 존재하는가? 삶과 죽음, 병과 치유의 의미는 무엇인가?

서양의 심리학과 철학, 동양의 불교와 힌두교, 그리고 기독교 신비주의 사상을 아우르며 심리치료와 영성과의 관계, 건강과 치료의 본질에 대해 궁구(窮究)한다.

테리의 몸과 마음에는 언제라도 비를 내릴 준비를 하고 있는 검은 구름처럼 암이 지평선에 걸려 있었다. ‘암 환자들에게 삶은 언제나 말기(末期)였다.’

병에 걸린 사람들은 몸의 질환뿐 아니라 사회적인 편견과 핍박도 함께 떠안는다. 고통에 시달리는 환자는 마치 도덕적 결함이 있는 것처럼 매도되곤 한다.

“왜 하필 나인가? 왜 나는 병에 걸렸나?”

“당신이 나쁜 짓을 했기 때문이야!”

“내가 나쁜 짓을 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지?”

“그것은 당신이 병에 걸렸기 때문이야!”

테리는 자주 흐느꼈다. “암의 원인이 환경이나 유전적 요인이 아니라 나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에 있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스스로를 비난하게 돼요. 마치 내가 지금껏 굉장히 잘못 살아 온 것 같은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어요….”

그러나 그녀는 시간이 흐르면서 열린 마음으로 고통과 두려움을 맞이하기 시작했다. 몸 안의 병을 껴안았고, 그 두려움을 기꺼이 가슴속에 담았다. 병에 나 자신을 허용한다! 그리고 병을 용서한다! 그것은 숭고한 고결함이었다. 경이로움이었다.

테리는 일기에 이렇게 썼다.

“지금부터 암은 내 삶의 일부가 될 것이다. 나는 내 병을 삶의 어두운 벽장 안에 그냥 처박아 두지 않을 것이다. 나는 죽음을 더욱 가까이 보기 위해서, 죽음을 준비하기 위해서 암을 이용할 것이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더 관대해지는 계기로 만들 것이다.”

윌버는 변함없이 테리의 곁을 지켰다. “켄(윌버)은 늘 새롭다. 나는 그를 완벽하게 신뢰한다. 신이 나를 사랑한다는 증거로, 그가 내 곁에 있다는 사실보다 더 명백한 것이 있을까?”

그리고 그녀는 떠나야 할 시간이 다가오자 사랑이라는 것은 붙드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놓아 버리는 것임을 배워 가고 있었다.

살기 위한 의지와 죽음을 받아들이는 일, 그 둘 사이에 균형이 필요했다. 존재의 의미는 놓아 버리는 것, 신에게 맡기는 것, 받아들이는 것, 믿는 것, 용서하는 것이었다. ‘신이란 용서 안에 있는 사랑이다.’

그리고 테리가 마침내 육신의 옷을 벗어야 했을 때 그녀는 조화로움이 삶의 모든 면에 스며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녀의 영혼에는 사랑과 접촉하지 않은 빈 공간이 없었으며, 그녀의 마음에는 단 한 점의 어두운 그림자도 없었다.

테리는 비로소 자신이 있고 싶어 하는 곳, 그녀 스스로 편안하게 느끼는 곳에 머물렀다. 테리는 지혜로 무르익었다.

“숭고한 괴테는 아름다운 글귀를 남겼다. ‘잘 익은 것들은 모두 죽고 싶어 한다!’ 이것이야말로 그녀의 전 생애를 요약하는 말이었다….”

원제 ‘Grace and Grit’(20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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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의 원형 창조한 동양의 세익스피어
[오마이뉴스 이준목 기자]
 
▲ 신조협려
ⓒ2006 김영사
최근에는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문학적으로 한 '교양'하시는 분들 앞에서 섣불리 무협이라는 장르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가는 '사회적 왕따'를 자처하기 십상이다.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무협이라는 것은 다분히 허황되고 과장된 설정으로 범벅이 된, 동네 만화방이나 도서대여점에 널려있는 싸구려 B급 문화의 유물로 인식된다.
    
그러나 무협은 알고 보면 가장 동양적인 가치관을 대표하는 대중문학의 한 장르다. 영화로도 제작된 <소오강호> <동방불패> <칠검> <무극>부터 현재 제작중인 한국영화 <중천>과 뮤지컬 <불의 검>같은 작품들의 뿌리는 모두 무협에 있다.
  
서양에서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포터> <나니아 연대기> 시리즈같은 작품을 보고 유치한 B급 문화로 취급하는 사람이 없듯, 무협은 동양의 신화와 역사, 사상에 그 뿌리를 둔 환타지 문학이다.

무협의 기원이라 할 수 있는 중화권의 수많은 작가들 중에서도, 오늘날 현대적인 무협 장르의 모든 원형을 만들어낸 거장으로 평가받는 이가 바로 김용이다. 양우생과 함께 신파 무협의 거두로 불리는 김용의 작품들은 저자의 풍부한 인문학적 소양을 기초로 방대한 스케일과 탄탄하면서도 긴박감 넘치는 구성, 매력적인 캐릭터가 넘쳐나는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겉보기에 하늘을 나르고 태산을 쪼개는 절대고수의 과장된 무용담으로만 인식되기 쉬운 장르지만 김용은 진정한 무협이란, 동양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가 전제되어 있어야함을 늘 강조하곤 했다. 인문학적 소양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작가들이 뼈대와 기교에만 의존하여 무협을 싸구려 대중문학으로 변질시킨 것과 달리, 김용의 작품은 그 자체로 하나의 훌륭한 문학적 텍스트이자 중국 고전문학의 교본으로 인정받아왔다.

 
<사조삼부곡> <녹정기> <천룡팔부> <벽혈검> 같은 김용의 대표작에서 보듯, 그의 소설들의 배경은 대부분 중국의 실제 역사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종종 인용되는 중국의 고전 시조나 서화에 대한 풍부한 지식, 당대의 사회상에 대한 정교한 고증과 묘사, 여기에 실존했던 역사적 사건들을 작품속에서 독특한 시각으로 재해석해내는 능력도 탁월하다.

 
▲ 사조영웅전
ⓒ2006 김영사
허구의 이야기 속에 실제 있었던 역사적 사건과 인물들을 절묘하게 배합시켜 내는 김용의 작품들은 동양적인 '팩션(팩트+픽션)의 최고봉으로 평가받는다.

대중문학적인 측면에서 김용의 작품이 가지는 최대의 매력은 보는 이에 따라 다양한 텍스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데 있다. 등장인물들이 역경과 시련을 거치며 당대의 영웅으로 성장해가는 이야기에는 무협물 특유의 장쾌한 어드벤처가 살아있고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어지는 사건 속에는 숨겨진 진실을 파헤쳐가는 스릴러의 긴박감을 보여준다. 그런가하면 오랜 세월에 걸친 남녀주인공들의 애절한 연애담은, 순도 높은 로맨스 소설로도 손색이 없다.

다양한 장르로서의 매력을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섬세한 묘사의 힘이다. 김용의 작품에서는 얼핏 소소해 보이는 장면에도 묘사에 많은 분량이 할애된다.

극중 시대와 공간 배경에 대한 구체적이고 정확한 형상화, 대결장면에서 벌어지는 다채로운 무공의 초식(항룡십팔장, 암연소혼장, 독고구검 등)과 고수들의 섬세한 움직임, 등장인물들의 만남과 엇갈림마다 벌어지는 미세한 감정의 변화를 놓치지 않고 따라가는 시선은 주-조연의 구분이나 사건의 크고 작음과 상관없이 소설의 감성을 풍부하게 만들어준다.

이야기에 힘을 불어넣어주는 매력적인 캐릭터들도 빼놓을 수없다. 김용의 작품 속 주인공들은 입체적이면서도 상당히 현대적인 인물로 묘사된다. 겉보기에는 영웅의 풍모를 지닌 주인공들도 알고 보면 완벽하지 않으며 저마다 치명적인 결함을 하나씩 지니고 있다. 그러나 그 결함이 인물의 개성을 훼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적인 매력을 덧입혀준다는 것이 김용 소설의 특징이다.

 
<신조협려>의 양과나 <소오강호>의 영호충은 영웅의 자질을 지니고 있지만 틀이나 형식에 얽매이는 것을 스스로 거부하고 개인의 선택과 행복을 무엇보다 중시한다는 점에서 자유분방한 현대의 젊은이를 닮았다. 우유부단한 <의천도룡기>의 장무기나 반영웅에 가까운 <녹정기>의 위소보같은 인물들은 무협물의 전형적인 영웅과는 분명 거리가 있음에도 대단히 흥미로운 캐릭터로 나타난다.

김용의 작품에서 언제나 빠지지 않는 것이 정파와 사파의 대립이다. 대의명분을 중시하는 정파와 기존질서에 저항하는 사파간의 대립은 얼핏 보면 전형적인 선악구도로 보이지만, 작품 속에서 이 관계는 언제나 역전된다.

때로는 정파가 사파보다 더 악랄하고 사파가 오히려 정파보다 정정당당하다. 그리고 주인공들은 언제나 정파와 사파의 경계선에 서서 어느 편에 서는 것이 정도인지를 고뇌하는 인물들로 나타난다. 현대적인 의미에서 보수와 진보의 모습을 상징하는 것 같기도 하는 이런 설정들은 김용의 작품을 종종 정치적인 텍스트로 읽혀지게 만들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그의 무협소설 역시 보수적인 중화주의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작품 속에서 강조되는 정의의 기준이 결국 중국인 위주의 내셔널리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오히려 철저한 한족 우월주의 가운데 외부 민족에 대한 편견과 배타적 시선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점은 뛰어난 작품 자체의 완성도에 불구하고 한계로 지적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60~80년대에 주로 만들어졌던 그의 무협소설들은 반세기가 되어가는 최근에도 여전히 중화권과 한국에서 널리 읽혀지는 무협의 고전이자, 오늘날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 애니메이션 등 대중문화의 다양한 장르로 변주되고 있다.

팔순의 나이에도 여전히 식지 않는 만학의 열정을 보여주고 있는 김용은 최근 무협소설 절필을 선언한 상태지만 여전히 많은 마니아들에게 무협의 거장으로서 절대적인 지지와 사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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