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독 - 10인의 예술가와 학자가 이야기하는, 운명을 바꾼 책
어수웅 지음 / 민음사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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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의 독서 기록을 읽는 것은, 마치 요리 프로그램을 보는 것과 비슷하달까.

독서를 즐기는 사람은 남이 뭘 읽는가도 궁금하다.

어수웅이라는 저자는 처음 알았지만, 책의 콘셉트가 마음에 와 닿아서 구입한 <탐독>,

10명의 예술가들이 말하는 '내 인생을 바꾼 책'으로 저자가 인터뷰를 하고 자유롭게 기술한 방식이다.

인터뷰를 오랫동안 해온 사람이어서인지 흡입력 있게 잘 읽혔다.


관심 있는 작가인 김영하, 은희경, 정유정, 김중혁이 포함되어 있다.

왜 정유정의 문장은 그러한가. 최근 <종의 기원>을 e-book으로 읽다가 거친 문장 때문에 포기했는데,

인터뷰를 읽으니 추구하는 바가 다르다는 것은 알겠더라.


어느 시기에 어떤 책을 읽는가-가 인생을 바꿀 수도 있다.

그 당시에는 그걸 잘 인식하지 못하겠지만, 인생을 살고 나서 돌이켜보면 알게 된다.

내 인생을 바꾼 책은 무엇인가. 그런 질문을 해보고 싶어졌다.


책의 디자인도 트렌디하게 잘 했는데, 얇지만 책값은 14,500원.

그런데 겉표지가 두 장이다. 이것은 출판사가 의도한 것인가, 실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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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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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는 내가 대학에 다니던 시절, 새로운 세대의 표상 같은 존재였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는 간명하면서도 텅 빈 느낌의 쿨한 소설이었고

대중적인 <노르웨이의 숲(상실의 시대)>는 사건이었다.

나는 <댄스댄스댄스>라든가 <해변의 카프카>를 거쳐 최근작 <1Q84>까지

장편소설들을 좋아하지만, 그의 필력은 에세이에서 더 빛나기도 한다.

 

이번에 나온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는 하루키 자신이 소설을 쓰는 방식을

오픈 소스로 풀어놓은 듯한 느낌이었다.

왜 그의 문체가 산뜻한 무국적의 번역투의 문체가 되었는지도,

꾸준히 지치지 않고 계속해서 장편소설을 쓰는 비결은 무엇인지도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비결을 안다고 해도, 따라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고.

 

머리가 너무 좋은 사람은 소설 쓰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분석에서 괜히 위안을 받았고,

소설을 쓰고 남은 잉여 콘텐츠로 에세이를 슬렁슬렁 쓴다는 내용도 흥미로웠다.

 

 

너무 머리 회전이 빠른 사람, 혹은 특출하게 지식이 풍부한 사람은 소설 쓰는 일에는 맞지 않을 거라고 나는 항상 생각합니다. 소설을 쓴다는-혹은 스토리를 풀어간다는-것은 상당히 저속의 기어로 이루어지는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중략)
소설가는 많은 경우, 자신의 의식 속에 있는 것을 ‘스토리’라는 형태로 치환해서 표현하려고 합니다. 원래 있었던 형태와 거기서 생겨난 새로운 형태 사이의 ‘낙차’를 통해서. 그 낙차의 다이너미즘을 사다리처럼 이용해서 뭔가를 말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건 상당히 멀리 에둘러 가는, 손이 많이 가는 작업입니다.
20p

발상을 근본적으로 전환하기 위해 나는 원고지와 만년필을 일단 내려놓기로 했습니다. 만년필과 원고지가 눈앞에 있으면 아무래도 자세가 ‘문학적’이 되어버럽니다. 그 대신 붙박이장에 넣어두었던 올리베티 영자 타자기를 꺼냈습니다. 그걸로 소설의 첫 부분을 시험 삼아 영어로 써보기로 했습니다. (중략)
내용을 가능한 한 심플한 단어로 바꾸고, 의도를 알기 쉽게 패러프레이즈 하고, 묘사에서 불필요한 군더더기를 깎아내고, 전체를 콤팩트한 형태로 만들어 한정된 용기에 넣는 단계를 거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몹시 조잡한 문장이 되어버립니다. 하지만 그렇게 고생해가며 문장을 써 내려가는 동안에 점점 내 나름의 문장 리듬 같은 것이 생겨났습니다.
49p




주변 인물들이나 어떤 일에 대해 사사삭 콤팩트하게 분석해서 ‘그건 이런 거야’ ‘저건 이러저러해’ ‘걔는 이러저러한 녀석이야’라는 식으로 단시간에 명확한 결론을 내놓는 사람이 있는데, 이런 사람은 (내 의견으로는 그렇다는 얘기인데) 소설가로는 그리 적합하지 않습니다. 어느 쪽인가 하면 평론가나 저널리스트가 더 적합하겠지요
120p

소설 쓰는 시기가 일단락되면 한 번도 연 적이 없는 서랍, 쓸 곳이 없었던 소재들이 꽤 많이 나와서 그런 것(말하자면 잉여물자)을 이용해 한 번에 몰아서 에세이를 쓰기도 합니다. 하지만 나에게 에세이란 굳이 말하자면 맥주 회사가 출시한 캔 우롱차 같은 것, 이른바 부업입니다. 정말로 좋은 소재는 다음 소설=본업을 위해 챙겨둡니다. 그런 소재가 그득하게 모이면 ‘아, 소설 쓰고 싶네’라는 기분도 저절로 솟아납니다.
12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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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허벅지 다나베 세이코 에세이 선집 1
다나베 세이코 지음, 조찬희 옮김 / 바다출판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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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주관적인 센 언니의 사랑과 연애와 남자에 대한 유쾌한 에세이. 다나베 세이코 소설을 좋아하면 읽을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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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듯 천천히
고레에다 히로카즈 지음, 이영희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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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를 좋아한다.

가장 최근에 본 영화는 요시다 아키미 만화 원작의 <바닷마을 다이어리>였는데

일본의 풍경(사람과 일상을 포함한)을 저렇게 우아하고 산뜻하게 묘사하다니 감탄했다.

그 전에 본 영화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였다. 펑펑 울었다.

병원의 실수로 친자가 뒤바뀐 것을 초등학생 때까지 키우고 난 후에야 알게 된 가족 이야기다.

<아무도 모른다>도 보았는데 무책임한 엄마 없이 살아가는 4남매 이야기.

<어쩐지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과 <걸어도 걸어도>는 위시 리스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에세이집이 문학동네에서 발간되었는데

제목은 <걷는 듯 천천히>.

제목이 그의 영화 철학을 대변해 주는 듯하다.

그의 영화 세계를 조금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구절들도 있었고

출연 배우들에 대한 잡담 같은 느낌의 글들도 있어서 재미있게 읽었다.

왜 그가 그런 담백한 영화들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확인할 수 있어서 좋았다.  

 

 

가능하면 영화에서도 슬픔이나 외로움 같은 감정을 직접 말하지 않으면서 표현해보고 싶다. 문장에서의 ‘행간’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면서, 보는 이들이 상상력으로 빈 곳을 채우는 식의 영화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영화를 만들고 있다.
19p

예나 지금이나 내 영화는 다큐멘터리 같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내가 TV 다큐멘터리로 이 일을 시작한데다, 연기 경험이 별로 없는 모델이나 어린이를 주인공으로 삼아 영화를 찍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도 틀린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작가란 세계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부자유를 받아들이는 존재라는 체념적인 태도, 그리고 그런 부자유스러움을 재미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감각. 이것이야말로 다큐멘터리적으로 보인다고 나 스스로는 분석한다.
34p

어떤 가정에든 다른 집과는 구별되는 그 집만의 약속이나 습관이 있기 마련이다. 욕조에 들어가는 방법이라든지, 수박이나 딸기를 먹는 방법이라든지. 딴 집에서 보면 ‘엇? 그런 식이야?’ 하고 놀라는 경우도 자주 있다. 우리 가족만의 남다른 가풍은 사진을 찍는 방법이었다. 고레에다 집안에서는 옛날부터 밖에서 사진을 찍을 때는 남의 차 앞에서 찍는다고 정해져 있었다. 물론 주인에게 미리 양해를 구하지는 않는다. 그러고서 마치 자가용인 양 자세를 잡고 찍는 것이다.
6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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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 (2015년판) - 김영하와 함께하는 여섯 날의 문학 탐사 김영하 산문 삼부작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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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에서 내고 있는 김영하 산문 삼부작이 <읽다>로 완결되었다.

보다-말하다-읽다 세 편 중에서

문학의 독자에게는 가장 충족감을 주는 책이었다.

부제 '김영하와 함께 하는 여섯 날의 문학 탐사'라는 주제에 걸맞게

소설(이야기)의 본질과 매력과 존재 이유를, 작가 특유의 간결한 논조로 쓰고 있다.

 


여기서 다뤄진 텍스트들도 익숙하지만 매력적이다.

중고교 시절 탐독했던 세계문학전집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다시 읽으면 또 어떤 새로움을 던져줄지 궁금한.


오디세이아
오이디푸스왕
돈키호테
보봐리부인
롤리타
죄와 벌
파리대왕

소송
이방인
프랑스 중위의 여자
본격소설 (미즈무라 미나에)

셜록 홈즈


꿈에 대해 다뤘다는 소설 <하자르 사전>은 생소하기에 읽을 리스트로 추가해둔다.

 

무엇보다도 독서는 우리 내면에서 자라나는 오만(휴브리스)와의 투쟁일 겁니다. 저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와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왕>을 읽으며 `모르면서도 알고 있다고 믿는 오만`과 `우리가 고대로부터 매우 발전했다고 믿는 자만`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독서는 우리가 굳건하게 믿고 있는 것들을 흔들게 됩니다. 독자라는 존재는 독서라는 위험한 행위를 통해 제 믿음을 흔들고자 하는 이들입니다.
31p

우리가 소설을 읽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헤매기 위해서일 겁니다. 분명한 목표라는 게 실은 아무 의미도 없는 이상한 세계에서 어슬렁거리기 위해서입니다. 소설은 세심하게 설계된 정신의 미로입니다. 그것은 성으로 향하는 K의 여정과 닮았습니다.
104p

독자들에게 문학작품 속의 등장인물은 각각의 유형에 따라 매우 일관성 있는 성격을 지닌 사람으로 보이기 마련인데, 사람들은 흔히 친구들에게도 그런 일관성을 기대하는 경향이 있음을 종종 확인할 수 있다. (중략) 그래서 늘 별 볼 일 없는 교항곡만 작곡하던 X가 느닷없이 불멸의 명곡을 내놓는 일은 없어야 한다. Y는 절대로 살인을 저지를 사람이 아니다. Z는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를 배신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렇게 마음 속으로 모든 것을 정해두고 어떤 사람이 그대로 고분고분 행동했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만족감을 느끼는데, 자주 만나지 못하는 사람일수록 만족감도 커진다. 반면에 우리가 판단한 운명에서 벗어나버린 경우는 파격을 넘어 파렴치하다는 생각까지 든다. <롤리타> 中에서
110p

소설의 역사는 괴물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중략) `단순하게 나쁜` 인물의 이야기를 오래 읽어줄 사람은 없습니다. `복잡하게 좋은` 사람의 이야기는 그보다는 흥미롭겠지만 `복잡하게 나쁜` 사람의 이야기만은 못할 것입니다.
173p

만약 어떤 형벌을 받게 되어, 읽기와 쓰기 둘 중 하나만 해야 한다면 뭘 선택하게 될까를 생각해본 적이 있다. (중략) 내 경우에는 완벽하게 행복한 풍경에는 반드시 두 가지가 있어야 한다. 재미있는 책과 차가운 맥주. 그중에서도 책이다. -작가의 말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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