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왕성에서 잘 자요 2
쿠마노마타 카기지 지음, 정은서 옮김 / 대원씨아이(만화) / 2018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마왕성에 잡혀간 공주가 도망치는 일에는 관심 없고 오로지 숙면을 취하는 방법을 찾는 일에만 골몰한다면? 쿠마노마타 카지기의 수면 판타지 코미디 만화 <마왕성에서 잘 자요>는 어느 날 갑자기 마왕성에 잡혀간 공주 스야리스가 마왕성의 감옥 안에서 보다 편안하게 숙면할 방법을 찾는 과정을 담고 있다. 





2권에서 스야리스 공주는 숙면을 부르는 최고의 조력자라고 할 수 있는 목욕을 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한다. 왕궁에서 지내던 시절에는 목욕할 때도 시녀 10명은 기본으로 대동했던 스야리스 공주. 하지만 마왕성에 잡혀온 지금은 몸이 간신히 들어가는 크기의 작은 욕조에서 목욕을 하고 있다(목욕이 허락되는 일 자체가 우대라는 인식은 없다 ㅎㅎ).


그런데 그 작은 욕조마저도 스야리스 공주의 주먹에 산산조각 나는 바람에 스야리스 공주는 망가진 욕조를 대신할 새로운 욕조를 찾아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있는 것이라고는 오로지 마물뿐인 마왕성의 감옥 안에서 스야리스 공주는 대체 어떻게 자신의 기대를 만족시킬 만한 욕조를 만들 수 있을까. 그 방법이 꽤 신박하니 궁금한 독자는 반드시 책으로 확인하기를 바란다.





여름밤 수면의 질을 확 떨어뜨리는 주범인 더위와의 사투도 재미나게 그려져 있다. 안 그래도 남들보다 훨씬 수면의 질에 민감한 스야리스 공주는 열대야와의 사투를 벌이다가 배식을 하러 온 마물로부터 "매년 여름이 되면 아이스 골렘을 필두로 얼음 에리어의 마물들이 '성 안의 마그마를 얼음물로 만들자'면서 화염 마물과 항쟁"을 벌인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마왕성 안의 얼음 에리어, 빙상의 누각을 알게 된 스야리스 공주는 언제나처럼 아주 쉽게 감옥을 빠져나가(이대로 탈옥한다는 인식도 없다 ㅎㅎ) 한여름 밤의 더위를 식혀줄 최고의 냉방 장치는 물론, 뜨거운 속까지 시원하게 식혀줄 맛있는 음식까지 '득템'한다. 남극보다 춥다는 한국에 있는 나로서는 보기만 해도 온몸이 으슬으슬 떨리지만 ㅎㅎ





<마왕성에서 만나요> 2권에는 초판한정부록으로 저자 친필 코멘트가 담긴 PP 엽서와 미니 스티커가 동봉되어 있다. <마왕성에서 만나요>의 마스코트인 데비 악마가 그려진 PP 엽서가 아주 귀엽다. <마왕성에서 만나요>를 사랑하는 팬들에게 뜻깊은 선물이 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왕성에서 잘 자요 1
쿠마노마타 카기지 지음, 정은서 옮김 / 대원씨아이(만화) / 2018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표지만 봤을 때는 요즘 유행하는 이세계 판타지 만화인 줄 알았는데, 막상 읽어보니 이세계 판타지 만화를 가장한 코미디 만화였다. 거창한 세계관이나 웅장한 스토리 라인보다는 주인공의 엉뚱한 발상 또는 행동과 그로 인해 벌어지는 코믹한 상황에 열광하는 독자라면 이 만화가 분명 마음에 들 것이다(물론 나도 마음에 들었다 ^^).





옛날 옛적, 인간과 마물이 뒤섞여 존재했던 시대. 안정을 위협하는 마왕이 땅속에서 나타나 말했다. "인간 나라의 공주는 내가 데려간다. 되찾고 싶다면 이 세상의 지배권을 전부 마물에게 넘겨라." 공주가 납치되자 국민들은 시름에 잠겼고, 나라에서 제일 가는 용사는 공주가 겪고 있을 고생을 상상하며 마왕군을 무찌르러 가겠다고 호기롭게 나선다. 


그런데 웬걸. 국민들의 걱정과 달리 스야리스 공주는 잠자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어서 몹시도 따분하고 지루한 상태다. 마왕은 인질이라는 이유로 공주를 해칠 마음이 요만큼도 없고, 마물들은 의외로 무섭지 않은 데다가 삼시 세끼 꼬박꼬박 나오는 식사도 맛있다. 단 하나, 공주를 괴롭히는 것이 있었으니 잘 시간은 넉넉한데 잠이 잘 오지 않는다는 것!





이때부터 공주는 숙면을 위한 사투에 돌입한다. 첫 번째 미션은 숙면의 질을 낮추는 베개를 바꾸라! 공주는 마왕성에 있는 버석버석하고 덜 푹신한 베개 대신 왕궁에서 쓰던 푹신하고 부드러운 베개를 직접 만들기로 결심한다. 때마침 공주가 먹을 음식을 가져온 마물 두 마리가 유난히 푹신하고 부드러운 털을 가지고 있는 걸 공주가 발견하는데...! 


이어지는 두 번째 미션은 얼굴에 자국을 남기지 않는 안대 만들기, 세 번째 미션은 마수들의 코 고는 소리를 막아주는 조용한 잠자리 찾기이다. 하나같이 잠 좀 자봤다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공감할 만한 소재들 ^^ 공주가 숙면을 이루지 못하고 '괴로워!'라고 속으로 외치는 장면은, 일본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에서 주인공 이노카시라 고로가 '배고파!'라고 외치는 장면에 비견할 만큼 강렬하(고 우습)다.





<마왕성에서 잘 자요> 1권에는 초판한정부록인 저자 친필 코멘트가 담긴 PP 엽서와 미니 스티커가 동봉되어 있다. 특히 저자 친필로 '근하신년. 한국어판 구입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쓰여 있는 PP 엽서는 한국 팬들에게 아주 특별한 선물이 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극채의 집 1
빗케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8년 1월
평점 :
품절




서양풍 판타지 만화보다는 동양풍 판타지 만화를 좋아한다. 그런 나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하는 만화를 만났다. 아름다운 색을 띤 머리카락을 지닌 소년들의 우정과 사랑을 그린 만화 <극채의 집>이다. 


깊은 산속에 색채가 넘치는 사원이 있다. 아름다운 색채는 사원에 살고 있는 아이들의 머리카락에서 나온다. 이 나라의 국민들의 머리카락은 기본적으로 갈색이지만, 극히 드물게 선명한 색을 지닌 아이가 태어난다. 그런 아이가 태어날 경우 부모는 반드시 사원에 아이를 맡겨야 한다. 사원에서는 아이들의 머리카락을 정기적으로 잘라서 옷감을 만드는 직인이나 예술가가 사용하는 안료로 만든다.





사원에 모여 있는 아이들의 머리카락 색은 대체로 푸른색 계열과 붉은색 계열, 노란색 계열 중에 하나다. 가장 희귀한 색은 흰색과 검은색. 하지만 오랫동안 흰색 또는 검은색 머리카락을 지닌 아이는 발견되지 않았다. 덕분에 파란색 머리카락을 지닌 텐란은 사원의 대표일 수 있었다. 사원의 대표는 머리카락을 잘라서 본존에게 바치는 역할을 한다. 내색은 안 했지만 텐란은 자신이 대표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검은색 머리카락을 지닌 카라스바가 사원에 들어온다. 이곳의 아이들은 대체로 철들기 전에 사원에 들어오기 마련인데, 카라스바는 철이 들고 나서야 머리색이 발각되었고 강제로 사원에 보내졌다. 텐란은 카라스바가 모두의 관심을 독차지하는 것도 모자라 사원의 대표까지 맡게 되어 화가 난다. 자신의 머리카락 색이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지 알지 못하는 카라스바가 답답하다.





카라스바는 카라스바대로 어느 날 갑자기 머리카락 색이 발각되어 강제로 사원에 끌려왔으니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카라스바는 하나뿐인 아들과 헤어지고 싶지 않았던 어머니의 뜻에 따라 사람들의 눈을 피해 여기저기로 이사 다니고 사시사철 모자를 푹 눌러 쓰고 다녀야 했으니 그 또한 쉽지 않은 삶이었으리라. 영문도 모른 채 화만 내던 카라스바는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사원에서 하는 일을 익히고, 자신의 머리카락이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지를 깨달아 간다. 


머리카락을 기르면 나라에서 밥도 주고 집도 주고 평생 쓸 돈까지 준다니. 이보다 더 좋은 팔자가 있을까 싶지만, 사원에 갇혀 머리카락만 기르고 다른 경험은 못한 채 꽃다운 시절을 다 흘려보낸다면 답답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할 것 같다(어떤 의미에선 아이돌과 비슷한 처지인 듯). 이들의 운명이 찬란해 보이기도 하고 야속해 보이기도 하고... 어느 쪽일지는 다음 이야기를 봐야 알 듯. 어서 2권이 나왔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총좌의 우르나 2
이즈 토오루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8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치바 테츠야상 대상을 수상한 일본 만화계의 귀재 이즈 토오루의 신작 <총좌의 우르나> 2권이 출간되었다. 얼마 전 이즈 토오루의 단편집 <변경에서>와 <총좌의 우르나> 1권을 읽고 이즈 토오루의 세계관에 매료되었는데, <총좌의 우르나> 2권은 내가 반한 매력이 일순간의 환상이 아니었음을 확인하기에 충분했다. 





이야기의 배경은 1년 내내 눈보라가 치는 섬 리즐. 현재 리즐은 패권국가 레즈모어 편에 가담해 적국인 에콜과 전쟁 중이다. 리즐에서 한참 떨어진 평화로운 마을에서 나고 자란 고아 우르나도 리즐 군에 입대한다. 우르나가 군인이 되기로 한 건, 우르나의 가장 친한 친구의 남편이 전사한 까닭이다. 인간인지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잔인하게 망가진 시체를 본 순간, 우르나는 복수를 결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리즐의 최남단에 위치한 케니티 기지 소속 저격수가 된 우르나는 입대 첫날부터 실전에 투입되고, 방금 전까지 웃고 떠들던 아군 병사가 적군에 의해 갈가리 찢기는 것을 두 눈으로 본다. 심지어 그날 밤 우르나는 아군 소속의 생태계 연구자 라트프마가 인간이 아닌 이형의 존재인 즈드와 몸을 섞는 광경을 목격한다. 그 바람에 우르나는 라트프마의 인질이 된다.





2권의 첫 에피소드 <신뢰>는 우르나가 고향인 트롭에서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던 시절의 모습을 담고 있다. 우르나는 고아임에도 '난 사랑을 받으면서,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 자랐다.'라고 확신할 만큼 행복한 유소년기를 보냈다. 남자아이들과 어울려 놀 때도 몸을 사리지 않았다. 남자아이들이 다리에서 뛰어내리면 우르나도 뛰어내릴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 우르나는 목숨이 위험한 상황이다. 라트프마와 인간의 구강을 빼닮은 이형의 존재 즈드에게 생명을 위협받고 있다. 두려워하는 우르나에게 라트프마는 "너희들은 환상과 싸워야만 하는 불쌍한 모르모트."라고 말한다. 추악한 건 즈드가 아니라, 즈드를 추악하다고 말하는 레즈모어인이라고 말한다. 레즈모어인의 말에 속아 전쟁터에 온 우르나도 예외는 아니다.





케니티 기지에 오기 전부터 즈드는 물론 에콜을 적대시했던 우르나로선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우르나를 찾는 아군 병사들의 발소리가 가까워질수록 라트프마의 괴롭힘은 정도가 심해진다. 과연 라트프마가 늘어놓는 이야기는 진실일까. 우르나는 무사히 라트프마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 전쟁의 진실을 알지 못한 채 전쟁에 투입되어 총을 들어야 하는 우르나의 처지가 딱하다. 


한때는 SF 만화의 설정이나 맥락을 이해하기가 힘들어서 SF 만화를 즐겨보지 않았는데, 언제부터인가 SF 만화의 매력은 독자가 설정이나 맥락을 전혀 알지 못한 채 오로지 작가가 제시하는 단서를 따라가며 추측하고 스스로 줄거리를 짜 맞추는 데 있음을 깨달았다. <총좌의 우르나>는 그런 SF 만화 특유의 재미를 느끼기에 맞춤한 작품이다. 어서 3권이 나왔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의 화원 - 출간 10주년 기념 개정합본판
이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7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역사 책에는 왜 여자가 없을까?' 얼마 전 이런 의문을 제기하는 책 한 권을 읽었다. 옛날 옛적에는 여자가 존재하지 않았을까? 여자는 남자보다 지능이 열등할까? 여자는 남자보다 신체 능력이 떨어질까? 여자는 남자보다 게으르고 무기력할까? 그렇지 않고서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역사 책에 등장하는 여자의 수가 남자의 수에 비해 월등히 적을 리가 없다는 저자의 말은, 여자라는 이유로 사회로부터, 역사로부터 배제되고 감춰지고 삭제된 여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한다. 


이정명의 소설 <바람의 화원>을 출간된 지 10년 만에 개정합본판으로 뒤늦게 읽으며 우리 역사에도 여자라는 이유로 감춰지고 삭제된 위인이 부지기수이겠다는 깨달음을 뒤늦게 얻었다. 소설의 중심인물은 불타는 예술혼을 지녔으나 당대의 관습과 화풍에 당당히 맞서지 못하고 답답증을 느끼며 살아야 했던 도화서 화원 김홍도와 세상을 놀라게 할 만한 재능을 가졌지만 도발적인 성격 탓에 매번 세파에 부딪히는 신참 화원 신윤복. 작가는 조선을 대표하는 두 화가의 작품과 그들에 대한 기록으로부터 역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남겼으나 끝내 역사에서 가려진 한 인간을 상상했다. 


김홍도와 신윤복은 같은 화원 출신이고 비슷한 화풍을 익히고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음에도 불구하고 닮은 점보다 다른 점이 눈에 띈다. 김홍도는 조선의 르네상스기인 영조와 정조 시대에 활약했고, 20대에 이미 영조의 어진과 정조(당시에는 왕세자)의 초상을 그린 만큼 생애에 관한 기록이 소상한 편이다. 반면 신윤복은 조부와 부친의 뒤를 이어 도화서 화원이 되었지만 속된 그림을 그린다는 이유로 쫓겨났다는 기록만 있을 뿐, 생애에 관해서는 알려진 것이 드물다. 김홍도는 서민의 일상을 담은 그림을 많이 그린 반면, 신윤복은 양반의 위선과 모순을 고발하는 그림을 많이 그렸다. 


작가는 김홍도와 신윤복이 당대의 그 어떤 사람들보다도 가까웠을 법 하지만 끝내 멀어진 까닭을 신윤복의 대표작 중 하나인 <미인도>를 통해 상상했다. 작가의 상상 속에서 신윤복은 평생 그림자로 살았던 사람이다. 출신을 부정해야 했던 사람이다. 진짜 이름을 감춰야 했던 사람이다. 길러준 아버지와 집안의 영달을 위해 그림 그리는 기계가 되어야 했던 사람이다. 왕위를 둘러싼 다툼과 생부가 얽힌 살인 사건을 해결하고도 그 공을 인정받지 못한 사람이다. 살기 위해 죽어야 했던 사람이다. 죽어야 하는데 죽을 수 없어서 사라진 사람이다. 


소설의 대단원에서 윤복의 진실을 알게 된 홍도는 윤복의 그림이 당대의 그 어떤 화가의 그림보다 아름답고 솔직할 수밖에 없음을 인정한다. 그림자로 살아야 하는 윤복은 타고난 아름다움을 뽐내지도 못하고 가슴에 맺힌 말을 솔직하게 꺼낼 수도 없었다. 오로지 그림 안에서만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되고 자신이 이 세상에 태어난 의미를 되새겼다. 홍도는 오래전 "그린다는 것은 무엇이냐?"라고 윤복에게 물었을 때, 윤복이 "그린다는 것은 그리워하는 것입니다. 그리움은 그림이 되고, 그림은 그리움을 부르지요."라고 답한 까닭을 그제야 이해한다. 윤복의 눈길이 머무른 곳은 정향이 아니라 정향일 수 없는 자기 자신임을 알고 가슴을 친다. 


"그림이 뛰어난 것은 그리는 자의 사랑이 깃들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누군가를 진정 사랑한다면 그 눈에는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이 보일 것입니다." (이정명, <바람의 화원>, 479쪽)


홍도의 눈에 비친 윤복은 비운을 타고난 천재 화가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윤복은 비극적인 운명을 뛰어넘어 누구보다 강하고 자유롭게 살다 간 예술가였다. 여자는 아버지의 딸, 지아비의 아내, 아들의 어머니로만 존재할 뿐 여자 자신으로는 존재할 수 없었던 시대에 그 어떤 것도 되지 않기를 선택했다. '한 나라의 국모조차 변변한 초상을 지니지 못하는' 세상에서 윤복은 직접 그린 초상 한 폭을 남겼다. 홍도는 자신이 윤복을 놓아주었다고 여겼을지 모르지만, 윤복은 언제라도 떠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아니, 그 어떤 곳에도 머무르지 않았다. 스스로 있기로 한 곳이 아닌 한. 


자신의 초상을 그리고도 그것이 자신이라고 말할 수 없었던 사람. 그림 속에서만 비로소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될 수 있었던 사람. 역사 책에는 그 사람의 실체를 추측할 만한 단서가 남아 있지 않지만, 역사 책에 남지 않은 진실이 그가 남긴 작품 속에 남아 있지는 않을까. 우리는 그것을 영영 보지 못하거나 보고도 못 본 척하고 있지는 않을까. 허구인지 사실인지 분간하기 힘든 이 소설 너머에서 윤복은 울고 있을까 웃고 있을까. 내가 누구인지 알고 싶거든 내가 그린 그림을 보라는 말이 들리는 것만 같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깐도리 2018-01-26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ㅓㅇ판 나왔나 봐요..바람의 화우너 세번 읽고 드라마 보고, 바화 팬들이 만든 책도 가지고 있어요... 저는 바화홀릭이었거든요...

키치 2018-01-26 15:10   좋아요 0 | URL
뒤늦게 이 책을 읽고 10년을 손해본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저도 언제 드라마를 봐야겠네요 ^^ 덧글 감사합니다.

북깨비 2018-01-26 1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드라마 보고 푹 빠져서 (문근영님 팬이에용) 아쉬운 마음에 원작 소설까지 사서 읽었는데 드라마는 드라마대로 소설은 소설대로 아주 찐~~한 여운을 남겼지요. ㅠㅠ

키치 2018-01-26 23:42   좋아요 0 | URL
저도 문근영님 좋아하는데 바람의 화원을 못 봤네요ㅠ(무려 이 작품으로 대상을 탔는데도...) 많은 분들이 추천하시니 드라마도 꼭 봐야겠습니다. 추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