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이야기
니시 카나코 지음, 권남희 옮김 / 생각정거장 / 2018년 1월
평점 :
절판




모임에서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 음식만 한 화제가 없다. 영화 안 보는 사람 있고 스포츠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 있지만 밥 안 먹는 사람은 없는 까닭이다. 좋아하는 음식, 추억의 간식, 최근에 찾은 맛집 등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사람들 사이의 거리가 훅 좁혀지고 시간이 금방 흐른다. 다음에는 어디서 무엇을 먹자는 약속까지 정해지면 그날 모임은 성공이다.


<사라바>로 2015년 나오키상을 수상한 니시 카나코는 음식에 관한 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할 말이 많은 사람이다. 이란에서 태어나 이집트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저자는 흰쌀과 날달걀을 거리낌 없이 먹을 수 없는 현재의 생활이 무척 소중하다. 이집트 쌀에는 돌이나 벌레가 섞여 있어서 한 번 밥을 지으려면 어머니가 일일이 불순물을 골라내야 했다. 식재료도 신선하지 않아서 날달걀을 먹었다가는 큰 병에 걸릴 수 있었다. 어쩌다 일본에 다녀오는 사람이 있으면 날달걀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을 정도다. 


저자는 도쿄에 온 뒤로 2년 동안 시부야에 있는 바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그때도 관심사는 술보다 음식이었다. 저자는 자신이 일하는 바를 포함해 자매점 두 곳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을 위해 음식을 만들었다. 대개 대여섯 명, 많을 때는 열 명 정도의 양을 만들었다. 저자는 니쿠자가(고기감자조림)를 비롯해 이런저런 음식을 만들었는데, 그때마다 "맛있어!"라고 칭찬하며 음식을 먹어주었던 동료들의 얼굴을 잊을 수 없다. 


지금 나는 소설을 써서 먹고살고 있다. 독자에게 "좋았어요." "재미있어요." 하는 말을 들을 때는 그야말로 꿈을 꾸는 듯 행복한 기분이 든다. 하지만 아르바이트할 때 내가 만든 음식을 먹은 사람들이 "맛있어!"하고 눈이 동그래지는 표정을 본 그 '순간'의 '기쁜' 마음은 이길 수 없다. (10쪽) 


책 못지않게 음식을 사랑해서, 소설을 읽다가 음식이 나오는 장면이 있으면 꼭 멈추고, 그 맛이 궁금해 찾아서 먹어봐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 평소에는 스낵 과자나 아메리칸도그를 거들떠보지도 않으면서 여행을 떠나면 흥분해서 끊임없이 주전부리를 찾는 사람. 라면이든 우동이든 약간 덜 익어서 꼬들꼬들한 면보다는 푹 익다 못해 퉁퉁 퍼진 면을 좋아하는 사람, 오코노미야키와 다코야키를 누구보다 좋아하지만 "오사카 사람답다."라는 말이 듣기 싫어서 아닌 척하는 사람... 


이런 사람의 이야기라면 하염없이 들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쉽게도 책이 너무 짧다. 이 책에서 처음 알게 된 세네갈의 전통 가정 요리 '쩨부젠'과 베네수엘라의 국민 요리 '파베욘 크리욜로'을 국내에서 맛볼 수 있는 곳이 있나 찾아보며 다음 책을 기다려야겠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얼룩말 2018-01-31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보고 싶네요
 
삼색고양이 후짱은 아기 돌보미
오타베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18년 1월
평점 :
품절




아기와 고양이와 한 집에 산다니. 상상만 해도 마음이 포근해지고 집에 일찍 돌아가고 싶을 것 같지만, 막상 아기든 고양이든 키우는 입장이 되고 보면 마냥 마음이 포근하지도, 집에 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볍지도 않을 것이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한때를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포기하고 희생해야 하는지, 주변의 아기 키우는 부모들이나 냥집사들(을 비롯한 반려동물 키우는 사람들)을 보면 잘 알겠다. 


그래도 미짱과 후짱처럼 귀여운 아기와 고양이가 있다면 생각이 달라질지도 모르겠다. 일본의 유명 블로그 사이트인 '아메바 블로그'에서 고양이 카테고리 1위에 빛나는 인기 블로그 '고양이가 있는 행복'을 책으로 엮은 <삼색 고양이 후짱은 아기 돌보미>를 읽고, 저자 오타베의 딸 미짱과 반려묘 후짱의 매력에 푹 빠졌다. 





저자 오타베는 30대 주부이자 일러스트레이터로, 남편과 딸 미짱(2살), 고양이 후짱(6살)과 함께 살고 있다. 아기가 있는 집에서 반려동물을 키워도 괜찮을까? 저자도 처음에는 걱정했다. 안 그래도 길고양이 출신이라서 낯을 많이 가리는 후짱이 낯선 아기를 보고 겁을 먹지는 않을지, 겁을 먹고는 집을 나가거나 아기를 해치지는 않을지 이래저래 불안했다. 


미짱이 태어나자 모든 걱정과 불안이 기우였음이 드러났다. 후짱은 미짱을 보자마자 언제 낯을 가렸냐는 듯이 애교를 부렸고, 행여나 미짱을 할퀼세라 가까이 다가가지도 않았다. 엄마가 잠깐이라도 자리를 비우면 후짱이 대신 미짱과 놀아주고, 미짱이 위험에 처하지는 않는지 지켜보기도 한다. 이 정도면 고양이가 아니라 미짱의 어엿한 '언니'라고 봐도 괜찮지 않을까 ㅎㅎ 





고양이의 존재는 저자가 독박 육아를 하면서 받는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저자의 남편은 새벽에 출근해 밤늦게 퇴근하는 직장에 다니는 관계로, 저자는 하루 종일 집에서 미짱을 돌보고 집안일을 해야 했다. 때로는 답답하기도 하고 때로는 우울하기도 했을 터. 그때마다 어떻게 알았는지 저자의 곁에 살포시 다가와 애교를 부리는 후짱 덕분에 저자는 힘을 낼 수 있었다(감동 ㅠㅠ). 


미짱 역시 후짱 덕분에 외동딸인데도 외로움을 덜 타고 어려서부터 동물을 사랑하는 아이로 자랐다(미짱이 생애 최초로 한 말은 엄마, 아빠가 아니라 후짱이라고 ㅎㅎ). 아기와 반려동물을 같이 키워도 괜찮을지 궁금한 독자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중한 것은 모두 일상 속에 있다 - 일상을 정갈하게 마음을 고요하게
야마시타 히데코.오노코로 신페이 지음, 이소담 옮김 / 이봄 / 2017년 11월
평점 :
절판


'설레는 것만 남기고 모두 버려라.' 한국은 최근에야 정리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미니멀 라이프가 유행하고 있지만, 일본은 진작에 미니멀 라이프가 유행했고 그전에는 '단샤리'가 정리, 수납 분야를 평정했다.


'끊고[斷], 버리고[捨], 멀리함[離]'을 뜻하는 불교 용어를 정리, 수납 분야에 처음 도입한 인물이 <소중한 것은 모두 일상 속에 있다>의 저자 야마시타 히데코이다. 이 책은 야마시타 히데코가 몸 심리학자 오노코로 신페이와 공저했고, 두 저자가 생활, 물건과 공간, 말, 마음, 관계, 의식, 몸, 부분과 전체, 변화, 진화 등에 관해 각자의 의견을 서술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야마시타 히데코의 전작 <버리는 즐거움>이 구체적으로 정리, 수납하는 기술을 알려주는 실용서였다면, 이 책은 정리, 수납에 앞서 자신의 삶의 자세를 돌아보고 마음가짐을 바로잡는 방법을 알려주는 마음공부 책 내지는 잠언집이다. 야마시타 히데코가 불교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만큼 불교와 관련된 가르침이 많다. 


의식은 근대에 들어 만들어진 개념입니다. '무의식' 안의 자각적 영역에 '의식'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마음을 의식과 무의식의 대립으로 설정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무의식과 의식은 연속적입니다. 무의식의 바다에서 추출된 수준 높은 층이 바로 '의식'입니다. 그리고 이 의식 계층을 좀 더 다듬어 순수하게 만들면 '미의식'이 됩니다. 매일 어떤 의식을 지니는가에 따라 미의식이라는 결정체가 만들어집니다. (121쪽) 


이 책에서 가장 감동적이었던 글은 오노코로 신페이가 쓴 무의식과 의식, 미의식의 관계에 관한 글이다. 무의식, 무자각 상태에서 하는 일들이 의식을 만들고, 의식이 모이고 깎이고 다듬어지면 미의식이 된다. 인간으로 치면 먹거나 잘 때 별 뜻 없이 한 행동들이 습관을 형성하고 일상을 이루고, 그것이 취향이나 인격이 되는 셈이다. 


버리고 정리하는 습관은 무의식을 조정하고 의식을 개선하며 궁극적으로는 미의식을 좋게 만든다. 미의식을 좋게 만들기 위해서라도, 오늘 밤엔 방 청소를 하고 자야겠다(꼭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생이 두근거리는 노트의 마법 - 전 세계 노트왕에게 배우는 기록의 정석 20
컴투게더 노트연구회 지음, 강은혜 옮김 / 라이팅하우스 / 2017년 11월
평점 :
품절




나는 노트를 세 권 쓴다. 하나는 스케줄러 겸 업무용 노트. 다른 하나는 책을 읽고 마음에 드는 구절을 적거나 서평의 초고를 작성하는 독서 노트. 남은 하나는 일상을 기록하는 일기장이다. 


노트를 세 권 쓰지만(세 권'이나' 쓰기 때문일까?) 세 권 중에 누가 봐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잘 정리되어 있거나 남에게 자신 있게 보여줄 만큼 근사하게 꾸민 건 없다. 글씨는 괴발개발. 메모는 덕지덕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노트를 쓰는 건 아니지만, 가끔 나조차 알아보기 힘든 기록을 발견할 때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그리하여 읽어본 책이 대만에서 탄생한 세계 최초의 노트 쓰기 전문가 집단 '컴투게더 노트연구회'가 만든 <인생이 두근거리는 노트의 마법>이다. 이들은 2010년 대만 노트왕들의 노하우를 담은 첫 책 <너의 노트를 보여 줘>가 크게 성공한 이후 5년 동안 세계를 돌며 찾아낸 노트 쓰기의 고수 20인을 인터뷰했다. 


이 책에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노트 쓰기 고수들의 결과물과 노트 쓰기 비법이 담겨 있다. 어떤 종류의 노트와 문구류를 선택하는지, 어떻게 글을 쓰고 디자인하는지, 어디서 주로 노트를 작성하고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는지 등 구체적인 사항이 자세히 나와 있다(노트 장식용 스티커나 마스킹 테이프 등을 구입하는 인터넷 사이트 주소도 나와 있는 점이 신선했다). 


결과물은 저마다 다르지만 입을 모아 말하는 사실은 '꾸준히 쓰다 보면 나만의 노하우가 생긴다'는 것. 매일 노트를 쓰다 보면 자신이 원하는 게 뭔지, 좋아하는 게 뭔지 알게 되고, 궁극적으로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며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도 깨닫게 된다(책 제목이 <인생이 두근거리는 노트의 '마법'>인 이유를 알 것 같다). 


책의 초반부에는 화첩을 방불케 하는 일러스트 중심의 노트가 주로 소개되어 있어서 나에게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나에게 도움이 된 건 책의 후반부에 소개된 업무용 노트다. 대만의 뮤직비디오 감독이자 브랜드 디렉터인 레오(랴오런샤이)는 따로 노트를 쓰지 않고 이면지에 업무 일정이나 아이디어를 기록한다. 이렇게 하면 팀원들과 내용을 공유하기가 좋고, 기록 자체에 연연하지 않게 된다. 


대만의 작곡가 우즈닝은 A4 또는 A5 사이즈의 스프링 유선 노트를 애용한다. 노트의 맨 첫 장에는 연간 계획을 쓰고 달성할 때마다 표시한다. 노트에는 업무상 해야 할 일은 물론이고 작사 아이디어, 가사 초고, 콘서트 세트 리스트, 포스터 기획안 등을 기록한다. 개인적인 '중대사'인 청혼을 위한 준비 사항, 결혼 피로연에 초대할 손님 목록도 노트에 기록해 무사히 완수했다.


멋들어진 노트도 좋지만, 나는 이렇게 생활감이 넘치는 실용적인 노트 이야기가 훨씬 더 좋고 도움이 되었다. 이들을 본받아 비록 글씨는 괴발개발이요, 정리 상태가 엉망이더라도 매일 꾸준히 노트 쓰기를 해나가야겠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트 2018-01-30 0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글 잘 보고 갑니다:) 저도 노트를 두서없이 쓰곤 했는데...😹😹 이 책을 읽어보고 싶네요.

키치 2018-01-30 10:36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저도 노트를 두서 없이 쓰는 편이라서 이 책 읽고 많은 자극을 받았습니다.
유나 님께도 도움이 되는 책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라로 2018-01-31 0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키치 님은 정말 대단하세요!! 쓰는 노트가 3가지라니!! 그러면서 알라딘에도 꾸준히 글을 올리시고!! 그 능력을 언제 책으로 만나보고 싶네요!!!👍

키치 2018-01-31 07:28   좋아요 0 | URL
리뷰에도 썼지만, 노트를 세 개나 써도 글씨가 개발괴발인 데다가 정리 상태도 엉망이라서 민망합니다 ^^;;; 알라딘에 쓰는 글이 그나마 읽을 수 있는 수준이에요 ㅎㅎㅎ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
 
은하영웅전설 박스 1 (1~4권) - 전4권
다나카 요시키 지음, 미츠하라 카츠미 그림, 강동욱 옮김 / 대원씨아이(만화) / 2018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일본을 대표하는 만화 <기동전사 건담> 시리즈의 팬이라면, 미국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큰 사랑을 받은 SF 영화 <스타워즈> 시리즈의 팬이라면, 반드시 봐야 한다고 일컬어지는 만화가 있다. 바로 <은하영웅전설>이다. 


마침 <모빌 슈트 건담 디 오리진> 제1권도 읽었겠다, <스타워즈>도 1977년에 제작된 제1편부터 보기 시작한 참에 <은하영웅전설> 애장판이 출간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판타지, 그중에서도 우주를 무대로 하는 SF 판타지물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내가 SF 판타지의 전설 아니고 레전드 급 작품만 줄줄이 보게 될 줄이야. '이거슨 운명!'이라고 (속으로) 외치며 <은하영웅전설> 애장판을 읽었다. 


<은하영웅전설>은 일본의 소설가 다나카 요시키의 장편 대하소설이 원작이다. 원작은 1982년 일본에서 처음 발간되어 1989년에 완간되었으며, 일본에서만 950만 부가 팔리는 대히트를 기록했다(한국에서도 100만 부 이상 팔렸다는 소문이 있다). 






2018년 1월 출간된 <은하영웅전설 애장판 박스1>은 다나카 요시키의 원작 소설을 미치하라 카츠미의 작화로 재구성한 오리지널 만화를 현대적 감각에 맞추어 애장판으로 제작한 것이다. <은하영웅전설 애장판 박스1>에는 애장판 1~4권이 담겨 있고, <은하영웅전설 애장판 박스2>에는 애장판 5~8권이 담길 예정이다. <은하영웅전설 애장판 박스2>는 2월 중 발매될 예정이다. 


<은하영웅전설 애장판 박스1>은 짙은 감색의 두툼한 외부 케이스와 내부 케이스, 애장판 1~4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외부 케이스에는 <은하영웅전설>의 주인공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의 일러스트와 고급스러운 은색으로 인쇄된 일본어 제목과 독일어 제목, '나는 우주를 손에 넣을 거야. 함께 가자, 키르히아이스'라는 명대사가 적혀 있다. 앞으로 애장판이 총 몇 권이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올 2월에 출간될 <은하영웅전설 애장판 박스2>의 주인공은 양 웬리가 아닐까 하고 조심스럽게 짐작해본다(실은 애장판 2권 표지가 양 웬리 ㅎㅎㅎㅎ). 


이야기의 시작은 이렇다. 서기 2801년. 우주에 진출한 인류가 그 세력을 점점 넓혀 마침내 은하연방 성립을 선포하고 그 해를 우주력 원년으로 선포한다. 그렇게 은하연방은 번영과 평화를 이어나갈 줄 알았으나, 우주력 310년 군부 출신의 루돌프 폰 골덴바움이 은하연방을 붕괴시키고 은하제국 - 골덴바움 왕조를 세우면서 지난한 독재 체제가 시작된다. 





골덴바움 왕조는 제국의 안정을 위협하는 공화주의자들을 반도(叛徒)로 간주해 가혹하게 탄압했으나 공화주의자들의 명맥은 계속되었고, 마침내 우주력 527년 공화주의자들은 스스로 건조한 우주선을 타고 은하제국을 빠져나와 자유행성동맹의 성립을 선언한다. 그로부터 100년 이상 지난 우주력 640년. 은하제국과 자유행성동맹 간의 전쟁이 발발한다.


은하제국과 자유행성동맹이 여전히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우주력 8세기. 마침내 양 진영에서 혼란스러운 은하에 전에 없는 변화를 가져다줄 것으로 기대되는 두 명의 영웅이 나타난다. 은하제국의 영웅은 군인 출신의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 라인하르트는 친애하는 누나를 독재자인 황제에게 빼앗긴 사실에 분노해 스스로 군인이 되어 전공을 쌓은 다음 황제의 자리를 빼앗음으로써 복수를 완성할 계획을 세웠다. 


자유행성동맹의 영웅은 양 웬리. 역사학도가 되기를 꿈꿨으나 학비가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관학교에 입학했고,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주변 상황으로 인해 군인이 되고 승진을 거듭했다. 살아온 환경도, 군인이 된 목적도 다르지만 군인으로서 갖춰야 할 군사 활용 능력은 물론 신체적 능력과 지적 능력, 정치적 감각까지 비슷비슷하게 뛰어난 두 사람은 군부 내에서 빠르게 출세해 마침내 전장에서 맞붙는다. 





<은하영웅전설>이 재미있는 점은, 양 진영의 수장이자 라이벌 관계인 라인하르트와 양 웬리가 표면상으로는 서로 대척하고 있지만 실상은 둘 다 은하제국의 전제 군주인 골덴바움을 무찌르는 것이 목표라는 점이다. 같은 장르의 만화 다수가 아군과 적군을 분명하게 가르고 독자가 아군에 감정을 이입해 적군을 증오하게끔 만드는 반면, <은하영웅전설>은 라인하르트와 양 웬리 중 누구를 아군 또는 적군으로 설정할지 애매하고 결국 독자가 둘 다에게 감정을 이입하게 만든다(적어도 나는 그랬다). 


라인하르트는 황제 및 귀족들에 대한 복수심에 들끓고 매 순간 감정이 격한 반면, 양 웬리는 전쟁은 물론 군인이라는 직업에 대해서도 회의감을 가지고 있으며 감정이 대체로 온순하다는 것도 재미있다. 평상시에는 극과 극으로 다른 두 사람이 전쟁 시엔 똑같이 냉철해지고 누구보다 뛰어난 사령관으로 변모한다는 점도 재미있다. 라인하르트와 친우 키르히아이스, 양 웬리와 대자(代子) 율리안의 관계도 흥미롭다.


<은하영웅전설>은 기본적으로 SF 만화이지만, 정통 SF보다는 정치나 군사, 전략 등에 관심 있는 사람이 보면 좋을 듯하다(개인적으로 정치에 관심 있어서 이 만화에서도 정치에 관한 서술이 흥미로웠다). 앞으로 어떤 '전설'이 펼쳐질지 몹시 기대된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adf657 2018-02-26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원이 아직 미완결인 만화을 애장판으로 출간한 이유가 뭔지 모르겠네요 일본에서 다시 만화연재 시작했나

키치 2018-02-27 07:41   좋아요 0 | URL
학산에서도 은하영웅전설 단행본을 새로 출간하고 있더라고요. 아마도 2018년 4월 2분기부터 은하영웅전설 신 애니메이션 방영 예정이라서 그에 맞춘 듯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