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눈보라 체이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소미미디어 / 201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치고는 드물게 설원이 배경이네'라고 생각하면서 첫 장을 펼쳤다. 그러자 내 눈에 들어온 한 문장. '이 책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스키장 연작 <설산 시리즈> 4부에 해당한다'고. 국내에는 <백은의 잭>, <질풍 론도>에 이어 세 번째로 소개되는 시리즈라고도 적혀 있었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설원이 배경인 소설을 여러 권 쓴 '베테랑'인 걸 내가 몰랐던 셈. 그러고 보니 언젠가 읽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수필집에 동계 스포츠를 좋아한다는 내용이 있었던 것 같다.
소설은 평이하다. 스노보드 마니아인 다쓰미는 취업 전 청춘을 불태우기 위해 혼자서 스키장을 찾는다. 출입 금지 구역에서 느긋하게 스노보딩을 즐기던 다쓰미는 한 여성 스키어가 사진을 찍고 있는 걸 발견하고 도와주러 갔다가 그녀가 자신의 이상형에 정확히 부합하는 '여신'임을 알게 된다. 그러나 그걸로 끝. 여신은 사진만 찍고 쌩하니 떠나 버리고, 다쓰미는 아쉬운 마음을 부여잡고 도쿄에 돌아온다.
그날 오후, 도쿄의 한 가정집에서 한 노인이 시체 상태로 발견된다. 유력한 용의자는 얼마 전까지 노인이 기르던 개를 산책시키는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개한테 큰 부상을 입히는 바람에 노인에게 크게 혼나고 아르바이트를 그만둔 청년(그렇다. 다쓰미다!). 경찰은 유력한 용의자인 청년의 자취방을 수색하고, 이를 눈치챈 이웃에 사는 친구가 다쓰미에게 상황을 전해 준다. 경찰에 끌려가면 취업이 취소되고 잘못되면 감옥에 갈 수도 있다는 생각에 다쓰미는 자신의 알리바이를 입증해줄 여신을 찾아 떠난다.
경찰은 용의자인 다쓰미의 뒤를 쫓고, 다쓰미는 여신의 뒤를 쫓고... 상황은 분명 긴박하고 심정은 다들 절실한데, 다 큰 어른들이 서로 쫓고 쫓기는 모습이 마치 어린애들 하는 꼬리잡기 같아서 우스웠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이라는 이유로 무조건 진지할 것, 무서울 것을 예상하고 어깨에 힘 팍 주고 읽기 시작한 나도 우스웠다. 이런 영화가 있다면 '킬링타임'이라는 네 글자가 바로 떠오를 듯.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치고는 드물게 유머러스한 편'이라고 쓰고 글을 마치고 싶지만, 히가시노 게이고가 워낙 다작(多作)이라서 내가 모르는 유머러스한 소설이 더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