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왕자의 눈 - 인생에서 중요한 것을 알아보는 지혜
저우바오쑹 지음, 취화신 그림, 최지희 옮김 / 블랙피쉬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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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 팟캐스트에 출연한 뮤지션 요조가 정말 좋아하는 사람에게 꼭 선물하고 싶은 책으로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를 꼽았다. 내가 좋아하는 요조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이라니. <어린왕자>를 읽고 대단한 감흥을 받지 못한 나는 <어린왕자>의 어떤 매력이 요조를 사로잡았는지 궁금해졌다. 마침 블랙피쉬에서 홍콩의 정치철학자가 <어린왕자>를 재해석한 책 <어린왕자의 눈>과 <어린왕자> 문고판을 묶은 세트를 출시했기에 읽어봤다.


<어린왕자의 눈>의 저자 저우바오쑹은 문학을 사랑하고 교육에 관심이 많은 정치철학자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2014년 9월 홍콩에서 우산혁명(홍콩 행정장관 선거의 완전 직선제를 요구한 민주화 시위)이 일어났을 때 저자는 수십만 명의 홍콩인과 함께 거리로 나가 시민불복종 운동에 참여했고 경찰에 체포되었다. 운동이 실패로 끝난 후 몸과 마음이 지친 저자는 대만에서 방문학자로 지내며 쉬다가 <어린왕자>를 만났다. 어릴 적에 읽고 다시 읽은 <어린왕자>는 아이들이 아니라 어른들을 위한 책이었다. 저자는 <어린왕자>를 읽으며 자기 삶의 장미와 여우를 찾고, 동심, 자유, 책임, 고독, 길들여짐, 사랑, 생의 오묘한 비밀과 죽음의 고민을 성찰하는 시간을 가졌다. 


저자는 어린 시절 생텍쥐페리가 코끼리를 삼킨 보아구렁이 그림(<어린왕자>에 나오는 그 유명한 그림이다!) 두 장을 그려 어른들에게 보여주었다가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공부나 하라는 꾸중을 들은 일화를 소개한다. 어른들은 아이가 잘 되기를 바란다는 이유로 아이가 하고 싶어 하는 일 대신 장래에 도움이 되는 일, 즉 좋은 학교에 합격하거나 성공 가능성이 높거나 남들에게 자랑할 만한 일을 하기를 권한다. 이로 인해 아이는 일찍부터 꿈꾸기를 포기하고 어른들과 별로 다르지 않은 그저 그런 어른으로 자라난다. 어른이 되어 아이들에게 똑같이 충고한다.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공부나 하라고. 


저자 또한 생텍쥐페리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 중, 고등학교 시절 저자는 글쓰기에 빠져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꾸었지만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주변 어른들의 충고에 따라 경영학을 전공하기로 했다. 그러나 막상 대학에 진학해보니 경영학이 적성과 맞지 않았고, 결국 저자는 주변 어른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정치철학을 전공해 작가로서도 활동하게 되었다. 그때 깨달았다. "자기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자아가 향하는 길을 충실히 따라 걷는 것이야말로 자신이 진정 원하는 삶이라는 것을." 


진정한 자아를 깨닫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완성해나가는 것은 <어린왕자>의 핵심 주제인 '길들여짐'과도 관계가 있다. <어린왕자>에서 어린왕자는 들판 위에 핀 오천 송이의 장미보다 어린왕자에게 있어 이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존재인 장미가 더욱 소중하다고 말한다. 어린왕자와 장미는 단둘밖에 없는 소행성 B612에서 긴 시간을 함께 보내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를 길들이고 서로에게 길들여진 사이이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징정 원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을 하지 않고 외면하거나 무시하면서 사는 것은 자기 자신을 길들이거나 자기 자신에게 길들여질 기회를 놓치는 것이고, 이는 주어진 삶을 제대로 살아보지도 못하고 죽는 길을 택하는 것이다. 또한 자기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 즉 자기 자신에게 잘 길들여지고 자기 자신을 잘 길들인 사람은, 다른 사람을 보다 쉽게 사랑할 수 있고 길들일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 길들여질 수도 있다. 


개인의 행복한 삶은 사회 제도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런데 제도는 자연히 생겨난 질서가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낸 산물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어떻게 바꿀 것인가는 우리가 그리는 정의로운 사회의 모습, 함께 세상을 바꾸려는 결심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길들여짐은 정치적인 것이다. (215쪽) 


길들여짐은 사람과 사람의 교류이고, 사람과 사람의 교류는 사회 제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성차별, 인종 차별, 민족 차별, 장애인 차별, 성소수자 차별 등이 묵인되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자유롭게 사귀지 못하고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지 못하며 매일 대립과 갈등에 노출된 채 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길들여짐은 권력으로 사람을 짓누르는 것도 아니고 정복하는 것도 아니고 온갖 방법을 동원해 굴복시키는 것도 아니다. 서로 상호적이고 대등한 관계 속에서 소통하는 가운데 타협점을 찾는 것이다. 


저자는 독자들이 <어린왕자>를 통해 자기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고 길들여짐의 의미를 깨닫기를 바란다. 삶을 보다 진지하게 성찰하고 진실된 태도로 살아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사회가 더욱 공정하고 공평해지며 민주화로 가는 길도 앞당겨질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는 온갖 차별이 만연하고 대립과 갈등이 끊이지 않는 한국 사회 내에서도 유의미한 메시지가 아닌가 싶다. 부디 많은 독자들이 <어린왕자의 눈>을 통해 <어린왕자>를 읽는 눈을 키우고, 자신의 삶과 사회를 대하는 태도도 성찰해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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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루티드
나오미 노빅 지음, 오정아 옮김 / 노블마인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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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소녀가 자신의 능력에 눈 뜨고 세계의 음모를 깨닫는 과정이 흥미롭게 그려져 있다. 드래곤과 사랑에 빠지는 장면마저 주인공의 성장과 강인함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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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루티드
나오미 노빅 지음, 오정아 옮김 / 노블마인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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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책이란 책은 손에 잡히는 대로 읽었지만 여자아이들이 즐겨 읽는 동화 책은 손길이 가지 않았다. 무도회에서 함께 신나게 춤을 췄으면서 왕자가 찾으러 올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는 신데렐라. 자기를 미워하는 왕비한테 찍소리 한 번 못하고 쫓겨나는 백설공주. 물레 한 번 잘못 만진 게 뭐라고 세월아 네월아 잠만 자는 숲속의 공주. 왜 이들은 자기 힘으로 자신의 문제를 극복하지 않을까. 왜 바보같이 기다리고 쫓겨나고 잠만 잘까. 전부 다 답답했다. 누구 하나 닮고 싶지 않았다. 


나오미 노빅의 신작 <업루티드>의 아그니에슈카는 이들과 다르다. 일단 공주가 아니고 예쁘지 않고 착하지 않다. 십 년에 한 번 드래곤이 성에서 나와 그 해에 열일곱 살이 된 소녀를 잡아간다는 전설이 있고, 마침 올해가 드래곤이 성에서 나온다는 그 해이지만 조금도 걱정하지 않는다. 아그니에슈카가 드래곤이라면 마을 최고의 미인이자 성격도 착하고 지성까지 갖춘 단짝 친구 카시아를 데려가지 잘난 구석 하나 없는 자신을 데려갈 리 없다. 나는 잠자코 있다가 카시아가 떠나면 멋진 남자 만나 결혼하고 아이 낳고 그렇게 살면 된다고 여긴다. 


그런데 이때 아그니에슈카의 예상을 뒤엎는 사건이 발생한다. 성에서 나온 드래곤이 카시아가 아니라 아그니에슈카를 선택한 것이다. 드래곤의 성에 끌려간 아그니에슈카는 드래곤이 자신을 겁탈하거나 죽일 거라고 짐작해 잔뜩 겁을 먹는다. 드래곤의 심기를 거스를까 봐 시키지도 않은 식사 준비까지 하는데 드래곤은 도리어 밥 지을 시간이 있으면 마법이나 연습하라고 화를 낸다. 그때부터 드래곤은 아그니에슈카에게 마법 공부를 시키는데, 아그니에슈카는 마법 책 읽는 것도 싫고 주문 외우는 것도 싫다. 마을에서 카시아를 데려와 자기 자리에 앉히고, 자신은 마을에 돌아가 예전처럼 살고 싶은 마음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드래곤의 성에 마렉 왕자가 찾아온다. 잘 생기고 늠름하고 성격까지 좋다고 소문이 자자했던 마렉 왕자는, 알고 보니 여자라면 사족을 못 쓰는 난봉꾼이었다. 이제 겨우 열일곱 살인 아그니에슈카에게도 손을 뻗었다. 아그니에슈카는 왕국 전체가 칭송하는 마렉 왕자가 실은 나쁜 사람이고, 악명을 떨치는 드래곤이 실은 좋은 사람이란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아그니에슈카는 드래곤에게 키스하고 두 사람은 결혼에 골인... 하는 게 아니라 이제부터 진정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한 번 들어가면 영영 돌아오지 못하거나 미치광이가 된다는 소문이 퍼진 '우드'와 이를 둘러싼 왕국과 이웃 나라 사이의 갈등, 왕권을 빼앗으려 하는 세력, 이들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십 년에 한 번씩 여자아이를 납치하며 악명을 쌓는 드래곤, 드래곤에게 순순히 여자아이를 바치는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지를 뻗고 잎사귀를 펼친다. 


아그니에슈카를 성에 데려오고 마법 교육을 시킨 건 드래곤이지만, 자신만이 할 수 있는 마법을 터득하고 마법사가 되기로 마음먹은 건 아그니에슈카 자신이다. 드래곤도 익히지 못한 야가의 주문을 저절로 습득한 아그니에슈카는 오랜 친구이자 마음의 빚을 진 상대인 카시아의 목숨을 구하고, 우드와 드래곤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오해를 푼다. 왕실 내의 암투와 거대한 전쟁에도 적극적으로 나선다. 우드의 정체도 밝힌다. 사람들을 오염시키는 건 우드가 아니라, 진실을 외면하고 잘못된 관습을 무조건적으로 수행하는 사람들 그 자체라는 것도 만천하에 드러낸다. 이 과정에서 드래곤이 납치한 힘없는 소녀에 불과했던 아그니에슈카는 모든 사건을 주도하고 해결하는 강력한 영웅으로 성장한다. 


아그니에슈카는 기존의 동화나 판타지 문학에 등장해온 여성상을 뒤엎는 인물이기도 하다. 아그니에슈카는 드래곤의 성에 갇혀 왕자가 자신을 찾으러 오기를 기다리는 대신 스스로 왕자가 되어 위기에 빠진 카시아을 구출한다. 하룻밤 사이에 나락으로 떨어진 자신의 운명에 순순히 굴복하지 않고 새로운 삶을 개척한다. 문제가 생기면 누가 풀어줄 때까지 버티지 않고 자신이 직접 나선다. 사랑에는 대체로 적극적이지만 신중해야 할 때는 신중하다. 이렇게 멋진 여성 주인공은 예전에도 지금도 본 적이 없다. 


더욱 마음에 드는 건, 아그니에슈카가 처음부터 남과 다른 존재가 아니라 대부분의 여성들처럼 자기 자신에 대해 잘 모르고 주어진 삶에 의문을 품지 않는 존재였다는 것이다. 아그니에슈카는 집에서나 마을에서나 평범한 여자애에 불과했지만 살던 곳에서 벗어나자 누구보다 강력하고 재능 있는 마법사로 성장한다. 다른 여자들처럼 시집가고 아이 낳고 평범하게 살기를 꿈꿨지만 마법사의 재능을 발견하자 그 어떤 여성뿐 아니라 남성도 해내지 못했던 일들을 척척해낸다. 이러한 전개가 독자들(특히 여성)의 인생관은 물론 기존 판타지 문학의 여성상을 '뿌리째 뒤엎는(uproot)' 결과로 이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이 책을 읽으며 받은 감동이 부디 다른 독자들에도 전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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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살이의 기술 - 일잘과 일못을 가르는 한 끗 차이
로스 맥커먼 지음, 김현수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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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하나는 자기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 자신을 과소평가하는 사람이다. 문제는 자기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사람일수록 목소리가 크고 행동이 빠른 반면, 과소평가하는 사람일수록 목소리가 작고 행동이 굼뜨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자기 자신의 능력을 잘 포장하고 허세 부리기를 좋아하는 사람들만 눈에 띄고, 능력 있고 성격도 좋지만 자기 자신을 포장하는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은 빠른 속도로 내쳐지고 사라진다. 


미국의 저널리스트 로스 맥커먼이 쓴 <직장살이의 기술>은 자기 자신을 과소평가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저자는 오랫동안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이 부족했고 자신을 멋지게 포장하는 방법도 몰랐다. 대학 졸업 후 뉴욕에 있는 유명 언론사에서 취업 제안을 받았을 때도 나는 그 자리에 앉을 자격도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부터 들었고, 뉴욕에서 결국 실패할 거라고 믿었으며, 한 달 안에 사기꾼이라는 사실이 들통날 거라고 여겼다. 


놀랍게도 이런 현상은 저자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1978년 조지아 주립대학교의 심리학자 폴린 클랜스와 수잔 임스는 '가면 현상'이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이 현상은 성공한 사람들이 느끼는 세 가지 유형의 감정을 말한다. 첫째, 사람들이 자신의 성공을 과대평가하고 있다는 느낌, 둘째, 자신의 성취는 순전히 운이 좋은 덕택이라는 생각, 셋째, 자신이 일군 성공이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메릴 스트립과 케이트 윈슬렛도 이런 현상을 경험한 바 있다고 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자신감 없는 사람이 새 직장에 면접을 보러 갈 때, 직장에 첫 출근할 때, 미팅에 참석했을 때, 지각했을 때, 퇴근 후 술 약속이 잡혔을 때 등의 상황에서 마주치는 어려움을 소개하고 이를 해결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이를테면 지각했을 때는 왜 늦었는지 솔직하게 말하되 너무 길게 설명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당신이 지각한 이유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회의에 10분 늦었다면, 도착한 뒤 10분간은 질문도 하지 않고 발언도 하지 않는다. "제가 놓친 게 뭐죠?" 같은 질문은 회의 시간을 늘려서 사람들을 더 짜증 나게 만들 뿐이다. 물론 이런 팁은 당신이 아주, 아주 유능할 때만 통한다. 무능한 데다가 지각까지 상습적으로 하면... (끝장이라고 보면 됩니다). 


왕재수와 일하게 되었을 때 대처하는 방법도 나와 있다. 첫째, 그들의 존재를 인정해야 한다. 둘째, 그들을 포용해야 한다. 셋째, 그들에게 맞서야 한다. 이도 저도 도움이 안 된다면 이렇게 질문해 보자. "대체 왜 그러는 거예요?" 이 질문은 왕재수가 자신의 왕 재수 없음을 해명하도록 종용하는 동시에, 재수 없음은 설명이 되는 것이 아니므로 결국 입을 다물게 되는 강력한 힘을 가졌다. 저자의 경험에 따르면 이 질문을 들은 왕재수는 백이면 백, 말을 더듬거리다가 끝내 입을 다물었다고. 


반대로 내가 왕재수 취급 당하는 경우, 즉 직장 내에 대놓고 나를 싫어하고, 경계하고, 내가 사라지길 바라는 사람이 있는 경우에 대처하는 방법도 있다. 이 경우에는 첫째, 그들의 행위를 유발하는 요인이 무엇인지 알아본다. 둘째, 왕재수에게 던지는 기본 질문을 똑같이 던진다. "대체 왜 그러는 거예요?" 셋째, 이들을 대할 때는 결코 쓸데없이 친절하고 착하게 굴거나, 울거나 화를 내선 안 된다. '길거리를 걸어가다 선원 복장을 하고 뒷다리로 걷고 있는 치와와를 본 것처럼' 어리벙벙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게 적당하다. 


참고로 이 책의 저자는 에스콰이어지 편집장인 백인 남성이다. 별 볼 일 없는 직장에 다니는 한국 여성이 겪는 '직장살이'는 이보다 더 독하고 가혹하다는 뜻이다. 참고할 만한 팁은 참고하되 어느 정도 깎아서 듣는 편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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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에 내리는 비
이마 이치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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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귀야행>으로 유명한 이마 이치코의 단편집 <민들레에 내리는 비>를 읽었다. 표제작 '민들레에 내리는 비'를 비롯해 '가능성의 문제', '각봉투보다 무거운', '천 개의 바늘이 노래한다', '어느 맑은 날에'까지 총 다섯 편의 단편이 실렸으며, 다섯 편 모두 남성 간의 사랑을 그린다(수위는 높지 않다). 





표제작 '민들레에 내리는 비'는 보험회사에서 조사원으로 일하는 모리모토가 술집에서 나이 든 영감인 줄 알고 집에 데려간 남자가 알고 보니 머리를 하얗게 염색한 청년이라는 해프닝으로부터 시작된다. 며칠 후 모리모토는 보험 조사를 하기 위해 폭력단 두목을 만나러 갔다가 깜짝 놀란다. 며칠 전 영감인 줄 알고 집에 데려가 재워주기까지 한 청년이 폭력단 두목의 무릎 위에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청년은 자신이 폭력단 두목의 아들이라고 주장하지만 어림없는 소리다. 대체 다 큰 아들을 무릎 위에 앉히는 아버지가 어디 있으며 아버지가 무릎 위에 앉으라고 해서 앉는 아들이 어디 있단 말인가. 역시나 청년은 폭력단 두목의 아들이 아니라 보험금 사기를 치기 위해 고용된 연기자였고, 진실을 알게 된 모리모토는 청년에게 '다른 연기'를 해달라고 제안한다. 오래전 자신의 곁을 떠나간 조카를 연기해달라고 말이다. 





'가능성의 문제'는 출판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미즈노가 게이들의 거리로 유명한 신주쿠 2초메의 술집 앞에서 한 남자에게 데이트 제안을 받으면서 시작된다. "사실은 아까부터 괜찮다 싶어서 말을 걸까 말까 망설이고 있었어요." "아... 죄송합니다. 전 그런 거 아니거든요. 그냥 일반인입니다." 거절당한 남자는 급히 떠나고 미즈노는 직장 상사의 뒤를 따라 약속 장소로 간다. 그곳에는 방금 전 미즈노가 거절한 남자가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쿠노 요이치. 앞으로 미즈노가 담당을 맡을 작가다. 


정직원 채용이 걸린 중요한 상황에서 자신에게 호감을 보인 남자 작가를 담당하게 된 미즈노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이 밖에도 광고 회사, 이별 공작 전문 회사, 사립 여학교 등 직장이 배경인 작품이 주를 이룬다. 남성 간의 사랑을 그리지 않았다면 직업 만화, 성인 독자 대상 만화로 분류되었을 듯. BL 만화로 분류되기는 해도 성애 장면이 거의 없고 사람과 사람이 만나 마음의 문을 여는 과정을 그려서 BL 만화에 친숙하지 않은 독자가 보기에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 


다섯 편 모두 (토요카와 에츠시를 닮은) 키 크고 안경 쓰고 무뚝뚝한 남자가 등장하고 그 사람이 반드시 자기보다 젊고 다정하고 배려심 있는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것도 재미있다(작가님의 취향을 알 것 같다 ^^). 어른스러우면서도 산뜻하고, 잔잔하면서도 감동이 있는 만화를 찾는 독자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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