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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출산
무라타 사야카 지음, 이영미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1월
평점 :
절판
<살인출산>은 <편의점 인간>으로 일본은 물론 한국 문학계에도 신선한 충격을 준 일본 작가 무라타 사야카의 단편집이다. 표제작 <살인 출산>은 10명을 낳으면 합법적으로 1명을 죽일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지는 사회의 모습을 그린다. 피임 기술이 발달하고 인공수정이 일반화된 이 사회에서 출산은 살인을 하고 싶어서 자발적으로 '출산자'가 되기를 택한 사람만 한다. 이는 역으로 누가 언제 어디서 출산자가 되기를 택한 사람에게 죽임을 당해도 이상하지 않은 사회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주인공 이쿠코는 언니 다마키가 10대 때 살인을 결심하고 스스로 출산자가 되기를 택한 걸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어려서부터 살인 충동이 있었던 언니에게 합법적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건 다행인지 몰라도, 사람 하나를 죽이겠다고 그 힘든 출산을 열 번이나 한다는 사실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 이쿠코의 앞에 살인출산 제도를 비판하는 단체의 회원이 나타나고, 가정과 학교, 사회로부터 살인출산 제도의 우수성, 합리성만을 교육받은 사촌 동생 미사키가 이쿠코의 집에서 살게 된다. 이쿠코는 이들과 지내며 살인출산 제도를 둘러싼 문제들을 본격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한다.
10명을 낳으면 1명을 죽일 수 있는 사회라니. 터무니없어 보이지만, 작가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러한 설정 자체가 아니라 생명은 신성하다느니, 살인은 절대악이라느니 하는 가치관이 과연 절대적으로 옳은지, 아니면 사회적, 정치적, 법적 합의에 의한 구성물에 불과한지 같은 의문이다. 생명은 신성하다고들 하지만 피임이나 낙태 문제를 생각하면 태아의 생명권보다 산모의 건강권, 행복권이 더 중요한 경우가 분명 있다. 살인은 절대악이라고들 하지만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게 사회는 사형을 선고하기도 하고, 본인이나 가족의 동의하에 안락사, 존엄사가 이루어지는 경우도 점점 늘고 있다.
작가는 <편의점 인간>에서 그랬던 것처럼 극단적이고 괴이해 보이기까지 하는 상황을 제시함으로써 독자들이 당연하게 여기고 정상이라고 판단하는 상태가 결코 당연하지 않고 정상이지도 않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이는 2명이 아닌 3명의 연애가 유행하는 사회를 그린 <트리플>, 육체와 감정의 교류 없이 오로지 법적, 경제적, 사회적 공동체로만 기능하는 부부의 생식 문제를 다룬 <청결한 결혼>, 영원히 살 수 있는 세상에서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이의 모습을 묘사한 <여명> 등에서도 나타나는 표현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