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필 다이어리 - 철학자와 영화의 만남 시네필 다이어리 1
정여울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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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영화를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고 즐겨보는 편도 아니라서 '1년에 영화 10편 이상 보기'를 목표로 정할 정도인데, 영화 이야기만큼은 좋아해서 가끔 라디오나 팟캐스트로 영화 소개하는 코너를 듣거나 영화에 관한 책을 찾아 읽곤 한다. 특히 영화 평론가 이동진 님과 씨네21 김혜리 기자님이 들려주는 영화 이야기를 참 좋아하는데, '이동진의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방 이후 두 분의 영화 이야기를 들을 길이 없어 아쉽다.  



<시네필 다이어리>는 문학 평론가 정여울이 철학의 관점으로 영화를 분석한 글을 엮은 책이다(리뷰 쓰려고 보니 2009년 7월부터 알라딘 창작블로그에 연재된 글을 모아 만든 책이라고 한다). 정여울이 영화라니. 의아해하며 읽기 시작했는데 의외로 좋았다. 텍스트로 소개된 영화는 <색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굿 윌 헌팅>, <시간을 달리는 소녀>, <쇼생크 탈출>, <순수의 시대>, <뷰티풀 마인드>, <원령공주> 등 국내에도 널리 알려진 작품이 대부분. (영화 잘 안 보는) 내가 본 영화도 절반이 넘는다. 이 유명한 영화들을 롤랑 바르트, 조지프 켐벨, 수잔 손택, 질 들뢰즈, 프리드리히 니체, 피에르 부르디외, 칼 융, 가스통 바슐라르에 빗대어 소개하니 어찌나 생경하던지. 그 중에서도 질 들뢰즈와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만남은 압권이다.



헛되이 보내버린 이 시간 안에 진실이 있다는 것을 마지막에 가서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 그것이 바로 배움의 본질적인 성과이다. _ 질 들뢰즈, 서동욱, 이충민 역 <프루스트와 기호들>, 민음사, 47쪽


내가 알지 못하던 그 시간의 '의미 없는' 파편들이 이제 저마다 절실한 의미를 품어 안고 다시 내 안에서 깨어난다. 그녀는 이 생의 마지막 타임 리프로 인해 단지 시간을 돌린 것이 아니라 치아키의 마음이 되어, 치아키의 눈이 되어, 자신들이 걸어온 시간을 다시 되짚는다. 그녀가 자신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기 위해 만난 것은 잃어버린 타인이었다. 타인의 시간을 되찾는 것이 곧 그녀의 시간을 되찾는 것이었다. (p.208)



같은 영화, 같은 작품을 보고도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끼는 사람을 보면 부럽다. 게다가 이렇게 빼어난 글까지 쓰다니! 마르지 않는 샘처럼, 계속 읽어도 계속해서 좋은 문장, 좋은 글을 보여주는 정여울 작가가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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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울의 소설 읽는 시간 - 세계 문학 주인공들과의 특별한 만남
정여울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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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많이 읽긴 해도 주로 비문학을 읽는 편이고, 문학이라고는 미스터리 소설이나 가벼운 톤의 일본 소설을 읽는 게 전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따금씩 헉 소리 나게 두꺼운 고전이나 처음 들어보는 작가가 쓴 소설을 덥석 구입하는 것은 대체로 나보다 앞서 읽은 사람이 추천한 덕분이다. 



최근 들어 가장 신뢰하고 따르는 추천자는 문학 평론가 정여울이다. 이름은 전부터 알았지만, 지금은 종영된 KBS 라디오 <책 읽는 밤>의 '마음의 서재' 코너를 애청하며 그가 추천한 책을 여러 권 구입해 읽었 저서는 거의 다 읽었다. 얼마 전에는 정여울의 신간 <헤세로 가는 길>을 읽고 그동안 거들떠도 안 봤던 독일문학, 그것도 어렵다는 편견이 있었던 헤르만 헤세의 소설을 여러 권 구입했다. 정여울을 나의 문학 선생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여울의 소설 읽는 시간>은 저자 정여울이 사랑한 서양의 문학 작품을 두 개씩 엮어서 소개하는 독특한 형식의 책이다. 멘토를 주제로 <데미안>과 <호밀밭의 파수꾼>을, 사랑을 주제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과 <위험한 관계>를, 행복을 주제로 <제인 에어>와 <오만과 편견>을 소개하는 식이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단순히 문학 작품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문학을 통해 독자로 하여금 과거를 회상하고 현재를 돌아보게 만든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폭풍의 언덕>과 <오페라의 유령>에 나오는 여성 주인공들이 사랑을 통해 자기 안에 있던 어둠, 내면의 그림자를 만났다고 분석하는 식이다. 저자 자신이 조셉 캠벨과 칼 융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하던데, 나 또한 캠벨과 융, 정신분석학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서 저자의 문학 작품 접근법이 공감되고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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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실천하는 인문학 - 꽉 막힌 세상, 문사철에서 길을 찾다
최효찬 지음 / 와이즈베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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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인 박웅현은 인생의 터닝 포인트로 '고전 탐독'을 든다. 사회초년생 시절 회사에서 찬밥 신세일 때 그는 사직서를 내는 대신 철학서를 읽었고, 공들여 준비한 프레젠테이션에서 탈락했을 때에는 <서양 미술사> 원서를 읽으며 감각을 다듬었으며, 광고인으로, 베스트셀러 작가로 최정상에 올라 있는 지금도 동서양의 고전을 읽는다. 



<지금 실천하는 인문학>의 저자 최효찬 박사도 마찬가지다. 잘 다니던 신문사를 그만두고 1998년 첫 책을 집필한 이래 <5백년 명문가의 자녀교육>, <마흔, 인문학을 만나라>를 비롯해 서른 권 가까운 책을 저술하고 '자녀경영연구소' 소장으로 재직하며 자녀 교육과 독서 교육, 인문학 분야의 전문가로 자리매김한 힘은 오로지 독서, 그것도 인문학 고전을 치열하게 읽은 것에서 비롯되었다. 문사철의 위기를 논하는 시대에 외려 문사철을 삶의 터닝 포인트로 삼았다니. 그 방법이 뭔지 확인하고 싶어 <지금 실천하는 인문학>을 읽어보았다. 



책에는 그동안 그가 읽은 문학, 철학, 역사 분야의 명저와 명사들의 삶이 48가지의 이야기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인문학을 통해 새로움을 상상하는 법, 마음가짐을 얻는 법, 관계를 배우는 법, 공부법을 정리하는 법, 인생을 깨닫는 법이 간결하고 깔끔하게 갈무리되어 있어 읽기에 편하다. 내용도 알차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수많은 책을 인용하며, 인용한 책과 인물에 대한 저자의 분석도 수준이 상당히 높아서 책 한 권을 읽었을 뿐인데 한 학기 강의를 들은 것처럼 뿌듯했다. 저자는 대체 얼마나 많은 책을 읽고 공부한 것일까. 머리가 숙여진다.



나는 때로 힘겨운 기다림의 시간에 나 자신을 단련하기 위해 계산하지 않고 먼저 번역을 하고 책을 읽고 글을 썼다. 책을 읽으며 나만의 비법을 가질 수 있었다. 바로 책을 읽은 뒤 인상 깊은 내용을 기록하는 '초서'를 습관처럼 해오고 있다. 2008년, 책을 읽다 다산 정약용과 퇴계 이황이 즐겨 했던 '초서'를 접하고 이를 실천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 준 세 번째 터닝 포인트라고 할 수 있다. (p.7)



저자는 책을 그저 읽기만 한 것이 아니라 '초서'했다. 초서는 '책을 읽고 자신의 주견에 맞게 문장을 베끼는 것'(p.228)으로, 다산 정약용이 생전에 수만 권의 책을 쓰는 데 활용한 방법으로 잘 알려져 있다. 저자는 2008년부터 이를 실천해 삼십 권 가까운 책을 집필하는 데 활용했다. 책을 읽은 뒤 인상 깊은 내용을 기록한다고 해서 서평도 포함되는가 했는데, 저자가 이를 집필에 적극 활용한 것을 보니 서평이나 독후감보다는 책의 내용을 그대로 베끼는 필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 아닌가 싶다. 



한번은 교수와 CEO 등으로 구성된 커뮤니티에 초청받아 강연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 온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책 읽을 시간이 없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그래서 요약본을 읽거나 저자 초청 강연으로 '때우려' 한다는 것이다. 리더의 자리에서 물러나 시간이 많아지면 책을 읽으며 더 유익한 일을 할 수 있을까. <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의 저자 다닐 알렉산드로비치 그라닌에 따르면 대부분 사람들은 그럴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한다. (p.257)



책 읽을 시간이 없다는 볼멘 소리는 나도 자주 듣는다. 책 많이 읽는 게 부럽다고, 대체 언제 그렇게 읽느냐는 질문도 종종 받는다. 그 때마다 나는 출퇴근 시간에 남들 스마트폰 볼 때 책 읽고, 집에 돌아와서 영화나 드라마 대신 책을 보고, 주말에 쇼핑이나 불필요한 사교 모임에 나가는 대신 책을 읽는다고 답한다. 이렇게 할 수 있는 건, 카잔차키스의 식대로 표현하면 삶의 우선순위를 책에 두기 때문이다. 책을 무한정 읽을 수 있을 것 같지만 남은 시간이 의외로 많지 않다. 사십 대만 되어도 노안이 온다니 서른 살인 내가 돋보기 안경 없이 책을 읽을 수 있는 건 고작 십 년 남짓이다. 그러니 읽을 수 있을 때 부지런히 읽고, 나중에 눈 나빠지거든 음악이나 영화 같은 취미를 즐길 테다.



요즘 청소년이나 대학생들은 이론만 배울 뿐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공부를 하지 않는다. 오늘날 우리 사회 교육의 문제는 모두 입시에 필요한 공부만 하는 데 있다. 이를 공자는 '위인지학(爲人之學)'의 공부라고 했다. ... 반면 마음을 살찌우는 공부, 자기 자신을 성찰하는 데 필요한 공부를 공자는 위기지학(爲己之學)의 공부라고 했다. 오늘날 청소년이나 대학생들은 위기지학의 공부를 하지 않는다. 토플과 토익 공부를 위해 단어나 문장, 문법을 달달 외우고 문제를 푸는 '공부 기계'가 되고 있다. 그래서 삭막한 가슴을 지닌 삭막한 인재들로 넘쳐난다. (p.282)



저자는 자녀 교육 전문가답게 교육에 관한 조언도 아끼지 않는다. 이 사회의 크고 작은 문제가 생각과 행동의 근본이 되는 인문학 공부의 부재 때문이라는 것은 알겠는데, 문제를 바로잡겠다고 인문학 공부를 하자니 그 길이 하도 넓고 멀어 머리가 아찔하고 마음이 바쁘다. 과연 얼마나 동참할까 생각하면 아득하지만, 일단 나부터 시작한다는 마음가짐으로 공부를 해나가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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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 필요할 때 - 알랭 드 보통 인생학교 소설치료사들의 북테라피
엘라 베르투.수잔 엘더킨 지음, 이경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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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제목 그대로 '소설이 필요할 때'마다 항목을 찾아서 읽어보면 좋을, 일종의 사전이다. 그것도 모르고 첫 장부터 읽다가 뒤늦게 이 책의 읽는 법을 깨닫고 책 뒤에 실린 '증상 리스트' 색인을 참조해가며 읽었는데 재미가 쏠쏠하다. 이를테면 짝사랑을 하느라 온종일 마음이 싱숭생숭할 때는 '짝사랑할 때'를 찾아본다. 



... 문학 안에는 사랑해달라고 하지도 않은 사람을 말 그대로 죽도록 사랑하는 고통에 찬 어리석은 영혼들이 넘쳐난다. 결코 아름다운 광경은 아니다. 이런 무리 중에서도 최악이 <젊은 베르터의 고뇌>의 주인공 베르터다. 그는 섬세한 영혼의 소유자로, 농부의 딸인 롯테를 사랑한다. 하지만 이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다. 둘이 만났을 때 이미 그녀는 좋아하는 약혼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 혹시 당신이 짝사랑으로 빚어진 슬픔을 즐기는 유형이라면 부탁하건데 <젊은 베르터의 고뇌>를 내려놓아라. (pp.332-3)



짝사랑할 때 읽어보면 좋을 소설로 앤 패챗의 <벨칸토>, 괴테의 <젊은 베르터의 고뇌>, 토마스 하디의 <광란의 무리를 멀리하고>가 나와 있다. 이 중에 내가 아는 소설은 괴테의 <젊은 베르터의 고뇌>가 유일하다. 아무리 짝사랑의 열병이 대단해도 베르터처럼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는 않을 것 같다(그래서도 안 된다). 답변이 썩 만족스럽지 않은 관계로 '더 찾아보기'에 나온 다른 색인을 찾아봐야겠다. '사랑의 열병을 앓을 때'는 어떨까.



... 당신이 이런 열병으로 고통받는 중이라면 열병의 대상을 현실에서 책으로 바꿔보라. (피카소와 모딜리아니, 프루스트, 지드와 같은 시대에 활동했던) 콕토는 당대의 예술계에서 "경박한 왕자"로 불렸으며 스스로 이런 열병을 수도 없이 부채질하곤 했다. 그의 감각적인 산문도, 종잡을 수 없는 상상력도 모두 매혹적이다. <앙팡 테리블>은 콕토가 아편을 끊은 직후에 썼다고 알려졌다. 그래서인지 소설 속에서 감정이 한껏 고양된 문장을 읽으면 그의 피가 약을 갈구한다는 느낌도 든다. (pp.289-90)



'열병의 대상을 현실에서 책으로 바꿔보라'니. 진작부터 해온 일이 아닌가. 처방 자체는 낯설지 않지만 추천해준 콕토의 <앙팡 테리블>이라는 작품은 신선하다. 작가가 아편을 끊은 직후에 쓴 탓인지 약을 갈구하는 느낌이 든다니. 대체 어떤 느낌일까. 중독의 대상을 아편에서 책으로 바꾼 작가가 쓴 작품이니 열병을 앓을 때 읽으면 도움이 될 것도 같다.

 


삼십 대에 읽으면 좋은 소설 베스트 10도 소개되어 있다. 



<런던 필즈> 마틴 에이미스

<와일드펠 홀의 소작인> 앤 브론테

<미들섹스> 제프리 유제니디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베스트 오브 에브리씽> 로나 재페

<인간의 굴레에서> 서머싯 몸

<목사의 딸> F.M.메이요

<정글> 업튼 싱클레어

<미스 맥켄지> 앤서니 트롤럽

<올 더 킹즈 맨> 로버트 펜 워런 (p.532)



어쩌면 읽은 책이 한 권도 없을 수가! 제목을 들어본 책도 절반이 안 된다. 내 삶이 이토록 막막하고 불안한 건 소설이라는 약을 충분히 처방받지 못한 까닭일까. 부지런히 읽어야겠다.



이밖에 '가장 친한 친구와 사이가 틀어졌을 때', '가족에 맞설 때', '감기에 걸렸을 때', '갑자기 떠나고 싶을 때', '게으를 때', '결혼할 때', '경기침체일 때' 등 누구나 한번쯤 겪어보고 고민해보았을 시시콜콜한 일들에 대한 처방이 나와 있다. 독서 치료, 북테라피라는 개념이 낯설어도 소설을 읽고 동기부여가 되거나 치유받은 경험은 누구나 한번쯤 있을 터. 소설의 힘은 믿지만 구체적으로 언제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모르는 분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단, 영미권 소설 위주라는 점은 감안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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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7-02 2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국내에서 콕토가 생소한 작가로 분류되지만, 젊은 시절부터 글을 써서 천재 소리 들었어요. 그림도 그리고, 자신이 직접 영화 시나리오를 써서 제작에도 참여했습니다.

키치 2015-07-02 22:25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제가 몰랐던 사실을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
 
마음에 박힌 못 하나 - 곽금주 교수와 함께 푸는 내 안의 콤플렉스 이야기
곽금주 지음 / 쌤앤파커스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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콤플렉스를 마음에 박힌 못 하나에 비유하다니. 책 제목이 참 시적이다. 일반적으로 열등감을 뜻하는 말로 사용하는 콤플렉스(complex)의 원래 뜻은 '복잡한, 복합체'로 열등하다는 의미는 없다. 인간의 마음은 수많은 콤플렉스로 구성되어 있으며 콤플렉스가 성격을 규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콤플렉스를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과도하게 의식하여 자기를 비하하거나 때로는 타인을 공격하고 괴롭히는 변명으로 사용한다. 키가 작든, 얼굴이 못났든, 부모로부터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했든, 그것은 그저 나란 인간의 넓은 마음에 박힌 사소한 못 하나일 뿐인데 말이다.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인 저자 곽금주는 신화와 문학작품을 심리학의 관점으로 들여다보는 방식을 사용해 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대표적인 콤플렉스를 소개한다. 콤플렉스라고 하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엘렉트라 콤플렉스밖에 몰랐는데, 저자에 따르면 남자가 되고 싶은 여자의 심리를 나타내는 '다이아나 콤플렉스', 불평과 불만으로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트롤 콤플렉스', 의미없는 노동을 반복하는 '시시포스 콤플렉스', 정상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권태를 느끼는 '파우스트 콤플렉스' 등 콤플렉스의 종류가 상당히 많다. 


놀랍게도 이 많은 콤플렉스 대부분을 가지고 있거나 경험한 적이 있다. 남아선호사상이 강한 집안에서 딸로 태어난 것을 비관해 스스로 부모님께 아들 노릇하려 애쓰고 남성적인 것을 선망하면서도 거부하는 모순적인 감정이 있는 것을 보면 '다이아나 콤플렉스'가 있고, 학생 때는 주어진 공부를 열심히 하고 사회에 나와서는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다가 한때 뒤늦은 오춘기를 겪은 걸 보면 '시시포스 콤플렉스'도 있었다. 혼자서 생각은 많이 하지만 공적으로 자기 주장을 하는 건 꺼리는 걸 보면 대중에 묻어가려는 '폴로니어스 콤플렉스'도 있고, 대의에 헌신하겠다는 꿈을 버리고 하루하루 밥벌이하는 데 급급한 걸 보면 '요나 콤플렉스'도 있다. 이제보니 콤플렉스 덩어리였군!


살면서 이런저런 일 겪고 이런저런 사람 만나다 보면 수없이 못박히고 피흘리는 게 당연한 일. 못 하나 박힐 때마다 우는 소리 내고 끙끙 앓던 내가 새삼 알게된 콤플렉스에 기가 죽거나 화가 나는 게 아니라 웃음이 나는 걸 보면 이젠 내 마음의 살이 제법 굳은 모양이다. 심리학의 장점 중 하나는 내가 겪은 개별적인 일이 많은 사람들이 이미 겪었거나 겪고 있는 보편적인 일이라는 것을 가르쳐준다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콤플렉스가 있지만 콤플렉스 때문에 평생 힘들어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콤플렉스를 역으로 이용해 잘 사는 사람도 있다(예를 들면 코미디언들이 그렇다). 내가 가진 콤플렉스를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까. 찬찬히 생각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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