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당신이 옳다 - 이미 지독한, 앞으로는 더 끔찍해질 세상을 대하는 방법
자크 아탈리 지음, 김수진 옮김 / 와이즈베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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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을 대표하는 지성 자크 아탈리는 이 책에서 '나는 이제 지쳤다'고 선언한다. 오랫동안 세계와 유럽, 조국 프랑스를 개혁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벌였지만, 정치는 나아지지 않고 경제는 나빠지기만 하며 사회 문제는 점점 복잡해지고 심각해질 뿐이다. 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기에 그는 각 개인에게 요청한다. 더 이상 다른 사람에게 아무것도 기대하지 말고 '자기 자신이 되기'를! 


저자는 사람들을 세 부류로 나눈다. 첫째는 자기 자신이 되기를 체념하거나 꿈조차 꾸지 않고 남들이 정해준 모습대로 사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두렵고 게으르고 수동적인 생활에 안주한다. 둘째는 비판하고 시위하고 저항하며 분노를 표하는 것으로 자신이 수동적인 삶에서 벗어났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분노를 표할 뿐 실질적으로 행동을 취하지는 못한다. 셋째는 남이 정한 운명을 거부하고 그들에게 얽매이지도 않으며 '자기 자신 되기'를 택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마음속에 유토피아를 간직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한다'. 


자기 자신 되기를 택한 사람들은 아주 많다. 예술가들도 있고, 사상가들도 있고, 기업가들도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스티브 잡스처럼 유명한 이들만 있는 건 아니다. 평범한 샐러리맨에서 사회활동가로 변신한 사람도 있고, 빈민촌에서 값싼 임금을 받고 노동을 하는 대신 스스로 사업을 벌인 사람도 있다. 남들이 정한 운명이나 사회가 요구하는 삶을 거부하고 자기가 스스로 있기를 원하는 곳에 가서 자기 자신이 되거나 자기가 있는 곳을 자기 자신이 되기에 충분한 장소로 바꾼다면 그 모든 것이 자기 자신 되기의 범주에 속한다.


자기 자신 되기는 '사건', '휴지기', '길'이라는 세 단계가 필요하다. '사건'은 안온한 일상으로부터 벗어나 자기 자신이 되고 싶은 의지나 욕구가 발현되는 계기다. '휴지기'는 기존의 자기 삶으로부터 단절되어 침묵과 집중, 명상을 하는 과정이다. 휴지기 동안에는 자신의 삶에 가해진 속박과 한계를 파악하고, 스스로를 존중하고, 자신의 고독을 인정하고, 자신의 삶이 유일한 것이며 각자 특별한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마침내 자신의 참모습을 발견해 스스로 삶을 선택하는 다섯 단계의 '길'을 걷게 된다. 


모든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는 그 어떤 경우에도 '체념하고 요구하는 자'가 되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그 대신 창조자가 되어 자신이 지닌 고유한 가치와 열망에 따라 정의한 '나만의 의미 있는 삶', 즉 어느 누구도 똑같은 방법으로 디자인해낼 수 없는 삶을 사는 것을 말한다. (p.197)


이 중에 나는 자신의 유일성을 성찰하는 네 번째 단계가 인상적이었다. 인간은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태어나 다른 능력과 개성을 가지고 다른 운명을 사는 것이 마땅할 텐데, 어째서 다들 똑같은 모습이 되고 똑같은 능력과 개성을 가지길 원하며 똑같은 삶을 살길 바랄까. 마음에 피어오르는 꿈이나 욕망을 체념하지도 말고 현실을 비관하지도 말고 오롯이 그것들을 실현하는 삶을 산다면 세상이 달라지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아도, 적어도 나는 지금보다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 이미 지독한, 앞으로는 더 끔찍해질 세상을 대하는 방법으로서 자기 자신 되기를 요청하는 자크 아탈리의 목소리가 내 마음속에서 애처롭게 울려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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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저항력이다 - 무기력보다 더 강력한 인생 장벽
박경숙 지음 / 와이즈베리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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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째 휴일이 더 바쁜 것 같다. 휴일이랍시고 느지막이 일어나 잠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방 안을 뒹굴뒹굴하다가 정신을 차리면 점심 먹을 시간. 점심을 대충 챙겨 먹고 나면 밀린 드라마 봐야지, 인터넷 서핑 해야지, 쇼핑몰 구경도 해야지, 서평도 써야지... 평일엔 분명히 휴일 되면 공원 산책도 하고 겨울옷 정리도 하고 대청소도 할 생각이었지만, 막상 휴일이 되고 보니 자잘한 일을 하느라 더 바쁘다. 


<문제는 저항력이다>는 미루고 피하고 변명하며 오늘도 하지 않는 심리에 관해 설명한다. 대한민국 1호 인지과학자인 저자는 2013년 <문제는 무기력이다>를 세상에 내놓고 한동안 다음 책을 쓰지 못 했다. 안정적인 교수직을 버리고 스스로 작가의 삶을 택했음에도 불구하고 글쓰기를 미루며 다른 일에 몰두하느라 그랬다. 저자는 당장 해야 하고 중요한 일인데도 차일피일 미루고 피하고 변명하며 3년이란 시간을 보낸 경험을 토대로 이 책을 썼다. 미루기, 피하기, 변명하기. 어째 셋 다 내가 참 잘하는 일이다.


간절히 원하는 것이 있지만 하지 못해 우울하고, 답답하고, 자괴감과 죄책감, 수치심, 분노, 슬픔에 시달려 마음이 편치 않다면, 마음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 살펴봐야 할 것이다. 당신 스스로 '저항력'이라는 '심리적 장벽'을 만들어할 일은 제쳐두고 자신과의 전쟁을 벌이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pp.9-10)


저자는 전작 <문제는 무기력이다>에서 소개한 무기력과 저항력의 차이를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나오는 낙타, 사자, 어린아이 개념에 빗대 설명한다. 니체는 이 책에서 인간의 정신 성장과 인류 역사를 낙타, 사자, 어린아이 단계로 분류한다. 낙타는 주인이 시키는 대로 주인에게 평생 봉사하다가 생을 마감한다. 낙타는 스스로 일을 도모하지 않고 남이 하라는 대로 하면서 살기 때문에 무기력에 시달릴 순 있어도 저항력을 가지진 않는다. 사자는 스스로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어 산다. 내면에 할 수 있는 힘이 있으므로 무기력하지는 않지만, 스스로 거부하는 힘 또한 존재하기 때문에 저항력을 가진다. 낙타가 '하지 못한다'면 사자는 '하지 않는다'.


하기 싫으면 안 하면 된다. 그런데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포기되지도 않는다. '해야 해'라고 말하는 자아와 '하기 싫어'라고 거절하는 자아가 힘겨루기를 하고, '하고자 하는 나'와 '하기 싫은 나'가 마음을 무대로 싸우는 꼴이다. (p.23)


저항력은 '해야 해'라고 말하는 자아와 '하기 싫어'라고 거절하는 자아가 힘겨루기를 하는 상태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즉, '하기 싫어'라는 마음이 크다는 것은 '해야 해'라고 자기 자신에게 되뇌는 힘이 그만큼 크다는 것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보면 낙타가 사자가 된 후 용을 만나는데, 용은 사자에게 '너는 반드시 ~해야 한다'라는 의무를 준다. 용의 명령을 이기지 못할 때 사자는 그것으로 그치거나 나쁘게는 낙타로 돌아간다. 


저항력을 이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해답도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찾는다. 이 책에서 니체가 인간의 정신 성장의 궁극적인 단계로 본 것은 어린아이다. 어린아이가 놀이를 즐기듯이 좋아하는 일에 몰입하면 저항력을 이길 수 있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도 있듯이 일단 시작해보는 것이 좋다. 감당하기 힘들어 보이는 큰일은 감당하기 쉽도록 잘게 쪼개서 조금이라도 해보는 것이 좋다. 글쓰기가 업이라면 하찮아 보이는 문장이나마 한 줄이라도 쓰는 것이 저항력을 이기는 밑거름이 된다.


몰입과 숙달은 우리를 창조성으로 이끄는 두 개의 길이다. 몰입은 어려워도 숙달은 그보다 쉽기 때문에 스미스의 그 주장은 우리에게 새로운 희망을 던져 준다. 그러므로 저항을 이겨 내기 위해서는 숙달되고 습관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반복과 숙달, 습관이 창의성을 만들고 그 창의성이 우리를 장인에서 예술가로 성장시킬 것이다. (p.306)


저항력은 또한 A라는 일을 하다가 B로 넘어갈 때 생기기 쉬우므로 가능한 한 변화하는 상황을 만들지 말고 한 가지 일을 꾸준히 하는 것이 좋다.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생산성을 높이려면 숙련도를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가지 일을 꾸준히 하면 능숙하게 할 수 있게 되어 피하려는 마음이 들지 않고, 꾸준히 하는 습관이 들면 미룰 마음이 들지 않는다. 생각해보니 이 황금 같은 휴일에 방에 처박혀 서평을 쓰는 것도 몇 년 동안 꾸준히 서평을 써온 습관 덕분이며, 책 읽고 글 쓰는 일이 (글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어렵지 않아졌기 때문인 것 같다. 몰입과 습관의 힘을 새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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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확장하다 - 사고력, 판단력, 기억력을 최대로 높이는 법
슐로모 브레즈니츠.콜린스 헤밍웨이 지음, 정홍섭 옮김 / 흐름출판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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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능력은 지능의 여러 면을 한데 모아 실제 방법에 적용하는 능력이다. 우리는 훈련을 통해 뇌 능력을 최대화함으로써, 특히 나이가 들어도 뇌가 민감하고 적절한 지각력을 유지하게 할 수 있다. 뇌 능력의 최대화란 그저 뇌를 더 자극하거나 능력을 향상하는 법에 대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중략) 이것은 세상의 가치를 정확히 평가하면서 살아가는 법을 말한다. 일상생활에서 모든 일을 더 잘하는 법, 즉 주의해야 할 것과 주의하지 않아도 될 것이 무엇인지 알고 계획하며 올바로 결정하는 법을 말한다. (p.4)


스트레스와 뇌 인지능력 분야에서 30년 넘게 연구해온 심리학자 슐로모 브레즈니츠가 쓴 책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두뇌를 최대로 쓴다는 것의 의미를 설명하고 뇌를 최대한 사용해 인지능력을 향상시키는 방법을 알려준다. 뇌의 능력은 고정된 것이 아니다. 연습과 훈련에 의해 달라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일정 연령 이후부터 한정된 뇌의 능력을 사용하는 것은 '태도'의 문제다. 많은 사람들이 학업을 마치고 사회에 적응하면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고 여기고 학습을 멈춘다. 경험이 쌓이면 쌓이는 대로 그것이 전부라고 믿고 안주한다. 


저자는 뇌에 끊임없이 자극을 줘야 뇌의 능력이 향상된다고 설명한다. 자극을 주기 위해서는 무언가에 도전하고 새로운 것을 배우길 멈추지 말아야 한다. 학업을 마쳤더라도 독서를 하거나 언어를 배우거나 더 높은 학위에 도전한다. 쉴 시간이 생기는 대로 여행을 하거나 운동을 하거나 새로운 취미를 찾아 몰두한다. 뇌는 더 복잡한 일을 할수록, 여가활동을 할수록, 운동할수록 능력이 향상된다. 책상 앞에 앉아서 공부만 하거나 일만 해서는 인지능력이 높아지지 않는다.


책을 읽는 데 필요한 상당한 인지적 노력과 텔레비전에 필요한 것을 비교해보라. 눈 속에서 여명이 붉게 밝아오는 한 여인을 상상하기보다 텔레비전을 켜면 푸른 눈이 아름다운 여인이 우리 앞에 나타난다. 어떤 어셈블리도 필요하지 않다. 마음이 창조하기보다 반응한다. 인지적 노력은 제로에 가깝다. (p.253)


독서는 뇌 능력을 향상시킨다. 독서는 흰 종이 위에 있는 검은 표시들을 보고, 그것들의 의미를 해독하고, 이전 기억들을 분류하고 떠올리고 상상하는 등 뇌의 다채로운 활동을 요한다. 심지어는 종이 위에 쓰여있지 않은 저자의 의도나 행간의 의미까지 파악해야 한다. 텔레비전 시청은 텔레비전 앞에 앉아서 스크린 위에 떠오르는 이미지를 그저 보기만 하면 된다. 보는 사람이 이미지를 정확히 해석하고 충분히 이해했는지는 중요치 않다. 프로그램이 끝나면 그걸로 끝이다. 뇌가 하는 일이 많지 않다. 


독서 말고도 운동하기, 취미 생활 즐기기 등 뇌 능력을 향상할 수 있는 방법이 이 책에 다수 소개되어 있다. 멀게만 느껴졌던 뇌 과학의 세계를 접할 수 있어 흥미로웠고, 나이가 들수록 쇠퇴한다고 여겼던 뇌 능력을 연습과 훈련으로 향상시킬 수 있다고 해서 안심이 되었다.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독서가 뇌 능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된다고 하니 뿌듯하다. 앞으로도 열(심히) 독(서) 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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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라디오 2016-03-07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ㅎ
 
우주의 통찰 - 위대한 석학 21인이 말하는 우주의 기원과 미래, 그리고 남겨진 난제들 베스트 오브 엣지 시리즈 4
앨런 구스 외 지음, 존 브록만 엮음, 이명현 감수, 김성훈 옮김 / 와이즈베리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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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도서를 즐겨 읽는 편은 아니다. 이과도 아니고, 학창 시절에도 과학 과목을 잘 못 했다. 그런데 최근 <마션>을 읽고 우주에 관심이 생겼다. 우주에 관한 지식이 생존에 도움이 되고 창작의 씨앗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그래서 엣지 재단에서 나온 <우주의 통찰>을 읽었다. 역시나 쉽진 않았다. 겨우 발췌독한 수준이다. 하지만 순환 우주론, 급팽창 이론, 초끈이론 같은 어디선가 들어본 용어들의 뜻과 학계에서 지니는 의미를 알게 되었다. 우주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들이 요즘 어떤 문제에 관심 있는지도 알게 되었다. 근데 그게 나처럼 우주에 대한 관심이며 지식 없이 그저 일하고 책 읽고 글 쓰는 사람의 고민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우주가 가깝게 느껴졌다.


이 책은 엣지 재단에 속한 석학 21인이 우주의 기원과 미래에 관해 연구한 내용이 나온다. 엣지 재단은 오늘날 세상을 움직이는 석학들이 한데 모여 자유롭게 학문적 성과와 견해를 나누고 지적 탐색을 하는 모임이다. 학계의 최신 이슈와 유명 학자들의 연구를 알 수 있어 저널을 읽는 것 같기도 하고 심포지엄에 참석한 듯하기도 하다. 나처럼 우주에 관심이 막 생겼는데 우주과학 개론부터 공부할 엄두는 못 내는 독자에게 제법 매력적인 가이드가 되어준다.

초반부에는 우주론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연구 결과와 견해가 나온다. 우주의 기원과 미래를 다루는 우주론은 현재 순환 우주론과 급팽창 이론이라는 두 개의 이론이 대결하는 양상을 보인다. 순환 우주론은 우주는 진화하며 진화는 순환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우주의 팽창과 냉각이 주기적으로 반복된다고 설명한다. 급팽창 이론은 아주 작은 상태에서 급팽창하여 만들어진 우주가 최종적으로는 균질하고 평탄한 상태에 이를 것이라고 설명한다. 

중요한 것은 어느 이론이 참인지를 가리는 것이 아니다. 후반부에 이르면 우주론을 넘어 우주를 연구하는 의미, 나아가 과학의 역할에 관한 학자들의 성찰이 이어진다. 영국 왕립학회 회장을 역임한 천체물리학자 마틴 리스는 우주 연구가 일반인이 쉽게 상상하지 못하는 '머나먼 미래'를 상정하기에 의미가 있다고 설명한다. 오늘날 과학은 문명의 눈부신 발전에 이바지한 반면, 핵 개발이나 생명공학으로 인한 생태계 교란 같은 부작용도 낳고 있다. 모든 학문을 통틀어 가장 머나먼 미래를 상정하는 우주 연구자들은 과학과 문명에 대해 조심스럽게 접근할 의무가 있고 그는 충고한다.

이탈리아의 이론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는 '과학적 사고가 우리가 해답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상기'하는 점이야말로 종교가 하지 못하는 과학의 역할이며 과학의 핵심이라고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과학자는 과학 외에 인문학 등 다른 학문 분야에 대해 열린 자세를 가져야 한다. 과학자는 아니지만, 인문학과 훨씬 가까운 사람으로서 과학과 인문학은 타협하기 어려운 학문 분야라고 여겼던 내 생각이 편협하게 느껴졌다. 우주는 물론 인류와 학문에 관해서도 대범한 스케일로 접근하는 우주 연구자들의 자세가 마음을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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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공존 - 숭배에서 학살까지, 역사를 움직인 여덟 동물
브라이언 페이건 지음, 김정은 옮김 / 반니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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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동물과 친하지 않다. 집에서 반려동물을 키운 적도 없고, 하다못해 어릴 적 학교 앞에서 파는 병아리를 사서 길러본 적도 없다. 동물원이나 수족관에 가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원래 있어야 하는 곳에서 떨어져 나온 동물들이 좁은 공간에 갇혀 사람들의 눈길 세례를 받는 게 불쌍하다. 그렇다고 대단한 동물 애호가인가 하면 그건 아니라서 고기는 먹는다(그것도 아주 잘). 


동물을 가지고 놀고, 보고 즐기는 존재로는 보지 않아도 먹는 존재로는 보는 내 시선이 모순적이라는 걸 깨달은 건 <위대한 공존> 덕분이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선사학 분야의 권위자 브라이언 페이건이 쓴 을 이 책은 인류와 동행하며 역사에 크게 기여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여덟 동물에 대해 신화와 역사,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설명한다.


인간은 다른 종을 억압하고 길들여서 인간의 역사 형성에 이바지하게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당연히 동물들은 자신들이 받는 처우에 반발할 수도 없고, 사람처럼 투표를 할 수도 없다. 이는 인간에게 책임감을 안겨준다. 동시에 도덕성과 무자비한 착취, 이타주의와 이기심이 대립하는 고통스러운 딜레마에 빠지게 한다. 이 딜레마에서 우리는 도덕적으로 변명의 여지가 없는 길을 향해 계속 나아가야 할까? (p.374)


나는 이제껏 인류의 역사가 호랑이나 사자, 늑대 같은 맹수를 정복하면서 발전한 것이라고 믿었다. 이 책에 따르면 인류가 동물을 정복한 것은 맞지만, 모든 동물이 맹수이고 정복해야 할 적이었던 건 아니다. 오히려 동물은 인류와 생태계를 함께 구성하는 '동료'였다. 사냥은 '폭력적인 정복 행위'가 아니라 '사냥감이 자신의 죽음을 기꺼이 허락함으로써 사냥꾼과 사냥감 사이의 우호관계가 증명되는 것이었다'. 사냥을 하면 사냥감에 대해 예우를 갖추며 최대한 공평하고 정당하게 배분하려고 애썼다. 그것이 자연의 순리이기 때문이다.


인간과 동물이 대등한 관계에서 인간이 일방적으로 우세한 관계로 바뀐 건 농업혁명 때문이다. 수렵과 채집을 하고 이동하며 살던 인류가 농사를 짓고 정착해 살기 시작하면서 사냥의 필요성이 줄어들었고, 같이 사냥하던 늑대는 집에서 키우는 개로 진화했다. 돼지, 염소, 양 등 발이 느려 쉽게 길들일 수 있고 빠르게 번식하는 동물은 가축화되었다. 소, 당나귀, 말, 낙타 등은 땅이 이어진 곳이라면 어디든 인간을 나름으로써 전쟁과 무역을 가능케 하고 세계화를 촉진했다. 


책의 후반부에 이르면 인류가 엎드려 절해도 모자랄 동물들의 '은혜'를 인간이 어떻게 배신했는지에 관해 자세히 나온다. 말을 하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인간에게 철저한 복종과 착취를 강요당한 동물들이 너무 불쌍해 책을 제대로 읽기가 힘들었다. 


인간은 왜 이렇게 나쁠까. 피부색이 다르고 성별이 다르다는 이유로 같은 인간끼리 차별하고 착취하는 것도 모자라, 말 못하는 동물은 생명이 없는 존재인 양 다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기를 먹지 않을 수 없고, 동물보다 인간의 권리가 우선이라고 생각하고 마는 나의 모순된 마음이 싫다. 인류가 더 이상 '위대하지도' 않고 동물과 '공존하지도' 않게 된 건 나 같은 사람 때문이 아닐까. 마음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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