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생활 좌파들 - 세상을 변화시키는 낯선 질문들
목수정 지음 / 생각정원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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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프랑스 파리에 거주하는 작가 목수정이 21세기 파리를 무대로 활동하고 있는 열다섯 명의 '생활 좌파'를 만나 인터뷰한 기록이다. 저자는 2004년부터 2008년까지 민주노동당의 당직자였다가 파리로 돌아갔다. 4년 동안 한국 정치 지형상 극좌에 속하는 정당에서 일하면서 저자는 한없이 격렬하고 그만큼 빨리 식는 좌파들을 목격했다. 파리의 좌파들은 달랐다. 이들은 극좌부터 중도까지 이념적 스펙트럼이 다양하고, 단기간의 급격한 혁명보다는 장기간 지속할 수 있는 운동을 추구하며, 여성, 노동, 인권, 문화, 예술 등 다채로운 분야에서 좌파의 목소리를 냈다. 저자는 이들에게서 일시 정지 상태의 꿈을 다시 시작할 단서를 찾는다. 


세상을 변혁하는 것이 이다지도 힘든 이유는 개개인이 자신을 변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이라고 하는 존재의 감옥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키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우리가 세상을 변혁하는 것이 힘든 것이다. (p.73) 


저자가 만난 파리의 생활 좌파들 중에는 예술가도 있고 연구원도 있고 공무원도 있고 초등학교 수위도 있다. 도시를 떠나 대장장이가 되길 택한 사람도 있고 정부 부처나 학계의 중심에서 좌파 운동을 하는 사람도 있다. 관심 분야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들은 모두 좌파다. 이들에게 좌파란 우리나라에서 흔히 빨갱이라 불리는,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를 찬양하는 정치적 입장이 아니다. 이들에게 좌파란 주어진 현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익숙한 것보다 낯선 것을 지향하며, 어떤 순간에도 인간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지 않고, 불가능해 보이는 영역까지 사유와 활동의 경계를 넓히는 자세다.


 파리의 생활 좌파들은 바로 그러한 자세로 프랑스 사회 곳곳에 딴죽을 건다. 68혁명 당시 낙태 합법화를 주도한 페미니스트는 이제 여성 노인 문제를 제기하고, 루브르 박물관 무료화 운동을 하던 저널리스트는 프랑스 박물관들에 엄청난 기부금을 내고 세계적인 사진작가의 명성을 얻은 '아해'라는 인물이 유병언(세월호 사건의 그 유병언 맞다)이라는 사실을 밝힌다. 이전까지의 삶에 브레이크를 건 사람도 있다. 정부기관 연구원은 자신의 지식이 부당한 목적에 쓰이는 것을 반대해 대장장이가 되고, 대기업에서 고액 연봉을 받던 이는 난민에게 무료로 프랑스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된다. 정당에 가입하고 집회에 나가는 것도 좋지만 생활 속에서 좌파의 생각을 실천하는 것도 좋다. 좌파란 더 아래로, 더 왼쪽으로 향하는 태도이지, 소수의 정치인, 운동가들만이 향유하는 이념이 아니다. 


한때는 일상적 실천보다 모순이 쌓이고 쌓여 폭발하는, 이른바 혁명의 방식으로만 세상을 개혁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이 둘 다 필요하다. 피에르 라비가 말한 콜리브리 정신, 즉 개개인이 자신의 일상 속에서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p.73) 


저자는 파리의 생활 좌파들로부터 생태 농업의 선구자 피에르 라비의 '콜리브리 정신'을 발견한다. 콜리브리는 우리말로 벌새라는 뜻이다. 옛날 어느 숲에 불이 나자 동물들은 달아나거나 멀리서 바라만 보았다. 그때 작은 벌새 한 마리가 나타나 나뭇잎에 물을 떠 불을 끄려 했다. 신이 벌새를 보고 "그래봐야 아무 소용없다"고 타이르자, 벌새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뿐."이라고 답했다. 저자는 벌새처럼 생활 속에서 자기만의 혁명을 실천하는 콜리브리 정신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비록 당장은 힘이 작고 세상을 바꾸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아도 그런 힘이 하나둘 모이고 수천, 수백 배로 커지면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거라고. 


자본주의가 세상을 움직이는 종교가 되면서 자본의 논리는 지구촌 사람들을 빠른 속도로 제압해갔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뭔가 다른 것을 희망하기를 점점 잊어가는 중이다. 그런 와중에 에릭은 자신이 원하는 일은 하고 원하지 않는 일은 하지 않으며 살아감으로써 간단히 세상의 종교인 자본을 제압한다. (p.39) 


저자는 거리예술가 에릭을 보면서 '자신이 원하는 일은 하고 원하지 않는 일은 하지 않으며 살아감으로써 간단히 세상의 종교인 자본을 제압'하는 삶을 예찬한다. 원하는 일 하기는 몰라도 원하지 않는 일 하지 않기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연예인 가십 듣거나 보기 하지 않기, 하릴없이 TV 홈쇼핑이나 대형 마트 구경하지 않기, 1+1이나 증정 같은 미끼 상품에 낚이지 않기. 이런 작은 일들도 생활 속에서 자본을 조금이나마 제압할 수 있는 실천이 아닐까. 이제까지 난 좌파가 아니라고, 현실정치에 관심이 없다고 고개 돌리기 일쑤였지만, 이제부터는 나만의 진보, 나만의 정치적 실천을 찾아 해봐야겠다. 그러다 보면 내 삶에도 무언가 혁명 같은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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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움직이는 수학개념 100
라파엘 로젠 지음, 김성훈 옮김 / 반니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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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업 시간에 달달 외워 풀던 시험 문제가 수학의 전부가 아니다 


숫자만 봐도 치를 떠는 전형적인 문과생인지라 이 책을 처음 받았을 때 솔직히 심드렁했다. '과연 내가 이 책의 내용을 전부 이해할 수 있을까? 끝까지 읽기나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막상 읽기 시작하니 책장이 멈추지 않았다. 위상수학, 매듭 이론 같은 들어본 적도 없는 수학 개념이 하루에도 몇 번씩 보는 지하철 노선도, 매번 엉켜 있는 이어폰 줄 같은 데에 숨어있을 줄이야. 



# 생활 곳곳에 숨어 있는 수학 개념


맨홀 뚜껑을 삼각형이나 사각형이 아닌 원형으로 만드는 이유는 뭘까? 이는 원형만이 맨홀 뚜껑을 아무리 돌려도 맨홀로 떨어지지 않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골프공에 홈이 있는 이유는 뭘까? 골프공 표면에 움푹 팬 딤플이 공 표면을 따라 흐르는 공기를 공에 더 가깝게 붙잡아 공이 더 멀리 날아가게 하기 때문이다. M&M 초콜릿이 완전한 구체가 아니라 납작하게 눌린 구체 형태인 이유는 뭘까? 이는 납작하게 눌린 구체, 즉 회전타원체가 완전한 구체보다 더 효율적으로 공간을 채우기 때문이다. 


일기예보에서 내일 비 올 확률이 40%라고 할 때 그 말은 비가 전체 시간 중 40% 동안 내린다거나, 일기예보 해당 지역의 40%에 비가 내린다는 의미가 아니라, 내일 조건과 비슷한 조건을 갖는 열흘 중 나흘 정도 강수가 있다는 뜻이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할 때 남들은 친구도 많고 잘 나가는 것 같다고 질투를 느끼는 이유도 수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어떤 네트워크건 인기가 많은 사람, 적은 사람이 있게 마련이고, 인기가 많은 사람과 친구가 될 확률이 인기가 적은 사람과 친구가 될 확률보다 높다. 이를 수학적으로는 네트워크 구조라고 설명한다. 



# 삶을 풍요롭게 만들고 싶다면 수학을 공부하라 


수학을 이용해 시험 점수를 높이는 팁도 나온다. 먼저 시험지를 훑어보면서 금방 풀 수 있는 문제만 골라 푼다. 그런 다음 남은 시간을 남은 문제의 수로 나누면 문제 당 풀이 시간을 구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풀기 쉬운 문제를 빨리 풀수록 풀기 어려운 문제를 풀 수 있는 평균 시간이 늘어나는 것을 알 수 있다. 계산대나 화장실에 긴 줄이 있을 때는 오른쪽보다 왼쪽에 서는 편이 낫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오른손잡이라서 오른쪽에 줄을 설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풍문으로 들었으면 꼼수라고 여겼을 텐데 수학적 근거가 있다고 하니 솔깃하다. 수학을 잘하면 성적만 오르는 게 아니라 삶이 더 가벼워질 수도 있겠구나. 다른 팁들도 궁금하다. 



위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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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가벼워지는 삶 - 고단한 삶에서 벗어나
기시미 이치로 지음, 장은주 옮김, 하지현 감수 / 위즈덤하우스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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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베스트셀러 <미움 받을 용기>의 저자 기시미 이치로의 새 책이 나왔다. 읽어보니 <미움 받을 용기>와 겹치는 대목이 없지 않지만, <미움 받을 용기>를 읽고 잘 이해가 되지 않았던 내용을 쉽게 풀어주어 아들러 심리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아들러 심리학의 특징은 인간의 모든 행동이 목적에서 비롯된다고 보는 '목적론'이다. 인과론이 시험 스트레스 때문에(원인) 배가 아프다고 본다면, 목적론은 시험을 피하려고(목적) 배가 아픈 증상을 만들어낸다고 본다. 삶이 고단한 것도 삶을 이루는 조건이 부조리하거나 환경이 각박해서가 아니라, 새로운 도전이나 자기답게 살기를 피하기 위해 삶이 고단하다는 핑계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같은 조건, 같은 환경이라도 180도 다른 관점과 태도로 삶을 마주하는 사람은 고단하지 않다. 


선 사람과 스쳐 지나가는 상황에서 상대가 일부러 자신의 눈을 피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똑같은 상황에서 상대가 자신에게 마음이 있어 눈을 피했다고 생각하는 사람과는 전혀 다른 세계에 살아가고 있다. 만약 후자의 경우처럼 생각하는 사람을 부러워한다 해도 실제로 자신의 견해를 바꿀 의사는 전혀 없다. 견해를 바꾸려면 자신에게 매력이 있다고 생각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려면 미지의 세계로 한 걸음을 내디뎌야만 하기 때문이다. 타인과 깊게 관계하지 않으면 상처받을 일도, 배반당할 일도 없다. 그런 험한 일을 당하지 않기 위해 불편한 라이프스타일을 고집하는 것이다. (p.67) 


목적론의 장점은 원인을 바꾸는 게 아니라 목적의 결과 나타난 행동이나 태도를 바꾸는 것이기 때문에 훨씬 쉽고 실현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행동, 나의 태도를 어떻게 바꿀까. 가장 중요한 건 인생의 의미가 나 하나 잘 사는 것이 아니라 남을 돕는 데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서 공동체 안에서만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고 자신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자신의 가치를 깨닫지 못하는 것은 타인을 적으로 보고 공동체에 공헌할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남들이 나를 '왜' 싫어할까(원인)를 따지는 게 아니라, 남들과 잘 지내려면(목적) 어떻게 해야 할까를 살핀다면 지금보다 나은 인간관계를 만들 수 있고 공동체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손님을 태우고 난 다음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운전하는 시간은 사실 '일'을 하는 게 아니랍니다. 그렇다면 제게는 언제가 '일'일까요? 바로 손님을 내려주고 다음 손님이 탈 때까지죠. 그때는 그저 막연히 차를 몰아서는 안 돼요. 언제 어디에서 손님을 태울 수 있는지 정보를 모아야 하거든요. 이런 생각으로 10년간 차를 몰면 그 후의 10년이 달라집니다. '손님이 적어서', '오늘은 일진이 나빠서'와 같은 말을 해서는 이 일을 할 수 없어요. (p.215) 


성실하게 살고 최선을 다하는 걸 부끄럽게 여겨서도 안 된다. 남에게 성실하거나 근면해 보이는 걸 두려워하는 태도는 실패했을 때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고 둘러대기 위함이다. 인용문 속 택시기사가 손님이 없는 시간이야말로 '일'이라고 표현한 것처럼, 남들 다 잘 나가는데 나만 멈춰있는 것 같은 때야말로 진정한 공부요, 일이요, 도전이요, 성공의 기회다. 그 시간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성장할 수 없다.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도 없고, 영혼을 뒤흔드는 경험을 할 수도 없다. 자신을 피해자로만 여기고 과거에서 원인을 찾으며 제자리에 멈춰 있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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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할 권리 - 품위 있는 삶을 위한 인문학 선언
정여울 지음 / 민음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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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졸업하니 가르침을 구할 스승이나 선배, 배움을 공유할 친구를 찾기 어렵다. 대학 시절 가장 존경했던 교수님은 몇 년 전 세상을 떠나셨고, 알고 지냈던 선후배나 동기들은 각자 살기 바빠 만나지 못한다.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은 서로 돕기보다 끌어내리기 일쑤다. 어쩌다 말이 통하는 사람을 만나도 직장이 바뀌거나 사는 곳이 달라지면 관계를 지속하기 힘들다. 


스승이 그립고 사람이 아쉬울 때 나는 정여울 작가의 책을 읽는다. 학교도 전공도 다르고 직접 뵌 적도 없지만, 정여울 작가의 책을 읽으면 앞으로 어떤 책을 읽고 어떻게 공부할지 사사하는 기분이 든다. 남들 다 꺼리는 책 읽고 글쓰는 삶을 택한 죄로 가시밭길을 걷는 기분, 잘 알고 있다고 위로받는 듯하다. 힘든 길인 건 맞지만 틀린 길은 아니라고, 그러니 용기를 내라고 격려받는 듯하다. 


인문학 공부의 무서운 맨얼굴은 파고들수록 '넌 지독한 무식쟁이야!'라는 것을 기쁘게 깨닫게 해 준다는 것입니다. 내가 무지함을 깨달을수록 신이 났습니다. 내가 무엇을 아는지를 깨닫는 것이 아니라 내가 무엇을 모르면서 아는 척하며 살아왔는지를 깨닫는 순간 진짜 배움이 시작되었습니다. (p.345) 


<공부할 권리>를 읽으면서는 더 많이 더 치열하게 공부하라는 자극을 받았다. 저자는 오랫동안 인문학 공부를 하면서 자기가 얼마나 무지하고 아는 척 하는 게 많은지 깨달았다. 덕분에 시간 강사라는 불안정한 밥벌이를 가지고도 버틸 수 있었다. 출판사에 보낸 원고가 돌아오거나 원래의 기획 의도와 다른 책으로 만들어져도, 독자로부터 인문학 공부를 왜 하냐는 당돌한 질문을 받아도 꿋꿋하게 이겨낼 수 있었다. 인문학을 공부하며 자신의 밑바닥을 보았기 때문에 힘든 순간이 와도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고, 무지한 자의 괴로움을 알기 때문에 그들을 위한 글을 쓸 수 있었다. 


인문학 공부를 하면서 자기가 얼마나 인간답지 못하고 정의롭지 않은지, 말만 하고 행하지 않는 일이 많은 지도 깨달았다. 고병권의 <철학자의 하녀>를 읽으며 '남들의 탐욕을 욕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나부터 탐욕의 습관을 절제하자'는 깨달음을 얻었고, 알프레드 아들러의 책을 읽으며 '진짜 내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아는 사람들은 결코 남의 것을 빼앗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욕망을 줄일 수 없으면 '다른 삶을 욕망하'고, '진짜 내 것'을 만들기 위해 더 열심히 공부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꿈을 찾아 사는 사람들은 책임을 다하지 않는 걸까요. 책임을 다하며 사는 사람들은 꿈을 완전히 잊어버린 것일까요. 우리는 이렇게 쓸데없는 일과 쓸모 있는 일을 나누고, 꿈을 찾는 삶과 책임을 다하는 삶을 나누고, 나만 잘 사는 것과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삶을 나누는 이분법적 사고 때문에 더욱 불행해지는 것은 아닐까요. (p.203) 


과 책임이 별개가 아니라는 조언도 얻었다. 저자는 이십대 후반부터 읽고 쓰고 공부하는 삶을 꿈꿨고 현재 그런 삶을 살고 있다. (나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저자와 같은 삶을 꿈꾸지만 쉬이 이루지 못하는 건 꿈과 책임을 별개로 보기 때문이다. 꿈과 현실을 외따로 여기고 일과 취미를 나누어 생각하니, 꿈은 이루기 어렵고 현실은 팍팍하고 일은 지루하고 취미는 허무하다. 그렇다면 내가 읽는 책, 내가 쓰는 글, 내가 하는 공부, 내가 하는 일과 취미를 연결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정확한 답은 모르지만 현재 내 생활을 이루는 모든 활동들이 언젠가 하나로 연결되리라는 확신은 든다. 글로든 일로든, 아니면 둘 다로든. 확신이 현실이 되는 날까지 나만의 '공부할 권리'를 열심히 누리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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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깨비 2016-04-10 0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관함에 한달 넘게 델꾸 있었는데 이제 주문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키치님 리뷰 너무 좋아서 화르륵 타올랐어요 읽고 싶다는 욕망이 화르르륵ㅋㅋㅋㅋ

cyrus 2016-04-10 1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345쪽 인용문에 공감이 됩니다. 자신의 무지함을 적극적으로 인정하는 자세는 정말 좋은 거죠.

알라딘 서재/북플은 내 생각이 담긴 글이 공개되는 공간이라서 자신의 무지함 또한 노출되기 쉽습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남의 글을 읽다가 잘못된 점이 발견되면 공손하게 알려줄 수 있어요. 상대방의 지적을 받고난 뒤에 자신이 썼던 글을 다시 읽으면 나의 무지함이 보입니다. 이러면 무지함을 깨닫게 되는 거죠. 그런데 상대방의 지적으로 인해 자신의 무지함이 들통날까봐 두려워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무지함을 깨달으면 조금은 부끄러워도 그냥 좋게 넘어갈 수 있는 상황인데, 도리어 화를 내거나 변명을 늘어놓습니다. 서재/북플에 이런 분들을 가끔씩 보게 됩니다.
 
싸우는 여자가 이긴다 - 우리 시대 여성을 만든 에멀린 팽크허스트 자서전
에멀린 팽크허스트 지음, 김진아.권승혁 옮김 / 현실문화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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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자신의 운명을 거스르거나 사회적 금기에 맞서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몹시 끌렸다. 고려의 신하이면서 역성혁명을 일으켜 조선을 세운 이성계나,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쉽고 편한 친일 대신 고단할뿐더러 목숨까지 내놓아야 하는 반일을 택한 안중근, 유관순 같은 이들의 삶이 궁금했다. 여고, 여대에 다니면서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 차별에 저항한 글로리아 스타이넘, 시몬 드 보부아르 같은 이들의 삶에 눈을 떴다. 허나 어디까지나 호기심 어린 시선이었을 뿐, 감히 동경하거나 흠모하지는 못 했다. 그런 말을 하자면 책임이 따를 텐데 스스로 그러한 삶을 살아낼 용기도 자신도 없었다. 


그런 나의 흐리멍덩한 정신을 번쩍 깨우는 책을 만났다. 영국의 여성 참정권 운동을 이끈 시민운동가 에멀린 팽크허스트의 자서전 <싸우는 여자가 이긴다>이다. 에멀린 팽크허스트는 1858년 맨체스터의 급진주의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당시로는 드물게 노예제에 반대하고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참정권을 인정받아야 한다고 여기는 부모님의 가르침을 받아 어릴 때부터 정치와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아무리 자유롭고 진보적인 집안에서 자랐어도, 여성을 남성의 하인이나 노예, 집안의 사유재산쯤으로 여기는 당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여성 참정권 운동에 뛰어들기로 결심하기란 어려운 일. 왜 팽크허스트는 직접 여성 참정권 운동에 뛰어들었을까. 그녀는 진보적이고 자유로운 자기 집 안에서도 남녀의 차별은 존재했다고 말한다. 어릴 적 아버지가 그녀를 보고 "얘가 남자애로 태어나지 않았어"라고 말한 일은 그녀 마음에 오랫동안 상처로 남았다. 


결혼 후 빈민구제위원회에 들어가서 겪은 일들은 본격적인 계기가 되었다. 그녀는 그곳에서 빈민 문제를 비롯해 아동 문제, 교육 문제, 노동 문제 등은 남성들이 간과하거나 신경 쓰지 않으며 여성들이 더 잘 해결할 수 있다고 느꼈다. 가령 남자는 밖에서 일하고 여자는 안에서 살림해야 한다는 인식 때문에 여자는 젊어서 노동 기회를 얻지 못하고 늙어서는 연금을 받지 못해 빈곤에 시달리는 문제, 출산과 양육의 책임을 여성에게만 떠맡기고 남성에게는 묻지도 않는 문제 등은 남성들이 관심조차 두지 않고 해결할 의지도 없기에 여성이 참정권을 얻어 여성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고 보았다.


남성들의 전투는 몇 세기 동안 세계를 피로 물들였다. 남성들은 이러한 공포와 파괴 행위에 대해 기념비와 위대한 노래와 서사시라는 보상을 받았다. 올바른 대의를 위해서 싸운 여성들은 자신들의 목숨 말고는 누구의 목숨도 해치지 않았다. 이 여성들이 어떤 보상을 받게 될지는 시간만이 알려줄 것이다. (pp.15-6)


에멀린 팽크허스트가 지적하는 영국의 사회 문제가 21세기 한국에도 존재한다는 사실이 달갑지 않다. 오히려 한국은 여성차별을 넘어 여성을 혐오하는 양상마저 나타나는 꼴이라니.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똑똑하고 적극적인 여성들은 자신의 자리에서 자기의 권리를 보호하고 의무를 다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자기 몸 하나만 지키는 게 아니라 딸린 가족들과 가까운 이웃들을 돌보고, 자신보다 더 가난하고 불쌍한 이들을 생각하며 그들에게 보탬이 되는 게 뭘지 생각한다. 마치 에멀린 팽크허스트가 그랬던 것처럼. 남자들이 기록하는 역사(history)에선 찾아볼 수 없는 '진정한' 위인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벅차기도 무겁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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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honne 2016-07-01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키치님은 이 책도 읽으셨군요!! 네이버 블로그서 뵙다고 여기서도 뵈니, 왠지 더욱 반가운 그런 느낌입니다.^^ 저도 잘 읽어볼께요!!

키치 2016-07-01 14:09   좋아요 0 | URL
thehonne님 반갑습니다!! 저 네이버 블로그에도, 알라딘 서재에도 상주하고 있어요. 자주 보아요 ㅎㅎ 이 책은 북펀드 참여한 걸 계기로 읽었는데 참 좋았어요 ^^ 덧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