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의 착한 가게 -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꿈꾸는 런던의 디자이너-메이커 13인
박루니 지음 / 아트북스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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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의 착한 가게>는 세계적인 디자인 도시 런던을 무대로 활동하고 있는 13인의 디자이너를 소개하는 책이다. 저자 박루니는 패션지 피처 에디터 출신으로 현재는 런던에서 자유 기고가로 활동 중이다. 저자가 만난 13인의 디자이너는 공정무역 운동부터 디자인, 제작 등 다양한 형태의 일을 하지만,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를 목표로 한다는 점은 같다. 여기서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란 환경과 사회, 경제 중 무엇 하나 해치지 않으면서 지속해 나가는 것을 추구하는 대안 경제의 한 형태로, 런던뿐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같은 취지의 활동을 하는 이들이 많이 있다.



실제로 나는 대학 시절 모 비영리조직에서 다양한 형태의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를 경험한 바 있다. 이 책에 지속가능한 비즈니스의 범주로 공정무역과 재활용, 디자이너-메이커, 소규모 산업, 공유경제가 나오는데, 이 중 공정무역과 재활용, 공유경제를 체험한 바 있으며, (지속가능한 비즈니스가 우연인지 필연인지) 현재는 한 디자이너-메이커 업체에서 일하고 있다. 비영리조직에서 나온지 한참 된 터라 지금 하는 일이 그 때 했던 일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 지 전혀 몰랐는데 이렇게 연결이 되다니 놀랍다. 그 시절에 했던 일을 현재 하는 일과 연결하는 방안을 생각해봐야겠다. 



여기서는 장인이나 공예가라는 호칭 대신 '디자이너/메이커'라고 한다. 디자이너이자 메이커란 뜻이다. 전처럼 스승에게 도제식으로 훈련된 게 아니라 대학에서 커리큘럼에 따라 강의식 수업으로 교육받은 디자이너라서다. 태생적으로 디자이너는 메이커, 즉 생산자와는 별개의 직업이었다. 그러나 디자인 학교에서 디자이너를 과잉 배출하면서 일자리를 찾지 못한 잉여의 디자이너들이 생계를 위해 직접 생산에 뛰어들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사회 전체에 퍼진 기성품에 대한 염증과 수공예품에 대한 향수가 현대판 장인을 배양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p.124)



정치와 경제에 대한 관심이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로 이어진 인물의 사례도 흥미로웠다. 그 인물은 바로 공정무역 양탄자 '메이드 바이 노드'의 설립자 크리스 호튼. 미술 대학을 갓 졸업하고 인도 여행을 떠난 그는 나오미 클레인의 <노 로고>라는 책을 읽고 거대 기업들의 브랜드 마케팅이 어떻게 세계를 망쳤는가에 대해 알게 된다. '누구는 북반구에서 태어나 평생을 큰 걱정 없이 천하태평하게 살고, 누구는 남반구에서 태어나 굶주림에 시달리다 길에서 죽는 현실을 타고난 운명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고 생각한 그는 공정무역을 공부하고 공정무역 조직에서 일하며 헌신했다.



크리스의 믿음은 게임 이론과 소프트 파워 이론이라는 두 가지 과학적 이론에 기반한다. 게임 이론이란 게임 참가자들이 각자 내리는 결정이 서로의 이익에 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카드 게임을 비롯해 대부분의 세 상사가 그렇다) 참가자들이 어떻게 의사 결정을 내리고, 어떤 결과가 나타날지를 수학적으로 분석하고 예측하는 이론이다. 이 이론을 응용한 연구 사례가 너무 많아 해석하기 나름인데, 크리스는 서로가 믿고 협력하는 전략을 사용하면 의심하고 비협조적인 전략보다 이윤이 증대한다고 해석한다. 소프트 파워는 물리적 힘인 하드 파워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교육, 학문, 예술 등 인간 이성과 감성의 힘이다. 즉, 강제력이나 명령이 아니라 문화나 가치, 도덕적 우위를 통해 자발적인 동의를 얻는 능력이다. 이 두 가지 이론으로 판단하면 공정무역은 가장 많은 이의 동의를 얻기 쉽고 장기적으로 승률이 가장 높은 전략이다. (p.159)



크리스가 입문(?)했을 당시 공정무역 상품은 공정한 생산가를 지불하는 것 외에 다른 상품으로서의 가치는 포기한 듯 보였다 .실제로 그가 공정무역 디자인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공정무역으로 제작되는 많은 수공품이 아름답지도 않고 쓸모도 없어 소비자들에게서 외면당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다른 공정무역 관련자들과 달리, 그는 기계로 만든 물건이나 디지털 문명을 전혀 꺼림칙해 하지 않고 수공품에 대한 환상도 별로 갖고 있지 않다. 수공업을 지지하는 이유는 기계로 대량생산하는 것보다 소량 제작이 가능하고 제작 과정이 유연해 변화에 대처하기 쉽기 때문이다. 단지 손으로 만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어처구니없는 가격을 지불해야 하는 물건에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그는 말한다. 공정무역 상품에 디자인을 입히는 것은 대중성에 대한 그의 믿음 때문이다. 옳고 그른 것은 권위기 아니라 사람이 결정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동의를 이끌어내느냐에 공정무역의 성공과 실패가 달렸다고 그는 말한다. (p.169)



대학 시절 배운 게임 이론과 소프트 파워 이론을 이 책에서 볼 줄이야. 수많은 정치학, 경제학 전공자들이 이론으로만 아는 것을 신념으로 삼고 행동으로 실천한 그가 놀랍다. 공정무역 제품에 대한 그의 생각에도 공감하는 부분이 많다. 값비싸고 디자인이 아름답지 않은 제품이 오로지 공정무역을 통해 생산된 제품이라는 이유로 팔릴 것이라는 믿음은 너무 무르다. 생산자의 이익을 보전하면서 소비자에게도 만족을 선사하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디자인을 개발한다는 그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 또한 더 많이 공부하고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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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소멸 - 인구감소로 연쇄붕괴하는 도시와 지방의 생존전략
마스다 히로야 지음, 김정환 옮김 / 와이즈베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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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서울과 인천, 경기 지역에 경쟁률이 100:1에 달하는 유치원이 있다는 뉴스를 보았다.  이런 유치원들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정원 미달인 유치원은 전국적으로 58%에 달한다고. 교육부 관계자에 따르면 유치원 원아 모집 양극화 현상은 도농 간 인구 격차 탓이며, 농어촌 지역에서 도시로 유입되는 인구가 계속 늘어나는 한 유치원 경쟁률 쏠림 현상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애는커녕 시집도 안 갔지만, 서울에 사는 사람으로서 심히 걱정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공교롭게도 오늘 읽은 <지방소멸>이라는 책이 위와 같은 문제를 다룬다. 저자 마스다 히로야는 1995년부터 2007년까지 3기에 걸쳐 이와테 현 지사를, 2007년부터 2008년까지 총무장관을 역임한 행정관료 출신이며, 2009년부터는 노무라 종합연구소 고문과 도쿄대학 공공정책대학원 객원 교수 등으로 재직하고 있는 공공행정 전문가다. 그의 저서 <지방소멸>은 2008년을 정점으로 인구 감소세에 들어선 일본이 앞으로 본격적인 인구 감소 시대에 들어갈 것이며, 대도시권을 제외한 농어촌 지역에서는 인구 감소가 이미 현실의 문제로 다가와 있다는 것을 설명하여 2014년 일본 최대 베스트셀러 경제서, 2015년 신서대상 1위에 올랐으며, 최근에는 KBS 다큐 <100세 사회의 경고>에 소개되기도 했다.



일본의 인구 감소는 지방에서 대도시권(특히 도쿄권)으로의 '인구 이동'과 깊은 관련이 있다. 일본 전체가 똑같은 비율로 인구가 감소하는 것이 아니라, 지방은 인구가 격감하지만 대도시는 지금보다 더 인구 집중이 진행될 것이다. (중략) 도쿄가 인구를 유지하는 이유는 지방에서 인구가 유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도쿄는 출산율이 매우 낮아서 인구 재생산력이 저조하다. 지방의 인구가 소멸하면 도쿄로 유입되는 인구도 사라져 결국 도쿄도 쇠퇴할 수밖에 없다. (pp.12-3) 



논리는 간단하다. 지방에서 대도시권으로 인구가 유입되면 지방 인구는 줄고 대도시 인구는 늘어난다. 이 상태에서 출산율이 줄고 지방에서 도시로의 인구 유입률이 늘어나면 언젠가는 지방 인구가 사라지고 도시 인구도 증가 추세에서 감소 추세로 변화, 결국에는 사라지게 된다. 이는 한국의 문제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것이 앞에 예로 든 유치원 문제다. 농어촌 지역에서 도시로 유입되는 인구가 늘어나면서 농어촌 지역의 유치원은 정원 미달, 대도시 유치원은 100:1의 경쟁률이라는 양극화 사태를 맞이한 것이다. 지방소멸 문제는 지방 사람들만이 아니라 도시 사람들에게도 안좋은 영향을 미친다. 도시 인구가 늘면 일자리, 주거, 육아 등을 둘러싼 경쟁이 치열해지고, 열악한 생활환경으로 인해 결혼, 출산, 주택 구입, 소비 등을 포기하는 사람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이밖에 베드타운 신도시가 위험하다, 노인의 연금에 의존하던 지방 편의점과 주유소가 줄줄이 도산한다, 대도시는 지방의 젊은이를 빨아들여 저임금으로 쓰고 버리는 인구의 블랙홀이다, 지방 경제를 지탱하던 의료, 복지 분야 일자리가 축소된다, 인구감소를 멈추려면 많은 이민을 받아들여야 한다, 성장과 개발을 이야기하는 정치가를 멀리하라 등 충격적인 내용이 많다. 이 책을 읽고나서 한국 뉴스와 일본 뉴스를 보니 보이는 것이 다르고 느끼는 것이 다르다. 확실히 일본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노인 대상의 복지나 개호에 대한 논의가 활발했는데 최근에는 이민으로 포커스가 옮기려는 듯 하다. 한국은 앞으로 어떤 변화를 맞이하며 어떻게 대처할까. 많은 것을 생각케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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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이란 무엇인가 - 데카르트, 칸트, 하이데거, 가다머로 이어진 편견에 관한 철학 논쟁을 다시 시작한다
애덤 아다토 샌델 지음, 이재석 옮김, 김선욱 감수 / 와이즈베리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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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이란 무엇인가>의 저자 애덤 샌델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의 아들이다. "아버지 마이클 샌델의 사상에 대한 철학적 갈증을 해결해 주는 책"이라는 광고 문구를 보고 덥석 구입했으나, 솔직히 이 책, 읽기가 결코 쉽지 않다. 아버지 마이클 샌델의 책이 대학 강연에 기반하고 있어 사례가 많고 대중에게 친밀한 문장으로 쓰인 데 반해, 이 책은 형식이 정통 논문에 가깝고 문장도 딱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 애덤 샌델의 주장이 시사하는 바는 이해하려고 노력해볼 만하다.



편견이란 무엇일까? 사전에 따르면 공정하지 못하고 한쪽에 치우친 생각을 뜻한다. 헌데 단지 이뿐일까? 저자는 편견에 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것을 권한다. 편견은 데카르트, 칸트, 하이데거, 가다머로 이어지는 오랜 논쟁 주제로, 대부분의 학자들과 대중은 편견을 진리와 다른, 특정 견해나 입장에 구속된 자유롭지 못한 생각으로 정의하며 옳지 않게 여긴다. 저자는 이에 대해 반기를 들며 편견 또한 진리일 수 있고 자유와도 모순되지 않는다는 점을 어필한다. 그 근거가 무엇일까.



저자는 하이데거와 가다머의 저작을 살펴봄으로써 편견의 새로운 가능성을 시사한다. 특히 가다머는 "계몽기 이전까지는 편견이라는 개념이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부정적 의미를 갖지 않았다"고 언급하며 편견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에 도전한 바 있다. 저자는 편견에 대한 경멸적 인식에는 편견이 특정 권위나 영향력에 의존하고 있으며, 개인이 처한 삶의 환경으로부터 비롯된 정황적 판단이라는 근거가 내재해 있다고 지적하며, 이중에서 특히 정황을 고려한 판단을 무조건 배척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설명한다.



예를 들면 이렇다. 존 F.케네디나 린드 존슨 대통령, 마틴 루터 킹 주니어 같은 정치적 인물의 연설이 많은 청중에게 어필한 것은 이들이 청중과 공통의 유대감을 형성하기 위해 청중의 일상을 묘사하거나, 익숙한 관행을 언급하거나, 일부러 방언을 사용하는 등 청중의 '편견'에 호소한 덕분이다. 이러한 정황 내지는 배경 지식을 무시하고 연설을 했다면 청중에게 어필하지 못하고, 연설을 통해 전하고자 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실패했을 가능성이 높다.



'편견에 대한 편견'은 또한 앎이나 배움에 대한 의지를 저해할 수 있다. '지혜에 대한 사랑', '알고자' 하는 욕망은 인간에게 내재된 본능이며, 이러한 본능을 집요하고 끈질기게 추구하는 것은 '모든 것의 근거와 배경을 이해하는' 노력과 다르지 않다. 편견을 없애기 위해 억지로 모든 것이 똑같고 아무런 배경지식이 없는 상태를 만들기보다, 어떤 편견이 존재하며 그러한 편견은 왜, 어떻게 생겼는지 이해하는 것이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할 것이라는 저자의 주장은 귀기울여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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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는 뇌 - 디지털 시대, 정보와 선택 과부하로 뒤엉킨 머릿속과 일상을 정리하는 기술
대니얼 J. 레비틴 지음, 김성훈 옮김 / 와이즈베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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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일어나 벼르고 별렀던 책장 정리를 했다. 정리라고 해봤자 책이 6층짜리 책장 하나 정도밖에 없고 평소에 수시로 책장 정리를 하는 편이라서 많은 양은 아니지만 중고서점에 한 박스 팔 만큼은 나왔다. 가볍게 살기, 단순하게 살기가 삶의 모토인데도 정리할 때마다 남는 것, 버릴 것이 생기는 이유는 뭘까. 1만 시간의 법칙'을 창시한 인지심리학자 대니얼 레비틴의 신작 <정리하는 뇌>에서 그 이유를 찾았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의 뇌는 한 번에 한 가지 일에만 집중하도록 진화했다'. 기술과 정보가 과잉된 오늘날에도 뇌는 동시에 여러 가지 일에 집중하기 어렵다. 운전을 하면서 라디오를 듣고, 신호를 확인하고, 오늘 점심엔 뭘 먹을까 고민하는 등 멀티태스킹이 가능한 경우도 더러 있지만, 실제로는 많은 일을 동시에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한 번에 하나씩 일을 처리한다. 한 번에 하나의 일만 처리하는 뇌 때문에 우리는 정리를 해야 한다. 무엇이 더 좋고 덜 좋은지,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지 범주화하고 선택하지 않으면 뇌에 과부하가 걸린다. 


자기 전공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른 사람들, 특히나 창의력과 효율성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진 사람들은 뇌 바깥의 주의 시스템과 기억 시스템을 최대한 활용한다. 그중에는 과감하게 저차원적인 기술을 활용해 모든 것을 철두철미하게 관리하는 사람들이 놀라울 정도로 많다. ... 이 책을 쓰면서 크게 놀란 점이 있다. 이런 사람들 중에는 펜과 메모지나 카드를 늘 가지고 다니면서 손으로 직접 적어 메모를 하고, 이 방법이 요즘에 흔하게 볼 수 있는 전자기기를 이용하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이고 만족스럽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았다. (p.115)


뇌가 지는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 정리는 필수다. 책에는 집 안을 비롯해 사회세계, 시간, 정보, 비즈니스 세계 등 주변 환경을 정리함으로써 뇌의 과부하를 막는 방법이 체계적으로 설명되어 있다. 지금 당장 실천할 수 있는 정리 기술로는 메모가 있다. 저자는 성공한 사람들 중에 메모광이 많다고 설명한다. 페이스북의 최고운영책임자이자 <린 인>의 저자인 셰릴 샌드버그는 해야 할 일 목록을 챙기기 위해 늘 노트와 펜을 가지고 다닌다. 글로 적는 행위는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을 정리하고 몰아내며 궁극적으로는 할 일에 집중할 수 있게 해준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시시콜콜 정리할 필요는 없다. 저자는 작업기억과 주의력의 범주가 현실적으로 네 개가 한계이므로, 실생활에서 범주를 만들 때 많아야 네 개로 제한하라고 조언한다. 이를테면 책을 작가명, 출판사 또는 도서관에서 쓰는 도서 분류체계에 따라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독서 취향에 맞게 문학/비문학/실용/만화 정도로만 구분하는 것이다. 나는 소설/인문사회/경제경영/소장용으로 항목을 정해놓고, 앞의 세 항목 중에 좋은 책은 소장용으로 넘기고, 별로인 책은 중고서점에 팔고, 새 책을 사들이는 식으로 책장을 관리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수시로 정리하니 책을 사고 또 사도 책장에 빈 곳이 생기고 또 사들일 여유가 생길 수 밖에. 나의 정리법이 틀리지 않았다고 하니 마음이 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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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게 필요한 일곱 명의 심리학 친구 - 얕고 넓은 관계 속에서 진짜 내 편을 찾고 싶은 딸들을 위한 심리학
이정현 지음 / 센추리원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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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오니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고 했던 게 무색하게도 매일같이 폭식을 하고 있다. 일이 바쁘다고 먹고, 연애가 잘 풀리지 않는다고 먹고, 심지어는 너무 덥다고, 땀 많이 흘렸다고 먹고, 음식점 에어컨이 시원하다고 먹는다. 잘 보지도 않는 텔레비전을 어쩌다 보면 웬 먹방, 쿡방이 그렇게 많은지 비슷비슷한 이름의 쉐프들이 나와서 온갖 요리를, 그것도 나같은 요리 초보조차 시도해볼 만한 쉬운 요리를 선보인다. 자동적으로 그날 저녁, 그 다음날 저녁 메뉴까지 결정되는 편리한 세상이라니. 오로지 먹고 또 먹기 위해 사는 나날이다.


이런 내 눈에 <일곱명의 심리학 친구>라는 책의 서문이 들어왔다. '다이어트에 대처하는 자세를 보면 그 사람이 자신의 삶을 어떤 스타일로 이끌어나가는지 알 수 있다'니. 난 다이어트고 뭐고 미친듯이 먹고 있는데? 10년 넘게 정신과 의사로 활동해오며 거식증, 폭식증 등 식이장애를 가진 여성들을 치료해온 저자는 식이장애의 가장 큰 원인은 식습관 자체가 아니라 그 사람의 감정, 특히 어린 시절 충족되지 않은 결핍이라고 설명한다. 스트레스만 받으면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일단 먹고 보는 나의 태도는 대체 어린 시절의 어떤 결핍에서 비롯된 것일까.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자신만의 감정 다루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감정을 다루는 방법을 주로 배우는 환경은 가족, 그 중에서도 엄마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 양심적이고 도덕적이며 어느 정도 이상의 교육 수준을 가진 엄마들이 주로 많이 쓰는 방법이 바로 '감정 축소'다. 이러한 유형의 엄마는 아이의 감정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 나머지 대개 무관심하거나 무시한다. ... "괜찮아, 주연이는 늘 잘하잖아." "엄마 아빤 주연이를 믿어" "선생님께 혼날 수도 있지 뭐" "어떻게 모든 친구가 널 좋아하겠어. 그래도 너를 좋아해주는 친구가 많잖아?" "힘든 과정을 통해서 배우는 게 있을 거야"라는 말로 수면 위로 떠오르는 불안한 아이의 감정을 묻어버린다. 아이가 어려움을 툴툴 털고 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불안하고 두렵고 무서운 감정들을 별것 아닌 듯 축소해 버린다. (pp.35-6)



식이장애는 착해야 한다, 예뻐야 한다, 조금 더 잘해야 한다는 의무에 사로잡혀 사는 여성,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행복을 희생하는 여성에게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저자는 이런 여성들에게 필요한 일곱 친구로 엄마, 독립, 일, 스타일, 친구, 감정, 나 자신을 드는데, 이 중에서 가장 먼저 해결해야할 것이 엄마 문제다. 엄마와 딸은 대체로 아빠와 딸, 엄마와 아들보다 가깝고 친밀하며 그만큼 서로 많은 영향을 주고받는다. 



저자는 엄마가 딸에게 보일 수 있는 안좋은 태도 중 하나로 '감정 축소'를 든다. 감정 축소란 아이가 슬픔, 두려움, 분노 등의 감정을 표현하면 그대로 인정하지 않고 괜찮다, 잘 될 거다라는 식으로 위로하기 급급하며 회피하는 것이다. "괜찮아, 주연이는 늘 잘하잖아." "엄마 아빤 주연이를 믿어" "선생님께 혼날 수도 있지 뭐" "어떻게 모든 친구가 널 좋아하겠어. 그래도 너를 좋아해주는 친구가 많잖아?" "힘든 과정을 통해서 배우는 게 있을 거야" 같은 말을 나도 자주 하는데, 생각해보니 다 어머니에게 배운 것 같다. 어릴 때나 지금이나 시험을 망치거나 친구와 싸우거나 일이 잘 안 풀려서 힘들 때 하소연할 곳이 없고, 남이 나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면 부담스러워 피하기 일쑤였다. 그래서 놓친 친구, 남자가 몇 명이었던가. 더 늦기 전에 엄마 문제, 꼭 해결해야겠다.



자신의 감정을 읽지 못하는 게 비단 은영 씨 혼자만의 문제는 아니다. 많은 20,30대 여성이 자신의 감정을 읽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는 일이 허다하다. 간혹 철딱서니 없고 현실감이 떨어져 보여도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자기감정을 살피고 드러내는 일이다. ... 은영 씨는 부모님을 걱정시키지 않는 착한 딸, 옆에 두고 싶은 친구, 인정받는 직장인이기 위해 본인만의 '자아' 찾기를 미뤘다. 그렇게 서른이 된 후 껍데기만 남은 자신을 발견하는 일은 참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남은 삶을 '온전한 나'로 살기 위해서는 자신의 감정을 읽어내는 일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p.253)



사귀어야 하는 친구는 엄마만이 아니다. 독립도 해야 하고, 즐겁게 할 수 있는 일도 찾아야 하며, 나에게 어울리는 스타일을 발견하고, 일상의 소소한 재미를 나눌 수 있는 친구를 사귀고, 온갖 감정을 느끼며, 종국에는 나 자신과 마주해야 한다. 진정한 나 자신을 발견하고 나 자신과 합일하기 위한 방법으로 저자는 고독을 권한다. 능동적인 고독과 수동적인 외로움은 다르다. 애인이나 배우자가 있든 없든, 가족이나 친구가 곁에 있든 없든 간에 혼자 있는 상태를 온전히 즐기고 만끽하는 것이 진정한 고독이다. 



독은 또한 일부러 여행을 떠나거나 그럴싸한 취미나 문화생활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만은 아니다. 혼자서 밀린 일을 하거나 고지서를 정리하거나 빨래를 개는 일에서도 고독을 누릴 수 있다. 생각해보니 화난다고 슬프다고 음식을 먹을 때 온전히 혼자였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일부러 친구를 부르거나, 그마저도 안 되면 TV나 인터넷을 켜고 마구 '흡입'했다. 차라리 혼자만의 시간을 즐겼다면 그토록 음식에만 매달리지 않았을 텐데. 앞으로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음식을 찾는 대신 혼자서 운동을 하거나 청소를 해야겠다. 아니면 오늘처럼 컴퓨터 앞에 앉아서 글을 쓰거나. 그러고보면 독서는 다이어트에 참 좋은 취미다. 책장에 뭐가 묻을까봐 뭘 먹을 수도 없고, 오롯이 혼자서 하는 취미이니 고독을 즐길 수도 있다. 폭식 대신 '폭서(暴書)'를 올 여름 다이어트 방법으로 제안해볼까나? 일단 내가 성공하면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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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5-07-12 0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정축소....제가 특히 많이 사용하는 방법이네요. 축소라.... 그렇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