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서재 속 고전 - 나를 견디게 해준 책들
서경식 지음, 한승동 옮김 / 나무연필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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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서재 속 고전>은 서경식 선생이 같은 제목으로 <한겨레>에 2년 간 연재한 칼럼을 묶은 것이다. 저자가 감명 깊게 읽은 책, 그 중에서도 한국의 젊은 독자들에게 읽어보기를 권하는 책을 추렸다고 해서 일반적인 형식과 내용의 독서 에세이를 예상했건만, 읽어보니 저자가 이제까지 걸어온 인생 여정을 알 수 있을 뿐더러 그 길 위에서 고민하고 성찰한 것들이 고스란히 느껴져 결코 가볍게 읽히지 않았고 읽을 수도 없었다.


 

저자는 일본 교토에서 재일조선인 2세로 태어난 '코리안 디아스포라'다.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으면서도 학문에 정진하던 저자는 1971년에 두 형이 한국에서 체포, 수감되는 일을 겪으면서 '높고 두꺼운 벽에 갇혀 있는 것처럼 어디에도 출구가 보이지 않'는 현실에 절망했다. 그럼에도 꾸준히 책을 읽었다. 루쉰을 읽고 말의 힘, 글의 힘을 다시 한번 믿게 되었고, 에드워드 사이드를 읽고 재일조선인이라는 마이너리티 입장에서 대항적인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역할이라고 자각했다. 그 결과 현재는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이 시대에 꼭 필요한 말과 글을 전하는 대표적인 지식인이자 에세이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젊었을 때의 나는 "밤은 길고, 갈 길 또한 멀다"는 것을 비관했다. 하지만 지금은 "설령 내가 아니더라도 언젠가 반드시 그들을 생각해내고 다시 그들에 대해 말할 날이 오리라는 것"이라는 부분을 비관하고 있다. 사람들은 희생자를 기억하지 않는다. 과거에서 배우지 않는다. 무서운 속도로 모든 것이 천박해지고 있다. 루쉰 따위는 읽지 않으며, 설령 읽는다 해도 그 부름의 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p.51)



그러나 전보다 경제적으로 보나 사회적으로 보나 훨씬 안정되고 편안한 상태인데도 저자의 비관은 그치지 않는다. 프리모 레비, 조지 오웰, 이브라힘 수스, 요한 하위징아, 미셸 드 몽테뉴, 가토 슈이치, 잉게 숄 등 동서양의 수많은 저자들이 남긴 자유를 향한 열망과 저항의 몸부림이 담긴 책을 소개하면서, 한편으로 진지한 반성 없이 과오를 되풀이할 조짐을 보이는 일본 정부를 포함한 권력자들을 비관하고, 절망적인 현실을 외면하는 사람들을 비관하는 것이 그렇다. 가장 안타까운 건 이런 현실을 목도하면서도 바로잡을 시간이 부족함을 느끼는 저자 자신의 처지에 대한 비관이다. 저자가 생애 동안 온몸으로 읽고 배우고 쓰고 느낀 것들을 과연 후세의 사람들이 제대로 알고 전해줄 것인가. 저자의 진지한 고뇌가 내 마음에도 사무친다.

 


생각건대, 이것이 시의 힘이다. 즉 승산이 있든 없든 그것을 넘어선 곳에서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다. 그런 루쉰의 정치와 문학의 결합을 나카노 시게하루는 "서정시 형태로의 정치적 태도 결정"이라고 불렀다. 일본의 시인 나카노 시게하루는 루쉰이라는 중국의 시인을 만나 그렇게 감동을 받았다. (중략) 나도 젊은 시절 루쉰의 어두운 말에서 절망과 같은 모습을 한 '희망'을 발견한 사람 중 하나였다. 이제 나는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전하고 싶다. 하지만 그게 어렵다. (p.56)



다행인 것은 저자와 독자인 나 모두 글의 힘을 믿는다는 것이다. 역사상 밝은 곳에서 큰 소리로 말할 수 없을 뿐더러 어딘가 구석에서 작은 소리로 속삭이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았던 온갖 계급과 인종과 당파와 조직 등등에 속한 힘 없는 사람들은 말 대신 글로 자신의 뜻을 표현하고 소통하고 후세 사람들에게 기록을 남겼다. 그 기록을 우리는 볼 수 있으며, 그것을 발굴하고 연구하고 번역하고 출판하는 것이 지식인이라는 사람의 본래 역할일 것이다. 일찍이 루쉰의 책을 읽고 압제와 폭력에 저항하고 자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시의 힘에 눈을 뜬 저자는 수십 년에 걸쳐 수많은 책을 읽고 쓰며, 자신의 손에 전해진 항거와 자유의 증거를 세상에 알리고 후대에 전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전하고 싶다'는 그의 소망이 부디 이루어지기를. 힘없고 어리석은 독자인 나도 함께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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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먹는 법 - 든든한 내면을 만드는 독서 레시피 땅콩문고
김이경 지음 / 유유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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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는 번역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위한 스터디 모임에 참가하고 있다. 스터디 모임이라고 해도 인터넷 카페에 매일 과제를 올리는 게 전부지만, 세 달 가까이 과제를 수행하면서 번역 공부 이외에도 많은 것을 얻었다. 그중 하나가 필사의 즐거움이다. 한 번은 한국 도서를, 다른 한 번은 외국 도서를 베껴 쓰는 과제가 있었다. 처음엔 이걸 왜 하나 싶었는데 하다 보니 참 즐거웠다. 두 번 다 전부터 좋아해온 작가의 책을 골랐지만, 두 분 다 필사를 하고 나서 더 좋아하게 되었다. 필사가 좋다, 즐겁다는 말을 참 많이 들었는데 직접 해보니 정말 그랬다. 이래서 남들이 좋다는 말을 흘려들으면 안 되나 보다.



<책 먹는 법>에는 필사 외에도 책을 읽는 데 도움이 되는 여러 가지 방법이 나와 있다. 저자 김이경은 작가, 번역자, 편집자, 논술 교사, 독서 모임 강사 등 책과 관한 일을 섭렵하며 단련한 자신만의 독서법을 이 책에 간결하고도 다부지게 담아냈다. 책을 더 많이 읽고 싶고 잘 읽고 싶지만 방법을 몰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저자는 먼저 '자신만의 독서법'을 찾으라고 충고한다. 자신만의 독서법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질문을 잡아야' 한다. 독재 시대를 살았던 저자는 '어떻게 하면 자유로워질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가지고 책을 읽었다. 지금도 그 답을 찾았다고 확언할 수 없지만, 답을 찾는 과정에서 저자의 마음은 전보다 훨씬 단단해졌고 머릿속도 풍성해졌다. 좋은 질문이 좋은 책으로 이끌고 좋은 삶으로 인도한 것이다.



베스트셀러나 고전 같은 타이틀에 얽매이지 말고 지금 나한테 도움이 되고 매력이 있고 재미가 있는 책을 골라 읽는다. 남들이 좋다는 책 말고 연애소설이든 만화든 실용서든 구미가 당기는 책 위주로 읽으면 책 읽기가 훨씬 즐거워지고 인생도 풍요로워진다. 어떤 책을 읽는지는 곧 자신이 어떻게 사는지를 보여준다. 대학 시절 나는 전공인 사회과학과 경제경영 분야 위주로 책을 읽었지만, 언제부터인가 소설과 에세이의 매력에 눈을 떴고, 이제는 책을 읽기만 하는 게 아니라 글을 쓰고 책으로 만드는 과정에도 흥미를 가지고 있다. 공부와 취업이 전부인 줄 알고 살다가 비로소 내가 진짜로 좋아하는 게 뭔지 알게 되었고, 그 결과 글을 쓰고 창작물을 만드는 길을 꿈꾸게 되었음을 나의 독서 이력을 보면 알 수 있다. 책은 삶의 바로미터이며 나침반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책은 내가 아는 세상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며 내가 당연시하는 일상이 당연한 것이 아님을 끊임없이 일깨웁니다. 그리하여 내가 누리는 안락에 감사하고 내가 겪는 아픔을 고집하지 않게 하며,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지 않는다는 것을 아무 원망 없이 받아들이게 하지요.

물론 모든 책이 그렇거나 독서가 늘 그런 생각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책이 자신의 허물을 합리화하고 타자를 모욕하는 근거로 쓰이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책 읽어 봐야 별거 없다며 독서를 부정하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기도 합니다. 하지만 좋은 재료로 음식을 했다고 꼭 맛이 있거나 소화가 잘되는 건 아니듯이, 마음의 양식인 책도 먹기에 따라 사람에게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습니다. 볼품없는 재료가 솜씨 좋은 숙수의 손을 거쳐 근사한 요리로 재탄생하는 것처럼, 독자의 밝은 눈이 책의 내용을 더 깊고 의미 있게 만들 수 있는 것이지요. 바로 이것이 어떤 책을 읽느냐 못지않게 '어떻게 읽느냐'가 중요한 까닭입니다. (pp.11-2)



좋은 저자, 좋은 책을 찾는 것 못지않게 좋은 독자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 좋은 독자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 내가 책을 어떻게 읽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저자가 권하는 독서법은 정독이다. 다독도 좋고 속독도 좋지만 기왕이면 에 나오는 단어나 문장 하나도 허투루 보지 않고, 심지어는 책의 제목에도 메스를 들이댈 각오를 하며 '정성껏 정밀히' 읽는 것이 좋다. 정성껏 정밀히 읽기 위해서는 책 한 권을 달랑 한 번 읽고 덮는 대신 반복해서 읽고, 메모를 하든 필사를 하든 손으로 쓰면서 읽는 것이 좋다. 기본적으로 독서는 혼자서 오롯이 행하는 활동이지만, 때로는 여럿이 함께 읽는 편이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관점을 알 수 있고 이를 통해 자신의 독서 생활도 풍요롭게 할 수 있다. 모든 책을 이만한 노력과 시간을 들여 읽을 필요는 없지만, 살면서 책 한 권도 정성껏 정밀히 읽어본 경험이 없다는 건 삭막하고 황폐하지 않은가. 앞으로도 꼭꼭 씹어 먹고 싶은 책이 많은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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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한번은 묻게 되는 질문들 - 사소한 고민부터 밤잠 못 이루는 진지한 고뇌까지
알렉산더 조지 지음, 이현주 옮김 / 흐름출판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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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 대에 나는 밤에 쉽게 잠들지 못 했다. 새벽 한 시, 두 시를 지나 세 시가 넘어도 잠이 오지 않는 날엔 책을 읽기도 하고, 심야 라디오를 듣기도 하고, 양을 세기도 하고, 공상을 하며 잠을 청했다. 그러다 보면 대체로 잠이 오게 마련이지만, 가끔 아주 운이 좋지 않은 날엔 그대로 동이 터 하루 종일 비몽사몽 한 정신으로 지내든가 시도 때도 없이 꾸벅꾸벅 졸든가 했다. 불면의 이유는 하나. 고민이 많았다. 이제나저제나 사람 사귐이 썩 능숙하지 않은 나는 이성 친구며 학교 친구, 선후배, 일하는 곳에서의 인간관계 하나하나가 버겁고 힘들었다. 취업, 진학, 직장 등등 앞으로 선택해야 할 큰일들을 생각하면 더욱더 잠이나 잘 때가 아니었다. 밤잠이 부족한 지금은 그 때 그렇게 한가하게 고민이나 하고 있었던 게 그리울 정도다. 산다는 게 참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를 일이다.



<살면서 한번은 묻게 되는 질문들>을 읽으며 그 시절 내게 이런 '공간'이 있었다면 좋았겠다고 생각했다. 저자인 미국 애머스트대학 철학과 교수 알렉산더 조지는 2005년 '애스크필로소퍼즈(www.askphilosophers.org)'라는 웹사이트를 개설해 일반인이 질문하고 철학자들이 직접 답을 하는 토론의 장을 만들었다. 10년간 축적된 질문들은 '선생님의 건망증을 이용하는 것은 비도덕적인가요?', '건강에 안 좋으니 담배를 피우지 말라는 의사의 말을 믿어야 하나요?', '상대방의 배우자에게 들키지 않고 바람을 피운다면 괜찮지 않나요?' 등 개인적인 문제부터, '왜 인간의 생명은 동물의 생명보다 중요한가요?', '정부는 왜 있어야 하나요?', '제가 죽어서 타인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면 제가 죽어야 할 도덕적인 의무가 있나요?' 등 전통적으로 많은 철학자들이 고민해온 진지한 고뇌가 담긴 문제까지 다양하다. 나도 여기에 질문을 올렸다면 전 세계의 철학자들로부터 답을 구할 수 있었을 텐데. 그랬다면 불면의 시간을 조금은 덜 겪었을 텐데.



Q. 저는 프린트 디자이너입니다. 저는 제가 하는 일 때문에 얼마나 많은 쓰레기와 오염물질이 생기는지 알고 있고, 건강한 환경을 유지하는 일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그러면 제가 일을 계속하는 게 비윤리적일까요? 제가 그만둔다고 해도 다른 사람들이 저 대신 그 일을 하겠지요. 그리고 제 일이 환경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고 해도, 사람들의 욕구와 필요를 충족시키기는 합니다.

A. 환경에 해가 가지 않게 일하는 방식을 생각해보고 동료들에게도 함께 생각해보자고 하면 어떨까요? 예를 들면, 종이에 그리는 대신 컴퓨터에서 디자인 작업을 하면 종이 쓰레기가 덜 나올 수 있습니다. 진부한 예인 건 분명하지만, 제 얘기의 요지를 이해하셨기 바랍니다. 한 업계에서 전문지식을 가진 사람들은 생산과정에서 쓰레기를 줄이고 환경을 해치지 않는 방법을 가장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런 방법들을 찾아보세요!



운 좋게도 요즘 하고 있는 고민들 중 한 가지의 답을 이 책에서 찾았다. 고민은 바로 자신이 하는 일 때문에 얼마나 많은 쓰레기와 오염물질이 생기는지 알면서 계속하는 것이 비윤리적인 게 아닌가 하는 것. 일을 하다 보면, 일을 하는 과정에서도 상당한 양의 쓰레기가 생기지만, 일을 한 결과 생산된 제품에 하자가 있어 팔 수 없거나 팔리지 않아 재고가 된 경우, 나 때문에 자원이 낭비되고 환경이 파괴되었다는 생각에 괴롭다. 나와 비슷한 고민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한 철학자는 '한 업계에서 전문지식을 가진 사람들은 생산과정에서 쓰레기를 줄이고 환경을 해치지 않는 방법을 가장 쉽게 찾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아니면 '일하는 곳이나 지역 공원에 나무를 심는' 식으로 '보상'을 하는 방법도 괜찮다. 신선하고 기발한 답은 아니지만, 환경 파괴나 비윤리 같은, 일의 한쪽 면만 보고 있던 나에겐 새로운 관점이자 발견이었다. 



철학에 대해 추상적이다, 일상과 동떨어진 학문이라는 인식이 있었는데, 이렇게 누구나 한 번쯤 해보았을 법한 고민에 대해 여러 가지 관점을 제시할 수 있고, 또한 웹사이트에 질문하면 옥스퍼드, 케임브리지, 스탠퍼드 같은 세계적인 대학의 철학 교수들이 직접 답변을 해주기도 한다니 신기하다. 고민이나 걱정 때문에 밤잠 못 이루는 사람에게 이 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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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2015-09-23 2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친수추가 감사합니다^^

나무 2015-09-23 2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친구추가 감사합니다^^
 
작은 상처가 더 아프다 - 유독 마음을 잘 다치는 나에게 필요한 심리 처방
최명기 지음 / 알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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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이 싫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명절에 만나(야 하)는 가족과 친척이 싫다. 공부는 잘 하니? 대학 어디 갔니? 취업 했니? 돈 잘 버니? 결혼 언제 하니? 등등 내 처지나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툭툭 던지는 질문이 싫고, 그 뒤에 이어지는 안쓰러운 눈빛이나 혀를 차는 소리가 싫다. 그들에겐 가벼운 농담, 별것도 아닌 행동이, 그걸 삼십 년 넘게 듣고 보며 견뎌야 하는 나에겐 상처가 되고 스트레스가 된다는 걸 왜 모를까. 심지어는 내가 딸이 아닌 아들로 태어났어야 한다는 말을 아직도 하는 어른이 있다. 이런 사람을 내가 정말 '어른'으로 모시고 공경해야 하는 걸까.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사실 일상에서 받는 '작은 상처'입니다. 상대가 별 뜻 없이 던지는 무심한 말 한마디에, 가볍게 보낸 문자메시지 이모티콘 하나에 마음 상하는 일이 다반사죠. 흔히 사람들은 사소한 일에 목숨 걸지 말라고들 하는데요. 남의 일일 때는 그렇게 말하기가 쉽습니다. 하지만 막상 내가 당하는 입장이 되면, 가벼운 농담 하나, 별것도 아닌 행동 하나가 가슴을 찢어놓습니다. 이때 받은 상처는 쉽게 잊히지 않고, 오래도록 내게 후유증을 남기기도 합니다.

상담을 하다 보니, 이런 작은 상처가 사실 더 아프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더구나 이런 작은 상처들은 그때그때 제대로 돌보지 않으면, 쌓이고 쌓여 나중에 치유하기 어려운 깊은 상처로 발전하기도 합니다. 그 정도 상태가 되면 일종의 강력한 정신병적 증상이 생겨날 수도 있습니다. 가벼운 감기를 방치했다가 폐렴이 되는 것처럼 말이죠. (pp.6-7)



마음 경영 전문의 최명기의 신간 <작은 상처가 더 아프다>에 따르면 가까운 사람의 죽음이나 이혼, 질병, 사고 같은 커다란 불행으로 입은 '큰 상처'도 문제지만, 일상에서 상대가 별 뜻 없이 하는 말이며 행동에 마음이 상해 생기는 '작은 상처'도 문제다. 작은 상처는 대체로 짜증, 분노, 모멸감, 굴욕감, 수치심, 억울함 등 다양한 무늬를 띠며, 쉽게 잊히지 않고 오래도록 후유증을 남기는 경향이 있다. 심하면 잠을 못 이루거나 벌컥 화를 내거나 치가 떨리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등의 증상을 보이기도 한다. 저자는 이같은 작은 상처를 이겨나가기 위한 방법으로서 왜 나만 상처받는지 파악하고, 상대가 내게 상처를 주는 이유를 파악하고, 구체적인 전략을 세워 실행하는 3단계의 처방을 제시한다. 작은 상처가 결코 작지 않다는 말을 들은 것만으로도 상당한 위로가 되는데, 작은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까지 알려주니 친절하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어서 누구나 최소한의 눈치는 보고 살게 마련입니다. 내가 늘 상냥하고 착하게 사람들을 대해왔다면, 사람들은 나를 좋은 사람으로 여기긴 하겠으나 내게 무슨 말을 할 때 특별히 내 눈치를 살피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표정이 무뚝뚝해지고 목소리가 가라앉으면, 직감적으로 '아, 저 친구가 지금 기분이 안 좋구나' 혹은 '내가 쟤한테 뭘 잘못했나?' 하는 생각을 하며 내게 하는 말과 행동을 조심하게 됩니다. 때로는 대놓고 화를 내거나 직설적으로 거절의 말을 하지 않더라도, 이런 행동을 하는 것만으로 나에 대한 상대의 태도를 교정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p.130)



더 좋은 건 무조건 참고 이해하라는 식의 처방이 아니라 때로는 뻔뻔하게 굴기도 하고 때로는 화를 내기도 하면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고 행동하라고 한다는 것이다. 자기 잘못이 아닌데도 "나 때문이야. 내가 잘못했어"라고 말하며 자책하는 사람이라면 일부러라도 '나 때문이 아니야. 운이 나빴어' 또는 '저 사람 때문이야'라고 생각하면 마음의 상처를 줄일 수 있다. 나의 약점을 들추거나 지적하는 것을 즐기고 놀리는 사람에게는 공개적으로 당신이 나를 이렇게 놀리는 것이 기분 나쁘다는 것을 밝히고 필요하다면 화를 내는 것이 좋다.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이 있으면, 그게 가족이고 친한 친구라도 관계를 끊는다.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다. 나를 괴롭히는 인생의 조연들을 바꾸면 나라는 사람의 인생이라는 연극이 훨씬 재미있고 행복한 결말을 맞을 것이다. 이건 명절에도 마찬가지. 언제까지 명절날 신데렐라가 계모에게 구박받듯이 지낼 텐가. 내 인생의 주인공은 명절에도 명절 아닌 날에도 오로지 나다. 그러니 이번 명절은 오로지 나만을 위한 시간으로 보내보련다. 삼십 년을 울면서 명절을 지냈으니, 이제는 이래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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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9-21 1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휴가 다가오는 날부터 정신적 압박감이 느껴져요. 연휴 때만 느낄 수 있는 대가족의 정이 사라져서 아쉽지만, 예전 화목했던 분위기를 이어간다는 건 어려운 일에요.
 
아프지 않다는 거짓말 - 내 마음을 위한 응급처치
가이 윈치 지음, 임지원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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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읽은 <딸에게 필요한 일곱명의 심리학 친구>라는 책에서 '감정 축소'라는 심리학 용어를 배웠다. 감정 축소란 슬픔, 두려움, 분노 등의 감정을 표현하면 그대로 인정하지 않고 괜찮다, 다 잘 될 거라는 식으로 위로하기 급급하며 회피하는 것을 일컫는다. 감정 축소는 주로 성장 과정에서 부모가 아이에게 보이기 쉬운 태도 중 하나로, 예를 들어 부모가 시험을 망쳐서 슬퍼하는 아이를 향해 "괜찮아. 다 잘 될 거야", 친구와 싸워서 화가 난 아이한테 "어떻게 모든 친구가 널 좋아하겠어" 같은 말을 하면 아이의 기분과 감정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고 축소하거나 반박해 안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 



미국의 심리치료사 가이 윈치가 쓴 <아프지 않다는 거짓말>을 읽고 제일 먼저 떠올린 말이 감정 축소다. 나의 경우, 하루에도 몇 번씩 습관처럼 되뇌는 '아프지 않다', '괜찮다'는 말이 정말 아프지 않아서, 괜찮아서 나온 말인 경우는 드물다. 대개는 아플 때, 괜찮지 않을 때 그런 말이 떠오른다. 저자가 소개하는 거부, 고독, 상실과 외상, 죄책감, 반추 사고, 실패, 낮은 자존감 등에서 비롯된 사례들도 겉보기엔 멀쩡하고 정상적인 듯하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쉬이 낫지 않을 것 같은 것들, 그런데도 스스로 아프지 않다, 괜찮다고 위로하며 넘겨 왔던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은 어쩌다 자신의 아픔을 간과하고 괜찮지 않은 상황을 무시해온 것일까.



모든 가정에서 신체적 상처나 질병에 대비해 반창고, 연고, 진통제 따위를 약장 가득 갖추어놓고 있으면서도 일상에서 겪는 사소한 심리적 상처에 대비하는 약장은 따로 없다. 그러나 우리는 신체적 상처만큼이나 빈번하게 심리적 상처를 겪는다. (중략) 만일 우리가 그런 상처를 입었을 때 즉시 정서적 응급처치를 하면 상처가 계속해서 우리의 정신건강과 정서적 안정에 영향을 주는 것을 상당 부분 막을 수 있다. 실제로 전문가의 치료가 필요하다고 진단되는 마음의 질병 가운데 상당수는 처음 발단이 되는 상처에 적절한 정서적 응급처치만 하면 예방할 수 있다. (pp.8-9)



모든 가정이 신체적 상처의 응급 처치를 위한 비상약을 갖추고 있는 것처럼, 정서적 상처에도 응급 처치를 해야 한다고 설명하는 저자는 간단한 처방으로 마음의 건강을 잃을 뻔한 환자를 구한 사례를 풍부하게 보여준다. 그 중 인상적이었던 사례는 좋은 조건으로 승진시켜준다는 약속만 믿고 갖은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버티다가 끝내 상사에게 배신당한 기업 변호사 린다의 사례다. 린다는 배신을 당한 후 직장을 옮기고 1년이 지난 후에도 과거의 상사로부터 받은 상처와 모욕을 잊지 못해 저자를 찾았다. 저자는 린다에게 이런 처방을 내린다.



그녀가 상사의 얼굴을 묘사한 방식("제가 회의에서 발표를 할 때마다 그 사람이 저에게 눈을 희번덕거리던 모습......" 등)은 분명히 그녀가 자신의 경험을 일인칭적으로, 자기 안에 갇힌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중략) 나는 과거를 회상하는 방식을 바꾸어볼 것을 린다에게 제안했고 두 주 뒤 다시 만날 때까지 아주 신중하게 그 방법을 실행해보라고 주문했다. 다음 상담 시간에 린다는 활짝 웃으며 나타났다. "선생님, 효과가 있었어요!" 그녀는 자리에 채 앉기도 전에 큰 소리로 말했다. 저번 상담 시간 후 일주일 동안 린다는 과거의 상사가 머릿속에 떠오를 때마다 자신으로부터 떨어진 관점에서 기억 속 장면을 바라보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뭔가가 바뀌었어요. 그걸 깨닫는 데 며칠 걸렸는데...... 일단 예전보다 저는 과거 상사 생각을 훨씬 덜 떠올리게 됐어요." 더 기쁜 일은 린다가 전 상사 생각을 할 때에도 예전보다 마음의 동요가 훨씬 덜해진 것이다. (pp.236-7)



나도 린다처럼 무의식적으로 싫은 사람을 반추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싫은 기억 속 싫은 사람을 떠올리면 기분이 우울해지고 때로는 화도 나는데, 이제는 그럴 때마다 관점을 달리해봐야겠다. 일인칭 관점이 아니라 삼인칭 관점으로, 면대 면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시점을 멀리해서 보는 것으로 말이다. 그러면 싫은 추억도 지금보다는 덜 싫어질까. 이밖에 안좋은 일을 소리 내어 말하거나 글을 써보는 것도 상처를 달래거나 분노를 다스리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다른 것보다도 글쓰기가 도움이 된다니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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