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곳에서 만나요
이유리 지음 / 안온북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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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영은 한강 오리배 선착장의 지박령이다. 귀신이 되어서 하필 오리배 선착장에 머무는 이유는 생전에 가족과 자주 왔던 장소이기 때문이다. 지영의 부가 연애 시절 데이트를 한 곳도, 지영을 데리고 소풍을 왔던 곳도, 식구들에게 좋은 일이 있을 때나 기분 전환이 필요할 때 찾아왔던 곳도 늘 여기였다. 지영은 자신이 가족들과 오리배를 탔던 시간을 그리워하는 것처럼 가족들도 그 시간을 그리워한다면 반드시 만날 거라고 믿지만, 가족들의 모습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해남은 사고로 죽은 후 생전에 가장 좋아하는 영화배우였던 강산의 집으로 찾아간다. 해남이 기억하는 강산은 외모도 출중하고 연기력도 뛰어나며 부와 인기를 모두 갖춘, 더 이상 부러울 것이 없는 남자다. 하지만 강산의 집으로 찾아가 강산을 직접 보니 혼자 살면서 우울증에 시달리는 중년의 은퇴한 영화배우에 불과하다. 해남은 팬으로서 그를 동경하고 응원했던 마음이 강산에게 전해지기를 바라지만, 그의 소망은 좀처럼 강산의 마음에 닿지 못한다. 


이유리의 연작 소설집 <좋은 곳에서 만나요>는 알게 모르게 서로 연결되어 있는 주인공들이 죽음을 겪고 직전의 삶을 돌아보는 내용의 단편들로 이루어져 있다. 지영과 해남 외에도 레즈비언 커플인 혜수와 지우, 아홉 번의 생을 산 고양이, 전 애인 정민을 그리워하는 수정, 과로사한 개발자 등 각자 다른 삶을 살다가 다른 이유로 죽음을 맞은 인물과 동물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들의 공통점은 죽은 후 바로 저승으로 떠나지 않고 이승을 떠돌며 못 다 한 마음의 정리를 한다는 것이다.


이 중에 가장 감동적이었던 단편은 <아홉 번의 생>이다. 주인공 고양이는 태어나고 죽는 일을 네 번 반복하고 다섯 번째 삶에서 잊지 못할 사랑을 경험한다. 그 후 여섯 번째 삶, 일곱 번째 삶, 여덟 번째 삶에서 그 사랑을 찾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마지막 아홉 번째 삶은 사랑 말고 온전히 너 자신을 위해 쓰라는 충고를 들은 고양이는 과연 어떻게 할까. 설정은 사노 요코의 동화 <100만 번 산 고양이>와 비슷하지만, 사랑의 방식에 대해 색다른 관점을 제시하는 새로운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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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일의 라틴어 인생 문장 - 삶의 고비마다 나를 일으킨 단 한 줄의 희망
한동일 지음 / 이야기장수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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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호흡으로 읽어야 하는 소설이나 인문서, 사회과학서를 읽기 힘들 때, 나는 주로 에세이나 자기계발서를 읽는다. 최근에는 아포리즘 중심의 책도 종종 읽는데, 이 책 <한동일의 라틴어 인생 문장>이 바로 그런 책이다. 한국 최초, 동아시아 최초의 교황청 대법원 로타 로마나 변호사를 지냈으며 베스트셀러 <라틴어 수업>, <로마법 수업> 등의 저자인 한동일의 신작인 이 책은 저자가 마음을 기대고 살았던 라틴어 문장들과 그에 관한 짧은 글로 구성되어 있다. 


교황청 변호사로, 명문대 교수로, 남부럽지 않은 인생을 살아왔을 것 같은 저자인데 의외로 고통과 방황, 좌절의 연속인 인생을 보냈다고 해서 놀랐다. 학창 시절에는 매일 책상 앞에 앉아서 공부만 하는 모범생이었지만, 마음속은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오르지 않는 성적 때문에 고통스럽고, 힘든 시험을 치르고 나면 또 다른 시험이 기다리고 있는 현실 때문에 좌절하고 싶은 적도 많았다. 가난한 집안의 상처받은 아이라는 콤플렉스는 어른이 되어서도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인간 관계 때문에 힘든 적도 많았다. 저자는 거의 20년 넘게 남성만이 있는 집단에서 아침, 점심, 저녁을 꼬박 함께하는 초밀착형 기숙 생활을 했다. '딱 저 사람만 없으면 좋겠다' 싶은 사람이 어디에나 있었고, 종교를 가진 사람이 이래도 되나 하는 생각에 자책하는 시간도 길었다. 최근에는 사제직을 내려놓고 홀로서기를 하면서 정신적으로 힘들었다는 고백도 나온다. 이런 식으로 저자가 겪은 인생의 고비들과 그 때마다 힘이 된 문장들이 함께 제시되어 위로와 용기를 준다.


저자가 이 책에서 소개하는 문장들은 운명, 희망, 꿈, 변화, 공부, 치유, 인간다움 등 다양한 주제를 아우른다. 그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문장은 "De studio adulti(어른의 공부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글에 나오는 "저는 어른의 공부란, 살아가는 동안 자아와 경험이 굳은살처럼 박여 단단히 고착화된 통념을 깨는 과정이라 말합니다."(223쪽)이다. 공부는 통념을 깨는 과정이므로, 입시와 취업을 마친 후에도 공부는 계속되어야 한다는 저자의 말에 깊이 공감했다. 


"18세기 인권의 발전은 당대 사람들이 남의 글을 읽음으로써 타인의 생각을 통해 그의 기쁨과 고통 속으로 들어가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중략) 이를 촉진한 대표적인 문학 장르가 소설이었습니다. 소설은 독자를 타인과 동일시하게 하고 공감하게 만들어준 훌륭한 매개였습니다. 소설은 인식하지 못하던 계층의 괴로움과 고통을 광범위한 독자들이 공감하게 함으로써 정책과 제도의 변화를 불러왔습니다."(175쪽) 


소설 읽기의 효용에 대해 설명한 대목도 인상적이었다. 소설 읽기를 통해 타인의 마음과 영혼을 이해하는 과정을 거쳤다면, 타인의 어려운 환경을 바꿔내고자 하는 개인적 차원의 혁명이 자선이다. 자선이 타인을 돕는 개인적 차원의 혁명이라면, 정치는 타인을 돕는 사회적 차원의 혁명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소설을 읽고 타인의 마음과 영혼을 이해하여 개인적으로는 자선을 실천하고, 사회적으로는 정치에 더 활발히 참여하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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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우리 영혼은
켄트 하루프 지음, 김재성 옮김 / 뮤진트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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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트 하루프의 <밤에 우리 영혼은>은 한 편의 단편 영화 같은 소설이다. 우리네 일상을 다룬 평범한 이야기인데, 미처 생각지 못한 것을 생각하게 해주고 여운은 오래간다. 


홀트라는 작은 마을에 사는 칠십 대 노인 루이스 워터스의 집에 이웃에 사는 칠십 대 노인 애디 무어가 찾아와서는 대뜸 말한다. "가끔 나하고 자러 우리 집에 올 생각이 있는지 궁금해요." 루이스와 애디는 둘 다 배우자와 사별한 지 오래고 혼자 사는 처지다. 그러니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는 제안이지만, 사십 년 넘게 이웃으로 지낸 두 사람을 그들의 자식들과 다른 이웃들이 어떻게 볼지 불확실하다. 걱정하는 루이스에게 애디가 말한다. 남은 시간이 없다고. 하고 싶은 걸 하자고. 


그날 이후로 루이스는 매일 밤 애디의 집으로 간다. 두 사람은 섹스 없이 그저 곁에 누워서 잠을 잔다. 이보다 더 순수할 수 없는 관계인데, 사람들은 이들을 불순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오랫동안 배우자도 연인도 없이 혼자 살다가 마침내 새로운 관계를 시작할 용기를 내었느냐며 축복하기는커녕, 나이 들어서 뭐 하는 짓이냐며 비난하고 조롱한다(주변 사람들이 너무 전근대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있어서 옛날 소설인가 했는데 2015년 작이라고 해서 놀랐다). 


루이스의 딸 홀리도 아버지의 새로운 관계에 호의적인 입장은 아니지만, 애디의 아들 진은 거의 빌런급으로 애디와 루이스의 관계를 반대하고 루이스에게 적대적인 자세를 취한다. 애디와 루이스의 입장에서 보면 어처구니없는 상황인데, 애디와 루이스의 과거를 알고 나면 이들의 자식으로 사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홀리가 루이스를 원망하는 건 이해해도 진이 애디를 원망하는 건 이해가 안 된다. 나쁜 건 아버지 아닌가. 


노년의 삶과 사랑을 그렸다는 점에서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소설 <올리브 키터리지>, <다시, 올리브>가 떠오르기도 했다. <올리브 키터리지>에는 엄마인 올리브에 대한 아들의 입장을 서술한 에피소드가 있는데, 이 소설에도 루이스의 딸과 애디의 아들의 입장을 서술한 에피소드가 있었다면 인물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 같다. 제이미의 미래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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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믿어주는 일
미야모토 테루 지음, 이지수 옮김 / 프시케의숲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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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모토 테루의 산문집 정말 좋다. <생의 실루엣>도 좋아서 한숨을 푹푹 쉬면서 읽었는데, <그냥 믿어주는 일> 역시 좋은 문장에 밑줄을 계속 긋다가 포기했다(가끔 밑줄을 그어야 의미가 있지, 전부 밑줄을 긋는 건 의미가 없다). 1947년 일본 고베 출신인 미야모토 테루는 1949년 일본 교토 출신인 무라카미 하루키와 출생연도와 고향이 비슷한데, 가정 환경과 성장 과정이 달라서 그런지 에세이의 내용이나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 나는 미야모토 테루 쪽이 더 좋다. 


<그냥 믿어주는 일>은 미야모토 테루가 30대 후반이었던 1983년에 발표한 산문집이다. 1977년 <반딧불 강>으로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하고 <환상의 빛>, <금수> 등의 초기작들을 발표하며 문단의 기대주로 주목받던 시절에 낸 책이다. <생의 실루엣>보다 훨씬 전에 쓴 책이지만, 두 책 모두 저자 자신의 이야기를 쓴 책이라서 내용은 비슷하다. 야반도주를 할 정도로 가난했던 집안 사정과 부모의 불화, 장래에 대한 불안, 작가가 되고 싶은 열망과 자기 의심의 반복 등. 


물론 새롭게 알게 된 내용도 있다. 저자는 어릴 때 가난해서 책을 읽고 싶어도 실컷 읽을 수 없었다. 딱 한 번 어머니가 길거리에서 파는 중고책을 여러 권 사준 적이 있는데, 그때 산 책을 읽고 또 읽으면서 자기 자신도 모르게 글쓰기 훈련을 했다. 열여덟 살 때는 수험 공부를 한다는 핑계로 도서관에 드나들며 러시아와 프랑스 소설을 160여 편 넘게 읽었다. 덕분에 입시 준비를 할 때 애를 먹었지만, 훗날 작가가 되는 데 있어 그때 읽은 책들이 자양분이 된 것은 분명하다. 


저자는 이십 대 시절에 지독한 신경 불안 증세를 겪었다. 사람 많은 전철을 타면 증세가 심해져서 출퇴근을 못할 정도였다. 이러다 죽을 것 같아서, 그때 이미 두 아이를 둔 한 집안의 가장이었지만, 회사를 그만두고 글쓰기에 매진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글쓰기만 했더니 거짓말처럼 신경 불안 증세가 사라졌다. 그렇게 완성한 소설로 다자이 오사무 상을 받으며 등단했고, 이듬해 발표한 소설로는 아쿠타가와 상을 받았다. 병이 그를 죽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살린 것이다. 


이 책은 저자가 지금보다 훨씬 젊을 때 쓴 책이라서 그런지, <생의 실루엣>과 달리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이 드러나는 대목이 적지 않다. "많은 젊은이들은 그때 즐거우면 되는 것, 순간적으로 폭소가 터져 나오는 것밖에 추구하지 않게 되어 인간의 영혼과 인생의 거대함을 전하는 소설을 읽지 않게 되었다."(53쪽)라고 한탄하는 문장을 읽으며 80년대의 젊은이들도 지금의 젊은이들과 마찬가지로 도파민 중독이었나 생각했다. 


'인간 줏대 제거 계획'이라는 글도 재미있다. "(어른들의) 목적은 하나. 다음 세대를 담당할 아이들을 결코 지적 수준이 높은 어른으로 성장시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똑똑해지면 곤란하다. 자기네 뜻대로 움직일 수 없어지기 때문이다. 먼저 사치와 쾌락을 부여한다. 실로 저급하기 짝이 없는 문화를 만들어내고 온갖 매체를 이용해 그 안에 푹 잠겨 있게 한다. 학력 편중 사회를 만들고 어릴 때부터 가혹한 수험 공부로 내모는 등등."(101쪽) 상상이라기에는 너무나 현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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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그릇 1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08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이병진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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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회파 미스터리 소설의 거장 마츠모토 세이초의 대표작 <모래그릇>은 1961년 출간된 이후 영화, 드라마로 여러 번 리메이크 되었다. 그 중 하나가 내가 좋아하는 일본 아이돌 그룹 멤버의 주연작이라서 전부터 보고 싶었는데, 어디서 어떻게 볼 수 있는지 몰라서 못 봤다. 그러다 최근 들어 예전에 읽은 마츠모토 세이초의 다른 작품들을 들춰보다가 <모래그릇>을 아직 안 읽은 게 퍼뜩 떠올라 바로 구입했다. 


읽어보니 와... 너무 재밌다. 60년도 전에 출간된 소설인데 이렇게 재밌다니. 심지어 범인을 아는데도 재밌다니...! 거의 마지막까지 범인으로 의심되는 인물이 내가 아는 범인보다 더 범인 같아서, 나는 내가 20년 가까이 범인을 잘못 알고 있었나 싶을 정도였다. 그만큼 범인을 알아맞히기가 쉽지 않고, 범인을 알아내기까지의 과정이 엄청나게 스릴 넘치는데, 이렇게 잘 쓴 추리 '소설'을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면 어떠려나. 범인이 누구인지 바로 보이는데(대체로 개런티가 제일 높은 사람이 범인이다) 괜찮나? 


소설의 시작은 이렇다. 1950년대 말 도쿄. 이른 새벽 운행을 앞둔 전차 밑에서 피투성이 시체 한 구가 발견된다. 경찰은 시체로 발견된 남자가 전날 밤 근처 싸구려 술집에서 젊은 남자와 술을 마셨다는 것, 일본 동북부 지방 사투리를 썼다는 것, 대화 중에 '가메다'라는 이름이 나왔다는 것을 알아내지만, 이를 끝으로 수사는 오리무중에 빠진다. 결국 경찰은 수사를 접지만, 베테랑 형사 이마니시는 자신의 사비를 써가며 후배 형사 요시무라와 함께 수사에 매달린다. 


일단 소설의 주인공인 이마니시 형사의 캐릭터가 너무 좋다. 최근에 아르망 가마슈 시리즈를 읽으면서 다시 한번 느꼈지만, 나는 (해리 홀레처럼) 음울하고 자기 관리 못 하는 형사보다 아르망 가마슈처럼 성실하고 일 중독적인 형사가 좋다. 이마니시는 전적으로 후자다. 그는 사건이 임의 수사로 바뀌었는데도 스스로 사비를 써가면서 사건에 매달리고, 집에서 아내와 대화할 때, 아들과 목욕탕에 갈 때에도 사건에 대한 생각을 놓지 않는다. 혹시라도 수사에 도움이 될까 싶어서 신문이나 잡지 기사도 열심히 읽고, 실제로 그러한 노력들이 수사로 이어지는 점이 재밌었다. 


60년도 전에 출간된 소설인 만큼 세월의 흐름이 느껴지는 부분이 많은데, 그 점이 오히려 좋았다. 지금이라면 휴대폰 몇 번 만지면 해결될 일인데 이때는 휴대폰은커녕 전화가 없는 집도 많아서 형사가 직접 일본 동쪽 끝부터 서쪽 끝까지 다니는 모습이 신선했다. 신칸센이 생기기 전이라서 당일치기로 오갈 수 있는 거리를 야간열차 타고 힘들게 다니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수사에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해 편지로 연락을 주고받고, 도움을 받으면 반드시 답신과 함께 선물을 보내는 모습도 정겨웠다.


언론을 장식하는 유명 인사들의 부유하고 화려한 삶의 이면에는 부정과 타락이 있고, 그들의 삶을 뒷받침하는 가난한 노동자들이나 빈민들은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한 채 사라지고 죽어가는 모순을 묘사한 점도 의미심장하다. 사건이 도쿄에 있는 전차 역에서 발생한 점, 전차 노선도와 시간표가 주요 단서로 쓰이는 점을 비롯해 이후 전개 과정 면면이 2023년에 출간된 다카노 가즈아키 소설 <건널목의 유령>과 상당히 닮았다고 느꼈다(오마주일까). 같이 읽어봐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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