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바람 웅진 모두의 그림책 28
남윤잎 지음 / 웅진주니어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깨닫고 있는 요즘이다. 아침에 일어나 출근하는 사람들과 몸을 부대끼며 지하철에 오르고, 점심에 동료와 밥을 먹고 회사 근처를 가볍게 산책하고, 저녁에 퇴근해 집에서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집 근처 공원을 산책하는 일상. 한때는 지겨워서 벗어나고 싶기까지 했던 일상을 꿈처럼 그리워하고 있다는 게 서글프고 안타깝다.


남윤잎의 그림책 <어느새, 바람>에는 요즘 내가 그리워하는 평범한 일상의 장면들이 가득 담겨 있다. 수업 시작 전 교실에서 시끌벅적하게 놀고 있는 아이들, 등을 맞대고 업무에 집중하는 직장인들, 예쁜 봄꽃이 활짝 핀 거리를 산책하는 사람들, 늦은 밤 공원에서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 등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졌던 풍경들을 이 책에서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저자는 사람과 사람, 장소와 장소를 이어주는 '바람'의 매력에 대해 말한다.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고 어느 한곳에 머무르지도 않는다. 잡을 수도 없고 잡히지도 않지만, 어디에나 존재하고 누구에게나 공평한 바람. 집콕하느라 따뜻한 봄바람을 만끽할 기회도 여유도 없는 사람들의 마음을 환기시켜줄 소중한 책이다. 이번 봄 사진은 이 책으로 대신해야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불과 나의 자서전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24
김혜진 지음 / 현대문학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김혜진의 소설은 읽을 때마다 등골이 서늘해진다. 신작 <불과 나의 자서전>도 그랬다. 남일동 출신인 '나'는 아버지가 경매에 나온 집을 구입해 겨우 중앙동으로 이사간다. 나의 부모는 남일동 출신임을 들켜서는 안 된다는 듯 남일동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지만, 퇴사 후 달리 할 일이 없는 나는 틈만 나면 남일동으로 향한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남일동에 있는 약국에서 우연히 남일동으로 갓 이사 온 싱글맘 주해와 그의 딸 수아를 만난다. 혼자 힘으로 어린 딸을 키우느라 바쁜 주해를 보다 못한 나는 주해가 일하는 시간에 수아를 돌보게 되고, 그렇게 두 사람은 점점 더 가까워진다.


나에게 주해는 여태껏 보지 못한 유형의 인간이다. 나의 부모는 경매에 부쳐진 이웃의 집을 사서라도 자신들의 처지를 바꾸려고 하는 인간들이고, 나의 예전 이웃들을 그런 나의 부모를 손가락질하면서도 자신들의 처지를 바꿀 생각은 하지 않는 인간들이다. 그런데 주해는 남일동에 사는 처지를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현실에 안주하지도 않는다. 불편한 점이 있으면 스스로 발품을 팔아서라도 고치려고 노력하고, 남들이 뭐라고 하든 현실을 바꿔보려고 애쓴다. 나의 부모는 그런 주해가 어리석고 미련하다고 욕하고, 이웃들은 그런 주해를 의심하는 눈으로 바라본다. 어느 누구도 주해의 노력을 알아주지 않는다.


주해에게 나는 어떤 인간으로 보였을까. 나는 어렵게 들어간 직장에서 집단 따돌림을 당하는 직원을 변호하다 자기도 따돌림당하는 신세가 되어 퇴사했다. 나는 세상 사람들이 생각만큼 정의롭지도 않고 순순하지도 않다는 것을 알만큼은 성숙하지만, 불의에 맞서고 순종하길 거부할 만큼 용감하지는 못하다. 나는 주해를 볼 때마다 자신의 결점을 의식하고, 주해 역시 남일동에서 가장 가깝게 지내는 나로부터 완전한 이해와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음을 안다. 모르는 사람의 비난보다 아는 사람의 배신이 가슴에 더 사무치는 법이다.


<불과 나의 자서전>을 읽는 동안 여러 대목에서 부끄러움을 느꼈다. 남의 불행을 보고도 눈 돌렸던 때가 생각나서 부끄러웠고, 불의인 줄 알면서도 눈 감았던 때가 생각나서 부끄러웠다. 의로운 사람이 스스로를 희생해 많은 사람들을 구하는 모습을 보고도 감사하지 않았던 때가 생각나서 부끄러웠고, 오히려 그런 사람을 오해하고 그러한 오해를 합리화했던 때가 생각나서 부끄러웠다. 편한 길을 가기는 쉽고, 불편한 길을 가기는 어렵다. 불편하게, 어렵게 사는 사람이 되고 싶다. 될 수 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 요조와 임경선의 교환일기
요조.임경선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요조 작가도 좋아하고 임경선 작가도 좋아한다. 좋아하는 두 작가가 함께 책을 낸다고 했을 때 내가 얼마나 기뻐했을지 상상이 될까. 요조 작가와 임경선 작가가 공동으로 진행한 네이버 오디오클립 <요조와 임경선의 교환일기>의 내용을 거의 그대로 옮긴 책이라는 걸 알고도 실망감보다는 기대감이 컸다. <요조와 임경선의 교환일기>를 여러 번 반복 청취했을 만큼 좋아했기에, 두 작가의 말을 글로 소유할 수 있음이 기뻤다.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대목은 "'하고 싶은 걸 찾기'보다 '하기 싫은 걸 하지 않기'"이다. 대체로 '좋음'보다 '싫음'의 감정이 더 직감적이고 본능적이고 정직하다. 음식을 예로 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좋아하는 음식이 싫어하는 음식보다 훨씬 많다. 하지만 싫어하는 음식을 싫어하는 정도는 좋아하는 음식을 좋아하는 정도를 다 합친 것보다 훨씬 크다. 좋아하는 음식은 꼭 안 먹어도 살 수 있지만, 싫어하는 음식은 절대 안 먹는다.


삶도 사람도 마찬가지다. 삶에서 '하고 싶은 것'을 더하는 것보다 '하기 싫은 것'을 덜하는 편이 삶의 만족도가 훨씬 높다. 사람도 '곁에 두고 싶은 사람'을 늘리는 것보다 '곁에 두기 싫은 사람'을 멀리하는 편이 낫다. '하기 싫은 것/곁에 두고 싶지 않은 사람'을 나로부터 멀리하는 것은 가장 본질적으로 '나를 사랑하는 법'이기도 하다. 쓰레기 버리기는 귀찮지만 일단 버리고 나면 엄청 개운하고 후련하다. 조금 있으면 쓰레기가 있었다는 사실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인생도, 인간관계도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잘 풀린다.


이 책의 장점 중 하나는 큰 틀에서 여성 자기계발서로 분류될 만한 책이지만, 여느 자기계발서처럼 '이게 정답이다'라고 단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요조에게는 요조만의 답이 있고, 임경선에게는 임경선만의 답이 있다. 때로는 그 답이 일치하지 않을 때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답을 바꾸지도 않고 상대의 답을 바꾸려 들지도 않는다. 의견이 맞아야 만족하고, 의견이 맞지 않으면 억지로 바꾸려고 드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는데, 그런 사람들에 비하면 이 작가들은 어찌나 '앗쌀'한지. 부럽고 닮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조식 : 아침을 먹다가 생각한 것들 띵 시리즈 1
이다혜 지음 / 세미콜론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처음에는 주제가 조식이라고 해서 호텔 조식을 떠올렸다. 이다혜 작가는 여행을 많이 다니니까 호텔 조식을 먹어본 경험도 많겠지, 얼마나 많으면 책 한 권으로 엮을 정도일까, 라고 내심 부러워하며.


막상 책을 읽어보니 호텔 조식뿐만 아니라 온갖 아침밥 이야기가 등장한다. 어린 시절 외할머니와 어머니가 차려준 아침밥, 빈속으로 등교한 날 쉬는 시간에 몰래 까먹은 도시락, 대학 시절 지각을 불사하며 사먹은 토스트, 영화제 취재로 찾은 전주에서 먹은 콩나물 해장국, 야식으로 먹고 남은 양념치킨을 다음날 아침 반찬으로 먹는 일상 등등. 직접 요리를 하기 전에는 아침 일찍 일어나 식구들을 위해 밥상을 차리는 외할머니와 어머니의 수고를 몰랐다는 말에 깊이 공감했다. 어머니가 되어야만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말에도.


아침밥이라는 주제 아래 이렇게 다양한 이야기가 펼쳐질 수 있다니 놀랍고, 이렇게 풍성한 이야깃거리를 지닌 작가의 내공에 새삼 감탄했다. 일본 교토 후시미의 어느 료칸에서 먹을 수 있다는, 차린 것이라고는 냄비로 지은 흰쌀밥에 고만고만한 반찬뿐인데 환상적으로 맛있다는 조식은 언젠가 나도 꼭 먹어보고 싶다. 부산 명물이라는 초록색 전복죽도 어떤 맛일지 궁금하다. 이다혜 작가의 중식, 석식(간식, 야식도!!) 이야기도 읽고 싶고, 다른 작가들의 조식 이야기도 읽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카카오프렌즈, 그건 사랑한단 뜻이야 카카오프렌즈 시리즈
흔글·조성용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힘든 현실 때문에 마음까지 뾰족해지는 요즘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키면서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아끼고 걱정하는 마음을 전할 방법이 뭐 없을까 생각하다가, 마침 적당한 책이 있길래 펼쳐봤다. 인기 캐릭터 카카오프렌즈와 출판사 아르테가 콜라보레이션해 만든 책 <카카오프렌즈, 그건 사랑한단 뜻이야>이다.


이 책은 40만 구독자를 보유한 SNS 작가 흔글이 썼다. 라이언, 어피치, 튜브, 무지, 콘, 네오, 프로도, 제이지 등 온 국민의 사랑을 받는 카카오프렌즈 캐릭터들이 총출동했다. 책을 펼치면 작가 흔글이 쓴 짤막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주는 글과 카카오프렌즈 캐릭터들의 귀엽고 재치 넘치는 일러스트가 보인다.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읽다 보면 왠지 모르게 입가에 웃음이 번지고, 이렇게 따뜻한 글과 귀여운 그림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은 생각이 든다.


아침에 눈을 뜨면 밤 사이 늘어난 사망자 수부터 확인하게 되는 요즘이다 보니 삶의 의미, 생명의 소중함에 대해 전보다 많이 생각하게 된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생사가 갈릴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막막하고 두렵지만, 그렇기 때문에 지금 더 많이 사랑을 표현하고 언젠가 하려고 미뤘던 일들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급해지고 바빠진다. "슬퍼하고 있기에 우린 너무 바빠."(149쪽)라는 말을 상기하며, 오늘도 부지런히 내 몫의 삶을 살고 관계를 돌봐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