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파도에서 넘어지며 인생을 배웠다 - 넘어져도 무너지지 않고 다시 일어나는 법
캐런 리날디 지음, 박여진 옮김 / 갤리온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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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못하는 일에 도전하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 <매기스 플랜>의 원작자이자 하퍼콜린스의 편집장인 캐런 리날디의 책 <나는 파도에서 넘어지며 인생을 배웠다>에서 발견한 문장이다. 저자가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칼럼을 엮어 만든 이 책에는 그동안 저자가 살면서 부딪힌 역경들과 그것들을 극복하며 배운 지혜와 통찰이 담겨 있다.


저자는 2013년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진단을 받았을 때는 오랫동안 열정을 바쳐 일한 회사에 복귀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그토록 좋아하는 서핑을 다시 할 수 있게 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석 달 후 다시 서프보드에 올랐고 회사에도 복귀했다. 암 진단을 고백하자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격려와 응원의 메시지를 받았다. 그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연결감, 유대감이었다.


저자는 행복해지고 싶다면 잘하는 일에 도전하기 보다 기꺼이 못하는 일에 도전해야 한다고 말한다. 못하는 일을 열정적으로 하다 보면 내가 얼마나 부족한 인간인지 여실히 깨닫게 된다. 그러다 잘하게 되면 내가 생각보다 능력 있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엉뚱하고 비생산적인 일을 하는 것도 좋다. 소설가가 될 건 아니지만 소설을 써본다거나, 발레리나가 될 건 아니지만 발레를 배워본다거나. 남들이 쓸데없는 짓 한다고 놀리거나 비난해도 상관없다. 직접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을 당신은 배우게 될 것이다.


못하는 일을 하는 경험은 인생의 고비들을 수월하게 넘기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모든 일을 잘 해내야 한다고 믿는 완벽주의에 사로잡힌 사람은 자기 자신의 단점이나 결점을 받아들이지 못할 뿐 아니라 타인의 실수나 능력 부족에 대해서도 가차 없이 비난하기 쉽다. 나도 못하는 일이 있다, 실패해본 적 있다는 사실을 항상 인지하고 있는 사람은 마음이 늘 여유롭고 넉넉하다. 뭐든 해봐야 못한다는 것도 알 수 있고, 잘하는 사람들은 한때 못했던 사람들이라는 걸 경험적으로 알기 때문에 가정에서 자녀를 교육하거나 직장에서 후배들을 교육할 때에도 훨씬 관대한 태도를 취한다.


저자가 이런 지혜와 통찰을 배운 건 서핑 덕분이다. 17년 넘게 서핑을 해온 저자는 아무리 서핑을 잘하는 사람도 거친 파도 앞에서는 초보자와 똑같이 물에 빠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서핑을 하는 이유는 아무리 거친 파도가 몰려와도 좌절하지 않고 파도에 달려드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다. 물에 빠져도 창피해 하지 않고 웃으면서 파도 밖으로 나오기 위해서다. 이 밖에도 멋진 이야기가 많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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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와 생쥐가 한 번도 생각 못 한 것들
전김해 지음 / 지식과감성#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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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의 왕 사자와 작디작은 생쥐가 친구가 되는 일은 가능할까. 작가 전김해가 쓴 동화풍 소설 <사자와 생쥐가 한 번도 생각 못 한것들>은 기발하게도 사자가 책 한 권을 읽고 생쥐와 친구가 되기로 결심하면서 시작된다.


사자는 이솝 이야기 책에서 <사자와 생쥐>라는 제목의 동화를 읽고 큰 감명을 받았다. 그물에 걸린 사자를 본 생쥐가 사자의 발톱보다 작은 자신의 이빨로 그물을 끊어서 사자를 구해주었다는 내용의 동화였다. 사자는 생쥐를 보자마자 친구가 되자며 졸라댔지만, 동화는 동화일 뿐. 사자가 사나운 맹수로밖에 보이지 않는 생쥐는 기겁하며 거절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친구가 되고 싶은 이유를 나열하는 사자의 열정과 겸손함에 생쥐는 결국 백기를 들었고, 둘은 곧 친구가 되었다. 과연 이 둘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까.


이후 사자와 생쥐는 해가 떨어지는 바다 끝으로 여행을 떠난다. 여행을 하면서 까치도 만나고 바다사자도 만나고 물고기도 만나고 범고래도 만난다. 깊은 산속에 살면서 혼자 외롭게 지내는 나무꾼도 만난다. 사자와 생쥐는 옥황상제의 아홉 딸들 중에 막내 선녀를 나무꾼과 만나게 하고, 둘은 곧 살림을 차리고 아이들도 낳게 된다. 막내 동생을 가엾게 여긴 언니 선녀가 둘을 떼어놓으려고 하면서 문제가 발생하는데, 사자와 생쥐가 기지를 발휘해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모험을 떠난다.


전체적으로 신선한 발상과 교훈적인 전개가 인상적이었던 작품이다. 서양의 동화(이솝 이야기)와 한국의 동화(선녀의 나무꾼)를 접목하는 시도 자체는 좋았지만, 개인적으로 사자와 생쥐가 처음 친구가 되고 모험을 하면서 다른 동물 친구들을 만났던 이야기가 더 마음에 들어서(<고슴도치의 소원>을 쓴 톰 텔레헨 소설 느낌?) 사자와 생쥐 이야기에 집중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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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11 11: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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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
사샤 스타니시치 지음, 권상희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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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조선인 학자 서경식 선생을 처음 알았을 때 받은 충격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서경식 선생은 1951년 일본 교토에서 재일조선인 2세로 태어났다. 재일조선인 1세인 부모가 현해탄을 건넜을 때 한반도는 분단 이전이었으므로 그들은 스스로를 조선인이라고 생각했다. 일본에서 태어난 그는 조선인들의 자식이므로 일본인이 아니었고 한국인도 될 수 없었다. 결국 그는 스스로를 조선인이라고 여겼다. 그가 태어나기도 전에 없어진 나라, 추억할 거리도 없는 나라를 조국으로 삼게 된 것이다. 살아본 적도 없는 나라를 조국으로 삼게 된 서경식 선생의 처지도 기구하지만, 살았던 기억이 생생한 나라로부터 쫓기듯이 떠나야 했고 끝내 그 나라가 없어져서 영영 돌아갈 수 없게 된 사람의 처지는 또 얼마나 기구한가. 사샤 스타니시치의 장편소설 <출신>을 읽으며 든 생각이다.


사샤 스타니시치는 1978년 지금은 없어진 유고슬라비아 연방공화국의 소도시 비셰그라드에서 태어났다. 1991년에 발발한 전쟁의 여파로 유고슬라비아 연방에 속하는 나라들이 차례로 분리 독립하면서 민족 간, 종교 간 갈등이 폭발했다. 그로 인해 스타니시치의 가족은 안락한 집과 안정된 직장을 모두 버리고 나라 밖으로 도망칠 수밖에 없었고, 우여곡절 끝에 독일에 정착했다. 열네 살의 그가 독일에 처음 왔을 때만 해도 그와 그의 가족은 독일어를 한마디도 못했다. 다행히 그는 난민 자격을 얻어 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고 순조롭게 학업을 마친 후 작가로서 데뷔까지 했다. 현재는 독일 함부르크에 살면서 결혼도 하고 자식도 얻고 작가로서도 성공적인 경력을 쌓고 있지만, 때때로 그는 다른 독일인들이라면 겪지 않을 크고 작은 곤란을 겪는다. 그는 독일에 살지만 독일인이 아니고, 유고슬라비아인을 자처하지만 유고슬라비아는 지도상에서 사라졌고 기억하는 사람도 점점 드물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내가 태어난 나라는 이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 나라가 존재할 때만 해도 나는 내가 유고슬라비아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세르비아 출신인 아버지와 보스니아-무슬림 가정에서 태어난 어머니처럼 말이다. (19쪽)


소설은 '나'가 2008년 3월, 독일 국적을 획득하기 위해 외국인청에 제출할 자필 이력서를 작성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자필 이력서를 앞에 두고 그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 1978년 3월 7일, 세르비아 출신인 아버지와 보스니아-무슬림 가정에서 태어난 어머니에게서 태어났다는 사실 외에는 아무런 쓸 말이 없기 때문이다. 이력을 보충하기 위해 그는 자신의 생애를 증명할 만한 과거의 일화들을 떠올리기 시작한다. 그가 태어난 마을 사람들은 전설에 나오는 용을 숭배했다, 할아버지는 친구들과의 모임에 손주인 자신을 데려가기를 좋아했다, 할머니의 입속에서 금니가 번쩍번쩍 빛나는 게 부러워서 일부러 이를 노랗게 칠한 적이 있다 등등. 이런 일화들은 그가 주변 어른들로부터 얼마나 다정한 보살핌을 받았는지를 보여주기에는 충분하지만, 독일 국적을 취득하기에 마땅한 자격을 갖춘 사람이라는 걸 증명하기에는 부족하다. 관청에서 일하는 공무원들이 원하는 건 그의 국적과 태어난 도시 이름뿐인데, 그가 태어난 나라는 없어진 지 오래이고 태어난 도시는 그가 가본 적 없는 나라에 속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관청의 공무원들이 알아줄 리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친할머니를 모시고 그의 집안사람들이 묻힌 묘지가 있는 오스코루샤를 방문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친척 노인으로부터 조상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처음에 그는 "이곳, 넌 이곳에서 왔다."라고 말하는 친척 노인에게 적의에 가까운 반발감을 느낀다. 평생 고향을 떠나본 적 없는 당신이, 열네 살 때 낯선 나라에 가서 낯선 언어를 배우고 낯선 도시에서의 생활에 적응해야 했던 나에 대해 무엇을 아느냐고 항변하고 싶어진다. 황당해 하는 그에게 친척 노인은 그동안 그가 알지 못했던 증조부모의 생애를 들려준다. 그로서는 늙고 병들고 약해진 모습밖에 모르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어릴 때는 얼마나 건강하고 생명력이 가득했는지도 알게 된다. 친척 노인의 이야기를 듣고서야 그는 오스코루샤가 그의 출신이라는 말을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나는 '늘 그렇듯 역시나 출신이군' 하고 생각하며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 "복잡한 문제군요! 어디서 왔냐는 말이 암시하는 바가 뭔지부터 정확히 따져봐야 해요. 분만실이 위치한 언덕의 지리적인 위치를 암시하는지, 마지막 진통이 시작되는 순간에 머물고 있는 나라의 국경을 암시하는지? 부모님 혈통인지? 유전자, 조상, 방언인지? 어떤 관점에서 보더라도, 출신이 창조물이라는 건 변함이 없어요. 한번 입으면 영원히 입고 있어야 하는 옷 같은 거죠. 그건 저주예요!" (44쪽)


그의 부모의 삶에 관해서도 생각해본다. 그의 부모는 고향에서 엘리트 그룹에 속하는 사람들이었다. 경영학을 전공한 아버지는 주중에는 벌이가 좋은 직장에 다니고 주말에는 아들과 축구 경기 중계를 보는 걸 즐기는 괜찮은 가장이었다. 정치학자인 어머니는 형제자매 중 유일한 대학 졸업자로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만약 전쟁이 일어나지 않고 나라가 내내 평안했다면, 필경 그들은 전도 유망한 그들의 미래를 현실로 만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소망과 달리 전쟁이 일어났고, 세르비아 출신인 아버지와 무슬림 집안 출신인 어머니는 집도 직장도 모두 버리고 도망치듯 나라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희망을 품은 때도 있었다. 그때는 그들처럼 전쟁을 피해 나라를 떠나온 사람들과 쓰레기장 같은 숙소에서 함께 살아도 견딜 수 있었다. 하지만 전쟁이 길어지고 다시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 확실해지자, 아버지와 어머니는 절망한 표정으로 일자리를 구하고 잘 곳으로 찾아야 했다. 이 과정에서 아버지는 다리에 총상을 입고 공사장에서 막노동을 하다가 등에 부상을 입기까지 했다.


한때 그는 이런 처지를 원망했다. 누구도 자신이 태어날 나라를 선택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태어난 나라에 따라 개인의 위치가 결정되고 조국의 흥망성쇠에 따라 사람들이 자신을 취급하는 방식이 달라진다는 사실에 깊은 무력감과 절망감을 느꼈다. 자신의 기원을 추적하는 여행을 마친 후에는 생각이 조금 바뀐다. 그가 독일 국적을 얻어도 그가 태어난 나라는 독일이 아니라는 사실, 그의 모국어가 독일어가 아니라는 사실은 영영 바뀌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부모님의 희생 덕분에 그는 비교적 어릴 때 독일에 와서 학교에서 정식으로 독일어도 배우고 독일에 있는 대학교도 졸업하고 독일에서 작가로 성공하기까지 했다. 그의 조부모는 노동자 출신임에도 아들을 엘리트로 키워냈고, 그의 외조부모는 그의 어머니를 딸이라고 차별하지 않고 대학에 보냈다. 이 모든 일은 오스코루샤에서 나고 자란 증조부가 어느 날 드리나 강에서 헤엄을 치다가(혹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다가) 때마침 빨래를 하러 나온 증조모를 만나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거나 무관했을 일들이다. 그는 현재의 자신을 있게 한 조상들의 삶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비로소 그들이야말로 자신의 출신임을 깨닫는다.


이처럼 세상을 떠돌아다니는 건 때론 무거운 짐 같고, 때론 선물 같기도 하다. (86쪽)


우리를 이곳저곳으로 이끈 달콤 쌉쌀한 우연들이 곧 출신이다. 사람들과 아무 상관없는 소속감이 곧 출신이다. (89쪽)


나라가 아니라 소속감이야말로 출신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그는 사람이 소속감을 저해하는 요인이 될 수 있음을 지적한다. 2018년 8월 독일 켐니츠 시민 수천 명이 이민자, 난민을 포용적으로 받아들이는 독일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는 - 이른바 '열린 사회'를 반대하는 시위를 벌인 것이 대표적이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그들은 이민자들을 적대시하고 지금도 히틀러식 인사를 하는 사람들"이다. (133쪽) 그들은 출신지나 피부색처럼 개인이 스스로 선택해 타고날 수 없는 요소가 배제나 차별의 이유가 될 수 없음을 머리로도 마음으로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을 볼 때마다 그는 안전과 평화를 찾아 독일에 왔지만 여전히 안전과 평화를 얻지는 못했음을 확인한다. 하지만 아무리 독일이 그를 이방인 취급하고 그런 그가 돌아갈 고향이 없어도, 독일도 아니고 고향도 아닌 여러 곳에 그를 환영하고 기꺼이 잠자리를 내어줄 사람들이 있다는 걸 이제는 안다. 그런 사람들과 나누는 소속감이 진정한 그의 고향이고 출신이다.


책을 덮으며 나라면 이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을지 자문해 보았다. 나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나를 배척하고 차별하는 사람들 앞에서 나도 나를 잘 몰랐다고 고백하고 묵묵히 나의 과거와 조상들의 과거를 그러모을 수 있을까. 험한 얼굴로 나를 쫓아낼 구실을 찾는 사람들에게 당신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했을 것 같으냐며 게임을 제안하는 위트를 발휘할 수 있을까. 나로 하여금 고향이고 출신이라고 느끼게끔 하는 사람들은 누구이며 나는 그들로부터 어느 정도로 충분한 소속감을 얻고 있을까. 어쩌면 몇 번의 단기 여행을 제외하고 태어난 나라에서 계속 살고 있는 나야말로 타향살이 중인 건 아닐까. 잃어본 적 없는 고향이 이따금 그리워지는 이유를 이 책에서 찾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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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09 00: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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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밖의 모든 말들
김금희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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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한낮의 연애>, <경애의 마음> 등을 쓴 김금희 작가가 데뷔 11년 만에 펴낸 첫 산문집이다. 김금희 작가의 소설을 워낙 좋아하고, 최근에는 김금희 작가가 동물보호단체 카라(KARA)를 후원하는 작가들과 함께 펴낸 책 <다름 아닌 사랑과 자유>에 쓴 반려견 '장군이'에 관한 글을 감명 깊게 읽어서 이 책에 대한 기대가 컸다. 기대는 적중했고, 나는 전보다 훨씬 더 김금희 작가를 '경애'하게 되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숙련된 피아니스트의 매끄럽고 유려한 연주를 듣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만큼 문장이 아름답고 편안하게 읽힌다는 뜻이다. 책에는 저자의 유년 시절 일화부터 국문과 졸업 후 편집자로 일하다 소설가로 데뷔해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일들이 실려 있다. 저자가 태어나 자란 인천 서구에 대한 묘사가 많아서 가본 적 없는 그곳의 풍경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했다(언젠가 꼭 가봐야지!).


부업을 하느라 자신과 놀아주지 못하는 엄마가 미워서 엄마가 부업으로 만드는 피아노 조각을 몇 개 훔쳐다 강물에 버리는 아이, 엄마를 졸라서 산 자라를 막상 키우려니 엄두가 나지 않아 멀찍이 두고 지켜보는 소녀, 집안 사정으로 대학에 가지 못한 설움을 견디다 못해 가족들 몰래 기차를 타고 바다로 가서 하염없이 밀려왔다 쓸려나가는 파도를 보면서 우는 스무 살 처녀, 그동안 서류에서만 본 아버지의 본적지를 찾아가 아버지의 젊은 시절을 상상해 보는 작가 등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장면이 많았다. 이런 장면들이 씨앗이 되어 소설이라는 열매를 맺는 걸까.


반려견 '장군이'에 관한 이야기도 나온다. 앞이 보이지 않는 장군이가 얼마 전 뇌종양이 의심되는 증상을 보여서 병원 신세를 졌다는 내용의 글을 읽고 어찌나 놀랬는지. 그랬던 장군이가 지금은 건강한지 어떤지 궁금하다. 부디 아프지 말고 오래오래 안녕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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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의 혼잣말 8 - 카니발 플러스
휴우가 나츠 지음, 시노 토우코 그림, 김예진 옮김 / 학산문화사(단행본)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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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로 시작해 이제는 소설을 더 열심히 읽고 있는 시리즈물이다. 후궁 소속의 궁녀였던 마오마오는 이제 의국 소속의 의녀가 되었지만, 여전히 진시와 교쿠요 비 등 후궁 사람들과의 관계가 이어지고 있다.


8권은 마오마오의 친아버지이자 괴짜로 소문난 군사 라칸이 마오마오에게 대량의 책을 보내면서 시작된다. 책의 정체는 라칸이 직접 만든 바둑 교본. 나라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바둑을 잘 두는 라칸이 직접 책을 냈으니 보라고 선물한 것이다. 물론(!) 관심이 없는 마오마오는 어떻게든 팔아치울 생각부터 하는데, 마오마오와 달리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책에 열광하고 바둑이 크게 유행하면서 라칸이 직접 바둑 대회를 개최하기에 이른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무 관심 없다는 듯 태연하게 살아가는 마오마오(나는 이런 마오마오의 무심한 모습이 참 좋다^^)는 교쿠요 비의 부름을 받고 오랜만에 후궁을 찾는다. 동궁을 낳고 황후의 자리에 오른 교쿠요 비는 누구도 쉽게 상상하지 못할 근심 거리를 안고 있었는데... 한편, 진시는 라칸이 주최하는 바둑 대회가 열리는 것을 알고 조심스럽게 계책을 세운다.


줄거리에 대단한 진전은 없지만 조만간 뭔가 대단한 일이 생길 것 같은 예감이 드는 8권이었다. 언제부터인가 진시의 비중이 크게 줄고 잊을 만하면 등장하는 것 같다고 느끼는 건 나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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