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귀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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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베 미유키를 좋아한다. 미야베 미유키의 대단한 점은 1987년 데뷔 후 33년 동안 한 번도 길게 텀을 두지 않고 꾸준히 작품을 발표했다는 점, 그리고 <화차>, <모방범>, <솔로몬의 위증> 같은 현대물도 잘 쓰지만 시대물도 잘 쓴다는 점이다. 흔히 미야베 미유키를 같은 미스터리 소설 작가인 히가시노 게이고와 비교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미야베 미유키가 장르의 스펙트럼도 훨씬 넓고 작품 퀄리티의 편차도 크지 않아서 더 좋아한다.


<삼귀>는 미야베 미유키가 2008년에 발표한 <흑백> 이후 현재까지 절찬리에 발표하고 있는 '미시마야 시리즈'의 네 번째 책이다(<흑백>, <안주>, <피리술사>, <삼귀>, <금빛 눈의 고양이> 순이다). 미시마야 시리즈는 원래는 여관집 딸인 오치카가 어떤 사정 때문에 에도에서 '미시마야'라는 이름의 주머니 가게를 운영하는 숙부의 집에서 지내면서 항간에 떠도는 괴담을 수집하는 이야기이다. 미야베 미유키 버전의 '항설백물어(항간에 떠도는 100가지 이야기)'라고 이해하면 쉽다.


<삼귀>에는 도시락 가게 주인에게 들러붙은 귀신에 얽힌 이야기, 죽은 가족을 그리워하던 화가가 불러낸 기이한 귀신 이야기, 고립된 산간 마을에서 사람들을 도와주던 귀신에 얽힌 이야기, 향료 가게에 살면서 대대로 가족들을 보살핀 귀신 이야기 등이 나온다. 귀신이 나오는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미야베 미유키의 시대물이 대체로 그렇듯이 무섭고 끔찍한 분위기라기보다는 따뜻하고 정 넘치는 분위기이다. 읽고 나면 다음 편인 <금빛 눈의 고양이>를 읽지 않고는 배길 수 없을 것이다(적어도 나는 그랬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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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크아웃 11
최은영 지음, 손은경 그림 / 미메시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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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코의 미소>, <내게 무해한 사람>을 쓴 최은영 작가의 짧은 소설이다. 소설 전체 길이는 60여 쪽 정도로 짧지만, 소설의 완성도와 문제의식은 여느 장편 소설 못지않다. 이대로라면 최은영 작가가 '한국의 앨리스 먼로'가 되는 건 시간문제일 듯(앨리스 먼로처럼 노벨문학상도 받으시길!).


<몫>은 서울 소재의 한 대학교 학보사에서 만난 세 여성의 이야기를 그린다. 신입 기자인 해진은 글 쓰는 일을 좋아하지만 스스로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자신보다는 학보사 선배인 희영과 동기인 정윤이 글을 훨씬 더 잘 쓴다고 생각해서 그들처럼 쓰려고 노력하지만 좀처럼 잘되지 않는다.


그렇게 대학 시절 내내 글 쓰는 일을 두고 고민한 해진은 졸업 후 기자가 된다. 반면 해진이 자신보다 글을 훨씬 더 잘 쓴다고 생각했던 희영과 정윤은 글쓰기를 업으로 삼지 않게 된다. 그들을 보면서 해진은 마땅히 글을 써야 할 사람들이 글을 쓰지 않고 자신이 쓰게 된 현실에 대해, 그리고 그들을 대신해 자신이 책임져야 할 '몫'에 대해 대해 생각한다.


이 작품은 글쓰기를 업으로 삼고 있거나 글쓰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고민해봤을 만한 문제를 지적한다. 세상에는 나보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엄청나게 많다. 글쓰기 말고 해야 할 일도 많고 할 수 있는 일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쓰는 이유는 뭘까. 왜 하필 글일까. 여러 가지 답이 있겠지만, 그중에는 책임도 있다고 생각한다. 남이 쓴 좋은 글을 읽은 책임. 기꺼이 읽어주는 사람들을 위한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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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지 못하는 모든 신들에게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6
정이현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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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영화 <케빈에 대하여>를 봤다. 자신으로서는 최선을 다해 키운 아들이 반항을 일삼다 끝내 살인을 저질러서 고통받는 엄마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였다. 처음에는 시도 때도 없이 엄마를 괴롭히는 아들이 미웠는데, 영화를 볼수록 아들을 대하는 엄마의 태도에서 왠지 모를 위화감을 느꼈다. 아들을 한 명의 인간이 아니라 일종의 양육 '대상'으로 보고 자신의 의무 또는 책임을 다하기 위해 엄마라는 '역할'을 수행하는 느낌이었달까.


정이현 작가의 2018년작 <알지 못하는 신들에게>에도 엄마가 나오는데, 이 엄마는 <케빈에 대하여>에 나오는 엄마보다는 훨씬 더 바람직한 방식으로 아이를 사랑하고 아끼지만, 그런 엄마조차 딜레마를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 그려진다. 


세영에게는 지방에서 호텔을 경영하는 남편과 중학생 딸 도우가 있다. 도우가 반대표라서 자동적으로 학부모회 임원이 된 세영은 어느 날 학폭위에 참석하라는 연락을 받는다. 세영은 도우를 위해서라면 학폭위에 참석하는 것이 맞지만, "남의 인생에 그렇게까지 개입하고 싶지 않"아서 답변을 피한다. 결국 세영이 불참한 학폭위에서 가해자의 편을 들어주는 쪽으로 결론이 나고, 피해자 학생은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일이 벌어진다.


세영은 이 모든 일이 자기 탓인 것만 같아서 괴롭다. 세영은 도우를 사랑하지만, 도우의 엄마 역할을 수행하는 일에는 어려움을 느낀다. 정확히는 '사회가 기대하는' 도우의 엄마 역할. 만약 세영이 도우의 엄마가 아니었다면 학교로부터 학폭위에 참석하라는 연락을 받을 일도 없었을 것이고, 자신과 무관한 학교 폭력 사건에 책임감을 느낄 일도 없었을 것이다. 다른 학부모들로부터 이런저런 말을 듣는 입장이 될 일도 없었을 것이고, 친구의 장례식에 가겠다는 딸을 말리는 (나쁜) 엄마가 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세영이 본의 아니게 나쁜 엄마가 되는 동안, 세영의 남편은 사회로부터 그 어떤 책임도 추궁당하는 일이 없다. 세영도 약사로 일하면서 가정을 부양하는데 학'부'모회 연락은 엄마인 세영에게만 간다. 세영이나 세영의 남편이나 학부모회에 참석하지 않은 건 마찬가지인데, 사람들은 세영만 비난하고 세영의 남편은 비난하지 않는다. 자책하는 세영과 달리, 세영의 남편은 인터넷 게시판에 악플이나 달 뿐이다. 나쁜 엄마는 누가 만드나. 이런 남편, 이런 사회가 나쁜 엄마를 만드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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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치니 - 토스카나의 새벽을 무대에 올린 오페라의 제왕 클래식 클라우드 5
유윤종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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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를 좋아한다. 한 사람의 생애를 오롯이 파고들면서 작품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고 여행하는 기분까지 느낄 수 있어서 좋아한다.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의 다섯 번째 책 <푸치니>도 그랬다.


이 책은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예술가이자 오페라의 제왕으로 불리는 음악가 푸치니의 삶을 집중적으로 보여준다. 내로라하는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당시만 해도 음악에 관심이 없어서 주변 어른들의 속을 썩였던 청소년기를 비롯해 본격적으로 경력을 쌓기 시작한 청년기, 유럽을 넘어 아메리카에서도 높은 인기를 구가했던 중장년기의 일들이 자세히 나온다.


당시 오페라는 지금처럼 일부 팬들만 즐기는 예술 장르가 아니라 오늘날의 영화나 뮤지컬처럼 일반 대중이 즐기는 예술 장르였다. 그래서 푸치니는 비평가들을 만족시키는 동시에 대중들의 관심과 인정을 받기 위해서도 노력해야 했다. 푸치니라고 해서 늘 흥행에 성공하지는 못했다. 때로는 흥행에 성공해도 비평가들로부터 혹평을 받기도 했다. 


푸치니로서는 힘든 일이었겠지만, 결과적으로 그 덕분에 지금까지도 널리 사랑받는 곡들이 탄생될 수 있었고, 오페라 하면 푸치니의 이름이 떠오를 만큼 강력한 아우라를 지니게 된 것이 아닐까. 마침 비도 오니 오랜만에 푸치니의 곡들을 찾아 들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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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떠나온 상태에서 떠나오기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지음, 이다희 옮김 / 바다출판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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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영화 <매기스 플랜>의 원작자 캐런 리날디의 책을 읽었다. 그 책에서 저자는 행복해지고 싶다면 잘하는 일만 하지 말고 못하는 일에 도전하라고 했다. 잘하는 일만 하고 싶어 하는 건 조금의 실패도 용납하지 못하는 완벽주의 때문이므로, 완벽주의를 버리려면 일부러라도 못하는 일에 도전하면서 세상에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이 많지 않다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그 말에 나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졌는데, 나야말로 잘하는 일만 하고 싶어 하는 완벽주의자의 전형 같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은 일부러 그동안 읽지 않았던 장르나 취향이 아니라고 여겼던 작가의 책을 읽고 있다.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의 책도 그중 하나다. 사실 2018년 10월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의 다른 책 <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을 읽은 적이 있다. 당시의 나는 그 책이 지나치게 난해하고 장황하다고 느꼈고, 그래서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의 책은 '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읽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의 신간이 나오자마자 읽은 건, 그때의 생각이 틀렸을지 모른다고 기대했기 때문이다. 읽어보니 여전히 난해하고 장황하지만, 그만큼 작가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고, 작가가 보는 방식을 제대로 이해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는 총 다섯 편의 글이 실려 있다. 1993년 저자의 고향인 일리노이주에서 열리는 축재를 취재하고 쓴 <거의 떠나온 상태에서 떠나오기>를 비롯해 미국의 영화감독 데이비드 린치의 영화 촬영 현장을 방문하고 쓴 <데이비드 린치, 정신머리를 유지하다>, 미국의 작가 존 업다이크의 소설 <시간의 종말을 향하여>를 읽고 쓴 <무엇의 종말인지 좀 더 생각해봐야겠지만 종말인 것만은 분명한>, 수학에 관한 두 권의 장르 소설을 읽고 쓴 <수사학과 수학 멜로드라마>, <2007년 미국 최고 에세이> 선집의 서문으로 쓴 <결정자가 된다는 것> 등이다.


이 중에 가장 좋았던 글은 <시간의 종말을 향하여>이다. 이 글에서 저자는 미국의 국민 작가 반열에 오른 존 업다이크의 소설에 대해 부모 세대와 자식 세대의 평가가 극명하게 다르다는 점을 지적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부모 세대는 존 업다이크의 소설이 가식적이지 않고 솔직하다고 열광한 반면, 자식 세대는 냉소적이고 위선적이라고 비판했다. 저자는 이러한 차이가 부모 세대와 자식 세대의 특성의 차이에 기인한다고 본다. 정상 가족 신화가 건재하던 시대에 성장기를 보낸 부모 세대에게는 불륜이나 이혼 같은 주제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윗세대에 대한 반발이자 '쿨한' 행동으로 보인 반면, 정상 가족 신화가 해체되는 와중에 성장기를 보내고 있는 자식 세대는 불륜이나 이혼 같은 주제가 자신들의 안정과 생존을 위협하는, 결코 '쿨하지 못한' 행동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필리베르트 스호흐트의 <천재와 광기>, 아포스톨로스 독시아디스의 <그가 미친 단 하나의 문제, 골드바흐의 추측>을 읽고 두 작품을 비교해 쓴 서평도 인상적이었다. 이 글에서 저자는 고등수학에 대해 많은 지식이나 경험을 보유하고 있지 못한 일반 독자들이 이런 작품들에 열광하는 현상이 재미있다면서, 독자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고등수학 자체가 아니라 '고등수학을 연구하는 기분'이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이 작품들에 등장하는 수학적 용어나 개념들은 진짜가 아니라 가짜라고. 이 밖에도 평소 생각해보지 않았던 문제들에 대해 평소 생각해보지 않았던 방식으로 생각해보게 만드는 글이 여럿 실려 있다. 마냥 쉽지만은 않은, 그만큼 읽는 보람이 있는 에세이를 찾는 독자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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