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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샤베트
백희나 글.그림 / Storybowl(스토리보울)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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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어른이 보기에도 좋은 동화책. 환경, 이웃, 전통 등 여러가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해주는 책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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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의 추리 책방
홍윤(물만두) 지음 / 바다출판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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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어느 북로거가 오랜 투병 생활 끝에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있다.

어떤 분이기에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하고 아쉬워하는 것일까 궁금했다.

그 분이 알라딘서재에서 활발히 활동하시던 물만두 님인지는,

하루에도 몇 번씩 알라딘 서재에 드나드는 것이 습관이 되고 나서야 뒤늦게 알게 되었다.

 

물만두 님의 서재에는 이제 물만두 님의 동생 분께서 쓰신 글이 꾸준히 등록되며

고인을 그리워하는 분들과의 교류가 이어지고 있다.

뒤늦게 서재 생활을 시작한 나로서는 물만두 님보다도 동생 분이 쓰신 글을 읽은 적이 더 많은데,

이 동생 분의 글이 언제나 나를 울린다.

언니와 여동생의 애틋한 마음, 자매애란 나에게도 큰 의미가 있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내가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된다면 누구보다도 아파하고 날 그리워할 사람이 내 여동생일 것이다.

훗날 반쪽을 만나 가정을 꾸려 새로운 가족이 생겨도 그들은 나의 어린시절과 청춘은 모른다.

그 시간들까지도 모두 알고 이해해주는 사람, 세상에서 가장 오랫동안 함께 추억을 공유한 사람은 

세상에 단 한 명, 내 동생뿐. 그러니 그만큼 슬픔의 무게도 크지 않을까?

그렇기에 물만두 님의 여동생이 쓴 글을 볼 때마다

내가 먼저 세상을 떠나면 동생이 안게 될 슬픔과 외로움의 무게를 재며 가슴이 미어지는 것이다.

  

그런 마음이 없었더라면 <물만두의 추리책방>을 읽고 

그저 어느 북로거의 전문서평집을 읽었다는 감상 밖에 못 얻었을지 모른다.

나는 추리소설을 그리 즐겨 읽는 편도 아니고, 서평을 굳이 찾아 읽을 정도는 더더욱 아니라서

이 책에 실린 서평들이 어느 수준인지도 내 얄팍한 지식으로는 잘 모르겠다.

(물론 전문 서평가 분들의 평에 따르면 훌륭한 수준이라고 한다.)

 

하지만 병상에서도 추리소설과 글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던 언니,

동생의 마음 속에 언제나 살아있는 언니의 존재의 조각 하나가 이 책으로 남았다는 생각을 하니

한 구절 한 구절이 절절하게 다가오고, 그 어떤 문학작품 속 문장보다도 귀하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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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잇태리
박찬일 지음 / 난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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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때 알라딘에서 보고 제목이 참 마음에 들었다. 이태리라는 말이 주는 구수한 울림(아무리 이탈리아라는 말이 더 많이 쓰여도 '이탈리아 타올'이 아니라 '이태리 타올'이라고 해야 더 정겹고 친근하게 느껴지듯이 ㅎㅎ), 거기에 '이'자를 살짝 변형하여 '잇(eat)'이라고 표기함으로써 음식에 관한 책이라는 것을 넌지시 알리는 재치까지! 어찌 읽어보지 않을쏘냐.

 

읽어보니, 우왕~ 정말 재밌다. 저자 박찬일 님은 잡지 기자 출신으로 현재는 홍대 앞 <라꼼마>라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의 셰프 오너라는 멋진 이력을 가지고 계신 분이다. 그래서인지 잡지 기자 특유의 눈에 쏙쏙 들어오는 재치 넘치는 글솜씨와, 셰프로서의 예리하고도 애정 넘치는 관찰력이 어우러져 글과 내용 면에서 모두 만족스러웠다. 게다가 이탈리아에 그저 관광차 몇 번 드나든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공부하고 일하면서 오래 체류하면서 느끼고 생각한 것들이 담겨 있어서 어느 여행서보다도 내용에 깊이가 있고 알찼다.

 

그리고 음식에 대한 이야기는 어찌나 맛깔스러운지. 이탈리아 요리는 국내에서도 많이 접할 수 있지만, 아무리 그래도 본고장에서 먹는 요리는 차원이 다를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중국 요리 많이 먹지만, 실제로 중국의 가정집에서 매일 짜장면, 짬뽕을 먹는 건 아닌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과연 그네들은 무엇을 먹고 살까? 한국식으로 변형된 파스타, 피자도 이렇게 맛있는데 ㅠㅠ

 

사실 이제까지 나는 이탈리아를 영화나 책을 통해서 자주 접해서 다른 나라보다는 많이 알고 있는 편이라고 생각했다. 가 본 적도 없으면서 말이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매체에 나오는, 관광지로 유명한 이탈리아가 아닌, 역사와 생활이 공존하는 이탈리아의 실제 모습을 직접 발로 걷고 피부로 느끼는 여행을 해보고 싶다. 그 소중한 여행길에서 무엇을 먹어야할까? <어쨌든, 잇태리> 이 책 한 권이면 고민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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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96일 - 유괴, 감금, 노예생활 그리고 8년 만에 되찾은 자유
나타샤 캄푸쉬 지음, 박민숙 옮김 / 은행나무 / 2011년 9월
평점 :
절판


 

 

아침에 대전 모 여고 학생이 자살했다는 뉴스 보도를 보았다. 학교 친구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했고, 선생님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묵살당했다고 했다. 인터넷에서는 훨씬 전부터 이 사건이 알려져 그 친구들과 선생님을 비난하는 여론이 들끓고 있었다.

 

사건에 대한 보도와 글을 읽으면서 마음이 너무 아팠다. 친구가 삶의 전부이고, 학교만이 내 세상인 그런 나이에, 친구들로부터, 학교로부터 자신을 부정당했다. 성인이 되어서도 연인으로부터, 회사로부터, 사회로부터 등등 나를 부정당하는 건 늘 불쾌한 감정이 뒤따른다. 그러니 이 어린 친구한테는 얼마나 더 고통스러운 일이었을까.

 

.....

 

안타까운 마음을 안고 그저께부터 읽던 <3096일>을 펼쳐 들었다. 저자 나타샤 캄푸쉬는 1988년 2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났고, 열 살이 되던 1998년에 유괴되어 무려 3096일, 약 8년의 시간을 볼프강 프리클로필이라는 남성에 의해 감금되어 보냈고, 2006년에 혼자 힘으로 탈출했다.

 

나타샤의 어린시절은 불안정했다. 어머니가 늦은 나이에 예상치 못한 임신으로 나타샤를 낳았기 때문에 '원치 않았던 아이' 라는 생각이 늘 그녀를 괴롭혔다. 부모님은 허구헌날 싸웠고, 어머니는 나타샤에게 폭력을 가하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했다. 나타샤는 마음의 상처를 달래기 위해 폭식을 했고, 그 탓으로 학교에서는 뚱뚱하다는 놀림을 받았다. 그러면 다시 먹는 걸로 스트레스를 풀고, 매사에 무력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그 시절 어린 나타샤의 머릿속에 각인된 영상이 있었다. 바로 텔레비전 뉴스에서 본 아동 유괴, 성폭행에 관한 영상이었다. 당시 유럽에서는 어린 소녀들을 노리는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나타샤는 비슷한 또래의 소녀들이 피해자라는 사실이 놀랍고 두려웠고, 만약 자신에게 그런 일이 생긴다면 어떻게 할지 생각해 보았다.

 

그러던 어느날. 평소와 다를 것이 없었던 등굣길. 유독 차 한 대가 신경이 쓰였지만 기분 탓이려니 하고 애써 무시하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러나 불길한 예감은 왜 비껴가지를 않는지. 눈깜짝할새에 한 남자가 나타샤를 납치했고, 어느 지하방에 감금했다. 무서웠지만, 나타샤는 뉴스에서 본 것처럼 며칠만 지나면 부모님과 경찰이 자신을 구조해주리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 며칠이 몇 주가 되고, 몇 개월이 되고, 몇 년이 지나 8년이 될 줄은 그때는 미처 몰랐다.

 

나타샤는 무려 8년을 오로지 범인 한 사람과 보냈다. 그것도 지하방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범인의 통제와 억압, 착취, 폭력, 성폭행 등을 견디면서 말이다. 범인은 정확히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었던 사람인지 책에 나오지 않지만, 그녀의 설명을 보면 일종의 반사회적 성향, 여성혐오증과 결벽증 등을 가진 인물이었던 것 같다. 그것이 아이이자 여성인 나타샤에 대한 감금과 폭력으로 나타났고, 그것도 모자라 그녀의 사소한 행동, 말과 생각까지도 통제하려고 했다. 심지어 그녀의 이름도 없애고, 추억도, 꿈도 모두 파괴하며 '나타샤 캄푸쉬'라는 인간의 존재 자체를 부정했다.

 

하지만 나타샤는 그런 범인에게 결코 굴하지 않았다. 다른 이름으로 불리고, 부모님 얘기를 하면 얻어맞는데도, 어린시절과 가족에 대한 기억을 잃지 않기 위해 틈나는대로 글을 썼고, 탈출하면 학교 수업도 받고 사회생활도 하기 위해 교묘하게 범인을 설득해서 책을 읽고 공부도 했다. 후에 범인의 폭력이 심해져서 멍든 몸이 아파 잠을 못 이룰 때는 탈출해서 보통의 삶을 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려고 애썼다.

 

.....

 

여기까지만 보면 여느 범죄나 흉악 사건의 피해자의 수기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 극악무도한 범인과 약하고 무력한 피해자. 범인의 악행이 아무리 심해져도 피해자는 꿋꿋이 버티며 정의를 믿는 그런 구도.

 

그런데 그녀의 회상 중에는 보통 독자가 읽기에는 어색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그렇게 그녀의 몸과 정신 모두를 파괴하려고 애쓴 범인인데, 그녀의 추억 속에서 범인은 때로는 이웃집 아저씨, 오빠처럼 자상하고 친절한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순전히 까맣기만 하고 하얗기만 한 것은 없다. 어느 누구도 선하거나 악하지만은 않다. 이는 유괴범에게도 유효하다. 이런 말은 유괴를 당했던 희생자에게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선과 악에 대한 뚜렷한 정의를 내려주는 틀을 뒤흔드는 말이기 때문이다.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진 세상 속에서 방향을 잃지 않기 위해 기꺼이 따를 준비가 되어 있는 그러한 틀. 내가 이런 말을 할 때 대부분의 제3자의 얼굴에서 동요와 거부의 빛을 발견하곤 한다. 내 운명을 동정하며 이해하던 사람들의 마음은 곧장 얼어붙고 거부감으로 변한다. 또한 감금생할의 내면을 손톱만큼도 들여다보기 싫은 사람들은 나의 개인적인 경험을 '스톡홀름 신드롬'이란 한 단어로 단정 짓는다. (p.184)

 

열 살 소녀에서 열 여덟 살 성인이 되기까지, 그 중요한 시기를 오직 범인 한 사람에 의존하여 살았던 나타샤에게 범인은 이 모든 고통과 슬픔을 안겨준 악인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밥도 주고 잘 곳도 주고 가끔씩 선물도 주고 책도 주는 선인이기도 했다. 이 상황은 그녀로 하여금 범인을 죽도록 미워하면서도 필요로 하는 모순적인 감정을 가지게 했다. 결과적으로 아버지, 어머니, 언니들, 선생님 등 ㅡ 보통의 소녀들이라면 어른으로 성장하는 데 필요로 했을 그 모든 사람들의 도움을 준 사람이 나타샤에게는 바로 범인 한 사람뿐이었던 것이다.

 

그로 인해 나타샤는 탈출 후 가족들을 다시 만나고 경찰과 심리학자의 도움을 받는 상황이 더 어색하고 외로웠다고 고백한다. 다시 만난 가족들은 ㅡ 가족이라면 당연히 알아야 할 ㅡ 그녀의 성장과정을 몰랐고, 경찰은 믿음직하지 못했고, 심리학자는 그녀의 심리를 `스톡홀름 신드롬`이라는 단어로 규정지으며 그녀의 모순적인 감정과 그로인한 고통을 무시했다.

 

이 사회는 볼프강 프리클로필과 같은 범인을 필요로 한다. 그 사회 안에 존재하는 악에 형상을 부여하고 그 악을 자신으로부터 분리해내기 위해서. 사회는 지하감방과 같은 배경을 필요로 한다. 폭력이 그 파렴치하고 악랄한 얼굴을 무수한 방이나 앞마당에서 드러내는 광경을 보이지 않기 위해서는. 사회는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범죄의 수많은 익명의 피해자들, 아무리 도움을 요청해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희생자들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 나와 같은 엽기적 사건의 피해자를 교묘하게 이용한다. (p.203)

 

이렇게 보면 사건의 일차적인 범인은 볼프강 프리클로필이지만, 이차적인 책임은 사회 전체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직접적으로 폭력을 가하거나 억압한 것은 아니지만, 범인을 방기하고, 사건이 일어난 후에도 무려 8년이라는 시간을 잊고 있었으며, 사건이 해결된 후에도 여전히 피해자라는 굴레를 씌워서 그녀의 삶을 규정지으려고 하는 사회 말이다.

 

또 나타샤의 설명대로 그녀의 사건이 너무나 극악무도하고 엽기적이어서 화제가 되었을뿐이지, 사회에는 이미 수많은 악이 판치고 있는데도 절대악이 아니고서야 악인지 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 때문에 무시되는 경우가 허다한지도 모르겠다. `나를 괴롭히는 가족, 연인, 동료나 선배, 상사는 그저 나를 괴롭힐 뿐이지, 악인은 아니야. 악인은 뉴스나 영화나 소설에 나오는 그런 악당들이나 악인이지...` 이렇게 생각하며 일상의 폭력을 가볍게 넘기며 회피하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거리 위에서, 건물 안에서 수없이 마주했겠지만 알지도 못하는 나 같은 사람.

 

그래서 그 작은 상처가 ㅡ 나타샤 사건처럼 ㅡ 깊이 곪아 터졌을 때 그제서야 비로소 두려워하고 정의를 운운하고, 그리고 얼마 안 가서 잊어버리겠지. 또 다른 무시무시한 사건이 터질 때까지. 

 

.....

 

아주 작은 괴롭힘도 누군가에게는 범죄와 같은 상처를 남길 수 있고, 그 상처는 진짜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면 그 범죄를 저지른 사람만이 범죄자일까? 처음에 작은 상처를 주었던 사람, 그 모습을 보고도 못 본 척한 사람들, 너무 무관심해서 보지도 못한 사람들에게는 책임이 없는 것일까?  

 

폭력과 억압에 맞서 8년이란 긴 시간을 견디고 스스로 탈출한 나타샤 본인의 의지도 빛나지만, 그 고통의 시간들을 기록으로 남기고, 자신과 같은 피해자가 다시 나오지 않도록 용감한 주장을 한 것이 너무나도 멋지다. 그녀가 홀로 싸워야 했던 시간들이 단순한 회고록으로 남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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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김중혁의 <뭐라도 되겠지>를 읽다가 공감 가는 구절을 발견했다. 저자는 대학 시절 학교 도서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근로장학금을 받았다. 그 시절 그저 시간을 보내기 위해 도서관에서 읽었던 책들이 돌아보니 삶에 더할 나위 없는 자양분이 되었다는, 뭐 그런 내용이었다.

 

 

 

나도 학교 때 근로장학금을 받았다. 1학년 때는 신청 자격이 안되어서 못하고, 졸업학기 때는 바쁘다는 핑계로 안 한 걸 빼면 꼬박 5학기, 2년 반을 받은 셈. (근로장학금은 웬만한 아르바이트보다 시급이 높고, 공강 시간을 활용하여 학교 안에서 돈을 벌 수 있는 제도이므로 대학생들에게 강추한다.) 2학년 겨울 방학 때 일했던 곳이 중앙도서관이었다. 우리학교 도서관은 관내에 가방을 가지고 들어가지 못하는 대신 도서관 입구에 가방을 맡기도록 되어 있었는데, 내가 일했던 곳이 바로 그곳 가방 보관소였다. 그 해 겨울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교직원 선생님들, 같이 일하던 친구들과 보냈던 시간이 떠오른다. 귤도 까먹고, 교직원 선생님이 가을에 학교 교정에서 모아두신 은행도 구워먹고 그랬는데... 지금은 다들 어떻게 지내려는지...

 

 

혼자 일할 때는 시간이 나는 틈틈이 책을 볼 수도 있었다. 그 때 읽었던 책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을 고르라면 바로 이 책, 알렉스 헤일리의 <뿌리>다. 표지에 나온 흑인 소년의 긴박한 표정만 보아도 알 수 있겠지만, 내용이 정말 손이 오들오들 떨릴 정도로 긴장되고 절박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그 전까지는 인종차별을 직접 겪어본 적도 없고, 경험한 적도 없어서 이것이 미국 내에서 얼마나 심각한 문제였는지, 아니 어떤 문제인지조차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았다. 이 책을 읽고 많이 반성했고, 그 후로는 인종문제에 관한 책을 틈틈이 들여다보려고 했다.

 

 

 

캐서린 스토킷의 소설 <헬프>도 바로 인종문제, 구체적으로 말하면 흑인 인권 문제에 관한 소설이다. 같은 주제를 다룬 기존의 책들과 달리, 이 책은 흑인이 아닌 백인의 시각에서 쓰여졌다는 점이 독특하다. 저자 캐서린 스토킷은 실제로 흑인 인권 운동이 정점에 다다랐던 1960년대에 미국 남부 미시시피의 백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여느 남부 백인 가정 자녀들이 그러했듯이 저자 역시 어머니가 아닌 흑인 보모의 손에 자랐고, 부모님이 일찍 이혼하시는 바람에 흑인 보모를 어머니처럼 따르며 자랐다.

 

<헬프>의 주인공 스키터는 저자의 분신 같은 인물이다. 스키터는 흑인 가정부의 손에 자란 백인 여성으로, 대학 졸업 직후 고향집에 도착하자마자 보모이자 가정부였던 콘스탄틴이 떠났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된다. 딸처럼 자신을 사랑해주었던 콘스탄틴이 왜 아무 말없이 떠났는지 스키터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대체 콘스탄틴이 어디로 떠났는지, 왜 떠난 건지 이유를 물어도 가족들, 마을 사람들 모두 대답을 피했다.

 

이 때, 스키터의 오랜 친구 미스 힐리는 스키터가 시름에 빠졌든말든 아랑곳하지 않고 엉뚱한 일을 벌이기 시작했다. 흑인은 더럽고 병균을 옮기는 인종이니 흑인 가정부들이 백인 주인들과 같은 화장실을 쓰면 안되고, 흑인 가정부가 쓰는 화장실을 따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얼마 후 마을에서 흑인 소년이 어이 없는 이유로 린치를 당하고, 흑인들이 죽어나가는 사건이 연이어 발생한다.

 

스키터는 콘스탄틴이 떠난 이유가 이 말도 안 되는 현실과 관계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작가 지망생이었던 그녀는 이 이야기를 글로 쓰기로 마음먹는다. 흑인인데다가 여자라는 이유로 가장 심한 차별을 받고 하찮게 여겨지는 존재, 남의 자식을 온 정성을 다해 키우고도 작별의 인사조차 허락받지 못한 채 떠나야했던 콘스탄틴 같은 흑인 가정부들의 삶에 대해서 말이다.

 

 

하지만 백인 여성인 스키터가 흑인 가정부들의 삶에 대한 글을 쓴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가당치도 않은 일이었다. 흑인들에 대한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금기시되는 일이었고, 백인은 흑인과 같은 자리에서 오랫동안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으니 글 쓰는 데 필요한 인터뷰를 할 수가 없었다.

 

이 때 그녀를 돕게된 또다른 흑인 가정부가 있었으니, 그녀가 바로 에이빌린이다. 에이빌린의 도움으로 스키터는 여러 흑인 가정부들을 소개 받았고, 사람들의 눈을 피해 에이빌린의 집에서 비밀스럽게 인터뷰를 진행한다. 인터뷰를 통해 스키터는 흑인 가정부들의 고통스러운 삶에 대해  알게 되었고 그들도 자신처럼 똑같은 감정과 꿈을 가진 여성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책을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심으로 그녀들을 도와주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 때문에 스키터가 포기해야 한 것도 많다. 흑인은 백인보다 열등한 인종이라고 굳게 믿는 가족들, 친구들이 그녀로부터 등을 돌렸고, 사랑하는 남자에게도 그녀의 비밀스런 작업에 대해 고백할 수 없었다. 게다가 미스 힐리의 악행이 도를 지나칠 정도로 심해져 각종 사건을 불러 일으켰다. 그때마다 미스 힐리와, 그녀만큼이나 악독한 백인 사회와 질긴 인종차별의 벽 앞에서 스키터는 많이도 울었다. 하지만 책을 완성해야한다는 집념과, 책을 써서 그렇게라도 흑인 가정부들에게, 콘스탄틴에게 속죄하고 싶다는 바람으로 끝까지 맞섰다.

 

 

분명 교과서나 책에서 1968년에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암살되었다든가, 70년대까지도 흑인 인권운동이 활발했다든가 하는 내용을 배웠지만, 이렇게 소설로 접할 때에는 느낌이 전혀 다르다. <뿌리>만 해도 흑인들이 미국에 처음 도착했을 무렵의 이야기라서 먼 옛날 얘기처럼 들렸지만, <헬프>는 불과 몇십년 전인 1960년대가 배경이라서 섬뜩하기까지 했다. 60년대라면 비틀즈가 미국에 진출하고, 케네디가 인간을 달에 보내겠다고 공언했던 시대가 아닌가.

 

주제는 진지하지만 등장인물 한명 한명이 개성있고, 스토리 전개가 스릴있으며, 따뜻함과 유머를 함께 느낄 수 있는 작품이라서 미국 내에서는 오랫동안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켰고, 엠마 톰슨 주연으로 영화화까지 되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흑인 인권 문제에 있어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 측에 속하는 백인 여성이 이런 주제의 책을 쓴 것에 대해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저자도 이런 비판이 있을 것을 가장 우려했다고 한다. 그저 백인 여성과 그녀를 키운 흑인 보모 사이의 사랑과 추억을 바탕으로 쓴 소설로 보기엔 흑인 인권 문제가 여전히 미국 사회에서는 공공연히 다루어지기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흑인 인권 문제를 소설 중에서 가장 유명한 고전인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는 흑인을 비하하는 'nigger'라는 말이 300번 가까이 등장하는데, 이 때문에 보수적인 지역이나 흑인 학교에서는 이 책을 금서로 지정하거나 'nigger'를 'slave'로 고쳐서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표현의 자유를 존중하여 원문 그대로 가르칠 것인지, 아니면 흑인들의 의사를 인정하여 이 책을 가르치지 않거나 수정할 것인지를 두고 미국에서는 여전히 논쟁이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헬프>에도 여러번 이 표현이 등장한다. 캐서린 스토킷 역시 마크 트웨인과 마찬가지로 당시의 사회상을 그대로 전하고자 하는 의도였을 것이고, 마크 트웨인이 살았던 시대와 지금은 많이 다르지만, 여전히 불편하게 느끼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소설은 소설일뿐이지만 현실과 떨어질 수 없고, 이야기를 통해 재미를 느끼는 사람이 있으면 한편에서는 고통을 받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낀다.

 

돌이켜보니 올 한해 읽었던 책 중에 가장 감명 깊었고 재미있게 읽은 책이 아니었나 싶다. 나는 번역본은 책이 두 권으로 나누어져 있어서 비싼 반면, 한 권짜리 페이퍼백인 원서는 번역본 한 권 값도 안 되어서 원서로 구입해서 읽었다. (많이 어렵지 않으니 도전해보시길!)

 

우리나라에서는 흑인 인권 문제가 큰 이슈가 아니다보니 이 소설이 미국에서만큼 주목을 받지는 못한 것 같지만, '인권'이라는 큰 차원으로 보면 어느 나라에서든 의미가 있는 문제이니 많이 읽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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