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독썰 - 휩쓸리지 않고 나답게 살고 싶은 당신을 위한 와이낫 스피릿
유현재 지음 / 토트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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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한 경우가 아니면 50대 이상의 남성이 쓴 책은 읽지 않는 내가 이 책을 집어 든 건 목차가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좀 삐딱하게 살면 어때? 도대체 뭐가 올바른 건데?", "나대라. 자뻑해라. 실제 잘난 건지도 모르잖아?", "중퇴가 포기는 아니다.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라면 와이낫?" 등 젊은 힙합 뮤지션의 입에서 나올 법한 문장이 50대 중년 남성 저자의 손에서 나왔다는 게 어찌나 신기하던지 이 책을 읽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인생 독썰>의 저자 유현재는 금강기획과 제일기획에서 카피라이터로 7년간 광고를 만들었고, 현재는 서강대학교 지식융합미디어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학력이면 학력, 경력이면 경력, 직업이면 직업, 무엇 하나 빠지는 것 없는 인생을 꾸려온 저자에게도 고비라고 부를 만한 순간이 여러 번 있었다. 미국 유학을 결정하던 때가 그랬다. 대학 졸업 후 바로 광고 회사에 들어가 7년간 순조롭게 커리어를 쌓았다. 잘하면 조만간 승진도 할 것 같은 시점에 미국 유학 생각이 간절해졌다. 서른두 살에서 더 늦으면 미국에서 살아볼 기회가 아예 없어질 것 같았다.


미국 유학 이야기를 꺼내자 주변 사람들은 대체로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나이 32세, 제일기획 꽉 찬 대리, 카피라이터, 두루두루 만나는 이성 친구들, 하지만 여전히 미혼, 스포츠카, 내 이름으로 된 6천만 원 정도의 전세. 이 모든 게 미국 유학을 결정하는 순간 훅 사라질 거라고 만나는 사람들마다 겁을 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미국으로 떠났다. 다행히 석,박사를 5년 안에 모두 마쳤고, 6년 차엔 미국에서 교수도 되었다. 이제는 한국으로 돌아와 명문대에서 교수로 일하며 살고 있다.


그때 그렇게도 말렸던 사람들을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참 잘된 결정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미국 유학으로 인해 저자는 그토록 사랑했던 광고라는 업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었다. 또래 친구들처럼 가정을 꾸리지도 못했고, 그 사이 너무나도 사랑했던 형의 죽음도 맞았다. 한국에 홀로 남겨진 어머니와의 시간도 가질 수 없었다. 한국에 돌아왔을 때 어머니는 이미 거동이 불편한 상태였다. 회사에 다니며 모은 돈도 바닥난 지 오래였다.


무엇이 좋고 나쁜지 아무도 단정할 수 없다. 지금 좋아 보이는 것이 나중에 나빠 보일 수도 있고, 지금 나빠 보이는 것이 나중에 좋아 보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선택이든 포기든 자기 자신의 온전한 생각과 느낌으로 내린 결정이라면 그것을 받아들이고 온전히 그 책임을 지는 것이다. 법과 윤리와 인성에 반하지 않는 한 그냥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며 살아라, 기약 없이 주어진 단 한 번의 인생을 그저 '때우고' 무기력하게 '빈둥빈둥' 사는 행위는 자신에게 범하는 큰 죄임을 명심하라는 조언이 마음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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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울컥하고 말았습니다 - 상처를 주지도 받지도 않으면서 적당히 정의롭게 사는 법
정민지 지음 / 북라이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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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서 여러 번 울컥한 책. 저자 정민지는 1982년 5월생으로 고려대학교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하고 방송사와 종합일간지에서 사회부, 경제부, 산업부 기자로 11년을 일한 후 2018년에 퇴사했다. 그 어렵다는 언론 고시를 통과하고 유명 방송사에 입사한 그가 좋은 직장을 때려치운 이유는 무엇일까.


직접적인 계기는 어느 날 부서 회식자리에서 손가락이 부러진지도 모른 채 만취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직장 생활에 회의감을 느껴서이지만, 돌이켜보면 취업 준비생 시절부터 쌓이고 쌓인 울분 때문이 아닌가 싶다. 아무리 열심히 자기소개서를 쓰고 면접을 봐도 번번이 낙방했던 기억, 언론사 면접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식상한 질문에 더욱 식상한 대답을 했던 기억, 압박면접을 빙자한 인신공격에 시달려도 그 자리에서 화내지 못하고 비굴하게 굴었던 기억 등이 오랫동안 저자를 괴롭혔다.


어렵게 회사에 들어간 후에는 더 큰 시련이 닥쳤다. 회식에 불참하면 사회성 없는 인간으로 낙인찍혔다. 선배들이 콧구멍으로 양주를 마시면 후배들도 따라서 마셔야 했다. 신입사원 시절 회식 2차로 노래방에 간 저자(참석자 중 유일한 여자였다)는 한 선배로부터 집요하게 노래를 부르라는 요구를 받았다. 참지 못한 저자는 "그렇게 노래를 듣고 싶으면 도우미를 부르세요! 이 XXX야!"라고 대꾸했는데, 이후 저자는 선배의 면전에 욕지거리를 한 싹수없고 사차원인 여자 신입으로 낙인찍혔다.


이때부터였을까. 여자라는 이유로 언어 이상의 폭력에 시달린 건. 여럿이서 함께 술을 마시는데 한 선배는 먼저 술에 취해 저자의 손등을 혀로 핥았다. 어떤 선배는 우산을 씌워준다며 저자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저자를 더욱 당황하게 만든 건, 보고도 못 본 척하는 주변의 (남자) 동료들이었다. 동기 간의 우정이니 동료 간의 협력이니 하는 말들은 남자들 사이의 연대를 위한 구호일 뿐 여자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다. 상사라는 강자 앞에선 더욱 그랬다.


저자는 "좋은 삶의 목표란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보다 이런 사람은 되지 말자는 것"이라고 말한다. 오랫동안 언론인이 되고 싶었고 힘들게 언론인이 되었지만, 막상 언론인이 되고 11년을 일해보니 생각만큼 멋진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그만둔 저자의 말이기에 더욱 마음에 와닿는다. 익숙한 직업, 안정된 직장을 벗어나도 잘 살 수 있다는 걸 확인하고 싶다는 저자. 부디 저자의 바람이 이뤄지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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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19-03-18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보니, 당장 읽고 싶어집니다.....
 
기질 속에 너의 길이 있다 - 당신에게 남겨진 지난날의 선명한 기록
쑤팅펑 지음, 이지수 옮김 / 유노북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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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더 좋아지지 않아요. 이 사실을 인정해야만 계속 살아갈 수 있어요." 중국의 여성 작가 쑤팅펑은 언젠가 인터넷에서 이 문장을 보고 무릎을 친 경험을 자신의 산문집 <기질 속에 너의 길이 있다>에 소개한다.


저자는 오랫동안 일기장에 "내일은 더 좋아질 거야."라고 썼다. 그러고는 날마다 기적이 찾아오기만을 기대했다. 하지만 (당연히) 내일은 오늘보다 더 좋아지지 않았고, 아무리 기다려도 기적은 오지 않았다. 저자가 겪는 고통과 시련은 하루하루 더 심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저자는 인터넷에서 '스물세 살 여자가 고통에 대처하는 방법'이라는 제목의 글을 읽었다. 글쓴이는 스물세 살 때 끔찍한 사고를 당해 전신 60퍼센트에 화상을 입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고통스러운 치료를 받아야 했고, 피부가 노출되지 않도록 평생 긴팔만 입어야 했고 예쁜 치마는 꿈도 꾸지 못했다.


글쓴이는 너무 힘든 나머지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나아질 거라는 위로는 지금 당장 아프고 힘든 자신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러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인생은 원래 힘들다. 슬픔과 절망, 고통이 함께 한다. 지금 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평생 괴로울 것이다. 자신의 인생에 닥친 슬픔을 받아들이고 스스로 기쁨과 행복을 만들어 나가는 것, 내일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모르지만 오늘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자신에게 남은 유일한 선택지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자 놀랍게도 죽고 싶다는 생각이 사라지고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이 책을 읽는 여성들에게 더 이상 빛이 없다고 느껴지는 상황에서 하루빨리 벗어나라고 조언한다. 매일 불평만 하는 사람, 자기 자신은 돌아보지 않고 타인만 비난하는 사람,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면서 그만두지 않는 사람 등은 현재 빛이 없는 상황에 있는 것이다. 저자는 또한 부디 더 나은 내가 되기를 포기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누구나 알겠지만, 삶은 유한하고 단 한 번뿐이다. 더는 하고 싶지 않은 일, 같이 있고 싶지 않은 사람 때문에 인생을 흘려보내는 일만큼 바보 같은 짓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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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눈이의 사랑
이순원 지음 / 해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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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참새보다 작고, 눈은 오목하고, 꼭 다물었을 때의 부리는 작은 삿갓조개를 붙여 놓은 것처럼 뭉툭한 새. 그런 뱁새의 다른 이름은 바로 붉은머리오목눈이다.


이순원의 소설 <오목눈이의 사랑>은 흔히 뱁새로 불리는 붉은머리오목눈이 '육분이'의 시점으로 시작한다. 육분이는 집 짓는 기술이 뛰어난 아버지와 꽁지가 짧아 콩단이라고 불리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서녘 하늘에 육분의만 보이던 날에 태어났다고 해서 '육분이'라는 이름이 지어진 우리의 주인공은 모두가 자신을 뱁새라고 놀려도 자신의 이름을 떠올리며 꿈을 꾼다. 이름에 밤하늘과 온 우주의 신비가 담겨 있으니 자신 또한 위대한 새가 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시간이 흘러 육분이는 짝을 짓고 둥지를 짓는다. 네 개의 알을 낳아 네 마리의 새끼를 길러 내며 처음으로 오목눈이의 엄마가 된다. 그렇게 한 번의 봄과 여름이 가고, 또 한 번의 봄과 여름이 갔다. 그런데 둥지 안에 있던 알에서 깨어난 새끼가 다른 새끼들과는 달리 몸집이 어마어마하게 컸다. 나중에야 그게 뻐꾸기인 줄 알았다. 뻐꾸기는 둥지를 지을 줄도 모르고 알을 품을 줄도 모른다. 아는 건 남의 둥지에 몰래 알을 낳는 것뿐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붉은머리오목눈이가 뻐꾸기 알을 품고 뻐꾸기를 키운다. 이걸 유식한 말로 '탁란'이라고 한다.


제 새끼가 아닌데도 제 새끼처럼 키우는 새의 마음은 어떨까. 작가는 영문도 모르고 뻐꾸기의 엄마가 된 오목눈이와 오목눈이의 새끼가 된 뻐꾸기 사이에도 남다른 애정이 있을 거라고 상상했다. 육분이는 자신의 둥지에서 자란 뻐꾸기 새끼 앵두를 제 자식처럼 아낀다. 앵두야말로 자기 생애의 온 사랑을 다해 키운 아이라고 자부한다. 자신을 어리석다고 놀리는 주변의 목소리에 아랑곳하지 않고 믿음을 관철하는 육분의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경건함, 숭고함이라는 단어가 절로 떠올랐다. 낳은 정도 소중하지만 기른 정도 소중하다는 걸 보여주려 한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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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트 러브
시마모토 리오 지음, 김난주 옮김 / 해냄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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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 소설 권태기인가?' 하는 생각이 들 만큼 최근 들어 소설이 잘 읽히지 않았다. 읽으려고 해도 집중이 잘 안되어서 가벼운 에세이나 만화를 대신 읽곤 했다. 그런 내가 오랜만에 잠까지 잊고 한달음에 읽은 소설이 바로 2018년 나오키상 수상작 시마모토 리오의 <퍼스트 러브>다(참고로 나오키상은 대중성을 감안하는 상이라서 웬만하면 다 재미있다).


소설은 임상 심리 전문가인 마카베 유키의 시점으로 서술된다. 사진가인 남편과 귀여운 아들을 둔 유키는 TV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사회적으로도 인정받는 임상 심리 전문가다. 그러던 어느 날 유키는 얼마 전에 벌어진 끔찍한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 아나운서 지망생 히지리야마 칸나의 이야기를 책으로 집필해보라는 의뢰를 받는다. 칸나는 공중파 방송사 아나운서 2차 시험이 있던 날 시험을 포기하고 아버지를 찾아가 찔러 죽인 혐의를 받고 있다. 유키는 칸나의 심리와 사건의 전모를 알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칸나는 모호한 진술로 유키를 방해한다.


소설은 현재의 유키가 칸나를 취재하는 이야기와, 취재 과정에서 유키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는 이야기, 이렇게 이중의 이야기로 진행된다. 현재 유키의 곁에는 두 명의 남자가 있다. 한 명은 대학 시절에 만나 결혼에 이른 남편 가몬이고, 다른 한 명은 남편의 배다른 남동생이자 오래전 친구 사이였던 가쇼다. 유키는 칸나의 국선 변호인으로 가쇼가 선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부터 기분이 영 좋지 않다.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아니 잊고 싶었던 과거의 일들이 떠오를 것 같기 때문이다.


유키와 칸나는 직업도 다르고 처지도 다르지만 뜻밖에도 비슷한 인생을 살았다는걸, 독자는 나중에 가서야 알게 된다. 두 사람은 부모로부터 받아야 마땅한 사랑과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 그로 인해 잘못된 자아상이 확립되었고, 그로 인해 잘못된 연애를 반복했다. 유키가 칸나의 사건에 집착하듯 매달리는 것은 칸나가 자신의 또 다른 가능성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일까. 내가 이 소설에 깊이 빨려 든 것 역시 같은 이유일까.


여성의 심리 묘사가 탁월하고 주제 의식도 좋다. 시마모토 리오의 다른 작품도 찾아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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