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결 - 결을 따라 풀어낸 당신의 마음 이야기
태희 지음 / 피어오름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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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을 통해 독자들과 소통해온 작가 태희(taehee)의 산문집 <마음의 결>이 출간되었다. <마음의 결>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안고 있는 고민과 문제에 대해 작가 태희가 정성을 다해 솔직하게 답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작가는 서문에서 독자들이 자신의 글을 읽으며 각자의 경험을 돌아보고, 누구나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비슷하지 않은 것 같기도 한 삶을 살고 있다는 걸 이해하게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나아가 이 책을 통해 언제든지 위로받고 함께 성장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썼다.


책에는 착한 사람이라는 프레임, 욱하는 감정 바라보기, SNS 인간관계에 드는 회의감, 직장 내 무리에 끼지 못한 채 살아가는 법 등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거나 고민해봤을 법한 일들에 관한 글이 실려 있다. SNS에서 친구나 이웃으로 친하게 지내온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팔로우를 끊거나, 내 피드에 댓글을 달지 않거나, 내 사진에 좋아요를 누르지 않으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저자는 상대가 일부러 그랬든 실수로 그랬든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그 시간에 나는 나를 좋아하고,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 이웃들과 소통하면 그만이다. SNS 인간관계도 오프라인 인간관계와 다를 바 없다. 끊어진 관계에 미련을 둘 시간에 현재의 관계에 더 충실하는 게 낫다.


직장 내 무리에 끼지 못한 채 살아가는 법은 뭘까. 정말 원한다면 퇴사나 이직을 고려할 수도 있지만, 여의치 않은 경우에는 직장에서의 나와 사적인 영역의 나를 완전히 구분하는 방법을 써먹어볼 수 있겠다. 직장에서의 나와 사적인 영역에서의 나를 동일시하면 직장 내 무리에 끼지 못할 때 자존감이 낮아지고 나 자신이 싫어질 수 있다. 회사는 그저 일터일 뿐이고, 내 본거지는 내 본모습을 알아주는 가족이나 연인, 친구들이라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직장에서 느끼는 스트레스가 덜해질 것이다.


성공한 사람들의 특별한 인간관계 노하우는 뭘까. 저자는 내로라하는 사회적, 금전적 성공을 맛본 이들을 보면서 그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성공의 기술을 찾아냈다. 그것은 바로 모든 성공에 있어 결정적인 계기는 '사람'이며, 사람과의 관계는 약간 '더 내주는 쪽'이 결국 이기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상대방의 호의를 이용하려고만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넓게 보고 길게 보면 먼저 손해 보는 듯하게 행동하는 사람이 이기게 되어 있다. 이 밖에도 지친 마음을 위로하고 조금 더 현명하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기술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글자가 조금 더 컸으면 좋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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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따위 레시피라니 - 줄리언 반스의 부엌 사색
줄리언 반스 지음, 공진호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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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에 관심이 없었을 때는 몰랐는데, 직접 요리를 하면서부터는 요리하는 남자가 그렇게 멋있어 보인다. 일단 요리를 여성의 전유물로 여기지 않는 사고방식이 마음에 들고, 자기 입맛에 맞는 음식을 스스로 조리해 먹을 줄 안다는 게 좋다. 문제는 둘 다는커녕 둘 중 하나도 못하는 남자가 많다는 거...


줄리언 반스의 요리 에세이 <또 이따위 레시피라니>에 따르면, 저자는 둘 다 해당되는 듯하다. 저자는 늦깎이 요리사다. 어린 시절 저자는 요리가 사내답지 못한 일이라는 말은 듣지 않았지만 그것은 분명 가정에서 남자가 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일이라는 암묵적인 분위기 속에서 자랐다. 아버지도 형도 요리에 젬병이었고, 저자 역시 20대 중반이 넘도록 요리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성인이 되고 자취할 때도 되는대로 아무거나 섞어먹는 게 식사의 전부였다.


저자가 요리를 시작한 건 가난, 솜씨 부족, 보수적 미식 성향이 결합된 결과다. 젊은 시절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았던 저자는 며칠에 한 번 정육점에서 가장 싼 고기를 사다가 구워서 감자, 완두콩을 곁들여 먹었다. 그렇게 계속 먹다가 고기를 업그레이드하고, 채소의 종류와 가짓수를 늘렸다. 신문이나 잡지에 나온 레시피를 참고해 푸딩과 수프를 만들고, 그라탱, 파스타, 리소토, 수플레에 도전했다. 저자의 이런 변화를 아버지는 반기지 않았지만 어머니는 반겼다. 딸이 없는 집에서 아들 하나라도 부엌일이 얼마나 고되고 힘든지 알아줘서 기뻐하는 내색을 보이셨다.


그렇다고 저자가 요리를 진심으로 즐기는 건 아니다. 저자는 스스로를 '해방감이나 상상력이 결여되어 있다'고 진단한다. 저자는 레시피를 완벽하게 따른다. 장을 보러 갈 때 반드시 정확한 목록과 레시피가 있어야 한다. 저자는 그런 자신을 '부엌에 서기만 하면 노심초사하는 현학자(pedant)'라고 부른다. 늘 성실하게 레시피를 수집하고, 정리하고, 보관하는 습관 덕에 이런 책이 탄생한지도 모른다. 이 책에는 저자가 추천하는 레시피가 담긴 요리책과 요리책 고르는 법, 요리책 보관법 등이 자세히 나온다. 유명 요리책을 보고 직접 요리를 해보면서 느낀 장점과 단점도 정리되어 있다.


'나만의 요리 파일' 만드는 법도 나온다. 이런 걸 만들려면 신문이나 잡지에서 오린 레시피를 모아두는 스크랩북이 필요하다. 레시피대로 적어도 두 번은 만들어보고 오래도록 쓸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면 그 레시피를 파일에 포함시킨다. 이런 스크랩북은 오랜 세월과 함께 우리의 요리 여정에 증인이 되어줄 것이다. 세월이 흐른 후 스크랩북을 보면 '내가 이걸 만들었어?'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하고, 요리를 만들 때의 기분이나 요리의 맛, 요리를 먹어준 사람의 얼굴 등이 떠오를지 모른다. 저자의 요리 파일이 궁금하다. 내 것도 하나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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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 봄-여름 2018 소설 보다
김봉곤 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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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제 오늘 나로서는 드물게 잠시 쉴 겨를도 없이 바쁜 나날을 보냈다. 마침내 좀 쉴 수 있을까 했더니 이 책 리뷰를 안 쓴 게 떠올라서 부리나케 리뷰를 쓴다. (얼른 쓰고 넷플릭스에서 <그레이스 앤 프랭키> 보며 쉬고 싶다...!)


<소설 보다>는 문지문학상 수상작품집의 새로운 이름이라고 한다. 문지문학상 수상작품집이 원래 어떤 모습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소설 보다>의 기획과 판형, 디자인은 매우 마음에 든다. 작고 얇고 가벼워서 휴대하기 좋고 가독성도 그만이다. <소설 보다>는 분기마다 두 편의 소설을 선정해 상반기와 하반기에 한 권씩 책이 나온다. 작년 여름에 나온 <소설 보다 : 봄 여름 2018>에는 모두 네 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김봉곤의 <시절과 기분>, 조남주의 <가출>, 김혜진의 <다른 기억>, 정지돈의 <빛은 어디에서나 온다>이다. 


이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소설은 김봉곤의 <시절과 기분>이다. 주인공 '나'는 게이이며 소설가다. 어느 날 '나'는 대학 시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귀었던 여자 친구와 연락이 닿는다. 얼마 후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한창 연애하던 시절의 추억이 남아 있는 거리를 걸으며 과거를 회상한다. 헤어질 무렵 '나'는 어쩌면 예전 여자 친구와 잘 될 수도 있었다고, 어쩌면 둘의 사이를 예전처럼 돌려놓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그저 그런 일이 벌어질 수도 있을 것 같은 '기분'일 뿐이다. 사실 인생사가 대개 이렇지 않은가. 그 때로 돌아가면 다시 잘해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 일은 가능하지도 않고 절실히 바라지도 않는다. 그러면서 그 가능성을 점쳐보고 혼자 미련 두고 마음 아파하는 심사는 대체 뭘까. 실은 나도 이런 심사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요즘 가장 주목하고 있는 한국의 남성 작가가 김봉곤과 박상영인데, 두 작가 모두 첫 소설집이 불러일으킨 기대감을 만족시키기에 충분한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조남주의 <가출>도 좋았다. 전형적인 가부장인 칠십 대 아버지가 갑자기 집을 나간다. 이를 계기로 가족들이 오랜만에 부모님 집에 모이고 안부도 나누고 같이 식사도 한다. 한때 널리 읽혔던 <엄마를 부탁해>의 성별 역전 버전인 셈이다. 아버지의 행방을 쫓는 가족들은 아버지의 카드 사용 내역을 알리는 문자가 올 때마다 열 일 다 제쳐두고 도시로 시골로 아버지를 찾으러 다닌다. 결말에서 가족들은 아버지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만족할 만한 상태에 이르게 되는데, 가부장 없이도 가족 구성원들이 행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는 점에서 파격적이라고 해야할지 당연하다고 해야할지. 아무튼 잘 읽히면서도 마음에 남는 것이 많은 소설이었다.


김혜진의 <다른 기억>은 잘 기억이 나지 않고, 정지돈의 <빛은 어디에서나 온다>는 제12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작별>에서 읽은 적이 있어 다시 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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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권일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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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크게 두 갈래로 분류할 수 있다. 하나는 <용의자 X의 헌신>을 비롯한 본격추리 또는 사회파 미스터리물이고, 다른 하나는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비롯한 감동소설류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2003년작 <편지>는 후자에 속한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한 형제가 있다. 형 츠요시는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나쁜 친구들과 어울려 어머니의 속을 썩인다. 동생 나오키는 어머니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형이 자꾸만 엇나가서 답답하다. 그러던 어느 날 혼자 몸으로 두 형제를 키워준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다. 츠요시는 학교를 그만두고 생계를 위해 이삿짐 나르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고, 나오키는 너라도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에 가야 한다는 형의 말에 따라 학교에 다닌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이 생활도 끝이 난다. 츠요시가 살인강도 혐의로 경찰에 붙잡혀 15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은 것이다.


그 후 나오키에게는 고통스러운 날들이 이어진다. 살인자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세 들어 살던 집에서 쫓겨났고, 학교에서도 전학을 가거나 학교를 그만두라는 압박을 받는다. 먹고살려면 돈을 벌어야 하는데 형의 전과가 드러나면 채용조차 안 된다. 그래서 나오키는 형의 전과를 숨기고 아르바이트를 구하는데 쉽지 않다. 할 수 없이 임금이 싼 일자리를 전전하며 괴로운 날들을 보내는 나오키는 형이 매달 보내오는 편지가 귀찮고 부담스럽다. 감옥에 있는 형을 생각하면 안타깝지만, 바로 그 형 때문에 자신의 인생이 불행의 나락으로 빠졌다는 생각을 하면 원망스럽다.


나라도 형이 원망스럽겠다. 소설을 읽는 내내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형이 감옥에 가지 않았다면 나오키는 제법 괜찮은 삶을 살았을 것이다. 나오키는 지역에서 가장 진학률이 높은 고등학교에 다녔다. 잘생겨서 이성에게 인기도 많았다. 잘하면 인기 록그룹의 보컬로 신나는 인생을 살 수도 있었다. 부잣집 사위가 되어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오키는 매번 형의 전과 때문에 발목이 잡힌다. 가족이 살인자라는 이유로 나오키에게 등 돌리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내가 다 억울하고 화가 났다.


그러나 삶의 중요한 고비마다 스스로 먼저 도망치는 나오키를 볼 때는 다른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나오키는 형을 핑계로 자신의 약함이나 비겁함을 가리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만약 나오키가 어떻게든 음악을 계속했다면, 사랑하는 여자와 결혼하겠다고 버텼다면 또 다른 인생이 펼쳐졌을지도 모른다. 그 또한 불행했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그건 내가 선택한 일이니 형의 전과만을 탓하진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이는 나오키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겪고 있는 문제인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소위 말하는 '빽'이 없어서, 명문대 간판이 없어서, 외모가 별로라서, 스펙이 남들만 못해서 하고 싶은 일을 못한다고 말한다. 여자라서, 장애가 있어서, 다문화 가정 출신이라서, 외국인이라서 등등의 이유로 차별을 받는다고 말한다. 이런 말들은 대체로 사실일 것이다. 이 사회에는 불평등이 만연하고 차별이 공공연하게 벌어진다. 예전부터 그랬고, 적극적으로 바로잡지 않는 한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하지만 사회가 불평등하고 차별이 있다는 이유로 좌절하고 포기하면 결국 자신만 손해다. 온 세상이 "너는 안 돼."라고 말해도 자기 자신만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기회를 줘야 한다. 하고 싶은 일을 할 기회, 좋아하는 사람을 만날 기회, 더 나은 사람이 될 기회, 행복해질 기회를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나오키만 봐도 스스로에게 행복해질 기회(대학 진학, 연애)를 주었을 때 비로소 행복해졌고, 그런 기회를 주지 않았을 때 결국 불행해졌다. 허공에서 날아오는 돌을 막을 순 없지만, 돌에 맞았을 때 어떻게 대처할지는 직접 정할 수 있다는 걸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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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 소녀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76
앨리스 먼로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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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거지 소녀>라서 주인공이 거지 소녀인 줄 알았다. 그래서 주인공 로즈에게 부모도 있고 집도 있어서 언제쯤 거지가 될까 궁금해하면서 읽었다. 끝내 거지가 되지 않은 채 대학에 진학하고 어른이 되었을 때에는 왜 이런 제목이 붙었는지 의아하기도 했다.


그러다 이런 문장을 만났다. "네가 가난해서 나는 좋아. 너무 사랑스러워. 거지 소녀 같잖아." 다른 사람도 아니고 로즈의 첫사랑, 로즈의 전 남편 패트릭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패트릭이 그런 말을 한 의도를 모르지 않는 건 아니다. 부잣집 아들인 패트릭의 눈에는 가난한 집에서 힘들게 자란 로즈가 동화 속 거지 소녀와 겹쳐 보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타인에게, 그것도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에게 거지라고 말하는 건 예의가 아니다. 패트릭으로 하여금 로즈에게 거지 소녀라고 말할 수 있게 한 건 무엇일까. 그가 부자여서일까, 아니면 남자여서일까, 그것들이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더라도, 그가 만약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여자였다면, 부잣집 아들에게 그런 말을 '감히' 함부로 할 수 있었을까.


이 소설은 본격적인 페미니즘 소설이 아니다. 하지만 소설 곳곳에 여자라면, 그것도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여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장면과 문장이 나온다. 학창 시절 로즈의 학교에선 이런 일이 있었다. 한 여학생이 코트 보관실 바닥에 떨어뜨린 생리대를 누군가가 학교 중앙홀에 있는 트로피 케이스에 몰래 넣어두었다. 문제가 되자 여학생들은 하나같이 자기는 모르는 일이라고 했고, 남학생들은 낄낄거리며 여학생들을 조롱했다. 결국 한 여학생이 생리대의 주인으로 지목되자(그 생리대를 트로피 케이스에 넣어둔 범인은 끝내 잡히지 않은 듯하다) 남학생들은 이렇게 놀렸다. "오늘도 걸레 차고 있냐, 뮤리얼?" 여학생들은 이렇게 말했다. "나 같으면 자살하고 만다." 측은함이 아니라 조급함이 묻어나는 말투였다.


로즈가 딸 애나를 낳은 산부인과 병원에서 알게 된 조슬린과 클리퍼드는 누가 봐도 잘 어울리는 커플이다. 로즈는 현재 전업주부인 조슬린인 결혼 전까지 작가 지망생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꿈을 포기한 이유를 물어본다. 그러자 조슬린은 이렇게 말한다. "(클리퍼드가 가진) 진짜 재능이 어떤 건지 보니까 난 그냥 펜이나 놀리며 노닥거리다 말 거란 생각이 드는 거야. 그래서 그냥 그 사람을 돌보는 게, 그러니까 내가 그이를 위해 하는 이딴 일들이 다 뭐든 간에 좌우간 이걸 하는 게 낫겠더라고." 그러고는 이런 말을 덧붙인다. "여자들은 대개 위대한 예술가가 아니잖아. 남자들처럼 그렇게는 말이야." 조슬린은 그때까지 로즈가 만난 여자들 중에 가장 똑똑하고 개방적이며 재미있는 사람이었는데도 이런 고루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로즈는 조슬린이 잘못된 생각 때문에 인생을 망쳤다고 생각했고, 조슬린 또한 그걸 알았다.


로즈의 삶에는 매질을 일삼았던 아버지와 배 아파 낳은 자식과 그렇지 않은 자식을 은밀하게 - 때로는 공공연히 - 차별했던 새어머니, 한때는 달콤한 연인이었지만 결국 가식적이고 비겁한 속내를 드러낸 패트릭, 한 시절 매우 친하게 지냈으나 이제는 소원해진 조슬린과 클리퍼드 부부 외에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중에는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친구 랠프도 있다. 랠프와는 이름이 알파벳 순서상 비슷해서 가까운 자리에 앉는 경우가 많았다. 집안 환경이 비슷하고 유머 감각도 통해서 동지애 비슷한 감각으로 친하게 지냈다. 랠프가 집안 사정상 학교를 그만둔 후 자연스럽게 소식이 끊겼는데, 한참 후 로즈는 랠프가 해군에 입대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때 로즈는 이런 생각을 했다. "그녀가 아는 소년들은 아무리 무능해 보여도 결국은 남자가 될 것이며, 자신들이 갖춘 것보다 훨씬 큰 재능과 권위가 필요할 것 같은 일들을 하도록 허가받을 거라는 사실을."


세월이 흐른 후 로즈는 오랜만에 고향을 찾는다. 로즈를 가혹하게 매질했던 아버지는 일찍이 세상을 떠났고, 새어머니 플로는 양로원에 들어갔다. 배다른 동생 브라이언은 로즈처럼 진작에 고향을 떠나 한 가정의 아버지가 되었고, 동창들은 장의사가 되거나, 회계사가 되거나, 암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로즈는 랠프와 아주 잠깐 만난 적이 있다. 길게 대화를 나누진 않았지만, 그동안 어떻게든 살아남아서 이렇게 다시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는 사실에 은근한 기쁨과 감동을 느꼈던 시간이었다. 로즈는 여전히 흉내 내기를 잘하는 랠프를 보면서 자신이 배우가 되고 싶었던 건 랠프의 영향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태어나고 자란 환경은 비슷했지만 남자라서 수많은 기회를 부여받았던 랠프와, 남자가 아니라서 스스로 기회를 찾아야 했던 자신의 처지가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보며 묘한 쾌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로즈는 살면서 자신에 대해 이렇다 또는 저렇다고 규정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새엄마 플로는 로즈에게 건방지고 이기적인 여자애라고 욕했고, 헨쇼 박사는 로즈에 대해 유흥에는 관심 없는 학구파라고 말했다. 조슬린은 로즈가 제법 좋은 대학을 나왔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놀란 표정을 차마 감추지 못했고, 패트릭은 로즈를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로즈가 마구간 같은 집에서 자란 거지 소녀라고 말했다. 그 말들은 모두 사실일 수도,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중요한 건 로즈 자신의 선택이다. 로즈는 새엄마가 건방지고 이기적이라고 욕하든 말든 고향을 떠나 자신의 삶을 살았다. 헨쇼 박사의 말을 듣지 않고 패트릭과 결혼했다. 예술가 남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조슬린을 보면서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고, 끝내 자신을 오랫동안 무시하고 능멸했던 남편 패트릭과 헤어졌다.


로즈의 삶에는 분명 불행의 씨앗이 많이 있었다. 생모는 일찍 사망했고, 계모는 사려 깊지 못했으며, 아버지는 무심했다. 집안은 가난했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는 계모와 로즈가 생계를 책임지다시피 했다. 어렵게 대학에 진학했으나 일찍 결혼을 하는 바람에 직업을 가지지 못했고, 이혼 후 직업을 가지려 했을 때에는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즈가 나름 만족할 만한 삶을 살 수 있었던 건 위기가 닥칠 때마다 남의 생각에 의지하는 대신 스스로 판단하고 결과에 책임을 졌기 때문이다. 로즈 자신이 어떻게 살고 싶은지,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아야 마땅한 인간인지 제대로 알고 있었고, 스스로 그것을 증명할 기회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소설을 다 읽고 나서야 원제가 <넌 도대체 네가 뭐라고 생각하니? (Who Do You Think You Are?)>라는 사실을 알았다. 영미권에서 이 말은 상대의 오만함을 지적하며 욕보이고 싶을 때 쓴다고 한다. 로즈는 주로 새엄마에게 야단을 맞을 때 이 말을 들었다. 새엄마의 눈에는 똑똑하고 당찬 로즈의 모습이 오만하고 건방지게 보였던 모양이다. 당시만 해도 어리고 약했던 로즈는 미처 자신을 변호하지 못했지만, 먼 훗날 새엄마 앞에서 로즈 자신의 삶으로 자신의 정체를 알린다. 새엄마 말대로 자신이 오만하고 건방진 계집애인지, 아니면 제법 괜찮은 대학을 나오고 어엿한 직업도 있는 똑똑하고 당당한 여성인지를 새엄마가 보게 한다. 물론 새엄마는 성장한 로즈의 모습을 바로 보지 못한다. 친자식이 아닌 로즈의 성공보다, 친자식인 브라이언의 성공을 더 크게 여긴다. 그래도 상관없다. 로즈의 삶은 온전히 로즈의 것이고, 로즈가 누구인지는 로즈 자신이 이미 결정했다.


패트릭도 끝내 바뀌지 않는다. 이혼한 지 몇 년이 지난 후 로즈와 패트릭은 공항에서 우연히 마주친다. 로즈를 알아본 패트릭은 얼굴을 찌푸린다. 패트릭에게 로즈는 주제도 모르고 자신을 배신한 여자, 비정하게 딸을 버리고 떠난 여자에 불과한 것이다. 그래도 상관없다. 패트릭이 아는 로즈는 로즈의 일부일지언정 전부가 아니다. 패트릭이 아는 로즈로 살기에 로즈는 너무 크고 대단한 존재다.


한때 자신을 사랑한다고 속삭였던 입으로 동시에 자신을 거지 소녀라고 모욕했던 남자. 그 남자로부터 등을 돌리며 로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제 더는 누구도 나에게 거지 소녀라는 말을 못 하게 할 거라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을까. 내 생각에 로즈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 같다. 로즈는 더 이상 자신이 누구라고 증명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로즈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그럴 필요가 없다. 우리 중 누구도 타인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규정할 자격이 없듯이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증명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그저 살아갈 뿐이다. 삶으로 보여줄 뿐이다. 나는 거지 소녀가 아니라고. 나는 나일 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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