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들 그렇게 눈치가 없으세요?
아지즈 네신 지음, 이난아 옮김, 노석미 그림 / 살림Friends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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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빠르게 앞만 보며, 달려온 당신 ! 지금은, 더 멀리 뛰기 위해 뒤를 돌아볼 시간입니다.
 
 
  한국 전쟁이후 황폐해진 땅에, 경제발전이라는 이름으로 숨가프게 달려온지 60년이 지났다. 세계에서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릴만큼, 고도성장을 이뤄냈지만, 외환위기와 수출위주의 경제성장, 외면받는 민주주의, 노사갈등, 지역갈등, 의회 민주주의의 위기 등 다양한 문제점도 안고 있다. 서양에서는 300년에 걸쳐 서서히 이루어진 민주주의를 짧은 시간에 이루려는 시도가 원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제까지 빠르게 앞만보며 달려왔다면, 지금은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 달려야 할건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기라 생각한다.
 
  아지즈 네신이라는 터키작가가 태어났던 때의 터키도 한국전쟁의 우리나라와 경제상황이 비슷했다. 모두가 가난하고 배고팠던 시기, 작가는 풍족해진, 소비사회의 풍조로 어린아이들과 어른들이 힘겨웠던 어린 시절을 잊어가는 것이 안타까워 자전적 소설을 썼다.빠른 사회의 변화속에서 적응하기 위해, 이웃간의 끈끈한 정, 우정, 인간의 소중함 등, 잊어가며, 잃어가는 것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작가가 털어놓는 유년시절의 추억들은 우리가 잊어가며, 잃어버린 아름다운 보석보다 소중한 가치들을 어둠 속의 촛불처럼 은은하게 비춰준다.
 
 
# 너무나 가난했던 삶, 웃음과 풍자로 풀어가는 이야기
 
 
  가난했던 시절을 이야기하면, 보통 가난의 서러움과 함께 그러니까 열심히 공부해서 나처럼 살면 안된다는 훈계로 끝나기 십상이다. 풍자와 위트의 작가 아지즈 네신의 이야기에는 너무나 가난해서 안타까운 순간들을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묘한 힘이 서려있다. 명절을 맞으면 입는 새빔 하나도 준비하기 버거웠던 어린시절, 양동이 끌고 물을 길어와야 했던 부끄러운 시절과 부자 아이에게 구박받던 에피소드와 뒤에서 싸움을 부추기지만,정작 싸움의 순간에는 비겁하게 지켜보기만 하는 동네 형의 이야기들은 슬픈 상황을 무겁지 않은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컴퓨터와 게임기가 발달하지 않았던 유년시절의 추억들을, 네신의 이야기를 통해 바라본다. 가난했지만, 비굴하지 않았던 삶, 어린 마음에 많은 걸 할 수 없었던 삶이 부끄러웠지만, 어른이 되고 나니, 작가의 말처럼, 모두가 가난할 때 가난한 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며 부자인 것이 부끄러운 일이라는 말이 이해가 된다. 현실에 순응하며,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성실하게 사는 사람이 모두 부자가 되는 건 아니라는 말이 이해가 된다. 모두가 열심히 근검절약하면 너도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악마의 유혹같은 말에 벗어나, 어떻게 사는 삶이 함께 행복하게 지내는 삶인지 고민하기 시작하고, 자신의 이익에 조금 피해가 되더라도 공존을 위해 견딜 수 있는 마음이 있을 때, 사회가 더 좋은 방향으로 간다는 외면했던 사실을 다시 생각해 본다.
 
  실천하는 지성이면서, 자신의 모든 작품의 인세를 고아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주는 네신 재단으로 모두 기부하는 저자의 책이다. 고통과 힘겨움을 이겨내는 힘이 웃음이듯이, 가장 낮은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알았기에, 저자의 글들이 풍자와 웃음으로 가득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것을 누리며 살고, 돈이 있으면 많은 걸 누릴 기회를 가진 현대사회 일수록, 절대적 빈곤에 놓여 하루를 걱정해야 했던 시절을 잊고 살아선 안된다 생각한다.
 
  작가는 어머니가 다른 집에 빨래를 대신하며 생계를 유지한 친구가 백만장자가 된 후, 과거를 부끄러워하며 고귀한 신분이며 부모님도 고위관료라는 거짓말을 하는 것을 보고, 부모 세대 모두가 가난한 삶을 살았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 이 글을 썼다고 한다. 가난을 부끄러워 하는 삶이 되풀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썼다는 그의 마음이 책을 통해 전해진다. 가난은 벗어나고 싶은 대상이지만, 수치를 느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생각한다.
 
  네신의 글을 읽으며, 잠시 어린 시절로 돌아가 꿈꾸었던 세상을 다시 떠올려 본다. 가진 것의 정도에 상관없이,모두가 가난했지만 함께 나누며 살 줄 알았던 시대, 그때의 따뜻한 마음을 어떻게 유지시켜 다음 세대에게 그대로 잘 전하는 일이 지금 세대에게 주어진 책무라 생각한다. 돈이 없어 하루를 굶어 본 경험이 없는 아이들과 함께 읽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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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나라 도둑 - 김주영 상상우화집
김주영 지음, 박상훈 그림 / 비채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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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상력이 메마르고 있다.
 
 
  현실과 타협하는 나날이 늘어간다. 현실을 직시하고, 한계를 인식하는 장점이 있는 반면, 마음의 한 구석에 자리잡던 상상력은 사라진다.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다르지 않을 내일이라는 생각이 웃음과 여유도 사라지게 하여 안타깝다. 조금만 건드리면 물기가 뚝뚝 떨어지는 상상력을 머금은 스펀지같은 책이다. 저자가 풀어내는 사리에 맞지 않은 이야기속에 우리 삶의 풍경이 보이고, 살아가는 지혜가 숨어있다.
 
 
# 당신의 마음 속에 잠들어 있는 어린시절의 아이를 깨워보세요.
 
 
  52가지의 짧지만 생동감 넘치는 글을 읽다보니, 어린시절 잠들어 있는 내 안의 아이가 깨어난 기분을 느꼈다. 철도로 이어져 목포와 부산에서 출발해서, 신의주, 러시아를 지나 유럽까지 지나가는 대륙횡단열차를 여행하는 꿈에 빠져 즐거웠다. 늘 일만하는 코끼리가 안쓰러워 코끼리를 들어 위로해주고 싶던 아이가 꿈을 이뤄가는 과정을 의심없이 감탄하고, 축하해주는 어린시절의 마음과 만나게 되어 좋았다. 현실가능성이라는 이름과 의심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 속기 십상이라고 알려주는 사회의 분위기에서 살짝 비껴서서, 작은 일에 감동하고, 기뻐하고, 한계를 넘어서는 상상력을 만난 이 느낌, 상상력의 결핍의 시대에, 비타민을 만난 기분이다.
 
  거리를 배회하며 삶의 진실과 지혜를 대면했던 저자의 내공이 잘 드러난 우화집이다. 현실세계에서 인간이 부딪치는 좁은 식견, 두려움, 외로움 등의 마음을 우화를 통해 대신 체험하게 한다. 표제인 달나라 도둑의 이야기를 통해, 내 방안의 돈과 작은 이익을 지키려다, 당연하게 느껴야 하는 가치를 잃어버린 채 사는 삶을 돌아보았고 자신의 고집과 욕심으로 공룡과 괴물이 되어가는 아이, 어른들의 방치속에 외롭게 자라는 아이들이 보였다. 도시화로 사라져버린, 시골생활의 자연의 풍경이 주는 혜택과 이웃간의 살뜰한 정 등 현대사회에서 잊어가며, 잃어가는 가치들과 마주하는 느낌, 나쁘지 않다.
 
  이야기에 빠지면, 자연스레 다양한 생각이 꼬리를 문다.독자의 곱씹음의 깊이만큼, 더 넓고 멀리, 각의 하늘을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책이다. 김주영 표, 아이러니의 진수를 느낄 수 있다. 뗏목을 타고 여행을 하며, 세상의 가치들에 초연한 그, 어느날 잠수정이 따라붙어 취재하더니, 세간의 사람들에게 물위의 철학자 등으로 조명을 받게 되면서, 뗏목생활에 지쳐 육지로 돌아가지 못하고, 계속 뗏목위에 생활해야 하는 생활을 하게 되는 이야기에샤, 스스로의 의지가 아닌,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는 삶이 보였다.
 
 
# 함께 꿈을 그릴 수 있는 세상이, 아름다운 세상.
 
 
  완벽한 조건을 갖춘 여성이 되었지만, 정작 결혼을 하려 오지 않는 상황에 빠진 공주라 불리고 싶었던 여성을 다룬 길 위에서 잠든 공주님 이야기는 결혼의 의미와 보이는 외모와 배경, 능력을 잣대로 사람을 판단하는 현실의 풍경이 보인다.
 
  아이와 함께, 이야기를 나눌 씨앗으로, 함께 읽기를 권하고 싶다. 많은  것들을 갖추는 삶은 편리와 행복의 징검다리가 될 수 있다 생각한다. 풍족한 삶이 부끄러운, 죄의식을 느껴야 하는 삶은 아니다. 혼자 너무 많이 가지고 있거나, 주변보다 더 빛나보이기 위한 화려함이 꼭 부러움의 대상도 아님을 생각하게 한다. 아이들에게 많은 돈을 벌고, 세상을 살아가는 요령을 가르쳐 주는 일은 중요하다. 그 크기만큼 ,아이들에게 함께 사는 더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는 상상력을 제공해 주는 일도 시급하다 믿는다.
 
  꿈을 꾸지 않으면, 그 꿈을 믿지 않으면, 현실을 변화시킬 수 없다. 현실의 지나친 압박으로 상상력보다 재테크와 당장의 이해관계를 강조하는 사회의 분위기가 고조될수록, 더욱 소중한  가치를 대변하는 책이라 생각한다. 이야기에 빠져, 잠깐 다른 삶의 풍경을 그려볼 수 있었다. 달콤한 단잠을 연상시키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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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후르츠 캔디
이근미 지음 / 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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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날 찾아온 달콤한 오해. 과연 그게 나에게 행복일까?
 
 
  크게 달라지지 않는 매일의 일상에서 간혹 행운을 기대하곤 한다. 로또에 당첨이 된다면, 확률이 낮은 경품행사에 내가 당첨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꼭 당첨되지 않더라도, 미래가 달라질 수 있다는 기대는 하루의 삶을 좀 더 다르게 살 수 있는 희망을 준다. 결국은 상처로 남는 희망이지만, 상상하는 동안은 달콤하다.
 
  사회생활에서는 실력도 중요하지만, 예측할 수 없는 인연과 운에 의해 많은 일들이 결정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삼류대학에 특별한 스펙을 갖추지 못했지만, 광고에 대한 열정을 지닌, 글을 잘쓰는 조안나는 자이언트기획이라는 회사에 입사한다. 파격적인 합격에 따라붙는 회사에서의 여러가지 소문, 그를 뽑은 면접관이 대기업 회장의 아들이기에 소문은 더욱 증폭된다. 조전무에게는 조리나라는, 안나와 비슷한 외모에, 지금은 유학을 떠난 동생이 있다. 리나와 연애를 했다가 혼자가 되어 루머에 휩싸인 빈우. 재벌가 낙하산이라는 오해에 빠진 직장 동료들과 같은 팀 동료 빈우와 부딪치며, 안나는 회사생활을 시작하게 되는데..
 
 
# 현재의 한국사회의 풍경을 엿볼 수 있는 책.
 
 
  회사에 입사한, 성공의 가능성을 지닌 평범한 직딩녀가 공주님이라는 오해를 이겨내고, 자신을 찾는 과정을 다룬 성인판 성장소설이다. 사장의 인맥이라는 루머만으로도 달라지는 주변에서의 대접, 직장 내 존재하는 작은 편견들, 결혼에 대한 현실적인 이야기들은 현재의 한국사회의 일반적인 정서를 가늠할 수 있다.
 
  칙릿소설처럼 직장생활을 하는 여성들이 공감하며 읽을 수 있는 책이다. 15초에 구매자의 눈을 사로잡는 광고계의 풍경과 함께, 직장생활, 사내 연애 등 회사생활을 하는 신입사원 여성이 고민할 수 있는 내용이 광고의 카피와 함께 잘 어우러져 있다. 잘 포장된 이미지를 중시하는 사회에서, 잘 포장되기 보다는, 실속을 잘 갖추는 일이 결국 멀리 보았을 때 자신에게 좋다는 내용을 교훈적이지 않게, 가볍게 전달하고 있다.
 
  직장에 올인하지도, 사랑에 올인할 수 없는, 선택에 고민하는 안나의 모습에 공감할 수 있었다고 할까. 사랑에 올인하거나, 사랑을 외면하는 극단적이 선택이 아닌, 경계에서 조화를 꾀하는 모습에서, 하나를 정하지 못하고 서성이는 마음이 이해가 됐다. 아직 신입인 그녀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라고 할까. 그런 선택들이 조금씩 쌓여가고, 후회하고 칭찬하며 자신을 돌아보는 과정 속에서 나라는 존재가 만들어지는 것 같다.
 
  직업과 나이, 성별, 가족관계 등 다양하게 누군가를 정의내릴 수 있지만, 자신의 결정에 따라 인간은 매번 변화한다고 생각한다. 행운에 기대지 않고, 자신의 실력과 사랑에 조금 더 용기낸 그녀를 응원할 수 있어 즐거웠다.
 
  어쩌면 사랑은 후르츠 캔디처럼, 살살 녹여 그 맛을 음미하는 동안 매우 큰 즐거움을 선사하지만, 사탕이 다 녹아진 후에는 단기운이 빠질때까지 씁쓸함을 느껴야 한다. 사탕을 녹여먹는 그 순간은 누구보다 행복할 수 있으니, 사탕 없이 지내는 일보다는 사탕을 맛보는 것이 더 좋다 생각한다. 달콤한 사과맛 사탕을 맛 본 기분을 전해주는 책이다. 사회 무대로 나설 준비를 하는 대학생 여학우에게 후르츠 캔디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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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쥐
박찬욱 외 지음 / 그책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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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뱀파이어하면 떠오르는, 로맨스와 다르다!
 
 
  『트와일라잇』시리즈와 『댈러스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수키 스택하우스 시리즈에는 뱀파이어가 등장하고, 지고지순한 로맨스가 등장하는 공통점이 있다. 트와일라잇은, 인간이 대상이 아닌, 동물이나 다른 대상의 피를 먹는 것으로 독자의 뱀파이어에 대한 거부감을 줄인다. 수키 스택하우스 시리즈는 일본인이 개발한 합성용액이 피를 대신한다는 방법으로 읽는데 불편함을 없앤다. 『박쥐』는 서양의 로맨스 뱀파이어 소설과 다르다.
 
  가장 인간을 아끼고 소중히 해야하는 의무를 지닌 신부가 불의의 사고로 뱀파이어가 되면서 생겨나는 고뇌와 윤리적 갈등, 사랑과 그 이후의 이야기들을 통해, 사랑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상처를 입지 않고, 괴력의 힘을 발휘하는 장점보다, 피를 구하기 위해 살인의 욕망을 괴로워해야 하는 본성과 싸워야하는 인간의 고뇌가 담겨있다. 자극적이고 상상을 넘어서는 장면에 눈살이 찌푸려지기도 하지만, 인간이 논할 수 없는 금기의 영역에 발을 디딘 채, 인간의 삶을 바라보는 모습이 좋았다. 극한의 상황에 처하면 사회속에서 감추어진 자신의 내면의 모습이 나온다. 감내할 수 있는 한계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이 좋다.
 
 
# 내가 이 지옥에서 데리고 나가줄게요.
 
 
  의남매인 태주와 강우, 신부가 된 성현은 같은 마을에서 자랐다. 고아였던 성현은 노신부의 품에서 신부의 길을 걸었고, 난치의 병인 이브 바이러스라는 수포가 발생하는 병을 일으키는 세균을 투입해서 생존하는 실험에 자원해 50명 중 유일하게 생겨난 생존자이기도 하다. 생존의 소문은 난치병을 지닌 마을 사람들에게서 기적의 성자로 추앙받게 되고, 기적같은 일들이 벌어진다. 생존의 후유증으로 흡혈귀가 된 성현은  피를 마셔야 수포가 치유되고 활력넘치고 괴력을 발휘하는 건강한 몸으로 되돌아간다.
 
  자신이 지켜온 신념과 생의 본능과 타협하는 과정으로 성현은 병원에서 위독하거나 자살을 하는 이를 도와주며 살인을 하지 않고 생존을 도모하려 노력한다. 의남매인 강우의 성적 무능력과 어머니 라여사의 핍박으로 나날이 메말라가는 어린시절 좋아했던 태주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는 신념을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 벗어날 수 없는 삶과 무력한 자신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태주는 매일 밤 맨발로 거리를 배회한다. 배회하는 그녀에게 구두를 신겨주면서 더욱 가까워진 두 사람, 그녀의 삶을 벗어나게 해 주겠다는 마음으로 그는 결심을 하게 되는데...
  
  더 나은 삶에 대한 욕망은 우리를 행동하게 한다. 사랑은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고 상대의 삶도 변하게 한다. 사랑과 악행은 욕망에서 나온다는 작가의 후기의 글귀처럼, 태주를 사랑해서 행복해지게 하려던 그의 행동은 태주가 다른 모습으로 변했을 때, 그가 예측한 선택을 하지 않음으로써, 둘 모두를 파멸의 길로 걷게 한다. 길거리에 지나가던 이에게는 그가 어떤 행동을 하던지 간섭하려 애쓰지도 않고, 의식하지 않으면서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가족, 연인에게는 많은 걸 기대하고, 기대에 미치지 못했을 때는 제재 또는 실망을 하게 되는 인간의 마음이 보인다. 다른 삶을 살고 싶으면서도 자신에게 돌아오는 물질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인간의 욕망에 대해 고민거리를 던지는 소설이다.
 
 
# 나락으로 내려 갈 수는 있어도 높으 곳으로 다시 올라갈 수는 없는 것처럼.
 
 
  라여사가 강우에게 보이는 애절한 사랑의 크기만큼, 태주에게는 삶을 구속하는 폭력이 되고, 죽음에 자유로워지는 젊음으로 돌아갈 수 있는 노신부의 갈망, 성현에게 기적을 기대하는 환자들, 초경을 마친 소녀에게 행하는 성현의 행위를 통해 성현은 사회에서의 명예를 버리며 삶을 버리는 선택과 실천을 한다. 영화에서 성현 역할의 배우가 순교하는 기분으로 했다는 말을, 영화를 보지 않았지만, 이해할 수 있었다.
 
  영화를 현실과 동일시 하는 건전한 사고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에게는 불편함을 가득 안겨주는 책이다. 아름다움과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무언가를 중요시 하는 이에게는 권하고 싶지 않은 책이다. 예술의 상상력에서는 금기가 없다는 점을 이해하는 이에게, 영화와 소설은 현실과 다름을 인정하는 이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사랑의 다양한 색깔에 대해, 윤리와 욕망의 경계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어떤 답을 선택하던지, 그 답을 통해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이해하게 된다.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씨앗이 숨겨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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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심장을 쏴라>를 리뷰해주세요.
내 심장을 쏴라 - 2009년 제5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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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할 수 없는 운명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살다보면 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일들이 많다.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병도 인간의 힘으로 어찌 할 수 없고, 누군가의 마음을 얻는 일과, 사랑에 빠지는 일, 사랑하던 이와 이별하는 일도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내 실수로 생긴 나쁜 결과는 죄책감이나 미안함으로 가슴에 남는다. 자신의 실수를 부정하며 현실을 견디기도 하고, 유사한 상황과 대면하게 되면 어찌할 바를 모르는 공황상태로 무력해지기도 한다. 피할 수 없는 운명에 저항하는 방법으로 어떤 이는 종교를 찾아 구원을 꿈꾸고, 또 다른 이는 자신을 파괴하거나, 도피로 문제를 해결하기도 한다.
   
 
#  거스를 수 없는 운명에 항거하는 생의 의지를 통해 삶에 대한 열정을 다시 생각해 보다.
  
 
  가위를 보면 극도의 불안증세를 보이는 수명은 매일 집에서 웅크리고 있다가, 아버지의 타박으로 거리를 헤매다 길을 잃어버린다. 거지보다 초라한 행색으로 길을 걷는 여인에게 더듬거리는 말로 길을 묻다가, 여인의 과도한 놀람에 자신도 모르게 손을 잡는다. 성추행범으로 몰린 그는 경찰서에 끌려가고, 매번 사고를 치는 그를 견디다 못한 아버지는 그를 정신병원으로 보낸다.
   
  수명과 같은 날 입소한 명진은 재벌 2세의 삼남이라는 소외된 삶과 움직이는 물체를 잘 인식하지 못하는 자신의 한계를 강아지 꼬리를 태우는 불놀이에서 시작해서 별장을 태우는 방화로 어린시절 운명에 맞서왔다. 그를 아끼던 비서실장의 선택으로 외국으로 도피한 그는 비서실장과 행글라이더 비행을 배우며 앞이 잘 보이지 않는 한계를 극복하고 행글라이더 대회 세계 최연소 우승자가 된다. 기쁨도 잠시, 다음 경기에서 추락하는 사고를 겪고, 그 후유증으로 망막색소변성증이 더욱 심해졌다는 선고를 받게 된다. 더 이상 행글라이더를 탈 수 없는 상황은 그를 절망의 늪으로 빠뜨린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막대한 유산이 남겨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하루만 귀국했다 떠나려다, 장남과 차남사이의 권력다툼에 휘말려 정신병원에 갇히게 된다. 점점 증상이 심해져 앞을 볼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듬을 깨닫는 그는 한 번이라도 더 행글라이더를 타기 위해, 탈주를 꿈꾼다. 무모한 그의 도전은 더욱 심한 교정과 처분으로 돌아온다. 끝없이 자신의 운명에 항거하는 그와 생활하며 수명은 도망치기만 하던 자신의 운명과 다시 대면하게 되는데..
 
  거스를 수 없는 운명에 항거하는 다양한 대응방식을 정신병원에서 생활하는 이들의 모습을 통해 바라볼 수 있었다. 말과 함께 곡예를 통해 기립박수를 받았던 삶을 잊지않고, 다른 환자의 등에 늘 업혀있는 만식씨, 사랑하는 지은의 고통스러운 위기를 구해주지 못한 자책감으로 자신의 이를 뽑는 한이, 자신의 피할 수 없는 선택의 결과를 인정하지 못하고, 늘 세상에서 자신에게서 도망치기만 하는 수명을 통해, 무기력함과 절망이라는 감정이 가슴에 생생히 전해졌다. 정신병을 가진 예쁜 아이를 성폭행하는 작업반과 보호사가 결탁한 패거리 짓과 권력을 이용하여 타인을 짓밟지만, 오너의 친척이라는 이유로 큰 처벌을 받지 않는, 사회에 알려질까봐 쉬쉬하는 병원 원장의 행동은  문제가 있으면 이를 외면하거나 축소시키려 하는 사회의 풍조를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안타까워 하지만, 그 순간이 지나면 잊어버리기에 계속 이런 일들이 반복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마음이 먹먹해진다.
 
  정신병원에는 미쳐서 갇힌자와 갇혀서 미친자라는 두 종류의 인간이 있다는 수명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리얼한 다양한 정신병원의 삶을 엿보는 호기심의 충족과 함께, 절망의 나락이라는 순간 속에서도 끊임없이 자신의 인생을 상대하는 승민의 몸부림을 통해, 생의 의지와 삶에 대한 열정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그의 열정은, 피하지 못한 우울한 결과로부터 늘 도망치려 하는 수명의 삶에 대한 태도를 변화시키고, 수명의 인생을 바꾸었다.
 
  운명과 불편한 현실을 도피처로 삶아 삶에서 도망치지 말고, 살아있는 순간순간 '나'답게 살아가라는 권유가 정신병원이라는 한정된 공간의 탈주를 꿈꾸는 탈옥기를 통해 전해진다. 정신병동이라는 독특한 상황이 불편해서 책을 읽는 일이 쉽지 않았다. 1부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읽었더니, 승민과 명진의 좌충우돌의 생활에 끌려 마지막장까지 멈추지 않고 한 호흡에 읽게 되었다. 실제 정신병원을 관찰하는 듯한 세세함에서 작가의 취재의 꼼꼼함과 우리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를 볼 수 있었다.
   
  엉뚱한 행동의 명진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는 수명, 수명이 왜 가위에 두려움을 갖는지 독자가 이해하게 되는 과정들을 지켜보며, 소설은 타인의 삶을 이해하게 만드는 매력적인 문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정신병원의 환자로 이해하게 만드는 힘, 결국 인간이 이해하지 못하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생을 무력하게 만드는 운명조차도 생의 의지와 수용의 마음으로 이겨낼 수 있다고 할까. 윤리교과서에 나올법한 교훈의 메시지를 한 편의 이야기를 통해 자연스레 고민하게 만드는 점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라 생각한다. 나쁘지 않았던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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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무기력한 삶을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 (옵션)

  세계문학상 도서 - 미실, 아내가 결혼했다, 스타일, 슬롯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세계문학상을 좋아하는 이.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와, 다 와. 날 죽여보라고, 자식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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