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도 되겠지 - 호기심과 편애로 만드는 특별한 세상
김중혁 지음 / 마음산책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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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 10년차. 돈 되는 일보다, 시간의 자유를 얻은, 소설가 및 창의성 풍부한 낙천주의자의 글이 가득하다. 정말 읽다보면, 이렇게 살다보면 뭐라도 되겠지라는 희망의 마음이 든다. 지칠때 힘이 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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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농장.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37
조지 오웰 지음, 김기혁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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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오웰인가!
 
 
  7살 때, TV만화로 <동물농장>을 봤었다. 돼지들이 말을 하는 것이 신기했다. 인간들을 몰아내고 만든 동물들의 세계에도 시간이 지나면서 차별이 존재하고, 계급이 나뉘고, 다시 인간이 돼지를 사육하는 것과 비슷한 형태로 반복되는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사회라는 공간에서 살아오며, 다시 <<동물농장>>을 읽었다. 어렸을 때, 몰랐던, 정치 풍자소설이라는 걸 알았고, 공산주의가 무너진 지금도, 돈과 권력을 통해, 같은 현상이 반복되는 현실이 보인다. 작가의 예리한 통찰력이 틀리길 매번 바라지만, 아직도 작가의 소설은 현실사회의 모순을 잘 짚어내는 작품으로 존재한다.
 
  물가는 오르고, 월급은 동결이나 깎이고, 삶이 지옥처럼 느껴지는 4년을 보내고 있다. 인간에서 동물로 바뀌면 세상이 달라질까?라는 문제의식은, 다음 대통령에 누가 되더라도, 돼지들처럼 변하지 않을까하는 우울한 현실을 바라보게 한다. 왜 어두운 전망을 그리는 소설을 읽어야 할까. 왜 오월을 읽어야 할까. 인간에 대한 기대는 늘 배신당하고, 우울한 현실을 바꾸기 어려워보여도, 결국 그 변화의 시작은 한 사람의 생각과 대화에서 시작되기에, 지금 오웰을, 현실을 보는 일을 계속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몇몇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 평등하다.
 
 
  외교부 장관의 딸 특혜채용에 관련된 사건, 재벌 그룹 총수가 개인의 사익을 위해 회사에 누를 끼쳤지만, 올림픽을 유치한다는 명분으로 사면되는 사회에 살고있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지만, 몇 몇 인간은 다른 인간보다 더 평등한 오웰의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인간에게 착취당하던 동물들은 늙은 수퇘지 메이저가 꾼 꿈을 통해, 인간의 지배가 아닌 새로운 세상을 꿈꾼다. 스노볼, 스퀼러, 나폴레옹의 세마리 돼지들이 ’동물주의’라는 사상을 들고, 동물들만의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혁명은 성공했고, 모두가 성실히 일하고, 글씨를 가르쳐 주는 새로운 세상이 생기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혁명을 주도했던 세마리 돼지들은 서로 자신들끼리 돼지들이 사과를 독점할 수 있게 만들고, 다른 동물들을 설득한다.
 
 
  동무들! 여러분이 우리 돼지가 이기심과 특권의식으로 이러는 거라고 생각하진 않겠지요? 사실 우리 중 상당수는 우유와 사과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나도 좋아하지 않아요. 우리가 이걸 먹는 유일한 목적은 건강을 위해서입니다. 우유와 사과에는(동무들, 과학적으로 증명되었어요) 돼지의 건강에 필요한 필요한 영양분이 들어 있어요. 우리 돼지들은 두뇌 노동자입니다. 이 농장의 경영과 조직은 전적으로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밤낮으로 우리는 여러분의 복지를 위해서 애쓰고 있습니다. 우유를 마시고 사과를 먹는 건 오직 ’여러분’을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부여된 의무를 이행하지 못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여러분이 상상이나 하겠습니까? 언젠가는 존스가! 돌아올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존스는 반드시 돌아옵니다! 틀림없어요. 동무들." 스퀼러는 이러저리 뛰어다니고 꼬리를 흔들면서 호소하듯 외쳤다. "여러분 중에 존스가 돌아오기를 원하는 자는 아무도 없겠지요?"
 
 
  지배계층이 피지배계층을 설득하기 위해 다양하는 방법의 원천이 여기에 다 들어있음을 보았다. 한 장, 한 장 넘길때마다, 지나왔던 역사가, 지금의 현실이 다시 새롭게 보인다. 역사를 통해 현실을 다시 보는 것처럼, 고전을 통해 현재에 던져지는 의문의 원인과 변화의 씨앗을 찾는다. 아직도 문제제기가 유효한 작품을 고전이라 한다면,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은 여전히 고전의 자리에 있다.
 
  어제, 초등학교 6학년인 사촌동생과 대화를 했다. 게임을 좋아하고 놀기를 좋아하는 동생과 이야기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모두가 행복해지는 세상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갈수록 취업도 어렵고, 평생일자리도 없기 때문에, 빨리 니가 잘하는 걸 찾아, 먼저 회사에 들어가기 위해 노력해야 해라고 말하는 내 자신을 보았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다른 사람을 소중히 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가까운 이에게 현실에 맞게 요령껏 사는 모습을 이야기하는 나. 어쩌면 모두가 내 가까운 사람들을 생각하고, 누군가 좋은 사람이 좋은 세상을 만들어줄거라는 근거없는 기대를 하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그 대가를 치르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어떤 사상이 세상을 바꾸는 게 아니라, 한 사람의 마음이 다른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며, 세상은 조금씩 함께 사는 세상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누군가’ 해주기를 기대하는 마음이 아닌, 나부터 변화의 시작을 만드는 일, 오웰과의 대화는 늘 어두운 밤에 만나지만, 새벽의 일출을 기다리게 하는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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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농장.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37
조지 오웰 지음, 김기혁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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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 왜 오웰인가!
 
 
  7살 때, TV만화로 <동물농장>을 봤었다. 돼지들이 말을 하는 것이 신기했다. 인간들을 몰아내고 만든 동물들의 세계에도 시간이 지나면서 차별이 존재하고, 계급이 나뉘고, 다시 인간이 돼지를 사육하는 것과 비슷한 형태로 반복되는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사회라는 공간에서 살아오며, 다시 <<동물농장>>을 읽었다. 어렸을 때, 몰랐던, 정치 풍자소설이라는 걸 알았고, 공산주의가 무너진 지금도, 돈과 권력을 통해, 같은 현상이 반복되는 현실이 보인다. 작가의 예리한 통찰력이 틀리길 매번 바라지만, 아직도 작가의 소설은 현실사회의 모순을 잘 짚어내는 작품으로 존재한다.
 
  물가는 오르고, 월급은 동결이나 깎이고, 삶이 지옥처럼 느껴지는 4년을 보내고 있다. 인간에서 동물로 바뀌면 세상이 달라질까?라는 문제의식은, 다음 대통령에 누가 되더라도, 돼지들처럼 변하지 않을까하는 우울한 현실을 바라보게 한다. 왜 어두운 전망을 그리는 소설을 읽어야 할까. 왜 오월을 읽어야 할까. 인간에 대한 기대는 늘 배신당하고, 우울한 현실을 바꾸기 어려워보여도, 결국 그 변화의 시작은 한 사람의 생각과 대화에서 시작되기에, 지금 오웰을, 현실을 보는 일을 계속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몇몇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 평등하다.
 
 
  외교부 장관의 딸 특혜채용에 관련된 사건, 재벌 그룹 총수가 개인의 사익을 위해 회사에 누를 끼쳤지만, 올림픽을 유치한다는 명분으로 사면되는 사회에 살고있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지만, 몇 몇 인간은 다른 인간보다 더 평등한 오웰의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인간에게 착취당하던 동물들은 늙은 수퇘지 메이저가 꾼 꿈을 통해, 인간의 지배가 아닌 새로운 세상을 꿈꾼다. 스노볼, 스퀼러, 나폴레옹의 세마리 돼지들이 ’동물주의’라는 사상을 들고, 동물들만의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혁명은 성공했고, 모두가 성실히 일하고, 글씨를 가르쳐 주는 새로운 세상이 생기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혁명을 주도했던 세마리 돼지들은 서로 자신들끼리 돼지들이 사과를 독점할 수 있게 만들고, 다른 동물들을 설득한다.
 
 
  동무들! 여러분이 우리 돼지가 이기심과 특권의식으로 이러는 거라고 생각하진 않겠지요? 사실 우리 중 상당수는 우유와 사과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나도 좋아하지 않아요. 우리가 이걸 먹는 유일한 목적은 건강을 위해서입니다. 우유와 사과에는(동무들, 과학적으로 증명되었어요) 돼지의 건강에 필요한 필요한 영양분이 들어 있어요. 우리 돼지들은 두뇌 노동자입니다. 이 농장의 경영과 조직은 전적으로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밤낮으로 우리는 여러분의 복지를 위해서 애쓰고 있습니다. 우유를 마시고 사과를 먹는 건 오직 ’여러분’을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부여된 의무를 이행하지 못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여러분이 상상이나 하겠습니까? 언젠가는 존스가! 돌아올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존스는 반드시 돌아옵니다! 틀림없어요. 동무들." 스퀼러는 이러저리 뛰어다니고 꼬리를 흔들면서 호소하듯 외쳤다. "여러분 중에 존스가 돌아오기를 원하는 자는 아무도 없겠지요?"
 
 
  지배계층이 피지배계층을 설득하기 위해 다양하는 방법의 원천이 여기에 다 들어있음을 보았다. 한 장, 한 장 넘길때마다, 지나왔던 역사가, 지금의 현실이 다시 새롭게 보인다. 역사를 통해 현실을 다시 보는 것처럼, 고전을 통해 현재에 던져지는 의문의 원인과 변화의 씨앗을 찾는다. 아직도 문제제기가 유효한 작품을 고전이라 한다면,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은 여전히 고전의 자리에 있다.
 
  어제, 초등학교 6학년인 사촌동생과 대화를 했다. 게임을 좋아하고 놀기를 좋아하는 동생과 이야기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모두가 행복해지는 세상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갈수록 취업도 어렵고, 평생일자리도 없기 때문에, 빨리 니가 잘하는 걸 찾아, 먼저 회사에 들어가기 위해 노력해야 해라고 말하는 내 자신을 보았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다른 사람을 소중히 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가까운 이에게 현실에 맞게 요령껏 사는 모습을 이야기하는 나. 어쩌면 모두가 내 가까운 사람들을 생각하고, 누군가 좋은 사람이 좋은 세상을 만들어줄거라는 근거없는 기대를 하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그 대가를 치르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어떤 사상이 세상을 바꾸는 게 아니라, 한 사람의 마음이 다른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며, 세상은 조금씩 함께 사는 세상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누군가’ 해주기를 기대하는 마음이 아닌, 나부터 변화의 시작을 만드는 일, 오웰과의 대화는 늘 어두운 밤에 만나지만, 새벽의 일출을 기다리게 하는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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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 - 전2권 - side A, side B + 일러스트 화집
박민규 지음 / 창비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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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친 세상, 독특한 상상력으로 이겨내게 하는 박민규의 힘.
 
 
  바람이 차다. 마음 한 켠을 서늘하게 만드는, 차가운 기운이 박민규의 소설을 읽었을 때의 기분이다. 전작 단편집 『카스테라』를 통해, 거대한 상상력으로 세상을 견디는 힘을 알려줬다면, 이번 단편 모음집에서는 따스함이 묻어있지만, 현실의 어둡고 쓰린 부분을 바로 볼 수 있는 서늘함이 보인다. 그의 소설을 읽고 있으면, 우울하게 느껴지는 삶을 외면하지 않고 바로 보게 된다.
 
  어렸을 적, 꿈많던 시절 아이들과 함께 보물을 숨겨놓았던 상자를 꺼내보는 데에서 시작하는 <근처>는 시한부 선고를 받고, 고향으로 돌아가 보물상자를 찾아 떠나는 남자의 이야기이다. 상투적으로 느껴지는 소재가, 박민규의 상상력을 만나면, 30년의 세월이 흐른 뒤의, 속물적인 우리의 모습과, 남아있는 연민, 그리고 애틋한 마음이 섞여, 과거의 흔적을 찾았다 생각하지만, 결국 찾았는지 조차 가늠하지 못하는 지금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18편의 단편집은 LP의 형식을 꿈꾸었던 작가의 바람처럼, Side A와 B 두 권으로 묶였다. Art book이라는 이름으로 나오는 표지와 앨범 설명의 글은, 처음은 그냥 작품으로 읽고, 두 번째는 작가가 누군가를 위해 헌사한 이를 생각하며 다시 읽게 한다. 아버지를 위해 쓴 『누런 강 배 한 척』의 글에서는 그냥 읽었을 때의 아련한 마음에, 그 연유를 알고 나니, 마음이 더 서글퍼졌다.
 
 
  인생을 알고 나면, 인생을 살아갈 힘을 잃게 된다.
 
  몰라서 고생을 견디고,
 
  몰라서 사랑을 하고,
 
  몰라서 자식에 연연하고,
 
  몰라서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어디로 가는 걸까?
 
 
  인간이란
 
  천국에 들어서기엔 너무 민망하고
 
  지옥에 떨어지기엔 너무 억울한 존재들이다.
 
  실은 누구라도 갈 곳이 없다는 얘기다. -   65p
 
 
 #  눈여겨 보지 않은 비주류의 인간들을 사회로 올려보내다.
 
 
  성공을 꿈꾸고, 경제적 부를 위해 노력하는 세상이다. 함께 즐겁게 살기 보다, 나만 잘 살기 위해, 게임의 룰을 익히고, 게임의 룰을 지배하려고 애쓰는 이가 넘치는 세상이다. 나만, 너를 밟아야 내가 살 수 있다는 경쟁의 원리를 회사에서, 학교에서, 가정에서, 더 좋은 조건의 사람을 만나, 결혼하고 연애하고 살아야 한다고, 현실을 무시할 수 없다고 외치는 사회에 숨쉬고 있다.

  주류에서 밀려난 이들이 박민규 작가의 책에서는 잘 보여서 그의 작품을 좋아한다. 너무나도 못생겨 글로 표현하기 어려운 이를 위해 쓴,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처럼, 사회에서 만들어 놓은 덫에 빠져, 꿈이 있다면, 변리사를 목표로 도전하는 이벤트 행사의 직원이 나오기도 하고(「굿바이 제플린」), 치매에 걸린 할머니와 생의 마지막을 기다리는 할아버지의 마지막 순정을 그린 「낮잠」도 있다. 살고 싶어서, 다리 위에 올라가 하소연하는 남자와, 그를 설득해서 내려보내야 하는 경찰관의 이야기를 그린 「아치」의 등장인물을 보며, 보려하지 않아 더 춥고 힘든 사람들을 소설을 통해 만나, 지금 현재의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  아까워서, 두고두고 읽고 싶어지는 책.
 
 
  맛있는 음식과 맛 없는 음식이 있을 때, 맛있는 음식을 먼저 먹는 편이다. 늘 나는 지금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음식을 먹고 있다는 마음을 가지면, 내 입맛에 맞지 않은 음식을 먹더라도 기분이 나쁘지 않다. 책은 반대로 좋은 책은 아껴두고 두고두고 읽는 편이다. 한 번 읽고 나면, 다시 읽기 싫어지는 책이 있는가 하면, 읽을 때마다 새롭게 다가오는 책이 있다. 무엇보다, 한 편 한 편 읽다보면, 끝이 다가오는 것이 싫어, 주춤주춤 책장을 넘기고 싶지만, 휘리릭 글을 읽고마는 책도 있다.
 
  읽다보면, 지금, 여기에 살아가는 다른 사람의 숨결이 느껴진다. 지금 따뜻한 방안에서 책을 읽는 이 시간에도, 다양한 환경에서, 개성 넘치는 사람들이, 틀에 박히지 않은, 하지만, 틀에 박힌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 속에 살고 있음이 보인다. 사회의 문제를 무겁게 다루지 않아 읽는 일이 불편하지 않았다. 하지만, 여운은 길게 남아, 내 주변의 사람들이 작품을 읽을 때마다 한 명씩 생각났다. 바쁘다는 핑계로 소식이 끊어졌던 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서늘한 작품의 기운에 마음이 외로워졌기 때문인지, 조금 더 넓게, 더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도 바라보는 시시야가 넓어졌기 때문인지는 흘러가는 시간이 좀 지난 후, 다시 작품을 읽고, 되물어 봐야겟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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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탐정의 규칙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혁재 옮김 / 재인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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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상한 추리 트릭, 이제는 변화가 필요해.
 
 
  한국 드라마에 늘 나오는 소재들이 있다. 과도한 고부갈등과 아이에 대한 집착, 혈연에 대한 강조, 사랑 지상주의는 늘 반복되기에 식상함을 느낀다. 주인공 연인들은 같은 장소에 있지만 서로를 알아보지 못한다. 주인공은 늘 난치병에 걸리는 등, 반복되는 코드를 비꼬아서 예능 프로그램에서 소개한 기억이 난다. 추리소설 역시, 오랜 시간 독자들과의 머리 싸움을 하다보니, 추리소설에 꼭 나오는 반복적인 코드들이 존재한다. 추리소설 작가인 히가시노 게이고는 늘 범인은 누구인가?에 집중하는 추리소설계의 현실에 염증을 느끼고, 시니컬하게 그 코드들을 풍자하는 소설을 출간한다. 1996년 출간된 그 작품 이후, 저자 역시 기존의 트릭에서 벗어나, 누구보다는 왜 범인이 범행을 저질렀는지에 더 무게를 두는 작가로 변신한다.
 
 
#  싫증을 아는 인간이기에 추리소설은 존재한다.
 
 
  반복되는 일은 지겹다. 인간처럼 싫증을 잘 내는 동물이 없다 생각한다. 반복적인 일에 행복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어느 하나 새로운 자극과 새로운 아이디어로 자신의 고정관념을 바꿔주기를 바란다. 추리 소설을 좋아하지만, 매번 반복되는 트릭에 지루한 추리소설 마니아에게는 트릭으로 소설을 채우는 작가들에 대한 통쾌한 비판이 두뇌를 자극한다. 추리소설을 처음 만나는 독자에게는 다양한 추리트릭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 수 있는 계기가 된다. 밀실살인, 의외의 변인, 고립된 무대, 다임 메시지, 시간표의 트릭, 토막 살인 등 현실에서는 일어나기 힘든 추리소설 내에서의 살인을 비꼬는 소설 이야기가 흥미롭다.
 
  늘 사건의 뒤에서 진실을 찾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등장하는 명탐정은 매번 반복되는 문제 해결에 지겨워하고, 옆에서 늘 허탕을 쳐야하는 조연 경시청 경감의 시선에서 이야기가 흘러가는 이야기의 구성이 탁월하다. 독자들의 심리를 잘 아는 작가라고 할까. 정해진 패턴에서 벗어나, 전혀 생각지도 못한, 초보자들이 두는 수를 던져놓고, 익숙한 패턴을 읽는 독자들의 익숙한 패턴에 반기를 든다. 왜 명탐정을 늘 멋있어야 할까? 왜 명탐정은 늘 마지막에 나타나야 하는 거지? 등등을 묻는 그의 시선은 늘 변하지 않고 무기력하게 하루를 사는 사람들에게 던지는 변화의 목소리로 읽어진다.
 
 
#  작가의 새로운 시도는 독자를 즐겁게 한다.
 
 
  기존의 추리 형태에 반기를 든 작가는 기존의 추리에서 사용되는 트릭을 사용하지 못한다. 고전적인 트릭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추리소설이 흥미로울 수 있다는 점을 저자는 이 작품 이후 출간되는 『내가 그를 죽였다』, 『비밀』 등의 다양한 작품을 통해 보여주었다. 다작을 하는 작가이기에, 그의 작품은 국내에 많이 출간되었다. 이과 출신답게, 과학적 요소가 추리소설에 들어가는 작가이면서, 범인과 쫓는 자의 감정의 교류를 많이 보여주는 작가인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풍의 변화를 엿볼 수 있는 소설이다.
 
  일본 추리소설의 폭넓은 사람들의 지지와 다양한 작가의 출현에 비해, 한국 추리소설은 장르문학으로서 문학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적고, 활동하는 작가도 적다. 히가시노 게이고보다 뛰어난 재능이 있는 작가가 나온다고 해도 작품을 만나기 어렵다고 할까. 만들어지는 많은 작품이 드라마로 각색되는 일본처럼, 한국에도 추리소설 작가의 작품이 드라마로 많이 출간되기를 희망한다. 『별순검』 등 다양한 작품들이 시청자의 눈을 사로잡고, 이어서 책으로 출간되는 선순환이 일어나기를 바란다. 한국형 명탐정이 존재하지 않기에, 명탐정의 규칙으로 추리소설계를 풍자할 수 있는 일본 문학계가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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