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주의보
엠마 마젠타 글.그림, 김경주 옮김 / 써네스트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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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말은 잘 못하지만...

  가까이서 들어주는 건 누구보다 잘해요. 

   

  사랑에 빠지게 되면, 상대를 위해 어떤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상처주지 않으면서, 더 그 사람을 더 즐겁게 해 줄 수 있는 말이 무얼까. 늘 마음은 행동과 같지 않아, 때론 상처주는 말도 하지만, '나'가 아닌, 누군가에게 마음이 쓰이고, 그를 생각하는 시간은 아름답고 찬란하다. 

  초록 대문에 살고 있는 발렌타인은 말을 하지 못하는 벙어리이다. 초콜릿색 콧물을 흘리며 골목에서 우는 그녀에게 "가까이 와"라는 말과 함께 다가온 아이에게 사랑에 빠진다. 그애한테 전화가 오면 어떻하지?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할 수 없는 아이 발렌타인은  사랑의 설레임과 결국 헤어지게 되는 말에 대한 두려움에 마음이 아파온다. 

  첫사랑에 빠진 소녀의 풋풋한 마음이, 독백처럼 페이지에 가득하다. 어린 아이가 그린듯한 일러스트는 글과 잘 어울려, 소녀의 마음을 잘 전해준다. 꿈속에서 수없이 아이에게 말하려 했던 그 말, "난 말은 잘 못하지만.... 가까이서 들어주는 건 누구보다 잘해요"라는 말에는, 사랑에 빠진 이가 따스한 마음이 그대로 전해진다. 

 
# 짧은 글, 마음속에 스며드는 분홍주의보 

  잠언집처럼, 마음을 포근하게 감싸주는 짧은 글로 이루어진 소설이다. 사랑이 스며드는 무렵, 몸에 생기는 변화들을 번역자인 시인은 본홍주의보라고 정의내렸다. 벙어리 소녀가 사랑에 빠지면서 겪는 성장통이, 봄, 여름, 가을, 겨울, 한 해를 지나가며, 동화처럼 순수한 마음이 가득찬 유년시절로 돌아가게 한다. 

  책을 읽다보면, 가만히 사랑하는 일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저자의 따스한 마음이 전해진다. 사랑에 아파하고, 사람에 배신당한 이라도, 이 따스한 소설을 읽게되면, 다시 사랑을 꿈꾸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할까. 말하지 못하기에 마음을 전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말이 없기에, 눈동자로 충분히 자신의 마음을 전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가는 과정을 통해, 사랑은 무언가가 충분히 갖춰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 모습 그대로로 가능함을 알려준다. 

   

# 사랑한다는 건, 곁에 함께 있어준다는 것. 

   

  사랑을 한다는 것이, 그 사람이 늘 좋은 기분의 상태를 유지시켜 주는 일이라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이 되게 하는 일이 그를 아끼는 마음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 생각했었는데, 책을 읽고 나서, 그가 어떤 모습이던지, 말 없이, 그의 곁에서 그와 함께 기쁨도 슬픔도 나누는 일이 사랑임을 배웠다. 

   조금 더 빨리 알았다면, 내 사랑이 더 풍성해 질 수 있었을까? 전하지 못하는 마음을 이야기하기 위해, 말을 하지만, 그 말은 전해지지 못하고, 보이는 모습과 행동을 통해, 우리는 사랑을 확인한다. 누군가에게 사랑은 값비싼 선물을 충분히 내게 보여주는 일로 정의되고, 누군가에게는 내가 같은 말을 반복하더라도, 처음 듣는 것처럼 내 편이 되어 들어주는 일이다. 그저 가만히 위로받을 수 있는 안식처를 원하는 이도 있다. 

  사랑에 관한 글들을 최근 읽게 되어서일까. 봄이 찾아오기 때문일까. 마음이 외로워서일까. 사라져버린 줄 알았던 몸의 사랑세포가 아직 남아있음을 알게 되었다. 

  분석하고, 판단하는 이성의 마음을 벗어던지고,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어린 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가볍게 책을 읽다보면, 점점 잊고 사는 마음의 한 감정을 발견하게 될거라 생각한다. 어쩌면, 벙어리 소녀 발렌타인에게 찾아온 분홍주의보가 내 곁에도 있음을 확인하게 될지도 모른다. 봄이 오고 있다. 따스한 봄, 사랑하고 싶은 계절에 읽기 좋은 책이다. 분홍색 표지만 봐도, 마음이 따뜻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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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의 몸값 1 오늘의 일본문학 8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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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림픽의 화려한 이면 뒤에 숨겨진 노동자들의 땀의 흔적들.  

 

  1964년 일본은 도쿄올림픽을 개최하기 위해, 야쿠자들은 소란을 자제하고, 동네마다 환경미화에 애를 썼으며, 거리에 노점들도 다 없애버렸다. 세계의 사람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마음과 전쟁 이후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마음에, 많은 국민들의 시선이 올림픽에 쏠려있다. 

  아버지는 경시청 경시감, 형은 대장성 간부인 대단한 집안에서 유일하게 망나니 취급을 받는 스가 다다시는 새로 개국된 방송국에 취직했다. 비싼 스포츠카를 타고, 배우였다가 호스피스로 자리를 옮긴 미도리와 함께 불꽃놀이를 보러 나오던 중, 도쿄대를 함께 다녔던 친구 시마구치를 만난다. 그 후, 자신의 집에 불이 났음을 알게된다. 

  올림픽을 50여일 앞두고, 경시청으로 한 통의 협박 편지가 도착한다. 올림픽을 제대로 개최하고 싶으면 몸값을 지불하라고.  협박 편지 이후, 올림픽 총 책임자 경시감의 자택에서 폭발사고를 시작으로, 도로의 모노레일, 경찰 기숙사 등 방화사건이 일어난다. 신문과 방송에서는 가스누출로 인한 화재사고로 사건 자체를 은폐한다. 경시청과 경찰에서는 두 파트로 나뉘며 경쟁적으로, 범인의 뒤를 쫓는다. 

  유력한 용의자는 지방의 이케다 출신의 도쿄대생 시마자키 구니오이다. 도쿄에서 막노동을 하며, 지냈던 형의 사고를 계기로, 형이 일했던 막노동의 현장을 경험한다. 통일이라는 16시간을 끝없이 일하는 일의 고됨과 밥값, 중간관리자의 횡포, 야쿠자의 횡포 등 다양하게 벌어지는 약자에 대한 착취를 생생하게 경험하게 된다. 형의 죽음을 알리러 고향으로 가는 기차에서 만난 소매치기를 동료의 죽음으로 올라온 유족을 마중나가기 위해 다시 만난 시마구치는 올림픽을 몸값으로 국가를 상대로 크게 한 건 털어보자고 제안한다. 

 
#  올림픽의 화려한 준비 속에 외면받는 진실들.. 

   

2010년 동계올림픽이 열렸다. 선수들의 뛰어난 노고로 인해, 세계 신기록도 나오고, 종합 5위라는 놀라운 성적을 냈다. 올림픽의 금메달의 영광에 취해 있는 동안, 전투병력 파병이라는 큰 이슈는 매우 조용하게 지나가버렸다. 세종시, 사대강, 이런 굵직한 이슈 말고도, 3불정책, 노인복지, 산모 도우미 등 서민들의 삶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이슈들이 많이 있는데도, 대부분 블랙홀에 빠진듯이 사라져버렸다. 1964년의 시대를 그림 책을 보며, 46년전에도 여전히, 대기업은 정규직, 하청업체는 비정규직의 격차사회가 있었고, 다양한 방법으로 가진 것을 빼았는 풍토가 존재했으며, 권력의 목적을 위해 언론을 통제하는 분위기가 존재함을 이해했다. 

   학문의 세계에 푹 빠져있던, 도쿄대생 시마구치가 세상의 거친 현실을 만나가는 모습이 흥미로웠다. 이상으로 생각했던 인간에 대한 예의는 사라지고, 소득의 차이와 지식의 차이로 착취하고, 홀대하는 세상의 현실을 만나가며 테러리스트로 변해가는 모습에 공감이 갔다. 순수한 영혼일수록,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서 참을 수 없어한다. 그러다 한 번 타락해버리면, 더욱 끝까지 무너져버린다고 할까.  

 1권에서는 점점 수사망이 좁혀지며, 시마구치 구니오를 추척하는 모습이 담겨져 있다. 그가 어떤 요구를 했고, 어떻게 돈을 받으려고 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부유하게 태어나 세상을 즐기는 스가의 모습과 가난한 고학생에서 테러리스트로 변해가는 시마구치, 시마구치에게 연모의 마음을 가진 헌책방 딸 요시쿄, 이제 막 지은 도쿄의 아파트에 입주해서 둘째 아이의 출산을 기다리는 마사오 경사까지, 용의자와 친구, 배우자와 연인이라는 네 명의 시각에서, 도쿄 올림픽의 개최를 둘러싼 도쿄의 풍경을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일본의 도쿄 집중화만큼은 아니지만, 한국 역시, 수도권 집중의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 다른 지역에 있는 사람을 촌사람이라고 멸시하는 분위기는 있는지 확신할 수 없지만, 아직은 한국은 지역의 차이에 의한 계급의 격차가 심한 편은 아니라 생각한다. 더 나아질 수 있는 욕망과 그 꿈이 이루어지는 공간이기에 도시에 살수록 사람들의 마음이 이해관계에 더 깊어지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시골이였다면, 너무나 좁기에 마음놓고 행동을 할 수 없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눈여겨 보지 않았던 사람들이 겪는 현실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그들의 삶을 알았다고 해서, 내가 해결해 줄 수 있는 건 없다. 하지만, 힘겨운 마음을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세상이 조금은 달라질 수 있는 희망의 가능성이 생겼다 생각한다. 그 가능성을 어떻게 현실에 보탬이 되는 결과로 만들어낼지는, 책이 던져준 해결하기 어려운 숙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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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경찰의 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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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경찰의 밤


#  운전석에 앉으면 성격이 바뀐다.
 
 
  은행업무를 볼 일이 있어, 어제 아버지와 함께 차를 타고 시내로 나섰다. 평소 차분하고 말씀이 없으신 아버지이지만, 운전석 앞에 앉으시면, 작은 일에도 크게 예민해지신다. 지하 주차장에서 지상으로 이어진 길로 가던 중, 반대편에서 나오는 차와 마주치게 되었다. 뒤로 물러나시는 아버지와 달리, 상대편 차는 주차공간이 보였는지, 시간을 끌면서 주차를 다 시켰고, 아버지는 속이 상하셨는지, 표정이 좋지 않으셨다. 지상으로 올라와 좌회전을 해야 할 상황이 되자, 또 맞은편에서 온 차가 빈자리가 하나 남았는지 또 주차를 하며 시간을 끌었다. 그리고 다음 차 역시 자신이 먼저 진입하려고 차를 먼저 들이대었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이런 상황들을 매일 만나면서 살다보면, 아무리 넓은 마음을 지닌 사람이라도 화가 울컥하면서 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욕을 하시려는 아버지를 달래기 위해 진땀을 뺐다. 사실, 아버지에게는 화를 내지 않는게 좋다고 말했지만, 마음 속에는 불쾌한 마음이 가득했다.

   
  진입에 대한 사소한 문제에서도 감정이 얽히는데, 한쪽의 과실로 인해 나타나는 교통사고에서 우리는 얼마나 솔직해질 수 있을까. 『교통경찰의 밤』에서는 빈번하게 일어나는 교통사고의 진실을 들여다보며, 교통사고는 쉽게 누구나 저지를 수 있고, 교통사고 앞에서 진실을 가려내는 일이 얼마나 힘겨운지 깨닫게 한다. 단편적인 사실과 자신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이기심, 그리고 법규라는 장벽에
놓인 이점을 약삭빠르게 활용하는 사람들, 자신의 부주의가 만들어낼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경험하게 함으로써 교통법규와 교통사고에 우리가 얼마나 취약한지 돌아보게 한다.
   
   
#  도로 위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사건들..
   
   
  운전면허를 딴지 얼마 되지 않았다. 차를 타게 되면, 운전자들이 어떻게 운전을 하는지 옆자리나 뒷자리에서 지켜보며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고 있어, 도로의 상황들을 잘 지켜보고 있다. 규정속도는 60인데, 다들 80으로 달리게 되면, 단속카메라나 경찰관이 없는 이상, 교통법규를 지키기 보다, 주변 사람들의 흐름에 맞춰 운전하는 경우가 많다는 걸 알고 있다. 때로 초보이거나 묵묵하게 속도를 낮춰 가는 사람을 보면, 운전자들은 답답해 하고, 급한 일이 있을 때는 나 역시, 마음이 급하기도 했다. 반대로 몸이 좋지 않고, 천천히 달리기 좋아하는 운전자의 차에 타고 있을 때는, 커브 길에서 위험하게 추월하는 차를 보았을 때, 사고의 위험이 느껴져 두려웠다. 사고는 뭔가 큰 잘못을 해서 일어나는 게 아니라, 누군가가 짧게 생각해서 지금을 빨리 넘기려는 생각에 빠지는 순간 일어남을 느꼈다. 내가 아무리 안전운행을 해도, 뒤에서 큰 속도로 달려오는 차가 박아버리면 사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 매우 불안하고 위험한 상황이지만, 다들 무덤덤하게 또 하루를 살아가고 있음을 느꼈다.
 
  6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소설이다. 초록색인지 빨간색인지 신호등의 색에 따라 가해자가 결정되는 상황을 보여주는 『천사의 귀』에서는 목격자의 발언의 중요성과 진실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밀도있게 지켜볼 수 있어 좋았다. 선의로 운전하는 사람이 있어도, 악의에 넘치는 사람에 의해 충분히 가해자로 몰릴 수 있는 상황을 보여주는 『분리대』에서는 인간의 어두운 내면과 자신의 목숨을 걸고 법률의 경계를 넘기면서까지, 가해자에게 보복하는 피해자의 분노가 전해졌다. 교통경찰에게는 많은 업무 중 하나이지만, 당사자에게는 인생의 진로가 바뀌는 중요한 문제라는 점도 함께 떠올랐다.

  
  『위험한 초보운전』에서는 저속으로 움직이는 차량에 위해를 가한 남자가 살해자로 몰리는 과정을 통해, 살인미수 못지 않게 다른 차를 압박하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생각했다.  『불법주차』에서는 내 자신의 편의를 위해 잠시한 불법 주차가 만드는 최악의 상황과 대면했다. 『버리지 마세요』에서는 운전석 창 밖으로 던지는 깡통이나 담배를 던지는 일의 위험성이, 『거울 속에서』에서는 생활습관의 차이가 만드는 사고의 위험과 사랑하는 이를 지켜주고 싶은 남자의 마음이 전해졌다.
 
 
#  오늘도 안전운행 하고 있습니까?
 
   
  운전을 할 때 롤모델로 삼고 싶은 운전자가 두 명이 있다. 방어운전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신 아버지의 섬세한 운전습관과 신장이식을 두 번이나 받은, 지인이다. 지인은 조금 늦더라도 과속하지 않고, 뒤에 차가 바쁘다고 추월하려하면, 그냥 추월하도록 자리를 내어준다. 처음에는 너무 느린 것 같아 답답했었다. 하지만, 룰을 어기면서 바쁘게 달려가던 차가 큰 사고가 나서 병실에 오래 있는 모습과 타인의 교통사고를 막을 순 없지만, 내가 현명하게 대처하면 사고를 줄일 가능성이 더 높아지는 현상을 목격하면서 속도를 즐기며, 아슬아슬하게 조금 더 빨리 도착하기 위해 달리는 운전보다, 조금 느리지만 여유있게 안전한게 달리는 운전습관이 중요함을 느꼈다.
 
  『괴짜 경제학』에서 무인 베이글 판매기를 10년 이상 운영했던 이의 통계에 따르면 87프로의 사람은 선량하게 규칙을 지켰다고 한다. 도로 위에서 운전하는 사람들의 열 명 중의 아홉명은 조금 더 빨리 가는 길이 있더라도, 정해진 룰 안에서 현명한 안전운행을 하고 있을거라 생각한다. 그렇지 않은 10명 중 한 명을 만나게 되었을 때는, 화가 난다. 약속을 지키는 10명 중 9명이 있기에, 운전대를 잡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버스, 택시, 자동차 등 하루에도 몇 번 씩 도로 위를 지나치는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추리소설은 가해자와 피해자, 사건을 추적해가는 세 사람의 입장에서 사건을 바라볼 수 있기에,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기에 좋은 장르라 생각한다. 왜 사건이 일어났을까를 따라가다보면, 인간의 악의와 만나게 된다. 조금 더 편해지려는 마음이 만들어내는 악의에서 자유로워지는 순간, 사회는 조금 더 신뢰할 수 있는 공간으로 될거라 믿는다. 당장의 순간에만 집중하던 내게, 타인의 입장도 한 번 고민하게 만든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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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현대문화센터 세계명작시리즈 26
오스카 와일드 지음, 하윤숙 옮김 / 현대문화센터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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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영혼과 아름다운 얼굴, 둘 중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착한 마음과 아름다운 얼굴, 둘 모두를 꿈꾸지만, 하나도 제대로 갖기 힘들다. 아름다운 영혼과 아름다운 얼굴의 합을 100으로 해서, 사람들에게 나누어줬다고 해야 하나. 인생에서 겪어야 할 슬픔의 양과 기쁨의 양이 서로 같다는 말이 생각난다. 탱탱한 피부, 밤을 새워도 지치지 않는 체력은 어린 시절에만 가능한 일이란 생각이 든다.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몸은 조금씩 굳어가고, 체력도 예전같지 않다. 본디 가졌던 것을 조금씩 잃어가는 일을 인정해야 하는 삶을 산다는 일은 얼마나 힘든 일일까. 소설을 읽으며 도리언 그레이의 열망과 70대 재벌 총수가 자신의 재산을 다 주고서라도 젊고 건강하게 살고 싶다는 소망이 닮음을 알았다.
 
  아름다운 얼굴과 부유함을 모두 갖춘 청년 도리언 그레이에 흠뻑 빠져, 화가 바질 홀워드는 그의 초상화를 그린다. "젊음! 젊음! 이 세상에 젊음만한 것은 절대로 없다네."라는 찬사를 보며, 젊음의 유한성을 깨달은 도리언은 '그림이 자신 대신 늙고, 자신은 영원히 젊음을 간직했으면 좋겠다'는 소원을 빈다. 소원은 이루어지지만, 그는 조금씩 타락하는 자신의 영혼을 대면해야 하는데...
    

#  질문거리를 던져주는 소설.
 
 
  좋은 책은 하나의 질문과 하나의 답이 숨겨있다고 생각한다. 작가가 던지는 영혼과 소망에 대한 질문도 좋았지만, 교양있는 화가와 그의 친구 헨리경, 도리언과 도리언을 사모한 시빌 사이에서 오가는 대화들에 음미할 내용이 많았다. 
  
  아 아름다운 사랑. 당신은 내 영혼을 감옥에서 꺼내어 자유롭게 했어요.  진짜 현실이 어떤 건지 내게 가르쳐줬어요.  당신은 내게 뭔가 소중한 것을 가져다 주었어요.  모든 예술은 그것을 그대로 반영한 것일 뿐이지요.  난 무대가 싫어요. 내 안에 아무 느낌도 없는 열정을 흉내 낼 수는 있겠지요.  하지만 나를 불태우는 이 뜨거운 불을 흉내낼수는 없어요. 

  사랑에 빠져있을 때의 열정, 사랑이 버림받았을 때의 불안, 공포, 낭만주의 시대의 작품이다 보니, 짧고 뜨겁게 타오르는 열정의 온기가 그대로 느껴진다.
 
  이보게, 시골에서는 누구나 착한 사람이 될 수 있네.  거기엔 유혹이 없으니까. 문명이란 결코 쉽게 얻어지는 게 아니거든. 문명에 이를 수 있는 길을 딱 두가지네. 하나는 교양을 쌓는거고, 다른 하나는 타락하는 거지. 시골 사람은 그 어느 쪽도 접할 기회가 없어. 그래서 정체되어 있는 거라네.
 
  오스카 와일드가 살았던 시대의 귀족과 농민의 차이, 교양에 대한 관점, 현대사회의 풍경과의 차이 등이떠오른다.  

  나는 다른 무엇보다 여자들이 잔인한 마음을 제대로 알아볼까봐, 노골적인 잔인성을 알아볼까 봐 걱정이네. 그들에게는 놀라울 정도로 원초적인 본능이 있어. 우리는 이런 본능을 모두 놓아버렸지만,  여자들은 여전히 노예 상태로 남아 주인님을 찾고 있지. 우리 모두 자기 안에 천국과 지옥이 함께 들어 있지요, 바질.
 
  인생은 늘 선택의 버튼을 누르며 살아간다 생각한다. 늘 나은 선택을 하기 위해 고민한다. 최선보다 차악을 피해 선택하는 일이 흔하다. 자신의 모든 걸 걸면서 소망하기를 원하는 도리언 그레이의 선택이 부럽기도 했고, 안타깝기도 했다. 하지말라는 건 다 아름답고 달콤하다는 이야기처럼, 인생의 길 역시, 늘 유혹과 선택의 갈림길에서 좋은 선택을 하기도 하고, 잘못된 선택이 늘 마음에 남아 후회로 남아 자신에게 상처로 남기도 한다.
 
  유혹이 넘치는 세상에 살고 있다. 늘 아름다운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내면에 많은 악의 에너지를 다른 곳으로 보낼 수 밖에 없는 도리언 그레이의 모습을 보며,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인간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더 예뻐지기 위해, 더 사랑받기 위해, 더 잘나보이기 위해, 많은 유혹에 휘둘리며 살아가는 현대인의 풍경이 보인다. 초상화의 얼룩된 그림만큼, 그의 용모는 더 아름다워졌지만, 그는 늘 괴로워했다. 보이지 않는 영혼을 팔면서도 괴로워 하는 인간의 모습이 양심적인 모습인지, 바보같은 모습인지, 단정짓기 어렵다. 강렬한 햇살을 받은 물체일수록, 더 강한 그림자를 남기다는 말이 생각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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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급생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신경립 옮김 / 창해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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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려진 사실 뒤에 숨어있는 진실 찾기.
 
 
  니시하라에게는 어른들의 잘못으로 심장이 기형으로 태어난 연약한 동생 하루미가 있다. 몸이 약한 하루미는 야구를 열싱히 하는 니시라하의 모습을 좋아하고, 니시하라의 학교가 전국대회에 진출하기를 염원하고 있다. 하루미를 볼때마다 마음이 아픈 니시하라는 언젠가 꼭 복수할거라고 다짐한다.
 
  미야마에 유키코가 죽은 것도 5월도 중순으로 접어든 어느 월요일이었다. 책은 야구부 매니저였던 유키코의 죽음 소식으로  이야기는 진행된다. 야구부 주장인 니시하라는 갑작스레 사고로 숨을 거둔 유키코의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는다. 장례식장에서 만난 동급생 히로코에게 니시하라는 유키코의 임신 소식을 듣게 된다. 다음날 학교에 유키코가 임신중에 사망했다는 소문이 퍼진다. 그녀를 짝사랑했던 왼손투수 가와이는 아이의 아버지에 대해 니시하라에게 묻게되고, 니시하라는 만약 임신을 했다면, 자신이 아버지일거라고 인정을 한다.
 
  장례식장의 조문도 편하게 하지 못하게 막는 미사키 선생님의 행동과 임신 소문을 퍼뜨린 아이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유키코가 산부인과에 나온 뒤 누군가에게 쫓기게 되었다가 사고를 맞이했다는 사실을 듣게 되고, 니시하라는 학교 교실에서 동료들을 증인으로 세우며, 진실을 말해달라 이야기한다. 야구부 연습 등의 갖은 훼방을 놓으며 방해하는 미사키 선생과 미사키 선생이 존경하는 하이토 선생들을 압박을 받으면서도 니시하라는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진실을 찾아나간다. 그러던 중, 갑작스레 미사키 선생의 살인사건과 동급생 히로코의 살인미수사건이 벌어지고 니시하라는 용의자로 주목받게 되는데...
 
  
#  교사에 대한 불편한 시각이 잘 녹아있는 작품.
 
 
  규율을 중시하고 권위적인 교사의 모습과 교사에 대한 작가의 불편한 시각이 가득한 작품이다. 진실을 밝히기 보다, 적당한 선에서 덮으려는 선생님들의 행동과 겉과 다른 행동을 하는 교사의 이중적인 모습, 설득보다 권위로 해결하려는 태도들은, 임신사건에 선생님이 개입했음에도 유족들에게 학생의 명예를 생각한다며, 조용히 덮겠다고 설득하는 장면과 문제를 크게 만드는 니시하라를 제압하기 위해, 학생을 협박해 야구부의 출전을 막으려는 모 교사의 계략에서 자연스레 느껴진다.
 
  혈기가 느껴지는 고등학생의 패기와 자신의 상처받은 감정을 위로받기 위해,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선택을 하는 어린 모습도 느낄 수 있는 소설이다. 사려깊을 수 없는 청춘의 열기와 사건이 부딪치는 느낌이 강했다. 정교한 퍼즐을 맞추듯, 잘 짜여진 글을 쓰는 히가시노의 매력이 담겨있는 소설이다. 1993년에 출간된 초창기 작품이라, 사건 뒤의 사회적 현상에 주목하기보다, 사건의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이야기는 진행된다.
 
 
# 일상에서 벗어나게 만드는 흡입력 있는 추리소설.
 
 
  거짓말 하나, 등장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사건과 사실 뒤의 숨겨진 진실들이 밝혀지면서, 사건의 전모가 하나씩 밝혀지게 된다. 추리소설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독자의 생각의 범위를 뛰어넘는 새로운 사실들이 독자를 자극하는 책이다. 처음 읽었을 때는 새롭게 밝혀지는 진실들을 알아가는 새로움에 빠졌다면, 사건의 진상을 알고 난 후 읽는 두번째 읽기에서는 작가의 트릭이 얼마나 정교함이, 문체와 복선들을 통해 알아가는 재미가 있다. 추리소설의 매력은 사건의 진실을 찾는 과정에서 완벽하게 사건에 몰입하게 만드는 흡입력이라 생각한다. 이야기에 빠져있는 시간동안, 자신이 가지고 있던 소소한 걱정과 의미없는 생각들을 잠시 잊게 된다. 해답없는 걱정들과, 무료한 일상에 허덕이고 있는 이에게는 일상에서 탈출하는 기회가 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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